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40만 부 기념 에디션)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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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은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 가는 것이다. 하루하루 '깨끗한 새 정신'으로 살아야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 65년 전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지금에야 그 뜻을 깨닫고 가슴에 새긴다. 늦었지만 기쁜 통찰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교장 선생님 흉내를 낸다. "오늘도 또 깨끗한 새 정신으로 하루를 살자."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인생의 하루를 그것과 바꾸고 있으니까.           p.130~131

 

생물학적으로 늙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늙어 가는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이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아니지만, 나이 들면서 좋은 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10년 넘게 40만 부가 판매되며 나이 듦에 관한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가 10주년 특별 에디션으로 새롭게 나왔다. 새롭게 쓴 저자 서문과 엮은이와의 대담도 수록되어 있으니, 오래 전에 읽었더라도 다시 한번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며 살아온 저자의 몸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쇠약해졌다. 하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유쾌하기만 하다. 20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지금은 오른쪽 눈도 희미한 실루엣만 보인다. 이 책을 처음 펴냈던 10년 전에 이미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등 일곱 가지 병이 있었는데, 이제는 몇 가지 병이 추가되어 걸음은 더 느려지고 말도 어눌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다할 때까지 즐겁게 살고 싶다는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씩씩하고 긍정적이다.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병에 걸렸더라도 내 몸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면 된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명의보다 낫다고 말한다. 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자는 것이다. 사실 병에 걸리면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인 것 같아 원망하고 자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당당하게 아파라'는 말을 듣고, 병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은 '여기here'와 '지금now'이다. 행복을 즐길 시간과 공간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항상 다른 곳,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불행해한다. 뇌 속에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물질은 엔도르핀이다. 엔도르핀은 과거의 행복한 기억, 미래에 다가올 행복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즐거워야 엔도르핀이 형성된다. 사람이 어떻게 늘 행복하기만 하느냐고, 슬프고 괴로운 때도 있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이분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괴롭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즐겁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나에게 닥친 이 순간에 충실할 때만이 인생은 즐거워진다.          p.277~278

 

이 책에는 여전히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노학자가 평생을 지켜온 삶의 원칙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이듦이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느껴지도록 일상의 소소한 재미부터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일흔 넘어 시작한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76세의 나이로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학과를 졸업한 것이다. 당시 1125명의 졸업생 가운데 최고령자이자 문화학과 수석 졸업자였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대학 교수였고, 정년 퇴임을 하고 나서 다시 시작한 공부이니,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어 몸은 늙어도 생각은 녹슬지 않는다는 것, 체력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쓸데없는 공부'에 대한 마인드도 공감이 되었다. 공부가 꼭 쓸 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가설이 '정신결정론'이라고 한다. 그 어떤 행동에도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다. 쉽게 말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이 말은 우연이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니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모든 일은 천천히 차곡차곡 진행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을, 좋은 삶을 이끈다는 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소망이라도 간직하고 바란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킬 기운과 힘이 생긴다. 그러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잡고 실천하면서 나는 잘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보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지금의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이 책을 통해 나이 듦의 지혜 53가지를 배워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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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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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처럼 남의 미래가 보인다는 건 '알고도 어쩔 수 없는' 일의 연속이라 작은 죄의식이 쌓이는 법이리라. '잘하면 내 특이한 체질로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하고 그 제자 일로 우울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할까, 아버지가 미리 조언해준 덕분에 잠시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약을 처방받아 많이 차도를 보았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덮개가 벗겨져서 흘러나온 시커먼 죄의식이 머리와 가슴을 잠식한다.             p.76~77

 

중학교 교사인 단은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누군가의 비말을 통해 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미래의 한 장면은 10초 일 때도 있고, 3분 정도일 때도 있다. 그에게 비말을 옮긴, 누군가에게 바로 다음 날 일어날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거나, 시야에 끼여 드는 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느 날 단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자신의 반 학생인 사토미 다이치가 탄 기차가 탈선 사고에 휘말리는 장면이었고, 학생에게 그 사실을 알려 사고를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되고,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단 선생님이 겪게 되는 현재 상황과 교차로 진행되는 것은 고양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찍어 올린 사람과 그를 부추긴 시청자들을 찾아 심판하는 2인조, 러시안블루와 아메쇼의 이야기이다. 5년 전, SNS에 고양이를 학대하고 생방송으로 중계하던 '고양이 도살자'라는 이름의 계정이 있었다. 그 '고양이 도살자'의 시청자이자 후원자였던 이들을 자칭 '고양이를 지옥에 보내는 모임'이라고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고 신고했으며 뉴스도 탔지만, 법적으로는 큰 죄가 되지 않았다. 범인은 징역 5년에 집행유예를 받았고, 후원자인 고지모에게는 죄를 물을 수도 없었다. 당시에 학대 당했던 고양이 주인에게 고용되어 대신 복수를 해주는 '고지모 사냥꾼'이 등장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단 선생님의 반 학생 중 하나가 습작 소설로 써서 선생님께 읽어봐 달라고 준 원고이기도 한데, 일종의 극중극 개념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러시안블루는 어깨를 움츠렸다. "등장인물의 모델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싶을 정도야. 미시마 유키오는 소송을 당했는데." 이 말은 물론 농담조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네요."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는 소설 속에 있는 거라니까요."
러시안블루는 한숨을 쉬었다. 아메쇼의 말도 신경에 거슬리거니와 단의 이야기도 어쩐지 미심쩍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찜찜한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p.276

 

만약 내가 아는 누군가의 선공개 영상을 봤는데,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는 거였다면 상대에게 알려줘서 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선공개 영상이 어디 사는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면 어떨까. 언제 어디서 마주친 사람인지 알더라도, 대부분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테고 연락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상대가 곤경에 처한다는 걸 알고도 돕기는커녕 충고조차 못한다면 그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단의 아버지 또한 그런 일들을 많이 겪어 왔기에 단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 미리 말을 해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죄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력감이 계속 쌓인다고 할까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어떻게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익혀둬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은 학생의 사고를 피하게 해준 일로 사토미 다이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선공개 영상을 보기 시작하는데, 화장실에 감금되어 있는 남자와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단은 과연 그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본격적인 문제는 납치당한 단 선생님이 소설 속 2인조 사냥꾼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진다. 재미있는 건 스스로 소설 속 등장 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자신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말을 2인조 중의 한 명인 아메쇼가 말한 적이 있다는 거다. 그러던 중 단 선생님이 낯선 사람들에게 납치가 되고 나서 갇혀 있다가 누군가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소설 속 두 남자였던 것이다. 처음 보는 남자 두 명이 자신들을 고지모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데, 단은 그들을 보며 저건 후토 마리코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내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단의 설명을 듣고는 아메쇼는 역시 그랬구나, 라며 즐거워한다. 자신의 말대로 그들이 소설 속에 있는 거라고 말이다. 단은 자신이 소설 속에서 읽었던 내용과 2인조의 실제 행동과 비교해가며, 점점 더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속해 있던 현실을 벗어나면서 두 이야기가 교차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이사카 고타로 스스로 '제 소설의 특징을 망라한 듯한 작품'이라고 말했듯이, 이 작품은 그의 특기를 망라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등장하는 위트와 유머,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문장들, 상상력이 빚어낸 개성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까지 이사카 월드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니 말이다.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오직 이사카 고타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재미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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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프럼 더 우즈 보이 프럼 더 우즈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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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은 벼랑 끝에 서있었다. 인류 역사상 무수한 남자가 여기서 미끄러져 피비린내 나는 폭력 속으로 추락했다. 와일드는 그들이 정말로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원래 벼랑 끝에선 까딱 잘못하면 떨어진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세운 계획도 틀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다.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p.110~111

 

초등학교 때만 해도 나오미 파인은 행복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심하게 아팠던 날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토한 뒤로, 나오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전형적인 왕따가 된 나오미는 어딘가 만만해 보여서 괴롭혀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선생님들 역시 모두 알고 있었지만, 딱히 그녀를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들 괴롭힘에 무뎌져서 잘 알아차리지도 못하던 어느 날, 그저 견디기만 하던 나오미가 사라진다.

 

 

나오미와 같은 반인 매슈는 예전에 한 번 아이들이 나오미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나선 적이 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저 바라볼 뿐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늘 나오미를 지켜봤다. 매일 저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까, 저러고 어떻게 살까 생각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나오미가 사라져버렸고, 나오미를 뮈애 무언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할머니 헤스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헤스터는 변호사이자 방송국의 법률 자문이었고, 자신만의 코너도 방송하는 유명인이었다. 자랄수록 죽은 아들을 닮아가는 손자를 위해 헤스터는 와일드를 찾아간다. 와일드는 죽은 아들의 단짝이자 아들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와일드는 30여 년 전 숲에서 발견된 야생 소년이었고, 헤스터는 어린 시절 그를 돌봐주었던 인연이 있다.

 

 

이제야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헤스터는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도 회의주의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관계가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간밤에 그녀가 오렌과 함께 들어가 있었던 행복한 거품은 너무 약해서 터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 비극적인 밤에 오렌은 그 현장에 있었다. 좋든 싫든 오렌은 헤스터 인생의 최악의 순간과 얽혀있었다. 그 사실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p.384

 

이 작품은 '숲에서 버려진 야생 소년 발견'이라는 34년 전 신문 기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견 당시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사이로 추정되었던 소년은 자신이 언제부터 숲에서 살았는지, 어쩌다 그곳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스타 변호사 헤스터와 훌륭한 위탁 가정의 돌봄 아래서 잘 자라 어른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은 와일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다 그게 이름이 되었고, 무엇이든 다 잘하는 천재였지만 어디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육군 사관학교 졸업 후 특수 부대에 복무했고, 탐정 일도 잠깐 했지만 결국 '정상적인' 사회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시늉마저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만의 요새를 지어 숲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헤스터 가족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왕래가 있었고, 매슈의 대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와일드는 매슈를 위해 나오미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나오미와 단둘이 살고 있는 양아버지는 전혀 협조적이지 않고, 매슈도 뭔가를 숨기는 눈치에다, 괴롭힘을 주도한 부잣집 아들 크래시 메이너드도 수상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나오미의 실종은 자작극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오미는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후 나오미의 학교생활은 열 배 더 힘든 지옥이 되었고, 일주일 뒤 그녀는 다시 사라진다. 다들 나오미가 가출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나흘 뒤, 절단된 손가락 하나가 발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제부터 시작된다. 10대 소녀의 실종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야기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비밀을 가진 어른들의 문제로 번지고 할런 코벤 특유의 거듭되는 반전과 속도감있는 전개로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 작품은 할런 코벤의 새로운 시리즈 신작이다. 할런 코벤은 시리즈보다는 스탠드 얼론 작품이 더 많은 작가인데, '마이런 볼리타'시리즈 외에 아주 오랜만에 '와일드'라는 캐릭터로 <The Boy from the Woods>와 <The Match>라는 두 작품을 썼다. '보이 프럼 더 우즈'의 후속작도 곧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후속작에서는 와일드가 궁금해했던 그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할런 코벤표 롤러코스터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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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지존 에디션)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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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것에 신경을 썼다. 또한 많은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과 마찬가지로, 모든 걸 바꿔 놓은 건 내가 신경 쓰지 않은 것들이었다... 우리 삶을 결정하는 건 이런 무신경한 순간들이다. 새로운 직종에 뛰어들기. 어느 날 갑자기 대학을 그만두고 록밴드에 들어가기. 당신의 뒤를 캐다가 들킨 남자친구를 마침내 차버리기로 결심하기. 신경을 끈다는 건 삶에서 가장 무섭고 어려운 도전을 내려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p.32

 

세상은 우리에게 말한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더 나은 직업과 더 튼튼한 차와 더 멋진 애인 그리고 더 넓은 집을 가져야 한다고. 더 사고, 더 소유하고, 더 만들고, 더 오래 살라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에도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몸부림을 치며 살아간다. 지금보다 부자가 되기 위해, 더 멋있어지기 위해, 더 행복하고 사랑 받기 위해. 그런데 여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마.

 

 

삶을 이루는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끄라고 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쩌란 말이지? 마크 맨슨이 말하는 '신경 끄기의 기술'이란 아래 단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아닌,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해 "꺼져"라고 말한다. 진짜로 중요한 것에 쓰기 위한 신경을 따로 남겨 놓는다.'

 

어디에도 문제는 끊임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그 수많은 똥 덩어리들 앞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똥 덩어리를 찾고 신경을 쓰라는 거다. 무엇을 원하는지 꿈꾸고 상상하는 것은 달콤하지만, 진짜 삶을 바꾸는 건 그걸 이루기까지의 고통을 견뎌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내 인생에서 진짜 가치 있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신경 끄기'란 것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함과는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가져야 할 것이 무언인가가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삶이라니, 이토록 신경 쓸 것 많은 복잡한 세상에서 제대로 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정말 유용한 삶의 기술이 아닌가 싶었으니 말이다.

 

 

외부 환경이 어떠하건 간에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이걸 알건 모르건 간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경험에 책임이 있다. 없을 수가 없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을 의식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사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사건에 대응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일종의 대응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접촉사고가 난다고 해도,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하는 건 당신 책임이다.         p.123~124

 

자기계발서의 상식을 뒤집었다고 평가 받는 <신경 끄기의 기술>이 40만 부 돌파를 기념해 인기 캐릭터 지존(ZIZONE)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새로운 에디션으로 나왔다. '지존 에디션'은 표지 뿐만 아니라, 카툰 프롤로그 ‘지존 에디션 신경 끄기툰’이 추가로 수록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네 컷 만화로, 내지 구석구석에서도 천방지축 지존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지지와 핑고, 식빵새와 함께 일상의 모든 고민에 ‘신경을 끄는’ 기술을 익힐 수 있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어덜트 백수 핑크 고양이 ‘핑고’, 핑고가 유일한 낙인 회사원 ‘지지’, 꿈 많은 아웃사이더 ‘식빵새’, 이 세 캐릭터의 웃기고 귀여운 일상 속 모습을 통해 마크 맨슨이 말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를 시원하고, 경쾌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마크 맨슨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파워블로거이자 스타트업 CEO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학창 시절에는 꽤 문제가 많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마약 때문에 퇴학을 당했던 일부터 부모님의 이혼과 친구의 죽음이라는 시련까지 겪으면서 방황했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토대로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려 준다. 그리고 미국 문단에서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이라 불리던 찰스 부코스키가 어떻게 실패와 자기혐오로 점철된 세월을 지나 위대한 작가가 되었는지, 전설적인 헤피메탈 밴드의 맴버였던 데이브 머스테인과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가 된 윌리엄 제임스의 사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헛된 가치를 좇으며 삶을 허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야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건 필요 없다. 고통을 피하는 법은 없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당신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동기가 부족해서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뭐라도 하라... 등등 이 책에 등장하는 문구들은 그야말로 참신하고, 도발적이고, 뼈를 때린다. 노력과 긍정만 강요하는 자기계발서의 패러다임을 바꾼, 마크 맨슨의 유쾌한 통찰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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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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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그가 말했다. 엘레나,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네요.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되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제가 엄마인가요, 신부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엘레나? 자식을 먼저 앞세운 여자를 뭐라고 부르죠? 저는 미망인도 아니고 고아도 아니에요. 저는 대체 뭔가요? 엘레나는 여전히 그에게 등을 돌린 채 대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말한다. 제게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신부님.        p.99

 

비가 내린 어느 날 저녁, 엘레나의 딸 리타는 성당 종탑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건은 단순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엘레나는 딸이 절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어릴 때부터 번개를 무서워했던 리타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성당은 물론 그 어떤 피뢰침 근처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엘레나는 안다. 그 아이는 그 근처에 가지도, 거기서 죽지도 않았다고. 엘레나는 딸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스스로 알아내기로 한다. 문제는 엘레나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파킨슨병을 앓는 어머니가 딸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손발을 자유롭게 쓸 수도 없고, 혀가 굳이 말 한마디 내뱉기도 쉽지 않은 엘레나는 누가 딸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까.

 

작가는 왜 탐정 역할을 육체적으로 온전한 자유를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로 설정했을까 궁금했다. 하루 동안의 서사는 오전, 정오, 오후로 나뉘어 있는데, 차례대로 두 번째 알약, 세 번째 알약, 네 번째 알약을 먹은 시점의 시간 순이다. 발을 들러 올려 허공에 내디디면서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동작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엘레나는 집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야한다. 시간 별로 약을 먹어야 알약이 녹으면서 몸속으로 퍼져나가 발에 이르고 그제야 그녀의 발들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차 시간을 놓칠까봐 불안한 엘라나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도, 용의자도 없을뿐더러 어떤 범행 동기나 가설도 없이, 오로지 살인만 존재하는 이 죽음의 진실은 뭘까. 엘라나는 힘겨운 여정을 계속한다. 엘레나는 딸에 대해서 자기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였으니까. 비록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을 뿐만 아니라 자주 다투었고, 서로 거리를 두었으며, 심한 말을 내뱉고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엄마는 사랑하는 법이다. 어느 누구도 딸에게 생명을 되돌려줄 수 없으며, 죽은 딸이 되돌아 올 수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엘레나는 한 발 또 한 발 힘겹게 내디디면서 걸어간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

 

 

 

부모님한테 받은 걸 되돌려드릴 때가 된 것 같구나. 오래전에 네가 어머니를 필요로 했던 것처럼 지금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너야. 리타, 이제는 네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될 차례라고. 우리가 아는 엘레나는 이제부터 아기가 될 테니까. 아기라고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박사님? 엄마가 어떻게 아기가 된다는 거죠? 아기는 귀엽고 예쁘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겪고 있는 건 그와 정반대잖아요. 한번 보시라고요.          p.233

 

사건은 이미 자살로 종결되었고, 딸이 살해당했음을 주장하며 재수사를 요구하는 엘레나의 말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경찰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에는 아무 진전도 없었고, 그래서 엘레나는 몸소 모아온 수사 자료를 담당 경찰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아무도 달라고 하지 않았던 리타의 일기와 주소록,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 네 번째 알약을 먹은 뒤 엘레나는 이사벨이라는 여자를 문득 떠올린다. 이십 년 전 리타의 도움으로 무사히 아이를 낳았던 여자, 리타에게 큰 빚을 진 여자이니 그녀라면 진실을 대신 파헤쳐줄 수 있지 않을까. 엘레나는 기대를 안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때 진 빚을 갚을 건가요? 이십 년 전 그날 일을 떠올려보면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몰라요... 엘레나는 이사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의 처지를 알려주고,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사벨은 엘레나가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충격적인 대답을 건넨다. 미안하지만 저는 부인을 도와드릴 수 없어요. 그녀는 평생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이때를 위해 말 한마디 한마디를 미리 준비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차분하게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이 작품은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파이널리스트에 올랐고, 곧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로도 공개될 예정이다. 추리소설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사건의 진실과 범인을 밝히는데 치중하기보다는 모녀 관계와 모성에 대해, 여성의 삶과 돌봄의 무게에 대해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사유하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많은 분량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교차되는 동안 본문 대부분이 문단 구분 없이 한 호흡으로 흘러가며 인물 간 대화는 부호 없이 서술문에 불쑥 끼어들고 있어 읽기에 수월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강렬한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사실적인 묘사와 사려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매력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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