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
홀리 그라마치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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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은 특별히 결혼을 원한 적도, 계획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웨딩드레스 사진을 비밀 폴더에 넣어둔 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아모스랑 사귈 때 잠깐 결혼을 원했지만 그건 결혼식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마음을 정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둘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헤어질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고 싶었다. 엘레나가 약혼했을 때도 '나도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보다 '인생의 숙제를 하나 해치워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p.136


로렌은 친구 엘레나의 결혼 축하 모임을 즐기고 도착한 집에서 낯선 남자와 마주친다.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잠금화면 속 사진이 그 낯선 남자와 자신이었다. 그러고보니 분명 자신의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인테리어가 달라져 있었다. 처음 보는 카펫에 소파의 색상이 바뀌었고, 책의 종류도, 꽂힌 위치도 모두 달랐다. 게다가 자신의 결혼사진까지 있었다. 낯선 남자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던 거다. 자신이 취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딱히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미혼의 로렌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다음 날 잠에서 깼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의 사진첩에는 자신이 그 남자와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지만 모두들 자신이 결혼해서 그 남자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실이 자신이 결혼을 했고, 남편이 있으며, 그 남편이 지금 자신의 집에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남편이 다락방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남편이라며 또 등장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바뀔 때마다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로렌의 직업과 재정 상태 등 삶 전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남편이 어디에서 오는지, 얼마나 많은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로렌은 그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남편들은 국적도, 인종도, 직업도,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다락방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올려 보낸 남편도 있는가 하면 평생 함께하고픈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남편을 계속 바꾸며 재구성되는 인생의 끝엔 뭐가 있는 걸까.





관계가 시작될 무렵,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마치 밀랍을 따뜻한 방 안에 놓으면 말랑해지는 것처럼.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변해간다. 밀랍은 말랑말랑해지면서 삐죽삐죽 튀어나온 부분이 들어가고 조금씩 한 덩어리가 된다. 하지만 서서히 덩어리에 구멍이 생긴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여러 남편들과 지난 6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말랑해지는 순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새로운 남편이 등장하면 그에게 자신을 맞추거나 아예 돌려보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엔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었다. 자신이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삶이 더 나아진다고 느꼈다.            p.301~302


'끝없이 남편을 만들어내는 다락방’이라는 기발한 설정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200명 이상의 남편을 바꾸며 산다는 것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지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공감하고, 웃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수없이 바뀌는 남편에 따라 재구성되는 로렌의 인생이 특히나 관전 포인트였다. 구청에서 근무하다, 대형 철물점 겸 정원용품점에서 관리직으로 일하기도 하고, 살면서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 값비싼 옷들이 가득 걸려 있는 부유한 집에서 비밀번호를 몰라 쩔쩔 매기도 한다. 모두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모른 채 낯선 환경에 던져저서 갑자기 적응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간 관계와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 모든 걸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곤란한 상황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남편을 불러내 새로운 생을 시작하기 위해,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남편을 다락방으로 보내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모든 상황들이 코믹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긴장감 넘치고 스릴감이 가득했다. 


이 작품은 게임 디자이너인 홀리 그라마치오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작가가 게임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캐릭터 설정과 상상력에 있어서 독보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다. 판타지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이야기였고, 결혼과 부부 관계에 대해서 유쾌하면서도 통찰력있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어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새로운 삶을 거듭해서 겪게 되는 것이 재미있어 보이다가도, 이렇게 남편을 계속 바꿔 가며 사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 마음대로 남편을 바꿔 가며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연애와 결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운명의 상대라는 건 우연인 걸까, 수많은 나의 욕망과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일까? 로렌은 다락방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애쓰지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로렌은 자신이 어떤 남편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남편을 바꿔오며 생각한다. 완벽한 남편이란 누구이며, 자신에게 잘 맞는 남편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스토리를 통해 현실 속 인간 관계와 끝없는 선택의 세계를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 관계를 단 한 권의 소설을 통해 만나보고 싶다면, 웃기고 재미있고 중독성있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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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뿌리 직업 체험 3 : 과학자 편 파뿌리 직업 체험 3
이정태 그림, 김혜련 글, 샌드박스 네트워크 감수, 파뿌리 원작 / 겜툰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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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크리에이터 파뿌리의 생생한 직업 체험 학습 만화 그 세 번째 이야기이다. 파뿌리의 직업 체험은 첫 번째 의사 편, 두 번째 법률가 편에 이어 세 번째 과학자 편으로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다. 강호이, 진렬이, 노랭이 세 친구로 이루어진 파뿌리는 무려 171만 구독자에게 사랑받고 있어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캐릭터이다. 직업 체험 만화의 캐릭터로도 실제 성격을 반영해 재미있게 만들었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풍부한 실질적 리더 강호이, 투덜거리면서도 주어진 상황에 진지하게 임하는 열혈 인물 진렬이, 보조 연구원으로 박사님을 열심히 도우며 과학자 체험의 숨은 공신인 노랭이, 그리고 파뿌리가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귀여운 요정 뿌독몬이 있다. 




과학자는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탐구하고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은 크게 순수 과학과 응용과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최근에는 기술 개발과 과학적 발견이 함께 일어나는 때가 많아지면서 두 영역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과학자는 총 네 가지 종류로 구분되어 있다. 여러 자연의 법칙을 알아내는 물리학자, 물질의 구성 성분이나 성질 등을 연구하는 화학자,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생명 과학자, 지구와 그 주위 천체의 환경 등을 연구하는 지구 과학자이다. 이 외에도 천문학자, 고생물학자 등 수많은 분야의 과학자들이 있다. 




연구소에서 과학자 체험을 할 특별 보조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파뿌리가 나선다. 아이스크림이 왜 녹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학 연구소에서 보조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파뿌리는 박사님의 지시에 따라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수상한 실험을 경험하게 된다. 


작은 클립들을 자석에 붙여 쉽게 정리하며 자기력에 대해 배우고, 자가발전 자전거를 통해 에너지 전환을 경험하고, 방귀 속에 들어 있는 수소와 메테인에 대해 배우고, 과자 봉지가 빵빵한 이유에 대해 알게 된다. 재미있는 스토리 중간 중간 중요한 개념들을 정리한 진렬이의 직업 노트, 노랭이의 지식 검색창, 강호이의 호기심 질문 등을 통해 과학의 여러 분야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배워볼 수 있다. 직업 도구 찾기, 다른 그림 찾기 등 쉬어가는 놀이 페이지도 있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최근에 학교에서 진로적성검사를 했다. 각각의 항목별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걸 체크해서 어느 분야에 가장 많은 자질이나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는 검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직은 어른이 되면 어쩐 직업을 가져야 할까?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중요할까? 고민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진로 교육이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각 직업에 대한 경험을 현실적으로 모두 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하니 더 체감이 어려울 것이고 말이다. 


파뿌리의 직업체험 시리즈를 통해서 아이들이 친숙한 캐릭터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직업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그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어떤 정보와 지식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면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도 달라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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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요괴 1 : 천잠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어린이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반려 요괴 1
김영주 지음, 밤코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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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못하는 게 없고, 인기도 많은 쌍둥이 언니 세희에 비해 부끄럼이 많고, 소심한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춤추는 걸 싫어하면서도 언니랑 친구들과 같이 놀고 깊어서 좋아하는 척하며 따라가느라 힘겹다. 그날도 쓰레기 담당이라 조금 늦게 교실에 돌아왔더니 언니랑 친구들이 자신만 빼고 가버려서 서운해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들을 따라 잡기 위해 샛길로 향하다 주희네 아파트 터줏대감인 화단 할아버지를 만난다. 


길을 잃어버린 주희는 화단 할아버지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가다 요괴들이 사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코끼리만 한 고양이 두 마리를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것이 조그만 여자아이인 꼬마와 함께 수상한 오두막으로 간다. 그곳에는 별처럼 많은 반려 요괴들이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꼭 하나를 데려 가야 한다는 거였다. 주희는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을까. 




꼭 강아지 같기도 하고 고양이 같기도 한 나무 말부터 형형색색 보석처럼 등딱지가 반짝이는, 동전처럼 작은 거북이, 도깨비불, 커다란 지렁이, 이제 곧 용이 될 거라는 뱀, 물고기 꼬리를 가진 인어, 하얀 콩과 검은콩으로 만든 병사 등 기괴하고 아름다운 요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어떤 요괴도 주희의 마음에 쏘옥 들지는 않아 고민이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보고 결정해야지 싶은 마음으로 들어선 다음 방에서 검은 천을 씌운 새장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검은 천을 벗기자 새장 안에는 작은 알이 있었다. 짚으로 만든 새 둥지에 놓인 파란 알을 보는 순간 주희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주희는 그 파란 알이 그냥 좋았다.


그렇게 은빛 새장 속 파란 알을 반려 요괴로 맞이하게 된 주희는 집으로 돌아와 파란 알이 든 새장을 자신의 방에 소중히 두고 보살피기 시작한다. 언니나 엄마에게 알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알을 쓰다듬어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낸다. 




이 작품은 100% 어린이의 선택으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반려동물'이 아닌 '반려 요괴'라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면서도 귀여운 작품이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주인공이 반려 요괴를 돌보면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이 이야기는 '반려'의 의미란 무엇인지, 반려가 된다는 것에는 어떤 책임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주희는 알을 쓰다듬으며 손안의 온기가 마치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에 주희는 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춤추는 거 안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자신도 좋아하는 척 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춤이 안 되는 것이 고민이라고. 자신이 춤을 안 좋아한다고 말하면 친구들이 안 놀아 줄 것 같다고 말이다. 춤추는 것보다 꽃밭 가꾸는 게 더 좋다고 말해도 애들이 나랑 친구 해 줄까, 가 고민이었던 주희에게 파란 알은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금이 가더니 새하얀 누에를 보여준다. 작고 귀여운 누에가 점차 자라나서, 주희와 마음이 잘 맞는 반려 요괴가 되어줄까? 




세상의 어떤 생명체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를 돕고, 도움을 받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동물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주희가 처음으로 자신의 반려 요괴를 선택할 때 꼬마는 이렇게 말한다. "한 생명을 데려가는 거잖아. 생명을 맡는데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알고 있냐고." 물론 주희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반려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주희와 비슷할 것이다. 단순히 예쁘고, 귀여워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지, 하나의 생명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다. 이 작품을 읽는 어린이들이 서로의 '반려'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극중 반려 요괴는 반려 인간의 마음을 들으면서 자란다. 덕분에 주희는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 없이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꽤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반려 요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며 주희는 마음에 위안을 얻게 되고, 점차 자신감을 얻어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옛이야기와 현대 이야기를 색다르게 조합해 아주 사랑스러운 판타지 동화가 탄생했다. 앞으로 주희가 반려 요괴 수레지기로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도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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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모몬 스토리 1 - 어둠의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이야기친구
공윤희 지음, 박민주 그림 / 창비교육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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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세민이는 태권도를 다녀와 집에 온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와 아빠 대신 늘 할머니가 집에 계셨는데, 어쩐 일인지 아무도 없다. 이때다 싶어 세민이는 중학생인 오빠 방으로 가서 컴퓨터 앞으로 달려 간다. 평소에는 세민이가 어리다고 못하게 하는 게임을 실컷 하려고 말이다. 아이콘에 그려진 요괴 그림을 보고 단번에 고른 것은 바로 '에모몬 스토리'라는 게임이었다. '예언의 아이'가 되어 감정 요괴인 에모몬을 잡고, 그걸 이용해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알록달록한 에모몬들이 튀어나왔고, 세민이는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실제 게임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버린 세민이는 무사히 미션들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에모몬의 스토리 미션은 총 세가지로 진행된다. 첫 번째 미션은 초등학교 2학년인 준호와 기찬이의 이야기이다. '에모몬 스토리'는 에모몬을 잡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 아니라, 그걸 이용해 미션에 나오는 인물들의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두 친구의 갈등이 심해질 때마다 아이들 몸에서 또 다른 에모몬이 나오곤 했고, 세민이가 잡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에모몬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면 체력이 빠르게 떨어졌고, 결국 체력이 바닥나면 캐릭터가 죽고 게임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속마음을 잘 생각해서, 상황에 맞는 에모몬을 사용해야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다.


두 번째 미션에서는 통통한 지수와 살을 빼라는 가족들의 압박으로 인한 갈등이 등장한다. 엄마와 아빠는 지수가 친구들한테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을까봐 걱정이었고, 동생인 한결이 역시 누나가 무슨 음식을 먹으려고만 해도 눈에 불을 켜고 말리는 중이다. 지수는 날마다 덜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괴로웠고, 식구들은 끊임없이 지수에게 잔소를 퍼부었다. 세민이는 지수와 가족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어둠의 기운 에모몬을 해결할 수 있을까. 




세 번째 미션은 편의점에서 벌어졌다. 대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직원 미진이에게 갑질, 진상 손님들이 들이 닥친다. 다짜고짜 반말을 지껄이며 컵라면을 가져오라는 둥 이런 저런 것들을 시키는 진상 아저씨 손님, 탁자 위에 과자 봉지와 그릇들을 잔뜩 어지러둔 채로 그냥 나가려는 아이들, 빨대와 젓가락을 필요한 양 이상으로 들고 가는 뻔뻔한 아주머니 손님 등 개념없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손님들로부터 아르바이트생인 미진이를 보호할 수 있을까. 편의점 미션은 생각보다 어려워 세민이는 진땀을 빼는데, 과연 편의점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게임 미션이 단순히 몬스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가 생겨나는 배경, 사람들간의 갈등, 나쁜 감정이 만들어내는 요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게임을 싫어하는 어린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게임은 소통의 도구이자 삶의 한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요즘 현실이니 말이다. 그러니 누구나 게임 속 주인공이 되어 모험을 펼치는 상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아이들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시켜준다. 게임과 현실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모험 판타지는 게임 속 미션을 통해 실제 아이들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 준다. 성적과 외모 지상주의에 따른 차별과 자기혐오, 손님의 갑질 등 가상의 세계에서 게임 캐릭터들을 통해 만나는 '진짜 현실'인 셈이다. 에모몬이라는 몬스터 캐릭터를 비롯해서 몬스터볼 요괴아이템, 미션에 따른 보상과 레벨업 등 게임 속 세계관이 구체적으로 구현되어 있어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시리즈는 3권까지 나올 예정이다. 레벨이 올라가면서 세민이는 또 어떤 모험을 펼치게 될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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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건 죽음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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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앤서니 호로위츠의 전직 형사 호손과 소설가 호로위츠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중요한 건 살인>이었고, 두 번째 작품은 <숨겨진 건 죽음>이다. 현지에서는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까지 출간되어 있다. 전편에서 혼자 살던 부유한 노인이 커튼 끈에 목이 졸려 살해당한 사건을 조사했던 두 사람은 이번 작품에서 승승장구하던 이혼 전문 변호사가 와인병에 가격당해 살해되는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들어가면 안 되는 비밀 통로와 공간이라면 나는 예전부터 사족을 못 썼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고급 호텔에 가면 직원용 휴게실로 몰래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비싼 카펫과 샹들리에가 갑자기 사라지고 모든 게 지저분하고 실용적인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 좋았다. 런던 북부의 스탠모어에서는 누이와 함께 울타리 아래로 기어 나가 우리 집 옆에 있던 사무용 단지를 몰래 돌아다녔다. 요즘도 미술관, 백화점, 극장, 전철역에 있으면 잠긴 문 뒤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것이 소설 창작의 훌륭한 정의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잠긴 문을 열고 독자들을 그 너머로 데리고 가는 것.              p.136


소설가인 호로위츠는 TV 드라마를 집필하던 중에 자문 역으로 전직 형사인 호손을 소개받는다. 호손은 런던 경찰청에서 근무했지만 아동 성 착취물을 거래한 용의자를 호송하다 사고가 생겨 경찰청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여느 전직 형사들처럼 보안 업체에 취직하는 대신 범죄 드라마를 제작하는 영화사와 방송국을 돕는 데 자기 재능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경로로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현직 형사는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까다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 측에서 자문 역으로 그를 부르곤 했다. 문제는 경찰에서 주는 보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는 호로위츠에게 자신을 주인공으로 책을 쓸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다보니 그의 설득에 넘어간 호로위츠는 호손과 함께 수사에 참여하다 살인 사건에 휘말려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하면서 첫 책의 원고를 탈고하고 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첫 책이 나오기도 전에 또 다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이후에 두어 시간 동안 일을 했다. 그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호손이 보고 싶어 한 부분의 원고를 휘리릭 썼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면 조금 재미없게 들린다는 건 알지만 작가의 삶이 원래 그렇다. 하루의 절반을 혼자, 정적 속에서 보낸다. 이 원고와 저 원고를 오가며 수천 개의 단어를 처음에는 펜으로, 그다음에는 컴퓨터로 지면에 옮긴다. 내가 <앨릭스 라이더>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직접 모험을 떠날 수는 없더라도 상상이나마 할 수 있으니까. 그에 비하면 호손이 주인공인 원고는 작업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나는 상황의 노예로 전락했다.                 p.207~208


이번 살인 사건에는 명백한 용의자가 있었다. 살해된 이혼 전문 변호사 프라이스는 1천만 파운드가 걸린 엄청난 사건을 맡고 있었다. 그 소송의 상대측이 바로 소설가이자 시인인 안노 아키라였는데, 그녀는 그 소송으로 별로 얻은 게 없었다. 그녀는 손님으로 가득한 식당 한복판에서 프라이스의 머리에 와인을 부었고, 병으로 치겠다는 협박의 말까지 내밷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사람도 아주 많았고 말이다. 게다가 사건 현장에 초록색 페인트로 '182'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녀가 발표했던 시집 속 182번 작품이 하필 살인의 속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과연 그녀가 자신이 협박한 내용 그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사건을 수사하면서 용의자는 점점 더 늘어난다. 이혼 전문 변호사답게 주변에는 적이 많았고, 그들 모두에게 동기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호손은 호로위츠와 함께 여섯 명의 용의자들을 만나 신문하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두가 수상쩍인 비밀을 숨긴 채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 중 누가 범인일까? 차곡차곡 단서를 쌓아가는 탐정물로서의 재미도 탄탄하지만, 호손과 호로위치의 관계에 대한 부분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아 흥미진진하다. 


호손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달라고 요청했지만, 어째서인지 호로위츠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호로위츠는 자신이 호손에 대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 모두가 눈속임처럼 느껴졌고, 그의 진면모가 아니라 껍데기라고 생각했다. 그를 주인공으로 책을 세 권 쓸 작정이라면 그에 대해 알아야 했기 때문이고, 주인공을 최대한 호감이 가는 인물로 그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호손이 자신의 개인적인 정보를 광적으로 감춘다는 거였는데, 과연 호손의 과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마이크 칼라일이라는 사람이 호손을 <빌리>라고 부르며 반가워했던 장면이 있었는데, 호손은 자신이 빌리가 아니라고 그를 모른 척 했지만 아무래도 그의 과거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리즈의 다음 작품에서는 이 비밀에 대해서 밝혀질지도 매우 궁금하다. 다음 시리즈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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