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냥이 수수께끼 탐정단 찍냥이 탐정단 1
류윤환 지음, 파키나미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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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눈에 수수께끼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수수께끼를 풀어 보지만, 정답을 맞추지 못한 사람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가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고, 교실에서 수업을 하던 선생님의 몸이 연기가 되어 없어지기 시작한다.

 

올라갈 때는 걸어가고, 내려갈 때는 엉덩이로 내려가는 것은? 달리면 서고 서면 쓰러지는 것은? 선물로 받자마자 발로 차 버리는 것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피자는? 공부해서 남 주는 사람은? 물고기의 반대말은? 쌍둥이가 바쁘게 음식을 나르는 것은? 자, 이 중에 몇 가지나 답을 바로 맞출 수 있는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스핑크스가 5천여 년 만에 눈을 뜨고, 스픙크스가 낸 수수께끼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난리 통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수수께끼 나라의 왕, 13대 전수맨이라 자신을 칭하는 사람이다. 전수맨은 스핑크스를 막고 함께 세상을 구하자며, 찍냥이 탐정단을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찍냥이 탐정단은 범인과 사건을 기가 막힌 감으로 찍어 맞히는 탐정 깜찍이와 불같은 성격으로 수사하며 냥냥 펀치가 특기인 탐정 불냥이 두 사람이다. 과연 전수맨과 찍냥이 탐정단은 수수께끼를 다 맞히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탐정 스토리와 수수께끼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으로 국내 최다인 350개의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한 권으로 쉽고 재미있게 가장 많은 수수께끼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교과 연계 수수께끼와 수수께끼 만드는 방법도 수록하고 있어 학습만화로서도 훌륭하다. 저자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아이들과 학교에서 수수께끼 놀이를 자주 하셨는데, 재미도 있지만 어휘력까지 좋아져서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수께끼가 워낙 많이 수록되어 있다 보니, 거의 모든 페이지에 수수께끼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문제를 풀어볼 수 있고, 찍냥이 탐정단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연스레 수수께끼가 외워지는 효과도 있다.

 

 

부록으로는 이름, 특징, 서로 다른 점을 이용해서 수수께끼를 만드는 방법과 그림 수수께끼, 교과서 수수께끼가 보너스로 담겨 있다. 또 초판 한정 구성으로 ‘한 손에 쏙 수수께끼 카드 책’이 함께 들어 있는데, 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그림 수수께끼 30개가 수록되어 있다. 휴대하기 좋은 작은 사이즈라 가지고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문제를 내고 맞혀볼 수 있다.

 

'찍냥이 탐정단' 시리즈는 앞으로 속담, 고사성어 등 국어, 어휘 영역의 학습 주제로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수수께끼, 속담, 고사성어 등이 저절로 외워지는 재미있는 학습만화라서 창의력과 상상력, 사고력이 눈 깜짝 할 사이에 키워질 것 같다. 시리즈 두 번째는 '속담' 편으로 <찍냥이 속담 탐정단>도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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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 네트워크
챈들러 베이커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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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나란히 앉아서 일했다. 인사, 회계, 감사, IT 부서에 포진한 그들은 우리의 위와 아래에 있었다. 그런 남자들과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가 전통적인 남학생 클럽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비밀 여학생 조직을 구성해 이에 대항하는 셈이었다. 우리는 비밀 악수법을 공유했고, 서로를 여성 전우로 여겼다.      p.88

 

여느 때와 다름 없던 평일 오후, 점심시간이 막 지난 즈음 누군가 회사 18층 발코니에서 추락한다. 대체 누가, 왜? 그날, 그 시간에, 회사에서 떨어져 죽어야 했을까? 이야기는 그 일이 있기 삼 주 전에서 시작한다. 그날 아침 스포츠 의류 브랜드 트루비브의 CEO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회사에 소속된 변호사들은 급히 소집되어 대처 방안을 논의한다. 이야기는 슬론과 아디, 그레이스와 혼자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으로 사내에서 9년 동안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는 로살리타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그리고 새로 입사한 젊은 변호사 캐서린과 그들의 상사인 에임스가 있다. 슬론은 상사인 에임스와 과거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 십 년 동안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아디는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했고, 그레이스는 얼마 전에 아이를 낳고 회사로 복귀한 참이다.

 

유력한 차기 CEO 후보로 떠오른 것은 대표 변호사인 에임스였다. 그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여자 부하 직원을 대하는 태도로 인한 소문이 무성한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새로 입사한 젊은 여자 직원인 캐서린에게 접근하려는 참이다. 여직원들의 숱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던 그가 이제는 꼭대기에 오르게 생겼는데, 보고만 있어야 할까. 이때 ‘배드맨 리스트’라고 불리는 엑셀 파일이 여직원들 사이에 은밀하게 떠돌기 시작한다. 배드맨: 댈러스 나쁜 놈 경계 리스트. 나쁜 놈들, 조심할 것. 스프레드시트의 리스트에 있는 남자들은 이러저러한 끔찍한 짓을 했다. 여자들은 리스트를 만들고 재차 확인하면서 누가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가려내려고 애썼다. 슬론은 배드맨 리스트에 에임스의 이름을 올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만성질환을 달고 살듯 우리는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지만, 장담컨대 우리의 질환이 훨씬 치료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온갖 죄책감을 느꼈다. 워킹망이라서, 아이가 없어서, 사회적 의무를 저버려서, 그럴 여유가 없는 걸 알면서도 초대에 응해서, 이미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일을 거절해서 혹은 거절하지 않아서, 월급 인상을 요구해서 혹은 정당하게 요구하지 못해서... 어느 하나 같은 죄책감이 없었다. 충분한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게 또 죄책감으로 다가오니, 이런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능력이 대견할 지경이었다.      p.365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스터 네트워크'라는 용어는 보통 자신이 종사하는 산업의 남성 권력자 중 성희롱이나 성추행 혐의가 있는 이들의 명단을 은밀하게 공유하는 것을 일컫는 여성들만의 비공식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말한다.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시기에 실제로 미디어 산업 등에서 공유되던 리스트가 공개되며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인 챈들러 베이커는 변호사로 일하던 당시 로펌에서 일할 때 실제로 위스터 네트워크희 혜택을 누린 적이 있다. 작가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워킹맘으로서 본인이 겼었던 일과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자들도 그저 일하고 싶었을 뿐이다. 회사의 남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매일같이 업무 사이에 크고 작은 일이 백 개는 넘게 생겨났고, 그 종류는 부수적인 것부터 부도덕한 것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일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웃으라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자신의 몸에 손대려는 남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그녀들은 그냥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법률가 사이에 떠돌던 미확인 리스트였고, 그 결과로 한 남성이 18층 건물 아래로 곤두박질쳐 목숨을 잃었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마녀사냥으로 발생한 희생자일까? 혹은 피해자의 탈을 쓴 가해자일까? 이 책은 성추행이라는 소재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직장에서 여성이 견뎌야 하는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각종 진술서와 녹취록 등과 함께 과거에서 현재까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식으로 진행되는 스릴러이자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 것, 남자와 단둘이 한방에 있지 말 것을 경고해주고, 함께 피해 다니고, 아무도 폭탄을 맞지 않도록 지뢰 표시를 하고, 서로 같이 다녀야 하는 여성들의 눈물 겨운 연대가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벌어지는 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쉿, 그 남자를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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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이야기
디노 부차티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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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님." 이제 피에트로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사실대로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왜 다 거짓말하셨어요?"
"거짓말이라니?" 플라네타는 평상시의 유쾌한 말투를 가까스로 유지하면서 반박했다.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그냥 네가 믿게 뒀을 뿐이야. 네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어. 말하자면 그게 다야."     - '대수송단 습격' 중에서, p.25

 

군인이 된 아들이 무려 2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한없는 기다림 끝에, 희망이 사그라지기 시작했을 즈음에 도착한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눈물범벅이 된다. 아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지치고 고단해 보였다. 망토를 벗고 편하게 들어와 앉으라는 엄마에게 아들이 무의식적인 방어 동작을 취한다. 금방 나가야 해서 안 벗는 게 낫겠다고. 게다가 아들은 누군가와 함께 왔다고, 밖에 그 사람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다. 아들은 말르 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딘지 슬퍼 보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고, 앞으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텐데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잠시 후, 엄마는 아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파란색 모직 천의 망토의 사연과 아들의 슬픔, 그리고 길에서 기다리던 의문의 인물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슴속에 수세기가 거듭되어도 절대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멍이 뚫려 버린다.

 

단 7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이 매우 강렬한 작품이었다. 작가가 종군기자였고, 여러 소설과 시, 오페라와 희곡을 썼으며, 화가 및 만화가이자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 안에 온갖 희노애락과 서사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특파원으로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방문하기도 했고, 범죄 기사 및 사망사고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미스터리를 주제로 한 초자연적 현상, 환시와 계시, 심령술에 관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 방면에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과 수많은 지식들이 다수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을 저널리즘적 글쓰기로 풀어내어 설득력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쓰인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 묻는 건 부질없다고 조반니는 생각했다. 여태껏 그랬듯이 모두가 다른 답을 줄 것이고, 다른 장소로 안내할 것이며, 신문 기사는 한 줄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모두에게 각자의 산사태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산비탈의 흙이 밭으로 무너진 일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름더미가 무너진 일이요, 또다른 누군가에겐 돌담이 붕괴된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불행한 산사태를 품고 있지만, 조반니가 찾아 헤맨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지면 세 단을 채우고, 어쩌면 그에게 행운을 안겨줄 대규모 산사태를 보려 했다.)     - '산사태' 중에서, p.367

 

이 책은 이탈리아 환상문학의 거장 디노 부차티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60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디노 부차티는 국내에 최근에 소개된 작가인데, 올해 2월에 출간된 장편 소설 <타타르인의 사막>이 처음이었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60개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등 여러 장르적 특색을 선보이며 단편작가로 유명했던 그의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1958년 출간 당시 보기 드물게 장편이 아닌 이 단편집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명망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스트레가상’이 수여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독창적인 상상력과 완성도 높은 문학성으로 부차티 단편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60편의 이야기들은 각각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여운을 남겨준다. 게다가 전쟁이 야기한 인간세상의 희비극과 질병 및 전염병, 군중의 광기와 집단심리 등 너무도 다양한 소재로 쓰여진 이야기들이라 지루할 틈 없이 읽는 재미도 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60개의 이야기들을 통해 불가해한 수수께끼와 모험이 가득한 부차티 단편의 정수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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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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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란 있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아름다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거든....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하지. 어떤 사람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눈 내리는 숲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많고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 달라서 다 이야기하기도 힘드네.     p.9~10

 

옛날 옛적에 신데렐라라는 재투성이 소녀가 살았다. 자신의 친딸들만 예뻐하는 새어머니 덕분에 신데렐라는 하루 종일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왕의 아들인 왕자가 대규모 무도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초대장을 받은 신데렐라의 두 언니는 갖은 치장을 하며 무도회를 고대했다. 언니들은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으로 무도회장으로 떠났고, 초대받지 못한 신데렐라는 불가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잠시 후 대모 요정이 나타나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고, 생쥐를 말로 바꾸고, 신데렐라가 입을 아름다운 파티 드레스를 만들어 준다. 신데렐라는 파티에 참석해 왕자와 멋진 춤을 추고, 무도회장을 빠져나오다 구두 한 짝을 잃어 버리고 만다.

 

왕자는 구두 한 짝을 놓고 간 손님을 찾기 위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신데렐라의 집까지 오게 된다. 새어머니는 자신의 딸들에게 구두가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어 준다. 자,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다. 달라지는 것은 바로 다음 순간부터이다.

 

 

신데렐라는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 전쟁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도 있게 되었어. 신데렐라는 대모 요정은 아니지만 마법 능력이 없어도 해방자가 될 수 있었어. 해방자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야.    p.39~42

 

갓 구운 케이크와 차를 들고 응접실에 들어오던 신데렐라는 왕자를 보게 되고, 문득 모든 게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다. 부엌에만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부터 시작해 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말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왕자에게 말한다.

 

"그거 제 신발이에요."

 

왕자가 건네준 구두는 신데렐라의 발에 꼭 맞았고, 신네델라는 주머니에서 다른 유리 구두 한 짝을 꺼낸다. 이제 신데렐라는 왕자의 신붓감이 되어 신분 상승을 하게 되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신데렐라와 왕자에게 각자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리베카 솔닛의 첫 픽션이자 그림책이다. '신데델라'라는 동화를 비틀어 기존의 가부장적 서사에서 벗어나 '해방자'라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시작은 중고책방에서 파는 작은 그림 한 장이었다. 파본이 된 동화책에서 잘라 낸 책장 한 장에는 신데렐라를 맨발에 파란 누더기 드레스를 입은 활달한 소녀로 그리고 있었다. 리베카 솔닛은 그림을 뒤집어 신데렐라 이야기의 한 부분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단순히 왕자와 결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변신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쓰인 신데렐라 이야기는 ‘그 후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새로운 신데렐라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아서 래컴의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이 더 근사한 신데렐라를 탄생시키고 있다. 아서 래컴은 수많은 고전 동화에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로 1919년작 신데렐라 이야기에 삽화를 그렸다. 리베카 솔닛의 '신데델라'는 원작의 오리지널 실루엣 일러스트를 재배치해서 이야기가 지닌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리베카 솔닛이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 그 너머의 세계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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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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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체계화하고, 규칙적인 정복 활동의 일환으로 삼고, 애인의 이름을 '할 일 목록'에 넣고 체크 표시를 하기. 애욕을 죽이는 데에는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돈 후안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유혹자이고, 유혹자라기보다는 수집가이며, 수집가라기보다는 저격수에 가깝다. 돈 후안과 일견 유사해 보이는 다른 바람둥이 인물들은 명확한 목적에 따라 애정 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돈 후안은 다르다. 그의 행각에는 동기가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다.     p.86

 

이 책은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장으로 재직했고,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 국제펜클럽 회원이자 '책의 수호자' '도서관의 돈 후안' 등으로 불리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가이자 장서가인 알베르토 망겔의 신작이다. 총 37편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동화와 코믹북, 신화, 전설, 고전을 망라하는 텍스트들에서 길어 올린 문학 작품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망겔은 수년 전 신문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들에 대해 다뤄보기로 했다. 그는 이 수많은 등장인물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문학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네가 나를 믿는다면, 나도 널 믿을게' 처럼 말이다. 우리가 그 등장인물들의 존재를 믿고 나면, 그들 또한 우리를 믿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나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작품 속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들이 꽤 등장한다는 점이다. 햄릿이 아니라 거투르드를, 홀든 콜필드가 아닌 피비를, 돈키호테가 아닌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를, 보바리 부인이 아닌 보바리 씨를 다루는 식이다. 주인공에 비해 평범하고, 매력이 없고, 그다지 공감을 받지 못하는 인물들처럼 보이는 이들 안에서 망겔은 어떤 이야기를 발견했을까. 그리고 망겔은 왜 이 캐릭터들을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서가인 망겔이 추억하는 신화와 전설, 문학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상상의 친구들 속에서 그 비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잊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상상 속 친구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동화는 우리 세상에서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많은 부분들을 특유의 은근한 방식으로 설명해준다. 회의주의자인 우리는 동화에 거짓, 가짜 희망, 공상 같은 의미를 부여해왔지만, 백 년간의 잠으로 저주를 풀 수 있으리라거나, 이빨을 드러낸 포악한 짐승이 기대감을 안고서 우리 할머니 침대에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리가 좀처럼 잊지 못하는 까닭은 불신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p.294

 

그 누구도 모든 책을 읽을 수 없고 그건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망겔의 말처럼, 모든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일 수밖에 없다. 어떤 책을 읽느냐, 또는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느냐는 독서 목록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성격, 습관 등을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각각의 서재를 이루고 있는, 내가 읽었던 책들과 앞으로 읽을 책들의 목록이야말로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이자, 세계이며, 구성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끔 내 서재를 둘러보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고,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며, 당시의 날씨며 풍경들이 고스란히 함께 떠오르곤 한다. 마치 시간이 멈춰지기라도 한 것처럼, 각각의 책 속에는 책을 읽었을 당시의 내 시간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망겔은 십대 후반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고, 시력을 잃어가던 그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주었던 걸로도 유명하다. 말년의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었던 서점 소년이 어느 덧 노년이 되었다. 그가 긴 시간 동안 자신과 함께해온 가상의 친구들을 추억하면서 써 내려간 이 책은 문학을 재료로 삼아 쓰는 자서전이자, 문학의 가치에 바치는 찬사이기도 하다. 표지를 비롯해 각 장에는 망겔이 가상의 친구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직접 그린 캐릭터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특별히 한국어판에는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메시지와 서명이 함께 실려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때로 잘 만들어진 허구적 인물들이 진짜 육신을 지닌 우리 친구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 책을 꼭 만나봐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고전 문학 속 캐릭터들이 텍스트의 세계를 초월해 우리 삶을 인도해줄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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