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공룡시대에 산다 - 가장 거대하고 매혹적인 진화와 멸종의 역사 서가명강 시리즈 31
이융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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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우리가 고생물학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주된 원인이 나는 화석의 다양한 실용적인 가치를 넘어 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공룡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같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살아 있는 생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멸종한 생물을 찾아 그 생물의 흔적을 되살려내고, 우리 인간이 지구에 출현하기 전, 먼 과거의 지구 생태계에 어떤 구성원이 살고 있었는지를 되짚어내는 일이란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p.74~75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 서른 한 번째 책이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은 2017년 여름부터 ‘서가명강’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다른 주제의 강의를 펼쳤으며, 이 배움의 현장을 책으로 옮긴 것이 바로 서가명강 시리즈이다. 법의학에 대해 이야기했던 유성호 교수의 서가명강 시리즈 첫 번째 책을 읽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른 한 번째 책이라니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를 일반인들도 듣고 배울 수 있다는 것으로도 궁금증을 유발시켰던 부분이 있는데, 이제는 교양 인문서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번 책은 국내 최고의 고생물학자이자 우리나라 1호 공룡 박사, 이융남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33년간의 연구를 총망라해 집필했다. 특히나 세계 고생물학계를 뜨겁게 달군 과학적 발견과 최신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실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하다. 이융남 교수는 한반도 최초의 뿔공룡 코리아케라톱스와 반수생 샌종 공룡 나토베나토르를 발굴해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고생물학계 난제였던 데이노케이루스의 정체를 밝히는 데도 공헌을 인정받았고, 공룡과 고생물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서 우리는 그 어떤 공룡 책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한반도에서 발견된 공룡과 화석에 대한 정보들을 만날 수 있다. 후반부에 수록된 주요 자료 항목에 보면 우리나라의 척추동물 화석 분포도가 지도 위에 시대별로 색깔을 구분해 아주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공룡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물론, 공룡에 관심이 많았던 성인들 모두에게 생생하고도 현실적인 정보가 되어줄 것이다.

 

 

 

날지 못하는 공룡들은 백악기 말 멸종했지만 새로 진화한 공룡들은 백악기 말 대멸종에서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와 함께 번성하고 있다. 이 의미는 아직 공룡시대가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 인류는 공룡과 함께 공존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백악기 말에 새로 진화하지 못한 육상 공룡들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지금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조상인 포유류는 신생대가 들어와서도 계속 공룡의 그늘 속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p.276

 

공룡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쥬라기 공원>을 비롯해서 공룡을 소재로 한 영상물들이 인기를 끌면서 굉장히 대중화된 생명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룡은 고생물학에서도 특히 척추동물 화석의 가장 주요한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공룡은 2억 3,000만 년 전 중생대 후기 트라이아스기에 출현해 백악기 말까지 1억 6,000만 년이나 육상 생태계를 지배했다. 지난 30년간 새롭고 다양한 공룡 화석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며, 공룡 연구는 르네상스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룡에 관련된 책들은 대다수가 유아용 그림책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현실이고, 청소년들이나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으로서 공룡 책은 극히 드문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가명강 시리즈에서 공룡과 고생물학이 등장해서 굉장히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화석에 기반한 연구를 수행하는 고생물학이 어떤 학문인지를 설명하고, 한국에서 발견된 화석과 지질 역사에 대해서 살펴본 뒤, 공룡 탐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생한 현장 체험을 통해 알려주며, 마지막으로 우리가 진화적 의미에서 공룡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수집된 증거를 통해 입증한다. 누구나 그 길고 어려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되어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 보니 공룡은 잊어 버리고,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이 책을 통해 잊고 있었던 고생물학에 대한 관심과 공룡에 관한 새로운 뉴스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운 시간이었다. 공룡과 함께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 그리고 공룡으로부터 발견하는 진화의 모든 것, 한반도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1호 공룡 박사와 함께 하는 진화와 멸종, 그리고 한반도 빅 히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본 리뷰는 21세기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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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동물대탐험 3 : 반가워 제돌아 - 돌고래와 바다 친구들 최재천의 동물대탐험 3
최재천 기획, 박현미 그림, 황혜영 글, 안선영 해설 / 다산어린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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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한 생물학 동화 시리즈인 <최재천의 동물대탐험>의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권 별로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동화로 담아내는 이 시리즈의 1권에서는 생물학의 핫이슈 '의태'였고, 2권에서는 '동물들의 생존 전략'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이번에 나온 3권에서는 ‘돌고래와 바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의 계절에 딱 맞는 시원한 컬러의 바닷속 풍경 그림이 표지 이미지라서,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나 최재천 교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돌고래 ‘제돌이’도 만날 수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돌고래 '제돌이'에 대해서는 그림책으로 만났던 적이 있는데, 실제 일어났던 ‘돌고래 불법 포획 사건’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제주 앞바다에서 잡혀 좁은 수족관에 갇힌 채 4년 동안 강제로 돌고래쇼를 하던 돌고래 제돌이가 고향 바다로 돌아갔다는 슬프면서도 기적 같았던 사건 말이다. 당시에 최재천 교수가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일했었다고 하니, 바로 그 '제돌이'를 <최재천의 동물대탐험>에서도 만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시리즈는 호기심 많고 곤충에 푹 빠져 있는 똘똘한 10살 소년 호야, 만화와 모험을 사랑하는 자유분방한 10살 소년 와니와 애완까치 핀, 그리고 동물을 사랑하고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11살 소녀 미리, 미리의 동생이자 태권도 유단자로 씩씩한 10살 소녀 아라가 우연히 개미박사와 함께 비글호라는 탐사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시작했었다. 이번에는 돌고래들의 구조 요청 신호를 포착해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바닷 속으로 출동한다.

 

 

박사님과 아이들이 입게 된 잠수복도 아주 특이했는데, 머리에 쓰는 투명한 헬맷에 괴물의 촉수같은 것이 달려 있다. 그건 바로 돌고래 말 통역기로 이번 모험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비글호를 잠수함처럼 타기에는 너무 크기가 커서, 각자 한 명씩 해파리 잠수정을 타고 바닷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초소형 해파리 잠수정은 탱글탱글하고, 바닷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이 진짜 해파리처럼 생긴 잠수정이라 실제로 존재한다면 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요할 것만 같았던 바닷속은 온갖 생명의 소리로 요란했다. 아이들은 구조 신호를 보내온 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해서 보름달물해파리, 돌묵상어, 해마, 귀신고래, 따개비, 먹장어 등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만나게 된다. 신비로운 바닷속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한 시간이었다. 동물들이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도 배웠다. 소리 외에 몸짓이나 표정, 춤, 냄새로도 대화를 한다고 하니 말이다.

 

 

돌고래와 고래는 물에 살다가 바다로 돌아간 포유 동물이라고 한다. 실제로 한번 본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정말 아름답고 영험한 동물이다. 현재 최재천 교수는 남방큰돌고래에게 '생태법인'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한다. 동물이지만 사람에 준하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니, 언젠가 꼭 이뤄지길 마음 속 깊이 응원해본다.

 

최재천 교수는 이 시리즈를 통해 재미있게 읽는 것만으로 저절로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자연의 섭리도 깨우치는 것을 기대한다고 시리즈를 시작하며 말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타잔을 흠모했고, 허클베리 핀, 톰 소여처럼 모험을 하며 살고 싶었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이 시리즈에 담겨 있어 아이들이 더 흥미롭게 생물학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책 속 부록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카드’를 모으면서,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을 오래 기억하고 보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생명의 다양함과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학습동화를 찾는다면 이 시리즈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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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솔로지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
송준호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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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년 전 호모하빌리스는 지능은 있었지만 단편적이었고 아직 마음이 없는 존재였다. 180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 자신인지 알아보는 자의식이 생겼다. 20~30만 년 전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는 아픈 자를 돌보고 사랑하던 이의 무덤에 꽃을 올려놓을 줄 알았다. 그리고 1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유연한 상상을 하며 장신구와 추상적인 예술품을 쏟아냈다. 이 무렵 호모사피엔스에게는 또 하나의 전무후무한 정신 역량이 나타난다. '시간적 자아'라는 것이다.          p.101

 

어떻게 지구에는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존재하는가?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어떻게 시작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출현과 인류의 진화로 이어지며 다양한 영역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 전무후무한 문명을 구축한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점들이 많다. 아무래도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사피엔솔로지’는 현생인류를 지칭하는 ‘사피엔스(Sapiens)’와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ology’를 결합해 창안해낸 용어로, '현생인류에 대한 학문'을 뜻한다. 저자는 의학자로서 질병과 수명의 기원을 탐구하려고 시작한 작업이 진화학, 고고학, 사회심리학, 역사, 과학사 등 다른 영역까지 끝없이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빅히스토리, 인류의 진화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진화 생물학이나 고생물학, 인류학 쪽에서 쓰이게 마련인데, 이 책의 저자는 현직 의과대학 교수이자 내과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굉장히 대중적으로 쓰였다. 잘 읽히고, 어렵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통찰력과 사유를 보여주고 있어 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탄생하고 다세포생물이 나타나기까지 24억 년이 걸렸다. 또한, 다세포생물에서 영장류가 나타나기까지는 12억 년이 걸렸다. 영장류가 똑바로 서기까지 7,760만 년이 걸렸고, 그 이후부터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는 데에는 360만 년이 걸렸다.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 농업혁명을 일으키는 데는 29만 년이 걸렸지만, 그로부터 산업혁명이 나타나기까지는 1만 년, 산업혁명 후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데는 2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p.357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난 뒤로부터 37억 년이나 지난 뒤에야 선행인류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공룡 알을 훔쳐 먹던 조그마한 포유류가 지구의 주인공으로 바뀌게 된 것은 약 6,500만 년 전 거대 운석이 지구를 강타한 후이다. 당시 지구상에 존재하던 80프로의 생명체가 멸종되었고, 이후 영장류의 진화가 시작된다. 조그만 영장류들은 3,500만 년 전쯤 대형 유인원으로 등장해 열대림을 따라 전성기를 누린다. 그리고 이들 중 수만 년 전 동아프리카 지구대를 탈출한 한 줌의 종족이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된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하빌리스, 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에렉투스, 이후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네안데르탈인으로 이어지는 현생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해 짚어본 뒤, 점차 인류가 지구를 장악하고 개조해 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도시와 국가를 이루고, 지구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산업혁명과 화석 문명을 지나 오늘날 사이버, 베타버스 시대로 오기까지의 빅히스토리를 아우르는 내용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앞으로 1,000년 후에도 인류는 계속 존재할까? 혹은 1만 년 후에도 인류의 문명은 존재할까? 인류는 아마도 계속 존재하겠지만, 먼 미래의 인류 문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우주의 시간에서 인간의 역사는 찰나에 불과하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지만, 빠르면 1만 5,000년에서 늦어도 3만 년이 지나면 지구는 빙하기로 회귀할 것이다. 천문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10억 년쯤 되면 태양이 너무 뜨거워져서 지구는 생명체가 거주할 수 없는 생명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50억 년이 지나면 태양이 그 연료를 다 소진해, 태양계 전체가 그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더 시간의 지평을 확장해 우주적 시간에서 지구의 운명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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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분 사용법 - 불안을 다스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100가지 심리 도구
사샤 바힘 지음, 이덕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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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상황을 묘사하려고 할 때 우리는 주관적 해석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상사가 내 보고서의 오타를 지적했다'라는 객관적 진술과 '이 돼지 같은 자식이 나를 또 끝장내려고 하는 군!'이라는 주관적 해석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생각과 감정의 차이가 늘 자명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는 '느낌'이 아니라 '생각'일 뿐이다. 이 경우에 상응하는 감정은 아마 두려움이나 수치심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관찰할 때 자기가 쓰는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고 생각과 감정을 분리해보자.         p.99~100

 

수십 개의 알람을 맞춰 놓고, 매일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체크하고, 데스크 달력은 일정들로 빽빽하고, 이번 주 안에 끝내야 할 일과 다음 주에 해야 하는 것들로 늘 몇 주 분량의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일'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걸까. 그러다 보니 늘 여유가 없고, 쫓기듯 뭔가를 하게 되고,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거기에 더해 지독한 감기로 고생 중이라 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아지는 참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을 만났다.

 

이 책은 100가지 심리 도구를 활용해 내 감정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독일인이 사랑하는 '마음 주치의' 사샤 바힘은 진료실 안에서 VIP 환자들에게만 처방되던 비밀의 심리 도구를 이 책에서 공개하고 있는데, 불안을 다스리고, 충동을 조절하고, 고민에서 벗어나고, 우울을 떨쳐내고, 두려움을 이해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도구는 32번이었는데, '반드시 해야 해'라는 생각을 과감히 삭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100가지 심리 도구들은 결심, 변화, 자존감, 행복, 관계라는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고, 또 그 속에서 네가지 챕터별로 구분되어 있어 필요할 때마다 찾아 보기에도 좋다.

 

 

 

삶은 끊임없이 도전 과제를 던지며 우리를 어렵게 만든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나 아픈 몸, 복잡한 인간관계는 에너지를 빠르게 고갈시킨다. 갑자기 삶이 무겁게 여겨지고, 나를 한없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무거운 추가 목에 걸려 있는 듯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나에게 균형점을 찾을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 힘이란 어려운 상황의 스트레스를 헤쳐나가기 위해 활성화할 수 있는 에너지원, 아니면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자신을 강화할 수 있는 자원이다. 저울을 상상해보자. 스트레스로 가득 찬 저울의 다른 한쪽에 에너지원을 올려놓는다면 저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p.226

 

어째서 수많은 사람들은 새해만 되면 다이어트에 도전하고, 끝내지 못할 영어 공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일까. 대부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는, 언제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실패로 끝이 나는 것들을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실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전략에 지금껏 의지해왔다는 사실부터 지적한다. 그리고 새해 결심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대개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압박과 스트레스 탓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무한 반복되는 굴레에서 우리를 구해내기 위해 몇 가지 간단한 심리 도구를 활용해 지켜지지 않는 결심의 유효성과 배년 반복되는 습관을 확인해, 뭐라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외에도 걱정을 달래고, 우물쭈물과 작별할 수 있도록, 책임감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자존감을 높이고, 잡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새로운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심리 치료사는 다들 커다란 도구 상자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심료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을 위해 그 속에 있는 올바른 도구를 찾아 사용하다보면, 어떤 면에서는 심리 치료사 자신이 마치 마술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마술 쇼는 대개 VIP 관객들을 위한 것으로, 집장권으로는 진단서가 필요하다. 행복한 삶을 위한 비밀 처방전은 굳게 닫힌 진료실 안에서, 예약 환자에게만 조금씩 공개된다. 그러니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비밀의 도구 상자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짜증이 솟구치고, 부정적 감정들로 마음의 나사가 풀리기 시작할 때, 빠르게 응급처치를 도와줄 수 있는 심리 도구들을 곁에 두는 셈이니 든든하지 않은가. 더 이상 내 기분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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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한국화 지음, 김주경 옮김 / 비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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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집요한 질문들에 포위된 느낌이다. 당신은 언제부터 당신의 삶이 이처럼 혼란스러워졌는지, 무슨 이유로 점원들이 당신에게 그렇게 물었는지, 당신이 왜 이 여름에 그토록 두꺼운 외투를 입었는지 생각해본다. 어떤 깊숙한 구멍 밑바닥에 빠진 느낌이다. 당신은 온전한 상태가 어떤 건지조차 잘 모른다. 이전의 삶에서 매일 하던 것들, 예전의 습관들은 이제 단지 머나먼 기억일 뿐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당신을 자극한다. 심장이 격하게 고동친다.           - '구슬' 중에서, p.77

 

한국인 작가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 출간한 독특한 소설집이다. '모국어의 제약을 벗어나 더 유연한 사고가 가능한 중립적인 영역이 필요했다'는 작가는 프랑스어로 쓴 8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 소설집을 프랑에서 출간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저자가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에서 태어나 모국어로 프랑스어를 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로 이주해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접했을 거라는 점이다. 작가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살아낸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언어와 자신 사이에 어느 정도의 두꺼운 겹이 존재했으며, 이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서 그만큼의 거리가 필요했다고 한다.

 

간결한 문체로 쓰인 여덟 편의 이야기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백들이 많았다. 분명 언어로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시각화되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고층 빌딩들 사이로 보이는 황백색의 하늘 한 점,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축축하고 춥고 음산한 방, 눈의 백색이 모든 것을 뒤덮어버린 풍경, 어둠 속에서 빛나는 가로등 불빛.. 도시 곳곳을 유령처럼 부유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는 소설들이다. 상상으로 그려낸 도시의 이미지는 현실과 환상 사이 어딘가에서 무너진 세상을 향해 악몽과도 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나는 버려진 채로 남아 있는 오래된 망루 꼭대기에서 밤을 보낸다. 그곳은 도시 한가운데 있지만, 이 꼭대기까지 사람이 올라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 틀림없이 예전에는 이 망루가 주변의 어떤 빌딩보다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보다 훨씬 높은 유리 빌딩이나 콘크리트 건물이 주변에 즐비해, 보잘것없는 구조물이 되고 말았다. 이 망루는 더는 불도 켜지지 않고 지키는 사람도 없다. 오늘날 도시는 폐허가 된 이 구조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예 잊기로 작정한 것 같다.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 난 도시 한가운데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밤의 어둠 속에 감춰진 채로.           - '방화광' 중에서, p.178~179

 

이 책을 읽으면서 도시를 뒤덮은 모래바람 속에서 사막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왜 도시는 사막이 되었을까. 사막은 어떻게 도시로 들어온 걸까. 사람들은 제각각 사막이 들어온 시기를 다르게 기억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고, 또 어떤 사람은 강가에 신기루가 나타난 이후라고, 또 다른 사람은 자기 이웃이 죽은 후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항상 언제 이전이거나 언제 이후라고 대답했고, 그들의 의견이 같은 시기를 가리킨 적은 없었다. 도시를 흐릿하게 뒤덮은 모래바람 속에서 여덟 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화자를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로 각자의 하루를 살아 낸다. 누군가는 침대에서 수백 명의 죽은 아이들이 나타나는 꿈을 꾸고, 수수께끼의 도시에서 기이한 하루를 보내고, 온갖 소음과 광기로 가득한 강 건너편의 대도시로 가출하고, 집 안을 가득 채운 소음을 피해 음악 속으로 숨어 들기도 하며, 방치된 망루 꼭대기에서 불꽃놀이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서사보다는 이미지가 잔상처럼 남는 이 소설들은 그로테크스한 표지 이미지처럼 우리를 특별한 상상력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도시가 사막으로 변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각기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여러 명의 화자들처럼, 이 소설을 어떻게 읽고 느낄지는 각자 다를 것 같다. 한줌의 모래 알갱이처럼 손바닥에 올려 두면 스르르 바닥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여운처럼 남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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