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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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리의 포인트는 오징어 살을 내장으로 간하는 거야. 그런데 오징어 본래의 맛과는 좀 다른 것 같아. 아이디어랄지, 기술이랄지, 그런 것의 결정체 같달까.”
“뭘 그렇게까지.” 나가에가 웃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요리인 건 사실이야. 실제로 오징어를 손질할 때 한 번 내장을 빼잖아? 그다음에 간하는 단계에서 다시 몸통에 집어넣고. 일단 헤어졌다 중요한 순간에 다시 딱 합치는 느낌이랄까.”
제법 정확한 설명이다. 무슨 멜로드라마처럼 들리긴 했지만.       p.91~92

 

나쓰미와 나가에 부부는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로 셋 다 술을 무척 좋아해 틈만 나면 같이 모여 술을 마시곤 했다. 나쓰미가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인 겐타까지 무리에 끼어 즐겁게 지내곤 했다. 그러다 나가에가 미국의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일본을 떠나면서 모임이 잠시 뜸해졌다. 그러다 최근에 나가에 부부가 그곳에서 태어난 사키를 데리고 귀국하면서 다시 예전의 술 모임이 부활하게 되었다. 나쓰미와 겐타의 아들 다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나가에 부부의 딸 사키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 자연스레 부부의 모임에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이들 두 부부의 모임은 맛깔나는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술로 배를 채우고, 각자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씹을 때마다 육즙이 줄줄 흘러나오는 로스트 비프와 혀에 닿는 과즙 느낌이 대단히 강렬한 나파밸리 와인, 독특한 감칠맛이 입안에 확 퍼지는 연어 술지게미 절임과 개운한 맛이 나는 고급스러운 쌀소주, 향긋한 맛이 입안에서 톡 터지며 퍼지는 오징어내장구이와 또렷하고 깔끔한 맛의 사케가 조합이다. 여기까지가 겨우 에피소드 세 개의 음식이고, 아직 조합이 네 가지나 더 남아 있으니 나머지는 직접 책을 통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와 안주와 술의 기막힌 페어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집도 다코야키에 마요네즈는 뿌리지 않는 편이다. 소스와 가다랑어포, 김 가루를 뿌린다. 거기에 시치미 조미료도 살짝.
다코야키를 입으로 배달했다. 기름을 넉넉히 써서 그런지 표면이 바삭바삭. 떡 덕분에 속은 말랑말랑. 동시에 튀김 부스러기 덕분에 가벼운 식감. 다코야키를 삼킨 다음, 맥주를 흘려 넣었다. 열기와 소스의 매콤함이 싹 씻겨 나가면서 입안에 상쾌한 쓴맛만이 남았다. 그래, 이거야말로 어른의 식사다.       p.198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한밤의 술과 음식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주변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말도 나오게 마련이고 말이다. 소소한 가십거리 정도의 이야기들이 미스터리로 등장하지만, 그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근사한 음식과 곁들여져서 나오니 아주 흥미진진하다. 상사에게 선물 받은 커다란 안마의자 덕분에 결국 폐가전 회수 비용까지 들여가며 손해를 본 부부의 이야기, 쌍둥이가 각자 하루씩 어긋나게 일과를 보내는 이유, 미혼인 상태에서 출산하고 2년이 지나서야 결혼해야 했던 사정, 아이의 명문 중학교 입시를 대하는 엄마의 비밀 등등...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어딘가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되는 각자의 사정들을 두 부부가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추측해 나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지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맵싸하고 고소한 닭날개 조림과 비곗살의 감칠맛이 입안에 확 퍼지는 삼겹살 구이, 표면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다코야키, 녹아내린 치즈와 햄의 맛이 기막힌 핫샌드위치 등 음식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하고, 없던 입맛도 돌게 하는 작품이니 말이다. 이 작품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전작인 <나가에의 심야상담소>의 속편이기도 하다. 전작에서도 각각 한 쌍의 술과 안주가 등장하는 일곱 편의 에피소드가 나왔다. 당시에 활약했던 미식가 나가에가 12년 만에 다시 한번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작품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이다. 물론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번 작품을 즐기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시모치 아사미 특유의 편안하고, 아늑한 미스터리 키친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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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린 배 - 지구 끝의 남극 탐험 걸작 논픽션 24
줄리언 생크턴 지음, 최지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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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탐험가들은 주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앙아시아 등 세계의 광활한 지역들을 여전히 개척 중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남극 대륙은 인류에게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북아메리카보다 더 넓은, 이 지구의 최남단 대륙은 1820년 그 존재가 처음 알려진 이래로 소수의 탐험가, 일부 포경선, 물범 사냥꾼들의 손으로 그려진 몇 개의 해안선 말고는 세계 지도에서 공백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공백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남극은 지리적으로 마지막 남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p.26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한 환경 중 하나, 인간이 살기엔 너무 험난해 그 누구도 몇 시간 이상을 보낸 적 없는 남극 대륙으로 떠난 사람들이 있다. 거의 최초의 남극 과학 탐사에 관한 논픽션인 이 책은 1897년 초기 극지 탐험에 대한 실화 기반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당시만 해도 남극은 지리적으로 마지막 남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남극 여행은 위험할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라, 남위 70도선을 넘어 더 남쪽으로 전진한 원정대는 그때까지 단 세 팀뿐이었다. 이 작품은 이들이 어떻게 남극으로 가기 위한 비용을 구했으며, 함께 갈 팀원들을 모았는지 그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알려진 것 없는 미지의 세계로 진출해보고자 하는 인간 마음속 깊은 곳의 욕망을 고스란히 비추며, 탐험의 시작부터 두려움과 공포가 극에 달하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스릴 넘치는 소설처럼 그리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작품이었다. 남극 탐험은 가장 높은 위도에 있는, 가장 긴 거리를 가야 하며, 가장 낮은 온도를 견뎌야 하는 일이다. 대체 이들은 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자진해서 떠나게 된 걸까. 그리고 그곳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마치 자신이 벨지카호에 탔던 선원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삶을 철저하게 추적해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근사한 '극지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비명의 원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집단적 불안이 표출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극지대의 밤 동안 어두운 생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살인, 자살, 기아, 광기, 차디찬 죽음, 그리고 악마나 할 법한 행위가 별로 이상하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다"고 쿡은 관찰했다.
아르츠토프스키는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지금 정신병원에 있다."             p.260

 

얼음의 땅 남극은 제7의 대륙 또는 미지의 대륙이라고 불리며, 인류의 손길이 아직 제대로 미치고 있지 못한 지구상의 유일한 대륙이다. 북극과 달리 다른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북극보다 심한 추위와 강풍으로 인해 곰도 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멀고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에 지구상에서 오염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한데 덕분에 다양한 과학 분야의 천연실험장이기도 하다. 언젠가 직장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추위와 강한 눈보라를 동반하는 강풍 등 혹독한 환경에서도 다양한 생물을 연구하고 극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매년 과학자와 지원인력과 관광객 등 남극대륙을 밟는 사람은 수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29개국에서 상주기지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인간이 생활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기후의 남극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아마도 초기 탐험가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현재 왕립 벨기에 자연과학연구소에는 벨지카호의 기록물이 다수 보관돼 있다고 한다. 두 명이 죽고 목표였던 남자극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해도 벨지카호는 오늘날 미국항공우주국 대원들에게 귀감이 될 정도로 대단한 여행을 해냈다. 수백 종의 식물과 동물에서 수천 개의 표본이 나왔고, 이는 남극권 남쪽에서 최초로 1년 치 기상 및 해양학 자료를 수집해 얼어붙은 대륙에 대한 우리 이해의 기반을 다져주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들이 난파, 기아, 극도의 고립과 극한의 추위, 스트레스, 공포를 이겨내고 살아남았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매순간 죽음을 마주하고, 얼음과 눈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만나면서 극지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남극 원정대와 함께 스펙타클한 극지 여행을 떠나 보자. 오싹하고, 스릴 넘치는 생생한 이야기는 우리를 1897년 그날,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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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되는 법 - 꿈이 너무 많은 당신을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
에밀리 와프닉 지음, 김보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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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질문이 하나의 직업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섯 살짜리가 열 가지 미래를 꼽는다면, 질문을 한 어른은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러니까 그중 어떤 것? 너는 모든 것이 다 될 수는 없어!'... 구별하기 어렵긴 하지만, 우리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을 '이 생애에서 너에게 허용된 정체성은 하나뿐이야. 자, 어떤 것을 선택할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겁나는 질문인가? 이런 식의 질문이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p.19

 

한 가지를 진득하게 잘하는 것과 여러 가지를 조금씩 잘하는 것, 우리는 두 가지 중에 전자가 더 좋은 거라고 배우며 자랐다. 여러 가지 일을 두루 섭렵하는 것보다 한 가지를 제대로 하는 편이 낫다고, 어떤 분야에서도 덜 능숙한 것보다는 한 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예능에서 '부캐'라는 것이 뜨기 시작했고, 지금은 'N잡러'라는 말이 능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부캐라는 단어는 사실 게임 용어로 처음 캐릭터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캐릭터를 하나 더 만든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부캐가 현실에 적용되어 일반적인 내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자아를 가진 캐릭터를 부캐라고 부르며, 엄청난 열풍을 불러 왔었다. N잡은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사를 살려 본업 외에 부수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말하며,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 해서 수익을 내는 활동이다. 그러다 보니 2017년에 처음 읽었던 에밀리 와프닉의 <모든 것이 되는 법>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은 '어떤 이들은 하나의 길을 결정할 수 없으며, 결정해서도 안 된다고'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유난히 관심사가 많고 다재다능하며 나름의 열정도 있으나 크게 이뤄놓은 것은 없고, 천직을 찾아 헤매지만 한 가지만 파기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다능인(Multipotentialite, 멀티포텐셜라이트)'이라는 호칭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이들의 통합 능력과 빠른 습득력, 적응력이야말로 끝없이 변하는 이 사회가 가장 원하는 재능이라고 말한다.

 

 

 

다능인으로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는 우리가 가진 '잠재력' 중에 어떤 것을 발전시킬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만 아마도 한 번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 부분에서 주저앉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정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지구상에서 우리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일생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을 하는 것과 한 가지만 하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공간이 존재하며 그곳에 바로 다능인이 있는 것이다.         p.167

 

'여러 가지를 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에서 평범해진다'는 의미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에밀리 와프닉은 말한다. '세계 최고와 완전히 평범한 것 사이에는 중간 영역이 있으며, 다능인들이 몇몇 분야에서는 대단히 능숙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저자 역시 다능인의 삶을 살고 있다. 커리오 코치이자 강연가, 블로거이고 뮤지션이자 디자이너, 법학도와 영화인의 길을 지그재그로 걸어왔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해왔다고 하면, 어쩐지 산만하고 끈기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모든 관심사와 배경을 단 하나의 원동력으로 줄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와 현실적인 조언을 통해 들려 준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다 해보고 싶고, 이것저것 조금씩 다 잘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정체성'이라고 말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고, 관심사가 자주 바뀌어 정작 제대로 이룬 게 없는 것 같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곧 '당신 같은 사람들의 시대'가 온다고 말했던 파격적인 이 책의 조언대로 겨우 몇 년 만에 진짜 그런 시대가 왔다. 그야말로 호기심 많고, 재능이 넘쳐나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인정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멀티-포텐셜-라이트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가장 유용한 재능이 되었다. 이 책은 다능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사점과 패턴을 파악해 '전문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의 연습' 대신 '모든 열정에 지속 가능한 삶을 디자인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면에 잠재된 다양한 힘들을 다시 발견하고 열정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풍요로운 삶을 가꿔나갈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다능인의 시대가 왔고, 이 책은 재능많고 호기심많은 당신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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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은수를 텍스트T 3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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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세계에서는 늘 위화감이 있었어요.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막연한 불안감과 불쾌함을 항상 느꼈죠. 처음 여기 왔을 때...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몰라요. 아름다우면서 그리운 세계였거든요.... 당신도 그렇지 않아요?"
아하, 지아키는 갑자기 이해했다. 왜 자신이 다양한 것에 탐구심을 가졌는지를. 줄곧 불안했다. 원래 세계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 '어떤 은수를' 중에서, p.105~106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십년 가게>, <신비한 고양이 마을>, <비밀의 보석 가게 마석관> 등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판타지 동화 시리즈로 유명한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집이다. 위즈덤하우스 청소년 문학 ‘텍스트 T’의 세 번째 권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청소년 독자에서 성인 독자까지 아우르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강렬하고도 기묘한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어떤 은수를>과 <히나와 히나>, 그리고 <마녀의 딸들>이다. <어떤 은수를>에는 은빛 짐승이라는 뜻의 은수라는 특별한 존재가 등장한다. 은수는 돌의 알에서 태어나 주인이 될 인간이 바라는 대로 성장하는 돌의 정령이자, 생물과 광물의 중간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어느 날 재벌 노인이 다섯 명의 남녀를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 ‘은수’의 알을 주고 가장 뛰어난 은수를 키운 자에게 전 재산을 남기겠다고 한다. 성격도, 배경도, 욕망과 제각각인 다섯 명은 각자의 목적과 이유를 위해 은수를 키우게 되는데, 과연 누가 재산을 차지하게 될 것인지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히나의 본성을 안 순간, 요키 안에서 무언가가 죽었다. 믿었던 마음이 가루가 되고 말았다. 죄인이 되어 외딴 섬에 갇힌 것보다도 그 때문에 더 용서할 수 없었다.
밉다. 미워 죽을 것 같다. 반드시 복수할 테다.
오늘날까지 그 결심을 곱씹으며 견뎌 왔다.           - '히나와 히나' 중에서, p.230

 

<히나와 히나>에는 연인 히나의 배신으로 죄인이 되어 외딴 섬의 등대지기로 유배된 한 청년이 등장한다. 오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혼자 외딴 섬에 남겨져 고독과 공포를 견뎌내야 하는 그는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히나의 환영에 괴로워한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과 망령으로 인해 그는 슬프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마녀의 딸들>에서는 마치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커다란 저택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어린 소녀에게는 이상한 규칙들이 있었다. 밤이 되면 저택에 굵은 쇠창살이 내려와 순식간에 상자처럼 변해 아침이 올 때까지 절대 열리지 않고, 엄마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절대 지하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시나무 울타리 너머로는 절대 가면 안되었고, 밤이 되기 전에 꼭 저택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엄마가 사실은 마녀였고, 자신이 엄마의 여덟 번째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는 무사히 바깥세계로 탈출할 수 있을까.

 

 

사실 히로시마 레이코의 기존의 작품들은 아동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읽기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옴니버스 단편들이었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 더 좋고, 어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만한 작품들이라 더욱 어린이 판타지 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조금 연령대를 높여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판타지 문학이지만, 성인 독자들이 읽기에도 오싹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이라 일반 판타지 소설들을 더 발표해주어도 좋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나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집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기존의 판타지 동화 시리즈에서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어린 주인공들을 등장시켜왔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의 제대로 된 끝판왕을 보여준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추악한 탐욕, 사랑과 증오의 감정들을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독특한 일러스트들이 수록되어 있어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살려주고 있기도 하다. 히로시마 레이코의 작품들을 좋아했다면, 혹은 궁금했지만 아동 대상이라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면, 이번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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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 마인드셋 - 감정 왜곡 없이 진실만을 선택하는 법
줄리아 갈렙 지음, 이주만 옮김 / 와이즈베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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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수없이 많은 판단과 결정으로 이뤄지고, 실제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지 않게 주의할수록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정찰병 관점으로 사고하면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기 쉬운 질문에 답할 때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병원에서 그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할까? 여기서 손절매해야 할까, 지금 매도하면 너무 일찍 처분하는 건 아닐까? 관계가 나아질 수 있을까? 배우자가 자녀 계획에 대한 생각을 바꿀 확률은 얼마일까?         p.32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결함과 실수를 합리화할 때가 많다. 일, 관계, 생활, 정치를 비롯한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상황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을 겪어도 각자가 기억하는 것이 다른 이유는 각자 주관적인 시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가장 큰 배경이 된다. 합리적 사고 전문가이자 젊은 사상가로 촉망받는 줄리아 갈렙은 이러한 태도를 가리켜 '전투병 관점'이라고 부른다. 진지를 사수해야 하는 전투병처럼 자신의 신념을 방어하고 요새화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사고방식이 필요할까.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카우트 마인드셋(정찰병 관점)'이다. 이는 전투지의 지형을 살펴 지도를 만드는 정찰병(scout)같이 ‘사실 그대로를 직시하는 태도’를 뜻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보지 말고, 정찰병처럼 상황을 직시해야 주용한 순간에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TED 강연 '왜 우리는 틀렸을 때조차 옳다고 생각하는가'로 750만이 넘는 조회를 기록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내 안의 편견이나 맹목적인 확신, 지나친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세상을 명확히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실을 중요시하는 정찰병 관점이 어떻게 판단력과 성공으로 직결되는지 찰스 다윈, 알프레드 드레퓌스, 제프 베이조스, 필립 테틀록, 사울 펄무터 등 수많은 실증 사례와 인지과학 연구결과, 각계각층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책이었다.

 

 

 

'터무니없는 꿈'을 품은 사람에 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러나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의심하는 이들이 틀렸음을 가슴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스크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친구들이 그가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라 얘기할 때 머스크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나도 동의해. 우리는 실패할 것 같아." ... 머스크 스스로 성공에 대한 기대치를 그토록 낮게 봤다는 사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사람들은 보통 성공 확률이 높아야 어떤 일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찰병은 '이 일은 성공할 거야'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은 가치 있는 베팅이야'라고 생각할 때 의욕을 느낀다.        p.159~160

 

일론 머스크가 항공우주 회사를 세우기로 했을 때 다들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머스크는 페이팔을 매각해 1억 8,000만 달러를 손에 넣었고, 그 거금을 이후 스페이스 X로 알려질 회사에 대부분 베팅했다. 친구들은 실패할 거라며, 페이팔로 번 돈을 전부 잃고 말 거라고 경고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실 머스크 조차 자신의 투자가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크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사업이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는 왜 시도한 것일까. 머스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일은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설령 실패할 게 뻔히 보여도 말이다. 머스크가 보는 성공 확률은 대략 10%, 실패 확률은 90%였다. 그는 사업의 성공 여부보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 베팅을 했다. 이는 '가치 있는 베팅'이라는 개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준다. 확실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베팅에서 얻는 기댓값이 긍정적이라면 결국에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선택으로 인해 삶이 더 나아질지, 나빠질지 방향을 달리 하게 된다. 타인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근거에 기반을 둔 서사를 구성하고 이를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한 사람의 진실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례함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해석 외에 다른 합리적 해석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려면 정찰병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투병 관점에서의 우리와 정찰병 관점에서의 비교 사례들이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우리의 무의식중에 벌어지는 선택의 과정과 인간이 왜 합리적으로 비합리적인 존재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것들에서 벗어나 다른 시점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기기만을 멈추고 세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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