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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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목욕을 하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하려다가 무심코 유키코와 나오코를 돌아봤는데 그 순간 문득 휴일 저녁의 평화로운 광경에서 거짓을 감지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함께 노는 동안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조금 거리를 두고 돌아본 내 시선은 그 방에 넘치는 행복이 그저 겉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그 행복이 오로지 나의 인내로만 버텨가고 있다는 것을, 나의 인내가 절벽을 떠도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나는 문을 반쯤 연 채 갑작스러운 증오를 무거운 짐처럼 가슴에 안고 우두커니 서버렸습니다.       p.118~119

 

평범한 가정집 정원의 나무 아래에서 네 살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다. 소녀의 엄마는 문화센터에 강의를 들으러 가면서 언니에게 딸을 잠깐 맡겼고, 소녀의 이모는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다녀오느라 잠깐 시아버지와 소녀를 집 안에 남겨두고 외출한 상태였다. 치매 증세가 있는 시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요구하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다음 날 집에 젊은 남자가 드나드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하지만 범인을 찾아 내는 일은 경찰에게도,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결코 쉽지가 않다. 아이를 언니네 집에 맡겨놓고 젊은 남자와 호텔에 있었던 엄마, 아내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려던 아빠를 비롯해서 이모와 이모부 등 각자가 감추어오던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들 각자의 시선으로 교차 진행되는데, 한 명씩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진실을 고백할 때마다 범인이 달라진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대체 범인이 누구라는 건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거듭되는 반전을 거쳐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달려 간다. 주위에서는 사이 좋은 자매인 줄 알았지만, 사실 매사에 마음이 맞지 않아 날마다 은근한 다툼이 많았던 언니와 동생, 치매인 시아버지를 모시고,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지만, 사실 그런 일상이 지긋지긋했던 여자, 거리낌없이 불륜을 저지르며 남편과 가족들을 배신하는 여자,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에게 자신의 부정을 고백하는 아내, 수십 년 전 전쟁 때 남태평양에서 저지른 살인의 기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등... 보통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들의 가면을 샅샅이 들춰내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겉으로는 별다른 평지풍파가 없더라도 누구나 내면에는 욕망과 질투, 배신과 복수심, 심지어 살의를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자꾸 꽃 넝쿨로 목을 매려다가 나동그라져 죽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올리는 노인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나오코의 죽음까지 그리 슬픈 사건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지난 이 년 동안 노인의 괴상한 말과 행동을 혼자 감당하면서 사토코는 신경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도무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피로감을 느껴왔지만 왠지 이 순간, 사토코는 처음으로 이 노인네는 미친 게 아니라고 느껴졌다. 오히려 이 노인네만 정상이고, 미친 건 우리 쪽이다. 나를 포함해 죽음을 잔혹하고 슬픈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친 것이다.... 그렇게 느껴질 만큼 그때 정원 안에는 낙원처럼 아름답고 선하고 온화한 것이 있었다.     p.186

 

이 작품은 국내에 2011년에 출간되었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 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이사카 고타로는 이 작품에 대해 “충격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렌조 미키히코표 미스터리의 걸작”이라고 했고, 다나카 요시키는 “이런 작가가 있는데 어떻게 미스터리를 쓸 수 있겠는가!”라는 평을 했을 정도로 작가들로부터 경탄을 받았다. 이 작품은 치밀한 서술트릭과 거듭되는 반전도 뛰어 나지만, 무엇보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대담한 설정에서부터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작가의 의도대로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휘둘리는 자신의 마음에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고, 장르적인 재미도 가득한 작품이니 말이다. 과연 이들 중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소녀를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이야기는 완전히 마지막에 도달할 때까지 긴장감을 틀어 쥐고 놓지 않는다. 

 

소설 백광은 반전이 백미인 추리소설인 만큼 출판사에서 "범인의 정체에 놀라지 않았다면 전액 환불해드립니다" 환불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만큼 작품에 자신있다는 말일 것이다. 자세한 이벤트 내용은 스튜디오 오드리 공식 계정 (@studioodr)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강렬한 색감의 표지 이미지만큼이나 독자들을 홀리게 만드는 마성의 추리 소설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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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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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엌, 그 창문, 그 안뜰. 그것은 엄마가 뿌리를 내린 대기였고 엄마가 서 있던 배경이었다. 이곳에서 엄마는 똑똑하고, 웃기고, 활기 넘쳤고,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당신을 둘러싼 환경을 경멸했다... 엄마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 절실하게.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p.25

 

버지니아 울프에 비견되는 문학비평, 특히 회고록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될 만큼 자전적 글쓰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 작가, 비비언 고닉의 작품이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정말 궁금했던 작가였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굉장한 책이었다. 온갖 찬사를 갖다 붙여도 부족할 만큼 좋았다. 중년의 작가가 노년의 어머니와 뉴욕 거리를 거닐며 담소하고, 회상하고, 언쟁하는 이야기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삶에 대한 통찰력과 뛰어난 문장들로 인해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비비언 고닉은 뉴욕 브롱크스의 다세대주택에서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다. 스무 채의 빌라가 있는 4층 건물에 살고 있는 여자들은 모두 상스럽거나 외고집이었고, 행동만 보면 세상사를 다 꿰고 있는 듯했다. '약삭빠르고, 즉흥적이고, 무식하고,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었다고, 그녀는 당시를 기억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시기는 잠시였고, 자주 충격적이고 야만스러운 사건들이 터지곤 했던, 노동자 계층, 대도시의 한구석에서 북적대서 살아가던 일상들이 페이지마다 가득 펼쳐진다. 엄마는 능숙한 요리사였고, 맹렬한 청소부였으며, 악령들린 세탁부로 살림을 쉽게 척척 해냈지만, 그것들을 지긋지긋해하며 딸에게는 집안일을 조금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웃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끊임없이 평가하며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 대한 분노를 키웠다. 아마도 비비언 고닉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는 그녀의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정한 모녀는 결코 아니었다.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해 그 고통을 감히 느낄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렇네.” 나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엄마의 부드러운 얼굴이 결심이라도 선 듯 확고하고 단단해진다. 나를 보더니 강철 같은 목소리로, 이디시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p.300~301

 

남편의 요구로 일을 그만두고 오로지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 왔던 엄마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다. 평생 가지고 누려본 거라곤 남편의 사랑뿐이라고 믿었기에, 그의 죽음 이후 작정하고 헤어날 수 없는 슬픔 안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지'만, 엄마의 삶은 필연적으로 딸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비비언 고닉은 '나는 엄마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내 위아래에 있고 내 바깥에 있고 나를 뒤집어봐도 있다'고 말하며 '엄마의 존재감, 엄마라는 실체, 숨통을 틀어쥐는 고통받는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어디에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비언 고닉의 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희미하게 짐작했던 것들을 구체화시켜서 바로 눈 앞에 들이미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지독할 정도로 솔직하고, 어떤 미화도 없이 적나라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내는데, 매 순간 심금을 울린다. 놀랍도록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독창성으로 기어코 보편성을 이끌어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전적 글쓰기의 전범이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글항아리에서 비비언 고닉 선집으로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끝나지 않은 일>도 곧 나올 예정이니 이 엄청난 작가를 만나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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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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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순간 광대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컬러풀한 색채도 그 안에는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금세 새하얀 세계로 바뀌었다. 실제로 하얀 세계를 봤는지 어떤지 사와무라는 알지 못했다. 단순히 머릿속이 공백 상태가 된 것뿐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런 것이리라. 0점 몇 초 동안의 무아지경…….거기에서 깨어나는 건 착지 직전이다. 문득 깨닫고 보면 그곳에 랜딩 힐이 나타난다. 거대한 흰 벽이 되어 착지면은 점퍼를 향해 덤벼든다. 그것을 벽으로 여기고 두려워하느냐, 아니면 나를 받아주는 존재라고 믿느냐, 거기서 마지막 승패가 갈린다.    p.220

 

‘조인鳥人’이라 불리는 스물두 살의 천재 스키점프 선수 니레이 아키라는 최근 침체의 늪에 빠진 스키점프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국내 대회에서 연젼연승을 기록하고 있었고, 해외 원정 경기에서도 벌써 몇 번째 수상 기록을 남기면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니레이 아키라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식후에 먹은 비타민제 캡슐에 독극물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던 것으러 보였다. 게다가 경찰은 스키점프 관계자 중에 범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시작해 동료 선수와 스태프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다.

 

하지만 수사에는 별로 진전이 없었고, 마침 경찰에 익명으로 한 통의 밀고장이 도착한다. ‘범인은 스키점프팀의 미네기시 코치다. 즉시 체포하시오.’라는 내용에 따라 니레이의 전담 코치였던 미네기시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다. 사실 편지는 미네기시에게도 이미 도착했었다. '니레이 아키라를 죽은 사람은 너다. 자수해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자는 무슨 속셈인 걸까. 어떤 근거로 니레이를 죽인 사람이 미네기시라고 추리했던 것일까. 이야기는 범인을 추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범인이 밀고자를 알아내기 위해 혼자만의 추리를 시작하고, 그 범인의 살해 동기를 알아 내려는 경찰의 수사 과정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극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상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범인을 밝히려는 서사가 아니기에, 왜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 어떻게 살인 사건이 계획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범인을 쫓는 것보다 더한 재미와 속도감을 가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달려간다.

 

 

 

"스포츠 선수들은 그런 냉혹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깜빡했군요. 그건 선수 본인들이 결코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류 선수들은 하나같이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경향이 있어요. 지금의 나보다 좀 더 강하고 아름다운 것을 향해 내달린다는 겁니다... 일류 선수일수록 좀 더 위로 올라가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걸 보완해주는 게 있다면 누구든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다른 인간을 희생시켜도 괜찮다는 겁니까?"       p.370~371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으로 본격 스포츠 미스터리이다. 스키점프를 소재로 스포츠와 과학을 아우르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장점이 돋보이는 이야기로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스물두 살의 천재 스키점프 선수가 합숙 훈련 도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곧 살인 용의자로 스키점프팀의 코치가 체포된다. 사실 이 작품은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들에게 알려 주는데,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상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게다가 누군가 익명으로 경찰에 범인을 밀고하는데, 그 정체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완전범죄를 확신했던 범인은 자신을 지목한 밀고자를 알아내기 위해 추리를 시작하고, 경찰은 범인은 잡았지만 살해 동기와 결정적 물증을 찾지 못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살인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던 무시무시한 계획이 실체를 점점 드러내게 된다.

 

높은 곳에서 달려 내려오고, 수십 미터씩 날아가는 스키점프라는 스포츠가 주는 매력을 페이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만의 특별한 장점이다. 마침 동계올림픽이 한창인 시점이라 티비만 틀면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시기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쉽게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우리 나라 선수들이 스키점프로 출전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래 전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서 스키점프라는 종목은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찔한 높이에서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스릴 있게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스포츠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눈부신 드라마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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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모우 미운오리 그림동화 1
나피 지음, 송지현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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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는 숲 속 집에서 아픈 할아버지를 돌보며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문 밖에 서 있는 작은 괴물을 보며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긴 꼬리에 털이 부슬부슬하고 작은 뿔이 달린 그 괴물 모우는 집 안으로 풀쩍 뛰어 들어 온다. 눈이 많이 쌓인 추운 날씨였기에 토토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따뜻한 스프를 만들어 준다.

 

 

모우는 토토의 집에서 수프를 배부르게 먹고 새근새근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모우가 보이지 않자 토토는 역시 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문 너머로 모우의 모습이 보였고, 토토는 모우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간다. 가다 보니 어느 새 아주 깊은 숲 속이었고, 어디선가 웅얼웅얼 소리가 들려 온다. 처음 보는 커다란 괴물들에 둘러싸이게 된 모우는 무서워서 소리를 지를 뻔한다.

 

그때 나무 사이로 커다란 별이 떨어지고, 괴물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빛나는 돌 조각들을 모아 냄비 속에 넣고 수프를 만든다.

 

 

별 조각들이 냄비 속에서 녹아 투명한 수프가 되고, 토토는 괴물들과 수프를 나눠 먹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팠던 다리가 금방 낫는게 아닌가. 착한 소녀 토토는 아픈 할아버지를 떠올렸고, 수프를 할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토토는 괴물들이 만든 특별한 수프를 할아버지에게 무사히 갖다 드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수프는 의사도 고치지 못한 할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을까.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인 나피 작가의 이 작품은 추운 계절을 따스하게 만들어 주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색채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무채색의 배경들 속에 따뜻한 색감들이 포인트가 되어 주는 그림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토토와 할아버지의 집은 오렌지와 옐로우, 베이지 톤으로 포근한 느낌을 주고, 눈이 가득 쌓인 추운 숲 속의 풍경과 어두운 밤 하늘의 모습은 그레이, 블랙, 화이트를 주조로 해서 차갑지만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괴물들의 모습은 무섭다기보다 독특하고 신기하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데, 그 덕에 괴물보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생명체 같은 기분이 드는 존재들이다. 작고 귀여운 소녀 토토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게 되는 모우와의 관계도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눈 덮인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추운 계절에 읽으면 더 따뜻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소중한 이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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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것들의 도시 일인칭 4
마시밀리아노 프레자토 지음, 신효정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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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주 괴상한 도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비슷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마치 레고 블록처럼 꼭 맞게 조립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영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오히려 폐차장처럼 낡고, 오래되어 쓸모 없는 고철 덩어리들을 이어 붙인 듯한 집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들려온다. 녹슬고 흔들리는 발코니 근처 어디선가, 미지근한 바람만 조용히 조용한 도시를 가르며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는 뭘까.

 

 

가까이 가보니 한 까마귀가 창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벽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창문을 떼어 내려고 애쓰던 까마귀는 떼어낸 창문을 자신의 어깨에 올라탄 달팽이에게 먹이로 건네준다. 창문 하나 남지 않은 성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까마귀는 바로 이곳, 잊혀진 것들의 도시인 '샤'의 주인이었다.

 

이 도시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모든 것들이 모여 있었고, 까마귀는 쓸모 없는 것과 값진 것을 매일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었다. 책과 편지, 시계 등 중요하거나, 혹은 잡다한 물건들뿐만 아니라 '말'도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들 중 하나였다. 까마귀는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들을 병에 담아 두었다.

 

 

물건, 말, 눈물 등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잊혀져 이곳으로 오게 된 유령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와 두려움, 장난감들도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무심코 잊어 버리는 것들과 바쁘다는 핑계로 내버려두는 것들 또한 이곳 '샤'로 향할 것이다. 잊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샤에 도착하면, 온갖 기억으로 뒤덮인 사막에서 까마귀는 매일 아침 선별 작업을 한다.

 

인류가 창조하고, 사랑하고, 잊어버린 모든 것들이 신비로운 그림들과 독특한 상상력이 버무려저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이 우리의 삶을 거쳐 가고, 전부 간직할 수 없을 만큼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작품은 2021년에 단편 영화로 만들어 졌고, 이탈리아 다수 영화제 베스트 필름상 및 특별상을 수상했다. 책 역시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독특한 질감과 어두운 색감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우리가 잊고 사는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은 작품이지만, 어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당장 다음 페이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겠다는 긴장감이 몰입감을 안겨 주고,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그림들이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하고, 어둡지만 따스한 위로를 안겨주기도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 작품은 우리에게 잊혀진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작별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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