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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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하나씩이라도 괜찮으니까 일이나 회사, 주위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서 좋아해 봐. 그러면 자연히 좀 더 알고 싶어질걸? 뭐든 괜찮아. 모처럼 연이 닿아서 다이한에 들어왔는데 일도 회사도 사람도 좋아하지 못하면 아깝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울든 웃든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일을 하며 보낸다. 괴롭게 일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괴롭게 흘려보내는 셈이 된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회사나 주위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기로 결심했다.        p.91

 

리카는 대형 '출판유통회사'인 다이한에 입사한 신입사원이다. 특별히 출판업계에 흥미를 느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이나 독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합격했던 다른 회사보다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선택한 곳이었다. 1개월에 걸친 신입 연수가 끝나고, 부서 배치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리카는 본사나 도쿄 근교 지점이 아니라 오사카 지사 영업부로 가게 되었다.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만 살아왔던 리카는 평생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낯선 도시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일에 대한 자신감은커녕, 의욕도 많지 않았고, 책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리카에게는 모든 일들이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그러다 잘해보려고 시도한 일이 큰 실수가 되어 버리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리카는 마음속에 계속 담아 왔던 것을 상사에게 말해 버린다. 그리고 그 일은 리카가 고바야시 서점으로 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리카는 고바야시 서점의 고바야시 유미코 사장에게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모두 배우게 된다. 작은 동네 책방을 담당하게 된 리카는 이후로도 고민이 생겼을 때마다 고바야시 서점을 찾아 가고, 유미코 씨는 자신이 왜 서점을 물려 받게 되었는지부터, 왜 서점에서 우산을 팔게 되었는지, 큰 이벤트를 열었던 경험, 도둑이 들어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깨달았던 경험, 작은 동네 서점으로 아마존을 이겼던 경험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렇게 리카는 고바야시 서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점점 더 용기를 얻게 되고, 어수룩한 신입 사원에서 회사의 에이스 직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기를 낮게 말해서 방어벽을 치는 거예요...... 참 약았죠."
"약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좋은 대학을 훌륭하게 졸업해서 큰 회사에 입사한 걸로 충분히 대단한걸."
..... 유미코 씨와 대화하면 살아 있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나여도. 어느샌가 고바야시 서점은 나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p.115

 

고바야시 서점은 실제로 존재하는 서점이다. 1952년부터 약 70년 동안 운영되어 온 일본 아마가사키시의 작은 서점이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이래로 4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서점을 운영해 온 유미코 씨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소설의 저자인 가와카미 데쓰야는 '서점에서 정말 있었던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라는 책을 쓰기 위해 전국의 여러 서점에 취재를 다니다,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유미코 씨가 들려주는 일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서점을 넘어서, 모든 업종에 공통되는 '일의 기본'이라 할 만한 것이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언젠가 고바야시 서점의 에피소드만으로 책 한 권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작품이다.

 

특별한 목표 없이 취업 준비를 하다가 관심도 없는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이 어디 리카뿐이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들이 그렇지 않을까.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꿈에서 멀어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다 보니 정작 자신의 만족은 사라지고 말게 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충 매일을 살 수는 없다. 이 작품 속 리카가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를 만나게 되면서 점점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야말로, 누구라도 잘 모르는 분야에서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특히나 이 작품 속에는 출판업계의 많은 부분들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도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지금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다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 힘들 때 기댈 곳이 필요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그야말로 '힐링 소설'이란 이런게 아닐까 싶을 만큼 마음 따뜻해지고, 든든하게 위로가 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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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카페 - 350년의 커피 향기
윤석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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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거나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곳이 아니다. 커피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또 커피하우스를 세계 최초로 오픈한 것도 아니지만 카페 문화를 세계 최고의 형태로 키운 파리에서 카페는 파리 사람들의 삶의 전체 방식을 대변한다. 파리의 카페들은 에펠탑이나 노트르담 대성당만큼 의미가 있으며 파리라는 도시의 모습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파리는 카페의 대명사가 되었고 카페 하면 파리를 떠올린다.          p.24

 

헤밍웨이를 비롯해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의 카페들을 전전하며 글도 쓰고, 친구들도 만나고, 커피와 술을 마셨다. 덕분에 파리의 카페라고 하면 대부분은 고흐의 그림에서 보았던 '노천카페'를 먼저 연상할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 파리에 가게 되면 공항에 도착해 제일 먼저 이동할 장소가 파리의 오래된 카페였다. 왜 파리에는 노천 카페가 많은 걸까, 또 대부분의 카페에서 커피와 차 외에 맥주 같은 주류와 함께 간단한 식사도 제공하게 된 이유도 궁금했다. 유서 깊은 카페들도 직접 가보고 싶은 만큼 정보를 얻고 싶었으며, 파리의 카페들과 함께 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35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파리의 카페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차원이 다른 카페 문화를 이끌어 왔다. 무엇보다 세계 미술사와 문학사에서 새로운 사조와 걸작품들을 창조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은 사진작가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인 저자가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그 이후에도 수차례 파리를 방문해 도시 곳곳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파리의 유서 깊은 카페들을 소개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그의 파리 회고록 <움직이는 축제>에서 1920년대 당시 카페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대부분 글 쓰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개인적인 카페를 그들 구역에서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한, 책을 읽기 위한, 자기들의 편지를 받아 볼 수 있는 그런 카페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애인과 만나는 카페는 따로 두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또 다른 카페, 중립적인 카페를 갖고 있다. 거기서 그들은 애인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p.246

 

우선 세기별로 그 시대 가장 유명했던 파리 카페들을 별해 셀럽들과의 관계, 카페 분위기 등을 담았다. 그리고 파리에 처음 카페가 생겨난 이후부터 현재까지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만한 카페들을 샅샅이 소개해주고 있다.

17세기부터 시작해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거치고, 파리 카페의 황금시대였던 19세기를 지나, 인상파 화가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몽마르트르의 카페들을 거치고, 20세기 현재의 파리 카페들 모습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파리 카페의 역사를 읽다 보면, 이곳들은 단순히 커피나 음식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술가들에게는 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이자, 만남과 사교와 교류의 공공장소였던 것이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것은 '100년 이상 된 파리 문학 카페 방문기'였다. 1826년에 오픈한 초록색 차양으로 단장한 아주 큰 카페인 '카페 드 라 페'는 지하철 오페라역을 나오면 바로 옆에 있다고 하니 찾아 가기도 쉬울 것 같았다. 무려 350년의 역사를 가진 파리 카페의 전설 '프로코프'에 방문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나의 카페라고 선언한 '라 클로즈 리 데 릴라'에 방문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다. 헤밍웨이가 에세이에서 자주 언급한 카페라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카페이자 헤밍웨이의 집필실 역할도 했던 곳이라, 헤밍웨이가 주로 앉았던 테이블에 '헤밍웨이'라고 쓴 동판이 붙어 있다고 하니 꼭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파리를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시 가보고 싶어질 것 같고, 나처럼 아직 가보지 못한 이들은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질 것 같다. 특히나 뛰어난 퀄리티의 사진들이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다, 인문과 역사적인 배경 지식을 통해 파리 가이드를 해주고 있어 정말 특별한 파리 여행을 경험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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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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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에게 이러쿵저러쿵 지시하던 그때 간바라의 눈 속에는 확실히 어둠이 있었다. 시커먼 그것을 들여다보면 그곳에서는 미오와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상식이나 올바른 생각 따위 전혀 통하지 않는다. 온몸에서 그런 분위기가 오라처럼 풍겨 나왔다.
야미하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을 흩뿌리고, 강요하고, 타인을 끌어들이는 야미하라. 마음과 눈 속에 도사린 어둠이 밖으로 나와 주변을 물들인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둠으로 휘두르는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p.115

 

고등학교 2학년인 미오네 반에 어느 날 전학생이 온다. 차이나칼라 재킷 교복을 입은 남학생은 팔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했다. 주변에 무심해 보이는 전학생은 이상하게도 첫날부터 미오를 자주  쳐다 봤다. 친구들은 전학생이 미오에게 반한거 아니나며 호들갑스럽게 말하지만, 미오는 잘 모르는 학생의 시선이 불편하기만 하다. 선생님은 반장인 미오에게 전학생의 학교 소개를 부탁하고, 이런 저런 장소를 알려 주는데 갑작스럽게 "오늘 집에 가도 돼?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미오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피하지만, 전학생의 부담스러운 행동은 계속 되는데... 전학생의 정체는 뭘까. 대체 왜 미오에게 이상한 행동을 자꾸 하는 걸까.

 

 

프리랜서로 일하는 아나운서인 리쓰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자원봉사 활동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그 동안은 일이 바빠 좀처럼 시간을 내기 힘들었는데, 이번에 봉사활동 중에 '낭독 위원회'라는 활동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지정된 장소에 들어선 순간부터 참석한 걸 후회하기 시작한다. 모인 사람들이 이미 너무 친근하게 허물없는 말투로 지나치게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전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무리들 속에서 유일하게 말을 건네준 여자는 부담스럽게 질문을 해대고, 귀를 의심할 정도로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때 스타일 좋고 자신감 넘치는 한 여성이 리쓰를 그 상황에서 구해주는데, 그녀는 남편과 함께 리쓰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한 주역이었다. 그렇게 리쓰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과 친분을 맺게 되는데, 그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불편하고,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집에 드나들었던 모양이야. 소문의 진위는 정확하지 않지만 놈들은 아마 학교 행사나 주부들 사이에 끼어들어 주위에 조금씩 어둠을 강요했을 거야.”
어둠을 강요한다는 표현에 기억이 꿈틀거렸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휴대폰. 무서웠던 수많은 LINE 메시지. 상대의 멈추지 않는 정체 모를 폭력 같은 언어. 내 잘못이라고 건강하지 못한 마음으로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던 그 감각…….          p.399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은 <거울속 외딴성>과 <호박의 여름>만 읽어봤는데도, 어느새 믿고 보는 작가가 된 것 같다. 특히나 이번에 만난 작품은 츠지무라 미즈키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본격 호러 장편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전부터 호러 장편 소설을 집필하고 싶었다고 하는 그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경험해 봤을 만한 불쾌감과 공포, 꺼림칙한 악의, 본인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에 대해 고민하다 '야미하라'에 다다르게 된다. 작가가 만든 '야미하라'라는 조어는 자기 정당화를 방패 삼아 자신의 '어둠'을 타인에게 강요해 불쾌감을 주는 일종의 폭력적인 행위를 뜻한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아파트 단지의 이웃과, 회사의 상사와의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을 당하거나, 뭔가 ‘쌔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요한 거리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그럴 때 느끼게 되는 공포와 스트레스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지나치게 상대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태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분위기, 사람들 속에서 시선 받기를 원해 보여지는 것에만 신경쓰는 성격, 아랫 사람을 무시하고 시종일관 트집을 잡고 설교를 해대는 갑질, 자신이 옳다고 믿는 행위를 관철시키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밀어 붙이는 가스라이팅 등 이 작품 속 에피소드들은 모두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라 더 오싹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귀신이니 저주, 좀비 같은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긴장감과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해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숨가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은 소설일 뿐이고, 실재하는 이야기가 하지만, 야미하라는 이 책을 읽는 누구의 곁에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에 이르면 각각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그야말로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또 다른 차원의 공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무시무시한 경험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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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사전 - 작가를 위한 갈등 설정 가이드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
안젤라 애커만.베카 푸글리시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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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에 관한 한 갈등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위대한 이야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핑핑 돌아가는 장애물, 방해, 난제를 제시해야 한다. 각 이야기의 순간순간은 도입하는 문제로 인해 참신해진다. 그렇다고 갈등을 닥치는 대로 던져 넣거나 구조가 결여되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마찰과 대립은 이야기에 복무해야 하고, 난제는 캐릭터를 시험하는 의미심장한 것이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각 이야기는 중심 갈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플롯 형식의 수가 제한되어 있듯, 갈등을 위한 기존의 문학 형식도 정해진 몇 가지가 있다.         p.20~21

 

윌북에서 출간되는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를 흥미롭게 읽어 오고 있다. 여타의 글쓰기 관련 작법서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실전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디테일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사전>에서는 캐릭터가 겪을 수 있는 118가지의 트라우마 종류를 소개하고, 그로 인해 캐릭터가 겪는 감정과 행동은 물론, 상처를 악화시킬 만한 사건과 극복할 기회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디테일 사전>은 도시와 시골 편으로 별도로 출간되었는데, 생생한 배경을 연출할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들과 다양한 기법 등을 풍부한 예문과 함께 작가들이 배경으로 삼을 만한 장소들을 총망라했다.

 

<캐릭터 직업 사전>에서는 캐릭터를 구상할 때, 등장인물에 좀 더 디테일한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싶을 때 필요한 인물의 직업을 둘러싼 모든 설정들을 한데 집약했다. 이 시리즈는 상상 속 인물에게 현실성을 입히고, 이야기의 개연성을 업그레이드시키며, 높은 몰입도를 선사할 수 있는 디테일의 끝판왕이자 백과사전이며, 작가들을 위한 실전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가들이 옆에 두고 읽으면서 글쓰기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 시리즈는 독자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특히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시리즈를 통해서 허구의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공감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나 역시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한 권씩 모으고 있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점 하나, 갈등은 이야기를 앞으로 진행시켜야 한다. 작가가 뒤쫓고 싶어 할 만한 흥미롭고 강력한 시나리오는 많지만, 스토리텔링의 모든 측면이 그러하듯,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자신(자신의 흥미와 욕망)을 캐릭터와 이야기에 투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술에 취해 싸우는 장면을 쓰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난투극이 주인공에게 있을 법한 장면인가? 그 장면은 약점이나 욕구 등 캐릭터에 대해 뭔가 드러내는가? 아니면 그저 지루한 장면에 '양념을 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를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p.102

 

이번 신작 <딜레마 사전>은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갈등과 딜레마 양상을 집약한 책이다. 현실에서는 누구나 질색하며 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갈등이지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라면 문제가 다르다.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온갖 곤경과 중상모략이 난무하고, 예측 불가능한 갈등이 넘칠수록 더 이야기에 빠져들어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인간사의 온갖 고통과 고뇌, 수많은 갈등 양상과 그 속에서 비롯되는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모두 담겨 있다. 가정 폭력, 결혼 강요, 배신당하거나 버림을 받고, 배우자나 연인이 바람을 피우고, 불륜이나 부정을 들키며, 거짓말을 들키고, 자동차 사고를 내거나 실수로 일을 망치며, 아이가 아프거나 직장을 잃는 등 바로 장면에 적용해도 될만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예시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작가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당장이라도 소설을 쓰고 싶어질 것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현업 작가들이라면, 책장에 꼭 구비해두어야 할 책인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갈등 유형 110가지만 완벽하게 마스터하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갈등과 딜레마 상황에 대해 통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도무지 풀리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캐릭터에게 설득력을 부여하고, 서사를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소설, 시나리오, 드라마, 웹소설 등 기성 작가들에게도, 혹은 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 지망생에게도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나처럼 독자 입장에서 소설의 구조를 파악하고, 캐릭터의 성격을 분석하는 등 더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이야기를 즐기고 싶을 경우에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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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릿 트레인 - 영화 원작소설 무비 에디션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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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학교에서는 틀림없이 남을 믿으라고 가르칠 줄 알았어. 성선설을 부르짖는 줄 알았다고."
"왜요?" 라고 묻는 소년은 '성선설'이라는 말뜻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난 얼마 전에야 마리아한테 배웠는데, 하는 생각에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그건 어느 쪽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뇨, 선이나 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p.121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으로 데드풀 감독 X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불릿 트레인> 원작소설이다. 기존에는 원제인 <마리아비틀>로 출간되었으나, 영화 개봉을 기념하여 영화 제목과 동일한 ‘불릿 트레인’으로 제목을 변경하고, 영화 포스터를 표지로 한 특별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무비 에디션을 위해 특별히 ‘불릿 트레인 티켓’ 독서카드용 책갈피를 제작하였으며 이사카 고타로가 한국 팬들을 위한 특별 친필 메시지를 남겼으니, 작가와 영화의 팬이라면 소장용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킬러 시리즈'는 <그래스호퍼>, <불릿 트레인>, <악스>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그래스호퍼>는 냉혹한 살인청부업자들과 아내의 복수를 꿈꾸는 어수룩한 전직 수학 교사 스즈키의 쫓고 쫓기는 하드보일드 느와르였고, <불릿 트레인>은 생사를 헤매는 아들을 위해 놓았던 총을 다시 잡은 남자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기묘한 킬러 콤비 등 여러 인물들이 우연과 필연 끝에 절묘하게 얽히는 액션 활극이다. <악스>는 겉보기엔 평범한 영업사원이지만 실제로는 베테랑 킬러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청부살인업계에서 은퇴해 떳떳한 가장이 되고자 하는 꿈과 그러려면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해 살인을 계속하게 되는 딜레마 사이에서 고민하는 킬러의 일상을 그렸다.

 

 

 

"저어, 형.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왕자가 별안간 그런 질문을 던졌다... "전부터 이상했어요. 안 그래요? 전쟁 같은 데서 사람을 죽이고 사형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살인은 안 된다니."
"지금 막 사람을 쏜 나한테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우습군... 잘 들어.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살해되고 싶지 않은 녀석들이 만든 규칙일 뿐이야.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보호받고 싶은 녀석들이 만든 거지. 나한테 묻는다면, 살해되고 싶지 않으면 살해되지 않게 처신하면 된다. 남에게 원한을 사지 않는다거나 신체를 단련한다거나. 방법은 여러 가지야. 너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테고."     p.460~461

 

왕년에는 킬러였지만 현재는 한낱 알콜 중독자에 불과한 ‘기무라’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도쿄에서 모리오카로 향하는 신칸센 하야테에 오른다. 여섯 살 어린아이를 백화점 옥상에서 떠밀어 중태에 빠뜨린 소년 ‘왕자’를 찾아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영악한 왕자가 오히려 기무라의 행동을 예측해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기무라는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자리에 묶인 채로 앉혀 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편 콤비 킬러인 '밀감'과 '레몬'은 인질로 잡혔던 보스의 아들을 무사히 구하고 몸값이 든 검은 트렁크를 들고 하야테에 탑승하지만, 짐 보관소 선반에 올려둔 트렁크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그들이 사라진 트렁크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사이, 보스의 아들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자, 그렇게 종착역까지 남은 시간은 단 2시간 30분! 사이코패스 왕자의 잔꾀에 이들은 우연과 필연으로 얽히면서 모두들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과연 밀폐된 기차 안에서 이들 중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이 작품은 킬러가 등장하는 여타의 추리, 스릴러 장르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이사카 고타로만이 그려낼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단어 그대로 너무도 '인간적인' 킬러가 등장하는 작품은 만나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을 '인간적'이라고 설명하는 것부터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냉혹한 킬러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긴 하지만, 잔인하거나 폭력적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저 킬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회와 인간이 안고 있는 어둠과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읽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위트와 유머에서 비롯되는 재미도 여전하고, 전문 킬러가 등장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의 매력도 훌륭하다. 행운과 불행, 우연과 필연, 선과 악이 교차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흥미로운 구성을 만들어 내고, 질주하는 기차 안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의 긴장감이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의 오랜만의 주연작이기도 해서 영상화된 버전도 기대가 된다. 스피디한 이야기와 위트 있는 대사, 치밀한 구성과 폐쇄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역시 영화의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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