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메이드 과일 샌드위치 - 상큼하고 달달한 과일 한가득!
나가타 유이 지음, 황국영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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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일 샌드위치, 일명 후르츠 산도가 국내에도 유행이 된 지 꽤 되었다. 빵과 크림, 그리고 제철 과일의 심플한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그 풍미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SNS에서 '후르츠 산도'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보기만 해도 너무 예쁜 과일의 단면과 크림의 조합이다. 맛도 있지만, 색감도, 모양도 너무 근사한 디저트인 것이다. 그래서 국내의 카페에서도 후르츠 산도를 메뉴로 선보이고 있는 곳이 꽤 있다.

 

 

이번에 만난 책은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메뉴 개발자이자 샌드위치와 빵이 있는 식탁을 꾸준히 연구하고 소개해 온 전문 푸드 코디네이터 나가타 유이 과일과 빵, 최상의 조합을 보여주는 레시피 책이다.

 

샌드위치로 활용할 수 있는 과일의 종류부터, 다양한 넛츠의 종류, 과일 자르는 법, 과일을 이용해 잼과 콩포트를 만드는 법, 과일과 어울리는 기본 크림 만드는 방법 등 최상의 조합을 찾기 위한 기본부터 차근차근 설명이 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과일 샌드위치 레시피로 들어가면 딸기, 멜론, 복숭아, 과일 믹스, 제철 과일과 넛츠 등 다양한 재료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이 수록되어 있다. 무려 100가지에 달하는 종류를 만나볼 수 있으니, 신선한 과일과 빵을 조합해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후르츠산도는 심플한 재료에 비해 단면이 깔끔하고 예쁘게 나오는 것이 관건이라, 이 책의 레시피대로 사진을 참고해 과일을 배열해보면 완성했을 때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록된 레시피 중에서 샤인머스캣을 통째로 활용한 샌드위치를 해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샤인머스캣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마스카르포네와 생크림만을 곁들여 심플하게 조합할 수 있는 레시피라서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후르츠산도 레시피 외에도 바게트, 크루아상, 깜빠뉴, 호밀빵 등 다양한 재료와 어우러지는 과일과의 조합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과일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샌드위치들과 빵에 어울리는 과일을 사용한 요리들의 레시피도 수록되어 있다.

 

후르츠산도가 사진 찍기에도 예쁘고, 맛도 근사하지만, 사실 카페에서 먹기에는 다소 비싼 감이 있다. 양에 비해 배가 부른 메뉴는 아니니 말이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레시피를 배우고, 직접 홈메이드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보다 재료가 간단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 과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다. 홈카페에 관심이 있다면, 과일과 빵을 좋아한다면, 더욱 활용도가 높은 책이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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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곽아람 지음, 우지현 그림 / 이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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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삶이 주는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다"는 문장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므로. '혼자 잘 노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의 무기 중 하나라고 늘 생각해왔다. 회사 연수차 1년간 뉴욕에서 홀로 생활했던 서른여덟, 아홉 살 무렵 특히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모든 일을 혼자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책벌레인 사람은 '혼자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책읽기야말로 혼자 놀기의 '끝판왕'이기 때문에.     p.182

 

곽아람 작가는 책에 대한 책, 독서 에세이를 여러 권 썼다. 청춘의 독서를 이야기했고, 절판 아동 도서 수집기로 유년의 독서를 돌아봤고, 아메리카 문학 기행도 있었다.  첫 책을 썼을 때 6년차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이제 19년차 직장인으로, <조선일보> 최초의 여성 출판팀장이 되었다.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로서나 사회적으로 성공했음에도 자신은 야망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야망 따위를 갖지 않고 초연해지고, 직장에서 아무런 욕심도 갖지 않으며, 일터에서의 자아와 퇴근 후의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욕심과 질투로 마음에 옹이가 지는 게 싫었던,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밑바닥까지 추해지지 않고, 최대한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하고 싶었던', 그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어릴 적 읽은 책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영향이 컸다.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부터 최근에 나온 책까지, 20권의 책을 통해 마음을 이야기하는 독서일기이다. <소공녀>의 세라, <빙점>의 요코, <작은 아씨들>의 조, <유리가면>의 마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 <우아한 연인>의 케이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의 마플 양에 이르기까지.. 스무 권의 책 속 스무 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문학 작품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비커밍>의 미셸 오바마, <배움의 발견>의 타라 웨스트오버 등 여성 작가들도 만날 수 있다. '중년이라 하기엔 미숙하고 청춘이라기엔 무거운 나이, 40대의 책읽기'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되었다.

 

 

 

독서에는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어린 날 책읽기의 가장 큰 효용이자 목적은 바로 이것이라 믿는다. 어린아이의 여린 마음을 둘러싸는 보호막이 되는 것. 그 막은 더 많은 책을 읽을수록 더욱 유연하면서도 튼튼해진다. 터지지 않는 비눗방울 같은 형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훗날 어른이 되어 금력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세속적인 가치들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 흔들림 없는 성채이자 단단한 방패가 되어준다.      p.191

 

<소공녀>의 세라는 한 순간에 '특별 학생'이었다가 학교의 하녀로 전락한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개발하던 아버지가 파산 후 세상을 쓰자, 공주 같은 삶을 살던 세라는 쥐가 우글거리는 다락방으로 쫓겨나 학교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세라는 춥고 어두운 다락방에 살면서 갖은 모욕을 받으면서도 견뎌낸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로 쌓아온 교양이 가장 힘든 순간에조차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하는 무기가 되어준 것이다. 갖은 역경과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고결한 품성을 지닌 '공주'라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온실 속의 화초'에서 벗어나 굴욕과 모욕과 억울함과 부당함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마음속으로 세라를 떠올리며 버텨냈다고 말한다. 힘겨운 일이 생기면 고통을 겪고 있는 책 속 누군가를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던 소녀의 마음이 성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릴 때 읽은 책들은 자아의 일부분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작가는 <빙점>을 읽으며 비밀을 갖는다는 건 어른이 된 증거라고 여기게 되었고, <유리가면>을 읽으며 재능과 노력에 대해, 배경과 실력에 대해 고심했다. <빨강 머리 앤>을 다시 읽으며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주었던 너그러운 친구들을 떠올려 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통해 '일하는 여자'로서의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마흔 즈음이 되어서야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으면서, 10대 때는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열정과 광기 어린 사랑에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분명 읽었던 책인데, 이 책이 이런 이야기였던가 싶었던 순간은 독서를 특별한 체험으로 만들어주곤 하니 말이다. 어린아이의 여린 마음을 둘러싸는 보호막이 되어주는 독서부터, 악의보다는 선의를 기억하는 인간으로 자라난 마흔 너머의 독서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었던 태도와 잊고 있었던 품위를 깨워준다.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가 궁금하다면, 사회적인 성공보다 나답게 사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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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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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고 책임감을 가지고 써야 하는 글도 있다고 생각했다. 두렵고 외롭고 허탈할 때가 많았지만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기록으로 남기려고 애썼다. 하지만 적의는 호의보다 훨씬 힘이 셌다.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이 따옴표 안에 들어가 인터뷰 기사에 실렸고, 내 소설에 있지도 않은 문장과 에피소드가 인터넷 리뷰에 올라왔다. 결국 내가 졌다. 이용당한다는 생각, 절대 가지지 않으려던 그 마음이 드는 순간, 내가 망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분홍신을 신은 발은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신발을 벗는 것이었다.      - '오기' 중에서, p.57~58

 

나는 아버지가 가출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올해 나이 일흔둘, 치매 등 정신 질환도 없고, 정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결근한 적 없었던 아버지이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삼남매가 한자리에 모이지만, 딱히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내가 살면 얼마다 더 살겠니. 이제라도 내 인생 살고 싶다. 나를 찾지 마라'고 쪽지를 남겨둔 아버지는 저금한 돈도 일부 찾아 나갔다. 이제 엄마 혼자 남겨진 집에는 각종 공과금 수납이며 돈 관리며, 평생 아버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도맡아 온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 엄마는 그 동안 딱 살림에 필요한 금액만 생활비로 받아 썼을 뿐 다른 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의 부재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간간히 오는 카드 문자로 아버지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카드는 막내딸인 자신이 아버지에게 주었던 것으로 다른 가족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이기도 했다. 카드의 내역을 보며 나는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쓰기 시작한 글이라고 한다. 각자의 생활에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장례식으로 모두 모였는데, 정작 그 상황을 만든 아버지가 안 계신 상황이 기묘하기도, 괴롭기도 한 것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한다. 조남주 작가의 신작 소설집에는 10대부터 80대에 걸친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겪는 삶의 경험을 다시 읽고 다르게 읽는 확대된 여성 서사는 여러 시간대에 속한 ‘김지영들’이 연결되며 존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지영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소설집이기도 하다.

 

 

"그런 말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평생 들었어."
평생 들어도 무뎌지지 않는 말이 있다. 껍데기만 남겨두고 몸 안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조그맣고 부드럽던 지혜가 그때의 나만큼 자라 거칠게 묻는다. 나한테 왜 그랬어? 대답할 수 없어, 지혜야. 대답하면 나는 껍데기까지 무너져 버릴 테니까. 네 질문과 내 대답은 부메랑이 되어 너에게 돌아갈 테니까.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 '오로라의 밤' 중에서, p.201~201

 

이 책에는 작가가 2010년에 쓰기 시작했던 작품부터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졌던 2020년 여름에 쓴 최신작까지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특히 노년의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작품, <오로라의 밤>과 <매화나무 아래>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여든 살의 '나'는 임종을 앞둔 치매 환자인 큰언니를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남편도 보냈고, 아들도 먼저 보내본 나는 곧 큰언니도 먼저 보낼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것인지,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죽을 날을 향해 걸어가고만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다.

 

쉰일곱의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인 '나'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손자 양육을 거절한 탓에 워킹맘인 딸과 갈등 중이지만, 오랜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캐나다로 오로라를 보러 떠난다. 아직 노년의 삶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공감되고, 이해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미래 모습, 혹은 우리 어머니 세대 여성들의 모습일 것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이들 여성들이 연대나 공감을 통해 성숙해지고,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점이 뭉클했다. '사는 일에 별다른 에너지를 쓰지 않으며, 가사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으며, 인정과 이해를 구걸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나이 먹을 수(p.232)'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 본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작품에 수록된 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그리고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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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두 체험 스콜라 어린이문고 35
정연철 지음, 조승연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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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게 많다. 아이들 앞에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선생님이 툭하면 엄마를 찾는 철부지일 수도 있고, 매일 같이 지각을 하는 버릇없어 보이는 아이가 집에선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어린 동생을 챙기느라 바빴던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의 사정을 헤아리고 싶어도, 실제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두 사람의 영혼이 영혼이 바뀌어 직접 경험이라도 해보지 않는 한 말이다.

 

 

여기 너무도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있다. 번개초등학교 4학년 4반 담임 선생님인 김웅, 일명 웅달샘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번개초등학교 4학년 3반 학생인 박찬두, 할 일이 엄청 많아 너무너무 바쁜 애어른이다. 두 사람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연히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벼락을 맞고 몸이 바뀌게 된다. 어른이 어린이가 되고, 학생이 선생님이 된 것이다.

 

웅달샘은 학생인 찬두가 부러웠다. 학교 오고 싶을 때 오고, 숙제는 안 하면 그만이고,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가방 메고 오면 되는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맨날 늦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찬두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완전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질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애들한테 입 다물라고 소리칠 수도 있고, 귀찮은 일 있으면 심부름 시키면 되고 말이다.

 

 

두 사람은 몸이 바뀐 상태로 각자의 삶을 강제로 살면서, 어른은 어른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결코 삶이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겨우 열한 살인 찬두가 해야 할 집안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웅달샘에게 찬두가 되어 겪는 하루는 너무 길고 피곤하기만 하다. 반면 웅달샘보다 더 능청스럽게 선생님 연기를 하는 찬두는 선생님 놀이가 너무 재미있다. 그렇게 찬두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는 다정다감한 선생님으로, 웅달샘 부모님에게는 뒤늦게 철든 아들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하지만 계속 몸이 바뀐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연 두 사람은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영혼이 바뀌어 타인의 몸으로 각자의 삶을 체험해본다는 설정 자체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어린이와 어른의 상황을 역전시켜서 만들어 내는 통쾌한 재미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어른 입장에서는 뭐든 부모가 다 해주는 어린이의 삶이 마냥 편하게 보일 것이고, 아이 입장에서는 어른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 부러울 수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유로운 대신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겐 여러 가지 제약도 많고, 나름의 힘든 일들이 있다. 이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고,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려내어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정연철 작가는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해 온 이력으로 아이들의 입장에서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철부지 선생님과 애어른 학생의 영혼 변경 소동을 통해 통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영혼이 바뀌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 번쯤 상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상대를 이해하는데, 눈에 안 보이는 걸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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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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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생각인 건 나도 안다. 사실 그런 생각은 그 힘들던 시간을 떠올릴 때만 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걱정으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게 어떤 건지 남편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게 어떤 건지.     p.174

 

애덤과 리비아 부부는 학생 때 아이가 생겨 결혼한 탓에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리비아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마흔 살 생일에는 여러 사람들을 초대한 큰 파티를 열고 싶어 했다. 딸인 마니는 홍콩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 중이고, 아들인 조시는 이번 여름에 인턴으로 채용되어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다. 마니는 파티에 맞춰 집에 오고 싶어 했지만 시험 일정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깜짝 선물이 되기 위해 마니는 밤늦게라도 집에 오는 걸로 아빠와 따로 말을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고대하던 파티 당일, 남편과 아내는 딸 마니와 관련된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사실 리비아는 마니가 파티에 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랬다. 왜냐하면 딸이 처자식이 있을지도 모를 남자와 깊은 관계였고, 임신 12주 상태에서 유산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니는 아빠와 조시가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았고, 리비아는 딸의 바람을 존중했지만 남편에게 비밀로 한 채 그 사실을 혼자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 몰래 집에 오기로 한 마니를 기다리는 애덤은 휴대전화로 뉴스 속보를 보고는 충격에 휩싸인다. 마니가 탈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전원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마니와는 계속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애덤은 정확한 소식을 알아보기 전에 아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파티가 아내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오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와 남편은 각자 상대의 세계가 무너지기 전, 가능한 오래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엄청난 비밀을 당분간 혼자 알고 있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그 결정은 앞으로 닥쳐올 파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이들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당신을 보호하고 싶어서 그랬어. 우리가 갖고 있던 걸 지키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럼 당신은 언제 말하려 했던 거야? 절대 비밀로 하려 했어? 아니면 당신 파티가 끝나고?"
나는 뒤로 손을 뻗어 베개를 잡았다. "나가!" 베개를 남편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나가서 돌아오지 마! 당신을 증오해. 알아듣겠어? 당신을 증오한다고!"     p.373

 

군더더기 없이 빠른 전개는 첫 페이지를 열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가게 만들어 주었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를 만난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사랑받는 완벽한 아내는 끔찍한 폭력의 희생자이며, 아름다운 저택은 감옥이고, 매 맞는 여자들을 헌신적으로 변호하는 법률가가 실은 사이코패스였다는 전제로 완벽해 보이는 결혼이 실은 완벽하고 치밀하게 조작된 거질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역대급 데뷔작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브레이크 다운>에서는 정신적, 심리적 폭력이 얼마나 극한의 공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고, 세 번째 작품인 <브링 미 백>은 상상조차 못했던 짓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반전 스릴러로 여전히 페이지 터너로서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세 작품 모두 6월에 출간되었기에,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생각나는 작가가 되어 버렸는데, 어김없이 이번 신작도 6월에 만나게 되었다.

 

B. A. 패리스는 너무도 인상적인 데뷔작을 썼던 탓에 그만큼의 임팩트를 이후 작품에서는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을 계속 읽어 왔던 독자들이나,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 왔던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지점, 금방 눈치를 챌 수 있는 단서들이 많아 상황 파악이 너무 빨리 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갈등을 겪게 되는 고민에 대한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제목을 딜레마라고 했는데, 두 가지 사항 중에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면 양쪽의 고민이 비슷한 무게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비밀을 가지게 된 이유나, 남편이 아내에게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독자로서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딸이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유뷰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를 가져 유산까지 했는데, 그 상대가 남편의 절친 동생이자 가족들 모두와 친분을 맺고 있는 인물이었다면, 단순히 딸이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고 엄마가 그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될까? 게다가 아내의 마흔 번째 생일 파티를 망치지 않기 위해, 딸이 탔을 지도 모르는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듣고도 파티가 끝나기 전까지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리지 않겠다는 아빠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 없었다. 시종일관 비밀을 간직한 두 사람의 시점을 팽팽하게 교차 진행하며 쌓아 올린 긴장감에 비해 결말도 조금 단조롭게 느껴졌다.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B. A. 패리스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은 틀림없다. 데뷔작만큼 놀랍고, 독창적인 그녀의 다음 작품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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