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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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위험하고 신경 쓸 일이 많음에도 파도타기에 중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도타기는 어린 시절 해 질 녘까지 “한 번만 더!”를 외치며 타던 미끄럼틀과 비슷하다. 경사면을 주르륵 타고 내려올 때의 그 즐거움을 안다면 누구나 중독될 수밖에 없다. 파도타기는 스키, 스케이트보드, 썰매, 스노보드를 타는 것과도 비슷하다. 파도타기가 그런 탈것들과 다른 점이라면 타고 내리는 경사면이 물로 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p.58

 

몇 년 전에 미국 오리건 주의 작은 도시 포틀랜드로 날아간 이우일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 년 중 절반이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우기를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 이 년 동안 살면서 그들이 겪은 현지의 소소한 일상들이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뭔가에 꽂히면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이우일의 요즘 관심사는 파도타기이다. 대화의 소재부터 심지어 꿈에도 파도가 나올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살면서 한 번도 스포츠를 즐긴 적이 없다. 그렇다면, 몸치에 온갖 운동에 대한 트라우마를 한가득 가지고 있는 그가 어떻게 파도타기에 빠져들게 된 걸까.

 

 

이 책은 하와이에서 시작해, 강원 양양 남애 3리, 부산 송정, 제주 중문 색달 해변 등 파도를 좇아 바다 곳곳을 다닌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에세이와 일러스트, 그리고 진솔한 파도수집노트(일기)와 촌철살인의 4단 만화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잘 펴지고 튼튼한 사철누드 제본이라 보기도 편하다. 오십 평생을 방구석 생활자로 살던 만화가 이우일이 오직 파도타기를 위해 30년째 고수하던 소위 장롱면허를 탈피해 운전도 시작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푹 빠져 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히고, 겪으면서 쓴 서핑 에세이라 생생하고, 유쾌하고, 시원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취향이 마이너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그 취향의 결과물이 인기가 없는 건 알아서 감수해야 한다. 순전히 자기가 좋아 시작한 짓이니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만약 운이 좋아 그 취향이 더 많은 사람의 방향과 맞아 떨어져 같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크게 가슴 아파할 건 없다.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새벽부터 일어나 혼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다.      p.155

 

이우일에 따르면 어떤 보드를 사용하는지와 상관없이 파도타기는 일종의 '시합'처럼 할 수도 있고, 홀로 걷는 '산책'처럼 할 수도 있다. 모든 건 타는 이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시작할 때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풍광을 즐기며 파도를 타자고 마음먹지만, 바다 위에 떠 있다 보면 곧 다른 서퍼들과 경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아내의 눈에는 그런 남편이 바보처럼 보인다고 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다 위에서 단지 파도를 먼저 타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니 말이다. 그래서 바다 위에서 아내는 '산책'을 하고 자신은 일종의 '경쟁'을 한다는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이런 것에서도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구나 싶어서 재미있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누가 진정한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지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서핑과 보디보드(부기보드) 타기는 사실 다르지 않지만, 대부분 보디보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여러 보드의 종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말이다. 오십이 넘어 시작한 부기보더의 좌충우돌 일상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익숙한 즐거움을 누리며 탈 것인가 아니면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기술에 도전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나 어릴 때는 뭐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고, 세상을 많이 겪을 수록 우리는 익숙한 즐거움에 안주하게 된다. 실패보다는 안전을, 도전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생각해보라. 내게 남겨진 나날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것을.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좀 더 늙고 지친 나일 것이다. 그러니, 저자처럼 조금 무섭고 겁이 나더라도 뭔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용기를 내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는 것이다. 몸치 만화가의 유쾌한 늦바람처럼 그 도전은 우리를 치유하고 전보다 좀 더 나은 영혼으로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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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 을유사상고전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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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억압하는 원인이 가족을 영속시키고 세습재산을 고스란히 유지하려는 의지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여자가 가족을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이러한 절대적 예속에서도 벗어난다. 만일 사회가 사유재산을 부정하면서 가족을 거부한다면 그로 인해 여자의 운명은 현저하게 개선될 것이다. 공유재산제가 우세한 스파르타는 여자가 남자와 거의 동등하게 취급받은 유일한 도시국가였다. 여자아이들은 사내아이들처럼 양육되었고, 아내는 남편의 집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모든 아이가 공동으로 전체 도시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에, 여자들 또한 한 명의 주인에게 예속되지 않았다.      p.141

 

여성 해방의 선구자로 알려진 시몬 드 보부아르의 대표작 <재2의성>은 국내에는 1973년에 소개되었다. 그로부터 50여 년 만에 프랑스 저작권사와 공식 계약하고 변화한 시대에 맞추어 전면 개정하면서 오역은 물론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나 실존주의나 현상학과 동떨어진 용어 등 그동안 안고 있었던 번역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새롭게 출간되었다. 번역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 그리고 친절한 해설과 꼼꼼한 역주, 도판 50여 점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천 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무게가 무겁지 않고, 사철제본과 PUR제본을 혼합해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 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보부아르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고 현대 페미니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보부아르는 <레 망다랭>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선생님이었고, 사르트르와 함께 정치철학 잡지를 창간한 저널리스트이자 극작가, 페미니즘 사상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49년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한 책 <제2의 성>으로 당시 프랑스의 가부장 사회에 폭탄을 던졌다. 이 책은 사회, 정치, 신화,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와 남성이 부여한 여성 역할이나 이미지를 역사, 사회학, 철학, 인류학, 생물학, 정신분석학을 동원해 분석한다. 여성 조건에 대한 과학적이고 총체적인 연구서이자, 현대 페미니즘 사상의 모태가 된 여성학 바이블인 것이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생물학적•심리적•경제적 운명도 사회 속에서 인간의 암컷이 띠고 있는 모습을 규정하지 않는다. 문명 전체가 남자와 거세된 남자의 중간 산물을 공들여 만들어 내어, 그것에다 여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오직 타인의 개입만이 한 개인을 타자로 구성할 수 있다. 어린 아이가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성적으로 구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에게 신체는 우선 주관성의 발현이며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실현하는 도구다. 그들이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눈과 손을 통해서이지 성적 부분을 통해서가 아니다.       p.389

 

여성들은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많은 것들 참아와야 했다.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거나,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부담을 짊어 지고 살아야 했다. 그게 여성스러운 거니까,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라는 무언의 속박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무급으로, 저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터는 여성을 위해 기능하지 않으니 말이다. 위치에서부터 근무 시간, 규제적 표준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생활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왔고, 여자들이 하는 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인식 또한 여전한 게 사실이고 말이다. 보부아르는 사회가 여성에게 특정한 방식의 외양과 행동 방식을 요구하며, 여성은 이에 따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사회가 종종 여성을 '제2의 성'으로 여기고, 남성보다 열등하고 뒤떨어지는 성별로 강등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70년이 더 지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실존적 조건을 자각하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남자들도 타자이자 객체화된 여자의 시선에 자기를 이상화시키는 자기소외의 꿈과 그 꿈을 가능케 한 특권을 떨쳐 내기를, 그리하여 여자들이 초월성을 회복해 남녀가 함께 자유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호소한다. 엄청난 분량뿐만 아니라 다루고 있는 내용들 또한 매우 방대해서 선뜻 시작하기엔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타의 여성학, 젠더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문학적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단, 소화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 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역자의 해제가 꽤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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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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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고 아연했다. 이런 어이없는 이유가 범행 동기란 말인가.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이유를 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기가 어이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에 걸린 것은 '직접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이 진정성 있는 태도라는 말을 듣고'라는 부분이었다.
아버지가 정말로 그런 식으로 얘기했을까.      p.189

 

해안 도로변 차 안에서 흉기에 찔린 사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정의로운 국선 변호인으로 명망이 높던 변호사로 주변 사람들 모두 그에게 원한을 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증언한다. 살해 동기가 전혀 짐작되지 않아 단서 하나 못 잡고 수사가 미궁에 빠질 뻔 했지만, 사건은 백여 페이지도 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해결이 되어 버린다. 한 남자가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33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의 진범이 바로 자신이라고 밝히며 논란을 일으킨다. 이미 공소시효는 만료되었지만, 당시 체포되었던 용의자가 결백을 증명하고자 유치장에서 자살을 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두 개의 살인 사건에 대한 진상을 파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요 플롯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경찰이 아니라,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진상을 납득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런 행동을 했을 리 없다, 는 정도를 넘어서 평소의 가치관과 말투로 미루어 봤을 때도 자신의 아버지가 했을 법한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한다. 분명 또 다른 진실이 있다고, 그것을 꼭 밝혀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이미 끝났다는 식이고, 검찰이나 변호인은 오로지 재판 준비에만 골몰하고 있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쓸데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로 적의 입장이 되어야 할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의 목적이 같았기에, 그들은 한 팀이 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극중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누구라도 각자의 사정에 감정 이입이 된다. 그렇게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마치 백조와 박쥐가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도 똑같은 눈빛인지 모른다, 라고 미레이는 생각했다. 범인이 자백을 했고 이제 사건의 진상은 다 밝혀졌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리고 그 진상을 바탕으로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상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이 세상에 어머니와 자신뿐이라고 미레이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 가해자의 가족도 역시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p.274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35주년을 맞아 올해 4월에 발표된 작품이다. 560페이지의 두툼한 두께의 작품을 단 몇 개월 만에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신작 역시 가독성 뛰어난 페이지 터너다운 면모를 뽐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의 작품이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 작품을 읽었던 것이 무려 15년 전이니 그 시간 동안 작가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서로 적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설정과 원죄와 속죄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기에 후반부의 묵직한 감정이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작가 생활 3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에 걸 맞는 수준을 보여주는,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선사해주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색다른 소재와 반전으로 추리 소설로서의 매력도 크지만, 그 속에 항상 '인간'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있어 긴 여운을 남긴다. 사실 대부분의 자식들이 부모에 대해서, 젊은 시절의 모습이나 과거 같은 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관심이 없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유품을 정리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거나, 이 작품 속 사건처럼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넘어갔을 일들을 의도와 상관없이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를 숱하게 감동시키고, 울고, 웃게 만들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35년이 담긴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만나 보자. 선과 악, 죄와 벌, 정의와 공정,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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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의크스 포토샵 & 일러스트레이터 CC - 마담의크스와 함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마스터하는 112가지 방법
마담의크스 카페.네모기획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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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본과 핵심 내용을 한 권에 모두 담고 있는 그래픽 입문서이다. DAUM 카페 검색 ‘포토샵, 웹 디자인’ 분야 1위, 그리고 회원 수가 무려 70만 명이 넘는 대형 카페인 '마담의크스 카페'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강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곳이다.

 

 

기존에 <마담의크스 포토샵 CC>와 <마담의크스 일러스트레이터 CC>라는 책이 별도로 출간되었었다. 각각의 책은 포토샵 82가지 방법, 일러스트레이터 43가지 방법을 담고 있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버전은 각각의 도서 내용 중 기본에 충실한 내용만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모두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는 매년 새로운 버전과 기능으로 출시되고 있다. 그리고 시각 디자인, 산업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며,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필수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처음 배우는 사람도 혼자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들자'라고 중점을 두고 쓰인 책이라 되도록 어려운 용어를 피하고, 따라 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최신 버전인 CC 2021을 기준으로 쓰였다. 포토샵은 기초반, 도구만, 기능반, 이미지 보정반, 특수 효과반, 종합반의 총 6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일러스트레이터는 기초반, 도구반, 기능반, 종합반의 총 4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기초부터 응용력을 키울 수 있는 종합반까지 적절한 예제를 활용해 따라해 볼 수 있도록 소개가 되어 있다.

 

학습에 필요한 예제 파일은 영진닷컴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로드해서 이용할 수 있다.

 

 

 

굉장히 실무에 응용하기 좋은 도서라고 생각한다. 마담의크스와 함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마스터하는 112가지 방법을 따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장 최신 버전으로 주요한 기능들을 완벽하게 학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각 강좌별로 난이도가 표기되어 있고, 실전 예제들을 이용해 다양한 기능들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도록 학습을 진행하고 있어 효율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부가적으로 알아두면 유용한 내용을 알려주고, 본문의 따라 하기 과정에서 참고해야 할 사항들도 알려 주고 있어 꼼꼼하고도 완벽한 가이드가 되어 준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강좌를 찾고 있다면, 이 책 한 권으로 끝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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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증거
비그디스 요르트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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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평범한 인간으로, 망가지지 않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내게는 나 자신의 인생 외에 다른 경험은 없다. 밤에 뒤숭숭한 꿈에서 깨면, 나는 라스에게 달라붙어 오른팔로 그의 등을 감고 틀림없이 평화로울 그의 꿈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라스의 무해한 꿈이 내게 흘러들어오도록 그에게 마음을 열려고 노력했다. 잠든 그의 몸에서 꿈을 빨아들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들어갈 길은 없었다. 나는 내 몸의 포로였다.       p.70

 

아빠가 다섯 달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몇 주 동안, 형제자매들은 가족의 재산인 발러의 휴가용 오두막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를 놓고 격한 분쟁에 휩싸인 상태였다. 유산 상속을 두고 살인도 일어나는 세상이니, 이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여동생 둘과 오빠가 대립 중이었고, 엄마는 약물을 과용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회복 중이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의 표본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식들은 그리 크게 놀라지 않는다. 엄마가 사고를 내는 것은 첫 시도가 아니었고, 나는 20여 년 전부터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아 왔었기 때문이다.

 

잡지 편집자이자 연극 비평가인 베르기요트는 집안의 맏딸로 이제 5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빠로부터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일을 당했다. 다섯 살부터 일곱 살 사이,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것이다. 당시 그녀는 엄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엄마는 그녀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그 사실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여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렇게 가족의 명예를 위협한 추방자로 살아 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고 견뎌 냈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이제 엄마와 아빠에 대한 공포는 잦아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르기요트는 큰딸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이 아버지가 혹시 밤에 아이 침실에 드나들지 않나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악몽이 트라우마가 되어 여전히 그녀 곁에 있었던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보통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누가 더 많이 고통받았나 논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다. 학대당한 아이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남는 경우가 많고, 그들의 감정적 내면은 파괴된다. 학대자의 사고방식과 학대 방식을 물려받는 일도 흔하다. 그것이야말로 학대의 가장 고약한 유산이다. 학대는 학대당한 사람을 파괴하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을 어렵게 한다. 고통을 누군가에게, 특히 피해자에게 유용한 뭔가로 변화시키려면 강한 노력이 필요하다.     p.268

 

데뷔 초기부터 여성의 역할과 직업, 섹슈얼리티, 평등과 자유 앞에 선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현대 여성을 묘사해 온 북유럽 여성문학의 선두주자이자 노르웨이의 인기 작가 비그디스 요르트의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소설이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족의 유산 상속 싸움이 주요 플롯이지만, 그 이면에 배경으로 깔려 있는 것은 모두를 수치로 가득 채웠던, 그래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가족의 비밀이다. 아빠는 젊은 시절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했고, 평생 그 행위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일곱 살이 되어 딸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 뒤로는 손도 대지 않았고, 오히려 거리를 두고, 관계를 끊었다. 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지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일은 잊히겠지. 하지만 어떤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그대로 박제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런 아버지의 잘못을 모른 척 했던 가족들이다. 베르기요트의 상처는 가족들로부터 무시 당했고, 그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지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 유산 상속 문제로 인해 마주하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위선과 가식으로 점철되어 있다. 용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망각에 바다에 던져 버릴 수도 없다. 유년의 트라우마와 상처 속에서 투쟁하는 한 여성의 고군분투가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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