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렸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냥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너는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네 어린 시절에 내가 얼마나 수도 없이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게 될 거야. 나도 알아. 그건 포기했거든. 하지만 내가 정말로,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전장에 모든 걸 바쳤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어.
미친 듯이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으로.       p.23

 

<오베라는 남자>, <베어타운>, <불안한 사람들> 등의 작품으로 진짜 이야기꾼다운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던 프레드릭 배크만의 첫 번째 에세이이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빠가 된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가족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 형식이다. '25년 동안 나밖에 모르는 삶을 살다가 네 엄마를 만났고 그다음 너를 만났고, 이제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한밤중에 깨어나 두 사람이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서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어'라는 대목처럼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 세계에 '프레드릭 배크만 신드롬'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아빠는 처음이라 시행보다는 착오가 많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유쾌하면서도 뭉클하고, 진지하면서도 우스워 귀엽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다 육아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좌절하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는 언제나 내 맘 같지 않고, 어디선가 배운 대로 아이에게 잘해보려고 해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마음의 여유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자신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진심 어린 마음만 있다면 그 어떤 물리적인 장벽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야. 시행착오도 많고. 내 경우에는 시행보다 착오가 훨씬 많다만. 나는 비판을 당하면 강박적으로 농담을 늘어놓는다. 너도 지금쯤은 알아차렸을 거라고 본다만 상격상의 단점이지. 그런데 부모가 되면 절대 부족할 일이 없는 게 사람들의 비판이거든. 요즘은 애들이 그냥 애들이 아니라 부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울이야.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라.         p.155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란 없을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 사랑을 얼마나 자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느냐가 마음의 크기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아빠가 있는 집이라면 늘 웃음이 넘치고 사랑이 가득해서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전혀 모른 채 부모가 하고 싶은 대로만, 자기 방식대로만 사랑을 표현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왜냐하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서툴고, 부모 역시 처음 겪는 일들 앞에서 당황하고, 좌절하는 게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부모 노릇이라는 것이 보기보다 어렵다며, 챙겨야 할 게 미치도록 많고, 사는 게 온통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지만, 매 페이지마다 그에게선 아들을 향한 애정이 넘쳐 흐른다. 그저 너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능력이 닿는 한도 안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가 되고 싶다고,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에, 실수 연발에, 일상은 매일같이 전쟁이지만 말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모든 부모가 슈퍼히어로인 줄 알지만, 아이에 얽힌 모든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소하고, 힘겨운 부모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뭉클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에서 빛나던 위트와 유머도 여전하고, 경험과 진심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이기에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도 많다. 결혼을 했건 아니건, 부모가 되었건 아니건 간에 지금 곁에 소중한 사람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한 숨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6
유즈키 유코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후미에는 거울 속 자신을 봤다. 턱이 두 겹인 뚱뚱한 여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귓속에서 가나코 목소리가 들렸다.
- 동경하던 무타 씨가 다시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다시, 아름다워, 진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p.168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후미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 있다. 사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맞벌이를 반대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며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사실 육아는 머리로 이해한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과식증으로 인해 체중이 많이 늘었고, 해리성 이인증으로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것 외에 점차 밖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재회한 동창 가나코에게 특별한 제안을 제안받고, 다시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해 예전의 미모를 되찾고, 남편 몰래 일을 시작하며 고소득을 얻게 되면서 명품 쇼핑과 값비싼 음식에 익숙해져 가는데, 과연 이 행복이 계속될 수 있을까.

 

하타와 나쓰키는 화려한 서양식 3층짜리 별장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남자의 사건을 수사 중이다. 현장 상황을 감안해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았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정보를 통해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수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사의 끝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은 바로 다카무라 후미에였다. 후미에는 자신을 찾아온 경찰들을 보며 대체 그 살인사건이 자신과 무슨 관계인지 당황스럽다. 왜 그녀는 살인 용의자가 된 것일까. 해외에 있는 가나코와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조차 모르는 남편에게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었던 후미에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위로하는 다정한 말에 가슴이 아파 왔다. 후미에는 다시 사과하고 전화를 끊었다. 침대에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도시유키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 그럼 내일은 돌아오겠네.
왜 나는 지금 이런 데 있을까. 왜 경찰 조사 같은 걸 받아야 하나. 올려다본 천장이 흐려졌다.
- 돌아가고 싶어. 가나코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p.343

 

여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제대로 그려내었던 <고독한 늑대의 피>, 묵직한 승부의 세계와 강렬한 아날로그 수사극을 보여주었던 <반상의 해바라기>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유즈키 유코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은 유즈키 유코가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범죄 미스터리이다. 여전히 탄탄한 구성과 정교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달콤한 유혹에 빠져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유즈키 유코는 화려함과 외면만을 좇는 뒤틀린 욕망, 완벽하게 계획된 지독한 사기극이라는 소재를 자극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육아와 다이어트, 뷰티, 외모에 대한 집착 등 여성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여성들의 서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분노하게 만들면서 누구도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특정 개인에서 비롯된 탐욕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의 시점으로 읽히는 이야기라 묵직한 여운이 남게 되는 것 같다. 외모가 절대 가치가 된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 안타까운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네 살 경제 영재를 만든 엄마표 돈 공부의 기적
이은주.권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애를 글로 배우는 것 못지않게 경제를 글로 배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적어도 내아이만큼은 스무 살에 성공적인 경제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내 품속에서 키우는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 공부를 제대로 시켜서 사회에 내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평생 아이의 머리 위를 헬리콥터처럼 떠돌며 돈을 뿌려줄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가 아이와 함께하는 20년이라는 골든 타임을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p.67

 

이 책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에 주식으로 1년 만에 1,500만 원을 번, 어린이 경제 유튜버 '쭈니맨'이다. 쭈니맨은 7세에 미니카 판매를 시작으로 12세에 음료 자판기 사업, 13세에 도마뱀 분양 등 사업 시도, 팬데믹 이후 주식 투자와 온라인 쇼핑몰에 주력해 현재 14세에 주식 투자가이자 경제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 운영과 라이브커머스 방송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에는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엄마의 경제 교육이 있었다. 이 책에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쭈니맨 엄마의 '아이 돈 공부법'과 경제 교육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올해 2월 보도에서 준이 같은 '새로운 투자자들이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한국의 개인 투자자로 부상했다'고 전하며 초등학생이 주식 투자로 성과를 올리고 그 과정에 대해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낸 것에 대해 보도했다. 이후 국내 유수의 언론들에 소개가 되었고, BBC 에서도 인터뷰 영상을 촬영해갔다. 하지만 준이는 경제 전문가도, 주식 전문가도 아니었다. 준이의 엄마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주식 투자의 고수도 아닌 초등학생이 주식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걸까 궁금했다.

 

 

 

아이들이 돈에 관심을 갖고 돈 걱정을 하게 하는 건 순수한 동심을 오염하는 일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돈을 효과적으로 쪼개어 쓰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작은 물건 하나도 가격 비교를 거쳐 가성비를 챙기며 실속 있게 구입하고, 때로는 가계 수입이 부족해서 생활비를 줄여야 하는 부모의 일상적 수고를 아이들이 알면 절대로 안 될까? 돈 걱정은 아이들에게 해롭기 그지없어서, 부모가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아끼며 쓰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기만 하면 될까? 그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길일까?    p.132

 

이 책은 미성년 아이의 주식 계좌를 개설하는 방법부터 아이가 어릴 때부터 경제 관념을 가질 수 있게 된 배경에 대해 상세히 말해주고 있다.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돈을 모르는 아이로 키울 것인가, 돈도 아는 아이로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의 돈 공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특히나 아이를 위한 최고의 경제 교육 현장은 부모가 다양한 경제활동으로 꾸려가는 실제 생활 현장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실질적으로 배워야 할 것은 학교 책상 앞이나 경제 교과서 속이 아니라 실제 생활 현장에 전부 있다고 말이다. 집안의 모든 경제 상황을 아이에게 숨기지 않고, 부모의 경제활동 및 금융 생활 현장에 아이를 동행시켜 실질적인 경제, 금융 교육을 한다는 것에 놀라며 읽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간단한 알바를 통해 자기 용돈을 직접 벌도록 유도하고, 무엇이든 소비자 관점이 아니라 생산자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는 것도 새로운 개념이었다.

 

준이는 또래 아이들이 이런저런 학원에 다니느라 바쁠 때 엄마를 따라 부모의 일터는 물론 사업 거래처부터 은행, 노후 재테크 현장, 세무사 사무실까지 종횡무진하느라 바빴다고 한다. 덕분에 부모가 어떻게 돈을 벌고, 모으고, 불리는지 지켜보고, 때로는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실질적 경제 감각을 키우고 실제적 경제활동을 경험해왔던 것이다. 저자가 아이의 중요한 성장 시점마다 이 같은 경제 교육 대원칙을 어떻게 적용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아이의 경제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경제관념과 생존 기술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교육법이 궁금하다면, '열세 살 초딩 주식 투자가'로 유명한 쭈니맨의 성공 비하인드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니, 저기 있는 저 가게의 진열창에 <복수는 달콤해>라고 적혀 있어. 더 정확히는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케빈은 옌뉘의 눈이 향한 쪽을 쳐다봤다.
"무슨 이름이 저렇지? 꼭 복수를 캔에 넣어 파는 사람들 같군,"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옌뉘가 말했다. "한 사람당 두 개씩 네 캔이면 되지 않겠어? 그 정도면 빅토르에게 복수할 만 하겠지."      p.84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광고맨으로 엄청난 돈을 벌여 들인 후고는 요즘 자신의 집 옆 길모퉁이에 사는 한 남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다. 그가 언젠가부터 수거를 위한 쓰레기통을 후고의 우편함 근처에 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냄새가 지독하고 파리가 들끓는 그 지저분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쓰레기통을 직접 옮겨 놓자, 그는 경찰을 불렀다. 후고는 스웨덴 최악의 이웃을 지켜보는 몇 달 동안 어떻게 하면 가장 시원하게 복수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다. 법을 어기지 않고,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는 복수에 고민하던 후고는 급기야 '복수'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차리기에 이른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법을 어기지 않고 복수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해결해 드립니다!'

 

세상에 억울한 일들은 수없이 많았고, 타인에게는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렇게 이웃집 제자, 편의점 점장, 아들의 축구 코치 등에 대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복수를 의뢰해왔고 후고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일을 해치우면서 수익을 얻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바라는 의뢰인들의 요구는 인간이 끔찍하게 형편없는 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복수의 방법들이 기상천외하고, 창의적이고, 유쾌하기까지 한 것들이라 진지함보다는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최근까지 후고는 서로를 해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아주 기막힌 비즈니스 콘센트를 기반으로 회사를 경영해 왔다. 백 사람 중에서 백 명은 이따금 어떤 부당한 일의 피해자가 된다. 백 사람 중에서 50명은 그 부당한 일을 되돌려주고 싶어 한다. 그들 중 열 명은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 이들 열 명 중에서 한 명만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나선다면,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앞에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p.356

 

요나스 요나손의 전작들을 읽어봤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모두 황당함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상이 안 될 정도의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이야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그럴듯하게 굴러간다. 게다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를 완전히 벗어나면서 흘러가는데, 그 기발한 상상력은 우리를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 페이지를 쓱쓱 넘어가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킬킬대며 웃다가, 다음 상황이 궁금해서 조바심을 내다가 보면 어느 샌가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런 황당함이 현실화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만, 책 속에서는 그 모두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이해가 된다는 것이 요나스 요나손이 부리는 마법의 힘일 것이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인 미술품 거래인에 대한 전 부인과 버려진 아들의 복수 또한 그렇다. 스웨덴과 케냐를 오가며 원주민 치유사가 등장하고, 평범한 청년이 마사이 전사가 되는 등 다소 황당무계하게 느겨질 만큼 이야기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리고 표현주의 미술의 숨겨진 거장으로 꼽히는 이르마 스턴의 작품이 책 속에 컬러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뜬금없다 싶다가도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다 보면 그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요나스 요나손의 이야기 속에서는 똑똑하고 잘난 인물들은 허점투성이에 실수 연발이고, 오히려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인물이 불행한 사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혜롭게 헤쳐나간다. 생생하게 살아서 심장을 파닥거리는 인물들이 사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틈에서 어수룩해 보이고, 모자라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힘이 우리가 요나스 요나손의 작품을 읽게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쁜 것에 매혹되는 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 중 한 가지라던데, 우리가 유령 이야기에 매혹되는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귀신 들린 집,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저주, 누군가 억울하게 죽어서 원한을 품고 나타나 복수를 하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계속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들, '실재하지 않지만 언젠가 진짜 벌어졌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것에 끌리는 마음 때문인지,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유령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whatever walked there, walked alone    - Shirley Jackson

 

초등학교 시절 다니던 학원 건물에 버려둔 지하 공간이 있었다. 미술 용품이며 각종 물건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지만, 굉장히 넓은 공간이었고 원래 의도가 뭐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로 방치된 곳이었다. 그곳을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원 수업이 끝나고 남자 아이들 몇 명과 여자 아이들 몇 명이 거기서 귀신 놀이를 하곤 했다. 귀신 놀이라고 해도 별 건 없었다. 숨바꼭질처럼 한 명이 술래가 되어 나머지 아이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는 거였는데, 그 커다란 공간에서 불을 끈 채로 했기에 귀신 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오싹했지만 스릴 있었고, 무서웠지만 재미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기껏해야 똑같이 살아 있는 존재에게 해를 끼칠 뿐이죠.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그건 무엇일까요. 원한, 고통, 절망. 그런 것들일까요. 무엇에 원한이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죠. 그렇기에 두렵죠. 실체를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이 왜 원한을 가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존재들. 그래서 오직 원한만 기억하는 존재들. 지우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   p.141~142

 

아이들만의 비밀 놀이가 끝이 나 버린 것은 그러다 한 명이 다쳤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고, 어두운 상태로 움직이는 거였으니 다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지하실의 문은 굳게 닫혀버렸고, 아이들은 한 동안 다친 아이를 원망했다. 그러다 놀이에서 그 아이를 배제하기 시작했고, 왕따까지는 아니었지만 한 동안 그 아이는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나는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어쨌든 쟤 때문에 우리의 비밀스러운 놀이가 끝나버렸으니까. 싶은 마음에 굳이 그 상황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그런 마음들이 일종의 '악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go away, Eleanor, we don't want you any more, not in our Hill House, go away, Eleanor, you can't stay here    - Shirley Jackson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산 것이 수십 년인데, 어린 시절의 그 추억이 문득 떠오른 것은 바로 이 작품 때문이다. 강화길과 유령이라니, 귀신 들린 호텔이라니.. 그 조합만으로도 빛을 발했던 기대치를 모두 만족시켜주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은 이상하게도 내 속에 있던 기억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던 것이다. 사고는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에 불과했지만, 사실 위험천만했던 그곳에서는 언제든 누구라도 다칠 수 있었다는 걸 우리 모두 은연중에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만약 그때 그 아이가 억울해했다면, 그래서 너희들의 악의를 돌려주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어땠을까.

 

 

셜리, 당신이 말했지. 그 자매들에 대해서. 한이 풀릴 때까지 수령들을 죽이고 죽인 그 분노에 대해서 말이야. 그럼 죽어나간 수령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건 자매들의 이야기가 아니야. 누군가의 원한 때문에 계속 죽어나간 수십 명 인간들의 이야기야. 그 원혼들이 스며들어 있는 불경한 집에 관한 이야기야! 나는 이 건물에 스며들어 있는 무수한 원한, 그리고 살면서 겪은 지독한 원한들이 내 안에서 괴기스럽게 부푸는 것을 느꼈다.      p.237

 

안진이라는 도시의 어떤 소문난 유치원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니꼴라 유치원>을 쓰고 있는 소설가 '나'는 언젠가부터 매일 밤 악몽을 꿨고, 밥도 거의 먹지 못했다. 뭘 좀 쓰겠다는 마음을 먹기만 하면 속이 뒤집히고 식은땀이 났으며, 너무도 불안했다. 사실 '나'는 <니꼴라 유치원>을 '원한과 증오, 악의로 들끓는 이야기'로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설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시절 속 음험하고 비밀스러운 곳이었던 '니꼴라 유치원'을 떠올려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 훼방을 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인 '진'으로 부터 자신의 소설 <니꼴라 유치원>의 풍경이 인천에 있는 대불호텔의 빈터와 주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곳으로 향한 '나'는 회색 쇠창살과 그 안의 황량한 빈 터, 폐허가 된 대불호텔의 흔적을 보다가 녹색 재킷을 입고 있는 여자 환영을 보게 된다. 그리고 1955년에 대불호텔에서 여자 한 명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I am the captain of my fate. Laughter is possible laughter is possible laughter is possible.”  - Shirley Jackson

 

'셜리 잭슨이 대불 호텔에 왔다가 <힐 하우스의 유령>을 썼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이기에, 실제로 셜리 잭슨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이 1950년대가 된 것도, <힐 하우스의 유령>이 1959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을 배경으로 '대불호텔'에 모인 네 사람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과 수많은 악의들로 점철되어 있다. '악의'라는 감정이 무서운 것은 시작된 사람으로부터 불처럼 번져가는 마음이라는 점이다. 애초에 원한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쏟아 붓기 위해 만들어진 마음이라면, 그로 인해 만들어진 악의가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너도 어디 한 번 당해봐, 내가 받은 것만큼 되갚아 주겠어, 라는 마음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장화 홍련 속에서 자매들의 원한이 풀릴 때까지 사람들이 계속 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원한은 그런 것이다. 풀리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 마음. 대불 호텔에서 셜리는 바로 그런 원한을 느끼고 매일 밤 악몽을 꾼다. 왜 이 건물은 사람들의 미움을, 증오를 집어삼키고, 서로를 배반하라고 부추기는 걸까.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유령의 집’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 오싹하거나 무섭지는 않다. 대신 외롭고, 쓸쓸한 감정들이 페이지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강화길식 고딕 호러의 장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