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 유병재 대본집
유병재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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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은 쿠팡플레이에서 12부작으로 방영된 시트콤 드라마이다.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 제작진과 신하균 주연, 유병재 극본으로 화제를 모았고,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정욕구와 허세로만 이루어진 CEO를 중심으로 전직원이 은은하게 돌아있는 스타트업 기업인 맥콤. 습관적으로 피보팅(pivoting)을 일삼는, 이게 회사인가 싶은 회사이다. 피보팅이란 사업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용어인데, 스타트업에서 피보팅이야말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맥콤의 CEO인 스티브는 벌써 여덟 번째 피보팅을 선언하고 있는 참이다.

 

 

수평 문화를 위해 영어 이름을 쓰면서도 '압존법'을 강요하고, 야근 금지로 오후 5시에 불을 끄지만 다들 어두운 사무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감당하지도 못할 사내 반말 문화를 도입하고, 기업 내 화폐를 만들고 유통해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언뜻 보기엔 말도 안 되는 모양새에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진심인, 어딘가 부족하고 귀여운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스타트업 분투기는 유쾌하고, 감동적이고, 공감되고, 빵빵 터진다. 유병재 작가 특유의 블랙 코미디, B급 대사들이 직장생활의 모순을 리얼하게 풍자해내고 있어 스타트업 종사자들, 그리고 모든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수석으로 카이스트에 들어가 전도유망한 IT 회사에 입사했지만, 버블 붕괴 이후 회사는 망해버렸고, 친한 형과 창업을 해 성공했지만 지분을 적게 가지고 있던 탓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그 과정에 아내에게는 이혼도 당한 스티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창업에 도전해 맥콤을 만들었지만 습관적인 피보팅으로 팀원들을 괴롭히고 있는 중이다. 허세 가득에 어딘가 똘끼도 충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스펙은 좀 모자라지만, 회사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일하는 사람인 애슐리는 30억을 벌어서 조기 은퇴하는 것이 목표이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스티브로부터 허세 섞인 입사 제안을 받고 맥콤에 온 능력자 제이는 외모도, 스펙도 훌륭하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그 외에도 인터넷 가십에 죽고 못 사는 귀여운 사랑꾼 캐롤과 지식과 센스는 부족하지만 외모로 열일하는 필립, 개발팀 곽성범, 인사팀 모니카, 비서 제시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유쾌한 시너지를 빚어 내며 매 회마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유니콘 오리지널 대본집에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사건과 상황을 만들고 유머를 떠올릴 때마다 작가가 직접 갈겨쓴 미공개 아이디어 스케치와 초기 기획안이 매 회마다 수록되어 있어 재미를 더해주니 드라마의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대사를 활용한 고화질의 화보와 비하인드 스틸 등 40여 점을 포함해 볼거리를 풍성하게 채운 두툼한 양장본이라 소장용으로도 그만이다. 초판 한정으로 받을 수 있는 <작지만 유병재 등신대>와 <대사 스티커 2종 세트>도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K-직장인의 취향과 현실을 ‘저격했다’는 호평을 받은 드라마 <유니콘>을 책으로 만나보자. 등장만으로도 웃음과 기대를 주는, 믿고 보는 코미디언에서 작가라는 ‘본캐’로 돌아온 유병재 작가의 진짜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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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1권 퀀텀 독서법 - 하루 30분 3주면 된다!, 개정증보판
김병완 지음 / 청림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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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본 적 있는가? 책과 그 책을 읽는 자기 자신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을 해본 적 있는가? 책을 온종일 읽어도 피곤하지 않고 읽을수록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을 경험한 적 있는가? 식사 시간을 훨씬 넘겨도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고 시간이 너무 빨리 휙휙 지나가는 것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책 읽기를 방해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가져본 적 있는가?        p.87

 

저자는 삼성전자에서 휴대폰 연구원으로 11년 동안 일을 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3년 동안 도서관에 칩거하다시피 하며 '1000일 독서'를 실천한 뒤,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당시 그가 읽은 책은 무려 1만 권에 달했고,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100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독서법과 책 쓰기를 가르치는 코치가 된 것이다.

 

한국인들의 평균 독서력은 500~900CPM으로, 평균 1분에 500~900자를 읽는 속도이다. 이렇게 하면 250페이지 일반 단행본 기준으로 책 1권을 읽는 데 5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퀀텀 독서법은 한 시간에 한 권 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한다. 빨리 읽으면서도, 깊이 있게,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저자의 말대로 200~25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60~90분 사이에 읽을 수 있다면, 하루 종일 5~10권 정도 읽어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어떤 독서법이길래 이렇게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걸까. 퀀텀 리딩의 목표는 뇌의 왜곡이다. 뇌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뇌를 왜곡해서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독서 인자들을 깨워 책을 잘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퀀텀 리딩의 두 가지 핵심 원리는 '공감각'과 '초공간'이다.

 

 

 

절대 독서의 질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양이 되어야 그 후에 질이 된다. 양의 독서가 먼저다. 수천 권의 책을 읽은 후에야 단 한 권의 책을 읽어도 수준 높은 질의 독서가 가능하다. 양이 되지 않고, 처음부터 질의 독서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초등학생이 수학 공부도 하지 않고, 미적분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저 몇십 권, 몇백 권의 독서량을 가진 사람이 질의 독서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서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p.248

 

다양한 읽기 방법으로 뇌의 서로 다른 복합적인 감각들이 통합적으로 작동하게 해 독서력을 극대화시키는 공감각 리딩 훈련법도 흥미로웠고, 딥 씽킹을 위해서 필요한 공감각적 훈련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기존에 책을 빨리 읽는 방법으로 알려진 패스트 리딩이나 속독법이 아니라는 점이 특히 놀라웠는데, 저자의 말처럼 너무 빠른 속독은 활자만을 취하는 빈약하고 피상적인 독서로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깊이 있게 읽고, 우리의 사고력을 향상시키면서, 속도도 빨라진다면, 그야말로 궁극의 독서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5가지 퀀텀 리딩 스킬을 하나씩 차근차근 연습한다면 3주 안에 독서력이 월등히 향상되는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니, 특히나 독서 초보들에게 적극 권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평범한 초보 독서가가 단 2~3주 만에 원 페이지를 한 번에 읽고 이해하는 원 페이지 리더로 단숨에 도약하는 믿기 힘든 일이 퀀텀 독서법 수업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하니 말이다. 평소 뇌의 상태로 책을 읽으면 속도나 이해력이 뒷받침될 수 없기 때문에 뇌를 순간적으로 초공간 상태로 만들어 독서력을 급격하게 높이는 초공간 리딩 훈련법도 한번쯤 따라 해볼만한 스킬이 아닌가 싶다. 이 책과 함께 하루 30분씩 3주 훈련이면 현재 자신의 독서력에서 적게는 3배, 많게는 333배 이상 독서력 향상이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서 방법에 관한 책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만, 이 책의 특징은 뚜렷하게 독서력을 비약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데 있다. 생각보다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반대로 책을 많이 읽지만 늘 시간이 부족해서 효율적인 독서를 못하는 이들도 있다. 퀀텀 리딩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방법이다. 하루 30분, 딱 3주만 당신도 바뀔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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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2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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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 방송월드에서 살아남은 예능생존자의 소름 돋는 현실고증
김주형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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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닌' 방송 일. 끝나면 또 다시 다음 주 방송이 기다리고 있고, 프로그램이란 마치 생명체 같아서 제작하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늘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프로그램 제작에는 정해진 일이 있기는 해도, 그 외의 일들은 명확한 경계가 없다. 기본적으로 정해지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은 당연히 잘 해야 하지만, 아주 자주 '정말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 생긴다... 워라밸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완벽히 붕괴된 밸런스로 목동 신사옥이 내 워크이자 라이프였다.           p.88~89

 

SBS 대표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을 연출했던 시기에 ‘멱PD(멱살 잡고 싶은 PD)’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은 예능 PD 김주형의 첫 번째 에세이이다. <런닝맨>을 끝으로 SBS에서 퇴사한 뒤,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서 한국 최초 오리지널 예능인 [범인은 바로 너!]를 만들었고, 지금도 유튜브, 각종 OTT 등 글로벌 채널을 오가며 다양한 예능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재미있는 지옥’이라 불리는 이 변화무쌍한 예능 콘텐츠 세계에서 20년 동안 예능 PD로 살아온 그의 무모한 도전과 방송가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런닝맨> 제작기와 그 비하인드 스토리, 방송국 퇴사 후 예능 인생 2막, 한국 최초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을 제작하게 된 이야기 등을 들려 준다. <런닝맨>은 김주형 PD의 첫 연출작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막 시작한 신생 주말 예능 프로그램이었다고 하는데, 그 프로그램이 10년을 훌쩍 넘기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인기 예능이 될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이름표 떼기 추격전, 배신 광수, 월요커플, 유임스본드, 능력자, 하로로, 왕코형님 등 <런닝맨>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와 설정, 독특한 세계관과 게임들때문에 나 역시 그 긴 세월 동안 여전히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래서 김주형 PD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이란 게 참 기구하다. 잘되면 정말 좋다. 좋긴 한데, 잘되는 경우에는 끝이 없다. 워라밸 따위는 가슴에 품고 기약 없는 노동 쳇바퀴를 굴려야 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시즌제 프로그램들이 많이 정착을 해서 좀 나아졌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죽어야 끝나는 기구한 예능 프로그램의 운명. 유재석 형을 비롯해 여러 연예인들과 사담을 나누던 자리에서도 이 얘기는 단골이었다.
"우리는 잘 안 돼야 끝나. 잘되면 주구장창 계속 해야 돼."       p.166~167

 

대학 시절, 공대생이었던 저자는 방송국에서 일을 할 것 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3학년 여름에 MBC교양국에서 작가로 일하던 동아리 선배 누나의 부탁으로 외국인들 길거리 인터뷰 아르바이트를 하고, 4학년 때 우연히 '방송국 PD 되기'라는 취업특강을 보게 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S전자 해외마케팅 부문에 지원해 졸업 1년 전에 이미 합격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자공학 전공자가 생뚱맞게 방송 PD라니 소식을 들은 과 후배들도 술렁였지만, 그렇게 최종 합격이 되고는 지사파 방송국 공채 PD가 된 것이다. 입사 후에 교양국과 예능을 두루 거치며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한 방송 플랫폼에서 무수한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는 시대이다. 고작 4개 채널이 방송을 독점하던 그 시절부터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급변하는 방송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국부터 글로벌 OTT까지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며 콘텐츠를 만들어온 현장 PD의 진짜 노하우가 궁금하다면, 예능 PD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고 있다면 재미 지옥에서 살아남은 김주형 PD만의 노하우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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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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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 있는 편을 선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지만, 질병의 종식이란 있을 수 없는 환상이다. 손택의 저술에 크게 감탄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질병을 절대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죽음에 완전히 저항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 온당할 것 가다. 아마 애커의 선택 가운데 몇 가지는 보기보다 현명했을 것이다.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있음을 아는 것, 병에 걸린 것을 그 이전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기 위한 기회로 삼는 것이 그렇다.         p.87

 

<외로운 도시>, <이상한 날씨>에 이은 올리비아 랭의 '자유와 연대' 3부작 완결편이다. 영국 대표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은 회고록과 비평을 유연하게 오가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특히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한 《이상한 날씨》에서 펼친 대담한 논의들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기본권조차 위태로워진 시대를 읽는다. 인간이 누려 마땅한 것들을 환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연대할 것을 촉구해온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치열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다.

 

올리비아 랭은 2015년 난민 위기 때 이 책을 쓰기 시작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집필을 마쳤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몸'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으니, ‘다른 몸’에 가해진 억압과 ‘모든 몸’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자유를 환기하는 이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올리비아 랭은 이 책에서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 운동가, 사상가인 '빌헬름 라이히'를 이야기의 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20세기의 가장 괴상하고도 또 가장 예지적인 사상가였던 그는 프로이트의 애제자이기도 했다. 라이히를 안내자로 삼아 20세기를 관통하는 여정에서 수많은 다른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들의 사유와 투쟁을 만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을 원했다고 말하라. 그것을 위해 싸웠다고 말하라. 그리고 그것이 파탄이 났다고, 사람들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고, 죽었다고 말하라. 자유가 꿈이었다고 말하라.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몸의 종류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증오받지 않고 살해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말하라. 몸이 힘이나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라. 해악이 없는 미래를 상상했다고 말하라. 당신이 실패했다고 말하라. 그 미래를 실현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라.           p.372

 

1973년 3월 14일, 한 젊은 여성이 아이오와 대학 기숙사 자기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봄방학 때였고, 스무 살이었던 그녀는 얼굴과 흉부를 구타당하고, 강간당했고, 질식해 죽었다.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젠더 문제와 성적 자유에 관련된 태도가 다시 한번 급속히 변하던 시기였다.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대법원에서 통과된 지 두 달도 안 되어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신체 내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온갖 폭력과 강간과 구조적 성차별과 배제와 가정 폭력과 학대와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기였다. 물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이다. 여성해방운동이 다루는 몸의 범주에 관한 것들과 저항하고 맞서 싸우는 방식들에 대해서 깊이 있는 사유를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질병과 성, 저항과 감옥 등 몸의 여러 다른 측면들을 살펴보고, 신체적 자유를 이루고 제약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유와 연대 3부작'의 <외로운 도시>, <이상한 날씨>가 에세이처럼 쉽게 잘 읽혔던 것에 비해, 마지막 작품인 <에브리바디>는 인문학적인 사유가 더 풍부해 읽는 것이 결코 수월하진 않다. 그럼에도 올리비아 랭의 빛나는 통찰력이 가장 뚜렷하게 보여지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에,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올리비아 랭은 말한다. 우리의 상처가 켜켜이 쌓인 이곳 지옥에서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유를 향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관통하며, ‘다른 몸’에 가해진 억압과 ‘모든 몸’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자유를 환기하는, ‘자유와 연대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치열한 이야기! 지금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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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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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가장 볼만한 것은 중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해안선, 기상전선, 국경이 좋다. 이런 곳에서는 흥미로운 충돌과 부조화가 일어나며 경계에 서 있으면 어느 한 쪽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양쪽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문화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9년 전 머세드에 처음 갈 때 나는, 내가 조금은 아는 미국의 의료 문화와 내가 전혀 모르는 몽족 문화 사이에서 양측의 십자포화에 피격당하지 않는다면 그 둘을 서로 어떤 식으로든 비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p.18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의 데뷔작으로 국내에는 2010년에 소개되었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은 사실관계에 관한 저자의 전면적인 수정과 새로운 후기를 더한 15주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라오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몽족의 이민자 가족과 미국의 의료 체계 사이의 갈등을 무려 9년에 걸쳐 취재한 르포르타주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1980년대의 미국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2022년 현재에도 사라지지 않은 문제이므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리 부부는 1975년 라오스가 공산 세력에 완전히 넘어가면서 살던 땅을 떠나게 된 15만 몽족 가운데 하나이다. 리 부부의 열네 번째 아이인 리아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현대식 공립병원에서 태어났다. 리 부부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데다 주변에 몽족 언어를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 의학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은 리아가 병원에 자주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몽족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 때문에 병이 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꼽는 병의 가장 큰 원인은 혼을 잃어버려서이다. 특히 신생아의 생명의 혼은 떠나버리기 쉽다고 생각해, 아기를 기를 때 조심하는 부분이 많았다.

 

 

 

메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고? 나는 리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리 부부가 MCMC 의료진과 처음 마주치던 때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통역자는 아무도 없었고 리아의 뇌전증은 폐렴으로 오진되었다. 만일 응급실의 전공의들이 ‘동물 병원 의사’가 되는 대신, 몽족이 믿거나 두려워하거나 바라는 걸 알려고 노력해 애초부터 리 부부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아니면 적어도 신뢰를 짓밟지 않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p.427

 

리아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아파트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놀라 기절하는 일이 생겼다. 리 부부는 리아의 증상을 '코 다 페이'로 보았는데, 이는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는 뜻이다. 이 병은 몽족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한쪽에서는 이 병을 심각하고 위험한 질환으로 받아들이고, 한편에서는 이를 영예로운 병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리아의 발작을 바라보는 리 부부의 태도엔 걱정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리아는 적어도 스무 번의 발작 증세를 보였고, 리 부부는 서구 의술의 효능을 의심했음에도 너무 걱정이 되어 리아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의사 입장에선 리 부부가 딸의 증세를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이미 진단했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고, 리 부부 입장에서는 의사가 리아를 뇌전증으로 진단했으며 그것이 가장 흔한 신경질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아이의 병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치료는 두 문화 사이를 헤매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처방된 약을 제대로 투약하지 않는 리아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리아의 가족들은 리아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을 보며 의사들과 약물을 불신한다. 앤 패디먼은 9년에 걸쳐 이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방대한 문헌 자료를 조사해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문제점을 정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미국 의료진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밤낮없이 애쓰며 최선을 다했고, 리아의 부모 역시 가장 전통적인 몽족 치료법을 병용하길 원했던 것이 리아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으니, 양쪽 누구도 틀렸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좋은 의도와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리아를 중심으로 의사들과 가족들간의 대립과 전쟁으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몽족의 역사가 교차로 진행되는 무겁고,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층층이 쌓인 문화 간 갈등을 이렇게 진지하면서, 생동감있게 그려내는 앤 패디먼의 글솜씨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다양한 문화의 소통을 위해 한번쯤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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