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굽고 싶은 아메리칸 쿠키
이미지.이소연.최재형 지음 / 경향BP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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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도 좋아하고, 빵도 너무 좋아해서 늘 책과 함께 디저트를 즐기는 편이다. 요즘은 예쁜 카페도 너무 많고, 빵이나 케잌 등이 특별한 맛집도 많아서 어디로 가야할 지 늘 고민하는 게 일상이 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쿠키는 정말 종류가 다양하고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얇고 바삭한 쿠키보다는 두툼하고 꾸덕한 종류를 좋아하는 편이다. 한때 구운 마시멜로가 들어가는 스모어 쿠키가 유행이더니, 그 다음에는 르뱅 쿠키라고 해서 크고 두툼한 쿠키가 인기를 끌었다. 르뱅 쿠키가 아메리칸 쿠키의 종류 안에 포함되는데, 재료를 듬뿍 넣어 크고 두툼한게 매력이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쫀득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인 그 아메리칸 쿠키를 집에서도 만들어 볼 수 있는 레시피 북이 나왔다.

 

 

이 책은 유튜브 그루밍식당, 조이앤베이킹, 플레노베이킹의 아메리칸 쿠키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도록 레시피를 공개했다. 오븐 한 판 분량을 20분 내외로 구워낼 수 있는 39가지 아메리칸 쿠키 레시피가 담겨 있는데,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좋다. 각각의 레시피에 맞춰 재료와 사전 작업, 굽는 온도와 굽는 시간이 기재되어 있고, 만드는 법도 단계별로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직접 만들어 보기 좋게 되어 있다. 각각의 유튜브 채널마다 다른 종류의 쿠키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어 취향대로 골라서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루밍식당의 피넛버터 쿠키, 트리플 초코칩 쿠키, 말차 크렌베리 쿠키, 조이앤베이킹의 딸기 오레오 쿠키, 더블 황치즈 쿠키, 캐러멜 피넛 쿠키, 그리고 플레노의 시나몬 약과 쿠키, 포레누아 쿠키, 에스프레소 바닐라 쿠키 등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아메리칸 쿠키의 레시피들이다. 집에서 시간을 내어 해보려고 표시를 해두었는데, 재료도 어렵지 않고, 방법도 복잡하지 않아서 충분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인기 있는 수제 쿠키는 보통 얇고 바삭한 식감보다는 울퉁불퉁하고 거칠며 다소 투박해 보이는 모양을 가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두툼하게 구워낸 쿠키들이 바로 아메리칸 쿠키인데, 묵직하고 꾸덕꾸덕한 식감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 수록된 아메리칸 쿠키 레시피들이 바로 그런 종류들이니, 현재 가장 핫한 쿠키들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면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수많은 쿠키 레시피북이 있지만, 현재 가장 인기있는 유튜브 채널 세 군데의 레시피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사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유튜브에서 특별히 인기 있었던 레시피를 비롯해 공개하지 않았던 비밀 레시피와 이색적이고, 귀여운 쿠키 레시피들도 만날 수 있다.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쉬운 재료들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들이라 실패 없이 쿠키를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이 꼭 필요할 것이다. 쿠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팁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자.

 

사실 쿠키는 베이킹을 시작할 때 쉽게 도전해보지만 은근히 까다롭고 실패를 하게 되는 품목 중 하나이다.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사람, 환경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알려 주는 재료와 도구, 레시피만 있다면 누구라도 촉촉하고, 달콤하고, 꾸덕한 쿠키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아메리칸 쿠키가 어느 순간 '매일 굽고 싶은' 아메리칸 쿠키가 될테니 말이다. 쿠키를 좋아한다면, 베이킹에 관심이 많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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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뼈, 드러난 뼈 - 뼈의 5억 년 역사에서 최첨단 뼈 수술까지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뼈 이야기
로이 밀스 지음, 양병찬 옮김 / 해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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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이유 때문에 의대생, 외과 의사, 고생물학자에게 유의미한 뼈의 개수가 각각 다르다. 따라서 "사람의 뼈가 모두 몇 개냐"라는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은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라는 것이다. 게다가 뼈의 정확한 개수를 밝히려면 충분한 방사선에 노출되어야 하는데,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체에 존재하는 200여 개의 뼈는 각각 이름을 갖고 있으므로, 설사 만지거나 가리킬 수 없더라도 그것들을 기억할 수는 있다.            p.34

 

나름 고고학, 고생물학에 관한 책들을 꽤 읽어본 편이라, 뼈의 5억 년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뼈의 생물학적 구성과 기능, 골격 구조, 골절과 다양한 뼈 질환과 치료법 등 의학적인 정보들이 쏟아져 나와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읽다 보니 이 책의 저자는 '뼈 다루기'와 '뼈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40년 차 정형외과의사라고 한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저자는 본격적으로 뼈 수술의 역사를 훑으며 의학적 혁명과 최신 정형외과에 대한 정보들까지 살펴본다. 의학 정보를 다루는 책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던 터라 다소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 의사와 과학자들이 뼈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이를 특별한 목적으로 전용한 사례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 몸 안에 '숨겨진 뼈'에 대한 전반부의 이야기가 끝이 나면, 나머지 후반부는 외부에 ‘드러난 뼈’의 역사를 통해 뼈가 지닌 역사적, 종교적, 관용적 의미를 탐구한다. 뼈의 주인이 죽은 후 몸 밖으로 나온 뼈의 두 번째 생애를 다루고 있는 후반부가 아무래도 읽기 더 수월했는데, 기대했던 고생물학에서 다뤄지는 화석화된 뼈를 비롯해서 생화학, 해부학, 생리학, 고고학, 그리고 예술, 문화에 이르기까지 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층 속에 묻힌 뼈는 수백만 년 전의 지구에 대해서 말해주고, 동굴 속에 매장된 뼈는 인간이 언제 처음으로 추상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며 지구의 역사와 인류 문화의 탁월한 기록이 된다.

 

 

이쯤 됐으면 독자들은 뼈가 일상생활에서 사용된다는 데 매력을 느낀 나머지 연구 혹은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멋진 뼈 제품을 구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기 바란다. 골동품 상점에서 정체불명의 '아름답고 새하얀 공예품'과 마주쳤을 때를 대비해, 뼈와 상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의 원료에 대한 상점 주인의 말을 신뢰할 것인가? 그 분야의 권위자로는 박물관의 큐레이터와 미국어류및야생동물국의 담당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구별할까?            p.325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뼈의 비즈니스에 대해 다루는 페이지가 흥미진진했다. 뼈가 패션 산업의 혁명에 이바지했으며, 뼈를 이용한 단추 산업이 패션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 대평원에서 수집된 들소의 뼈는 거대한 비료 산업을 촉발시켰다. 또한 카타콤에서 발굴된 ‘성인’들의 뼈로 교회는 떼돈을 벌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선사시대의 사냥꾼들은 뼈를 이용해서 몽둥이, 화살촉, 작살, 낚싯바늘을 만들었고,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뼈바늘을 이용해서 옷으로 만들었으며, 동물의 뼈를 이용해 주사위를 만들어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고 한다.

 

 

뼈는 지금껏 우리에게 엄청난 정보를 제공해왔다. 드러난 뼈는 46억 년에 걸친 지구의 역사 중 최근 5억 년간의 정보를 제공해줬으며, 또한 뼈에는 최근 10만 년에 걸친 인류의 발달 및 문화사가 기록되어 있다. 사실 지구상에 살았던 동물들의 뼈 중 일부가 화석화되어 수백만 년 동안 붕괴하지 않고 견뎌냈다는 것부터 놀랍고 경탄할 만하다. 미래의 사람들에게는 현대에 만들어진 뼈가 문화적 표지로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테고 말이다.

 

뼈가 왜 세계 최고의 건축자재이며 문화유산인지 궁금하다면, 피부 아래에 숨겨져 있을 때나 죽어서 몸 밖으로 드러나 있을 때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뼈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따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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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고양이 클로드 2 - 적의 등장 외계 고양이 클로드 2
조니 마르시아노.에밀리 체노웨스 지음, 롭 모마르츠 그림, 장혜란 옮김 / 북스그라운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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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행성에서 추방된 사악한 외계 고양이 황제와 도시를 떠나 낯선 시골로 이사를 와서 심난한 소년이 한 집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 <외계 고양이 클로드>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불타는 복수와 함께 더 강력해진 재미로 무장한 2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매우 기대가 되었다.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은 바로 이렇게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기 전에 설레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거 아니겠는가. 이는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작에서 잔악무도하기로 이름난 고양이 클로드는 배신자의 반역으로 육식 거인인 '인간' 종족이 사는 지구라는 행성으로 쫓겨나는 신세로 등장했다. 클로드는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 배신자들에게 복수하고 권력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한편 낯선 동네로 이사 온 라지는 도시에서의 편리했던 생활 대신 자연으로 가득한 동네가 지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때 초록색 번개와 함께 비를 쫄딱 맞은 고양이 한 마리가 라지의 집에 등장한다. 고양이를 너무 키우고 싶었던 라지는 엄마에게 사정하고, 캠프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허락이 떨어진다. 오로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끔찍한 생존 캠프에 참가했던 라지는 갖은 재앙을 겪으며 겨우 살아 남았고, 친구도 생겼다.  클로드는 어리버리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소년 라지를 이용해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1권이 외계에서 지구로 추방된 고양이 황제가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온 라지를 만나 지구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면, 2권에서 클로드는 다시 행성으로 돌아갈 날을 대비해 지구의 고양이들을 데려와 가르치며 고양이 특공대를 만들기 시작한다. 지구의 고양이들을 관찰하다가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름하여 '위스쿠즈 전사 학교'!! 클로드는 아기 고양이들을 데려다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무술로 알려진 '냥짓수'를 비롯해 고대 전추 철학, 무기 공학, 속임수 기술 등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과거에 자신을 배신했던 적이 갑자기 지구에 등장해 클로드의 복수심이 더욱 불타오르게 만든다.

 

라지는 새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다소 과장된 과거 이야기로 인기를 얻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바로 그 과거 속 친구가 전학을 오게 되면서 난감한 상황이 된다. 자신이 과장해서 이야기했던 것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밝힐 수도 있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클로드와 라지 앞에 이 지구상에서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고양이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였지만 적이 된 존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은 전편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요란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시리즈는 고양이 클로드와 인간 라지의 시점이 교차 구성되며 전개되고 있어 더 흥미진진한데, 너무도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어떻게 오해하고, 또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사에 심술 궂은 표정의 클로드는 인간을 상대하며 엉뚱한 행동과 말을 해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고, 클로드의 말이라면 뭐든 믿고 따르는 라지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존재가 어떻게 우정을 만들어 가는지, 각자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외계에서 왔고, 말도 하며, 글도 읽을 줄 안다니, 진짜 끝내주는 상상아닌가. 지구 어린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너무 유쾌하고, 웃기고, 재미있는 SF 동화이니 이 시리즈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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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미야모토 테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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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그 식당 주인을 <시부에 추사이>처럼 톺아보면 등장 인물이 수천 명에 이르리라. 특히 중요한 인물로만 범위를 좁혀도 수백 명. 주인의 남편, 아들, 딸, 친척, 친구, 또 그들의 가족..... 증조부, 증조모, 또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와 친구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공로와 죄과를 남겼는가.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저 노부인이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여기 지금 마키노 고헤가 '있는' 것은 과거에 숱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p.63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 받겠다고 마음 먹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채 중화소바집을 운영해온 고헤는 결혼하고 삼십 년 동안 가게를 함께 꾸려온 아내와 갑작스레 사별하게 되자, 미련 없이 가게 문을 닫는다. 만사에 의욕을 잃은 채 장기 휴업중이던 어느 날, 읽기를 미뤄둔 두꺼운 책을 뒤적이다 아내에게 왔던 오래된 엽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해변인 듯 보이는 손그림과 등대 순례를 다녀왔다는 몇 줄의 인사가 적혀 있다. 아내는 왜 엽서를 자신이 보관하지 않고, 고헤의 책에 끼워두었을까. 고민하던 차에 자신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아내의 엽서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고헤는 등대 여행을 떠나게 된다.

 

딱히 등대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은둔 생활을 벗어나 뭐라도 이유를 만들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차와 버스를 타고, 때로는 렌터카를 운전해 등대를 찾아가는 여행은 그에게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등대가 비바람과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불빛을 비춰주는 것처럼 고헤의 삶에도 조용히 길을 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등대 자체의 아름다움과 어딘지 외로워 보이는 고고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겨 보기도 하고, 난생 처음으로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도 배우고, 나고야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아들과 모처럼 동행하기도 하고, 지기지우인 오랜 친구의 십대 아들과 여정을 같이하기도 한다. 서른 살의 아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엽서를 받았고, 그 후 30년이 지난 뒤 아내와 등대라는 막연한 두 가지만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고헤는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는 여유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지난 세월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놀랄 만큼의 행복 따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람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소공자>를 처음 읽었던 스물일곱 살 때, 고헤는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흔을 넘길 즈음 과연 세상에는 놀랄 만큼의 행복이 널려 있는 걸 알게 됐다. 이를테면? 하고 물으면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숱한 행복이.         p.223

 

일본 서정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는 <환상의 빛>, <금수>,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등의 작품으로 특유의 담백하고, 잔잔한 감성을 보여줬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서툴고 평범한 사람들의 선한 일상을 물 흐르듯이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나 좋았던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존재인지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맛있는 중화소바 만드는 비법을 배웠고, 부지런한 아내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가게를 꾸려왔으며, 친구인 간짱이 독서를 권해주었던 덕분에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고헤는 깨닫는다. 여기 지금 내가 '있는'것은 과거의 숱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묵직하게 여운처럼 남았다.

 

미야모토 테루는 고헤의 여정을 통해서 매일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이다.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겪게 된다. 그럴 때 어두움 바다 위에서 고요하게 빛을 비추어주는 등대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혹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살면서 놀랄 만큼의 행복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누구의 인생에나 넉넉한 행복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잔잔하고, 아름답고, 기품있게 흘러가는 미야모토 테루의 선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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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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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깨어 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를 가리지 않고 그런 꿈을 꿨다. 내가 아는 한 어머니는 지구종의 숙명을 창안하고 지구종 시를 쓸 때에도 바로 그 일을 했다. 꿈을 꿨던 것이다. 힘든 시절을 버텨내려면 누구나 꿈이, 환상이 필요하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혼동하지만 않으면 환상 자체는 조금도 해롭지 않다. 어머니는 가끔 스스로를 의심했던 것 같지만 그 꿈만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지구종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p.82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자 완결판이 드디어 나왔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로 시작하여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로 마무리되는 ‘우화’ 시리즈는 드넓은 우주를 열망하는 SF이자, 주인공 로런 오야 올라미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이며, 예리한 시선으로 몰락 직전의 세상을 그려낸 디스토피아 작품이다.

 

극심한 기후 변화와 잇따른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2024년 미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그려졌던 전작에서 로런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소도시 ‘로블리도’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녀로 등장했다. 장벽 안에서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로런은 홀로 변화를 꿈꾸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여성이고 흑인이며,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소수자이자 빈민인 로런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미친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비해왔다. 로런은 어린 흑인 여성이며,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소수자로 그려져 있다. 초공감증후군은 타인의 고통과 쾌락을 똑같이 느끼는 증상으로, 날이면 날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커다란 약점이다. 덕분에 바깥세상에서 생존하기는 더욱 힘들겠지만, 로런은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장벽 밖으로 나간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스물세 살이 된 로런은 스스로 창시한 새 신앙 ‘지구종’을 토대로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 평화로운 공동체를 일구었다. 하지만 소수자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로런은 꿈의 결정체인 지구종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두 번째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 차례, 우리는 우리가 살던 집이 불타는 광경을 지켜봤다. 우리는 산속으로 들어갔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외부 출신 수감자들은 우리와 헤어져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가거나 가고 싶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높은 산 위에서, 우리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일행들은 대부분 집이 불타는 광경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불을 지르는 쪽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다만 이번 불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같은 파괴의 화신이 되기에는 너무 늦게 일어났다. 우리가 창조하고 사랑했던 것들은 일찌감치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p.459

 

로런은 집과 가족이 모조리 소멸된 참극에서 살아남은 후 자신이 창시한 새 신앙 ‘지구종’을 토대로 평화로운 공동체를 일구었다. 하지만 극단적 보수주의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하나님의 은총으로 미국을 강한 크리스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박해의 표적이 된다. 로런의 공동체는 흑인 여성이 이끄는 비주류 종교 집단이라는 이유로 '사이비 종교 공동체'로 취급되어 습격 당하고, 노예가 되어 갖은 핍박을 당하게 된다.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는 전반부 '지구종'이라는 공동체가 비주류 집단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며 나름의 집단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공포와 억압을 수단으로 삼아 통치하는 대통령의 표적이 되어 노예로 지내며 갖은 고생을 하는 중반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 여행을 하며 다시 사람들을 모으고 공동체를 일구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로런의 현실과 세월이 흐른 뒤 그녀의 딸이 어머니의 일기를 읽는 방식으로 교차 서술된다. 기존에 만났던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들이 초능력자를 흑인 노예에 빗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역사를 폭로하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의 비극을 그려내고, SF라는 장르가 미래나 우주뿐 아니라 시간 그 자체에 대해, 공간에 대해, 역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풍성한 은유로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 현실성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이 시간이 계속 되기를 바라며 아껴 읽게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가진 큰 매력이다.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임을, 작가가 그려낸 상상의 산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우리가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간다고 가정할 때 일어나지 않을 일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해서 지어낸 공상 소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슨 수를 내지 않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현실이 되어버릴 이야기(역자)'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꽤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는 1300여 페이지의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나 보자. 우리가 우화 시리즈에서 본 미래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날 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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