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는 한 팀이었다 - 성적의 가속도를 올리는 엄마 아이 팀워크
최성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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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엄마의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 엄마의 눈이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기질을 타고났는지, 일상 속에서 어떤 점이 뛰어나고 또 어떤 일에 어려움을 겪는지,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눈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 단 몇 번이라도 다른 엄마들과의 대화를 멈추고 아이를 지켜보자. 미끄럼틀 계단을 오를 때 두 칸씩 올라가는지 한 칸씩 올라가는지, 순서를 기다리는지 무시하는지, 내려올 때 온몸으로 내려오는지 엉덩이만 대고 조심조심 내려오는지 등, 지극히 사소한 행동들을 눈여겨보자.     p.62

 

에듀 예능 프로그램 〈공부가 머니?〉에서 치밀한 분석과 송곳 같은 솔루션으로 눈길을 끈 패널, 최성현 컨설턴트의 첫 번째 자녀교육서이다. 저자는 사교육 시장 최전방에서 지방 엄마들까지 앞다투어 찾는 입시 전문가인 동시에, 자녀를 5개 명문대에 동시 합격시킨 이른바 ‘성공한 학부모’다. 이 책은 〈공부가 머니?〉에서 말하지 못한 일급비밀 전략을 모두 담고 있다. 초등 6년, 내 아이 맞춤형 공부 설계 가이드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스텍, 카이스트에 동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모두 소개되어 있다. 교육특구 대치동부터 부산 · 대구까지, 전 지역 학부모들이 상담 한번 받기 위해 번호표 들고 대기하는 입시 상담가의 특급 컨설팅을 책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과 입시를 '엄마와 아이의 팀워크'라는 관점으로 풀어 나가는 방식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 전략으로 한국의 입시, 교육 환경을 보다 현실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니 말이다.

 

 

 

작정하고 아이를 망치려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결국' 망가뜨리는 부모는 많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잘못된 멘토링을 반복하는 부모, 그리고 그게 잘못임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부모가 그들이다. 매달 아이에게 최신 정보와 최고의 교육을 찾아 떠안기는 대치동 부모에게서조차, 자녀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모른 채 눈 먼 돈만 낭비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학습에 관한 지원이라면 아낌없이 베풀고 있다고 안도하지 말자. 투자한 만큼 '결과'를 얻고 싶다면, 부모의 멘토링부터 바로 서야 한다.     p.138

 

공립초등학교와 사립초등학교의 선택 기준, 효과적인 두뇌 자극이 필요한 6~7세에 엄마가 할 수 있는 코칭 방법, 지능에 따른 학습 로드맵, 연령별, 수준별 국어, 영어, 수학 추천 교재 리스트 등등 저자 만의 특별한 컨설팅 방법들은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되어 준다. 특히나 과목별 전략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 눈길을 사로잡았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와 독서를 힘들어하고 어휘 구사력이 부족한 아이를 6~9세, 10~12세의 경우 맞춰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그에 따른 교재들은 어떤 게 좋은 지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영어도 나이에 맞춰 영어를 처음 시작하는 아이와 AR 레벨 2.8~3.2 또는 5세부터 영어를 시작하는 나이에 따른 교재로 6~9세와 10~12세의 레벨과 공부한 기간 별로 구분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많은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팀들로 가득하지만, 특히 아이가 초등 저학년이라면 더더욱 필요할 것 같다. 최초의 공부 습관이 향후 12년의 공부력을 좌우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기정사실이지만, 사실 이제 막 '학부모'가 된 시점에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부모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입시 스트레스를 받기 전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된 학습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다면 이 책의 가이드가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나 천편일률적인 교육 방식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열심히 관찰해서 아이의 재능이 어디에 특화되어 있고 어느 부분에 취약한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그 시작점이라는 것도 여타의 교육서들과는 다른 점이 아닌가 싶다. 주입식 공부법이 아니라 내 아이의 성향에 맞는 공부법을 찾을 수 있다면, 기나긴 입시 기간 동안 아이와 부모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IQ, 유전자, 사교육을 뛰어넘는 부모 코칭의 힘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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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개구리 수영 교실 제제의 그림책
에스터르 판 덴 베르흐 지음, 최진영 옮김 / 제제의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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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사는 올챙이들이 어느새 아기 개구리가 되었다. 꼬리는 사라지고, 앞다리와 뒷다리가 자라면서 올챙이의 모습에서 개구리의 모습이 된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홉'은 작은 꼬리가 아직 남아 있지만, 그 모습 그대로 너무도 귀엽다.

 

엄마 개구리는 아직 제대로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아기 개구리들을 수영 교실로 데려간다. 다소 엄해 보이는 두꺼비 파드 선생님을 만난 아기 개구리들은 조그만 튜브를 앞다리에 양쪽으로 끼우고 수영 수업을 시작한다.

 

 

수영 수업에서 첫 번째로 배우는 것은 물 위에 등을 대고 누워서 물에 뜨는 방법이다. 그 다음에는 물장구 치는 연습을 튜브를 끼고 하다가, 빼고 해본다. 그리고 저 건너편까지 두꺼비 파드 선생님을 따라 줄지어 배영으로 헤엄쳐 본다.

 

잠수도 하고, 평형도 연습해보고, 변장하고 수영하기까지 배운 다음에는 마지막 단계로 다이빙이 남았다. 앞다리가 아직 짧은 홉은 다른 아기 개구리들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을 따라 해본다. 과연 홉은 무사히 수영 교실 졸업장을 받을 수 있을까?

 

 

매년 초등 3,4,5학년을 대상으로 생존수영 교육이 필수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대부분 학교에 수영장이 있어서 체육시간에 수영 수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물에 대한 대처능력을 배운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은 편이라 일상에서 물과 친숙해질 기회가 별로 없는 편이다.

 

제대로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면,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그림책이 물과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읽었다.

 

 

홉은 다른 아이 개구리들과는 달리 꼬리도 아직 남아 있고, 앞다리도 아직 덜 자랐다. 발달이 느린 편이라 수영을 배울 때에도 다른 개구리들에 비해 뒤쳐지는 편이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속도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또 빠른 대로 아이의 발달 상황에 맞춰 수영이든, 교육이든 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 이다.

 

친구들만큼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려줘야 할 것 이다. 이 책 속 아기 개구리 홉의 경우처럼 말이다. 무더운 여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연못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마음껏 여름 방학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원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이 너무 예쁜 이 그림책을 통해 잠시나마 물 속으로 놀러 갔다 올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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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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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하고 있어.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은 내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어둠 속에서 이렇게 속삭여주곤 했어. 당신은 우리 둘 머리를 토닥여주기도 했지. 당신의 여자들. 당신의 세계. 당신이 방을 나갈 때면 나는 울곤 했어. 나는 당신과 아이, 둘이 돌고 있는 이 축에 끼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당신들 누구에게도 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우리가 같이하는 삶이 막 시작한 거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나는 어째서 그 애를 원했을까? 어째서 나는 나를 낳은 엄마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p.68

 

에타는 마을 의사의 아들인 루이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에타의 아버지는 루이스에게 힘든 농사일을 무리해서 시켰고, 결국 그는 그 일을 하다 사고가 생겨 죽고 만다. 남편이 죽고 딸 세실리아가 태어났지만 신경쇠약에 걸린 에타는 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세실리아는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그 어떤 사랑도 받지 못했고, 거의 학대에 가까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성으로 자란 세실리아는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되고, 마음에 없던 결혼까지 하게 된다. 아이로 인해 꿈과 자유를 모두 포기하게 된 세실리아는 처음부터 아이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딸이 태어났지만 젖은 나오지 않았고, 세실리아는 아이가 나무에 목 매달아 죽은 자신의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세실리아의 딸 블라이스 역시 엄마로부터 전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 세실리아는 블라이스가 열한 살 때 집을 나가 버렸고,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겨 버렸다. 블라이스는 스물다섯 생일에 청혼을 받고 이상적인 남자 팍스와 결혼한다. 그녀는 딸 바이올렛에게 자신의 엄마와는 다른, 좋은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마음 먹지만 육아는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게 힘들기만 하다. 아이는 이상하게 엄마를 싫어했고, 그 행동은 점점 자라면서 더 심해진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남편은 육아 스트레스로 치부할 뿐이고, 결국 자신의 집안 여자들에게 내려온 모성의 결핍이라는 유산이 자신과 딸에게로 이어진 것은 아닐지 불안해진다. 완벽한 가족을 이루길 꿈꿨던 블라이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처절하고, 고통스럽다. 게다가 블라이스의 어머니 세실리아와 그 어머니 에타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고 있어, 모성의 불편한 이면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다. 금기를 넘어서는 가차없는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서스펜스가 압도적인 작품이다.

 

 

 

나는 길에서 눈을 떼어 아이의 그림자 진 옆얼굴로 향했어. 슬픔이 내 목을 조였어. 거의 14년 동안 나는 우리 사이에 없는 무언가를 찾길 바랐던 거야. 그 애는 나에게서 나왔지. 내가 그 애를 만들었어.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아름다운 존재, 내가 그 애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애를 원했던 때가 있었어. 그 애가 나의 세계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때. 그 애는 이제 어른 여자처럼 보였어. 그 애의 눈에서 자라는 여성적 지혜는 나 없이 무럭무럭 커지려 하고 있었어. 나 없어도 잘 살아가겠지. 그 애는 나를 포함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어. 나는 뒤에 남겨지겠지.     p.382

 

<케빈의 대하여> 이후 모성을 다룬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애슐리 오드레인의 데뷔작이다. 펭귄북스 홍보 디렉터로 일했던 작가는 출산과 육아로 일을 그만둔 후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성에 동반되는 여성의 공통된 불안과 두려움을 탐구하는 데 몰두한 결과로 탄생한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던 '모성'이라는 것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죽이면서 달려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지만, 결코 읽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음 페이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두려워하면서, 불편한 기분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자신이 낳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향한 엄마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엄마가 너무 싫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딸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대체 모성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여성이 어머니로 갖는 성질을 뜻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것 외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도 모두 포함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모성이란 것은 여성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능력이나 아이를 낳게 되면 자연스레 따라 오는 자질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너무 쉬운 것처럼 보인다.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이 작품은 '여성들조차 거의 공유하지 않을, 금기시된 모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여자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신이 낳은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아마도 가장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말하지는 않는, 모성의 이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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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8-04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빈에 대하여> 정말 재미있게, 또 충격받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도 재미있어 보입니다. 모성부재의 대물림이라.. 아버지에 의한 학대의 대물림 이야기는 많이 봤지만 이건 새롭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피오나 2021-08-04 10:58   좋아요 0 | URL
이 작품도 <케빈에 대하여> 만큼이나 충격적이었어요. 기회가 되면 만나 보시길!^^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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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니까 이 편지 속에서 나는 너의 것이야. 가든의 표적도, 네 임무의 일부도 아닌, 오로지, 너의 것. 나는 다른 방식으로도 너의 것이야. 너의 기척을 찾아 세상을 주시하는 동안, 동물의 내장을 보고 점을 치는 점쟁이처럼 상관도 없는 것에서 너와 연관된 점을 찾는 동안, 너의 것이야. 편지를 부칠 방법과 이유와 기회를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너의 것이고. 네가 적은 말들을 순서에 따라, 소리에 따라, 냄새에 따라, 맛에 따라 음미하는 동안, 그 기억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너무 바래지 않도록 보살피는 동안, 나는 너의 것이야.     p.118

 

시간의 가닥을 따라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오랫동안 시간 전쟁을 벌여온 두 종족이 있다. 최정예요원 '레드'는 양측 군대가 모두 죽어 널브러져 있는 전장 한가운데, 초토가 된 대지 위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별 사이를 오가던 전함의 잔해 사이로 쌓인 주검들, 성공한 작전의 결과로 뿌려진 피와 흙먼지로 가득한 곳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등장한 것이다. 크림색 편지지에 써진 것은 '읽기 전에 태워 버릴 것'이라는 문구였다. 그 편지는 당연히 함정처럼 보였지만, 이런 도전장을 던진 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레드는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두 적대 진영의 비밀 요원인 '레드'와 '블루' 사이에 편지 왕래가 시작된다.

 

이들의 편지는 단 한 번만 읽도록, 다 읽으면 없어져 버리도록 만들어졌다. 견제와 조롱으로 시작되었던 편지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오며 어느 순간 시간 전쟁의 변곡점이 된다. '시간의 실 가닥'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전쟁을 벌이고, 세계의 한복판에 금이 가면서 부서지기 시작하면 다시 미래의 '시간 타래'를 향해 움직이며 벌어지는 시간 전쟁은 각자에게 모두 필사적인 승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들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외부의 상황과는 별개로 흘러간다. 마치 그들 두 사람만 완전히 또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의 편지가 자아낸 실재하지 않는 공간에서의 감정 교류는 굉장히 로맨틱하면서도 매혹적이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주요 플롯이 아날로그 방식인 서신 교환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게다가 편지를 시간 여행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현재 편지를 쓰는 이의 대상이 미래의 수신인이고, 그렇게 미래에 전해진 것은 지나간 과거에 속하는 존재이기도 하니 말이다.

 

 

 

레드는 생각한다. 나도 참, 대단한 시간 여행자로군. 블루는 이런 수법에 속지 않을 것이다. 레드의 말을 따를 것이다. 그녀는 편지를 받았다. 이해할 것이다. 해야 한다. 그들이 지닌 유일한 미래는 따로 함께인 시간이다. 둘은 너무도 오랫동안 서로를 모른 채 살았고, 시간을 누비며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따로였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모습을 빚었고 그러는 동안 서로에 의해 모습이 빚어졌다. 그러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왜 안 된단 말인가? 아플 것이다. 그들은 전에도 아팠던 적이 있다. 상대의 목숨을 구하려고.    p.212

 

 

캐나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아말 엘모흐타르와 미국의 소설가 맥스 글래드스턴은 SF 팬 모임에서 만나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다. 그러다 서신 왕래 자체를 소설로 발전시켜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 작품을 함께 집필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 작가는 '레드'와 '블루'라는 소설 속 각각의 주인공을 맡아 서신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 후, 두 이야기를 하나로 합쳐 소설을 완성해냈다. 이 작품은 전미 베스트셀러에, 휴고상 및 네뷸러상, 로커스상 등의 SF상을 휩쓸고 영국 SF협회에서 주는 BSFA상, 캐나다 SF협회에서 주는 오로라상을 석권하며 주목받았다. 할리우드에서 TV 드라마로 준비 중이라고 하니 영상화되는 버전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놀라운 SF적 상상력과 현란한 필담을 기본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라 번역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종이 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장성주 역자가 1년여에 이르는 긴 번역 작업을 거쳐 완성했으니 믿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표지 디자인도 너무나 근사한데 겉 표지를 벗겨내면 보이는 속 표지 디자인과, 책장을 넘기면 만날 수 있는 내지에 이르기까지 '레드'와 '블루' 컬러의  색감과 조화가 아름답다. 이러한 디자인은 책을 모두 다 읽고 나면 더 의미가 있어지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반드시 속표지와 내지 이미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 이들이 시간 전쟁을 벌이는 무대가 역사 속의 다채로운 시공간이라는 점도 매력적이고, 무수한 시간의 가닥을 넘어서 비밀스럽게 이어지는 편지 교환이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도 설레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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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소녀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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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빤히 쳐다보는데, 갑자기 슬퍼진다. 그냥 평범한 목록이다. 하지만 가장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 이런 것들이다. 얼마 전에 남편을 잃은 교구 신도가 그녀를 무너뜨린 건 장례식이나 경야나 남편이 죽었다는 전갈이 아니라 그가 아마존에 사전 주문한 책들이 배송됐을 때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미래를 위해 소소한 투자를 한다. 콘서트 티켓, 저녁 예약, 휴가지 예약. 그날이 됐을 때 우리는 여기 없을지 모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임의의 사건이나 만남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p.163

 

이상하게 나쁜 일이 계속 벌어지는 장소가 있다. 사고 다발 지점 같은 곳, 그냥 찝찝한 곳, 바로 여기 이 마을처럼 말이다. 500년 전, 채플 크로프트라는 서식스의 작은 마을에서 신교도 박해로 여덟 명의 주민이 화형당했다. 여덟 명의 순교자 가운데 두 명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해마다 사람들은 처형 추모일 행사 때 나뭇가지로 인형을 만들어 태웠고, 그것을 버닝 걸스라 불렀다. 그 인형이 복수심에 불타는 두 아이의 혼령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30년 전, 열다섯 소녀 두 명이 실종되었다. 경찰은 단짝 친구였던 이들이 동반 가출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들의 실종에 의혹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달 전, 순교자들의 화형과 버닝 걸스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마을의 역사를 파헤치던 교회 신부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조사를 하던 중 실종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진상이 뭐였는지 아주 심란해 하다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이 자살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거라고 말한다.

 

자살한 신부의 후임으로 잭 브룩스가 열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마을로 오게 된다. 마을로 이사한 첫날, 잭은 교회를 둘러보다 뭔가가 타는 냄새와 함께 어두침침한 햇빛을 받고 앉아 있는 시커먼 그림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딸 플로는 암실로 개조할 별채에 갔다가 몇 미터 앞에 서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알몸으로 불길에 휩싸여 있는 아이에게는 양쪽 팔과 머리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화형당한 아이들이 계속 교회에 출몰한다고, 화형당한 아이들이 보이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실제 그들 모녀 주변에서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익명의 누군가 정체불명의 상자를 보내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어두운 밤 교회에서 불빛의 움직임이 보이는 등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곳 마을에는 뭔가 숨겨야 할 비밀이 있었고, 낯선 외부인이 진실을 밝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잭의 피하고 싶은 과거도 자꾸만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대체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과 나쁜 사람인 건 별개라고 생각해. 인간은 누구나 나쁜 짓, 사악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가 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면, 용서와 회개를 간구하면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인간은 누구나 달라질 기회를 부여받아야 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아빠를 죽인 사람도요?"       p.362

 

C. J. 튜더의 <초크맨>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구성, 예리한 문장과 독창적인 플롯이 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애니가 돌아왔다> 역시 굉장히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후속작 징크스 따윈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 <디 아더 피플>도 강렬한 도입부와 탄탄한 구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만드는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올해 출간된 <불타는 소녀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미스터리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C. J. 튜더가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고스란히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무더운 여름 날씨를 서늘하게 만들어 주는 재미를 선사한다.

 

현실적인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도,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도 C. J. 튜더가 만들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재미와 공포 면에서 감히 스티븐 킹의 작품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머리칼이 쭈뼛서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서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집착, 욕망, 폭력이 교차하고, 우정과 상실 등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시종일관 오싹하고 으스스한 몰입감을 보여주는 작품이 흔한 것은 아니니깐.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어 버릴 만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무덤처럼 깊고 어두운 과거를 품고 있는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숨죽이고 지켜보는 동안 더위가 싹 사라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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