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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디 러브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통해 접하는 이야기들이 일종의 간접적인 대리체험이라고 했을 때, 내용이 궁금해서 보기는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작품이 가끔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들도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데, 전작인 <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유독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미성년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 2년의 보호 관찰 형을 선고 받은 주인공이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충성과 사랑을 바칠 좀비 노예를 가지려고 하는 이야기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뇌에서 자아를 지워버리면 좀비처럼 자신에게 복종할거라고 믿으면서 잔인한 범죄를 이어가는 다소 경악 스러운 내용이다. 이 책을 적극 추천했던 박찬욱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잠시 그 악인이 되어보도록 한다. 마치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 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고. 이 정도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사이코 패스의 매우 폭력적인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사실 굉장히 불편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이번 작품 <대디 러브>는 <좀비>처럼 악인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고 있지는 않아, 충격의 강도는 조금 완화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은 결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왜 찾아서 읽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 이 작품의 리뷰를 쓰면서 '괴물 같은 필력'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나도 그 말에 적극 동의한다.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어디 한 둘이 겠냐만, 조이스 캐롤 오츠는 정.말. 무서우리만큼 필력이 대.단.하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 읽는 동안은 좀 불편해지더라도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면 읽어보고 싶을 수밖에.
이 작품은 유괴당한 아이가 범인으로부터 도망쳐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유괴'라는 소재는 여타의 작품에서 자주 다뤄지고 있지만, 조이스 캐롤 오츠가 주목하는 것은 유괴라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은 아이의 심리적인 변화이다. 순수하고 똑똑했던 다섯 살 아이가 '유괴'라는 폭력을 통해 어떻게 인격적으로 변하는지, 인간이 생존이라는 강박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녀 특유의 멋 부리지 않는 건조한 문체로 신랄하게 보여준다. 이쯤에서 자연스레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화이>에서는 자신을 유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아빠로 믿으며 자란 소년이 진실을 알게 되고 결국 그들과 똑같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유괴라는 소재로 인간이 어떻게 괴물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출발점은 같으나, 물론 장준환 감독의 영화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책은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으니 완전히 다른 두 작품을 비교 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대디 러브>는 쇼핑몰 주차장에서 주차해둔 차를 찾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평소에도 다이너는 아들 로비에게 책임감과 관찰력에 대해 주지시키기 위해, 차를 어디에 주차했었는지 위치를 기억하는 숙제를 주곤 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쇼핑을 마치고 두 사람은 주차된 차를 찾는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에게 머리를 맞고, 로비가 그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이너는 그 남자의 차에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면서 피를 흘리고 무기력하게 의식을 잃는다. 로비가 유괴되기 직전까지의 5분 정도 되는 그 짧은 순간,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기 전까지 벌어지는 겨우 5분 정도의 그 기억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재구성된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1장에서 <내 손 잡아. 그녀가 말했다. 아이는 그렇게 했다. 작은 손을 엄마 손 위에 올렸다. 유괴되기 오 분 전쯤의 일이다.우리 차 보여?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가 차를 어디에 세웠는지 기억나? 이것은 그녀와 아들이 하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차를 쇼핑몰 어디에 세웠는지 기억하는 것은 아이의 몫이었다. 아들이 찬찬히 보고 기억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하던 게임이었다> 차를 어디다 세워뒀는지 찾는 일종의 게임이 시작되고..
그들이 차를 찾는 순간 시작되는 2장에서는 <"내 손 잡아, 로비." 아이는 그렇게 했다. 통통한 손을 들어 엄마의 손을 잡았고, 그녀는 아들의 손가락을 꼭 쥐었다. 엄마와 다섯 살 아이 사이에 짜릿한 행복감이 지나갔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파포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말로 다 못한다는 뜻이다. 엄마 노릇을 하면서 말로 다 못 할 것을 많이 알게 됐다. "우리 차 보여? 아빠 차가 보여? 우리가 차를 어디에 세웠는지 기억나?"> 로 다시 반복적으로 그 5분의 기억이 재구성되며 로비가 유괴되고, 그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가 보여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3장에는 <"손 좀 잡아, 로비!" 로비는 그렇게 했다. 엄마 손을 잡았다. 아이는 쇼핑몰에서 몹시 흥분했고, 엄마가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 말을 안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다섯 살배기는 주차장에서 혼란에 빠져 기가 죽었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첫 번째 실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피곤하니, 아들? 삼심 분이면 집에 도착할 거야. 엄마가 우리 차를 찾도록 도와줘, 알겠지?: 이 일은 로비의 책임이었다. 그리고 게임이었다. 로비는 게임하는 걸 좋아한다. (보통은) 게임을 잘했으니까.> 를 시작으로 다시 그 날의 상황이 재구성되며, 과거에 로비가 아팠을 때 그녀가 떠올린 기억부터, 더 살이 덧 붙여진 사건 당일이 보여진다.
다시 반복되는 4장에서는 <내 손 잡아. 그녀가 말했다. 하루에 몇 번이나 말했을까. 둘이 밖에 있을 때면. 아들은 순종적인 아이였기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작은 손을 꼭 쥐었다. 그녀가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책임이 있었으니까. 쇼핑몰에서 아이는 수 차례 그녀에게서 빠져나갔다. 꽥꽥 소리지르고 키득대며 엄마한테서 빠져나갔고, 그녀는 아이를 쫓아 달음질쳤다. 하지만 그것은 게임이었다. 게임을 하면 아이다운 웃음이 터진다> 는 문장으로 이어지며, 사건 이후 경찰이 수색을 시작하고, 그녀가 수술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장면으로 진행된다.
굳이 이 문장과 단락들을 이렇게 길게 옮긴 이유는,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조이스 캐롤 오츠의 ‘방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공포와 패닉 속에서 재구성된 기억, 혼란스러운 의식을 고스란히 독자들이 '체험'할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에서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범죄의 순간이지만, 그 누구도 절대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도 있다는 걸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장면을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비슷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서술되는 것 같지만 1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은 미묘하게 다르게 묘사되고, 그만큼 다른 정보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의 내면을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가는 아마도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고통스러운 5분 간에 대한 시간의 재구성 뒤로 이어지는 장은 교회에서 설교자로 신에 대해, 믿음에 열변을 토하는 체스터 캐시의 모습이다. 차가운 조각 같은 얼굴에, 민첩하고 매서운 눈빛을 가진, 누구에게나 호감 형인 그 설교자는 바로 로비를 납치한 연쇄살인범이자 성 범죄자이다. 허기진 영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설교자를 바라모는 신도들의 그 무한한 신뢰라니.
이후 7장에서 다시 초반의 변주가 이어진다. <내 손을 잡아.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말하잖아, 아가, 내 손 잡아. 아이가 떨기만 하고 손을 올리지 않자, 말을 듣지 않자, 대디 러브는 손을 낚아챘다. 작은 손가락을 곽 움켜쥐자 새끼손가락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아이가 재갈을 문 채 비명을 질렀다>로 이어지는 이후의 내용들은 소아 성애자이자 연쇄살인자 유괴범인 체스터 캐시 로비의 이름을 '기드온'으로 바꾸고 자신을 '대디 러브'라고 부르게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벌을 주고, 자신의 말을 따르며 순종할 경우에만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상을 준다. 육체적인 폭력과 성적인 폭력을 가하는 대디 러브와 살면서 로비는 점점 기드온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대디 러브는 '나쁜 엄마'에게서 어린 로비를 자신이 '구출'했으며, 아이는 그와 함께 사는 것을 '고마워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인물이다. 그렇게 6년이 지나고, 기드온은 대디 러브가 자신을 대체할 다른 ‘동생’을 찾고 있으며, 이제는 나이를 먹고 커버린 자신을 여태껏 다른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죽이려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대디 러브로부터 도망쳐서 부모에게 돌아간 이후의 이야기가 작품의 나머지 부분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알렉스에게 읽기와 산수 숙제를 도와줬다. 기드온은 친구가 간단한 단어나 숫자를 그렇게 틀리게 쓴다는 데 놀랐다. 알렉스는 글자와 숫자를 거꾸로 쓰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아마 내가 거꾸로 된 괴물인 가봐. 알렉스는 말했다. 하지만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모두 다 괴물이야. 기드온이 말했다. 알고 보면 다 그래.
괴물로부터 도망쳐 다시 부모에게 돌아온 로비는 육 년 전의 그 수다스러운 아이가 아니다. 열한 살이 된 로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영양실조, 빈혈, 심신 쇠약증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는 작품의 후반부는 그래서 매우 슬프고, 무섭다. 매체에서는 체스터 캐시에게 억류된 육 년 동안 로비가 도망치려고 시도하거나 억류된 사실을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보도한다. 왜 소년은 유괴범과 지내는 동안 다니던 학교의 누구에게라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건지, 왜 육 년 동안 도망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건지. 로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무서운 추측을 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차라리 눈을 감고 회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불편하지만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이렇게나 소름 끼치게 잘 그려내는 이가 또 있을까 싶다. 사실 끔찍한 묘사나 고통스러운 대목들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참 아프고, 두려운 감정이 들게 하는 것은 오로지 필력의 힘인 것 같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설을 쓴 작가의 힘을 느껴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