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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글 쓰는 일은 굉장히 어려울 거예요."
"오! 지금은 모든 게 다 어렵지. 그렇다 해도 글쓰기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 믿음을 간직하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아."
"주제가 뭐예요?"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싸우고 다시 가까워진다는 이야기."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폴란드를 배경으로 숲속에 숨어 살며 독일 점령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 속에서 부모를 잃은 열네살 소년 야네크와 독일 군인들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몸을 파는 열 여섯살 소녀 조시아, 희망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대학생 빨치산 대원 도브란스키가 주요 인물이다. 전쟁으로 인해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 깊은 숲속에 숨어사는 빨치산들 모두,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다. 전쟁이 계속 되면 사람들은 점차 어떤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싸우게 되니 말이다.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독일은 우리한테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묻는 야네크에게 도브란스키는 절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절망은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떠돌고 있으니까.
열여섯 소녀가 원하는 건 소박하다.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 그런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 어린 소녀에게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열네살 소년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와 배고픔, 희망이 사라진 전쟁의 한 가운데서 음악에 마음을 빼앗길 줄 안다. 쇼팽의 폴로네즈를 듣고 감동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래, 결국 예술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악 앞에서 순수하게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 작은 소년은 무려 전쟁의 한 복판에서 음악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바이올린을 집어들었다. 더러운 누더기를 걸친 아이, 유대인 거주 지역의 학살로 부모를 잃은 유대인 아이가 악취 풍기는 지하실 한가운데 서서 세계와 인간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신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는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더이상 흉하지 않았고, 그의 어설픈 몸은 더이상 우스꽝스럽지 않았다...세계가 혼돈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세계가 조화롭고 순수한 모습을 띠어갔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증오가 사라졌고, 처음 몇 곡에 굶주림과 경멸과 추악함이 달아나버렸다.
밤이고 낮이고 계속 되는 전투. 한 쪽이 이기면 새로운 세계가 과연 열리는 걸까?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얻게 되는 평화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쟁에 희생된 무고한 인명들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단 얘긴데, 어떻게 하면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2차 세계대전이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일본이 항복함으로서 종전되었다는 걸 기억해보자면, 그 긴 시간동안 사람들의 절망이 보이는 거 같아서 마음 한 켠이 싸해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로맹가리의 믿음은 가슴이 울컥해질만큼 멋지다. <사람들은 서로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이어 그 이야기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 그들은 그로써 신화가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유, 존엄성, 형제애, 인간으로서의 명예. 우리 또한 이 숲에서 동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있는 거야.> 극중 인물 중에서 가장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인물인 도브란스키를 통해서 로맹가리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나는 우리의 주인공인 야네크가 결국 도브란스키의 희망에 동화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작품의 후반부에, 이제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모두의 영웅이 실제하지 않는, 민중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라는 것까지 깨닫게 된 그 마지막 대화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열네살 소년이, 더이상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의 목소리로, 그래서 환상이 제거된 목소리로 열여섯 소녀에게 하는 말이란 말이다. 나는 대체 누가 이 어린 소년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었는지, 전쟁이란 이 황폐함이 너무도 원망스럽웠다.
"도브란스키는 번역을 하면서 몇 마디 추가해야 했어. 그들은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거기에 담긴 의미는 결국, 한 사람은 죽었다거나 이제 곧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이지.?
"너 화났구나. 그럴 필요 없어."
"나 화 안 났어, 조시아. 하지만 나는 결국 배우게 되었어.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어. 그들은 우리를 훌륭한 학교에 보냈고, 나는 언제나 훌륭한 학생이었어. 우리는 유명한 교육을 받은 거야. 타데크 흐무라 기억하지? 그는 그것을 우리의 '유럽의 교육'이라고 불렀어.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어. 내가 너무 어렸거든. 그는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아무 데서나 빈정거리고 다녔어. 하지만 나는 이제 알아. 그가 옳았어. 그가 그토록 비꼬아 말했던 그 유럽의 교육이란 바로, 그들이 너희 아버지를 쏠 때, 또는 너 자신이 뭔가 대단한 명분을 내세워 누군가를 죽일 때, 또는 네가 죽도록 굶주리고 있을 때, 또는 네가 마을을 파괴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야. 우리는 훌륭한 학교에 있었어. 우리는 정말 교육되었어."
그리고 그의 이런 변화를 느끼며, 그에게 말을 하는 소녀의 마음은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아.. 나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소녀의 마음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또 가슴이 먹먹해지게 아팠다.
조시아가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너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어째서?"
"왜냐하면 너는 불행하니까.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는 그 무엇도 너를 불행하게 하지 못해. 알겠지, 나도 대단한 걸 배웠어."
나는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결코 불행해졌던 적이 없었던가. 사랑이 한때 내 삶을 구원해줄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물론 삶을 바꾸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의지로 인해서만 달라지는 건 사실이다. 살아가는데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내가 사랑을 믿을 때만이, 사랑이 내가 가야할 길을 이끌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맹가리의 전작들을 아주 어릴 때에 읽었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지금 이 시간까지 온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럽의 교육'은 그의 전작들을 먼지 쌓인 책장에서 다시 꺼내어 읽어보게 만들어주었다.
책장을 덮으려는데, 아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인 늙은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쉰 살이 되면, 그리고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어떤 어린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땐 당신도 이해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가 다소 오만하게 말했다. 모든 사람한테 그런 일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고.
모두가 로맹가리를 좋아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한테 이렇게 멋진 감동의 순간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장담한다. 이 작품을 읽게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소중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로맹가리는 참.. 멋진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