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니와 악몽 가게 2 - 흡혈귀의 사라진 이빨 닌니와 악몽 가게 2
막달라네 하이 지음, 테무 주하니 그림, 정보람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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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고 씩씩한 아홉살 소녀가 악몽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닌니와 악몽 가게>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전작에서 아홉살 소녀 닌니는 자전거를 너무 갖고 싶어 스스로 자전거 살 돈을 벌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누가 아홉 살짜리한테 일을 시킬까 의문이긴 했다. 그러던 중 아이스크림 가게 아주머니의 말에 힌트를 얻어 찾아간 곳이 바로 <악몽 가게>였다.

 

몸이 녹색인 유령과 함께 간지럼 가루 때문에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이상한 할아버지를 도와주고, 결국 가게에 정식으로 채용이 되면서 1권이 끝이 났었다. 그러니 본격적인 내용은 2권부터 시작이 될 것 같아, 1권을 읽자 마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닌니가 악몽 가게에 정식으로 일하게 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부제인 '흡혈귀의 사라진 이빨'에서 짐작이 되듯이 백두 살 먹은 흡혈귀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흡혈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런 존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이번 흡혈귀 캐릭터 루카스의 매력이다.

 

닌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가 흡혈귀 루카스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이빨을 잃어버렸다고,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흡혈귀라고 울음을 터트리는 루카스를 달래다 악몽 가게로 데려온다. 흡혈귀에게는 이빨이 생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중한 것일 텐데, 루카스는 어쩌다 이빨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

 

 

닌니는 루카스를 도와주기 위해 창고에서 이빨을 대신할 만한 틀니를 찾아보기로 한다. 이상한 할아버지는 새로운 이빨이 필요하다는 닌니에게 다락방에서 가서 찾아보라고 알려주고, 단 충치 요정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다락방에서 닌니와 루카스가 여러 가지 모양 이빨들을 끼워 보며 어울리는 것을 찾는 동안, 녹색 유령 페르차가 2층 옷방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며 달려온다.

 

옷방에는 양말과 모자, 부츠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옷걸이는 구석에 내팽개쳐져 있었으며, 온갖 물건들 사이로 끈적이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옷방 안에 없어진 물건도 있었는데, 대체 누가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 걸까.

 

 

신기하고, 수상한 물건들로 가득한 악몽 가게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재미는 2편에서도 여전했다. 이상한 할아버지, 녹색 유령 페르차, 보라색 문어 뢸리스 등 악몽 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소심한 흡혈귀, 머리카락이 무지개색인 아이스크림 가게의 주인 할머니까지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컬러 삽화와 글밥이 적절히 섞여 있어 예비 초등부터 초등 저학년들이 혼자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만한 책이다.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읽기 독립을 해야 할 나이인 아이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이'와 관련된 속담과 관용구에 대한 흡혈귀 루카스의 새빨간 설명도 놓치지 말자. 다음 이야기에서는 악몽 가게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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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아주아주 오래 하자 - 거친 세상에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삶의 기술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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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 보고는 그랜트 스나이더의 신작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바로 제목때문이다. 원제가 <The Art of Living>인데, 어떻게 <샤워를 아주아주 오래 하자>로 의역이 된 것인지 의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과는 별개로 '샤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페이지를 읽다 보면 왜 이 제목을 사용했는지 짐작이 되기도 하지만, 제목만 보고는 어떤 책인지 모를 것 같아 살짝 아쉽긴 하다.

 

책 컬렉터이자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랜트 스나이더가 쓰고 그린 만화 에세이 <책 좀 빌려줄래?>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장난스럽고, 유쾌하지만, 책덕후들에게는 뼈 때리는 공감을 불러 오는 따뜻하고 위트넘치는 만화였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역시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카툰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졌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차서 복잡한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의 의미는 무엇을 통해 찾을 수 있을까, 충실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우리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누가 알까, 등등 그랜트 스나이더는 이번 작품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삶의 근원적인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삶을 제대로 즐기는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비 오는 날 첨벙거리기, 새 구경하기, 생각 메모하기, 책 냄새 맡기, 주변에서 파란색 찾기, 어두운 새벽에 여행 떠나기, 아무것도 안 하기 등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느슨한 삶의 기술'들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나 비슷비슷하게, 어제도, 내일도 특별할 것 없는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해지는 방법과 지루함을 해결할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랜트 스나이더가 알려주는 것은 조금 특별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상상력을 아기자기한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하는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다 돌아간 식기세척기에 얼굴 집어넣기, 새 쫓아다니기, 그림 만져보기, 마당에 무성한 잡초 방치하기. 그리고 지루함을 해결할 방법에는 또 이런 것들이 있다. 비행기에서 우리 집 찾기, 나무와 친구 하기, 꿈 내용 재현하기, 빗속에서 발라드 부르기, 열차 안에서 모르는 사람 그리기, 출근 방법 바꿔보기.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에 지루한 건 없어!'를 외치게 될 것 만 같은 그런 이야기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어른이 되면서 비가 오는 날씨를 즐기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비가 오면 신발이 젖고, 습도가 높아져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길을 걷다 물벼락을 맞을 확률도 있고, 우산을 들고 다니기 귀찮고 등등.. 번거로운 일 투성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비 오는 날에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 구경하기,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의 리듬 듣기, 폭신한 의자에 앉아 딱딱한 책 읽기, 담요로 요새 짓기, 밝은색 비옷과 싸구려 우산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 일렁이는 불빛 위에서 첨벙거리기.. 등등.. 비가 오는 날에 해야만 더 재미있고, 더 분위기 있는 소소한 일들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그랜트 스나이더의 귀여운 그림들과 함께 보아야 더 사랑스럽다.

 

그랜트 스나이더의 카툰들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기발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도 좋고, 무작위로 골라 아무 페이지나 골라서 읽어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우울할 때, 벽에 부딪친 것 같은 기분일 때도 이 책이 생각을 전환하고, 바닥을 치고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물론 그냥 가볍게 읽어도 너무 좋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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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한, 가 - 삶이 버겁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전하는 소박하고 성실한 일상의 기록
무과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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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에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불필요한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제때 주변을 정리 정돈하고, 아침저녁 문을 열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등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통해 만드는 건강한 에너지가 가득한 책이다. 잘 먹고, 건강하게, 바뀌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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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마을
리사 주얼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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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든 사람이 톰 피츠윌리엄의 뭔가를 원하지 않나?” 잭이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조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별뜻 없어.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잖아, 안 그래?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왜 그 남자를 보면 더 미칠 듯이 구는지 알아? 그 남자, 카리스마가 대단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매력은 뭐랄까, 늠름하다고 할까. 사람들을 구원해줄 것 같은 느낌이 있지.”      p.100~101

 

이야기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시작된다. 사건 현장은 전국에 있는 백만 개의 다른 주방과 똑같은 공간이다. 커피를 마시고, 숙제를 하고, 아침을 먹고, 뉴스를 보는 평범한 공간, 특별히 거슬리는 게 없는, 거의 밋밋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보이는 커다란 피 웅덩이에 사지를 뻗고 엎드려 있는 건 분명 시체였다. 목과 등, 어깨에만 적어도 스무 군데의 자상이 있는 잔혹한 살인 사건이었다.

 

이 살인 사건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있다. 알록달록한 스물입곱 채의 빅토리아풍 저택이 모여 있는 마을, 멜빌 하이츠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 이 동네의 공립학교 교장 톰 피츠윌리엄이다. 그는 정부의 칭송을 받는 파견 교장이자 중년의 아버지였고, 게다가 옷도 완벽하게 입는 매력적인 외모의 남자였다. 그가 맡은 학교의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의 눈에 띄기를 바라며, 남보다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용을 써댔고, 그건 그의 이웃에 사는 여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죄다 그가 신이라도 되는 듯 생각했다. 그리고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바로 그의 아내였다. 흠 하나 없는,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 피츠윌리엄의 아내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 돌아온 조이는 깨달았다. 자신은 괜찮은 아파트를 구할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을, 괜찮은 아파트 없이는 맛있는 음식을 요리할 수 없고, 유쾌한 친구들과 재미있는 독서 모임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번듯한 직업을 가질 능력이 없고, 헬스클럽에 등록하거나 차를 구입할 돈도 없으며, 멋지고 유쾌하고 든든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 허리케인이 서서히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소용돌이와 뒤엉킨 생각 위로 키 크고 잘생긴 톰 피츠윌리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p.329

 

'엿보는 마을'이라는 제목답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 타인을 관찰한다. 질투하며 훔쳐보고, 경계하며 살펴보고, 의심스러워 지켜보고, 매혹 당해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서 관찰한다. 그 중에 최고는 톰 피츠윌리엄의 아들 프레디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를 비롯해서 여섯 개 언어를 구사하는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친구도 없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욕심도 없는 소년이다. 프레디는 일 년여 전부터 '멜빌 일지'라는 걸 만들며 쌍안경으로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집 꼭대기 의자에 앉아 로어 멜벨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이는 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호텔의 방문객,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이웃 그리고 최근에 관심이 생긴 이 동네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재미있는 건 프레디가 지켜보는 걸 아는 동네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그들 각자도 서로가 서로를 엿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관음증의 온갖 다양한 형태가 모여 있는, 이상한 마을 풍경이다.

 

실제로 이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무려 삼백육십 페이지가 훌쩍 넘어서는, 후반부의 상황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두 달여 간의 이야기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자신이 집단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 사람부터 결혼한 지 몇 달 밖에 안 된 젊은 여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오십 대의 유부남에게 매혹되는 등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마을 사람들 각자의 사정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개연성 없어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들이 향하는 것은 잘생기고 매력적인 한 남자였고, 오래 전 그가 자신을 쫓아다녔던 여학생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영미권 최대 독자 사이트 굿리즈에서는 별점 십만 개 이상, 아마존 별점 만 개 이상에 별점 평균 4.4/5의 진기록을 세운 작품답게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다. 마성의 매력을 가진 남자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누가 살인 사건의 범인인지, 서로가 서로를 엿보고 경계하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모든 의혹을 한 방에 뒤엎어버리는 반전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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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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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헤로인과 같다. 한번 맛보면, 행복이란 게 있는 줄 알면 다시 행복해지지 않고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온전히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행복은 소박한 만족 이상의 무엇이므로. 행복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전율하는, 예외적인 상태다. 지속하지 않을 게 분명한, 초, 분, 날이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의 슬픔은 나중에, 행복에 이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온다.       p.80

 

요 네스뵈의 해리홀레 시리즈 열두 번째 이야기 <칼>이 출간되었다. 요 네스뵈는 데뷔작 <박쥐> 이후 22년 만에 이 작품으로 두 번째 리버트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해리 홀레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충격적인 포문을 연다. 물론 전작인 <목마름>을 읽었다면, 행복한 해리 홀레의 모습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고 막연하게 느꼈겠지만 말이다.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이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했을 정도로 해리에게 행복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그는 자신이 겨우 찾은 행복을 지켜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번 작품에서 요 네스뵈는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차갑고도 무자비하게, 한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해리의 행복을 난도질해버리는 것으로.

 

<칼>에서 해리는 라켈의 집에서 쫓겨난 상태로 등장한다. 행복의 한가운데에서도 라켈을 잃어버릴까 무서웠던 그였는데, 이미 그녀를 잃어버린 현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알코올의존자가 되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게다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손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잠에서 깨어난다. 전작에서 만났던 해리의 평화롭고 안정된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경찰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해리는 다시 강력반으로 돌아와 서류나 정리하고, 미제 사건을 검토하는 업무를 맡았다. 다시 술 취하고 불안정한 수사관이 된 해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일생일대의 비극이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고되었던 스베인 핀네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했고, 해리는 홀로 외로운 수사를 펼쳐 나가야 한다.

 

 

할아버지는 주머니 시계를 꺼내고 우리가 물가로 돌아가면 우리의 여정을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하나의 연속선으로 보일 거라고 말했다. 목적과 방향이 있는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가 여기에, 다른 어디도 아닌 여기에 있는 것처럼 기억하고, 배가 물가에 닿게 하려고 의도한다. 하지만 도착점과 처음 의도한 목적지는 전혀 다르다.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현재 위치에 이르러서 여기가 우리가 가려던 곳이거나 적어도 가려는 길 위에 있다고 믿으면 그런대로 위안이 될 수 있다.    p.660~661

 

<팬텀>에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상처받고, 사상 최악으로 망가졌던 해리는 <폴리스>에서 경찰서를 떠나 경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오랜 연인 라켈과 마침내 결혼을 했다. 그리고 3년 뒤, <목마름>에서 뱀파이어 살인마가 등장하며, 외부의 압박에 의해 다시 살인 현장으로 컴백했었다.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이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했을 정도로 해리에게 행복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지켜내야 하는 존재가 생겼고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운 마음과 범인을 잡고 싶다는 갈망과 뼛속까지 경찰인 해리의 내면에 있는 목마름 사이에서 고뇌하며 강박적으로 살인자를 쫓는 일에 매달렸다. 피를 갈망하는 범인의 목마름만큼이나 범죄에 끌리는 해리의 목마름도 강렬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행복한 해리 홀레의 모습은 자신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낯설었다. 그동안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는 언제나 소중한 뭔가를 잃어 왔고, 그러면서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왔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해리 홀레의 모습은 독자로서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아니야, 꿈이라고 말해. 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순간마다 페이지를 멈추고 작가를 원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해리 홀레 시리즈 열 두 번째 작품을 읽어 나가는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시작부터 작가로부터 엄청난 펀치를 맞고 거의 기절 상태로 질질 끌려 가는 기분인데다, 해리의 모든 것들이 너무도 먹먹하고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완성도는 시리즈를 거듭한 만큼의 깊이와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이 아주 초반에 벌어지는데, 그 긴장감을 거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나가는 힘이 있어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읽게 된다. 게다가 거듭되는 반전 역시 탄탄하고 정교하게 새겨진 플롯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 해리 홀레에게 사상 최악의 사건이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시리즈 전체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해리 홀레 시리즈는 13권 <블러드문>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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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6-09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 표지들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듯 하네요^^

피오나 2022-06-10 13:21   좋아요 1 | URL
그죠? ㅎㅎ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성의 시리즈랍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