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 1~5 세트 - 전5권 - RETRO PAN
김혜린 지음 / 거북이북스(북소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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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에 첫 연재를 시작한 <테르미도르>가 3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출간되었다. 김혜린 작가는 1983년에 데뷔작 <북해의 별>을 5년에 걸쳐 완간했고, 1988년 무협만화 <비천무>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테르미도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북해의 별>이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혁명의 이상을 그렸다면, <테르미도르>는 파리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북이북스에서 RETRO PAN으로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불꽃의 메디아>와 김혜린 작가의 <북해의 별>을 복원해 출간했었다. 이번에 명작 복원 프로젝트 네 번째 작품으로 <테르미도르>가 새롭게 나왔다.

 

 

제목인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력 중의 열월을 의미하는데,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경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유제니와 알뤼느, 줄르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789년 8월 남프랑스의 툴롱, 레몬 나무 숲이 온통 황금색인 태양의 계절이었다. 숲에는 플로비에 후작의 아들 줄르와 솔로뉴 백작의 딸 알뤼느가 함께 있다. 그때 마침 보스코 수도원에서 잡일을 도와주는 여자의 아들 유제니는 레몬 나무 숲에 레몬을 훔치러 왔다가 인부들에게 붙잡힌다. 줄르는 인부들에게 그를 용서해 주라고, 타일러서 보내라고 말하고, 알뤼느는 손수건을 건네지만 유제니는 그들의 호의를 외면하고 도망쳐 버린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파리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그 서막을 열었고, 그 불길이 폭풍노도처럼 지방으로 확산되어 가던 즈음이었다. 줄르는 귀족이었지만 파리에 가서 그들의 반란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다 같은 프랑스 민이라고 생각하는 줄르의 생각을 알뤼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툴롱에도 폭동이 시작되었고, 그 폭도들에 의해 알뤼느의 집이 불타고 부모까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눈 앞에서 그 참상을 목격한 알뤼느는 폭도들의 두목인 엘이 보스코의 유제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그가 혁명의 도시 파리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도 파리로 향하게 된다. 해를 넘기면서 혁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벌써 3년째 유제니를 수소문하고 있었지만 그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클럽에서 가수로 노래를 하며 유제니를 찾던 알뤼느는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복수를 해낼 수 있을까.

 

사생아로 태어나 잡일을 하다가 혁명군의 주역이 된 유제니와 혁명 군중에게 부모를 살해 당해 복수를 꿈꾸는 알뤼느, 그리고 귀족이지만 혁명의 대의에 동참하게 되는 줄르를 중심으로 전쟁과 사랑,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혁명의 현실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김혜린 작가는 80년대에 나왔던 만화잡지를 통해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전설적인 존재이다. 90년대 전성기였던 한국 순정만화로 대표되는 황미나, 신일숙, 김진 작가등과 함께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던 작가이기도 하다. <북해의 별>과 <테르미도르>뿐만 아니라 <비천무>, <불의 검> 등 만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인기 작품들이 모두 김혜린 작가의 손을 통해 탄생한 것들이니 말이다. 주로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시대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도 깊은 여운을 남겨준다.

 

정말 오랜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김혜린 작가의 작품은 그 시절을 향한 향수를 불러옴과 동시에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작화에 새삼 감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3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란 결코 흔치 않다. 그 마법같은 순간을 이 작품을 통해 경험해보길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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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빵 대백과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 / 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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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부터 나의 빵 사랑은 매우 유별났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우리 집이 제과점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빵을 찾아서 먹고 다녔다. 서울의 유명한 빵집들은 물론, 가끔 지방에 내려가면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들을 꼭 먹어보곤 했다. 당연히 해외여행을 가서도 나의 빵지순례는 계속되었다.

 

해외에서 먹었던 다양한 디저트들과 베이커리, 케잌류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편의점에서 팔던 빵이었다. 숙소인 호텔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편의점에 아예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빵들의 맛이 웬만한 베이커리 못지 않았던 거다. 게다가 가격도 얼마나 저렴하던지, 우리 돈으로 천원 정도했던 커다란 곡물 빵이 너무 담백하고 고소해서 여행 기간 내내 아침에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호텔에서 조식을 배불리 먹고 나와서 또 편의점에 들러 빵을 샀는데, 그럼에도 먹을 때마다 맛있어서 감탄했다. 어쩜 이 나라는 편의점 빵 마저 맛있단 말이냐. 싶어서 굉장히 부럽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일본 현지 빵들이 총정리되어 있는 백과사전 혹은 바이블이다. 일본 현지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빵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일본 전역 158개 빵집 또는 빵 제조업체에서 만드는 264종의 빵들이 모두 소개되어 있다.

 

한 고장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 즐겨운 '소울 빵'이 일본 전국 각지에도 존재한다. 두툼한 빵 사이에 휘핑크림을 채운 나가노의 우유빵, 평평하고 둥근 카스텔라 반죽 위에 반원형 빵이 올라간 고치의 모자빵, 작은 식빵에 우유맛 크림을 도톰하게 올린 후쿠시마의 크림박스, 모양도 속 재료도 다른 전국 각지의 샐러드빵, 양배추와 감자칩이 가득 들어간 가나가와의 감자칩빵, 그 외에도 졸린 눈을 한 기린 캐릭터와 함께 40년 넘게 사랑받는 키다리빵,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시마네의 장미빵 등등 정말 많은 종류의 빵들을 만날 수 있다.

 

 

소울 빵에 이어서는 지역에 따라 맛과 모양이 전혀 달라지는 빵들을 소개한다. 크림, 초코, 카스텔라, 양갱 등으로 나눠 다양한 빵들을 소개해준다. 중간에 햄버거 자판기와 토스트 자판기, 학교 매정 빵도 만날 수 있어 재미를 더해주었고, 시대에 따라 달라진 우유 패키지의 모양도 흥미로웠다. 빵 안에 다시마가 숨어 있는 도야마현의 다시마빵, 빵 속에 달걀말이가 통으로 드어간 교토의 다시마키 샌드위치, 된장의 풍미를 살려 식사로도 사랑 받는 된장빵 등 이색적인 종류도 있어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일본에 여행을 가게 되면 먹어보려고 한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사랑받는 동네 빵집들도 만나볼 수 있다. 쌀기름으로 튀긴 빵에 특제 고운팥앙금이 들어간 기름빵으로 유명한 후쿠시마의 기요카와제과제빵점, 튀김 전문점 특유의 진짜배기 맛을 느낄 수 있는 도쿄의 조시야, 부동의 인기를 자랑하는 달걀빵을 만날 수 있는 군마의 아시아제빵소 등 가보고 싶은 곳이 여럿 있었다.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모닝 메뉴들도 따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나 역시 후쿠오카에서 토스트와 커피 등으로 구성된 모닝 메뉴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반가웠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 책에 소개된 빵을 지역, 가게, 제조업체별로 정리한 리스트가 수록되어 있어 찾아보기 편리하게 해두었다.

 

 

홍콩의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비롯해서, 괌에서 먹었던 단맛의 극치를 보여주는 끝장나게 달콤했던 시나몬 롤,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고 은은한 단맛이 인상적이었던 슈크림빵, 오사카에서 먹었던 고소한 풍미에 결이 살아있던 초코크로와상, 교토에서 먹었던 심플한 외관에 비해 너무 맛있었던 카루네, 대만에서 먹었던 엄청난 크기의 치즈카스테라 등등... 해외 여행을 가서 맛집을 찾아 다니는 거야 다들 하는 거지만, 나는 항상 빼놓지 않고 빵 투어를 다니곤 한다. 나처럼 일부러 빵을 찾아 다닐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각 지역의 대표 빵들을 모조리 만날 수 있는 책이니 말이다.

 

앞으로 일본 여행을 갈 때는 이 책을 꼭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나 현지의 빵 정보가 가득한 책은 아마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빵지순례를 위한 최고의 가이드이자 일본의 빵들을 총집합시킨 바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 이제 이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일본의 어떤 지역으로 가느냐인데, 이 빵도, 저 빵도 다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게 문제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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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르 플랜츠 B.plants - 괴근식물부터 아가베, 박쥐란까지 희귀식물에 대한 모든 것
주부의벗사 엮음, 김슬기 옮김, 고바야시 히로시 외 감수 / 북폴리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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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근식물의 바이블’로 불리는 《비자르 플랜츠(B.plants)》의 첫 공식 한국어판이 나왔다. 괴근식물이란 이름에서 오는 어감부터 뭔가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보통 몸통과 줄기, 뿌리가 한덩어리를 이루어 동그랗게 팽창된 형태를 한 다육식물을 말한다. 덩어리 괴, 뿌리 근자를 쓰는데, 이렇게 진화한 희귀식물들을 가리켜 ‘비자르(bizarre) 플랜츠’란 명칭이 탄생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고온건조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도록 괴근 내부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다. 기묘한 모습으로 희소성이 높고 모양이 독특해 최근에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식물의 종류이다.

 

 

이 책은 식물 애호가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의 인기 원예 전문지로, 무려 155개의 희귀 품종을 다루고 있다. 희귀식물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괴근식물, 아가베, 박쥐란, 파키포디움을 중심으로 기초 상식부터 물주기, 온도, 생장 사이클, 루팅 등 재배 방법은 물론, 업계 전문가들의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볼거리와 정보를 폭넓게 담았다.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놀라운 식물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책이었다. 모양이 너무 특이하고, 평범하지 않아서 결코 일반적인 의미로 아름답다고 하기 힘든 식물들도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매혹적인 느낌이라 희귀식물의 세계는 정말 기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부터 플랜테리어가 유행하면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 졌지만, 사실 식물을 돌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햇빛을 많이 보게 해주고, 물만 잘 주면 살겠지 싶겠지만 식물마다 필요한 환경이 달라서 제대로 키워내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제대로 키워내기 시작했다면 점점 더 식물들이 늘어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때 딱 관심이 가는 것이 바로 특별한 나만의 식물이 아닐까 싶다. 평범하지 않은, 더 다양한 식물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어질테니 말이다.

 

예전에는 공기정화식물로 대표되는 관엽식물과 행잉식물들이 사랑을 받았다면, 최근 트렌드로 ‘힙하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주로 수입되는 ‘괴근식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식물 도서들에 비해 관련 정보가 아직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이 괴근식물의 바이블로서 아주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이 책이 괴근식물의 바이블로 통하는 이유는 1950년대부터 일본에서 수입 희귀식물들의 유통과 재배 연구를 본격적으로 선도한 고바야시 히로시 국제다육식물협회 회장이 감수를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엮은 주부의벗사 출판사의 편집팀이 직접 발로 뛰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진귀한 사진들을 취합한 동시에 실험을 통해 가설 검증을 거친 정확한 정보들만을 엄선해 정리했기 때문이다. 한국어판은 괴근식물 콜렉터인 번역가를 섭외하고, 희귀 아프리카 식물숍 고어플랜트서울 대표와의 감수 작업을 통해 원서의 명성을 고스란히 되살렸다.

 

이름도 어렵고, 모습도 낯선 희귀식물들이지만, 식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괴근식물을 한 번 키워볼까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독특한 분위기와 강인한 생명력이 내뿜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아우라가 반려식물을 찾는 이들을 사로잡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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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흡혈귀전 : 흡혈귀 원정대 조선 흡혈귀전 3
설흔 지음, 고상미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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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킹덤>에 K-좀비가 있다면, <조선 흡혈귀전>에는 K-흡혈귀가 있다! 이 시리즈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흡혈귀를 물리치는 열두 살 흡혈귀 감별사 소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그 동안 역사 속 인물과 고전을 화소로 삼아 정갈하고도 성찰적인 소설을 써 온 설흔 작가의 역사 판타지 동화이다.

 

1권 <흡혈귀 감별사의 탄생>, 2권 <사라진 장영실과 흡혈귀>에 이어 이번에 3권 <흡혈귀 원정대>가 출간되었다.

 

 

1권에서는 고기를 좋아하는 세종 임금이 수상한 고기를 먹고 나서 흡혈귀로 변해가는 것을 열두 살 여자아이인 여인이 구해내는 과정을 그렸었고, 2권에서는 흡혈귀 감별사 여인이 학자 장영실과 함께 흡혈귀로 변한 탐관오리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보여줬었다. 이번에 나온 3권에서는 본격적으로 흡혈귀들에 맞서기 위해 집현전 지하 연구소에서 흡혈귀 연구소가 탄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 동안 활약했던 여인을 비롯해 여인의 친구인 숙희, 학자인 장영실, 내관, 수석 요리사뿐만 아니라 새로운 등장 인물인 여진족 퉁과 학자 성삼문이 모여 흡혈귀 원정대가 결성된 것이다.

 

임금 앞에서도 또박또박 할 말을 다하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며 흡혈귀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면모를 보여줬던 소녀 여인은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흡혈귀 연구소에서 만나게 된 어른들이 모두 겪었던 한 달 전의 사건을 오늘 새벽에서야 처음 알게 되어, 흡혈귀에 대해 모든 걸 안다고 자신했던 것에 대해 속이 잔뜩 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흡혈귀들과의 대결에 대해서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 없어 한다. 하지만 임금은 그럼에도 여전히 너를 믿는다고, 여인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

 

 

이 시리즈는 생각보다 꽤 오싹하게 만드는 삽화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한다. 물론 매체의 발달로 좀비니, 흡혈귀니 하는 것들을 많이 접해본 탓에 요즘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읽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스무 고개 탐정 시리즈>의 고상미 작가가 그림을 맡아, 짙고 강렬한 연필 선 위에 피와 욕망을 상징하는 붉은색, 빛을 상징하는 노란색, 강조를 나타내는 파란색 등 절제된 몇 가지 색깔로 흡혈귀가 사는 조선 시대를 그려 내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흡혈귀 박쥐 떼가 하늘을 뒤덮는 등 보다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삽화들이 꽤 있다. 표지 이미지만 모아 놓고 보더라도 꽤 섬뜩하다. 하지만 사실 어린이들이 공포물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 호러, 공포 판타지 작품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한 스릴과 재미가 어린이들을 책과 더 가깝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특히나 이 시리즈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을 차용해 이야기를 구성한 판타지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선 흡혈귀전> 시리즈는 세종이라는 역사 속 인물과 흡혈귀 감별사라는 허구적 인물을 등장시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주는 판타지 동화이다. 낯설고 기이한 흡혈귀의 정체만큼이나 독특한 '흡혈귀 감별사'라는 캐릭터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열두 살 소녀는 아버지가 대식국 출신이라 얼굴이 검고, 눈은 파랗다. 하지만 어머니가 조선 사람이고, 조선에서 나고 자라 우리말을 무척 잘한다. 게다가 외할아버지로부터 백정 일을 배워 고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 어린이가 어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이번 작품부터는 함께 힘을 모아 흡혈귀를 물리치기 위해 원정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흡혈귀 감별사의 능력은 저마다 다르고, 아이들은 약한 존재이지만, 사소한 능력도 열 가지가 모이면 그 위력이 달라지는 것처럼 혼자보다는 함께일 때 빛나는 힘에 대해 보여줄 흡혈귀 원정대의 다음 이야기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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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기쁨 - 흐릿한 어둠 속에서 인생의 빛을 발견하는 태도에 관하여
프랭크 브루니 지음, 홍정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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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을 겪고 안개 같은 시야를 경험하며 한동안 내면의 날씨를 감당할 방법을 모색하다 이 근본적 진실을 새로이 음미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앞으로 매끄럽게 나아가는데 나만 삐걱거리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감당하고 있다는, 남들은 토끼풀에 안착했는데 나만 가시덤불에 들어섰다는 믿음. 자기 연민은 대개 이러한 망상에서 나온다.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실은 모든 사람이 언제라도 강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통을 헤쳐나가기 위해 과거에도 노력했고 현재에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p.152

 

이 책의 저자인 프랭크 브루니는 30년 이상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아왔다. 2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간판 칼럼니스트였고, 백악관 담당 기자, 이탈리아 로마 지국장을 역임하고 음식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는 시련이 그를 찾아 온다.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의사는 그에게 손상된 눈이 호전될 가능성도 없으며, 반대쪽 눈이 손상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고, 오랜 연인과 이별하는 등 연이어 불행이 닥치게 된다.

 

물론 누구나, 언제라도 강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서 왜 하필 나인가? 억울해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어째서 나라고 아니겠는가? 라고 말이다. 좌절하고,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시련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닥쳐 온 불행들을 계기로 그 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상실'이 만들어준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그리고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균열들과 가시덤불에 대해서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역경과 장애물, 고통, 절망을 삶 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한 결혼 생활, 자폐증 아들, 자전거 사고, 10여 차례의 수술, 여덟 살 난 아들의 죽음, 심신을 망가뜨리는 두통 등등... 참혹한 사고를 경험했거나 끊이지 않는 통증을 달고 살고 사는 이들이 가까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그들의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그들의 낙관론과 쾌활함이 실로 경이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간의 확신이 무너지는 불안한 인생의 변화를 겪어본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나는 구체적인 단어는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들이 거듭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은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되새겼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새로이 떠올렸다. 나는 이러한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도 자신을 드러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한쪽 눈이 손상되고 다른 눈마저도 손상될 위기에 처했음을 글로 썼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당신에게 활짝 열린다.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고백을 듣게 되고, 나 자신의 여정은 다른 사람들이 공유해준 여정을 통해 타당성을 얻는다.          p.287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 저자는 너무나 귀중하고 빛나는 것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동안 다른 데 열중해 있거나 정신이 팔려서, 또는 심지어 게을러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도보로 불과 몇 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던 센트럴파크의 가치와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던 수천 권의 책들의 의미는 삶의 풍부함을 넘어서 새로운 능력을 경험하고 단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력을 점점 잃어 가면서 세상이 흐릿해지는 것은 여러 불편한 상황들과 일상 속 사소한 일들을 절망으로 이끌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독자인 내가 전부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여러 감각 중에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그 불편함과 막막함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스스로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견디기가 쉽지만은 않을 테니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삶이 시다 못해 쓰디쓴 레몬을 내민대도 당신은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얻은 큰 배움이었다.'라고. 그러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존중하지만,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이 꽤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인생의 고비에 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내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힘든 시련이 닥쳤을 때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은 불행에 잠식되지 않도록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낙관들을 최대한 그러모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저자의 결심과 앞으로의 삶을 응원한다. 삶의 역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그의 삶이 계속 반짝거리기를,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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