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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돌아온 백민선 작가의 신작. 두 편의 신작과 일곱 편의 기발표작을 새로 고쳐낸 소설집이다. 2003년 절필 선언이후 다시 돌아온 그의 신작이 매우 기대가 된다. 현란한 젊은 문체, 발랄한 감수성은 아마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좀더 깊어지거나, 방향이 달라지거나, 다른 색깔을 입었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제목에서 묻어나는 특유의 감각은 여전하다. <혀끝의 남자>라니.. 내용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멋진 제목!!!

 

 

 

 

 

 

 

 

조앤 K. 롤링이 그간의 성공을 등에 업지 않고 순전히 작품만으로 독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작품이라니, 더욱 기대가 된다. 그녀가 가명으로 호평 받은 첫 소설이라는데도 의미가 있지만, 특히나 주목하고 싶은 건 판타지의 대가인 조앤 K. 롤링이 쓴 <탐정 스릴러>라는 장르라는 점!!
군인 출신의 사설탐정인 코모란 스트라이크가 톱모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조앤 K. 롤링 특유의 살아있는 캐릭터 묘사가 매우 기대된다.

 

 

 

 

 

 

전통 추리소설이자 범죄소설이며 사회소설이라고 소개되는 북유럽 미스터리 스릴러의 거장 헨닝 망켈의 작품이다. 정치적 신념을 위해 두 얼굴로 살아온 인물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하니, 아마도 스릴러보다는 사회성이 더 짙을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연민마저 불러일으키는 이 스웨덴 형사 시리즈는 1991년 시작되어 2013년 지금까지 4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3,000만 권 이상 팔렸다고 하는데, 아직 발란데르 시리즈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캐릭터가 특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문학동네의 블랙펜 클럽 시리즈에 관심이 많다. 올해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에 이어 두번째 출간되는 블랙펜 클럽의 30번째 작품이다.

움베르토 에코 팩션 스릴러의 계보를 이을 대형 신인으로 평가받는 대니얼 트루소니의 작품이다. 대형 신인의 데뷔작이라 기대가 되는 것도 있지만,  성서적 지식과 역사, 신화와 예술의 영역을 상상력으로 조합했다고 하는 출판사의 소개글에 더욱 호감이 간다.

굉장히 독특하고, 매우 고품격스러운 스릴러가 아닐까 기대한다.

 

 

 

 

 

대실 해밋의 걸작 단편 중 9편이 수록된 작품집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인 컨티넨털 탐정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에 대한 소문을 워낙 들었기에 매우 궁금한 작품이다.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하드보일드 학파의 창시자라는 칭호를 듣는 작가 답게, 하드보일드 소설을 좋아하는 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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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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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는미쓰다 신조란 이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작가시리즈와 방랑 환상소설가 도조 겐야를 화자로 한도조 겐야시리즈를 집필했다. 밀실살인으로 대표되는 본격추리의 틀에 토속적이고 민속학적인 괴담을 접목시킨 독특한 작풍으로, 국내에서 출간된 도조 겐야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특히나 도조 겐야 시리즈가 재미있는 건 정교한 트릭이 돋보이는 본격추리 방식에, 비현실적인 괴담을 접목시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종종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들기도 하면서 종횡무진으로 달려나간다. 미스터리미스 요소가 돋보이면서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괴기스러운 배경은 극에 더욱 매력을 부여해준다. 미야베 미유키가 그려내는 에도시대의 풍경도 흥미롭지만, 미쓰다 신조가 그려내는 쇼와 시대 (쇼와6년에서 쇼와32)의 시대적 분위기도 미스터리라는 작품의 성격을 너무도 잘 보여주어 극적인 재미를 더해준다 하겠다. 미쓰다 신조가 애초에 이 시리즈를 구상할 때 <호러풍의 미스터리, 또는 미스터리풍의 호러가 아니라,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읽는 내내 호러인지 미스터리인지 알 수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의도에 부합되는 완벽한 작품인 셈이다.

 

<도조 겐야 시리즈>

 

 

시리즈의 주인공 도조 겐야는 도조 마사야라는 필명으로 괴기환상소설이며 변격탐정소설을 발표하는 작가이다. 옛날부터 괴담, 기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인데,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글을 써 유랑하는 괴기 소설가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에 그가 구로 선배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되어 방문한 깊은 산골 마을에선 또 어떤 괴기스러운 사건이 생길지 초반부터 흡입력이 엄청나다. 이번에는 도조 겐야를 담당하는 여성 편집자 소후에 시노가 여행에 동행하는데, 도조 겐야 만큼이나 엉뚱한 매력을 선보이는 그녀와의 알콩 달콩한 에피소드들도 유쾌하다.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도라 할 수 있는데, 책의 서두에 인물들은 정리가 되어 있으니, 마을 별로 신사만 정리해보았다. 간단히 배경을 설명하자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골에 마을이 네 개 있다. 처음으로 개척된 사요 촌에 이어, 모노다네 촌, 사호 촌, 아오타 촌 순서로 말이다. 남북으로 펼쳐진 땅 중 북쪽 오 분의 사에 논과 거주 지역이 집중돼 있고, 남쪽 오 분의 일에 신사가 있다. 북쪽하고 남쪽 지역 사이로 미쓰 천이라는 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굽이굽이 돌며 흘러, 이 물을 전답에 끌어 쓰고 또 마을의 생활용수로도 스는 터라 하미의 네 마을에서 대단히 중요한 강이지만, 홍수며 가뭄 같은 재액을 마을에 가져다 주는 것 또한 이 미쓰 천이라는 것. 네 마을의 유지를 위해선 물이라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물의 정령인 미즈치 신을 모신다. 의식은 네 마을의 네 신사를 순서대로 돌면서 진행이 되고, 신을 모시는 의례에 소홀함이 있었다간 엄청난 노여움을 살 위험이 따르므로 이것은 이들 마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제의라는 것이다.

 

미즈치 님에 대한 압도적인 공포라는 게 대체 뭡니까? 실제로 사람이 죽은 사례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그에 관해 뭐라 말할 수 없이 불가해하고 기묘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줄 테니 들어보라고.”

 

23년 미쿠마리 신사의 선대 신관인 다쓰오가 제의 중에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모도다네 촌의 미즈치신사 신관인 다쓰키치로는 제의 중에 물속에서 사람의 팔과 같은 것을 봤다고 한 적이 있다. 이어 13년 전에는 사요촌의 미즈시 신사의 신관 후계자인 류이치가 제의 중에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죽은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13년 만에 다시 기우제가 열리고, 그 과정에 우리의 주인공 도조 겐야가 참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번 작품의 주요 스토리이다. 수십 년 전에 벌어진 불가해한 사건은 다시 반복되고, 기우제 의식 중에 신남이 사체로 발견되고 만다. 엄청난 공포와 마주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뜬 채 사체로 발견된 신남, 그는 대체 물 속에서 무얼 본 것일까? 물의 정령으로 알려진 미즈치란 뱀 비슷한 생물인데 네 발이 있고 입에서 독기를 뿜어내 인간한테 해를 미치는 것이라 한다. 승천에서 용이 되기 전에 물 속에 사는 것이 바로 미즈치라는 존재라는데, 실제 그 누구도 명확하게 모습을 그려낼 수는 없을 만큼 그 존재에 대해서 압도적인 공포가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더해졌을 것이다.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신음하는 것 같기도, 소리 지르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목소리였다. 아아…… 히이이…….

너무나도 섬뜩한 소리에 순식간에 쇼이치의 목덜미에 소름이 좍 돋았다.

이어서 오한이 등골을 훑었다. 그는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도망쳤다.

 

사건은 그걸로 끝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일어나 신남 연쇄살인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도조 겐야는 사건의 해석을 시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각 마을의 신관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들이 엮이고 섞여 다양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던 호수 위 배 위에서 어떻게 살해당한 건지에 대한 밀실 트릭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속도를 더해가는 스토리는 한 시도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미스터리 고유의 수수께끼 풀이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바로 장면마다 배어있는 으스스한 분위기와 공포라는 감정이다. 왜 절대 밤에는 읽지 말아야 하는지 공감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피가 난무하고, 끔찍한 것이 등장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조용하지만,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나오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소름 끼치는 그런 공포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 시계 초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밤에 읽으면 아마도 작품에의 몰입도가 배는 될 것 같은 그런 작품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흉조처럼 피하는 것, 밀실처럼 갇히는 것, 생령처럼 겹쳐지는 것, 유녀처럼 원망하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의 빠뜨릴 수 없는 매력 포인트로 표지에 대한 것을 빼놓을 수 없겠다. 표지 일러스트는 미쓰다 신조와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일러스트레이터 무라타 오사무의 그림이라고 한다. 아직 출간되지 않는 네 작품의 표지 이미지이다. 기존 국내에 출간된 것도 그렇지만, 모두 너무 아름다운데 밤에 보기에는 무서운, 오싹한 표지들로 작품의 분위기를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해주는 멋진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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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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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서 이런 작가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온 거지? 싶을 만큼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이재찬 작가는 2000년에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 이후, 무려 13년 만에 이 작품 <펀치>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고 하는데, 그럼 십 여 년 동안 뭘 하셨던 걸까. 부질없이 작가의 지나온 시간에 대해 관심이 갈 만큼 그가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의 작품 분위기와 소설의 갭이 크다. 영화 <버스, 정류장>에서도 열 일곱 살의 냉소적인 여고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했었던 걸 보면, 유독 여고생의 심리에 통달할 만한 환경에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그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는데, 출간된 소설이 아직은 단 한 권이라는 점이 아쉬울 따름.

 

'펀치'라는 제목에서 오는 어감만큼이나 이 작품은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든다. 당돌한 여고생의 대사에 당황하고, 난폭하리만큼 무서운 언어적인 냉소는 이가 시릴 만큼 오싹하다. 할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내뱉으며, 어른보다 오히려 더 어른스러운 10대의 등장이 처음도 아니거늘, 유독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여고생 방인영에게는 기존의 캐릭터에겐 없는 무언가가 있다.

 

,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자. 잘나가는 법무법인 소속의 변호사인 아빠와 미모가 뛰어난 엄마를 가지고 있는 고3의 여고생 인영은, 가족에 대해, 사회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내신도, 외모도 5등급이라 스스로를 지칭하며, 부모로부터 받는 경제적인 여유로움에 대해 전혀 감사하지 않고, 세속적인 욕망에 충실한 부모를 무시하는, 이른바 '반항 청소년'인 셈이다.

 

동물과 인간이 외모를 중요하게 따지는 건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하드보일드다. 왜 누구는 아름답고 누구는 추하게 만들었을까. 방 변호사는 머리가 좋고 외모가 달린다. 엄마는 외모는 그럴듯해서 사법 고시에 패스한 남자한테 선택 받았지만 머리는 모자란다. 결정적인 불행은 내가 엄마의 머리와 방 변호사의 외모를 닮았다는 아이러니다. 내가 신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바로 이런 유전자의 장난질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쪽은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이 아니라 잘못 설정해 놓은 신이어야 한다.

 

남에게 거리낌없이 "자식 농사는 좆도, 죽 쒔다."라고 말하는 아빠나, 그런 아빠가 자신에게 열성유전자만 제공한 생부이므로, 그를 '방 변호사'라고 지칭하는 딸이나, 교회의 열혈 신자이면서 어떻게든 딸을 잘나가는 다른 집들과의 수준을 맞춰보려는 속물적인 엄마나, 맨날 사고치고 어떻게든 돈이나 좀 뜯어내보려는 삼촌이나.. 다들 그렇고 그런 콩가루 집안이다. 학교와 학원 역시 공부를 못하면 수술을 해서라도 외모를 뛰어나게 만들거나, 부모가 자산이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야 선생님들이 대우를 해준다거나, 실제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악취 나는 시스템의 한 단면이다. 완전 재수 밥맛인 캐릭터들만 잔뜩 모여있는, 자산 30억 이상의 부유층 인간들만 모여 있는 그 세계의 한 축을 허물어버리는 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목적이다. 아무리 되바라진 성격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리 당돌한 말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의 10대 소녀라면 머리로 상상은 할 지 언정, 절대로 실제 할 수는 없는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10대 소녀를 통해서 보여준다.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이자 사회적 문제이기도 한존속살해는 매우 끔찍한 범죄이긴 하지만, 그 동안 소설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색다른 소재인 것은 아니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살인에 대한 추리 소설들이 많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그것을 보여주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저씨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만 죽이지 못하잖아요. 고양이는 사람이 아닌데내 목적은 아저씨한테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거예요.”

무슨 기회?”

사람을 죽여 주세요.”

 

인영은 우연히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건물 한쪽 구석에서 고양이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고양이를 죽이고 걸어가는 쓸쓸하면서도 무기력한 남자의 뒷모습에서, 자신이 즐겨보던 영화 <모래의 여자>에 나오는 남자를 떠올린다. 40대 계약직 공무원인 그 남자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걸 깨닫고는, 그에게 사람을 죽여달라고 의뢰를 한다. 나의 부모를 죽여주면, 엄청난 대가를 돈으로 주겠다고. 불만 가득한 청소년기에, 더구나 인영의 부모처럼 자식에 대한 사랑은 커녕 속물 근성만 넘쳐나는 부모를 가지고 있다면, 머릿속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부모만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를 구속하는 것도 없고,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텐데.. 하고 말이다.

 

... 처음이 아닌가?”

그럴 리가.

 

살인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인영의 모습은 여고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독하고, 지나치게 완벽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옷은 평범한 걸로 사고, 키 높이 구두를 사서 외모로 의심 받지 않을 구실도 마련하고, CCTV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대 놓고 추석 연휴 내내 차를 사용하지 말고 등등.. 오죽하면 남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이다. 이쯤 되면 애초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싶어한다는 이유에 대한 동정심이나 환경적 공감을 독자에게 구하기란 어려워진다.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간에 살인에 대한 폭력적인 결과만 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진다. 이렇게나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죄를 저지른 인간에 대한 비판이나 처벌을 하려면, 최소한 사회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과연 누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인영을 비난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인영의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모래의 남자와 인영의 살인 계획이 이어지고,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선 '눈을 뜨니 장례식이다'라며 시간을 훌쩍 건너뛴다. 보통은 살인을 결심하기까지의 배경 설명에 이어 결말 부분쯤에 실제 살인이 벌어지고, 이후 에필로그가 덧붙여지면서 작품이 끝이 날 텐데.. 이 작품에선 살인이 벌어진 시점이 작품의 60프로 정도 지점이라, 나머지 40프로는 살인이 벌어지고 나서의 리얼한 상황 묘사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불편해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된다는 말이다. 그냥 철없는 여고생의 치기 어린 상상력이나 바램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살의는 잔혹하고, 너무도 냉정한 10대 소녀의 머릿속은 이것이 허구의 극이라고 가정을 한다 해도 소름 끼치게 무섭다. 뒷목이 서늘해질 정도로 과감한 이런 방식은 아마도 호불호가 분명할 것이다. ‘뭐 이런 캐릭터가 다 있어’. 혹은 .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다니. ‘로 극명하게 나뉠 수밖에 없는, 전대미문의 캐릭터가 탄생했으니 말이다. 유독 인물에 감정 이입 잘하는 독자인 나조차도 인영의 편에 서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는 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과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영화로 만들어서 실제 살아 숨쉬는 인물로 만나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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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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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챙겨야 할 부분도 많고, 계획을 세우고 새로 진행해야 하는 일도 많고 해서 너무 몰입해 읽어야 하는 무거운 책들은 좀 미루고 있다. 이런 저런 일들로 피곤해진 나의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해 가벼운 작품들을 주로 읽고 있는데, 그래서 꺼내든 책이 바로 이 책, 닉 페어웰의 <GO>였다. 시간은 밤 열 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고, 하루 종일 누적된 피로와 지친 머리로 인해 나는 살짝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머리 쓰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 든 것이었으므로, 책을 읽기에는 가장 나쁜 자세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히고, 발은 반쯤 다른 의자에 걸쳐 올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튼 자세 말이다. 책을 대하는 가장 성의 없는 자세로,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별한 직업도 없고,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지도 않은 29살 젊은이의 독백이 정돈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졌고, 나는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문제의 페이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쩌자고 이런 장면이, 이런 작품에 등장한단 말인가.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흐트러져 있던 자세를 바로 고쳐 잡기 시작했다.

 

문제의 그 장면은 바로 이것이다. '독서와 작문 교실'에서 시 외곽에 사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가르치기 시작한 두 번째 시간에, 그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하나 보여준다.

 

"이건 SF영화야. 영화 제목은 <화씨 451>"

나는 다시 트뤼포에 의지한다. "이 미래의 소방수들은 불을 끄지 않아. 책을 불태우지. 왜냐하면 책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고 여기거든. 화씨가 무엇인지는 아니?.... 영화 제목 화씨 451은 책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야."

 

무슨 영화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사랑영화'라고 대답하는 그 대목을 보면서, 나는 그가 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한 순간 알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나를 감..시켰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며, 그의 삶을 이..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의 <화씨 451>이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쓴 동명의 SF소설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이 1963년에 만든 영화로 책이 금지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된 미래, 그러니까 책을 보려면 몰래 벽에 숨겨서 봐야 하고,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방화수가 출동해 책들을 모두 불에 태워버리는 그런 시대이다. 원작에 비해 영화가 엄청나게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짠하고, 울컥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참 오래 남았던 작품이었다. <GO>에서도 언급되는 시람 들이 좋아하는 책을 외우면서 호수 주변을 걸어 다니는 장면뿐아니라, 수많은 책들이 발각되어 거실에 잔뜩 쌓여 불태워지는 것을 보다 결국 그 불꽃 속으로 몸을 던졌던 노부인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던 영화의 장면이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책들을 소각시키는 방화수들에게 "이 책들은 살아 있어. 내게 말을 한다고."라고 말하던 노부인의 눈빛을 나는 너무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그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책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해석하는 <GO>의 주인공이 그 순간부터 다르게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무도 대충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살짝 미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전형적인 루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별 생각 없는 방황하는 젊은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문득 든 것이다.

 

"이게 바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야. 이걸 위해 싸워야 하는 거야.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정말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여러분을 숨 쉬게 만들고, 쓰고 싶게 만드는 걸 기억하는 거야.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는 불을 가져야 해.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거기에 삶이 거칠게 섞여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해. 자신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을 느껴야 해.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물을 불태울 수 있어야 해. 그게 바로 우리의 생존에 관한 것이거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을 나가면서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 이 작품을 '사랑 영화'라고 소개하는 선생님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자신을 이해할 거라고, 앞으로 책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거라고 확신한다. 잠깐씩 이렇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 외에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바에서 디제잉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젊은이가 이런 가치관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나는 놀라움과 희망을 보았다. 그는 극 중에서 매일 같이 소설을 쓴다. 밤을 세워 수십 페이지를 쓰기도 하고, 자신이 대체 뭘 쓰는지, 출판이 될 수나 있을지 기약도 없고, 방향도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매일, 꾸준히 하는 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대한 내 유일한 충고.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글자. 넌 이미 알고 있지, 모든 게 엉망일 때 두 글자로 된 이 단어를 기억해. GO. 글을 써, 그림도 그려, 사진 찍어, 춤춰, 연기해, 노래해. 그렇지만 모든 게, 모든 게 잘못될 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만 기억해. GO. , 앞으로 가. 한 번 해보는 거야.

 

‘GO’라는 심플하고도, 직설적인 제목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거였다. 포기라는 건 삶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죽음이니까. 현재에 안주하고, 실패에 낙담하는 건 쉽지만,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건 어려운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한번 부딪혀보자.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가만히 멈춰 있는 것보다는 앞으로 가보는 게 진정한 삶을 누리는 거라는 걸 이 작품은 알려준다. 가장 평범하고, 쉬운 방식으로. 삶이란 누구에게나 좋은 순간도 있고, 나쁜 순간도 주어진다. 최악의 상황만 계속 이어지더라도,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만 떠올려보자.GO. , 앞으로 가.” 까짓 것 그냥 해보는 거다. 어차피 한번뿐인 내 인생 아닌가.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은 바로 내가 앞으로 나아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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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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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갖고 있지. 저쪽에서는 저런 나, 이쪽에서는 이런 나, 어제는 저런 나, 오늘은 이런 나. 누구랑 있을 때는 이렇고, 또 다른 누구랑 있을 때는 저렇고, 도저히 수습이 안 돼! 대학 친구와 고등학교 친구를 우연히 한꺼번에 마주치면 왠지 좀 어색하지 않나? 그야 각각 다른 캐릭터니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연애도 마찬가지야!

 

여기, 너무도 다른 두 형제가 있다. 평범한 회사원인 동생 료스케는 결혼해서 세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데 반해, 엘리트 공무원인 형 다카시는 각기 다른 개성의 두 여자와 동시에 연애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미술대회 입상, 육상대회 우승, 명문대 합격 등 하는 일마다 뛰어났던 다카시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항상 다카시의 동생으로 불렸던 료스케는 형에 대한 열등감을 남모르게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이트에 일기를 통해 아내도 모르게 자신의 그런 열등감이나 고민, 세상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을 웹사이트에 게재한다. 우연히 남편의 컴퓨터를 보게 된 아내 요시에는 항상 형을 자랑스러워하던 남편이었으므로, 정체 모를 거부감과 의아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다카시에게 남편의 홈페이지와 일기에 쓰인 내용에 대해 상담을 한다. 한편, 이야기의 다른 축에선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중학생 도모야가 살인에 대한 망상을 키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 구가 아유미의 알몸 사진을 획득한 걸로 그녀를 협박(?)하고, 그걸 알아챈 그녀의 남자친구와 일행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도모야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지나치게 감싸는 엄마의 독특한 교육방식은 때로는 가혹하게 손찌검을 하기도 하는 등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점이 분명 많다. 그리고 도모야도 개인 웹사이트에 이에 관련된 일기를 기재하고, 그걸 본 누군가가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 도모야는 그렇게 악마를 만나게 된다.

 

다카시가 여자 친구인 지즈에게 하는 말처럼, 누구나 여러 개의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즉, 우리가 이중인격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면과 저런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표출되는 부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에너지가 넘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에게 '조용하고 내성적이다'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나를 '리더십이고 활발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다른 누군가는 내가 '그룹에서 나서지 않고 조용히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두가 ''라는 하나의 개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카시는 남편이 있는 지즈를 만나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 두 여자를 동시에 만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은 인간이 있을 리 없으니까, 같은 부분이 있는 사람끼리 유대를 맺고, 또 나머지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이렇듯 다카시와 료스케는 가치관부터,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다사시는 똑똑하고 잘나가는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카시는 동생과 그의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여겨진다).

 

사형, 혹은 전쟁- 문제는 단 하나. 살인이 나 자신에게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않느냐야. 그게 바로 평화라는 것의 기만적인 정체야! 평화가 평화로 느껴지려면 평화롭지 않은 현실이 불가결하지. 어디에 얼룩을 찍을 것인가? 어딘가 먼 곳,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면 기가 막히게 이상적이지!

...자기 몸에 위험이 닥치지 않는 한. 인간은 여전히 어리석어.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곳의 평화는 인간적인 의미에서 고귀하다. -그게 본심이야.

 

'악마'라는 인간이 늘어놓는 장광설은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듯하게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버스에 사람들이 타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난데없이 칼을 빼 들고 사람들을 위협을 한다면 어떨까. <어쨌거나 그 남자가 빨리 버스에서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겠지. 밖에서는 누구를 죽이든 상관없어>라고 그는 말을 한다. 사실 이게 버스 안에 있던 모두의 솔직한 바램일 것이다. 밖에서 그 남자가 누군가를 해친다면, 나는 버스 안에 있었던 덕분에 살았다고,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테니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꼭 이기적이어서, 자기 밖에 모르는 존재라서가 아니라도 말이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에 갑자기 끼어든 살의는 무력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테고, 서글프지만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이란 이런 거니까 말이다. 물론 세계의 질서를 흐트리기 위한 악마의 살인을 동시다발적인 익명으로 활성화시키겠다는 의견은 과대망상 같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부분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맞는 말이다. <평화로운 대낮 횡단보도에서 넌 다른 사람들처럼 신호를 기다려. 빨간 불이지만 차는 없어. 그때 나중에 온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기 시작해. 그건 뭐지? 그는 단순히 길을 건넌 게 아니야. 거기 있는 모두를 모욕하나 거라고! 남들이 참가하고 있는 데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야> 한 사람이 궤도에서 이탈하게 되면, 반드시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횡단보도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우리만치 현실성이 있다. 모두가 지켜야 하는 질서, 세계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칙이라는 것은 이토록 연약한 것이다. 한 순간 어긋나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악마는 바로 그런 점을 노린다.

 

오사카 출장을 가게된 료스케가 다카시를 만나기로 하고, 요시에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잘해서 문제점을 풀어나갈 거라고 기대한다. 다카시는 동생을 만나고 다음 날, 차를 빌려 지즈와 쿄토에서 밀월 여행을 즐긴다. 그리고 뉴스에서 전대미문의 토막살인사건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온다. 유체가 든 비닐봉지가 발견되고, 전국 각지에서 매스컴으로 범행 성명문이 보내지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요시에게서 연락이 온다. 오사카에 출장을 간뒤로 료스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그이가 마지막으로 만난게 다카시 아니냐고. 그는 자신을 만나고 나서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된 닉네임 666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료스케가 만났다고 말하지만, 요시에는 666이 다카시 아니었냐며 그를 미심쩍어한다. 이후 이후 유체의 신원이 료스케로 판명되고, 요시에의 발언에 의해 다카시가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된다. 처음부터 실제 범인이 악마라고 칭해지는 사이코패스라는 걸 보여주지만, 정작 진행되는 스토리는 형인 다카시를 의심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악은 악일 뿐이야. -제아무리 그럴듯한 소리를 늘어놔도 그건 변하지 않아. 죄를 저지른 인간도 속으로는 모두 그렇게 생각해. 처음부터 근성이 썩어빠진 인간은 없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싶다. 그런데 계기가 없다. 아까처럼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화가 나서. 실은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나중에야 털어놓는 사람도 있어. 감옥 가는 게 무섭다. 그것도 본심이지. 솔직한 심정이야. 당신은 아닐지 모르지만..

 

2권의 중반 이후까지 형사들은 다카시가 범인일거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요시에와 그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증은 없지만 조사하면 할수록 심증만 깊어지고, 정작 다카시는 자백을 하지 않으니 그에게서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잘못된 심증이 얼마나 무섭게 수사에서 적용되는 요소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료스케의 일기와 요시에의 증언에 의해 드러나는 사실은, 피해자가 형에게 자격지심과 강한 원망을 품고 있다고 하고, 게다가 형이 피해자의 아내와 불륜관계였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다카시의 주변에 대해 조사를 하면, 공부를 잘했으나 되바라져서 어른을 얕보는 면이 있었다는 담임의 신랄한 평가가 있는가 하면, 초중학교 동창생과 이웃주민은 착하고, 인기가 있고, 리더였으며, 인사성이 밝았다고 정반대 증언을 한다. 그러니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왠지 수상쩍은'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물증은 없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나중엔 경찰의 목적이 '다카시를 자백시키는 것'에 있는지,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는데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수사는 다카시를 범인으로 몰고 가는데 집중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정말로 진지하게, 누가 봐도 믿을 만한 얼굴로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족속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 심증은 수사에 방해가 되는 최악의 요소가 된다. 심증만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심증은 점점 나쁜 쪽으로 굳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가면 다카시가 정말 동생을 죽였다고 거짓 자백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가 되어서야 사건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실제 범인이 자백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1권에서부터 이미 '악마'라는 존재가 살인에 대한 동기를 충분히 밝힌 상황이었으므로, 독자들 모두 누가 범인인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극중 인물들이 그걸 언제 알아차리느냐,에 관한 문제였는데 사실 히라노 게이치로가 노린 것은 추리극으로서의 서스펜스가 아니었으므로, 범인은 긴 수사과정이 허무하게도 그냥, 자수를 한다. 문제는 범인 한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모방 범죄와 '악마'의 범행 성명문에 영향을 받은 살인 사건들인지도 모른다.

 

, 이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질문을 하겠다! 너는 '행복'한가, 아닌가?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당신은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대답할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에 대한 불만도 없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이번 작품 <결괴>에서 '악마'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희대의 살인마는 가장 불행해 보이는 인간을 골라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행복'한가, 아닌가?" 라고. '행복'하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고. 가짜 행복을 갈구하지 말고, 억지로 행복 하려고 애쓰지 말고, 스스로 불행하다는 걸 시인만 한다면 '행복'의 제국에서 열등민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악의와 증오를 토해내던, 가족과 스스로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던, 형에 대한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불행해하던 료스케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소리친다. 사실은 이 세상이 좋고, 나 자신에게도 만족한다고, 나는 이대로 '행복' 하다고, 다른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고. 극중 '악마'로 지칭되는 사이코패스는 인터넷에서 세상의 '행복'한 표정을 죽 훑어보며 죽어 마땅한 인간을 물색하다 '스우의 중얼거림'이라는 개인 사이트에서 일기를 발견한다. 그곳을 통해 스스로 '행복'이라는 단어에 집요하게 매달리지만, 놀랍게도 전혀 '행복'하지 않은 료스케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대책 없이 불행하지만, '행복'의 파시즘 세계에 계속 존재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으려 했던 료스케는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천천히 진행되는데, 가독성이 좋아 굉장히 빨리 읽힌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현대 사회에서 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노골적으로 독자에게 던진다. 악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가장 밑바닥까지 깊이 들어가는 작가의 방식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잔인한 악마 성을 마주하게 만들어 독자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로 이어지는 페이지마다 인물들의 장광설이 다소 현학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곳곳에 포진하고 있지만, 사실 진정한 이 작품의 재미는 바로 그런 부분에 있다. <악의 반대가 선이 아니고, 악의 반대는 행복이다>라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깊이 있는 질문은 매우 흥미롭다.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자체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작품에 얼마나 드러났느냐 보다는 이야기라는 매개체로서의 재미에 집중해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어떤 작품보다 술술 빨리 읽히지만, 분량은 매우 많고,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걸 따라가는 형식이지만 주제는 매우 철학적이라 독자로서는 그저 재미있을 따름이다. 매번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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