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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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지금 당장은 니나가 느닷없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뛰어든다면 내가 차에서 뛰쳐나가 그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나는 그 거리를 계산하며 반나절을 보내. 그러나 항상 실제로 일어날 법한 상황보다 더 많은 위험을 상상하지.      p.27~28

 

아만다는 어린 소년 다비드와 대화를 하는 중이다. 그녀가 까슬까슬한 시트 위에 누워 있다는 건 느껴지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소년은 아만다의 귀게 대고 속삭이듯 말한다.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한다고. 아만다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다. 다비드는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아만다는 다비드의 질문들을 들으며 기억 속 풍경을 되살려 본다. 그녀는 바쁜 남편을 도시에 두고 먼저 어린 딸 니나와 함께 시골로 휴가를 보내러 온 참이다. 그리고 빌린 별장의 이웃에 사는 여인 카를라를 알게 되었고, 카를라는 바로 다비드의 엄마이다. 아만다는 카를라와 나누 었던 대화, 그날의 풍경들을 세세하게 들려주고, 다비드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라, 이야기를 읽는 내내 우리는 이 작품의 전체 서사를 그려볼 수가 없다. 그저 아만다가 몇시간 뒤면 죽을 거라는 사실, 그녀가 딸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찾고 있다는 것과 다비드가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벌레가 언제 정확히 생겨났는지를 알아보고 있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카를라가 아만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오싹한데, 다비드가 6년 전쯤에 병이 나서 죽어가다 마을의 ‘녹색 집의 여인’에게 어떤 치료를 받았고, 그 뒤로 ‘괴물’이 되었다는 거였다.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진 아만다 만큼이나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인물들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이 모든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내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종일관 뭔가 기묘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맞아요, 아만다 아주머니. 저는 응급병동 병실에 있는 아주머니 침대 가장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리고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돼요.
"그런데 니나는? 이게 모두 실제 벌어지는 일이라면 니나는 어딨지? 세상에, 니나는 어디 있니?"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p.46

 

이 작품은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이자 국내 첫 출간작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정말 오싹한 작품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굉장히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이라 영상화 되었을 때 어떻게 그려질 지도 궁금해진다. 구체적인 장소도, 시간도, 배경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오직 두 사람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의 힘 또한 화면 상에서 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 어떤 배우가 역할을 맡게 될지도 기대가 된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2019년과 2020년 이례적으로 2년 연속해서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젊은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대표 작가라고 한다.

 

이 마을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만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니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시골 소년 다비드는 왜 아만다와의 대화 속에 이 모든 일의 해답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을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는 이 병의 원인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아만다는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대단한 작품이었고, 독특한 독서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문학에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이 때로는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그렇게 보여지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공포를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최정점에 있는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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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 (한정판 퍼즐 에디션) 웅진 모두의 그림책 39
이적 지음, 임효영.안혜영.박혜미 그림 / 웅진주니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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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우리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버렸고, 우리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많은 것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다시 여행을 하게 될까, 낯선 사람과 악수를 하고, 영화관에 가고, 아무 두려움 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거닐고, 걱정 없이 마스크를 끼지 않고 밖에 나갈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은 사실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행할 수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들의 기억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불안과 우울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런 책이 필요하다. 

 

 

작년에 발표되었던 이적의 <당연한 것들>은 ‘코로나 19로 마음이 복잡한 날들, 희망을 꿈꾸며’ 지은 노래이다. 당연했던 것들을 잃어 버리고 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던 그 노랫말이 이번에는 그림책으로 새롭게 탄생되었다. 이적의 시적인 가사 속에 함축되어 있던 많은 감정들이 그림과 만나면 또 어떤 이야기를 그려낼지 기대가 되었다.

 

 

독특하게도 이 책은 그림 작가가 세 명이다. 호주, 미국, 한국 이라는 각기 다른 곳에서 코로나를 경험하고 있는 세 명의 작가가 이적의 노랫말에 그림을 그렸다. 세 작가의 그림 스타일이 확연하게 다른 점도 이 그림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모노톤으로 심플하게 그려낸 일상의 풍경들과 싱그러운 빛깔의 수채화로 채색된 계절의 풍경들, 그리고 독특한 색감의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까지... 이들 각자가 표현해내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서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된다.

 

 

초판 한정으로 책 속에 퍼즐이 포함되어 있다. 책을 펼칠 때 조심스럽게 개봉해야 한다. 무심코 뒷장을 펼치다가는 퍼즐이 와르르 쏟아질 수 있다. 퍼즐을 한조각 한조각 맞춰 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의 조각들을 완성시킬 수 있다.

 

책 속에 퍼즐이 들어 있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그림책이었다. 퍼즐일 다 맞춘 뒤에 퍼즐 유액같은 걸로 고정을 시켜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책 장 넘길 때마다 퍼즐이 쏟아져서 당황스러운 사태를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랫말에 그림을 입혀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 개성도 스타일도 뚜렷하게 다른 세 명의 그림 작가들이 함께 작업한 그림책이라는 점도 너무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작년 한해 동안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바뀐 풍경들 속에서 별것 아닌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건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다. 그리고 점점 더 삭막해지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곁에 있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고,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의지와 노력만으로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이 엄청난 경험도 언젠가는 끝이 날 거라고, 우린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이 그림책을 다시 한번 펼쳐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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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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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의? 그건 아니었다. 공정한 법 집행? 그것도 아니었다. 인간쓰레기들을 없앤다고 정의가 서지 않는다. 법 집행이 공정하게 이뤄지지도 않는다. 허 선배가 찾아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그럴 듯한 명분을 찾았다. 수천 만 명 중에, 쓰레기를 전담 처리하는 청소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정의를 이루지는 못해도 이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몇 명 중에 한 명이 되기로 했다. 허 선배의 말대로 분노를 꼭 가슴에 담아둘 필요는 없었다.      p.142

 

역사학 교수인 최주호에게 오랜 만에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허동식이 찾아 온다. 낯설고 생소한 이름에, 겨우 그를 기억해 낸 최주호에게 허동식은 요즘 술상머리에서 단연 화제가 되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로 말을 꺼낸다. 그는 최주호가 최근에 신문에 쓴 칼럼은 물론 연구 논문까지 줄줄이 외며 근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부탁이 있다며 노창룡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창룡은 일제 강점기에 악명을 떨친 고등계 형사를 지낸 인물로 이 땅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친일파로 알려져 있다. 최주호는 작년 봄에 친일 청산의 증표로 반드시 그를 잡아들여 치욕의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정말 생뚱맞은 요구였지만, 차마 25년 만에 나타난 동창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서 최주호는 허동식에게 자료를 만들어 보낸다. 그리고 닷새 뒤, 노창룡이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뜨고 인터넷은 난리가 난다. 비밀리에 입국한 노창룡은 수십 년 전 그가 사용하던 고문 방법으로 살해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살인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고,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삼으면서도 법의 심판대 앞에서는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피해나가며 호의호식하는 정치인, 기업인, 공직자 들이 그 대상이었다. 친일파, 부패 정치인 등 요즘 댓글에 흔히 쓰이는 인간쓰레기들이었다. 대중들에게 '공공의 적'이라는 것 때문에 그 어디에도 살인범을 비난하는 여론은 없었다. 그렇게 국정과 사법을 농단한 적폐들이 살해될 때마다 온 국민이 환호하고 응원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지만, 어떤 연유에서라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체 누가, 이들을 처단하고 있는 것일까.

 

 

 

"우린 펜대만 붙잡고 두덜거리는데, 그자들은 실행에 옮기고 있잖아. 우리보다 백 배 천 배는 낫지."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 차장이 끼어들었다.
"그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 전쟁 중에 벌이는 살인 행위는 모두 정당하지 않은가?"
"저, 전쟁 중이라니요?"
"그자들은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거야......
꼭 총칼을 들어야 전쟁인가?"    p.235

 

첫 장편소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흥미롭게 재구성했던 조완선 작가의 신작이다. 누구나 분노하지만 행동으로 나서지 못한 악인 처단을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집행해 나가는 ‘집행관들’을 등장시켜 대리 만족과 통쾌한 희열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누구나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에서 솜방망이 처벌로 죗값을 면하는 부패 정치인과 악질 기업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그들에게 죄에 합당한 엄벌을 내려준다면 어떨까. 문서 조작, 불법 로비, 언론 장악 등 대한민국 사회에 공고한 권력 카르텔의 성을 무너뜨리고 공정한 법 집행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다면 말이다.

 

이야기는 원치 않게 살인 사건에 연루된 역사학자 최주호와 수사팀의 우경준 검사, 그리고 허동식 감독을 비롯한 집행관들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며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집행관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겠다거나, 개인적인 보복을 하겠다는 것이 동기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것도, 불타는 정의감 때문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법이 사건 종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불의를 옹호하기까지 하는 데에 분노해본 적이 있다면, 누구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갑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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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 (특별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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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다시피 난 진심으로 널 사랑하고 남은 평생을 너와 함께 하고 싶지만..... 우리가 사실은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라면?"
닉은 인상을 썼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아, 별 얘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꾸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샐리는 안심시키려는 듯 닉의 팔을 토닥였다. "그냥 우리가 서로의 짝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지, 그 사실을 확신하고 싶어질지가 궁금할 뿐이야."     p.23

 

여기 결혼을 앞둔 한 커플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남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매일매일 부족한 것도,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사실은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라면'이라는 의문이 들었고, 머리카락 한 올 혹은 입속에 넣었던 면봉 하나로 그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말이다. 누구라도 우리가 서로의 반쪽인지 검사해보고 싶지 않을까.

 

전 세계의 수억 명이 'DNA 매치'를 통해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매치 결과에 따라 기존의 배우자 또는 연인을 떠나고, 대륙을 가로질러 이주하고, 유전자를 제공한 뒤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덕분에 이혼 변호사나 관계 전문 상담가, 그리고 결혼 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된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걸 알면 기꺼이 상대에게 평생을 바치려 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 사업으로 인해 결혼을 통해 무엇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시대, 매치에 대한 신뢰가 인종 차별과 각종 혐오를 무너뜨리는 시대가 되었다.

 

 

 

제이드는 농장의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침대 옆 전등을 켜놓고 이런 일이, 그러니까 매치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게 정상인지 알아보려고 와이파이에 접속했다. 둘 사이에 사랑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 보아왔던 알록달록하고 요란한 불꽃놀이나 무지개는 없었다. DNA 매치가 이루어진 허구 속 커플들은 언제나 상대를 만나자마자 홀딱 반하곤 했다. 왜 그녀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걸까?      p.192

 

이야기는 다섯 커플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이들은 각자 ‘DNA 매치’를 통해 운명의 연인을 만나지만, 결코 평범하게 행복할 수만은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너무 다양하고,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라 한번 읽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는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가 아닐까 싶다. 거듭되는 반전과 전혀 상상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독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엄청난 페이지 터너였다. 유전자 정보에 기반한 ‘DNA 매치’ 시스템이라는 설정 또한 매우 흥미로운데,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그 수많은 실패와 눈물, 고민, 실연 등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원>의 원작 소설이다. 개정 특별판으로 표지를 갈아입고 새로 나왔는데, 작품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사랑에 대한 이 기발한 상상은 굿리즈 4.2점, 영국 아마존 4.5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았다. 영미권에서 출간된 즉시 영상화 판권 문의가 쇄도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2021년에 8부작 시리즈가 공개되었다. 누구도 더 이상 사랑에 실패할 필요가 없는, 성공룔 백퍼센트의 사랑만 남아 있는 세상에서 여전히 그 놈의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다섯 커플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는, 처음부터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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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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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는 나긋했고, 부드럽게 박자를 맞추어 움직이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이 남자는 정말이지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온화한 야만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표현이 딱 맞는다. 위험하고, 거침없고, 반항을 용납하지 않지만 동시에 너무나 자상하고 섬세한 남자. 이 모든 점이 혼합된 이 남자는 무섭지만 매혹적이었고, 그래서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p.87

 

라우라는 호텔 관리직으로 열심히 일하다 겨우 스물아홉에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세일즈 매니저 자리에 오르자마자 돌연 일을 그만둔다. 일에 대한 열정이 싹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인 마르틴과 함께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한편 시칠리아에선 마피아 가문의 수장인 마시모가 사업을 위해 공항을 지나가다가 한 여자를 보고 미친 듯이 눈을 깜빡여본다. 그는 5년 전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의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되었다. 나의 미스트리스라는 호칭도 붙였을 정도로 환상 속에서 매일 같이 등장하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 여자야. 바로 저 여자라고."

 

눈, 코, 입술... 환상 속 모습 그대로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마시모는 부하들에게 당장 그녀에 대해 알아오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라우라에게 접근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게 된다. 365일이라는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뭐든 할 테니 그 동안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만약 다음해 생일까지도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미련없이 보내주겠다고 말이다. 라우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떨쳐 버리고 싶지만, 믿었던 남자 친구는 말다툼 후에 다른 여자와 함께 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장 돌아가야 할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사실 자신은 잃을 게 없었다. 게다가 마리모라는 이 아름다운 남자는 완벽한 그녀의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그는 오만하면서도 온화하고,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와 자상함을 갖춘데다, 누구든 지배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자기가 뭘 원하는지 항상 아는 그런 남자였다. 결국 라우라는 마시모가 내견 기묘한 조건을 받아 들이고 그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점점 스스로의 의지로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나는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올가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 마침내 이야기를 끝낸 나는 주머니에서 약혼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젖히고 한숨을 쉬었다.
"이게 그 증거야. 이제 너한테 숨기는 거 없어."
올가는 충격받은 얼굴로 나의 반지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와우, 썅, 네가 해준 이야기 무슨 스릴러 소설 같아. 그것도 19금 딱지 붙은 스릴러. 그럼 지금 마르틴은 어떻게 됐어"      p.355

 

202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화 <365일>의 원작 소설이다. 이 시리즈는 <365일>, <오늘>, <또 다른 365일>로 3부작이다. 해당 시리즈는 폴란드 내에서만 15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2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고 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뛰어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로맨스라는 홍보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 '그레이 시리즈'보다 더 노골적이고, 더 대담하고, 더 스케일이 있는 작품이었다. 대학생부터 엄마들까지, 전 세계 모든 연령의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유는 대부분의 로맨스물에서 보여지던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의 주인공 라우라는 자신의 욕망에 매우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만큼은 굉장히 뛰어난 이야기라서 결코 가볍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작품이었다.

 

작가인 블란카 리핀스카는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개방성이 지나치게 결여되어 있다고, 사랑의 다양성 측면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로맨스물에서 수동적인 성격으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확 바꾸어 놓았다. 능동적이고, 당당한 성격의 라우라는 그 어떤 로맨스물에서도 보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이니 말이다. 파격적이고 위험하고 도발적인 이 작품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로 놀라움을 안겨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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