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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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내 삶은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불안한 토석 위에 서 있었다. 뭘 해도 자꾸만 넘어졌고, 여기 저기서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불쑥 나타났으며, 간절히 염원했던 일은 내 기대를 배반했고, 매일 매 순간은 마지막 한번 만 더 참아보자는 식으로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점점 더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의 앞날은 절대로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두 주먹으로 꽉 쥔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와도 같았다. 말이 줄어든 만큼 나는 틈만 나면 책을 읽어댔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주로 스릴러, 추리 소설들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악당 들을 물리치는 히어로가 있었으며, 그들이 가진 엄청난 매력과 능력은 거의 대부분 나에게 대리만족의 쾌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던 중에 만난 <경관의 피>라는 작품은 그 명성에 비해 나에게는 너무도 심심하고, 분량만 많은, 절대 미스터리 작품 같지 않은 그런 작품이었다. 어떤 상을 받았고, 명성이 어떻고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현실의 불행한 나를 위한 영웅, 내가 응원하고, 감정이입하고 싶은 등장 인물이 반..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캐릭터가 전혀 없었던,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 경찰의 일상이 주욱 나열되고 있는 이 작품이 당시의 나에게 와 닿지 않았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이 책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아마도 그런 간극은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내가 확연히 달라진 것만큼의 깊이일 것이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두 번씩 읽을 기회가 흔치 않다.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늘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잔뜩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감탄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감동을 받았던 책이라도 다시 그것에 시간을 투자하기란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6년 전에 출간되었던 버전의 개정판으로 분권이 합본으로 재 탄생한 <경관의 피>는 이번에 다시 읽게 되지 않았다면 나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하나의 작품이었을 지도 모른다. 종종 언제 보느냐가 결정적인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당신에게 제 시간에 도착했을 때 그 감흥이 거의 죽고 싶을 정도로 당신의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그러니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작품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 내가 명성만큼의 감동을 받지 못했다면 시간을 좀 두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한다.

"단속할 상대를 닮아가는 게 형사야. 강력범을 상대하다 보면 강력범처럼 돼. 사기꾼을 상대하면 사기꾼처럼 된다더군."

"성실한 지역 주민들을 상대하면 성실한 지역 주민으로 있을 수 있어요. 그렇죠? 주재 경관이 되어요. 출세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전쟁이 끝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절, 공습으로 타다 남은 본채에 다다미 석 장짜리 방을 덧세워 더부살이로 얹혀 사는 부부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서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제대로 된 직장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경시청에서 대대적으로 순사를 모집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순사가 만 명이나 부족하다는 기사를 읽었던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전쟁 전의 경찰과 달리 민주 경찰이 되었다며, 융통성 없이 옹고집으로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의 세이지는 그렇게 순사가 되기로 한다. 그렇게 그의 경찰 생활이 시작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부의 성격이다. 아내인 다즈는 그가 계급이 올라가서 너무 경찰관다워지는 것을 걱정한다. 세이지 또한 출세를 바라지 않는 대신 주재 경관이 되는 것을 목표로 아내와 아이들이 우선인 가장이다. 결국 그는 염원하던 주재 경관이 되고 덕분에 그들은 방이 두 개 딸린 주택에 가족과 함께 살면서 근무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찰이 퇴근 시간도 늦고, 외근도 잦아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반면에 주재소는 경관이 거주하는 집과 주재소 집무실이 함께 있으므로 아이들이 아버지의 직업과 인생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는 편이다. 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족으로서의 모습도, 직업인으로서의 모습도 모두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근 경관은 근무할 때만 성실한 경관으로 있으면 되지만, 주재 경관은 이십사 시간 내내 훌륭한 경관이 아니면 안 돼."

이렇게 스토리는 미스터리 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상태로 진행된다. 한 경찰의 삶이 그저 담담하게 펼쳐지면서 그가 겪는 사건들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정도이다. 그 중에 그가 경찰 일을 하면서 겪는 사고 중에 미결로 끝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우에노 경찰서 공원 앞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 젊은 남창 하나가 연못 옆에서 살해당한 사건과, 그들이 살던 셋집 바로 뒤에서 시체로 발견된 젊은 철도원의 살해 사건이다. 그 두 사건이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그는 개인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결정적인 단서를 찾게 되던 날 의문의 추락사로 죽고 만다. 그것도 주재소 바로 옆에 있던 오층탑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떨어진 육교 아래에서 발견된 탓에, 그는 순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책임감 없이 담당구역을 벗어난 그는 자살로 처리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살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로 이모사카 육교 아래로 추락했던 게 아닐까. 사고라면 사고여도 상관없다. 아니, 그것이 역시 자살이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것이 증류수처럼 명백한 진실임을 제시해준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세이지가 죽고 아들인 다미오는 세이지의 동료였던 가토리, 하야세, 구보타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경시청 경찰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가정 형편상 대학은 가지 못했던 그에게 경찰학교의 졸업이 다가왔을 때 공안의 가사이 경시가 나와 그에게 대학을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급여도 주고, 학비도 모두 지원해주겠다고 말이다. 경시청 공안부로서는 적군파가 신원을 의심하지 않을 수사원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마침 다미오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며 내부의 사정을 수시로 보고하고, 잠입 수사해 공을 세우지만 그는 "저는 공안경찰관이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아버지처럼 주재 경관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라며 공은 세웠지만 자신에게 외사과나 공안 수사원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역시나 아버지인 세이지처럼 출세나 성공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이, 그저 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학생운동의 동향을 캐기 위해 경시청 공안부의 스파이 노릇을 하다 극도의 불안신경증을 얻게 되고, 이후 그 일을 그만두고 평범한 경찰 업무를 할 때조차도 그것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좋지 못한 이유로 술을 마셨을 때 아내인 준코에게 자기도 모르게 손찌검을 하게 되는 등 후유증이 꽤 가지만, 어렵게 극복하고 그도 결국 주재 경관이 된다. 하지만 지명 수배범이 인질을 붙들고 난동을 부리는 걸 막다가 총격에 죽고 만다. 자신은 비번인 날이었음에도 주재소 경관이라는 책임감으로 인질을 살려냈기에 그는 죽음과 동시에 2계급 특진과 순직으로 처리된다.

"한 가지만 말씀해주십시오. 이 임무에 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뜻밖의 질문이었을까?

오이카와가 다시 가즈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피다. 자네에게는 훌륭한 경관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런 변칙적인 임무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아버지인 다미오가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기에, 아버지와 그다지 각별하지 못했던 아들 가즈야도 결국 경시청 경찰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순직 경찰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경찰서의 분위기에서 아버지의 경우는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대, 삼대 경찰관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그릇되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증명이기도 하고, 아이가 아버지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할아버지는 순직 처리되지 못한 자살이라 오히려 다른 시선을 받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가즈야는 문제 경찰관을 대상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라는 임무를 받게 된다. 폭력단을 담당하는 민완 형사 밑에서 일을 배우다 언젠가 증거를 쥐고 그의 뒤통수를 때릴 수밖에 없는 비밀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했던 잠입 수사와 색깔은 다르지만, 어찌되었던 비밀 업무를 말이다.

결국 이들은 삼대에 걸쳐 자신의 아버지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뭔가 다른 이유로 죽었던 게 아닐까, 라는 죽음의 진상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경찰관에 지원하고, 그 일을 해나가면서 답에 가까워진다. 아버지의 뒤를 계승한다는 그런 거창한 직업적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아버지 같은 경관이 되고 싶다. 라고 자연스럽게, 마치 물 흐르듯 그렇게 같은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된 손자가 그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맞닥뜨리는 순간은 두툼한 페이지만큼 쌓인 시간의 두께덕분에 더욱 묵직한 울림을 안겨준다. 전후 일본의 풍경과 현대사 육십 년이라는 시간이 서사로 밑바탕이 되어 있는 이야기라 더 그럴 것이다. 이 작품은 스릴 넘치고, 긴장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쓱쓱 편하게 페이지를 넘기다 어느 순간 그 페이지의 무게만큼 이들 삼대의 삶을 체감하게 된다. 한 권의 책에 이렇게 수십 년의 시간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하지만, 세이지, 다미오, 가즈야 각각의 스토리 자체가 독립되어 완성도와 재미가 있다는 점 또한 엄청난 필력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관은 경계에 있다. 흑과 백, 어느 쪽도 아닌 경계 위에 서 있어."

어떻게 보면 경찰 소설인데 주인공이 사명감이 투철한 영웅도 아니고, 특출한 재능을 가진 뛰어난 천재도 아니고, 너무도 평범한 인물인데다 스토리마저 '수사'보다는 경찰관의 '일과'에 맞춰 흘러가는 이야기라 그다지 임팩트가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나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잘 쓴 소설이지만 재미는 없고, 나에게 별로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 작품으로 느꼈으니 말이다. 그런데 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게 된 이 작품은 '경찰 수사극'이 아니라 '가족 드라마'에 가깝게 느껴졌다. 1대 경찰관인 세이지는 모범적이고 전통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 경찰관이 된 2대 경찰관인 다미오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신결 질환으로 폭력적인 가장의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이어 3대 경찰관인 가즈야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살아 생전 가깝게 지내지 못했지만 경찰이 되어 아버지와 유사한 업무를 하면서 비로소 그의 모습을 이해하는 아들이 된다.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고,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큰다고 하지 않나. 어린 시절 한없이 커다랗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의 등이 어느 순간 작고 초라해 보인다고 느끼는 어른이 되면, 그제야 우리는 아버지의 굽은 등 속에 숨겨진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길가다 무심코 발에 채이는 돌맹이나, 매일같이 숨쉬고 있어 깨닫지 못하는 공기처럼 특별한 것 없는 시간들이 쌓여 누군가의 인생을 완성시킨다. 극중 다미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가족의 얼굴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몇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다, 아이가 몇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다. 이렇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이렇게 긴 시간을 통해 삼대의 이야기를 했던 이유일 것이다. 가끔은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보여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문장보다는 행간으로 읽어야 하는 미스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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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2015-03-1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사키 조를 `폐허에 바라다`로 처음 만났는데 그 작품이 너무 좋아서 사사키 조를 찾아 읽게되었어요. 말씀하신 그 느릿느릿함이 마음에 들었달까요. 리뷰에도 썼지만 사사키 조는 뭐랄까 산책자의 어조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미스터리의 속도와는 다르게(더구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더욱 빠르죠.) 완만한 걸음의 시선으로 공간과 사람을 담아가는 게 저는 좋더군요.
저는 아직 절반 밖에 못 읽었지만(준코와 결혼하고 프락치 경험 때문에 아내를 구타하고 후회하는 장면까지 읽었어요) 행간으로 읽어야 하는 미스터리다라는 말씀에는 100% 공감합니다. `경관의 피`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

피오나 2015-03-11 12:29   좋아요 0 | URL
오.. 산책자의 어조..라는 표현 딱인 것 같아요. ㅎㅎ 천천히 읽어야 하는 미스터리는 흔치 않아서 호불호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두 번째 읽는 <경관의 피>는 멋진 작품임에 분명하네요. ^^

[그장소] 2015-04-15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을 분명하게 기억하는데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토록 맛이 달라지고 마는 소설의 세계..
돌아가서 다시 들춰 보고 싶어졌어요. 후기는 이런 글쓰기 여야 한다..라는 걸 교과서 처럼 보여 주신 듯 합니다.
모범적인 글쓰기의 한 정례 를 보고 자세를 바로 하게 될 만큼이요.
새삼스럽지만 신선하였습니다.생각하면 독서 후기란 읽는이의 인생관이나 삶이 더해져서 말이죠.
끝나고 나면 이미 그 글은 그 원작의 소설과 도 다른 형태의 새로운 창작물이 아닌가... 결론지어지고 말아요.
이 글은 피오나 님의 멋진 새 글인 경관의 피를 담은 다른 차원의 소설인 게 아닌가...그러는 거죠.

문장보다는 행간으로 읽어야...이건 띠지로...
경관의 피는 부제로
피오나 님이 지으실 님 만의 제목을 정한다면? ...(인터뷰 입니다.^^)

두 분의 (헤르메스 님과 피오나 님) 근사한 정담 잘 새겨듣고 갑니다.많이 배우고요..

개인적으로 사사키 조˝ 하면 그의 이름에서 음악같은 악상..연주하듯 자연스럽게..가 떠오릅니다.
행복한 시간 고맙습니다.^^

피오나 2015-04-19 18:00   좋아요 1 | URL
하핫..그장소님.. 이리 멋진 댓글을 달아주시다니..감사해요.
제가 댓글을 이제 봤네요. 댓글이 자주 달리는 곳이 아니라... ^^;;;

제목을 딱히 생각해 본 건 아닌데요. 그저 `삶`이 묻어나는 느낌의 제목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긴 해요. 근데 제목까지 그러면 정말 경찰 소설 같지 않아 질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말씀대로 `음악같은 악상. 연주하듯 자연스럽게`가 사사키 조의 작품과 너무도 잘 어울리네요. ㅎㅎ
올해는 <경관의 조건>이 출간될 예정이래요. <경관의 피>에서 9년 후의 이야기라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관이 된 가즈야의 이후 이야기도 기대중입니다.

그장소님의 정성 스런 댓글 덕분에.. 저도 행복한 시간이 되었네요. ^^

[그장소] 2015-04-19 19:21   좋아요 0 | URL
인사는 제가 해야..^^ 이후로 제 글을 보니 어찌나 비어 보이던지..
좋은 글쓰기임에도 개인적 체험과 양념을 잘 버무린 분들의 글을 만나면 반갑고 기쁘면서 역시 제가 쓸때는 감각만을 옮기게 됩니다.

경관의 조건 ㅡ보기에 조화롭고 아름다울 것..(??여경인게요?)ㅋ

경관의 피 ㅡ쌍피 보너스
앗싸 !한장씩 내놔! 하는 소리 들리는..ㅋㅋㅋ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

비오는 주말 저녁 마무리도 즐겁게 잘 하시길 바라고요.
저도 경관의 조건 기대하며..후기도 또 기다리겠습니다.
그럼..달디단 밤....^^

[그장소] 2015-04-1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s.인터뷰 답글 또한 고맙습니다.
장난처럼 한 것인데 성심성의껏...^^
북플 에러로 제가 이글만 세번째 다시씁니다.ㅎㅎㅎ
그게 하나도 귀찮지 않을만큼 고마웠네요.
 
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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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파일로 밴스가 등장하는 책을 읽다가 S.S. 밴 다인의 작가 이력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는 건강 악화로 의사에 지시에 따라 2년간 장기 요양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담당 의사는 독서를 금지시켰다. 지나치게 많은 집필 활동으로 인한 건강 악화였기에 내려진 특단의 조치였는데, 밴다인은 의사에게 미스터리 소설만은 읽을 수 있도록 요청했고 의사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는 요양하는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미스터리 소설들을 읽어댔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부터 연대순으로 현대 작품까지 읽기 시작했고, 자신이 읽은 것들을 정리하고 체계화했다. 결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미스터리 작품들이 쇄를 거듭하여 팔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경험과 연구가 월등한 자신이 더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여겼다. 거기서 새로운 탐정 캐릭터를 구상하고 풍부한 교양과 현학적인 묘사가 흘러 넘치는 입담의 파일로 밴스라는 탐정이 탄생한다. 그는 탐정 소설을 쓸 경우에는 매우 명확한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글쓰기 원칙들을 간결하게 정리해 '탐정 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먼저 <녹스의 십계>의 각 항목을 수식으로 기술해 10차원의 매트릭스를 구성한 뒤 이것을 '녹스장'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 녹스장에 저자와 독자의 대결 방식에 기반한 '2-제로섬-유한[확정[완전정보형 게임'의 알고리즘을 채우고 쿠머와 후마얀의 스토리 생성 방정식을 거꾸로 돌려 해의 분포를 그림으로 그린다.

유안의 짐작이 옳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해의 분포는 황금기의 탐정소설 작가들이 점점 더 똑똑해지는 독자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지혜를 짜내 고안해낸 정교한 속임수나 플롯의 이노베이션 곡선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탐정 소설을 쓰기 위한 작법 그 자체보다 수많은 미스터리물을 읽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화해서 이론화한 그의 능력에 감탄했는데, 사실 이것은 장르 소설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밴 다인의 규칙은 관점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부분이 물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들을 분석해서 추려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만약 현대의 범죄, 미스터리, 추리 소설들도 그 수많은 작품들을 전부 다 분석하고, 규칙을 파악할 수 있다면, 만약 그것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넣고 돌릴 수 있다면, 그걸 토대로 완전히 다른 작품을 '오로지 그 규칙들을 통해서'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의 손으로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언젠가는 정말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램이 기존에 출간된 작품들의 장점을 추려 모으고, 단점을 정리해서 보완할 수 있다면 새로운 작품을 써낼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공상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노리즈키 린타로의 신작 <녹스머신>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감탄과 공감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이런 소재로 이렇게나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다니!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 책은 일반 적인 미스터리와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소 머리가 아플 수 있고, 혹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헤맬 수도 있음을 미리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정말 획기적으로 새롭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만큼 행복한 재미를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야기는 2058년의 어느 날, 상하이 대학의 유안 친루가 국가과학기술국으로부터 소환장을 받는 걸로 시작한다. 소환장에는 유안의 박사논문에 관해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유안 친루는 문학수리해석을 전공한 문학 연구자이다. 배경은 컴퓨터로 제작하는 오토포메틱스 문학이 노벨 문학상까지 받는 그야말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대이다.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 생성 방정식이 발표되자, 인간의 뇌와 손이 창작해내는 문학은 내용 면에서나 비용 대비 효율 면에서 '오토포에틱스'를 대적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완전히 자동화된 이야기를 창작하겠다는 꿈이 현실화된 세상인 것이다. 주인공 유안의 전공인 문학수리해석은 시나 소설 작품에 사용되는 단어나 관용구의 빈도를 정밀 분석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학문으로 이것을 통해 어구의 수준부터 문장의 결합, 작품 구조 해석에까지 연구 범위가 확대되고, 작가 고유의 문체를 통계학 기법으로 완벽히 되살려낼 수 있게 된다. 분명 이것은 소설 상의 설정일 뿐인데, 나는 어쩐지 이것이 미래의 언젠가 실제로 현실로 이루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 세상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사람 냄새 나지 않는 문학이 삭막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유안이 발표했던 논문은 로널드 녹스가 발표한 탐정소설의 규칙 '녹스의 십계'에 관한 것이었다. 선배 연구자들 대부분은 밴 다인의 '잠정소설 작법의 20법칙'을 해석 모델로 사용했으나, 자신이 보기에 그것은 융통성이 없고, 엄밀성이 결여된 기술도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과학기술국 장관은 바로 그 논문에 양방향 시간여행의 난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실마리가 있다며, 유안에게 녹스가 이 책을 집필하던 1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들의 가설이 옳다면 역사상 최초의 양방향 시간여행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용기를 내어 밝히겠다. 솔직히 크리스티 여사가 나를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그의 전기작가 지위에서 물러나게 만들면 어쩌나 두려웠다.

들러리의 전통이라거나 탐정소설의 공정한 플레이라는 식의 그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크리스티 여사의 심경 변화로 포와로와 쌓아온 오랜 우정이 깨지는 것은 아닐까? 두 번 다시 포와로의 모험에 함께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가? 오직 그 점만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이 셰퍼드 의사의 수기로 발표된 탓에 나만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총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표제작인 <녹스머신>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수록된 〈논리증발 - 녹스 머신 2〉에서 기묘하게 완성된다. 〈들러리클럽의 음모〉는 불멸의 고전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존 왓슨 박사, 헤이스팅스 대위 등 들러리들이 모여 애거서 크리스티와 벌이는 색다른 두뇌싸움이 주요 스토리인데, 정말 유쾌하고 기발하고 매력적이다. 〈바벨의 감옥〉은 기존의 그 어떤 탈옥소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른 스토리를 자랑한다. 특히 이 작품은 일본어 세로쓰기에 맞춘 트릭으로 구성된 작품이라, 중간중간 경상인경이 주고 받는 메세지가 세로쓰기로 구성되어 있어 더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이다. 이 리뷰를 쓰면서 정작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보다 작품의 배경에 대한 단상을 더 길게 언급한 이유는 이 작품만의 새로움을 글로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혹은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이 책을 읽어야 오롯이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가 천만 돌파를 하는 요즘에 시간여행, 양자역학 같은 현대물리학 지식을 총동원한 미스터리라 너무도 흥미진진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정점을 찍는 이야기생성에 관한 아이디어는 너무도 매혹적이다.

그동안은 작가의 이름 '노리즈키 린타로'와 같은 이름의 탐정이 등장하는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만 읽다가, 이번에 출간되는 책은 무려 SF 미스터리 집이라고 해서 더욱 궁금했던 작품인데,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미스터리물 중에서 가장 색다르지만 공감되고, 복잡하지만 명확하며, 어렵지만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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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 제56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요코제키 다이 지음, 이수미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할아버지의 책장이 좋았다. 할아버지 책장은 동서고금의 미스터리로 꽉 채워져 있었다. 일본 작가는 물론 외국 작가의 미스터리까지 다양했다.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할아버지 책장 덕분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마치 걸신들린 듯 미스터리를 탐독했다. 어쩌면 이야기에 굶주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이즈음부터 의식하게 된 것 같다.

매년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완성하여 에도가와 란포 상에 응모한다. 그렇게 결심한 것은 지금부터 8년 전의 일이다. 생각하면 도움닫기가 참 길었던 것 같다. 그러나 멀리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수상소감 중에서

글쓰기는 정해놓은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 앉아서 정해진 분량을 꾸준히 써야 하는 고단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무런 보답도 주어지지 않는 일이라면, 매일같이 혼자 벽보고 앉아 있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매년 응모하는 공모전에 꾸준히, 몇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낙방한다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 곳에 정말 길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무작정 돌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을 하면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그저 낭만적인 취미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회식이다 약속이다 일정 때문에 꾸준히 글을 써나가기도 어려울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다 이겨내고 결국 작가가 된 이가 있다. 내가 56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바로 그런 작가의 이력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작가지망생이었던 그는 공무원이 되었지만 작가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그는 란포상에 도전해보고자 마음먹고 퇴근하고 몇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생활을 꾸준히 지속한다. 그렇게 8년 동안 연속해서 작품을 응모해서 최종후보에 4번이나 올랐다 떨어지는 동안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떨어진 작품들이 일곱 편이나 되지만, 그는 그 시간을 이겨내고 결국 목적을 이루어낸다. 8년 동안이나 연속해서 응모를 해서 이루어낸 그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정말 대단하다. 일곱 편이나 낙선되면서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쓴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유명한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태에서도, 꿈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그 용기가 멋지고 대단하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말았다. 설마 사쿠마를 죽인 흉기가 타임캡슐에 넣어둔 권총이었을 줄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역시 그 권총을 묻은 건 너무나 경솔한 행동이었다.

후회해도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이 상황에 초조감만이 가슴을 적실 뿐이었다.

헤어 디자이너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마키코는 아들인 열두 살 마사키가 도둑질을 했다는 전화를 받고 근처 슈퍼마켓으로 달려간다. 마사키는 내년 봄부터 명문 사립중학교에 추천을 받아 입학할 예정인데, 대학까지 자동으로 진학할 수 있는 터라 그녀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입학이 취소될까 고민이다. 전화로 그녀를 호출한 히데유키는 이 일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그녀는 전남편 게스케와 상의해 돈을 마련하지만 그의 요구는 계속 된다. 경찰에 알려지더라도 아직 열두 살이라 직접적인 벌을 받게 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내년에 입학할 학교에 미칠 영향이다. 돈을 더 유구하던 히데유키는 급기야 그녀의 몸까지 요구하게 되고, 돈으로 어떻게든 무마하려던 그녀의 전남편은 약속 장소에서 그가 죽어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경찰에 신고하게 되면 그들이 이 장소에 온 이유에 대해서도 추궁을 받을 것이 뻔해 그들은 그대로 도망치기로 한다.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니면서, 마치 범인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하지만 싱글 맘으로 살면서 아들의 미래를 가장 중요시하는 엄마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나가와현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이 살인사건을 계기로 초등학교 동창생 4명이 재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냉정한 리더 게스케, 철부지 나오토, 개구쟁이 준이치. 그리고 말괄량이 마키코. 왠지 마음이 맞았던 네 친구는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였다. 수업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도 함께 놀았고, 방과 후에는 검도 교실에서, 검도를 쉬는 날이면 숲이나 빈 터에서 함께 놀았었다. 이들 네 명중에 게스케와 마키코는 결혼을 했다 이혼을 한 상태이고, 나오토는 프레쉬 사쿠마의 실질적인 경영자이자 히데유키의 배다른 동생이다. 준이치는 형사로 슈퍼마켓 점장 살인사건의 담당자가 된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권총이 23년 전 순직 경관이 분실한 권총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급 물살을 탄다. 순직한 경관은 다름 아닌 게스케의 아버지로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준이치가 사건의 최초 발견자였고, 그들 4 명이 그 권총을 타임 캡슐에 묻었던 것이다. 타임 캡슐을 묻은 장소는 그들 4명만 알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누가 어떤 이유로 타임캡슐을 열었으며, 살인사건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분명히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현재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과거의 인물들간에 숨겨진 관계를 파헤치는 스토리에다, 오랜만에 만나는 다소 촌스러운 소재 타임캡슐도 매우 흥미롭게 얽혀있다. 불필요한 수식이 많지 않고, 선정적인 사건이 없어도 물 흐르듯 흘러가는 스토리가 묘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타임캡슐을 둘러싼 23년 전의 사건과 네 명의 동창생.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심과 추측, 그리고 밝혀지는 숨겨진 사실은 잘 어우러져 작가의 탄탄한 습작기를 짐작케 할 정도로 흐트러짐이 없다. 란포상에 8번이나 도전한 끝에 당선된 작품이라는 것이 괜히 과장된 홍보문구가 아님을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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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아케이드
오가와 요코 (지은이) | 권영주 (옮긴이) | 현대문학 | 2015-02-28 

 

'상실로 인한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이 오가는 아케이드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연작 소설집'이라는 소설 리스트의 소개 글을 읽자마자 궁금했던 책!

 

상실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슬픔을 끌어안고 헤매다 작은 아케이드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죽은 이의 기억이 담긴 물건을 사고 따뜻한 어둠에 슬픔을 풀어놓는다.

 

 

 

 

 

프로테우스- 토벨라의 심장
디온 메이어 (지은이) | 이승재 (옮긴이) | arte(아르테) | 2015-02-25

 

아프리칸스어라는 소수 언어의 한계를 딛고 전 세계 28개국에 번역 출간된 디온 메이어의 대표작이자, TV 시리즈로 각색되어 최고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걸작 스릴러이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첫 페이지부터 곧장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라고 마이클 코넬리가 극찬하는, 무려 아프리카 작가의 스릴러 책이라니, 너무 궁금하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은이), 김난주 (옮긴 이) | 재인 | 2015년 2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언제나 옳다. 즉, 언제나 재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는 뜻.

 

이번 신작은 연작 시트콤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니, 나미야 잡화점처럼 따뜻하고 인간미넘치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리버의 재구성 ㅣ 매드 픽션 클럽  
리즈 뉴전트 (지은이), 김혜림 (옮긴이) | 은행나무 | 2015년 2월

 

매드 픽션 클럽 시리즈 또한 거의 실패 확률이 제로인, 괜찮은 작품들이 주로 나왔었다.

 

예기치 못한 잔인한 가정폭력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사건의 배후와 사건을 일으킨 한 인물의 과거를 되짚어가며 그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퍼즐 맞추기를 하듯 풀어가는 심리 스릴러..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재료들이 잔뜩 모여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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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예수
고진하 지음 / 비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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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윌리엄 데이비스 <가던 길 멈춰 서서> 중에서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 같은 독자라면 '예수'가 시를 읽어준다고? 하며 반감부터 가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책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술술 읽힌다. 서른여섯 편의 시와 산문들 각각에 시인의 해석이 에세이처럼 덧붙여져 있는데, 컨셉이 예수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시일 뿐이지 시 자체가 종교적인 내용을 설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를 읽게 되었는데, 복잡한 플롯과 긴 서사를 사랑하기에 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대다, 이렇게 만나게 되는 ''는 뭐랄까, 마음의 쉼표를 잠시 찍어주는 것 같은 여유로움을 안겨 주었다.

사실 하루 하루 너무 바쁘게 보내다 보니, 뒤를 돌아볼 여유도, 내 곁을 지나는 바람도 느낄 겨를이 없이 올해를 맞이했고, 어느새 2월도 내일이면 마지막 날이다. 새해가 시작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나 지나버리고 나니, 그저 두 달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 마저 들었다. 윌리엄 데이비스의 <가던 길 멈춰 서서>라는 시에서는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렇다면 그 인생은 불쌍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던 길 멈춰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그저 바라볼 틈마저 없다면 대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어쩐지 요즘의 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 같아서 뜨끔하기도 하면서, 서글퍼진다. 저자는 이 시에서 ''에 주목한다. 생명이 싹을 튀우는 곳도, 사랑이 자라나는 곳도 바로 틈이라고. 감옥의 독방에 갇혀 절망한 어느 시인이 우연히 창살 사이로 갈라진 시멘트 틈을 비집고 나온 작은 풀꽃을 보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고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우주만물은 틈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에도 바로 이런 ''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행복의 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고,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헬렌 켈러의 시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헬렌 켈러의 강인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음을 본받고 싶다. 사실 같은 상황도 마음 먹기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마음'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제어가 되지 않아서 문제이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을 수만 있다면 뭐든 극복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눈도 캄캄, 귀도 캄캄, 목소리도 캄캄하게 닫힌 이의 눈물겨운 고백에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진다고 쓰고 있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삶의 기쁨이나 행복은 맛볼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몸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모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은 그것은 소중함을 모른 체 허투루 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리는 상실을 경험해봐야 그것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 그저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럴 수록 이런 시가 필요한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변명하지도 않고, 단어 몇 개 만으로도 심금을 울릴 수 있으니까.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예수의 가르침이 드러난 글을 읽어본 적도 없기에,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저자의 의도대로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책은 독자의 오독에서 자유롭지 못한 운명 아닌가. 어떻게 읽든, 어떻게 해석하든 읽고, 느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게다가 나는 오랜만에 ''를 읽게 되어 괜히 들뜨고 설레이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더라. '시는 새로운 독자와의 만남으로 늘 완전해지려고 하는, 언제나 미완성인 작품이다'는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말처럼 독자 여러분들이 이 글을 완성해달라는 저자의 말은 이런 나의 마음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종교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예수는 시인이다. 은유의 천재다."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며 더욱 감탄할 지도 모르겠다. 암튼, 비종교인인 내가 읽기에도 참 좋은 책이었고, 종교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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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2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서가 멋진 은유로 이루어진 표현이 많아서 무교도 읽으면 좋은 책이에요. ^^

피오나 2015-02-27 17:37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ㅎㅎ 저도 선물받아서 한 권 가지고 있긴 한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