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밤의 세계 웅진 이야기 교양 2
레나 회베리 지음, 김아영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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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밤의 풍경들 속에는 뭔가 특별한 비밀이 숨겨진 것만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둠'은 무서워하지만 '밤'은 좋아한다. 밤이 늦도록 자지 않거나, 밤에 밖에 나갈 일이 생기거나 하는 경우 아이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뜨곤 한다. 밤의 풍경 속에는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을 것 같고, 내가 놓쳐 버린 것들이 보물찾기라도 하듯 나타날 것만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어두워져야만 듣고 볼 수 있는 것들, 빛과 어둠을 모두 품고 있는 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어둠과 처음 맞닥뜨리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깜깜하다. 그런데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하고 나면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스웨덴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인 레나 회베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존재들을 환상적인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밤하늘의 태양계와 은하계부터 시작해서 극지방의 오로라, 도깨비불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신기한 불빛들, 반짝반짝 빛을 내는 발광 버섯들과 빛을 내는 곤충들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앵무새를 비롯한 몇몇 새의 몸에는 자외선을 반사하는 부분이 있어 어둠 속에서 몸 일부가 빛을 낸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바위와 자갈 사이에서 빛을 내는 발광 이끼는 옛 유럽에서 마녀들이 금은보화를 숨긴 곳을 보여준다고 믿기도 했다고 한다.

 

산과 동굴, 하늘과 땅 속을 거쳐 깊은 바다로 장소를 옮기면 빛을 내는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다. 뱀파이어 오징어, 왕관 해파리, 심해 아귀, 퉁소상어, 코코넛 문어, 클러스터윙크 소라, 랜턴 상어 등 다양한 수중 동물들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말미잘, 산호초, 가시 선인장 등 발광 식물들도 있다.

 

 

밤이 되면 빛을 내뿜는 버섯이 70종이나 있으며, 어떤 버섯은 너무 밝아서 독서용 스탠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라는 놀라운 사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혀로 핥으면 빛을 내는 아이스크림도 있고, 미래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나무를 심어 가로등을 대신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외에도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한 책이다.

 

특히나 이 책의 백미는 어떤 페이지에서는 형광 빛으로,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환한 하얀 빛으로 반짝이는 그림들이다. 캄캄한 밤의 세계가 얼마나 환상적이고 재미있고 엉뚱하며 놀라운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상하고, 멋지고,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한 '빛나는' 밤의 세계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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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 새로운 행동, 믿음, 아이디어가 퍼져나가는 연결의 법칙
데이먼 센톨라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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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는 소셜 미디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그 기본 개념이 나온 지 7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산업 지도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것은 미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는 그것을 인플루언서 미신이라고 부른다. 인플루언서 미신은 우리가 어떤 개념이나 유행 도는 운동을 확산시키길 원할 때마다 이 특별한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p.43~44

 

2020년 봄,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불과 몇 주일 만에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 다음에는 중동과 유럽으로,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이 바이러스는 매우 강력한 힘으로 아주 빠르고 멀리까지 퍼져나가면서 갑자기 세상을 확 바꾸어놓았다. 수십년 동안 과학자들은 행동도 바이러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퍼져나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인간 행동의 확산은 질병의 확산과는 아주 다른 규칙들을 따른다. 그렇다면 역학자와 공중보건 전문가가 바이러스의 경로를 예측하는 것처럼, 새로운 행동의 확산도 예측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20년 넘게 방대한 연구를 이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변화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밝혀낸다. 그는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의 핵심이 소셜 네트워크, 즉 사회적 연결망에 있다고 말한다. 기존의 믿음과 규범을 흔드는 변화일수록 가족이나 친구, 동료처럼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가 확산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소수의 유명 인플루언서와 오피니언 리더가 다수를 움직인다는 통념이 '미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트위터와 오프라 윈프리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소셜 네트워크의 스타가 아니라 주변 행위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어 대단히 흥미로웠다.

 

 

 

사회 변화는 바이러스처럼 확산하지 않는다. 바이럴 광고 캠페인은 새로운 개념을 뿌리내리게 하지 못한다. 단순히 눈길을 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심지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어떤 혁신에 대한 소문을 모두가 듣지만 아무도 그것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의도치 않게 그 혁신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비치는 효과를 낳는다. 구글플러스를 생각해보라... 변화 계획을 성공시키고 싶다면, 정보의 전염성 확산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p.370

 

2005년 말, 인터넷 스타트업 오데오는 명백히 실패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6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일어났고, 그때까지만 해도 일상적인 잡담이나 올리는 데 쓰이던 서비스가 갑자기 친구와 가족에게 꼭 필요한 구명줄이 된다. 실시간으로 지진이 일어나는 상황을 전달하는 메시지들이 네트워크에 수없이 오가면서 몇 주일 안에 사용자는 수백 명에서 수만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2년 뒤 그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전국적인 규모로 그 위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트위터는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거인이 된다. 왜 기술력과 자본력, 인플루언서로 무장한 구글 플러스는 실패하고, 트위터는 두 달 만에 1000만이 넘는 유저를 확보하게 된 걸까.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 거대한 돌풍과 잠깐의 유행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이 책은 수많은 사례들을 통한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간 행동과 사회 변화의 수수께끼를 풀어 낸다. 특히나 전체의 4분의 1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매직 넘버 25%의 티핑 포인트 법칙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왜 어떤 것은 지나가는 유행으로 끝나고, 어떤 것은 메가트렌드가 되는 건지 궁금하다면, 새로운 행동과 믿음이 퍼져나가는 연결의 법칙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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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의 대이동 - 세계사를 움직이는 부와 힘의 방정식
김대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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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역사적 구성물이다. 특히 한국이 지금 처한 국제 관계는 자본주의, 산업화, 세계화 같은 역사의 큰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노려야 하는 우리로서는 과거를 되돌아볼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보며 다양한 가능성들 가운데 무엇이 선택되었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향후 세계의 지배자가 누가 될 것이며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p.6

 

세계 무대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나라나 어떤 지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나라를 '패권 국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미국과 같은 세계적인 패권국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그리고 패권을 형성하는 요소는 무엇이며, 패권이 쇠락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근대 초 스페인부터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오늘날 미국에 이르는 패권 국가의 역사를 살펴본다. 팬데믹 이후 감염병 대응과 백신 확보를 둘러싸고 국가 간 능력 차이가 어느 때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금, 작지만 ‘유능한’ 국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기를 현명하게 돌파하는 작지만 ‘유능한’ 국가란 어떤 국가인가? 그런 국가가 되려면 우리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대륜 교수는 근현대 4대 패권국인 스페인과 네덜란드, 영국과 미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한 나라의 부와 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깊게 파고든다.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시작된 패권 경쟁을 통해 향후 세계의 지배자가 누가 될 것이며,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상상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힘을 기르는 일이 경제력을 갖추는 데서 출발한다면, 패권 국가의 역사는 자본주의 특유의 경제 성장이 혁신을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문화 변동 없이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18세기 영국이 그랬고 19세기 후반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이 그랬듯, 새로운 혁신이 계속 일어나려면 개인과 기업의 지속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이런 노력이 꽃피울 수 있는 개방적인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혁신을 향한 노력을 뒷받침하는 국가 정책이 결합되어야 비로소 혁신 문화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p.292

 

스페인은 근대 초 유럽에서 제국이라 부를 만한 강력한 국가를 제일 먼저 세웠다. 로마제국보다 더 큰 영토를 다스렸으니 말이다. 오늘날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4억 5000만 명을 넘을 만큼 스페인제국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런데 스페인의 전성기는 한 세기를 채 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네덜란드는 17세기 중반 세계 경제를 주름잡으며 황금기를 누렸다. 열악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가 엄청난 부를 쌓아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불과 두 세기 전만 해도 양모나 수출하는 유럽 변방 국가였던 잉글랜드는, 18세기 중반 세계 패권국으로 성장한다. 변방의 섬나라 영국에서 최초의 산업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20세기 초에 영국이 쇠락한 뒤부터 현재까지 세계의 경제와 군사, 정치를 좌우하는 패권 국가는 미국이다. 21세기 초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으며, 국내총생산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그렇다면 한때 영국의 농업 식민지였던 미국이 20세기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계기는 무엇일까?

 

이 책은 2019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SERI CEO 강연 ‘자본, 패권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약 6만 회 이상의 주목할 만한 조회수를 기록한 이 강의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가 심화되면서 한 나라의 부와 힘의 원천이 영토와 인구 같은 물리적 조건에서 성숙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애국심과 민족의식 같은 무형 자산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역사적 사실로 보여주었다. 근현대 패권국의 흥망성쇠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미래를 탐색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국가와 사회, 리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새로운 통찰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부와 힘의 방정식이 궁금하다면, 코로나 이후 패권을 차지할 나라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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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인 사람 중 가장 외향적인 사람 - 까꿍TOON
최서연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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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인 사람 중에 가장 외향적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긴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책이다. 스스로를 '내향인 49% + 외향인 51%'라고 설명하는 작가 최서연은 영어영문학과 경영학을 전공 중인 대학생이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만화를 배운 적도 없는 대학생이 그린 만화라는 설명에 큰 기대감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까꿍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평범한 2000년생 대학생 최서연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려 SNS에 올리면서 시작된 '까꿍TOON’의 주요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처음 신어보는 구두가 하수구에 껴서 결국 굽이 빠져 절뚝거리며 귀가하고, 단발 레이어드를 하러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했는데, 미용사분의 만족감과는 다르게 세기말 인간이 거울 속에 있었다. 그 모습 아래 적힌 멘트, '시간을 거스르는 자'. 무심코 던지는 멘트들이 정말 너무 웃겼다. 민증 사진 찍는 걸 미루다가 대충 되는대로 찍었더니, 결국 민증 사진을 사용한 대학교 학생증 사진으로 첫날부터 본인 맞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친구들과 구두약속을 했다가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다는 마음으로 대동단결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약속을 취소하기도 한다.

 

누구나 읽다가 이거 내 얘긴데, 이건 내 친구랑 똑같잖아. 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재미가 가득한 책이었다.

 

 

까꿍의 하루는 그렇게 지하철에서 만난 다양한 유형의 빌런들, 사랑니 발치, 독서실에 등장한 비둘기, 셀카 불청객, 알바의 세계, 인생샷 촬영 실패, 대면시험 등등 주위를 둘러 보면 어디서나 만날 법한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자칫 평범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은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와 공감가는 멘트들로 빵빵 터지는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최대한 심플한 배경에 인물 몇 명만 나와서 짧은 대화로 이루어진 단 두 페이지 짜리 만화인데,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유쾌해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맛깔나게 풀어내는 입담 좋은 사람처럼 이 책은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일상을 사랑스러운 재미로 만들어 낸다. 코로나로 인해 바뀌게 된 대학생들의 일상 속 이야기들도, 보람차고 기도 차는 알바 생활의 리얼한 이야기들도 파란만장하다.

 

무더운 여름 푹푹 찌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아무 생각 없이 배꼽잡고 웃을 수 있는 힐링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자석처럼 재미난 일을 끌어당기는 까꿍의 하루가 참을 수 없는 웃음의 순간들을 안겨줄 테니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확진자 수를 비롯해서 웃을 일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지쳐 있는 우리에게 이런 책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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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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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리는 '청인' 중심 사회에서 '들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요된 불편함은 비단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생명에 관해서만큼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재해시 송출되는 긴급방송이나 사고시 교통기관의 안내 방송도 그들에게는 가 닿지 않는다. '그 지진' 당시 많은 장애인의 피난이 늦어지고 지원을 못 받는 현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 그중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p.41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가 어느새 세 번째 이야기로 찾아 왔다. 이 시리즈는 2017년에 출간되었던 <데프 보이스>에 이어 2019년에 나왔던 <용의 귀를 너에게>,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로 이어진다. 사실 오래 전에 <데프 보이스>라는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청인, 농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청각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말 대신에 사용되는 단어였지만, 일상에서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는 표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농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청인도 있고, 부모 모두 청인임에도 아이가 선천적인 농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아라이 나오토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청인, 즉 코다(CODA)이다. 그는 경찰서 사무직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다 그만두고, 수화 통역사로 일을 시작해 법정 통역을 하며 농인의 세계를 둘러싼 편견과 차별에 맞서게 된다. <데프 보이스>에서는 한 농아시설에서 17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살인사건에 얽힌 전말을 밝히는 이야기가 펼쳐졌고, <용의 귀를 너에게>에서는 그로부터 2년 뒤 여전히 법정 통역 일을 하고 있는 아라이가 여러 사건을 마주하며 농인들의 세상 속 수화 통역사로서 한층 더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힘 있는 시선이 아라이를 향하고 있었다.
<제 말을,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재판관에게 전해 주세요.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라이는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그녀는 누구의 설득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이번 '싸움'을 결심하였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약자를 위한 지원'이 아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바라고 있다.    p.245

 

이번 작품에서는 아라이가 수화 통역사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어른스러워진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와 연인 미유키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으니 말이다. 사실 그는 아이 낳기를 망설였는데, 태어날 아이가 '들리지 않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 건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났고, 생후 한 달이 되어 받은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에서 청각 장애가 있다는 판명을 받는다. 아라이와 미유키는 딸의 양육 방식을 두고 깊게 고민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이야기들에 비해서 아라이 집안의 6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과 아라이와 미유키가 점점 더 부모가 되어가는 모습이 뭉클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만의 특별한 점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저쪽'과 '이쪽' 두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라는 점일 것이다. <데프 보이스>에서 등장할 때만 해도 아라이는 농인 사회와 청인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작품을 거쳐 오면서 이제는 데프 커뮤니티 안에 완전히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들리지 않는 아이'의 90퍼센트는 '들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가족이 모두 '들리는' 가운데, 혼자만 '들리지 않는' 아이로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족과 함께 있어도 늘 외톨이라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들리는' 아이였던 아라이의 지독한 외로움은 가정을 꾸리고,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수화 의료 통역의 문제점, 청각장애인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고용 차별 민사소송 등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는 에피소드들도 너무도 현실적이라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농인들의 음성이 되지 않는 외침'에도 조금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지기를, 소수자가 놓여 있는 불공정한 현실이 조금씩 달라지기를,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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