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전쟁 - 세계 역사와 지도를 바꾼
도현신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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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판도가 계속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파로스 등대는 그대로 보존되었다. 등대를 실용적인 목적에서 지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복자도 굳이 등대를 부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파로스 등대가 헬레니즘 시대의 다른 건축물인 로도스 섬의 콜로서스 거상처럼 종교적인 이유로 만들었다면, 철저한 유일신 숭배와 우상 척결을 외치는 이슬람교도들이 당장 철거했으리라.      p.49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친 소재와 그로 인한 역사의 변화를 다룬 <가루전쟁>, <바이러스전쟁>, <신의 전쟁>, <흙의 전쟁>에 이어 이번에는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건축 전쟁>이다. 세계사에 큰 자취를 남겼으나 지금은 역사 속에 지워진 거대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다. 바벨탑, 파로스 등대, 콜로서스 거상,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황금궁전, 그리고 신라의 황룡사, 고려의 격구장과 흥왕사 등 지금은 사라진 고대의 건축물들을 통해 세계 역사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건축물들은 세계 어디서나 도시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고층 빌딩들을 흔하게 보게 된 것이 현대에 이르러서이긴 하지만, 높이 솟아오른 건축물은 중세나 고대에도 많았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마천루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이다. 바벨탑의 원형은 수메르인과 바빌론인이 높이 쌓은 거대 건축물 지구라트에서 유래했다. 바벨탑의 공사 현장을 상상으로 그려낸 화가들의 작품들도 꽤 있는데, 정말 하늘에까지 닿을 만큼의 높은 탑을 쌓는 모습에서 경외감까지 들 정도이다.

 

 

바빌론에 올린 공중정원은 무더운 사막 한가운데에 사람의 손으로 온갖 풀과 나무가 무성한 정원이 세워졌다. 이런 신비로움 때문에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 시인 안티파테르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 영묘, 로도스 섬의 콜로수스 조각상,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기자의 피라미드와 함께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목했다.     p.221

 

신라 진흥왕 때 지은 황룡사는 건축 기간이 무려 17년에, 높이가 80미터에 이르는 거대하고 웅장한 사찰이었다. 황룡사를 복원한 모형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사진만으로도 그 규모가 짐작이 되었다. 세워진 지 약 600년 만에 고려를 치밉한 몽골군에 의해 불태워졌다고 하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고려 시대에는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초대형 운동경기가 자주 개최되었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서양의 폴로 경기와 비슷한 격구는 말을 탄 채 막대기인 격구채로 공을 몰아 상대 팀의 골대에 집어넣는 경기이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하는 경기다 보니 경기장이 넓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3만 명을 수용할 만큼 큰 경기장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 외에도 우리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었다. 93미터에 이르는 자유의 여신상만큼이나 거대한 신상이 2,300년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그리스 로도스 섬의 콜로서스 거상이 그것인데, 지진으로 인해 파괴가 되었지만 화가들의 작품으로 상상하건데, 자유의 여신상 못지 않은 거대한 건축물이었으니 말이다. 고대 로마의 초호화 별장이었던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 비운의 예술가가 남긴 걸작인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등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축물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바벨탑은 정말 신의 벌을 받아 무너졌을까, 예루살렘성전은 얼마나 크고 화려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지금은 사라졌지만 고대의 자료들에 흔적이 분명히 남아있는 세계 곳곳의 건축물들을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세계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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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1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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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견의 로망을 산산조각 내주겠다는 만화 <극한견주>를 정말 배꼽잡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극한견주>를 처음 만났던 것이 4년은 된 것 같은데, 시리즈는 4권으로 완결이 되었다. 이번에는 마일로 작가가 '식물 금손'에 도전하는 홈가드닝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현재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크레이지 가드너>는 24화까지 올라와 있고, 단행본에는 12화까지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단행본으로 이 시리즈를 처음 접했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13화부터 24화까지 웹툰을 정주행 해버리고는 새로운 내용이 업데이트 될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마성의 작품이다.

 

 

몇 년 전부터 플랜테리어가 유행하면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 졌지만, 사실 식물을 돌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햇빛을 많이 보게 해주고, 물만 잘 주면 살겠지 싶겠지만 식물마다 필요한 환경이 달라서 제대로 키워내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대체 왜 남들은 멀쩡하게 잘만 키우는데, 우리 집에만 오면 식물들이 죽는 걸까 싶었던 적이 있다면, 나름 식물 똥손이라 자부한다면 마일로 작가의 '실물 금손' 도전기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양지를 선호하는 식물을 음지에 두어 빛이 부족해지니 웃자라거나 시들어버리고, 비실거리는 식물에게 힘내라고 영양제를 듬뿍 줬더니 과다투여로 죽어 버리고, 손짓 한 번에 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물을 준다고 준 것 같은데 식물이 점점 말라가다 결국 시들고 마는 경험을 마일로 작가 역시 수 차례 반복해왔다. 식물을 죽이고, 사고, 죽이고 사는 시행착오들을 특유의 유쾌함과 극한의 유머와 함께 굉장히 현실 밀착형으로 그려내고 있어 정말 식물 초보들에게도 공감과 이해를 저절로 불러 온다.

 

 

'본격 교양 식물 만화'라는 부제처럼 식물 가드닝에 대한 정말 디테일한 정보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준다는 점도 특징이다. 막연하게 플랜테리어를 한 번 해보고 싶다거나, SNS에서 자주 보는 홈가드닝의 세계에 입문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기초 단계부터 차근차근 전문가의 수준까지 배울 수 있다. 마일로 작가는 식물 집사를 자처한 5년 동안의 경험을 고스란히 만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시베리아의 눈처럼 하얀색 털이 사랑스러운 사모예드 솜이도 중간 중간 등장해 너무 반가웠다. 덩치는 우람하지만 터널과 작은 개를 무서워하는 귀여운 허당 솜이가 마일로 작가의 식물집사 노릇을 어떻게 방해(?)하고 지켜보는 지도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극한견주>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신작도 놓치지 말기를 추천한다.

 

 

전작인 <극한 견주>가 대형견을 키우며 겪는 에피소드와 반려인의 애환을 담았다면, 이번 신작 <크레이지 가드너>는 식물 망손으로 시작해 식물 덕후에 이른 과정을 광기의 식물 만화로 탄생시켰다. 사랑스러운 모종, 벌크업한 듯한 대품종 식물에 해충까지 귀염뽀짝한 캐릭터로 만날 수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식물들에 대한 정보 또한 아주 쉽게 보여주고 있는데다, 분갈이, 해충 예방, 화분 구입 정보 등 온갖 식물 키우키 팁들이 가득하다.

 

깨알 같은 책 속 부록 〈마일로의 식물 119코너〉도 식물을 길러본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식물 전구를 비롯해 광합성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식물별로 잘 맞는 화분이 있는지, 초보자가 키우기 쉬우면서도 예쁜 식물은 뭐가 있는지 등 초보 식물러들의 질문에 작가가 경험으로 터득한 답을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단행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마일로 작가의 작업 공간과 식물 공간도 공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자. 어쩌다 보니 반려식물이 200개가 되고 만, 본격 식물 집착 개그 만화를 통해서 식물이 안겨주는 기쁨과 힐링, 그리고 번뇌와 해탈의 콤보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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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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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자극성이란, 대개 만들어진 자극성이거든. 아무리 비극의 장소라고 해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자극적이기란 쉽지 않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에 무슨 자극성이 있겠어? 그런데 이 렘차카를 둘러보니, 아직 므레모사에 살고 있다는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자극적으로 포장할 요령을 익히지 못한 듯해. 이렇게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걸 언젠가 깨닫게 되겠지만."        p.63~64

 

서쪽으로는 거대한 산맥을 등지고 있어 접근이 차단되어 있고, 동쪽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여러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 군사 특별 구역이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어느 날, 그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공장과 연구소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했고, 이후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유독성 화학물질들은 인근 도시들과 농작지와 식수원을 초토화 해버렸고, 순식간에 수십 만 명이 살던 터전을 떠나 그곳은 인간이 밟을 수 없는 지역, 완전한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그렇게 유령마을이 되어 버린, 이르슐의 므레모사에 출입이 허가되었고, 첫 투어에 당첨된 여행객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그곳으로 향한다. 교토대에서 관광학을 연구하고 있는 대학원생 이시카와 유지, 열 개의 직업을 거쳐 은퇴한 후 10년 정도 비극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중인 헬렌, 펍을 운영하다 망하고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레오, 태국에서 온 언론사 신입 기자 탄, 회사를 운영하다가 쉬고 있다는 유안, 남동생과 여행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주연, 이렇게 6명이 수십 년간 공꽁 감춰졌던 장소에 첫 손님으로 가게 된다.

 

므레모사의 첫 투어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이유는, 끔찍한 비극 이후 죽음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 그 귀환자들의 신체가 좀비처럼 끔찍하게 변이되었기 때문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과연 수십 년간 감추어져온 외진 마을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렇게 무시무시한 곳을 제 바로 찾아온 이들 여행자들의 목적은 뭘까.

 

 

나는 나의 고통을 팔아서 생존했고, 때로 그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모멸감을 잊기 위해 더 많이 도약해야 했다. 나는 춤을 추고 또 추었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당신은 강인해요. 당신의 움직임이 나에게 영감을 줘요. 어느 순간부터는 한나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말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더는 아름답지도 강인하지도 않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이따금 궁금했지만 그 결말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질문도 그만두었다.          p.168~169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서른여덟 번째 작품은 김초엽 작가의 <므레모사>이다. 김초엽 작가의 첫 SF호러 소설인 이 작품은 2021년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 굉장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사이보그가 되다>, <놀이터는 24시>, <지구 끝의 온실>, <방금 떠나온 세계>, <행성어 서점>으로 만났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김원영 변호사와 공저했던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작품을 인상적으로 읽었었다. 과학을 전공한 소설가 김초엽과 사회학,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김원영이 각기 보청기, 휠체어라는 테크놀로지와 밀접하게 결합하여 살아온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도,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여성과 보여지는 장애를 가진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므레모사>의 주인공 유안은 환지증에 시달리는 전직 무용수로 등장한다. 그녀가 다리를 잃게 된 과정 자체는 자세하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그 이후의 고통과 금속 다리를 지닌 채 살아가는 삶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신경 의족을 분리한 상태에서도 예전 다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지증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환지증 역시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쉽게 믿을 수 없는 장애이고, 고통이라 김초엽 작가이기에 이렇게 세심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중 유안의 마지막 선택이 가져오는 의외성이 잔상처럼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라기 보다는 가까운 현재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팬데믹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하고 변화시키는 김초엽 작가의 다음 발걸음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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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공부 - 공부는 모든 일상 속에 있다 이다의 이유 4
정조 지음, 정창권 엮음 / 이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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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 특히 세손 시절에는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에 밤을 새워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을 지켜냈다고 한다. 그는 즉위해서도 공무가 끝나면 밤늦게까지 가만히 앉아 책을 읽었는데, 건강을 해칠까 신하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또한 그는 정사를 보느라 책 읽는 시간이 없는 것을 항상 안타까워했다. 그의 독서법은 체계적이었다. 그는 일과를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책을 읽었으며, 책을 읽고 나면 좋은 문장을 뽑아 적어 두는 '초록'을 만들곤 했다.      p.108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과 <에밀 졸라의 진실>에 이어 <나혜석의 고백>과 <정조의 공부>가 출간되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덕분에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고 군주로서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해 누구보다 배우고 익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학자 군주였다. 이러한 그의 면모는 그의 어록집 <일득록>에 잘 드러나 있다. 이는 규장각 신하들이 평소에 보고 들은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어록집으로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정조의 어록집에서 가려 뽑아, 새롭게 엮은 것이다.

 

상이 규장각에서 밤을 지냈는데, 밤이 깊어 가자 달빛이 더욱 밝아져서 소나무와 대나무의 그림자가 교차하였다. 이에 규장각에 있던 신하들을 불러들여 말씀하셨다.
"나는 글 읽는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밤이 늦도록 등잔불을 밝혀 놓고 무릎을 쳐서 장단에 맞춰 글을 읽는다면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못지않을 것이다."          p.208

 

이 책에는 수록된 정조의 어륵들에는 배움에 임하는 자세, 진실 되고 올곧고자 하는 마음가짐, 옳고 그름에 대한 강직함, 나아가 그가 이루고자 한 국가의 경영 철학이 깃들어져 있다. 특히나 공부에 임하는 이유와 태도가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 많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공부는 별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것, 옷을 입을 때와 밥을 먹을 때도 모두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이란 날마다 일상적으로 실행하는 데에 있는 간단하면서도 가까운 것이라는 점과 공부하는 것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두 가지 일에 불과하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와 닿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많이 읽기 보다는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기를 권장하고, 책을 읽고 나면  초록을 만들어 두고 수시로 펼쳐 본다는 독서법 또한 인상적이었다.

 

정조의 어록들은 사족이 필요 없을 만큼 명쾌하고 수준이 높아 어쭙잖은 평성을 붙이기보다는 각 어록을 충실히 옮기는 데 주력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오고, 이해하기 쉽도록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난 편집과 구성으로 되어 있어 매일 한두 페이지씩,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고, 한 토막씩 필사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과 함께 새해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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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고백 - 여자도 사람이외다 이다의 이유 3
나혜석 지음, 조일동 옮김 / 이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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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 여자는 너무 오랫동안 자기에 대한 제일 중요한 것을 잃고 살아왔습니다. 즉 나도 ‘다른 사람과 같이 생명이 있다.’ 하는 것을 억제하고 왔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제 숨소리를 들어보시오. ‘여자도 사람이다.’ 하는 자부심이 이상스럽게 전신에 흐르리다. 이렇게 여자의 눈이 뜨일 동시에 지금까지의 자기가 불행했고 불쌍했던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불행인 역경에서 행복인 순경으로 옮기려는 본능에 따라, 여자 자신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아갈까 고심하게 될 것입니다.        p.89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였고, 여성의 주체적 권리와 인권을 펼친 운동가였던 나혜석 편이다. 이 책은 나혜석의 산문과 대담, 논평 가운데 여성권을 비롯해 진보적인 관점에서 쓰고 밝힌 것을 묶었다.

 

나혜석은 신여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일본에서 서양 유화를 배웠고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촉망받는 화가이자 작가였으며, 한 가정의 아내이자 네 아이의 어머니였던 그녀에게는 시대와의 불화가 함께했다. 아내이자 어머니였지만 인형이 되기를 거부했고, 여성의 권리를 찾고자 했으며,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침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도 사람이외다'를 외쳤던, 나혜석의 문제의식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남의 정조를 유린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 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종종 방종한 여성이 있다면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깨물어 부수는 일이 적지 않소이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냐.      p.179~180

 

이 책에 수록된 글들 중에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모(母) 된 감상기〉이다. 나혜석은 이 글에서 어머니가 되는 과정과 심정을 말하며 여성 고유의 경험을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이 글은 어머니가 되는 과정과 모성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해야만 할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그걸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원통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분만 이후의 과정도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데, 잠 오는 때 잠자지 못하는 자의 불행과 고통부터 천신만고로 양육하려해도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구박하는 환경, 다른 모든 것에는 시간을 바칠 여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자식의 필요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이런 말을 했으니, 당시에 나혜석이 가정과 사회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고립되었을 지는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뒷전으로 미뤄야 하는 여성의 현실은 이 글이 쓰인 1922년이나, 내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2022년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점도 우리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나혜석은 이후에도 결혼에서 이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글을 발표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정조 관념을 강요하는 사회와 부딪쳤으며, 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살고자 한 바람을 끊임없이 실천했다. 이제 시대는 많이 달려졌고,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었지만 우리는 백 년전 나혜석에게서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혜석의 글들을 되짚어 보고, 그녀의 삶을 돌아보며,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존재로서 매일을 살아가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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