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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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가는 죽을지도 몰라."
"당연하지."
"죽는 게 무섭지 않아?"
"죽는 게 무서우냐고? 무슨 소리야? 죽는 건 엄청난 대모험이라고! 그렇지, 얘들아?"
피터가 대뜸 물어보자 소년들은 부리나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자, 봐." 피터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은 거야."   p.49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변주했던 <앨리스 죽이기>, '호두까기 인형'을 모티프로 한 <클라라 죽이기>, '오즈의 마법사'와 미스터리를 결합시킨 <도로시 죽이기>에 이어 이번에는 '피터 팬'이다. 작가는  ‘피터는 자신이 죽인 사람은 잊는다’, ‘네버랜드 아이들은 살육을 즐긴다’, ‘피터의 부하는 피터가 모르는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원전 문장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확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피터팬은 우리가 동화나 영화 속에서 만나왔던 피터팬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사악한 웃음을 짓는 피터팬이라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팅커벨 죽이기>를 어느 정도 읽다가 아무래도 이 '피터팬'이라는 캐릭터에게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팬> 원작을 다시 들춰 보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대목들을 발견했다. 솔직히 세상에 피터만큼 건방진 소년은 없었다, 피터의 관심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멋진 재주를 과시하는 데 있는 것 같았다, 등의 문장들은 영원한 소년 피터팬의 아이답고 철없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며, 악의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실제 동화에 묘사된 피터팬도 사람을 엄청 많이 죽여본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했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원했으며, 전투의 열망으로 가득하다는 걸로 나온다. 놀랍게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그 동안 이 <피터팬>이라는 동화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 온 걸까,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보자니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가 새삼스레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즉 이런 말인가. 범인을 찾으려면 모두를 신문할 필요가 있지만, 여기서 신문하면 증언의 가치가 점점 상실된다."
"그러니까 범인 찾기는 신중하게 진행해야 해. 누군가 부주의하게 말을 꺼낸 순간, 누가 범인이냐는 정보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어."
"네 머릿속에는 해결에 다다르는 경로가 만들어져 있어?"
"아마도."      p.293

 

이야기는 피터팬이 후크 선장을 죽이고 나서 웬디와 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온 뒤에서 시작된다. 피터는 웬디에게 봄철 대청소를 할 때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여름이 되어서야 데리러 간다. 웬디와 동생들과 달링가에 입양된 소년들은 모두 피터와 팅커벨을 따라 네버랜드로 향한다. 하늘을 날던 중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피터가 구해 온 고깃덩이 중에 말하는 도마뱀 빌이 등장한다. '죽이기 시리즈'를 계속 읽어 왔다면 누군지 알겠지만, 사실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도마뱀 빌과 지구에 사는 인간 이모리는 꿈으로 연결되어 있다. 빌이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를 만나고, 호프만 우주의 사람들과 사건을 수사하고, 오즈의 나라에서 활약하며 모험을 펼치는 동안 지구의 이모리가 도움을 주며 빌을 구하려고 한다. 현실과 꿈 속 세계, 각기 다른 두 세계에서 일어난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예를 들어 네버랜드의 누군가가 죽으면 지구에 있는 아바타라도 죽는다. 꿈 속 세계에서 살해당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범인을 찾아낼 수도,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쉽지가 않다.

 

네버랜드에 도착하자마자 팅커벨이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아이들은 피터를 범인을 찾는 탐정으로 적극 추천한다. 하지만 범인을 찾겠다며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피터 때문에 지구에서도 사고가 잇따르자 이모리는 살육을 멈추기 위해 그의 아바타라를 찾아 나선다. 꿈의 나라 네버랜드에서는 매일매일 살인이 일어나고, 동화 속 나라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지만, 그럼에도 도마뱀 빌과 이모리의 모험은 계속 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동화 속 세계가 잔혹한 환상으로 바뀌게 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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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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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눈에는 참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도쿄에서도 손꼽히는 고급주택가에 살고 있고 남편은 의사다. 열흘에 한 번씩 비싼 초밥을 시켜 먹고 쇼핑을 가서도 가격표를 일일이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카트에 담을 수 있다. 그런 생활이 요즘 들어 점점 숨 막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돌아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는 모른다. 어쨌든 돌아가고 싶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정말로 내가 있을 곳이 있지는 않을까?     p.89

 

대기업 홍보과에서 근무 하는 서른 넷 마유미는 빨리 결혼을 하고 싶지만, 마음에 딱 맞는 남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20대에는 애인 없이 지낸 시기가 없었을 정도였지만, 그 모든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결혼이라는 티켓만 손에 쥐면 인생의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게 될 것 같았지만,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큼 괜찮은 남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취재 중 다쳐서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대학 한 학년 선배인 도모아키를 만나게 된다.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미남 의사, 하지만 마유미에게 그는 절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남자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유미가 아꼈던 후배 A를 성폭행했고, 그 일로 A는 학교를 그만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오랜 만에 만난 도모아키는 당시 자신이 좋아했던 것은 마유미였으며, A가 일방적으로 매달리다가 안되니 자신을 유혹해 함정에 빠뜨린 거라고 말한다. 마유미는 그의 고백에 서서히 마음이 흔들리고, 결혼 상대로 완벽한 조건을 가진 그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결혼 8년 차인 유카리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간호사로 일하다 한 살 연상의 의사였던 남편을 만났고,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고급주택가에 있는 큰 저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남편 출근 후 청소와 빨래, 장을 보고 식사 준비 등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여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시부모는 손주가 생기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남편은 매일 밤 늦게 집에 들어왔고 작년부터 8개월 째 전혀 아내와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유카리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로 말이다. 유카리는 가끔 자신이 남편에게 어떤 존재일까 생각한다. 아내도 아니고, 어머니도 될 수 없고, 그저 동거인 혹은 시중을 들어주는 하녀처럼 느껴지는 나날이었던 것이다. 온종일 청소와 빨래로 시간을 보내고,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을 위해 간단한 야식을 만들어 주는 게 반복되는, 혹은 전부인 결혼생활이 점점 숨 막히게 느껴지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할 말이 없었다. 헤어져 달라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대로 불륜 관계를 계속 유지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유카리는 무릎 위에 들고 있던 찻잔을 한쪽에 내려놓더니 앉은 채로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였다.
"제발 부탁드려요. 이대로 남편이랑 사귀어 주세요."
"왜, 왜 이래요? 이러지 말아요."      p.257

 

유카리가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을 무렵, 마유미도 도모아키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유미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결혼이라는 티켓이 가짜였다는 사실에 분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이대로 조용히 물러서기에는 너무 억울했고, 그에게 자신을 속인 일에 대해 후회할 만큼의 상처를 안겨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하지만 그의 부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참을 수 없이 궁금했고, 그의 집 근처에서 마침 외출하는 그녀를 미행한다. 그러다 부인인 유카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말지만, 그녀는 뜻밖의 말을 건넨다. 남편과는 지금처럼 사귀어도 전혀 상관없다고, 부탁이니 이대로 남편이랑 관계를 계속 유지해달라고. 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인 걸까. 불륜 상대에게 헤어져 달라가 아니라,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해 달라고 부탁하는 여자라니 어찌 된 일일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재회>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던 요코제키 다이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여성들의 서사를 통해 그녀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의 며느리로, 아내로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여성들의 모습과 업무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른바 결혼 적령기를 지나게 되면 받게 되는 사회적 시선, 애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혹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여성을 자신의 소유처럼 대하는 남성들의 모습 등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데이트폭력, 가스라이팅, 결혼과 시집살이, 육아와 불륜... 대체 왜 여성들의 삶은 이리도 험난한 것인지 혀를 내두르게 되는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에는 중심 인물인 마유미와 유카리 외에도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가독성을 높여 준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1988년이지만, 2020년인 지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녀들의 서사가 공감되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 대부분의 여성 독자들에게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작품일 것이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적인 부분에서도 매력적인 작품이고, 현실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으로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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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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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때의 공포와 절망감이 되살아났다. 어쩌면 그대로 불길에 휩싸여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 게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고통은 죽음보다 괴롭다. 지로. 나의 지로. 그 목소리, 그 미소 그리고 그 젊은 육체. 두 번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내 평생 한 번뿐이라고 해도 좋을 연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게 끝을 맺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다. 지로와의 추억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p.104~105

 

대기업 회장의 비서인 기리유 에리코는 업무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거의 없어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랬던 그녀에게 여덟 살이나 어리고 잘생긴 애인이 생긴다. 에리코는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을 만큼 사랑에 푹 빠졌다. 그런데 회랑정이라는 료칸에서 의문의 화재가 일어나 애인이 죽고 만다. 그 날은 이치가하라 집안 사람들이 일 년에 한 차례 갖는 친적들 정기 모임이었다. 에리코도 그날 회랑정에 묵고 있었는데, 자다가 눈을 떠보니 주위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경찰은 그녀의 애인이 그날밤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회랑정에 와서 불을 지른 후 자신도 약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건은 그렇게 애인의 동반자살 시도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에리코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살이 아니라 살해당했고, 동반자살처럼 위장하고 그들 커플을 죽이려 한 사람은 그날 내부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것이다.    

 

 

그리하여 서른 두살인 에리코는 일흔살 노파로 분장해 회랑정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애인을 죽게 한 범인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서. 그날 자신이 모시던 다카아키 회장이 죽고 사십구재를 앞둔 시점에 이치가하라가의 막대한 유산의 행방이 발표되는 유언장 공개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녀가 분장한 노파는 다카아키 회장이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선배의 부인이라 그날 참석자로 지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날 다시 회랑정에 모인 이들은 반년 전 화재가 일어났던 날 모두 그곳에 묵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날 밤 에리코가 범인일 거라고 의심되는 행동을 했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범인을 죽인 또 다른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왜 범인을 죽여야만 했을까? 혹은 범인이 다른 사람이었던 걸까. 과연 에리코는 노파의 모습으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범인을 찾아내고 복수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눈으로 좇았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또다시 위가 콕콕 쑤시는 것 같았다. 나는 정원을 바라본 채 머릿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내가 다키아키 씨의 아들을 찾고 있다는 걸 누군가가 분명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와 지로가 죽기를 바랐던 것이 틀림없다. 문득 기념할 만한 날의 일이 되살아났다. 만약 범인이 뭔가를 꾸몄다면 그것은 그날 이후일 것이다. 나와 지로가 처음 만난 바로 그날.....      p.187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인 이 작품은 국내에 2008년에 출간되었다, 이번에 두 번째 개정판으로 새로운 표지를 입고 다시 나왔다.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작품이라 친자 확인 시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 등 과학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뛰어난 가독성과 놀라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올해 하반기에 일본에서도 개정판이 출간될 예정이며 중국에서는 소설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이야기로서의 매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나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가장 논란이 많다는 수식이 붙을 정도로 충격적인 결말로도 유명하니, 이번 개정판으로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면 어떨까 싶다.

 

유산상속을 둘러싼 재벌가의 탐욕과 암투, 외모 지상주의, 동반자살, 젊은 여성이 노파로 분장해서 벌이는 복수극까지 자극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 누구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중심 플롯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예상을 벗어나 처연한 미스터리로 향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너무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정된 장소에서 특정 인원들을 대상으로 범인을 색출하려는 미스터리로서의 재미와 한 여성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게 되는 지독한 사랑의 드라마가 안겨주는 감정적인 부분까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그의 초기작들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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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손잡고 웅진 모두의 그림책 33
전미화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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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가 아침 일찍부터 출근을 하고 나면, 오빠와 동생만 집에 남는다. 좋아하는 고등어 반찬으로 아침 밥을 먹는 동생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놀이를 할까 하는 그런 사랑스러운 표정 말이다.

 

오빠는 어린 여동생의 세수와 양치도 도와주고, 함께 놀러 나간다. 동생이 힘들어 하면 업어 주기도 하는 오빠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오빠와 동생은 신나게 놀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불이 켜져 있어 엄마가 온 거라고 생각한 남매는 집까지 뛰어 간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엄마가 아니었다.

 

화사한 색상의 밝고 귀여운 분위기였던 그림이 갑작스레 어둡고 거친 느낌으로 바뀌어 버린다. 크고 무서운 사람들이 또 왔고, 오빠랑 동생은 숨는다는 걸 보니,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는 것 같다. 이들 가족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걸까? 빚이라도 진 걸까? 싶은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알고 보니 <오빠와 손잡고>의 시작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이십 몇 년 전, 어느 동네의 철거 현장이었다고 한다. 전미화 작가는 부모에게 방치된 영화 속 네 남매의 일상과 뉴타운이라는 화려한 미래 뒤에 잊혀진 철거민 가족의 현실을 이 그림책 속에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초안이 완성된 것은 10여 년 전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그림책 속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전대미문의 팬데믹이 불러온 갑작스런 실업과 폐업, 파산 위기 등으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집에서 쫓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고등어 반찬이 춤을 추고, 꽃들이 인사하고, 나무가 안부를 묻고, 구름이 윙크하는 곳이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어디에 숨어 있어도 잘 찾아주는 든든한 기둥이고, 더 높은 곳으로, 더 나쁜 환경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잠든 남매만 남겨두고 일하러 가야 하는 부모의 삶도 녹록하지 않고,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오빠는 일찍 철이 들었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라 매일이 버겁기도 하다. 세상이 즐겁고 재미있기만 한 어린 동생은 오빠만 같이 있으면 무서울 게 없지만, 차츰 세상의 무게를 배워나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린이들이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도록, 두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도록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린 남매가 마주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그 작은 온기만큼이나 따뜻한 여운을 남겨주는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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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헝거 게임 시리즈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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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올라누스는 그녀가 헝거 게임의 우승자가 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전략 중에 그녀를 우승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녀의 매력이 그에게 영향을 주어 자신을 성공하게 만들기만을 바랐다. 스폰서들을 위해 노래하라고 권유했던 것조차도 그녀 때문에 자신이 받고 있는 관심을 더 끌고 가 보려는 시도였다... 그가 동물원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그녀가 그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는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그녀의 생명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했다.     p.176

 

‘헝거게임’은 독재국가 ‘판엠’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일년에 한 번, 12개의 각 구역에서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십대 소년소녀 24명이 벌이는 생존 전쟁이다. 24명의 참가자들이 펼치는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생존 전쟁의 전 과정은 24시간 리얼리티 TV쇼로 생중계되어 캐피톨 시민들의 오락거리가 된다. 독재국가 판엠의 피비린내 나는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헝거게임'에 맞서는 평범한 우리의 주인공, 캣니스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것이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 <모킹제이>로 이어지는 '헝거게임' 시리즈 3부작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거의 10년 만에 '헝거 게임'시리즈 신작이 출간되었다. 캣니스가 열두 살 여동생 대신 자원하여 참가했던 헝거 게임이 74회 였고, 이번 신작에서 개최되는 헝거 게임은 10회이다.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 64년 전이니, 당연히 캣니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판엠을 통치한 악랄한 독재자 '코리올라누스 스노우'이다. 물론 18세의 스노우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때 위대했던 스노우 가문의 열여덟 살 후계자인 스노우는 할머니와 사촌 누나와 함께 캐피톨에서 가장 호화로운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구역에 사는 인간쓰레기만큼이나 가난했다. 전쟁이 끝나고 10년 동안 스노우 가족은 가진 물건 상당수를 팔거나 교환하면서 겨우 버텨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노우는 아카데미에서 최고로 꼽히는 학생이었고, 그는 자신의 경제적인 사정을 세상 모두에게 숨기며 살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위협이 없었다면 별 교훈이 되지 못했을 거야.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그건 벌거벗은 인간성이야. 조공인들 그리고 너도. 문명이 얼마나 빨리 사라졌니. 너의 좋은 매너, 교육, 가족 배경,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모든 것이 눈 깜빡할 사이에 벗겨졌고 넌 너의 본모습을 전부 드러냈어. 곤봉을 가지고 다른 아이를 때려죽이는 아이. 그게 자연 상태의 인간이야.” 
골 박사의 이런 표현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웃으려 했다. "우리가 정말 전부 그렇게 형편없나요?"      p.273~274

 

헝거 게임 제 10회에서는 처음으로 멘터 제도를 시행하기로 한다. 추첨을 통해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스물네 명의 조공인들에게 아카데미에서 가장 똑똑한 졸업한 학생 스물네 명이 각각의 멘터를 정해 주는 것이다. 캐피톨에서는 사람들이 헝거 게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관건이었고, 캐피톨의 젊은이와 구역의 조공인을 짝지어 준다는 점에 사람들은 흥미를 느낀다. 스노우는 헝거 게임에 우승해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갈 계획이었고, 그로 인해 스노우 가문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런데 스노우에게 배정된 조공인은 구역 최하위인 12구역의 루시 그레이 베어드였다. 가장 작은 구역인 12번 구역은 웃음거리였고, 해당 구역 출신 아이들은 헝거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늘 5분 안에 죽었다. 게다가 여자 아이라니 누가봐도 가장 승률이 낮을 거라 예상되는 조공인이었는데, 그녀는 게임의 시작 전부터 캐피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과연 헝거 게임에서는 누가 살아 남아 우승하게 될까. 스노우는 어떻게 자신의 가문을 일으키고, 경쟁에서 살아남게 될까.

 

기존 '헝거 게임' 시리즈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에 나온 프리퀄 작품 역시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이다. 혁명의 상징이었던 노래하는 새 모킹제이에 담긴 의미와 헝거 게임이 초창기부터 어떻게 변화하고 유지되어 가게 되는 지 그 과정과 그 이면에 숨겨진 배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악랄한 행동을 하던 인물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고, 그가 악인이 되어 가는 근본 원인부터 과정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 작품도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고, 원작 작가인 수잔 콜린스가 제작으로 참여한다고 하니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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