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글쓰기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차윤진 옮김 / 북뱅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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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는 그런 일상생활이 첫 번째 인생이고,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라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우산을 펴거나 비옷을 꺼내 입거나, 신문으로 머리를 가린 채 걸음을 서두른다. 하지만 작가라면 노트와 펜을 들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 웅덩이를 바라보며 물방울을 관찰한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고 한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조금 어수룩한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글쓰기가 육체적인 노동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글쓰기란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물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한 것이고,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여러 권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삶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억하고 글로 옮기는 법을 찾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책을 읽고 실제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그녀의 신작 <버리는 글쓰기>에서는 '왜 작가들은 늘 불행한가? 행복한 글쓰기란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글쓰기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성공 이후 10, 극심한 슬럼프를 맞이한 저자가 처절한 내적 고통을 겪으며 정립한 자신만의 글쓰기 훈련 법을 진솔한 경험담과 함께 풀어낸 것이다.

글쓰기는 한 개인이 자신의 내면과 외면, 영혼과 육체를 통합하고 실천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운동선수들이 근육을 훈련하며 단련한 몸으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듯, 글쓰기 훈련 법을 통해 글을 쓸수록 우리는 점차 삶의 핵심에 다가가게 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완전히 솔직하지 못하면, 독자를 납득시킬 만한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만큼의 희열과 보람을 주는 주체적인 삶의 방식으로써의 글쓰기를 다시금 제안한다.

 

첫 번째 소설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조그만 책상 위에서 썼어. 하루에 점심시간 35분 정도를 할애해서 매일같이 썼지. 여름 방학 때는 9시부터 12시까지 주 4회 보모를 고용해서 애를 맡기고 그 시간에 소설을 썼어. 요즘은 자꾸 이 시기를 떠올리려고 노력해. 왜냐하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규직 교사로 근무하는 데다가 이제는 세 아들을 키우는 싱글 맘이기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이 없다며 내 자신을 딱하게 여길 때도 있거든. 여기서 한 시간, 저기서 삼십 분. 글을 쓸 시간은 딱 그 정도면 돼. , 시작해. 펜을 움직여. 그게 다야. 나머지는 다 헛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변명만 늘어놓고 글은 쓰지도 않으면서 괴로워하기도 해.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사실 간단해. 그냥 쓰면 되는 거거든.

 

첫 소설을 마치고 플롯 짜는 것에 대한 필요성으로 공부를 했던 케이트의 경우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의견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재지 말고, 조절하지 말고, 그저 쓰기만 하라는 것 말이다.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대고, 당신 지갑 속에 단돈 1달러만 남아 있고,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수술을 받은 어머니도 걱정스러울 수 있다.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갑자기 보이지 않고, 고양이가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발기 찢고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꺼내어 잡고 그저 쓰고, 또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전작부터 주장했던 '뼛속까지 내려가서 내면의 본질적인 외침을 쓰는' 방법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나 구조 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녀가 터득한 특별한 글쓰기 훈련 법을 제안하고 있다. 글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자신에게 솔직한 작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도 바쁜 일상 속에서 애당초 글 쓸 시간을 어떻게 마련하냐고 반문하기 일쑤라고 한다. 힘든 정규직 직장에 간신히 다니고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도 있으며, 매일같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해야 할 일들 속에서 대체 언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평하기 전에, 우선 시작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다. 테니스에 입문한 첫 주부터 윔블던 경기에 나가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먼저 시작하고, 그것이 꾸준하게 이어져서 시간이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시작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제는 뭔가 본때를 보여주자고 말이다. 언제 시작하냐고? 헤밍웨이가 말했듯이 "너무 이르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늦어 터지지도 않게."

글을 쓴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나는 안다. 나와 당신이 유명한 작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글쓰기는 시간이다. 멋진 글을 쓰고 싶으면 일단 엉덩이를 붙이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이 책에서 철저히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는 그녀의 훈련 법을 따라 하다 보면 누구라도 유혹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늦지 않았다.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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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엄마 목소리 - 태교 동화를 읽는 시간, 사랑을 배우는 아이 하루 5분 태교동화 시리즈
정홍 지음, 김승연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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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미국 소아과학회는 출생 후 3년 내에 뇌 발달의 중요한 부분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해 '아이들이 태어난 직후부터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새로운 권고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아과학회는 소속 의사들에게 부모와 어린이가 병원을 찾을 때마다 '책 읽기'를 강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태어난 직후 신생아에게 습관적으로 소리 내 책을 읽어줄 경우 아이의 지적 능력이 좋아질 수 있다 하니 진정한 '조기' 교육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는 출생 후 3년 내에 뇌 발달의 중요한 부분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하니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어휘 구사 능력은 물론 대화 능력까지 좋아진다는 점도 반영된 결과라고 하니, 갓 태어난 신생아뿐만 아니라 뱃속의 아기에게 태교를 할 때부터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태교는 뱃속의 아기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육이다. 이미자궁 내 환경이 지능지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세계적인 과학 잡지에서 밝혀진 바 있으니 출생 전의 정성 어린 태교는 출생 후의 값비싼 조기교육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태교를 통해 뱃속의 아이도 안정된 정서와 지능과 건강을 갖추고 태어날 준비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 정성 어린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태교의 종류가 참 다양한데, 음식태교, 태담태교, 음악태교, 학습태교, 독서태교, 운동태교, 여행태교까지... 그래서 요즘은 임산부들이 '태교여행'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기도 하고 말이다. 엄마의 성격에 따라 태교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할 것 같은데, 워낙 책과 친숙하고 책을 많이 읽었던 탓에 나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임신 30주가 되니 아이도 어느 정도 뱃속에서 자라 태동도 활발해지고 해서, 더욱더 책을 읽어주며 아이와 교감하는 시간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태교동화를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읽어보기도 하고 했는데... 사실 태교동화로 출간된 책들이 다양한 종류에 비해 내용이 뻔해서 엄마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한 것들이 사실이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므로, 엄마한테 재미있는 것이 아이한테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평소에 내가 읽는 책의 한 대목씩을 읽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 대상으로 쓰인 책이 아닐 경우에는 글자수가 너무 많고, 단어도 어려운 게 많아 소리 내어 읽기엔 다소 무리가 있긴 하다. 한 두 페이지만 읽어도 목이 아프다거나, 읽는 도중에도 이런 내용을 아이한테 들려줘도 되나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것이 바로 <하루5분 엄마 목소리>이다. 이 책이 여타의 다른 태교동화들과 차별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엄마가 먼저 읽는 '엄마 동화'와 아이에게 들려주는 '태교 동화'라는 두 가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먼저 이야기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그 감정을 음성을 통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 정서적 교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게다가 기존의 태교 동화들처럼 명작동화의 축소판이나 교훈적인 옛날 이야기들이 아니라 순수 창작 동화라는 점에서도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좋았던 것은 단순히 엄마를 위한 동화가 길고, 그걸 짧게 요약한 것이 아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엄마를 위한 동화가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그 속에서 내용을 추려 다른 시각으로 아이에게 직접 '내가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간추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잘 아는 이야기, 내가 재미있었고, 감동을 느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단순히 이야기를 '읽어주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내가 이야기 속에서 느꼈던 것들을 고스란히 뱃속의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어서 태교 동화를 읽는 일이 매일같이 하는 일과가 아니라 행복하고 설레 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 EBS 다큐 프라임에서 아이의 정서지능에 관한 방송을 본 적기 있다. 정서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 수용하고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으로, 간단히 말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서지능을 가지고 태어나기는 하지만,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발달시키느냐는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의 엄마는 책을 읽으면서 '왜 울까? 왜 슬플까? '라며 이야기 속 주인공의 감정에 대해 아이와 대화를 하는 반면, 정서지능이 보통인 아이의 엄마는 그저 책의 줄거리만 읽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아이가 울 때도 대처하는 방식이 확연하게 달랐는데, 전자의 경우는 아이가 울 때 빨리 알아차리고 화났니? 슬펐니? 라고 감정에 동조를 먼저 하는 반면, 후자는 왜 울어, 왜 그래. 라고 아이의 감정은 무시하고 다그치는 것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왜 이 방송이 생각이 났느냐 하면 이 책의 구성에서 엄마동화, 태교동화 뒤에 항상 '엄마의 생각보따리'라는 항목이 있다. 이야기의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주면서, 아이와 실제 대화하는 것처럼 쓰여져 있어 무엇보다 아이의 정서지능을 높일 수 있는데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공감'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의 정서지능을 높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멀지 않은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의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제 아이를 만나려면 두 달 남짓 남았는데 남은 기간 동안 이 책을 통해서 아이와 더 많이 교감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뱃속의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까지 배려해주는 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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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석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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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부산에서 짱이었냐?"

"통이다."

"?"

 

부산 주먹의 전설 이정우의 파란만장한 서울 진출 기를 그린 이 작품은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던 화제의 웹툰이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웹툰이 소설로 출간되는 경우가 많아 이 작품도 비슷한 경우겠거니 했는데,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웹툰이 먼저가 아니라 소설이 먼저이다. 1998년 당시 유니텔에서 연재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하루 방문객 240만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며 온라인에서 연재되었던 소설이 바로 그 시작이다. 그러다 2012년 만화가 백승훈 작가와 작업을 시작해, 이 작품은 만화의 형태로 세상에 다시 선보이게 된다. 2013년이 끝나갈 무렵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는 화제를 낳으며 인기를 모았고, 그렇게 해서 16년 전 PC통신 게시판에 올렸던 소설이 만화를 거쳐 소설로 출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알려진 웹툰 『통』은, 2012년 말 51화로 시즌 1을 마무리하고 현재는 인기리에 시즌 2를 연재 중에 있다고 한다. 웹툰에서는 심의 때문에 담지 못했던 장면들까지 이번 작품에 실려 있다고 하니, 웹툰을 재미있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소설로도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부산에서는 ''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인 ''은 한 조직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주먹 짱을 의미하는 부산 및 영남 지역 사투리인 셈이다. 주인공 이정우는 부산에서 통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돈을 뺏거나 왕따시키는 짓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교실 맨 뒷줄 창가에 앉아 아이들을 통제하는 절대 법이었다. 그러던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3개월만에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저 조용히 지내길 원했던 그를 학교의 일진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고, 정우의 엄청난 주먹 실력은 삽시간 소문이 퍼진다. 전한 온지 며칠 만에 1학년은 물론 2,3학년 전체의 판도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너희들은 미운 시기야. 이건 시기란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지. 너희들은 개성이 강해서 조금 눈에 잘 띄는 것뿐이야. 이 시기만 지혜롭게 넘기면 너희들은 아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

 

친구들하고 어울리며 내키는 대로 살고, 선생님, 부모님께는 반항하고, 주먹 쓰고 싸우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들은 모두 한때 지나가는 시기라고 말하는 강덕중 선생님과 유치하지만 따뜻한 윤정임 교생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문제학생들을 다스리는 그렇고 그런 학창시절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캐릭터들의 진심이 느껴져서 어딘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정우 또한 무작정 싸움만 잘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한번 믿는 친구에게는 진심으로 의리를 지키고, 관계없는 다른 학생들에게는 피해줄 생각이 없는 인간적인 인물이라 계속 마음이 간다. 무언가 분출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들은 그 시기를 조금 더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견뎌내고 있다. 게다가 치기 어린 남자들의 로망과 여자들의 우상인 히어로에 환상까지 적절하게 잘 버무려져 마치 웹툰을 읽을 때처럼 속도감을 주는 소설이다. 웹툰에 열광하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을 정도로 말이다.

웹툰 시즌1에서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학교 내·외 일명 일진들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조직 폭력배를 무너뜨리며 교생 선생님이 희생되는 일을 계기로 주인공인 이정우와 친구들이 새 삶을 다짐하며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소설 통의 스토리이다. 현재 연재되고 있는 웹툰 시즌2는 대학교를 배경으로 이정우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고등학교 시절과 다름없는 교내 풍경과 복수를 다짐하는 조직 폭력배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그리고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상태이다.  '남자라면 공유하라' 며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은 복잡한 스토리텔링이나 엄청난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캐릭터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인물들의 고뇌로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땀 냄새 나는 남자들의 이야기라 그들만의 세계에 관심이 없는 여자독자들에겐 재미가 없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한번 책장을 잡기 시작하면 끝까지 내리 달려가게 만드는 속도감이 있다. 나도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금새 읽었을 정도니 뭐. 지루할 틈 없고, 속도감 넘치는 작품이라 열대야에 시달리는 무더운 여름 밤에 읽으면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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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 6개국 30여 곳 80일간의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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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고양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 덴고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기차에서 읽은 <고양이 마을>이라는 단편이 생각난다. 한 청년이 가방 하나만 들고 여행을 다니다 우연히 들르게 된 마을이 사람들은 전혀 없는 고양이들의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원래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열차가 다시 그 역에 정차하는 일은 영원히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곳이 그가 상실되어야 할 장소, 즉 이 세상에는 없는 장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일종의 환상 소설이었다. 고양이라는 동물이 기가 있는 걸로 간주되어 공포 영화에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어쩐지 강아지보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고양이들을 만나는 길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 모로코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아실라 역에서 대합실과 플랫폼은 물론이고 열차 선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고양이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역무원들도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들도, 그것에 대해 누구 하나 개의치 않는, 우리로서는 낯선 풍경.  규모가 작은 아실라 역에 거주하는 제법 많은 고양이들 덕분에 열차 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아 고민했던 저자는 오히려 시간이 부족할까 고민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어느덧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오는데, 그것이 "이번 역은 고양이 역입니다. 고양이 역!"이라고 들릴 정도였다고 하니 뭐.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이곳에서만이라도 고양이를 누려라. 해코지가 없으니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애교를 부린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고양이를 쓰다듬고 껴안고 장난을 친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맘 놓고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사랑해도 된다.”

 

 

모로코의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쉐프샤우엔의 파란 골목에서 동화 속 파란마을의 그림 같은 고양이의 모습이다.

시인이자 여행가인 이용한 작가의 여행 에세이 집이다. 동네 고양이를 기록한 <안녕 고양이>시리즈부터, 고양이 여행 국내편인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 이어 고양이 여행 해외편이다. 5년동안 6개국 30여개 도시와 섬을 여행하며 만난 고양이 이야기라고 한다. 고양이의 천국이라는 모로코와 터키, 그리고 일본의 고양이 섬과 대만의 고양이 마을, 인도와 라오스가 이 책의 배경이다. 한국이 고양이에 대한 학대와 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라고 하는데, 마치 사람처럼 고양이를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 이들의 풍경은 놀랍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사람과 고양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풍경들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더불어 이 책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의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쉐프샤우엔의 파란 골목의 그림 같은 고양이, 아실라 포구 바닷가 고양이 식당, 잉그리드 버그먼과 험프리 보가트를 닮은 카사블랑카 고양이, 블루 모스크 앞에서 영업하는 고양이들과 영업 당하는 사람들,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는 히메지마 섬, 아이노시마에서 만난 고양이 할머니 그리고 고등어 클럽, 쇠락한 탄광 마을에서 인기 있는 고양이 마을로 변신한 호우통. 저자가 여행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우리의 길고양이와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 밑, 컨테이너 박스 뒤, 골목 사이처럼 어둡고 좁은 곳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 죽여 살아가는 우리 나라의 길고양이들을 떠올려보자면 말이다.

 

고양이와 사람이 어우러진 모습을 찍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로코 아무 곳에나 가서 양해를 구하면 된다.

아저씨! 당신의 고양이와 사진을 한 컷 찍어도 될까요?

 

 

고양이와 함께라면 언제나 좋고, 어디든 좋은 사람들, 때로는 이들이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무슨 일인지 귀찮게 물어보지 않고, 왜 그러느냐고 짜증나게 몰아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동물들이니 말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고양이와 사람이 어울려 사는 당연한 풍경은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답다. 고양이의 무던한 일상과 사람들의 관대한 날들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할까. 이렇게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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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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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밀로시 우르반은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라고 평가 받는다. 특히 이번 <일곱 성당 이야기> 14세기 중세 시대를 재건하려는 음모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받았다. 실제 현지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움베르토 에코에게 보내는 체코식 답변!”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 당시의 복잡한 사회적, 역사적 격변을 겪었던 체코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내어 그를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현학적이고 지적인 추리 소설로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에코에 비견된다는 것만으로 밀로시 우르반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중세 고딕 미스터리라니, 흔치 않은 장르라 더욱 궁금했던 작품이다.

 

체코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중세 성당에서 거대한 종의 추에 매달린 사람이 발견된다. 살아 있는 사람의 발목에 구멍을 뚫고 밧줄로 꿰어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살해된 사람의 다리가 고급 호텔의 깃대에 꽂힌 채 발견되고, 스케이트보드 반쪽이 복부에 박힌 10대 소년의 시신도 발견된다. 엽기적이며 잔혹한 사건들을 목격한 것은 주인공 K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크베토슬라프 슈바흐로  슬라브 민족의 나약한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던 소심한 주인공은 스스로를 K라 지칭하며 주변인들에게도 그렇게 불러달라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 중퇴했고, 이후 경찰이 되지만 경호를 맡았던 인물의 죽음으로 책임을 물어 경찰에서 쫓겨난 신세이다. 그는 살인 사건 목격 이후로 경찰 서장을 통해 귀족 출신 그뮌드와 조력자 3명을 만나게 된다. 그뮌드는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을 중세 고딕 양식으로 되돌리고, 14세기의 법과 정의, 종교적 순수와 엄숙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인물이다. K는 그들과 함께 이어지는 기묘한 사건에 휩쓸리며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체코의 중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성당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섯 개의 성당은 실제 존재하지만 나머지 하나 ‘7성당은 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 동안 살해되거나 협박 편지를 받은 이들은 모두 건축가이거나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한 이들로 밝혀진다.

 

 

당연히 독자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을 것이다. 나는 즉각 대답해 줄 수도 없고 직접적으로 대답해 줄 방법은 더더욱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은 내가 어떤 부분을 일부러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는. 그러나 계속해서 사건을 여러분의 추측에만 맡기는 것은 내가 진실을 찾아 헤맸듯이 여러분도 진실을 찾아 헤매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확실성, 똑같은 불안감, 똑같은 두려움을 여러분도 느끼기를 원한다. 그런 것 없이 여러분은 절대로 나와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말로 진실을 찾는다면 이 단어의 미로 사이에서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실 살인 사건의 수사는 독자 입장에서 견딜 수 없이 느리게 진행된다. 그뮌드가 왜 K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중반이 지날 때까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가끔씩 특정한 환각 증상에 빠지게 되는 K 또한 그가 옛 건축물에 손을 대면 그 건물에 얽힌 과거의 사건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 까지 꽤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다. 끔찍한 살인 사건들은 매우 점잖은 문체와 세련된 문장으로 건조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너무도 상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건축물의 외관과 정제된 문장으로 다듬어진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페이지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은 사건의 느린 속도만큼이나 더디게 흘러 간다. 5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분량인데, 다 읽기까지 일주일 여의 시간이 걸렸으니 얼마나 천천히 읽혔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어들을 꼭꼭 삼켜가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은 매혹적이어서 자꾸만 책장에 손이 가는 독특한 작품이다.

 

K는 사건의 배후에 프라하의 찬란했던 과거황금시대를 재건하려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중심에 중세 체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개의 성당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카를로프, 성 슈테판, 아폴리나리, 에마우제, 나 슬루피의 성수태고지, 성 카테리나,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성당은 어디인가? 그는 존재를 알 수 없는 그 일곱 번째 성당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한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들을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완벽 복원하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그뮌드는 다시 한 번 과거가 현재가 되도록 만들려는 인물이다. 그의 맹목적 복원 의지는 단순히 건축 양식에서 그치지 않고, 14세기 당시의 급진적인 법과 정의, 결점 없는 종교적 순수함과 엄숙함을 프라하 전체에 입히려는 엄청난 계획이다. 현대 프라하의 모든 상업적인 요소들과 정신의 결여를 일순간 붕괴시키려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화형에는 화형으로, 멍에는 멍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갚으라 했네.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되돌이킬 때가 되었어. 멍청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건축가와 관료주의자들이 몇 명 죽는 편이 모두가 파멸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손에 고삐 대신 운전대를 잡을 야만인들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하나?

 

14세기 카렐 4세가 세운 프라하 신시가지의 미학적, 종교적 이상에 빠져 있던 K가 관심 있었던 건 과거에 존재하는 것 그 자체였다. 지금 이곳의 과거, 오래 전에 사라진 시대의 그 순간 말이다. 그뮌드가 복원하려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또한 비틀려 버린 과거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었을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은 가지고 있다. <눈먼 지도자들이 이끄는 눈먼 나라다. 우리가 길을 잃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눈먼 사람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유서 깊은 도시를 부수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라는 문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이다.

 

혼란스럽고 기괴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상황, 이미 지나가 버린 몇 백 년 전의 플래시 백은 독자들이 K의 능력을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모호하고 답답할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를 가진다면 지금도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유럽의 도시 프라하에 실존하는 여섯 개의 대표적인 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그에 대한 섬세한 묘사 만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극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다소 의외인 결말은 매우 놀랍다. 이건 뭐지? 싶어서 후반 몇 페이지를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했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결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색다른 중세 고딕 미스터리를 만나고 싶다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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