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시답지 않아서
유영만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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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난과 시련의 방파제만 만들어 놓고/파도치는 물결만 관망하던 당신은/갑자기 찾아드는 뒤늦은 오후에/내일도 꿈꾸게 될 아슬아슬한 기적만 상상할 뿐입니다.//살아온 모든 책의 페이지마다/우여곡절의 악보로 채워진 한 권의 책을/밤새 온몸으로 읽어도 다 읽지 못하고/여운이 페이지마다 감도는 불멸의 습작은/당신에게는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미완성입니다.              p.25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는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의 신작이다. 당연함에 물음표를 붙이고, 버려진 말들을 찾아 모으고, 타성과 관성에 젖은 언어를 세탁하고, 모든 절망의 언어를 희망의 단어로 바꾸고, 우울함의 그림자에서 빛나는 자아를 찾아내는 여정이다. 왜 그는 시를 놓지 않고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까. 


그는 삶이 시답지 않아도 사람은 시답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시처럼 행과 연을 나누며 쓰였지만, 산문처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시적 언어’의 힘을 탐구하는 상상력과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시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사유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사랑'은 추상명사이지만, 이 책 속에서는 동사로 변신해서 나뭇가지에 매달린다. 여러 가지가 그리움에 줄기차게 입맞춤하며 하늘의 별빛으로 무르익어 가면, 그리움에 지쳐 나도 모르게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그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선뜻 시에 손이 가지 않았다면,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잘 읽히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 시적 언어를 만나보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며 낯설다거나, 난해하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할 것이다. 덕분에 시가 이렇게 쉽게 이해될 수도 있는 거구나 깨닫게 되어 시집을 찾아 읽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칸트를 읽다가 길을 잃고 카페에 들려 냉수를 마십니다.스피노자를 읽다가 휘둘리는 감정에 몸을 던지고/니체를 읽다가 욕망의 사다리를 만납니다./플라톤이 새벽같이 일어나 이데아의 세계를 건설하고/아리스토텔레스가 밤잠을 설치며/현실에서 진실을 찾으라고 설파하는 정언명령 사이에서/저녁노을은 붉게 타들어 가는 속마음을 허공에 던집니다.              p.170


 

시는 은유에서 시작해서 은유에서 끝난다. 시만 은유를 독점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은유 없는 시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시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만들어질 수 있지만, 시인은 태어나야만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저자인 유영만 교수는 자신이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늦은 밤의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시인은 될 수 없을 지라도, 시적인 사유를 하고, 그것을 언어로 빚어내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언어는 우주 안에 흩어진 채 존재하는 '있음'들을 하나씩 불러 이름을 주고 그것에 실존을 입혀 누군가에게 건네는' 거라고 어디선가 읽을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언어가 어떻게 삶을 읽어 내는지,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우주와 존재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계절이 변하는 풍경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도, 막막한 암담함과 절박함도, 견뎌야 하는 번뇌의 무게도 달라진다.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어제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게 바로 시적 언어가 가진 힘이다. 아스팔트의 견고함도 뚫고 일어서는 봄날의 풀잎을 보여 경이로운 기적을 깨닫고, 하늘이 뚫린 듯 멈추지 않는 폭우 속에서도 비 갠 후 맑은 날이 찾아올 것을 고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 삶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만드는 시적 언어의 세계를 경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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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영향력 - 10세에서 25세까지, 젊은 세대를 변화시키는 동기부여의 새로운 과학
데이비드 예거 지음, 이은경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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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강요자와 보호자 마인드셋에 기댈까? 이러한 차선의 리더십 유형은 타당한 두려움과 걱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강요자 유형은 미성숙하고 반항적인 청소년들이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청소년들에게는 책임과 규율,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뛰어난 인재가 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어른들은 생각한다 '나는 청소년들이 최대한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다그칠 수도 있고 그냥 방치할 수도 있어.' 애초에 이런 가정에서 시작한다면 강요자들이 스스로 청소년들과 사회에 최선인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p.102


사춘기부터 사회초년생에 이르는 젊은 세대와 바람직하게 상호작용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조언을 들려주는 <어른의 영향력>을 어크로스의 600P 클럽으로 읽었다. 600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이지만 리딩 가이드를 통해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고, 책 속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미션과 필사를 하며 차곡차곡 따라가다보면 가뿐하게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수 있다. 가끔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아이가 이상 행동을 하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 알고 보면 부모의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사춘기 청소년들 대부분은 어른의 조언을 꼰대질로만 치부하고, 부모와 선생님 말은 지독하게 안 듣고 반항을 일삼는데, 그 또한 그들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어른들의 문제였다면 어떨까. 


이 책에서 심리학자 데이비드 예거는 젊은 세대를 향한 어른들의 피드백이 실패하는 이유가 청소년이 미성숙하고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신경생물학적 무능 모델’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어른들이 청소년의 뇌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신경생물학적 요구를 정확히 이해해 동기와 행동을 유도하고, 그들에게 현명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멘토 마인드셋’을 제안한다. 멘토 마인드셋이란 젊은 세대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런 높은 기준을 맞추는 데 필요한 지원도 제공하는 방식이다. 높은 기준을 유지하면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막을 수 있으며,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진지하게 대하고 그들이 유능하다는 평판을 얻는 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지위와 존중을 얻을 길을 열어준다. 저자는 '강요자', '보호자', '멘토' 마인드셋이라는 것을 각각 나누어 설명하며,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역사를 거쳐 왔으며, 어떤 효과가 있는지 비교해서 알려 준다. 





중요한 것은 '흥미'가 아니라 '의미'입니다." 버거가 말했다. 그는 교육과정 설계자들이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단기적 흥미와 장기적 만족 지연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버거의 관점에서 보면 둘 다 썩 적절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흔히 '지금 공부해서 나중에 좋은 일자리를 얻어'라고 말합니다. 매년 미국 학생 5000만 명에서 두 번째 마시멜로를 기다리라고 말하는 거죠." 버거는 청소년들에게 공동체와 사회적 평판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무엇인가를 성취할 기술을 학습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지금 당장'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p.322


전설적인 NBA 코치인 칩 엥겔랜드는 선수가 훈련 중에 슛을 실패했을 때 "틀렸어, 멈춰, 이렇게 해!"라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대신 "어떤 느낌이었어?"라고 묻고 대답을 기다린다. 서지오 에스트라다는 학생이 물리 문제를 풀다가 틀렸을 때 "힘을 곱하는 걸 깜빡해서 이 문제를 틀린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이 답을 구했는지 말해볼래?"라고 물으며, 학생의 이해를 바탕으로 협력적 문제해결을 시작한다. 스테프 오카모토는 낮은 평가를 받을 듯한 직원에게 "당신은 전부 잘못하고 있어요"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어디에서 막혔고, 지금까지 뭘 시도해봤는지 알려줄래요?"라고 물으며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렇게 NBA 코치는 자존심 강하지만 실수가 많은 스타 선수의 슈팅 성공률을 끌어올렸고, 고등학교 교사는 매년 90% 이상의 학생들을 대학 수준의 물리 시험에 합격시켰으며, 관리자는 지옥 같은 회사였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지시'보다 '질문'이 멘토 마인드셋을 실천하는 핵심을 이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예거는 이 책에서 멘토 마인드셋이 학습 의욕 결여, 해로운 식습관, 학교폭력 등 청소년의 행동 문제를 줄인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인다. 그리고 멘토 마인드셋을 지닌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청소년의 삶에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상세하고 드라마틱하게 서술한다.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효과적이고 배우기 쉬운 실천법을 수록했다. 부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치고는 꽤나 많은 분량인데, 내용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 저자가 사용하는 개입법과 워크북에서 뽑은 것이라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각 장의 내용에 맞춰 질문에 답을 하면서 따라가다보면 멘토 마인드셋을 현실에서 실천해볼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신경과학, 심리학 연구와 실험의 최신 결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다, 누구나 배우기 쉬운 효과적인 실천법을 제시하고 있어 대단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젊은 세대를 향한 어른들의 피드백은 왜 항상 실패하는지 궁금했다면, 청소년기 뇌에 대한 오해와 통념을 깨는 동기부여의 새로운 과학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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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나들이 어휘력 편 - 신뢰와 호감을 높이는 언어생활을 위한
MBC 아나운서국 엮음, 박연희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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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다가 제대로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판을 엎을 때가 있죠? 이처럼 일이 잘못되어 흐지부지됐을 때 쓰는 말, 많은 사람들이 '파토'가 났다고 하지만 정확한 표준어는 '파투'입니다. 흔히 화투 놀이에서 장수가 부족하거나 순서가 뒤바뀔 때 그 판을 파한다, 즉 뒤엎는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파토가 아니라 파투, 기억하세요.             p.92


'금일'을 금요일로 혼동하고, '사흘'을 4일로 이해하거나, '심심한 사과'를 잘못 받아들여 오해하고, '우천 시 장소 변경'을 '우천 시에 있는 지역'으로 알아듣는 등 문해력 저하가 어느덧 사회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단어뿐만 아니라, 말의 맥락도 파악을 잘 못하는 것이 요즘 현실인데, 이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넘어 학습 부진과 세대 간 갈등이라는 지점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문해력과 맞닿아 있는 어휘력 부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1997년부터 30년 가까이 방송되고 있는 <우리말 나들이> 프로그램이 그간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현시대에 유효하고 필요한 내용들을 엄선해 책으로 엮었다. 틀린 우리말을 바로잡고 좋은 우리말을 널리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답게, 올바른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알려주고, 케케묵은 표현이나 낯선 외래어를 다듬어 쓸 수 있는 순화어를 제안하는 등 군더더기 없이 실용적인 팁을 가득 담았다. 특히나 잘못된 발음에서 이어진 틀린 표현들을 짚어 주는 장에는 MBC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정확한 발음을 들을 수 있는 큐알코드를 삽입해 이해도와 활용도를 높였다. 아름다운 순우리말이지만 사용 빈도가 낮은 표현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현시대의 언어에 집중해 실용성을 높인 점도 장점이다. 





한 SNS에 검색해보니 #쑥맥의 해시태그 숫자가 #숙맥의 열 배였는데요. 표준어는 '숙맥'으로, <쑹맥>이 아니라 <숭맥>으로 발음합니다. 한자 콩 숙, 보리 맥을 쓰는 '숙맥'은 콩과 보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뜻합니다. 또한 '숙맥불변'에서 나온 말로,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SNS에 해시태그를 달 때 지금부터라도 표준어 #숙맥을 쓴다면 비표준어 #쑥맥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숙맥 같은 생각일까요?                 p.155


표준어보다 비표준어가 온라인에서 더 많이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해시태그 #애시당초를 검색하면 5천 개가 넘는 관련어가 나오는데, '애시당초'는 표준어가 아니다. '당초'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처음을 뜻하는 말로, 이를 강조해 이르는 말이 바로 '애당초'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표준어인 '애당초'를 SNS에서 찾아보면 백여 개 정도의 해시태그만 나온다. 정확한 우리말을 써야 하는 뉴스 기사에서도 종종 '애시당초'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쑥맥'과 '숙맥'도 그렇다. 표준어는 '숙맥'이지만, 실제로 온라인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쑥맥'이다. 그외에도 어쭙잖다와 어줍잖다, 엉큼하다와 응큼하다, 여태껏과 여지껏, 옥에 티와 옥의 티, 욱여넣다와 우겨넣다, 원체와 원채, 쩨쩨하다와 째째하다 등 흔히들 잘못 사용하고, 틀리게 알고 있는 우리말이 정말 많다. 


외래어는 표기법이 통일되지 않고 다르게 쓰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더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데이션과 그라데이션, 난센스와 넌센스, 내비게이션과 네비게이션, 라이선스와 라이센스, 레모네이드와 레몬에이드, 루주와 루즈, 셔벗과 샤베트, 소시지와 소세지, 메시지와 메세지, 슈퍼마켓과 수퍼마켓 등 정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인데 정확한 외래어 표기법이 뭔지에 대해서는 다들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우리말 사용에 대해 한번쯤 짚어본다면 아주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에 대한 정확한 뜻풀이와 다양한 예문, 문제 풀이까지 수록해 제대로 된 언어생활 지침서가 되어준다. 함께 알아두면 좋을 우리말과 속담, 사자성어, 관용구 등도 소개되어 있고, 각 장이 끝나면 공부한 내용들을 점검해 볼 수 있는 문제도 수록되어 있다. 맞춤법 검사기와 사전 없이 글을 쓰기 어려웠거나, 사회생활을 앞둔 취준생들과 문서 작성이 잦은 직장인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우리말을 제대로 익혀 어휘력을 끌어올리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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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플레임 2 엠피리언
레베카 야로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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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제이든의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 오빠와 언니를 보았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잃어버리고는 살 수 없는 모두가 여기 있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그들을 지킬 수 있었다. "가장 강력한 라이더 여섯 명의 피가 필요해."

브레넌이 눈썹을 확 올렸고, 미라는 상한 우유라도 마신 사람처럼 코를 찡그렸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라이더? 아니면 지금 살아 있는 라이더?" 제이든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물었다.            p.49


전 세계를 ‘은빛 팬덤’으로 물들인 ‘엠피리언(Empyrean)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이다. <포스윙>에 이어 <아이언 플레임>은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큰 판형의 두툼한 양장본인데다 <포스윙>은 662페이지, <아이언 플레임> 1권이 488페이지, 2권이 428페이지라 분권이라 오히려 다행인 분량이다.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로맨스판타지를 대중 장르로 승격시키며 장르문학의 판도를 바꾼 시리즈로 평가받은 만큼, 이 시리즈는 '최강 포식자'라는 수식어로 베스트셀러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정식 표지 안쪽에 일러스트 버전 표지도 숨겨져 있는데, 각 권마다 다른 작가의 커버를 통해 주인공 바이올렛과 제이든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포스 윙>은 로판계의 쓰리스타 '에나 작가'의 버전으로, <아이언 플레임 1>은 <데못죽> 일러스트레이터 '텡 작가'의 버전으로, <아이언 플레임 2>은 <주인공의 주식을 팝니다> '이랑 작가'의 버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느낌으로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어 아주 특별한 소장 커버가 되어준다. 아름다운 일러스트 커버와 보드는 한정 수량으로 제공되니, 기왕이면 특별 커버가 있는 버전으로 구매하면 좋을 것 같다. 




400년간 전쟁 중인 이 나라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20살이 되면 강제로 군대에 징집되는 법이 있다.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에는 힐러, 서기, 보병, 라이더라는 4개의 분과가 있었고, 드래곤의 선택을 받은 라이더들이 위계상으로 가장 높았다. 그 속에서 무기로 만들어지고 연마되는 그들은 포로미엘 왕국과 그들의 그리폰 라이더들이 벌이는 맹렬한 침략 시도로부터 국경을 지켜야 한다. 당연히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한 바이올렛 소른게일은 . 영리하고, 암기력이 뛰어나 평생 서기가 되기 위해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사령관인 어머니에 의해 자의와는 상관없이 라이더 분과에 지원하게 된다. 오빠와 언니 모두 뛰어난 라이더였는데도, 바이올렛은 선천적으로 뼈가 잘 부러지는 병을 갖고 있어 이곳에서 살아남기가 사실상 너무도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해내고 싶었던 바이올렛은 매 순간 '난 오늘 죽지 않을 거야'를 되뇌이며 버텨내며, 무사히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드래곤 라이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1년 중에서 가장 긴 밤에, 가장 어두운 때가 왔다. 휘감기는 무력감의 무게를 떨쳐내려고 애쓰면서도 뱃속이 뒤틀렸다. "넌 아레티아로 떠났으면 좋겠어." 나는 앤다나에게 말했다.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떠나. 숨을 수 있는 곳에 숨으면서 브레넌에게 돌아가." "난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 거고, 그건 네 옆이야." 앤다나가 대꾸했다. 내가 앤다나를 살려두기 위해 무슨 논리를 짜낸다 해도 소용없었다. 우리 둘 다 알았다. 인간은 드래곤에게 명령하지 못한다. 앤다나가 테른과 나와 함께 죽겠다고 결심했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물며 눈이 따끔거리는 기분을 삼키려 애썼다.                 p.347


<아이언 플레임> 2권의 배경은 제이든의 대저택이다. 이곳은 6년 전 반란 후 반은 궁전, 반은 병영이기도 한 곳이다. 은밀하게 재건되고 있는 새 혁명에 바이올렛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루아침에 반역자가 된 바이올렛과 라이더들은 위대한 드래곤의 선택을 받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지만, 실제 전투를 치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은 상태다. 그렇게 혁명군의 지휘 아래 이곳에서 두 번째 군사학교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졸업하는 것만이 목표였던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힘없는 나라들과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무게와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와중에 바이올렛은 이 거대한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인 '보호막'을 올리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데, 과연 그녀는 최초의 여섯 라이더가 쓴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마법의 장막을 세울 수 있을까. 




<포스 윙>이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아이언 플레임>에서는 군사학교 밖에서 새로운 환경과 위기에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해 시작부터 다른 지원생들에 비해 불리했던 바이올렛 소른게일은 자신을 노리는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암투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오빠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처음부터 신경쓰였던 매혹적인 반역자의 아들 제이든과 기어코 사랑에 빠진다. 숨겨졌던 추악한 역사와 믿었던 친구의 배신 외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난관들이 거듭되는 가운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스펙터클한 여정이 계속 된다. 어둠의 세력 베닌에 대항하기에는 기술적으로도, 수적으로도 열세한 드래곤 라이더들은 과연 이 거대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 41만 개가 넘는 리뷰가 올라와 있고, 뉴욕타임스 66주 연속 베스트셀러, 시리즈 드라마 제작 중, 그리고 각종 사이트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이라는 기록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독자들을 매혹시킬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와 마법, 음모와 액션,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골고루 보여주며 드래곤이 등장하는 모험 서사로서도 매력적이고, 작고 약한 한 소녀의 성장 서사로도 흥미진진하다. 판타지, 모험, 서스펜스와 로맨스까지 그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치명적이고 중독성있는 이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자,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남겨두고 있다. 마지막 작품인 <오닉스 스톰>도 올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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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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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던 형사가 죽고, 과거가 말을 걸어 왔다. 달리 생각하면 늙은 기자만 경험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결국 자네는 왜 신문기자를 하는 건가?"

술에 취한 나카자와 요이치에게 종종 듣던 말이다. 필생의 대표작이 될 테마를 갖지 못한 기자의 서랍은 '쓰다 만 원고'로 넘친다. 이대로 몬덴은 월급쟁이로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안개 너머 저편을 알고 싶은 사건이 있다. 몬덴은 이것이 다이니치신문 기자로서 마지막 현장 취재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p.129



1991년 12월 11월 오후 6시 무렵,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교 남학생이 남성 2인조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얼마 뒤, 내일 아침 10시까지 2천만 엔을 준비하라는 범인의 연락이 집으로 온다. 현경은 수사 본부를 세우고 몸값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일본 범죄 사상 유례없는 전개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 날 네 살짜리 아이가 유괴당해 몸값을 요구받았다는 신고가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이다. ‘아쓰기’와 ‘야마테’에서 동시에 발생한 두 건의 아동 유괴 사건. 먼저 일어난 유괴 사건의 피해자는 무사히 구출이 되지만, 두 번째 유괴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3년 후 실종되었던 아이가 일곱 살이 된 채 제 발로 돌아온다. 일본 전역이 발칵 뒤집히고, '공백의 3년'에 대해 언론에서 요란하게 떠들어 댔지만,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경찰 담당이었던 한 신문기자가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의 죽음을 계기로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건 당시 2년차 경찰 출입기자였던 몬덴과 관할서 형사로 몸값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시를 하는 역할을 했던 나카자와는 플라모델 애호가라는 공통의 취미로 가까워졌었다. 유괴 사건 이후 지난 30년 동안 두 사람은 셀 수 없이 같이 밥을 먹으며 건담 플라모델에 대한 애정을 함께 나눴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지였던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에 서글픔과 허무함을 느끼던 몬덴에게 나카자와의 후배 형사였던 센자키가 말을 건넨다. 그는 한 주간지의 최신호를 건네며, 20년 전 유괴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아이가 현재 훈남 인기 화가와 동일인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여준다. 당시 용의선상에 있었던 인물의 남동생이 화가였기 때문에, 유괴 피해자가 사실주의 화가가 되었다는 점에 신경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효가 이미 지난 지 오래된 사건이라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몬덴을 찾아온 것이었다. 





몬덴 지로라는 개인의 렌즈를 벗고 신문기자의 렌즈를 통하면 보이는 것도 있다. 가나가와 동시 유괴 사건은 엄연한 범죄였다. 피해자가 무사히 돌아오자 세상에서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범행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른들에게 끌려간 어린 아이들의 공포와 절망은 확실히 존재하는 이 세상의 불행이다. 형사들이 시효로 무기를 빼앗긴 지금이야말로 펜을 든 저널리스트가 미해결에서 '미(未)'의 글자를 떼러 갈 때다. 

"쓸 겁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p.343


미해결 사건이라면 보통 '범인은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 사건에서는 더욱 큰 미스터리가 있었다. 그것은 공백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라는 미스터리였다.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3년간, 누군가 아이를 데려가 키웠다. 그런데, 남의 집 아이를 유괴해 딱 3년만 기르고 다시 돌려보낸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료는 자신의 부모가 경찰에게 의심받고 여러 주간지에 진위를 알 수 없는 기사가 실려도 침묵을 지켰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았던 것인지에 대해 전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범인이 잡힌 것도 아니었고, 피해자가 입을 열지 않으니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그리고 이제 30년간 묵혀 있는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월급쟁이 생활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제는 더 이상 취재 전선에 뛰어들 수 없었던 한 기자의 인생 마지막 취재는 과연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될까. 


오래 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죄의 목소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시오타 타케시의 신작이다. <죄의 목소리> 역시 일본 쇼와시대 최대의 미제 사건이라 불리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쓰인 작품이었다. 31년 전 미해결 사건에 감춰진 삶을 그리며 논픽션을 능가하는 현실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나온 <존재의 모든 것을> 역시 실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시오타 타케시는 이 작품을 위해 경찰 관계자를 만나고, 당시의 지도를 구해서 동선과 장소를 일일이 되짚으며, 철저하고 집요한 취재를 했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이라는 이력과 특유의 필력으로 탄탄한 구성과 압도적인 리얼리티를 보여주며 '질감 없는 시대에 실재를 찾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그려냈다. 일반적인 미스터리와 달리 범인의 정체보다 범죄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서사가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가는 존재에 대한 사유가 더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미스터리물은 가볍다는 편견을 넘어서 묵직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줄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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