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짜툰 1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1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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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군기 반장 뽀또, 새침하고 도도한 아가씨 짜구, 까칠하고 고독한 쪼꼬, 천방지축 막내 포비, 개성 넘치는 네 마리 고양이와 어수룩하고 무심하지만 책임감 있는 그들의 주인의 유쾌한 동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저 동물을 좋아할 줄만 알던 나는..

좋아하는 마음보다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선 준비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찐이를 통해 배웠다.

 

강아지나 고양이, 그 외의 동물들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순히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것만으로 동물을 키울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마다 늘어나는 유기견, 유기동물들에 대한 문제 또한 어리고 작을 때 단순히 예뻐할 생각만 했지, 그들이 아프고, 늙으면 귀찮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나도 강아지를 이 십여 년 키우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주변에 워낙 동물을 아끼는 이들이 많아 공감할 부분이 참 많은 따뜻한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채유리가 가 아기 길 고양이 뽀또와 짜구를 처음 만나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과정부터 세 번째 고양이 쪼꼬, 그리고 막둥이 포비까지 결국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을 그린 웹툰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곁눈질로 대충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오랜 기간 고양이와 함께 애정으로 살아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디테일들이 마음이 짠해지게도 하고, 빙그레 미소 짓게도 만들어준다.

 

특히나 단순히 재미있는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고양이의 생활 습성이나 질병, 함께 살아가는 요령 등 유용한 정보들이 녹아있어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사람이나 이미 기르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녀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장벽들 모두,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집에 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 혼자 나와 살면서 취직을 하게 되자 어린 고양이 혼자 빈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걱정이 되고, 결국 부모님이 다른 집에 분양을 줘버려 생이별을 하게 되고, 이후 또 우연히 고양이를 친구에게 분양 받게 되지만, 동물을 키울 수 없으니 빠른 시일 내에 내보내라는 집주인의 압박부터 산 넘어 산처럼 고양이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통장잔고는 늘 아슬아슬했고, 생활비도 모자란 판에 고양이를 둘씩이나 끼고 살고 있는 그녀를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변 누구도 이해해줄 리 만무하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웠던 그녀는,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정신이 번쩍 든다.

 

 

 

단순히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라는 소유물이 아니라, 가족인 것이다. 사랑한다면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한쪽에선 길 고양이가 너무 많다며 불평과 불쾌감을 호소하고, 한쪽에선 유기되거나 이 집 저 집 내맡겨지며 천덕꾸러기가 되는 고양이들이 있고, 한쪽에선 인위적인 수술 따위를 해서까지 동물을 소유하려 드는 이기적 인간이라며 돌을 던지고...굳이 이해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경험하고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일에 대안도 없이 돌부터 던지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말은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모든 애견 인들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동물을 돕는 뉴스나 글에는 동물한테 쓸 돈 있으면 우선 가난한 사람부터 돕지?라는 반응을 보게 되곤 한다.

그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구제한 뒤에야 동물을 도우란 얘긴가?

그건 영영 불가능하잖아?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마다... 가슴이 뛰는 곳은 참 다양하다.

배고프고 약한 이들에게, 멀리 있는 가난한 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떤 이는 길 위의 작은 생명들에게 가슴이 뛰기도 한다. 그 모든 것에 우선순위를 매겨, 줄 세울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 뛰는 곳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제발 버려지는 유기 동물들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는 어디에서 그런 유기 동물들을 위해 마음 쓰고, 조그만 거라도 돕고, 응원을 보낸다는 사실이 든든할 때가 많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그 분은 현재 코카스패니얼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계신다. 강아지는 어느 새 열살이 훌쩍 넘은 노견이고, 고양이 두 마리는 모두 길 가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셔서 돌보고 계신다. 처음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는 앙숙이 아니던가? 신기해했었는데, 지금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가 아주 어릴 때 데려온 터라, 강아지의 분비물을 묻혀서 자신의 새끼처럼 느끼도록 배려해주셔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그들의 북적거리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달 유기견 협회에 후원금을 보내실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선생님을 뵐 때마다, 나도 이십여년 넘게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내 마음이 진실한지, 나만 위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곤 한다. 가벼운 만화이지만 채유리 작가의 이 웹툰에도 그런 애정의 깊이와 따스한 온기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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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17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했어요.. 음.. 책임..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니가 사랑하잖아..
그럼 지켜라..


감사해요.. 피오나님.. 여전히 참 좋습니다.. ^^

피오나 2014-03-26 23:51   좋아요 0 | URL
제가 댓글이 너무 늦었죠? ^^;; 지난주부터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죄송해요. ;;;;
새벽숲길님도 애완동물을 키우시는지 궁금하네요. 고야이든, 강아지든... 키워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책임감과 사랑의 의미를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만화였거든요. 사랑한다면, 지켜야죠. ^^
 
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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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2년 봄부터 1986 2월까지 약 사 년에 걸쳐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이다. 한 달에 한두 번 <넘버>에서 미국 잡지며 신문, 그러니까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스톤 등의 잡지와 뉴욕타임스 일요판을 왕창 보내준다. 그럼 하루키는 뒹굴 거리며 잡지 페이지를 넘기다, 재미있을 법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그걸 정리하여 원고를 썼다고 한다. 스크랩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신문, 잡지 따위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오린 것을 보관하기 위하여 책처럼 만든 것이라는 걸 기억해본다면, 이 책은 말 그대로 하루키의 스크랩북이 된다. 그는 이 책을 이런 식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이 스크랩북은 문자 그대로 잡탕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맞아,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 라든가 "오오, 이런 일이" 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가까운 과거 여행'을 즐겨주신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기쁠 것이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내가 스크랩한 글은 대부분이 어찌 되든 아무 상관없는 사소한 화제뿐이다. 다 읽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거나 인간성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책을 읽기에 가장 나쁜 자세와 시간대에 읽더라도 부담없이 아무 페이지나 들춰서 킥킥거리며 웃거나, 과거를 추억하는 향수에 젖을 수 있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키의 작품은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장편 소설의 경우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에세이는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준다. 그냥 가볍게, 별 생각 없이 흘려 읽더라도, 혹은 진지하게 읽어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도록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1980년대 겪지 않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색다른 사실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을 겪은 세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 될 테고 말이다. 그리고 에세이라는 것의 특성상 저자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하루키가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을 세 번이나 본 스타워즈 예찬론자라는 것도 알게 되고, 스티븐 킹의 팬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 '쿠조'는 좀 지루했다는 것도 알게 되니 말이다. 그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펼쳐지는 다소 민망한 기사거리들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한참 스크랩 북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주로 배우나 가수들의 스티커나 화보, 기사들을 모아서 만드는 거였는데, 누가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지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선 일종의 권력(?) 가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문구점 곳곳에 브로마이드며, 각종 스티커 북이며 사진들이 즐비했고, 잡지의 종류도 천차만별 참 많던 시절이었다. 나중에는 국내 잡지만으로는 모자라서, 수입 잡지까지 구해가며 열심히 스크랩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연예인에게 열을 올리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는 주로 좋아하는 글을 쓰는 기자의 기사를 스크랩하곤 했었다. 지금은 모 잡지사의 편집장이 되신 분이 여기 저기 쓰셨던 글도 있고, 지금은 영화 감독이 되신 분이 평론가로, 에디터로 쓰셨던 기사들도 있다. 그렇게 모았던 글들은 지금도 꽤 많은 분량으로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가끔 들춰서 읽어보면 그 시간들이 떠올라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스크랩북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시간을 붙들어 놓는다는 것.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모두들 한 번쯤은 과거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반짝반짝 빛나던 시기가 있었는데.라며 과거를 추억 해야 하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 이만한 선물이 또 어디이겠는가.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처럼 과거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하루키의 <더 스크랩>도 같은 명목에서 독자들에게 비슷한 여파를 미치지 않을까 싶다. 책을 구매하면 주는 스크랩북으로 예전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을 것 같고 말이다. 시간을 멈추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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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비경 - 신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전국 22개 로스팅 하우스
양선희 지음, 원종경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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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있는 ''이라는 카페에 가면 이렇게 선반에 잘 볶인 갈색의 원두가 들어 있는 유리병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병들을 자세히 보면 숫자가 적혀 있다.. 4.3, 4.6, 3.29, 4.6, 3.28, 4.3.. 이 숫자들은 뭘까?

 

"손님들이 여기 와서 '맛있는 커피 주세요!' 했을 때 최소한 볶은 지 일주일 이상 지난 것을 주기 위해 적어 둔 로스팅 날짜예요. 로스팅 한 지 20일까지도 맛은 나와요. 물론 약하게 볶은 건 하루 이틀 더 가지만요. 그런데 18~19일 지나면 향기가 미세하게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볶은지 15일 이상 지난 건 뺍니다."

"그럼 그건 방향제로 쓰나요?"

"운 좋은 손님들이 향기를 얻어가지요."

 

와우. 나는 이 대사를 읽는 순간 강원도의 그곳에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갓 로스팅 된 원두로 내린 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향기가 있다. 그런데 눈만 돌려도 숱하게 마주치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원두들은 모두 로스팅한 지 한참은 된 게 분명한 향과 맛을 내니까. 하지만 도심지에서 어디 그리 쉽게 이런 집을 만날 수 있냐는 말이다. 서울을 벗어나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커피 명소를 발굴한 이 책에는 정말 '명품'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커피 하우스 스물 두 곳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인 양선희 작가가 온라인 매거진커피 타임즈를 운영하며 2년여의 기간 동안 100여 곳이 넘는 커피 하우스를 발로 뛰며 직접 취재해 그 중에 스물 두 곳을 골랐다고 하니 뭐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부산에 있는 '까사오로의 주인인 정승기 씨는 마인드가 독특하다. 커피는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음료이기 때문에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일도 행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향기로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까사오로'의 커피라고 하니, 꼭 한번은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음이 있는 커피랑 마음이 없는 커피랑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저는 기분이 우울할 때나 몸이 아플 때는 드립을 안 해요. 제 몸과 마음 상태가 안 좋으면 은수가 드립을 하고, 은수 몸이나 마음 상태가 안 좋으면 제가 드립을 해요."

 

세상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 내려주는 커피라니. 얼마나 황홀하고 깊은 향과 맛을 낼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사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원두, 로스팅 등 커피 그 자체의 맛이 전부는 아니다. <모든 것이 동일한 조건일 때 그 집의 커피 맛을 결정짓는 건 그 커피 집 주인의 품성이라고 봐. 특히 그 집에서 커피를 볶고, 핸드 드립을 하는 경우에는 그 점이 커피 맛의 99% 결정한다고 봐. 나머지 1%는 그 집의 분위기겠지>라는 대목처럼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좋은 마음과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과연 커피의 맛까지 다르게 할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커피의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 커피라는 음료를 마시면 안 되는 그 나이에,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쓴 걸 왜 먹냐고. 엄마가 그때 농담처럼 말했었다.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라고. 인생의 여러 면을 겪어본 다음에 어른이 되어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거라고. 어릴 때는 하면 안 된다.는 금기에 대해 다소의 반항 심같은 것도 있었으므로, 그냥 둘러대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커피가 점점 더 맛있게 느껴지면 질수록, 어쩐지 어린 시절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 내가 인생의 쓴맛, 단맛을 어느 정도는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쓴 커피가 달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생각 말이다. 지금도 친구들 중에는 아메리카노는 써서 못 먹겠다고, 그 쓴 걸 무슨 맛으로 먹냐며 카페라떼나 마끼아또 등 단 커피만 먹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메리카노에 쓴 맛만 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깊은 풍미와 향과 그윽한 맛이 숨어져 있다.

 

나는 하루에 아메리카노 두세 잔은 꼭 마셔야 하는 소위 커피 중독자이다. 커피 드리퍼도 종류 별로 서너 가지 가지고 있고,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을 만큼 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덕분에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두통이 생길 정도이다. 워낙 오랜 시간, 다양한 원두를, 다양한 방법으로 마셔보았기 때문에 어떤 집의 커피가 신맛이 강하고, 향이 좋고, 끝 맛이 텁텁하고, 단맛이 나는지 안다. 하지만 집과 회사를 오가는, 그러니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도심지에는 이런 커피 맛 집이 사실 없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프랜차이즈 전문점 밖에 없어서, 이렇게 책으로나마 멋진 커피 전문점들을 소개받게 되어서 참 행복했다. 아마도 이번 여름 휴가 때는 이 책에 소개된 집 중에 한 곳을 가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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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곳은 부암동 고개에 에소프레소 라는 집이거든요.. 그 집 커피도 2층에서 직접 볶아서 신선하더라구요.. 아시고 계실 것 같긴 한데, 혹 또 몰라서.. ~~

저도 커피 중독이라서요. 하루에 아메리카노 7잔.. ~~ 중독이죠.. ㅠㅠ

피오나 2014-03-07 17:16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부암동 고개에 가봐야겠습니다. ㅎㅎ 동선이 정해져있다보니.. 강남권을 벗어날 일이 별로 없어서요.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사실 맛집에 자주 가보진 못했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근데 새벽숲길님은 저보다 훨씬 마니아시네요. 하루에 7잔이면...... ^^;;;;;;;
 
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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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걸을 필요가 있다. 걷다 보면 단어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쓰면서 단어들의 리듬을 들을 수 있다. 한 발 앞으로,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심장이 이중으로 두근두근 뛴다.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 두 개의 팔, 두 개의 발. 이것 다음에 저것. 저것 다음에 또 이것. 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몸의 음악이다. 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글쓰기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단어들의 음악은 의미가 시작하는 곳이다.

 

이 작품은 예순네 살의 작가 폴 오스터가 그 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올해로 벌써 그도 예순일곱이니 노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다.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다 읽었지만, 매번 한번도 같은 스타일을 복기 하지 않는, 그렇지만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서 매번 신작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 특히나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어, 자서전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일기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에서 의미가 있었던 사건들을 감각적 경험의 기억을 통해 복기해낸다. 그러니까 호흡의 현상학으로 들여다본 폴 오스터의 인생이야기인 셈이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는 명제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만큼 육체가 기억하는 흔적은 오래 남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에 보면 세상이 얼마나 황홀하게 감각적인지, 그리고 감각이라는 레이더망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알게 된다.  우리의 오감,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기술이 되어 있는 이 책이 문득 떠올랐다. 냄새, 소리 등의 감각은 우리를 순식간에 과거의 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전 애인의 향수 냄새가 그를 떠올리게 하고, 귀에 익은 노래가 나를 그 시간 속으로 옮겨 놓는다. 그렇게 우리의 몸과 감각은 머리 속의 기억들을 헤집어 놓는다. 그렇게 육체에 새겨진 경험은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을 지배한다. 어떤 향기가 순간적으로 스쳐갈 때, 그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도 할 수 있고, 달콤한 요리를 먹던 저녁 식사시간으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 셜록 홈즈의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는 한 여성을 편지지의 냄새로 알아보는 장면이 나오며, 수사관이라면 일흔 아흡 가지 향수의 냄새 정도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나는 특히 새 책의 종이 냄새나, 석유 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인쇄물의 냄새, 오래된 종이의 낡은 냄새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책에 얽힌 갖가지 추억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는 그 감각 중에서 성적 쾌감과 고통의 기억을 샅샅이 복기한다. 본능에 충실한 그의 경험은 적나라하게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육체와 감각을 통해 써 내려간 자신의 과거는 기나긴 성적 탐험의 역사를 거쳐 가족사의 어둡고 아픈 부분까지 모두 담고 있다. 굳이 이런 거까지 밝힐 필요가 있나 싶은 부분까지 모두. 어쩌면 스스로를 2인칭으로 묘사하는 관찰자 시점으로 쓰인 작품이라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겨울로 들어선 노 작가가 떠올리는 그 삶의 편린들은, 어떤 순간에는 고통스럽고, 어떤 순간에는 민망하고, 어떤 순간에는 따뜻하다.

 

당신은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문득 향수에 젖어 지금보다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준 것만 같은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데 슬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에게 당장 그만두고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을 볼 때와 같이 그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오래지 않아 당신은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해도 그가 지나간 세월에서 그리워하는 것이 있긴 하다. 옛날 전화기의 벨 소리, 타자기의 딸깍 거리는 소리, 병에 든 우유, 지명 타자가 없는 야구, 비닐 레코드 판, 방수용 덧신, 스타킹과 가터벨트, 흑백 영화, 헤비급 챔피언,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 35센트짜리 페이퍼백.... 나는 그의 그리움 속에서, 그의 지나온 시간을 읽어낸다. 그리하여 침대에서 나와 차가운 마룻바닥에 맨발을 내딛고 창문 쪽으로 걸어가는 여섯 살의 그로 시작해서, 다시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걸어가면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맨발의 그는 이제 예순네 살이다. 여섯 살 그의 시선으로 바깥에서 내리던 눈이 뒷마당의 나뭇가지들을 하얗게 바꿔졌다면, 이제 바깥은 거의 흰색에 가깝지만 완연한 회색이다. 해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자문한다. 몇 번의 아침이 남았을까? 그의 인생은 이제 겨울로 들어섰다. 계절이 지나갔으므로, 어떤 문은 이제 완전히 닫혀버렸다. 그러나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이다.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누구도 시간의 무게를 피해갈 수는 없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통과한다.

 

폴 오스터는 <당신이 살아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 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그 감각적 자료들의 모음을 '호흡의 현상학'이라고 지칭한다. 숨을 쉬는 육체의 감각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 그리고 그 교차점에서 자신을 규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로 폴 오스터만이 써 내려갈 수 있는 그 만의 자서전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늙어간다. 사람이 평생을 젊은 육체를 유지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몸이 결국 말을 듣지 않게 되고, 고통은 결국 견딜 수 없어지고, 총명함은 차가운 세찬 물줄기 속에 사라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몸에 새겨진 모든 감각의 기억들은, 오롯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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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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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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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길을 가다 불량배를 만났다. 친절하게도 불량배는 선택의 기회를 준다. 돈 줄래, 죽을래? ‘좋은 것나쁜 것사이에서가 아니라나쁜 것더 나쁜 것사이에서 주어진 선택의 기회. 경험적으로 볼 때,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회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당연하게 우리는 더 나쁜 것을 피해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니까. 어떤 건 쉽고 어떤 건 조금 어렵다는 차이일 뿐, 대부분 중요하지 않은 선택들이다. 삶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이런 작은 일들이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며 앞을 가로막고, 우리는 재빨리 선택하고는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그런데 C를 선택하고 싶은데 선택지는 오로지 A B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회피하겠는가, 아니면 끝까지 가보겠는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바예호 씨를 치료할 생각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둘 중 더 깡마른 사내가 조금은 슬픈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포도주 잔을 사이에 두고 그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붉은 뱀장어 같은 혀를 천천히 움직여 이를 훑더니, 가식적으로 와인을 홀짝이는 척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나를 쫓아왔던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팽 선생이 처한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어느 날 레노 부인에게서 자신의 친구 남편을 좀 만나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는 바예호라는 시인으로 멈추지 않는 딸국질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데, 의사들도 그를 위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당신이 내 친구 남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레노 부인의 말 때문에 그는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최근에 남편이 죽은 그녀에게 그가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며칠 뒤 시인을 만나러 가지만, 어쩐 일인지 의사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를 위협하는 느낌마저 든다. 바예호를 만나고 오고 나자, 낯선 스페인 남자 두 명이 그를 쫓기 시작한다. 그들은 팽 선생에게 2천 프랑이라는 거금을 주면서 치료를 그만두라고 협박(?)을 한다. 그는 얼결에 뇌물을 받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벽에 부딪히고, 무슨 이유에선지 치료를 막으려는 이들은 일종의 악이다. 최면요법가인 팽 선생은 점점 더 바예호의 치료에 집착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꾸만 악몽을 꾸게 된다. 그리고 점차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환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이는 볼라뇨 식 미스터리는 우리를 점점 더 극 속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이 몽환적인 작품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실존했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바예호는 물론이고 그의 부인 조르제트 바예호, 팽 선생이 가르침을 받은 최면학자 메스머, 심령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고자 했던 바라뒤크, 그리고 아라공, 다르송발, 이렌느 졸리오퀴리 등 실존 인물과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시인 바예호는 실제로 파리에서 알 수 없는 폐 질환으로 초라하게 죽었으며 스페인의 전체주의에 대항했던 행동파 시인이었다. 악에 맞서 보려고 했으나 힘없이 죽어가는 시인 바예호와 그런 그의 딸꾹질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결국 병의 원인도,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의 이유도 알 수 없었던 팽 선생은 모습과 그를 괴롭히는 정체 모를 스페인 남자 두 명의 대립은 극의 끝까지 불안감과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바예호가 그 병원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며,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시인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전체 작품의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들이 실존 인물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실제와 허구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이 미스터리 한 퍼즐은 혼란스럽지만, 매우 매혹적이다. 2차 세계 대전 직전의, 암울하고도 뒤숭숭한 파리를 배경으로 악으로 뒤덮인 세계 속에서 무기력한 인물들의 초상을 그려내는 것이 전체주의에 대한 문학적 저항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이 작품의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미로 자체가 흥미로웠다.

 

나는 손가락으로 창틀을 따라 더듬어 봤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이었다. 창문엔 잠금 장치도 없었고, 그렇다고 위나 아래로 여는 것도 아니었다.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분명 내가 내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스위치를 찾았다.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빛으로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분명한 나의 〈존재〉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보잘것없긴 했지만 확실한 관객으로서 말이다.

 

이 작품의 첫 페이지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최면의 계시>에서 한 대목이 소개되어 있다. 포의 단편에서는 최면술사가 최면에 걸린 환자와 나누는 대화를 서술하기 때문에, 이 한 대목은 <팽 선생>의 전체 줄거리를 암시적으로 제시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볼라뇨라는 최면술사가 독자인 우리에게 건네는 일종의 최면술 같은 작품이다. 그의 세계에 입문한다면, 우리는 최면을 통해서 꿈과 현실이 뒤섞여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볼라뇨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야만스러운 탐정들>부터 였다. 꽤 두툼한 분량의 두 권짜리 그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사실 제목 때문이었는데, 추리, 스릴러 물을 온갖 종류별로 다 읽어대던 나에게 뭔가 독특하고 새로운 게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내가 애초에 예상했던 바대로 흘러가는 작품이 전.혀 아니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그 뒤로 볼라뇨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서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이 독특하고, 미스터리하고, 몽환적이고도, 철학적인 이 작가에게 매혹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이 분량과 상관없이 읽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긴 했다. 아무래도 기존의 기승전결이 분명한 작법에 너무도 익숙해서 였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볼라뇨의 작품들은 나를 궁금하게 만든다. 얼마 전에 벼르고 벼르던 그의 유작 장편소설 <2666 세트>를 구입했는데, 시간이 없어 아직 읽기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책장에 넣어두기만 해도 설레 일 정도니 말이다. 문학이 사라진 시대의 풍경을 이야기했던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 볼라뇨는 이런 말을 했었다. "지루할 때를 위한 문학이 있다. 그런 문학은 넘쳐난다. 평온할 때를 위한 문학이 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최고의 문학이다. 슬플 때를 위한 문학도 있다. 기쁠 때를 위한 문학이 있다. 지식에 갈증을 느낄 때를 위한 문학이 있다. 절망할 때를 위한 문학이 있다. "라고. 어쩌면 볼라뇨의 문학은 제일 마지막에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홀린 듯이 빠져들게 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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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1 1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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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2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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