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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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고상한 비극에서 감동적인 역할을, 우아한 희극에서 쉽고 간단한 역할을, 익살극에서 쾌활한 역할을 맡을 때, '운명'이라는 무대 감독은 왜 내게 포경선 선원이라는 초라한 역할을 맡겼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가장 결정적인 동기는 거대한 고래 자체의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었다. 경이롭고 신비한 그 괴물은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덩치가 섬만 한 고래가 헤엄치는 거칠고 먼 바다, 그 고래가 가져오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위험들, 게다가 파타고니아에서 고래를 보고 그 소리를 들었다는 무수한 목격담, 이런 것들이 바다를 향한 나의 소망에 불을 붙였다.         p.42

 

이슈메일은 몇 년 전 돈이 다 떨어져가고, 육지에 딱히 흥미로운 일도 없어, 배를 타고 나가서 세상의 바다를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고래잡이배인 포경선을 타기로 한 것은 거대한 고래에 대한 매혹때문이기도 했고, 머나먼 것들을 끊임없이 동경하고 갈망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래잡이라는 고난과 형벌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머무르는 뉴베드퍼드에 도착한다. 황량한 거리 한 켠에 괴상하게 생긴 물보라 여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두개골 장사꾼인 작살잡이와 한 방을 쓰게 된다. 온 몸이 이상한 문신으로 뒤덮인 야만인인 그가 두려웠지만 함께 지내며 차츰 허물없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 사이가 되었고, 그와 함께 배에 오르게 된다.

 

 

그들이 탄 배의 선장 에이해브는 다리가 한쪽밖에 없는 인물로, 오래 전 고래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 배를 산산조각 내온 고래들 가운데 가장 괴물 같은 놈이 선장의 다리를 물어뜯고 삼켜버린 것이다. 에이브해는 흰 고래 모비 딕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항해를 하는 중이었다. 에이브해는 선원들을 모아놓고 말한다. 16달러짜리 금화를 걸고, 흰 고래가 나타나는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하는 이에게 보상으로 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니 눈알이 빠지도록 흰 고래를 찾으라고, 흰 물결을 놓치지 말고, 흰 거품만 보여도 큰 소리로 외치라고 말이다. 그는 자신을 영원히 불쌍한 절름발이 느림보처럼 살게 만든 모비딕을 저주했다.

 

 

에이해브는 그 사악한 힘에 굴복하거나 숭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친 듯이 날뛰며 모든 악의 근원이 흰 고래라고 생각했고, 불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논과의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한번 놈과 정면으로 맞붙으려 했다. 사람을 가장 미치게 하고 괴롭히는 모든 것, 가라앉은 앙금을 휘저어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 악의를 내포한 모든 진실, 근육을 못 쓰게 하고 머리를 굳게 하는 모든 것, 삶과 생각 속에 교묘하게 작용하는 악마성 등 모든 악이 광분하는 에이해브에게는 모비 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되었고 이제 그놈을 공격해 죽이기만 하면 되었다.         p.246

 

모비딕에 대한 복수심에 휩싸여 점점 더 광기를 발산하는 에이해브 선장과 완전히 정반대 지점에 있는 것은 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의 일등 항해서 스타벅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더라도 모비딕을 추격할 거라는 에이해브에게 스타벅은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한테 복수라니 미친 짓이라고, 녀석은 그저 맹목적인 본능으로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항해 중에 혹시 모비딕을 마주친다면 당연히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건 향유고래를 잡기 위해서지 선장님의 복수를 대신 해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래에 대한 증오심에 휩싸여 있는 선장에게 스타벅의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에이해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수단은 모두 온당하지만 동기와 목적이 미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편집광적 증상은 다리를 잃었던 순간 즉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소설은 그의 숨겨진 자아가 미쳐 날뛰며, 광기로 깊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그로인해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에이해브 선장이 될 수도 있었다고, 흰 고래가 상징하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할 수도 있는 무언가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출간된 <모비딕>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국내 최초 ‘레이먼드 비숍’ 목판화 일러스트 29점을 수록한 완역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책의 시작 부분에는 이 작품의 이해를 돕는 당시의 판화들 수록해, 현대의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19세기 포경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자의 꼼꼼한 각주와 이 작품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한 역자 해제 역시 <모비딕>을 더욱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모비딕>을 해양모험소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면, 제대로 된 번역으로 만나는 이 작품을 통해 풍부한 은유와 철학적 탐구, 그리고 기존에 없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형식에서 감탄하게 읽게 될 것 같다. 허먼 멜빌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어 쓰인 작품이라 바다 생활과 당시의 포경업 전반에 대한 묘사도 매우 생생하고 디테일하다. 얼마 전에 종영된 드라마 덕분에 <모비딕>과 고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불후의 고전인 이 작품을 읽어보기에 딱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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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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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p.46

 

최근에 허지웅 작가의 신작 에세이를 읽으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번에는 그의 바로 전작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 사실 이 작품은 2년 전 출간 당시 가제본으로 먼저 읽었었다. 그 2년 동안 팬데믹이 온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당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에세이를 재독하는 경우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별로 없는 편인데, 재미있는 건 다시 읽었을 때 밑줄 긋고 싶은 대목들이 달라지는 건 대부분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고 싶은 페이지가 달라져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허지웅 작가가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으로 2년 간의 암 투병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발표했던 작품이다. 2년간의 암 투병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방송을 봤다. 예민하고, 까칠했던 모습들 대신 둥글어지고, 다소 편해진 그의 태도와 말투를 보면서 조금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첫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그 무엇보다도 '버티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명제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6년 뒤, 암 투병을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바로 그것 때문에 그가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맞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그걸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 반면 누군가는 끝내 평가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한다.         p.141

 

살면서 누구나 그런 적이 있을 것이다. 망했는데, 싶은 기분이 드는 그런 순간 말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고, 그 순간을 모면하거나 도망칠 수도 없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이 들어 막막할 때 말이다. 이제 나는 끝났다 싶거나, 사는 게 다 지긋지긋해지거나, 그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은 말한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살아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서른 살 이후로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해 본 기억이 없는 그가, 요가를 시작했고 그만두지 않고 열심히 하는 중이다. 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잘 할 수도 없는 것을 지치지 않고 성실하게 말이다.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라는 그의 말이 너무도 진정성있게 느껴져서 잠시 먹먹해졌다. 크게 한 번 감기나 열병만 앓고 일어나도, 세상에 다르게 보이게 마련인데 생사를 오가는 시련을 겪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상투적인 위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바른 말만 늘어 놓는 게 아니라 더 인상적이었다. 죽음과의 사투 끝에 삶으로 돌아온 그가 힘겨운 현실에 시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조언과 오늘도 버티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지금 여기 공동체의 이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의 신작 <최소한의 이웃>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전작인 <살고 싶다는 농담>을 통해 조금 더 개인적인,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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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말들 - 인생에 질문이 찾아온 순간,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
태지원 지음 / 클랩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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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을 하면 우아한 일상이 이어질 거라 막연히 기대한 적이 있었다. 역시 그런 건 상상일 뿐이었다. TV 소음이나 아이의 게임기 소리를 견뎌가며 타자를 두드리는 게 일상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도서관 자료실에 앉아 기세 좋게 책을 열 권쯤 꺼내와서는 책상에 엎드려 낮잠만 두 시간 자다 집에 온 날도 있다. 이쯤 되니 합리적 의심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화사하고 우아하게 삶을 누리는 비법을 나만 모르고 있는 건가? 인생의 밝은 볕이 드는 장소를 나만 제대로 못 찾고 있는 거 아닌가?            p.54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으로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던 태지원 작가의 두 번째 명화 인문 에세이가 나왔다.  ‘유랑선생’이라는 필명으로 매주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가 지난 2년간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이 책은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그림이 건네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어릴 때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의연하고 겸허한 태도를 가지며, 흔들림 없이 살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어른이 되는 건 혼란 속에서 삶이 던지는 어려운 질문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흔들리는 과정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쉽지 않은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그림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답을 찾았었는데, 그 과정을 고스란히 글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재능이 없다면 꿈을 접어야 할까? 작가는 재능에 대한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마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바라본다. 화가로서의 재능이 충분치 않다는 냉정한 선고에도 불구하고, 쉽게 굴하지 않았기에 재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그녀의 삶과 예술 작품들을 보며 재능의 유무로 자신을 섣불리 재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존감의 중요성을 말하는 세상 속에서 온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건 대체 뭘 이야기하는 걸까 고민이었을 때는, 프랑스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작품을 살펴본다. 그리고 삶의 고통을 그림과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예술가였던 그의 생과 작품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자세를 배운다.

 

 

인생의 바닥을 헤집는 순간이 있다. 삶이 엉망으로 꼬여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시기, 어느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시기가 이따금 돌아온다. 무생물처럼 아무런 자극과 상처 없이 살아가는 게 소원이 되는 시기도 있다. 그 순간 경험하는 우리의 모든 시련과 고통, 허약한 마음은 무의미한 것일까. 어쩌면 시련과 고통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조차 일종의 깨달음 아닐까.       p.296~297

 

연차가 쌓이고 직장 생활을 오래 할수록 처음에 다짐했던 마음들이 무너져가고, 어느 날 돌아보니 독선적이던 옛 동료의 모습에 가까워진 나를 발견하고는 클로드 모네를 떠올린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음을 그림으로 선언한 화가인 모네는 모든 순간의 인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하물며 풍경과 사물의 인상도 그러한데, 자신의 논리가 유일한 답이라 밀어붙이는 꼰대가 되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모네의 그림을 보면서 자연스레 드는 것이다. 한 가지 색깔을 영원히 고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넓히려는 시도도 필요해진다. 그림을 통해 다양한 세계의 맥락을 이해하고, 내 안의 좁은 세계를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삶의 수많은 고민들을 그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칼 라르손, 폴 세잔,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아킨 소로야, 마르셀 뒤샹, 디에고 리베라 등등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의 삶은 의외로 우리의 일상적인 고민들과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의 삶과 그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고민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현실이 버거울 때는 앞날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오늘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을 건네고,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연연하며 순간 스쳐가는 숫자에 휘둘리고 주눅이 들 때는,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나만의 승리를 쌓아가며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도록 기운을 북돋워 준다.

 

사는 게 놀이터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삶의 매 순간마다 각자의 고민을 하게 마련이고, 해결이 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또 매일을 견디고, 버티며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이따금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일처럼 느껴질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막막해지는 순간, 이 책을 만나 보자. 화가들의 삶과 그림 속 인물들이 건네는 말들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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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의 좌표를 내리그은 최초의 이정표, 페미니즘 비평의 시대를 연 최초의 책, 문학 읽기의 새로운 길을 연 현대의고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미국 출간 43년 만에, 한국어판 출간 13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제인 오스틴에서 에밀리 디킨슨까지, 존 밀턴에서 월트 휘트먼까지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한 영미 여성 문학사! 너무너무 기대된다! ‘다락방의 미친 독자’ 라는 귀여운 이름의 서포터즈로 한 달 동안 이 책을 만나 보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는 당황스러운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여성 문인은 자신이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선택에 직면한 여자들이 문학작품을 창조하자 그들의 작품에는 제한된 선택에 대한 강박적 관심뿐 아니라 예외 없이 강박적 감금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p.169

 

이 책의 출발점은 두 저자가 대학에서 함께 가르친 여성문학 수업이었다. 영문학과 교수로 그들은 제인 오스틴과 샬럿 브론테부터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에 이르는 여성들의 작품을 읽으며, 작품들이 지리적 역사적 심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주제와 이미지가 일관적이라는 데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극단적으로 다른 장르에 속하는 여성 문학을 연구할 때도 여성문학의 고유한 전통이라 할 법한 것을 발견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19세기 여성문학을 정밀하게 연구했다. 저자들은 왜 19세기를 파고들게 되었을까? 19세기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등 거인 같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으며,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이 변칙적이거나 이례적이지 않은 최초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1주차에는 1부, 230페이지까지 읽었다. 1부에서는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는 일이란 본래 남성의 활동이라고 생각해왔던 부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아가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여성을 ‘천사’와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 안에 가두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이러한 이미지가 여성의 현실적인 삶뿐만 아니라, 여성이 펜을 들게 된 것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메리 셸리는 브론테가 전복시키려고 애썼던 밀턴의 여성 혐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녀 또한 추방당한 사람의 의지가 내포하는 위험한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메리 셸리의 잃어버린 이브는 괴물이 되었고, '그' 또한 사회 구조에 파괴적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다른 여성 작가들도 밀턴의 악령과 싸우면서, 이브의 억누를 수 없는 의지를 말살하겠다고 위협했던 가부장제와 그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수단이었던 마녀 같은 분노를 검토했다.         p.552

 

2주차에는 2부와 3부, 554페이지까지 읽었다. 2부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3부에서는 밀턴의 악령에서 시작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당대에 통속 소설로 마크 트웨인을 비롯한 남성 작가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D.H. 로런스는 오스틴에 대해 '매우 불쾌하고 형편없고 인색하고 속물적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적'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해 끈질기게 보여주었다. 3부에 접어들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여자를 기껏해야 남에게 봉사하는 이차적 존재, 아이를 낳거나 아담의 사려 깊은 안내에 따라 나뭇가지를 다듬는 참회하는 이브로 여겼던 밀턴의 악령이 여성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3주차에 만나게 될 4부에서는 샬럿 브론테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분석해 볼 예정이라, 서둘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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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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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여유와 관용, 무엇보다 유머를 가지고 대응할 줄 아는 모습이 너무나 드물고 귀했습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이 거창한 게 아닐 겁니다. 꼭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은 편이나 가족이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이해받고 싶은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 그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의 전모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p.128

 

방송인, 영화평론가, 작가인 허지웅은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으로 2년 간의 암 투병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책을 썼었다. 죽음과의 사투 끝에 삶으로 돌아온 그가 힘겨운 현실에 시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조언과 오늘도 버티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년, 코로나19의 살풍경이 시작될 때부터 거리두기를 중단한 현재까지 보고 듣고 읽고 만난 세상을 담은 신간을 펴냈다. 전작이 생사를 오가는 시련을 겪어낸 자신의 일상에서 비롯되어 삶의 바닥에서도 괜찮다고 버티라는 조언을 건넸었다면, 이번 신작은 '지금 여기 공동체의 이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이 더 높아졌고 두꺼워졌다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물론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전에도, 이웃들 간의 불신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긴 하지만 말이다. 도시의 풍경은 점점 삭막해지고, 우리는 바로 옆 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채로 일상을 살고 있다. 이웃간의 왕래라는 말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 버린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이야말로 지금 같은 시기에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작가는 바로 그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이 거창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꼭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은 편이나 가족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그저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만 있으면 된다고 말이다.

 

 

 

흑역사를 아예 없는 셈 치고 지워버리기보다, 우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극복하고 대화하며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토미노의 메시지는 밝은 과거와 어두운 과거를 구별하고 그걸 다시 진짜 과거와 가짜 과거로 나누고 싶어 하는 현실의 흔한 유혹 앞에서 유독 빛을 발합니다. 어제의 우리를 미워하거나 미화하기보다, 일어난 일을 일어난 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우선되어야 더 나은 내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흑역사란 수치와 침묵의 대상이 아닌 미래에 관한 중요한 지도이자 힌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p.230

 

SNS에서 누군가 올린 글을 보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지하철에서 한 장애인이 움직이기 위해서 옆에 있던 분에게 조금 비켜달라고 말을 했는데, 그걸 보고는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려가 당연한 거냐고, 장애인이 유세냐면서 화를 냈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분리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장애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이지 않을까. 이 책에 수록된 러시즘에서 갑질 사건, 학교폭력, 의전 공화국 문제, 구급대원 폭행 문제, 비혼모 문제 등도 마찬가지이다. 원칙과 상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는 공동의 선을 위해 크고 작은 희생을 감수하여 공동체가 서로 노력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의지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가장 꼴 보기 싫은 이웃에게 베푼 배려가 언젠가 나를 살리는 동아줄로 돌아오리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결국 서로 돕고 기대어 살 때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며 '당연한 것들을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빌며 살기 위해서 최소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사회적 불의에 대해 모른 척 하지 않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잊어 버리지 않고, 서로가 최소한 지켜야 할 기본과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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