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없는 코끼리 알퐁소 꿈꾸는 씨앗
앙브르 라방디에 지음, 플로랑스 보겔 그림, 이정주 옮김 / 물주는아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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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마을의 코끼리들에게는 귀가 자랑의 대상이었다. 귀선이 그린 것처럼 멋지다, 귀가 엄청나게 크다, 는 식으로 서로의 귀를 비교하고 감탄하고 칭찬했다. 알퐁소는 아주 멋진 귀를 가진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런데 알퐁소에게는 귀가 없었다.

 

알퐁소는 누나들의 귀가 부러웠고, 재미있게 귀를 가지고 놀이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들리지 않는 알퐁소에게는 모든 게 고요하기만 했고, 그 속에서 알퐁소는 마음이 아프고 외로웠다.

 

 

알퐁소는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고 산책을 갔다. 나비를 만나고, 황금색 선인장을 거쳐, 뾰족뾰족한 꽃들과 물고기와 조약돌을 지나 커다란 나무를 만난다. 바로 갖가지 모양의 색깔과 귀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귀나무였다.

 

사실 귀나무는 아주아주 보기 힘든 나무였다. 세상에 단 한 그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알퐁소는 나무에서 귀를 따서 하나씩 써 본다. 그리고 높은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아주 아름답고, 엄청나게 크고, 위풍당당한 코끼리 귀를 발견한다.

 

 

코끼리 귀를 쓴 알퐁소는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가족들의 소리를 듣고, 온갖 동물들이 내는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붕붕, 개굴개굴, 쿵쿵, 딩딩, 딸랑딸랑..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알퐁소에게 쏟아진다.

 

‘왜 나만 귀가 없을까?라고 슬픔에 빠졌던 아기 코끼리 알퐁소에세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 해보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이걸 잘 못할까? 왜 친구들은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지? 아무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어. 왜 나에게는 이게 없는 걸까 등등...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보이는 것도 고민을 안고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처럼 느껴진다.  이 그림책은 그런 아이들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 주고, 따스하게 보듬어 준다.

 

 

마음을 채우는 유아 그림책 시리즈 '꿈꾸는 씨앗'의 첫 번째 작품이다. 5월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하는 이 특별한 그림책은 다양한 색감과 개성있는 그림체로 시선을 사로 잡는다.

 

큰 귀를 펄럭이며 하늘을 나는 아기 코끼리 덤보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너무 커다란 귀로 인해 놀람 받는 덤보처럼 알퐁소도 귀 때문에 슬퍼했으니 말이다. 귀 없는 코끼리 알퐁소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할 수 있는, 남과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에게 선물해주기에 너무 좋은 그림책이니, 꼭 아이와 함께 읽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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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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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그녀는 남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를 잃게 되리라는 걸 여자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잃어버린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사람은 한 번 잃으면 끝이다.' 어디서 읽었더라? 정말일까? 어쨌든 그녀는 남자가 퇴근해서 들어오거나 신문을 읽고 말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 '누워 있는 남자' 중에서, p.54~55

 

이 작품은 사강이 마흔 살의 나이로 발표했던 단편집이다. 1975년에 출간되었다가 2004년 사후에 재출간되었다. 결별을 테마로 한 열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강의 장편소설이 스무 편 정도 발표된 것에 비해 단편집은 네 권에 불과하고, 그중 한 권이 바로 이 작품 <길모퉁이 카페>이다.

 

제롬과 모니카 부부는 주말을 틈타 피레네산양 사냥에 나서는 길이었다. 함께 사냥을 할 제롬의 친구 스타니슬라스 브렘은 이혼 뒤 보름에 한 번씩 여자를 갈아 치우는 바람둥이였다. 그런데 사냥 여행을 하는 동안 결혼 생활 13년 동안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인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인 것처럼 보이는 정황을 목격하게 된다. 아내에게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고지식한 남자였던 제롬은 그런 행동이 촌스럽고 천박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해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자, 이들 네 사람의 주말 여행은 어떻게 될까?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인 <비단 같은 눈>이다.

 

 

마지막 계단을 돌아 내려오는데 갑자기 '삶'이 현관에 나타났다. 마르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바깥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마르크는 이미 환자들, 위로하는 친구들, 생각에 잠긴 의사들이 가득 찬 어두운 방 안에서 떨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태양은 이미 해바라기, 커다란 후회가 되었다. 바로 그때, 마르크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용기를 발휘했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인도로 뛰쳐나가 대로와 행인들, 도시를 바라보았다.        

                                                                                                        - '길모퉁이 카페' 중에서, p.200~201

 

<지골로>에서 오십이 넘은 여인은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낭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젊은 애인에게 작별을 고한다. <누워 있는 남자>에서는 봄날 오후에 자리에 누워 한없이 죽어가고 있는 남자가 등장한다. 불치병에 걸린 남자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한다.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 곁에서 죽음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 <어느 저녁>에서는 사랑하는 남자를 잊지 못하고, 다른 남자에게서 위로를 얻으려는 여자가 등장하고, <왼쪽 속눈썹>에서는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하러 가는 여자가 나온다.

 

사랑도 그렇고, 이별도 마찬가지로 뭔가 거창한 계기가 있다거나, 특별한 이유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돌발적으로, 혹은 무심코 일어나곤 한다. 만남도 헤어짐도, 행복도 상실도 말이다. 자유분방한 생활로 유명했던 사강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거쳤고, 그 사이에 수많은 연애를 해왔다. 거기에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까지 낳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한 경험들 덕분인지 이 책에 수록된 열아홉 가지 이별의 세계는 누구나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건조하고 시니컬한 문장으로, 가볍고 담백하게 펼쳐지지만 섬세한 감수성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것이 사강의 작품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나 이 작품에는 사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단편들도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사강이 속해 있었던 사교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대해 사강이 느끼는 씁쓸함이 녹아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생의 결정적 길모퉁이 접어든 영혼들에게 건네는 사강 식 위로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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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 / 리드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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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처참한 현장이었다……. 누구도 시신 가까이 가지 않았다. 가와지 교수가 사망했다는 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이 방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숨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중에서, p.49

 

세포 변이로 전신이 투명하게 변하는 투명인간병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투명인간화를 완전히 억제하기는 불가능해, 투명인간은 일반인들과 공생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비투명화'할 의무가 있다.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염색하고, 투명인간화를 억제한다는 신약을 주기적으로 먹어야 한다. 몸이 투명한 채로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제대로 걸어 다닐 수도, 물건을 사러 갈 수도 없고, 직장도 구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투명 인간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보이기 위해 약을 먹고 비투명화되는 것을 일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투명인간인 '나'는 어째서 자신들은 투명한 상태로 있는 걸 용납받지 못하는 건지, 투명인간은 투명한 것이 당연한데 왜 사회가 이걸 강제로 막으려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투명인간화를 억제하는 신약을 개발 중인 일본 투명인간병 연구의 대가인 교수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남편 몰래 투명인간 억제제를 버리고, 증거를 남기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경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처에 문제점들이 잔뜩 있었고, 투명인간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투명인간이 살인을 계획하고 저지르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진짜 재미는 살인 이후의 상황에서 벌어진다. 아내의 행적을 의심한 남편이 고용한 탐정과 함께 살인 사건 현장에서 나가지 못하게 된 투명인간은 과연 어떻게 밀실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을 수 있을까. 표제작의 트릭은 아마 누구도 간파할 수 없을 것이라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기발한 설정과 아이디어에서 오는 재미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 스구루를 데리고 둘이서 도망치자. 미치겠네,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탈출 게임을 하러 왔다. 이건 유희성이 짙은 놀이로, 어디까지나 지적인 쾌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게임이다.
게임은 자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요만큼도 원한 적 없다.               - '13호 선실에서의 탈출' 중에서, p.247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아쓰카와 다쓰미는 현재 일본 미스터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이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이 미스터라기 대단하다 등을 비롯해 일본 미스터리 랭킹을 죄다 휩쓴 화제작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를 비롯해서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 <도청당한 살인>, <13호 선실에서의 탈출〉 이렇게 네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모두 흥미로운 설정부터 시선을 사로 잡는다.

 

 

투명인간병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투명인간이 살인을 저지른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돌 그룹 팬끼리 다투다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배심원으로 소환된 사람들이 알고 보니 다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팬이었다면? 뛰어난 청력을 가지고 있는 탐정 조수가 살인 현장의 소리를 통해서만 진상을 파악하고 추리를 해야 한다면 어떨까? 호화 유람선에서 벌어지는 방탈출 게임을 하러 갔다가 괴한에게 납치당해 실제로 방에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세포 변이로 전신이 투명하게 변하는 투명인간병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투명인간은 일반인들과 공생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비투명화'할 의무가 있고, 그에 대한 불만으로 투명인간이 살인을 계획하게 된다는 스토리 자체도 흥미로웠고, 살인 이후의 상황에서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니 꼭 작품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

 

특수설정 미스터리란 현실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SF나 호러, 판타지적인 비현실 소재를 결합하여, 그러한 비현실적 특수설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전제한 상황에서 추리를 하는 장르를 말한다. 이 작품에 수록된 각각의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분위기와 설정으로 재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작품에 수록된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각각의 특수 설정과 논리를 가지고 있다. 재미면에서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지만 기발한 설정과 아이디어만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라는 토대 안에서 시리즈가 아닌 작품을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하는데, 단편이라 더욱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후반부에 각각의 작품들이 어떤 작품을 토대로 시작되었는지, 어떤 설정들을 가지고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 과정 또한 아주 흥미롭다. 신선하고 색다른 미스터리를 만나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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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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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는 것은 분명 잊고 싶지 않다는 뜻이리라. 소중히 하겠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언젠가 추억에서 꺼내서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해,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해 두겠다는 뜻이리라. 나는 사치코도 이 순간을 아쉬워하기를 딱히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공방에서 보낸 2년을 아쉬워했으면 좋겠다. 지금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언젠가, 어디선가, 아쉬워했으면 좋겠다. 추억에서 끄집어내 자신의 힘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치코라면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 믿었다.         p.145

 

사이타마시의 변두리에 있는 가사사기 중고상점, 개업한 지 2년, 가게의 매출 상태도 2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다. 히구라시와 가사사기는 상점의 2층 사무실 위에 있는 다락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미대 출신에 낡은 물건도 금세 수리하고 새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동업 제안을 받아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히구라시는 장사 수완이 없어 매번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쓰곤 한다. 점장인 가사사기는 사실 가게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고, 스스로 천재라고 믿으며 벼락치기 탐정 노릇을 하는데 푹 빠져 있다. 뭔가 미심쩍은 사건만 일어나면, 엉뚱한 추리를 늘어 놓으며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나선다.

 

어쩌다보니 중고상점을 드나들며 가사사기와 히구라시와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 중학생 미나미는 자신을 구해준 것이 가사사기라고 믿고 있다. 사실 그 사건 또한 히구라시가 뒤에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전혀 수습되지 않았을 거였지만, 미나미는 알지 못한다. 미나미의 복잡한 가정사를 알기에 히구라시는 나미가 가사사기를 천재라고 믿고 따르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본다. 그 덕에 나미가 괴로운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미를 낙담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히구라시는 가사사기의 엉터리 추리를 뒤에서 '진상'으로 꾸며내고 연출하느라 바쁘다. 이렇게 어설프고 어딘가 어수룩한 이들이 경영하는 중고상점에 각자의 사정으로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낯선 손님들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오지랖을 부리는데 더 관심이 많은 점장과 부점장 덕분에 중고상점에는 바랄 잘 날이 없다.

 

 

 

"그런.......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확실히 이번 사건은 어처구니없어. 하지만 말이야, 히구라시. 생각해봐, 이 세상은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가득하다고. 다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고 있을 뿐이지."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호 씨. 이 반지는 돌려드리겠습니다. 보아하니 상당히 비싼 물건인 것 같으니 앞으로는 엄중히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p.227


미치오 슈스케의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이 11년만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달과 게> 등의 어두운 미스터리 작품으로 만나 온 미치오 슈스케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그가 2011년 나오키상 수상 직후에 출간되었던 작품으로, 가볍지만 따뜻하고, 유쾌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안겨주었던 힐링되는 작품이기도 한데, 사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보다 1년 먼저 출간되었었다. 이후에 출간된 나미야 잡화점이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것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해 아쉬웠던 작품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만나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사랑받았던 소설들을 보자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등 소소하지만 위로가 되는 이야기,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양한 이들의 삶을 어루만져 주는 스토리가 많았다. 이번에 나온 <수상한 중고상점> 역시 이런 소설들의 감동을 잇는 작품이고 말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힘겨운 일상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어 버릴 수 있는 위로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만큼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기적의 순간이 우리에게 절실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군가는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줄 거라는, 보잘 것 없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든다면 그 다정한 낙관과 따뜻한 위로가 현실에서도 빛을 발하게 될 테니 말이다.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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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마법 열차 웅진 세계그림책 221
미첼 토이 지음,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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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늦게 자는 날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주로 휴일을 앞둔 날이나, 주말, 방학 등이 그런데 밤 늦게까지 안 자고 깨어 있으면 뭘 해도 즐거운 것 같다. 어떤 날은 너무 졸려서 하품을 하면서도 늦게 자겠다고 우기더니, 결국은 다음 날 굉장히 늦게 일어나기도 했다. 왜 아이들은 이렇게 밤을 좋아하는 걸까.

 

어두운 밤이라는 시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기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낮과는 또 다른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생겨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깊고 캄캄한 밤이 줄 수 있는 마법 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어린 소년도 일찍 잠들고 싶지 않다. 오늘은 안 자고 늦게까지 놀아도 되냐고 할아버지에게 묻지만, 어린이는 밤에 잠을 자야 한다며 어서 자라는 대답만 들려 온다.

 

방으로 돌아온 소년은 오늘은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든 늦게까지 안 잘 거라고 다짐하고는, 침대에 엎드려 뱀을 무찌르는 게임을 하며 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되었고, 무심코 눈을 비비다가 창문 너머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하늘에서 열차가 날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창문을 넘어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 하늘을 나는 마법 열차에 올라탄다. 열차 안에는 깊은 밤에도 깨어 있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깊은 밤 마법 열차에 탑승한 걸 환영합니다. 이 열차는 달나라행입니다."

 

그렇게 소년은 열차를 타고 깊은 밤 도시의 거리를 날아 다닌다. 아이들이 잘 때 세는 양 떼와 양치기도 만나고, 여우와 부엉이들이 잔치를 벌이는 것을 구경하고, 커다란 파도 아래 수중 동굴에도 가본다. 소년은 우주 비행사, 개코원숭이, 요정들과 실컷 놀고는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에게 마법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꿈을 꾸었나 보다 생각하며 믿지 않는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꿈, 짜릿한 모험을 즐기다 안전한 집으로 되돌아오는 꿈 등등 말이다.

 

늦게 자는 걸 좋아하는, 잘 시간이 지나서도 깨어 있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마법 같은 모험의 경험을 하게 해줄 만한 책이다. 작가가 나고 자란 호주 멜버른의 실제 명소들이 책 속 배경으로 등장하여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깊은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주는 신비스러움이 더해져 설레이는 모험을 떠날 수 있게 해준다. 아이가 늦게 자려고 칭얼대는 순간, 이 책과 함께 깊은 밤에만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험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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