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앤닥터 육아일기 1 - 임신과 출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1
닥터베르 지음 / 북폴리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산부인과 의사 엄마와 공학박사 아빠가 '좌충우돌 우여곡절 중구난방, 본격 애 낳고 키우는 만화'이다. 서울대 공학박사인 닥터 베르는 학위 과정 중에 무려 3년의 육아 휴학을 했다. 남학생의 육아 휴학은 드문 일이었고, 돌아오는 일은 더욱 드문 일이었지만, 그는 후배들과 교수님 모두 만류를 뿌리치고 떠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1년 정도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갑자기 '박사학위를 이용한 육아 만화'를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논문 기반 육아라이프라니 그야말로 상상이 가지 않는 초신박한 시작이 아닐 수 없다.

 

 

신생아 돌보기를 10억자리 똥 만드는 기계와 생활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아기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경험을 외계인이 낯선 생명체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으로 그려내고, 부모가 되지 못하는 경우를 순서도로 정리하고, 아이를 잃은 아내에게 반려동물 선물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과정도 그야말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고 있다.

 

깔깔대고 웃다가, 문득 뭉클해지고, 어이없어 피식거리다가 진지해지고, 전문적인 지식들이 등장해 어리둥절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의 개그로 박장대소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정신 없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만화라고나 할까. 육아와 관련된 에세이, 만화, 전문서 등 꽤 많이 본 편인데, 이 책이 가장 재미있고, 신선했던 것 같다.

 

 

임신과 출산은 엄마에게도, 아빠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삶의 변화를 엄마와 의사 입장에서, 육아하는 아빠의 입장에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학을 전공한 남자가 마주하게 되는 낯선 상황들에 대한 시선은 육아에 문외한인 보통 남자들이나 미혼인 사람들 모두에게 공감대를 불러올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여러 산모들의 사례들을 지켜봐 온 여자가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황들은 현재 육아 중이거나, 계획 중인 많은 이들에게 굉장히 현실감 있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은 코믹하고, 유쾌하고, 신선하다. 영화 속 대사나 인터넷 밈을 패러디하여 기가 막힌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센스와 공학도나 알 법한 용어를 개그로 승화시켜 현재 육아 중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는 만화가 탄생했다. 웹툰 총 36화를 묶어낸 1권은 임신의 전 과정과 출산 직후까지 다뤘으며,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을 단행본에 맞게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담았다. 유산을 경험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는 과정과 임신 과정 중에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다루고 있으니, 본격적인 육아에 관련된 이야기는 2권에서 보여질 것 같다.

 

현재 육아 중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 재미있고, 궁금해서 벌써부터 2권이 기다려 진다.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보 엄마, 아빠는 물론 자녀가 없는 20, 30대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만화이니 웃다 울고, 울다가 웃게 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작게나마 선행을 베풀었으면 베풀었지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으니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떠날 수 있어. 나는 적들에 대한 비난보다는 내 뒤에 남겨질 친구들에 대한 미련이 더 강한 것 같아. 혹여 나를 해치게 될, 당신과 내 아이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할 사람이 그 누구건 간에, 내가 그를 용서했듯 당신도 용서해 주길 바라.      - p.97, 피에트로 베네데티(41세, 가구공)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북부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201명이 죽음을 앞두고 취한 마지막 행동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동지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식과 작별 인사 등으로 600일이라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활동 기간 동안 투쟁했던 그들의 역할은 끝이 났다. 24세 주조공, 33세 회사원, 20세 정비공, 26세 공대생, 41세 가구공, 19세 직공, 27세 모자이크 세공사, 19세 농민, 18세 자동차 수리공, 21세 설계사, 23세 국문과 학생, 32세 전자공학 기술자 등등...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서 일하고,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이 책은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생애 마지막 편지를 한데 모았다.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이탈리아의 현대사도, 레지스탕스라는 것도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저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레지스탕스들의 편지이긴 하지만, 정치적 신념을 피력한 내용보다는 극한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글들이 대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도 아니었고, 우리가 알만한 그 어떤 행동에 대한 글도 아니지만, 그저 죽음 앞에 선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오랜 시공간을 거쳐 지금 우리에게 도달한 이 편지들은 그 자체로 심금을 울린다.

 

 

 

죽기 몇 분 전, 당신이 나로 인해 받게 될 크나큰 고통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써. 부디 나를 용서해 줘. 그리고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줘. 나를 위해 자비로운 주님께 기도하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줘.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해주고, 나 대신 매일 뽀뽀해 줘. 나를 위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 줘야 해. 가능하다면 나를 잊지 말고 변함없이 추억해 주길 바라. 그럴 수만 있다면 매일 밤 당신을 보러 올게. 꿈나라로 떠난 당신과 우리 아이들을 내가 지켜 줄 거야.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걸 잊지 마. 눈감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야. 내 영혼으로나마 키스를 퍼부으며          - p.467, 구에리노 스바르델라(28세, 인쇄 식자공)

 

마지막 순간까지 '앞으로의 세상은 보다 좋아질 거라고, 그것을 위해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축복할 일이라고' 의연하게 말했던 이도 있었고, '평생 어머니 곁에서 함께해 드리지 못하게 된 것을 부디 용서해'달라며 온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던 이도 있었다. 자신이 총살되기 단 30분 전에 써 내려간 편지 속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이들은 아내에게, 아이에게, 부모님에게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후회와 용서를 담고,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의 숙명을 받아 들이고,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끝까지 믿음과 인간성을 지켜낸다.

 

우리가 만약 파시스트의 손에 목숨을 잃기 직전이라면, 누구에게, 어떤 말을 남기게 될까. 조국의 영광과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들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비슷해질 것이다.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오래 기억해달라고, 내 몫까지 잘 살아달라고.. 이들이 남긴 사연들은 각자가 너무 다르지만, 처해있는 상황 때문에 또 너무도 비슷하다. 육체와 영혼을 포함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형이 집행되기 전 주어진 짧은 몇 시간 동안 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우리는 전혀 짐작도, 경험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책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책을 통해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잊어 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편지들의 주인공들이 실제로 우리처럼 숨쉬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표지 안쪽에 이 편지들을 쓴 이들의 직업이 기재되어 있다. 주조공, 회사원, 재단사, 막노동자, 의대생, 초등학교 교사, 변호사, 주부, 창고지기, 의사, 견습생, 경찰, 요리사 등등... 201명의 사람들을 잊어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도 이사를 해야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될까? 우린 낯선 집들로 북적이는 새로운 마을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두 이방인이 되겠지.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야.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어, 프레디. 그게 문제야. 마흔은 쉰이 되고, 곧 예순이 돼. 그러다 보면 좋은 병원 침상과 카테터를 잘 꽂아 넣는 간호사를 기대하는 날이 오겠지. 프레디, 마흔이면 이미 청춘은 끝이야. 뭐, 청춘의 끝은 서른부터라고 해야 맞겠지. 마흔이면 장난질을 그만둘 때가 된 나이고. 난 낯선 곳에서 늙고 싶지 않아.       p.83

 

세탁 회사에서 일하며 20년 동안 반복된 일상이라는 보호막 아래 평범하게 살았던 바튼 도스의 삶은 시 당국이 결정한 고속도로 확장 계획으로 인해 엉망이 되고 만다. 그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키우고 여행을 갖다가도 언제든 돌아오던 집과 평생 열심히 일해온 직장 모두 고속도로 확장 대상 지역에 포함되어 강제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장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기한을 일부러 넘겨서 회사에서 해가고 되고, 차일피일 이사 계획을 미루다가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별거에 이르게 된다. 이웃들은 거의 다 이사를 가 버렸고, 그에겐 떠난 아내의 흔적과 3년 전에 뇌종양으로 죽은 아들의 기억만 남았다. 바크만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고 총을 구입하고, 도로를 폭파시키겠다고 폭탄을 구하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안녕하십니까, 조만간 대형 크레인이 귀하의 집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저희는 귀하의 도시를 개선하고 있으니 이 멋진 행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점점 지쳐가는 동안 고속도로 확장 공사는 일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불만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급기야 바튼은 미래나 결과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기로 한다. 사실 그는 끊임없이 어쩌면 공사를 중단시킬 수도, 그래서 자신의 삶을 구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는 한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마치 미끄러지는 차 안에서, 아직 운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을 놓고 눈을 가려버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저씨도 아는 거라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자살할 생각이라고."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는데 전부 잘 되질 않네. 뭔가를 해보기엔 내가 너무 늙어서 그런가. 몇 년 전에도 일이 틀어진 적이 있는데, 상황이 안 좋아지긴 했어도 삶을 흔들어놓을 정도는 아니었어.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잘 극복하자 라는 마음으로 살았지. 그런데 내면이 차츰 무너져 내리는 게 느껴져. 넌덜머리가 나. 계속 그래."      p.304

 

70~80년대 당시 평론가들은 스티븐 킹을 저급한 장르 작가라고 저평가했고, 여기에 반발해 스티븐 킹은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습작 삼아 써 둔 작품들을 다듬어 발표했다. '바크만'이 한 번 더 '킹' 같은 지위를 획들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리처드 바크만의 이름으로 <Rage>, <롱 워크>, <로드워크>, <The Running Man>, <Thinner> 다섯 권이 출간되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이 실험은 한 서점 직원에 의해 발각되어 중단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발각되지 않았다면 <미처리>도 리처드 바크만의 이름으로 나올 예정이었다고. <롱 워크>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리처드 바크만의 작품이 이번에 만난 <로드워크>이다. 현재 영화 「그것」의 무시에티 남매가 각색 및 제작으로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이 영화화할 예정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이 작품에 대해 '인간이 가진 고통이라는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을 잘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갑자기 나타나 '여기로 도로가 지나가야 됩니다. 일 년 내에 이사 나갈 새집을 찾으세요'라고 말하면 그걸로 끝인, 자본의 이익 논리 앞에서 힘없는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물론 누군가는 정부에서 결정한 정책이니 군소리 없이 명령대로 이행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조금 번거롭지만 시에서 주는 보상금을 받고 다른 도시로 가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내쫓기고, 소중한 기억들을 잃어 버리게 되는, 세상이 끝나버리는 것 같은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순간에 자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 딸려 있던 모든 것이 세상 끄트머리 너머로 쓸려 나가버리고 나면, 뭐가 남을까. 그렇게 삶이 흔들리고, 내면이 무너져 내린 한 남자의 분노가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콰이어트 + 콰이어트 마인드 플래너 - 전2권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김현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용한 사람과 시끄러운 사람이 대체로 비슷한 숫자의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떠올린다면, 시끄럽고 더 강한 사람이 늘 이기는 상황을 걱정해야 마땅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묵살되고 나쁜 아이디어가 채택될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룹 역할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조용한 사라보다 시끄러운 사람이 더 똑똑하다고 인식한다. 학교 성적이나 SAT(대학입학 자격시험) 점수, 지능 테스트 점수를 보면 그것이 틀렸다는 점이 드러나는데도 말이다.     p.96

 

혼자 있는 시간에 평온함을 느끼는 내향성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다. 물론 외향성의 사람이라도 타인과의 소통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거나,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피곤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래의 성격을 감추려 하는 걸까?’ 이 책의 저자인 수전 케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해 '내향성이 얼마나 위대한 기질인지 스스로 증명'해보기로 한다.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이 책은 인류학, 뇌과학, 심리학, 유전학 등 학문적으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내향적인 사람들에 관한 놀라운 실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그 속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해낸다. 

 

찰스 다윈은 소년일 때 쉽게 친구를 사귀기는 했지만 혼자서 오랫동안 자연을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일의 대부분을 혼자서, 휴렛팩커드의 칸막이 안에서 해냈다. 그는 아무도 없는 새벽에 회사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했고,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재빨리 스파게티를 만들거나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때우고, 다시 사무실로 가서 밤늦게까지 작업했다. 그가 첫 PC를 만들기까지의 작업 과정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늘 혼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외향성만이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상주의’에 대해 제대로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내향성과 외향성의 유전적인 부분에 대해 탐구하고,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사회 속에서 내향성이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는 지와 자신의 성격 유형을 스스로 파악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랑은 필수지만, 사교성은 선택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라. 자신이 좋아하고 존중하는 동료들과 일하라. 새로 알게 된 사람들 중 자신이 좋아하는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이나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누구일지 살펴보라. 그리고 모두와 어울려야 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관계는 누구에게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양보다는 질을 우선하라.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 타고난 장점(끈기, 집중, 통찰, 섬세함)을 활용하여 자신이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하라.      p.441~442

 

<콰이어트>가 10주년을 기념해 스페셜 에디션으로 나왔다. 특히나 이번에는 <콰이어트 마인드 플래너>가 함께 출간되어 <콰이어트>를 바탕으로 직접 기록하며 내면의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내 안에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는 150가지 Q&A들은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플래너이다. <콰이어트>를 읽었다면 더 심도 있게, 읽지 않았더라도 매우 흥미롭게 진짜 자신에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질문에 답하고 주어진 과제를 풀어가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질의 장점을 찾아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닌 답변이라 정말 자유롭게, 편하게 써볼 수 있어 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사색적인, 지적인, 책벌레, 꾸밈없는, 섬세한, 사려 깊은, 진지한, 숙고하는, 미세한, 내성적인, 내면을 향하는, 부드러운, 차분한, 수수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수줍어하는, 위험을 싫어하는, 얼굴이 두껍지 않은. 물론 이 책은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성향이 한쪽으로만 완전히 쏠리는 사람은 드물 테니 말이다.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세 명 중 한 명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당신이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파티보다는 독서를 좋아하며, 혁신과 창조에는 열광하지만 자기 자랑은 싫어하고, 여럿이 일하기보다는 혼자 어딘가에 콕 박힌 채 고독한 작업을 즐긴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의 나라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내가..... 이런 꼴이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여러 자아가 내 속에 갇혀 있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이 안정된 길을 걷는다면 그 자아들은 영원히 갇히고 말 거라고 확신했다... 조와 함께한 과거를 사랑했지만, 현재 속에 우리 모습을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축소했다. 내 혈관 속에 다 부숴버리고 싶다는 욕망의 기미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허락하면 그 욕망이 퍼져 나갈까?      p.131

 

1980년 런던의 초겨울 오후, 누드 스케치 모델로 일하는 스물여덟의 엘리스는 공동묘지를 에워싸고 있는 철책을 걷다 한 여자를 만난다. 서른여섯의 콘스턴스 홀든은 작가였다. 무슨 이야기를 쓰냐는 물음에 코니는 '끝내주게 멋진 이야기'라고 말했고, 엘리스는 주말이 되자 도서관에서 그녀의 작품 <밀랍 심장>을 빌려 온다. 그 책은 '강렬하고, 냉혹하고, 열정적이며, 밑줄 긋고 싶은 문장으로 가득'했다. 엘리스는 코니의 작품에 매력을 느낀 것만큼, 점점 더 코니에게 사로잡힌다.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 전까지는 여자와 사귄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7년 런던, 카페에서 일하는 서른네 살 로즈는 남자친구 조와 함께 살고 있다. 로즈는 조와 함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사는 프랑스에서 여름의 마지막 주를 보낸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밀랍 심장>과 <초록 토끼>라는 책을 보여주며 읽어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엄마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는 엄마가 이 책의 작가랑 사귀는 사이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로즈가 아기였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로즈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 또한 바로 그 소설가였다고. 런던으로 돌아온 로즈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두 작품을 발표한 후 은둔한 채 살고 있는 소설가를 만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과연 로즈는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엄마에 대한 진실을 찾게 될까?

 

 

엘리스는 눈을 감았다. 죽기 전, 엘리스의 어머니는 솔직했다. 아이를 가지면서, 엘리스를 가지면서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서 살 수 없었다고 했다. 퍼트리샤가 가졌던 것은 모두 사라졌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친 거라고 했다. 아이를 가짐으로써 완전히 새 건물에 들어와 살게 되는데,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른 채 몇 주, 몇 달, 몇 년이 지난다고. 완전히 다른 삶이란다, 얘야. 그런 곳에서 살아야 했단다. 앨리스는 어머니에게 '거기서 사는 게 행복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앨리스를 안으며 '그랬지'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이전의 삶은 기억도 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p.385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교차 진행된다. 현재의 로즈보다 더 어렸던 그녀의 엄마 엘리스의 과거와 엄마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 소설가 콘스턴스의 타이피스트로 일하게 된 로즈의 현재 이야기는 웬만한 미스터리 작품들 못지 않은 긴장감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그만큼 작품과 극중 인물들에게 동화되어 머리와 심장이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과거에 엘리스와 코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대체 왜 엘리스는 어린 딸을 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인지, 그리고 현재 신분을 속이고 콘스턴트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로즈는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을 것인지, 콘스턴트가 수십 년 만에 발표할 예정인 신작 소설에는 엄마의 이야기가 언급이 되어 있을 것인지... 이야기는 숨가쁘게 앞을 향해 달려 간다. 제시 버튼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꽤나 두툼한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게 만드는 마력은 여전했다.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너무 아쉬워서 다시 첫 페이지를 들추고 싶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다.

 

 

때로는 허구의 세계가, 비록 실제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걸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제시 버튼의 모든 작품들이 내게 그랬던 것 같다. 여성의 삶과 내면을 그려내는 데 정말 탁월한 작가인 제시 버튼답게 이번 신작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미니어처리스트>는 문장들과 행간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이 페이지마다 넘쳐 흐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우아한 기품과 매혹적인 미스터리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해나가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 <뮤즈>에서는 여성 예술가가 '뮤즈'라는 허울 아래 연인, 모델, 영감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어두운 시대를 눈부시게 그려냈었다. 차별과 억압 이전, '예술가'로서 여성들이 지녔던 진짜 욕망을 통해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해내었던 섬세한 작품이었다. 세 번째 작품인 <컨페션>에서는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애인, 그리고 누군가의 배우자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인 여성들이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오롯이 ‘나’로 살기 위한 아름다운 분투를 그려내고 있다.

 

극중 로즈가 콘스턴스의 <초록 토끼>를 읽고 나서 생각했던 표현들이 기억에 남는다. '삶을 끝까지 살아내고 그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 그리고 확실한 대답은 없지만 마지막 문장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꽃을 피워낼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이 작품 <컨페션>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엘리스도, 로즈도, 로즈의 아버지와 친구인 켈리도, 그리고 콘스턴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모두가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을 오롯하게, 끝까지 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 두툼한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문제의 그 날 엘리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 둔다. 왜냐하면 그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끝이 났지만, 극중 인물들이 런던 어디에선가 우리처럼 숨쉬고 살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살아있으려고,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으려고 애쓰는 행동에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끼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드는 나의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