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채무 관계 노란 잠수함 10
김선정 지음, 우지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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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수는 며칠 전 금요일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 시원이에게 돈을 빌려 줬다. 이유는 삼천 원을 빌려 주면 월요일에 삼천오백 원으로 갚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고, 시원이는 찬수의 사물함에 삼천오백 원을 넣어 두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삼천오백 원은커녕 삼십 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체 돈은 어디로 간 것일까. 시원이에게 언제 돈을 넣어두었는지 물었지만, 자긴 진짜 넣어 뒀으니 다시 찾아보라는 말만 하고는 가 버린다.

 

 

고민에 빠진 찬수를 보며 친구인 형식이가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나선다. 목요일에 모두 모여 회의하는 '다모임'시간에 선생님께 의견을 낸 것이다.

 

"요즘 우리 반은 돈 문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돈 문제가 심각하다고요? 무슨 말인지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그래서 형식이는 우리 반에 사기를 당한 친구가 있다고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찬수와 시원이의 문제뿐만 아니라 반 친구들 제각각 돈과 관련되어 곤란한 일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친구 사이에 생긴 채무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초등학생이 '채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아이들 사이에서 차용증을 쓰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애초에 학교에 돈을 아예 가져 가지 말거나, 친구 사이에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돈과 경제에 대해 알려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 사이에서 생긴 돈 문제를, 학급회의를 통해 그들만의 해결 방법을 찾게 되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다양한 돈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니, 이렇게 동화를 통해서 돈에 대한 개념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면 좋을 것 같다.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동화라는 장르에서는 아마도 '돈'이라는 것이 가장 낯선 소재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작가가 실제로 오랫동안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상황을 통해서 공감과 이해를 저절로 불러오고 있으니 말이다.

 

'학교에 있을 때 교실에서 생긴 여러 가지 일들은 어린이들과 의논해서 해결'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이들은 생각보다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말이다. 마룡 초등학교 3학년 3반 아이들이 정한 '채무 관계에 관한 규칙'을 통해서 돈의 가치에 대해서, 여럿이 함께일 때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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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욕망의 법칙 인간 법칙 3부작
로버트 그린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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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향하는 첫 단계에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목을 끌어야 한다. 그러나 점점 더 높이 올라갈수록 방식을 계속 수정하고 조정해야 한다. 절대 같은 전술로 사람들을 물리게 해서는 안 된다. 마타 하리는 거짓말을 지나치게 많이 했다. 설사 그녀가 스파이가 아니었다고 해도, 당시에는 그렇게 가정하는 것이 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모든 거짓말을 감안할 때, 지극히 의심스럽고 사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당신의 신비감이 사기꾼이라는 평판으로 천천히 변형되도록 허용하지 마라. 당신이 조성한 신비감은 무해하고 유쾌한 일종의 게임처럼 보여야 한다. 결코 선을 넘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p.58

 

로버트 그린은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 <유혹의 기술> 3부작으로 ‘부활한 마키아벨리’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600페이지를 가뿐히 넘으며 700페이지를 향해 달려가는 두툼한 두께의 책이라 읽기에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작년에 <유혹의 기술>이 더 가볍고 작아진 에센셜 에디션으로 <인간 관계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다. 이번에는 <권력의 법칙>이 읽기 쉬운 버전으로 새롭게 <인간 욕망의 법칙>으로 나왔다.

 

<권력의 법칙>은 현대판 <군주론>에 비견되는 책으로 3부작 중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인 680쪽의 분량이다. 이번에 나온 에센셜 버전은 352페이지로 거의 절반 정도의 분량임에도 역사상 최고의 권력자만의 알던 노하우를 정리한 48가지 법칙을 모두 담고 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라, 목숨을 걸고 평판을 지켜라, 무슨 수를 쓰든 관심을 끌어라, 자비나 의리가 아니라 이익에 호소하라, 친구처럼 행동하고 스파이처럼 움직여라, 상대보다 멍청하게 보여라, 별다른 노력 없이 성과를 달성한 척하라, 사람들의 환상을 이용하라 등등 제목만 보더라도 시선을 확 사로잡는 권력의 법칙들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당신이 한쪽을 향해 서약하는 순간, 마법은 사라진다. 당신은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당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선물을 주고 온갖 호의를 베풀며 자신에게 구속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들의 배려를 장려하고 관심을 촉구하라. 하지만 절대 서약은 하지 마라. 하지만 기억하라. 목표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을 정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당신이 구애자들의 희망을 계속 자극하는 한, 당신은 관심과 욕망을 끌어들이는 힘을 계속 유지하게 될 것이다.        p.201

 

이 책은 친구는 질투심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남보다 더 빠르게 배반할 수 있으니, 친구를 멀리하고 적을 이용하라고 말하며 왜 친구보다 적이 더 유용한지에 대해 말해준다. 게다가 사실 적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친구이며, 적이 전혀 없다면 적을 만들 방법을 찾아보라고 까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은 결코 직접 하지 말라며, 일은 남에게 시키고 그 성과를 가로채어 명예를 차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으며, 결코 실수나 비열한 행위를 직접 하지 말라며, 다른 사람들을 앞잡이로 이용해 자신을 감추고, 오점 없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도 하고 있다. 이렇게 권력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도덕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대담하고, 자신만만하게 보여주고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권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가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모든 이야기를 고대 로마와 중국사에서부터 현대 세계사에 이르기까지 3천 년의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들려주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부터 독일의 비스마르크, 르네상스 시대의 코시모 메디치,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조제프 푸셰, 20세기 초 팜므 파탈의 대명사 마타 하리, 1920년대 미국에서 알 카포네를 상대로 사기극을 펼친 빅토르 루스티히 등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지극히 현실적인 전략들을 치밀하게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권력'이라는 테마로 새롭게 재편집해 읽는 재미도 있고, 관계와 권력에 대한 게임의 법칙을 배울 수 있는 가이드로서도 훌륭한 책이다. 교활하고 무자비하며 매혹적이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권력'의 모든 것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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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무슨 일이? - 2021 볼로냐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 올리 그림책 1
카테리나 고렐리크 지음, 김여진 옮김 / 올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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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무시무시한 늑대의 모습이 보인다. 이 집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빨간 망토의 동화책에서 소녀와 할머니를 잡아 먹었던 이빨이 날카롭고 무서운 눈을 가진 그 늑대일까?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 표지에 등장하는 구멍뚤린 창문 안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아이라면 늑대의 무서운 모습에 흠칫 놀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표지를 넘기면 보여지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 늑대는 뭘하고 있었을까.

 

 

이 책에는 다양한 모습의 집들과 창문들이 등장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로 우리는 집 안의 상황을 추측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과 실상은 다를 때가 더 많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본모습이 다르거나, 의도적으로 다르게 보이려고 연출할 때도 있을 것이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을테니 말이다.

 

이 그림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귀엽고, 놀라운 반전의 재미를 가득 안겨준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꼭 보여지는 모습이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쉽고, 즐겁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집 창문 너머로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고, 차갑고 어두운 모습의 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오싹한 물건들이 실제 방 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그림책이라 더욱 특별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빨간 망토,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아기 돼지 삼형제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옛 동화들이 모티브가 된 장면들이 많아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창문을 넘기는 순간 색다른 반전을 통홰 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를 비틀어 재미를 안겨준다.

 

 

카테리나 고렐리크는 이 작품에 수록된 그림으로 2021 볼로냐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수상했다. 게다가 이 작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출간되는 거라고 하니,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보아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에는 특별한 선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안과 밖, 상상놀이' 미니북 활동자료이다. 그리고 책 속에 수록된 QR 코드를 통해 독후 활동지와 수업 자료를 다운로드 받아 볼 수 있어,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아이와 함께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예상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지루하고, 뻔한 것,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은 일단 재미가 없으니 말이다. 아이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고 싶다면,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상상력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그림책을 보여주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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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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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융페른슈티크에 도착한 그는 알스터 강으로 다가가서 잿빛 강물을 잠시 노려봤다. 어둡게 흘러가는 수면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을 보다가 심호흡을 했다. 차갑고 축축한 바람에 머리가 맑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질버만은 혼잣말을 했다. 어려움에 처하고, 귀찮은 일을 당하는 건 맞아. 하지만 다시 편안해질 거야. 그냥 이주해도 되고. 사실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니야. 살아 있으니까. 그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으니까.      p.83

 

기차를 배경으로 한 표지 이미지에 '여행자'라는 제목을 하고 있지만, 이 작품 속에서의 '여행'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외에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혹은 어떤 위험을 겪게 되더라도 결국은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든든한 보험처럼 우리를 심리적으로 지켜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떨까. 끝없이 계속 움직여야 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질버만은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도르트문트로, 아헨으로 독일 전역을 돌아다닌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저 기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는 남자. 그는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너무도 피곤하지만, 갔다가 왔다가, 왔다가 갔다가 반복하며 여행하는 동안 자신은 지금 독일에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질버만의 시선이 다시 젊은 노동자를 향했다... 노동과 더 높은 임금과 생존을 위해 쉴 새 없이 싸우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느끼지 못해. 이 사람들은 청춘이 없어. 열네 살이 되면 이미 싸움이 시작되는데 늘 존재 자체가, 그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죽음이 바짝 쫓아온 게 보여. 하지만 죽음보다 항상 더 빨리 달리기만 하면 돼. 서 있으면 가라 앉고 부패한다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해. 사실 나는 언제나 달렸어.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잘 뛰어야 하는 지금 이렇게 힘겨울까.      p.211

 

1938년 11월 독일에서 대규모의 유대인 박해 사건인 일명 ‘수정의 밤’이 벌어졌고, 이 소식을 들은 작가는 사 주 만에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소설 《여행자》를 써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수십 년 동안 독일국립도서관 문서실에 잠들어 있다가 2018년에야 저자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출간되었고, 《안네의 일기》(1942~1944)보다 앞서 집필된 유대인 당사자가 쓴 최초의 소설인 만큼 기념비적인 고발문학으로 주목받았다. 사건 당시 수많은 유리창이 깨졌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수정의 밤(Kristallnacht)’에 나치 돌격대와 지지자들은 도끼와 쇠망치로 무장하고 수천 개의 유대인 상점을 깨부수고 약탈했으며, 당시 유대인 3만명 이상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극중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였던 질버만은 하루아침에 도망자로 전락한다. 독일에서 나가야 했지만, 사실 갈 데가 없었다. 특히나 질버만은 전형적인 약자나 희생자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인데, 나치의 탄압이 시작되기 전에는 자본가로서 기득권 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살아왔던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스스로는 다른 유대인들과 엄연히 다르다고 여기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전에는 그와 가족에게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에, 수정의 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그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라 당시의 독일 풍경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 작가 역시 나치를 피해 유럽을 떠돌다 스물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끝내 죽임을 당했다. 그리하여 원고가 모국어로 출판되기까지 8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이름 없는 희생자들에게 이름을 부여했다는 것도,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역사적 증언을 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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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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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에 이 부분은 무척 난해하게 쓰여 있다. 몇 번을 읽어도 헷갈리기 십상이다. 16시간 중 절반이 필요 노동시간이고 나머지 절반은 잉여 노동시간이라면, 8시간 일하고 난 뒤 '나를 위한 노동시간은 이제 끝났어. 나는 착취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 집에 가겠어.'라고 할 수도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노동시간이 단축되었다고 착취가 사라지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현재 일본의 표준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인데, 노동시간이 16시간에서 8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착취가 사라진 걸까? 그렇지 않다.     p.128

 

<동물기>로 유명한 영국 태생의 박물학자 어니스트 시튼은 어른이 되고 나서 아버지로부터 출산 비용을 비롯해 식비, 학비 등 갖가지 영수증을 받았다. 시튼의 아버지는 '너를 키우느라 돈이 이렇게 많이 들었으니, 그 비용을 내놔라'고 했고, 그는 몇 년에 걸쳐 그 돈을 송금한 뒤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당연하다. 시튼의 아버지는 자식을 키우는 데 든 비용과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고, 자신의 노력을 상품으로서 제시했다. 이는 돈이 지불되면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남지 않는다는 선언과 다를 바가 없고, 시튼은 그 말에 응한 것이니 말이다. 시튼이 아버지와 절연하게 된 사연은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상품 교환과 경제적 거래라는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명백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것은 19세기였고, 이미 150년이 지났음에도 그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작동 방식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론>은 어렵고 방대하고, 분량도 많아서 읽기 쉽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인 시라이 사토시는 <자본론>의 핵심만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된 <자본론> 중에서 마르크스가 직접 출간한 1권에 기초적인 개념이 나오고 가장 중요하므로, 이 책 역시 1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것이 자본제 사회의 어이없는 역설이다.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키고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이룩했지만 그 한가운데에서 빈곤함을 만들어낸다. 이미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시사한 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실현하여 가치를 증식하는 일이므로 사용가치에 관해서는 무관심해진다고 했다. 교환가치는 양적인 것이고 사용가치는 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내재 논리에 비추어보면 필연적으로 양은 점점 풍부해지고 질은 점점 떨어진다.      p.271

 

이미 오래 전부터 전 세계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점점 가혹해지고 있으며, 사회적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 속에서 세상을 뒤덮은 사회 시스템은 자본주의이니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믿을 만한 지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기가 되는 지도는 바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이 책은 자본제 사회의 기본 개념부터 시작해서 상품의 의미, 신자유주의, 부와 노동의 가치, 계급 투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이자,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어 현대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왜 우리는 중세 시대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일하는지,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라는데 왜 살기는 더 힘든 것 같은지, 죽도록 노력해도 왜 인생은 바뀌지 않는지, 돈 많은 사람이 더 쉽게 돈을 버는 구조가 과연 공평한 것인지,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뭔지..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메커니즘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이 책 속에 있다. 왜 지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지, <자본론>의 매력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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