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어떻게 말하는가 -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애견 언어 교과서 Pet's Better Life 시리즈
스탠리 코렌 지음, 박영철 옮김 / 보누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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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평생을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릴 적부터 강아지와 친숙하게 지냈다. 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을 거쳐간 강아지가 총 다섯 마리인데, 기간에 비해 강아지 수가 많지 않은 이유는 다들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우선 제일 처음 키웠던 일명 '똥개' 두 마리는 황갈색 수컷 '뽀뽀'와 하얀색 암컷 '뽀미' 두 마리였는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나를 반겨주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 이후에는 하얀 털과 브라운 털이 멋들어지게 섞여 있었던 '복돌이' 였는데, 이 아이는 애교가 넘쳐나던 아이라 너무 이뻐했었던지.. 나중에는 주인의 사랑을 지나치게 받아 비만이 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좋아했던 강아지였다. 이어 장난감 인형처럼 생겼던 토이 푸들 '쪼꼬'는 너무도 똑똑해서 가끔은 얌체처럼 느껴질 정도였던 아이인데,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그 미모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꼭 한마디씩 했던 귀여운 강아지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같이 살고 있는 코카스패니얼 '토토'는 현재 13살이라 사실 할아버지 급 나이인데도 여전히 천방지축 활발하고 정신 없는 아이이다. 친구네 집에서 키우던 요크셔테리어는 12살만 되어도 느릿느릿 힘없이 정말 노인처럼 다녀서 마음이 아팠는데, 이놈은 아직도 너무 철없이 뛰어다니곤 해서 우리 가족의 활력소가 되어주곤 한다. 특히나 '토토'는 어릴 때 폐렴에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서도 거의 포기하고 안락사를 권유시켰을 정도로 많이 아팠던 아이인데, 차마 그 조그만 것을 버릴 수가 없었던 터라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서 결국 건강을 되찼았던 슬픈 과거가 있다. 그 민간요법이란 것도 사실 지금 돌이켜 보면 말도 안 되는 건데, 예를 들자면 북어국 끓여주기, 닭발 삶아주기 등등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무더운 한 여름에 에어컨 한번 못 켜고 습도 조절을 위해 욕실에 뜨거운 물 잔뜩 받아놓고 습기 맞춰주고, 병원에서 포기한 터라 약을 못 주니 사람이 먹는 감기약을 가루로 부셔서 먹여주는 등등... 인터넷을 검색해서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물론 너무 어릴 때부터 아팠던 지라 체력이 약해서 자라오면서 잦은 잔병치레를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13살이 되도록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볼 때마다 대견한 놈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개를 보살피고, 개와 함께 생활을 했기에 그들의 언어에도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순간의 표정, 하나의 몸짓으로도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살펴본 경험이 있으므로 대체 개들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그들이 보내는 언어 신호에 대해 항상 궁금했었다. 이 책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애견 언어 교과서>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개의 행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개 심리 전문가가 그들의 언어에 대해 알려주는 작품이다.

 

개들이 어떤 식으로 대화하고, 인간이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개들이 말하는 내용을 인간의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면, 개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 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개가 온화한 표정일 때, 혹은 뭔가에 흥미가 끌릴 때, 공격의 표정이나 긴장과 불안, 공포와 복종을 나타내는 표정을 지을 때는 자세, 꼬리, 몸의 위치, , 발바닥, 꼬리를 흔드는 방식, 눈 위의 작은 움직임 등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실제로 개는 사람의 많은 언어를 배워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개가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 쉬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개는 사람의 지시에 따르거나 혹은 사람의 단어에 반응하여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저자는 "개가 듣고 이해하는 필수 단어 리스트"라고 간단히 정리를 해놨는데, 아마 개를 한번이라도 키워 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내용 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리 가:개는 뭔가를 휘젓거나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가도 그곳으로부터 떨어진다.

손 줘: 이 말을 들으면 개는 한쪽 앞발을 올린다. 발톱을 자르거나 마른 타월로 씻거나 할 때 유용하다.

쫓아가: 놀 때 사용하는 단어로, 개는 내가 던진 것을 자유롭게 쫓아 간다.

안 돼: 이 말을 들으면 개는 항상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 목적은 개에게 모든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명령은 개에게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기다려:"멈춰"보다 훨씬 느슨한 명령이다. 이 말을 들으면 개는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서 나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이것들은 우리가 평소에 흔히 쓰는 단어들이고, 어릴 적부터 어떻게 훈련을 시키느냐에 따라서 주인과 개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꺼리 들이 더 많아진다. 특히나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훈련시킨 단어에 따른 행동 말고, 개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개가 자신의 이름을 인식한다는 것만 봐도 그들이 언어에 반응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개 언어를 이해하려면 우선 그들이 말하는 방식부터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세히 들어보면 개들마다 짖는 소리도 미묘하게 다르다. 저자는 개가 말하는 방식을 얼굴 표정, , , 꼬리, , 성적인 행동, 냄새 등으로 구분해서 그들이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개 언어는 동작이나 몸의 자세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조합될 수 없는 소리와 자세가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예를 들어, 사지를 뻣뻣하게 경직시킨 자세로, 콧소리나 높은 톤으로 칭얼거리는 개는 없다. 이 자세를 취할 때는 대개 으르렁거림을 동반하고, 때로는 경고의 짖는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꼬리의 움직임과 소리의 조합에도 규칙적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저 여기 있어요" 하고 개의 잠자는 소리는 말한다. "함께 이 세상을 헤쳐나가요. 짐승이나 침입자가 당신을 덮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여기서 당신의 눈이 되고 귀가 될게요. 염려 마세요. 제가 곁에 있으면서 당신을 따뜻하게 하고, 필요하면 당신을 지킬게요...우리는 이제 모두 아이는 아니지만 함께 놀아요. 운이 나빠서 당신이 탄식할 때는 제가 위로해 드릴게요.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에요. 약속할게요. 당신의 개로서 제가 그렇게 약속할게요. 매일 밤, 이 숨소리로 그 약속을 당신에게 전합니다."

나는 잠든 우리 집 개들의 편안한 숨소리에서 그런 말들을 읽는다. 그리고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그 말을 이해하고 위로 받는다. 비록 개들이 한정된 단어로 그것밖에 전2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개의 언어 능력은 두 살짜리 아이와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의 언어로 개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건네야'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말을 걸 때와 마찬가지로 개에게 말을 거는 것은 대부분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독백형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개 언어 소사전"이라고 해서 개가 의사 전달에 사용하는 주된 신호들을 모아 정리해놓은 부분이 있다. 소리에 의한 신호, 시각적인 신호로 구분되어 개가 사람에게 전하려고 하는 바를 알아듣기 쉽게 표핸해두었다. 이 책이 당신과 당신의 개 사이에 더욱 깊은 이해와 소통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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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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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에 충격적인 뉴스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병마와 싸우는 아픈 아들을 돌보는 절절한 사연을 일상으로 블로그에 연재해서 전세계 네티즌들의 응원을 받았던 미국의 한 엄마가, 사실은 치사량에 달하는 소금을 지속적으로 먹여 아들을 병들게 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미국 뉴욕 외곽에 사는 20대 여성 레이시 스피어스는 인터넷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연재해 '파워 블로거'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수시로 호흡 곤란 증세를 겪는 아들 가넷의 세세한 일상을 올려, 전세계 네티즌들이 응원을 보냈지만, 다섯 살이 된 올해 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착한 엄마의 표상으로 여겨져 온 레이시가 사실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부검 결과 밝혀졌다는 것이다. 엄마인 레이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병을 일부러 만드는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란 주로 신체적인 징후나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서 자신에게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내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주로 병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혹은 자신의 자녀나 애완동물을 대리환자로 상처를 입히는 등의 학대를 일삼는 것이다. 사랑 받기 위해 일부러 아파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니,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에서도 사랑 받지 못해 사랑할 줄 모르고,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겉으로는 너무도 평화로운 작은 시골 마을 윈드 갭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목이 졸려 죽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1년 후 또 다른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생긴다. 주인공 카밀의 상사인 커리 국장은 아무래도 연쇄범의 소행인 것 같으니 내려가서 기사를 좀 건져 오라고 그녀를 마을로 내려 보낸다. 취재차 카밀이 가게 된 윈드 갭은 그녀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이기도 했다. 그녀는 12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지만, 경찰서에서도 피해자의 가족에서도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곧 이어 실종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다. 1년 전 살인 사건에서처럼 이가 모두 뽑힌 상태로 말이다. 카밀은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 목적이 있기에, 마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사체가 발견된 장소를 돌아보는 등 취재를 하지만 그다지 수확이 없다. 살인 사건을 취재하러 과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기자..에서 이야기가 시작 될 때는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처럼 전개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이 작품의 진행은 독특한 카밀의 가족 관계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의 드라마로 펼쳐진다. 대체 사건 취재는 언제쯤 수확이 있는 건지, 범인이 밝혀질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 갈 정도로 담백하게 펼쳐지는 이 조용한 마을에서의 스토리는 후반부에 가서야 빵하고 터져버린다. 물론 그 엄청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녀가 이끌고 가는 대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 그럼 카밀의 가족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카밀의 여동생 메리언은 그녀가 어릴 적에 병마와 싸우다 죽었다. 그녀의 엄마는 결혼 전에 카밀을 임신했었고, 이후 다른 남자와 결혼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카밀이 "어머니는 어린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아끼느라 갖고 놀지 않는 인형처럼 보였다" 내지는 "<피터팬>의 웬디 달링이 다 자란 모습이라고나 할까" 라는 등으로 아도라를 묘사하는 대목을 보면 그녀가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아도라의 남편 앨런은 엄마보다 더 말라서 링거라도 한 병 맞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체격의, 집에서도 항상 지나치게 차려 입는 남자이다. 그리고 메리언과는 전혀 닮지 않은 자신의 이복동생 엠마는 인형처럼 예쁘지만 친구들과 몰려 다니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리고 이 와중에 멀쩡한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 카밀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몸을 칼같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긋고 베고 찌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다리, 손목 등 거의 온 몸의 살갗에 이런 저런 글자를 새겨놓았다. 동생인 메리언이 죽던 열세 살 때부터 시작된 그것은 몸을 베는 행동을 통해서만 그녀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국 12주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고, 그곳을 나온 지 이제 고작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에게 단 한번도 따뜻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카밀은 자신의 몸에 칼로 글자를 새겨야만 만족감을 느끼며, 예쁜 외모를 가졌지만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한다. 외모와 말솜씨로 인기를 독차지하는 엠마는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못생기고 존재감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닌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만 만족을 느끼기에, 자신도 살해당한다면 완벽하게 사랑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윈드 갭에서 가장 부유한 아도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걸맞게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 자애로운 엄마로 봐주기를 기대하며 늘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

  

 

이 작품은 <나를 찾아줘>, <다크 플레이스>로 화제였던 길리언 플린의 데뷔작이다. <몸을 긋는 소녀>는 기존에 <그 여자의 살인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고, 이번에 나온 것은 그 개정판이다. 표지와 제목을 바꾸어 입었지만, 번역자는 기존과 같아 내용 상 크게 차이는 없다. 길리언 플린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개되는 내용은 완전 '막장 드라마' 스러운데 비해 우아하게 흐르는 전개와 예리한 심리 묘사는 매우 섬세하다. 출간된 세 권의 작품이 모두 영화 판권이 팔린 걸 보면 대중성은 확실히 보장받은 게 분명한데, 대체 이 자극적인 스토리를 작품성으로도 인정해야 하나 싶은 고민을 늘 하게 만들곤 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막장 가족이 등장하는데, 정작 진행되는 문장과 스토리는 날카롭게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묘사해서 독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을 만큼 작은 마을 윈드 갭은 또한 모든 사람들이 그 비밀을 이용해먹을 정도로 실상은 겉보기와 다르다. 누군가의 미담보다는 실수와 악행이 세상을 더 떠들석하게 만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치부를 까발려 유린하고, 가십거리가 넘쳐나는 우리의 현재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숨겨진 비밀이란, 그게 내 것만 아니라면 남이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이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재미있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30페이지를 남기고 몹시 두려웠지만,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평가한 스티븐 킹의 말처럼 이 작품의 후반부에 펑하고 터지는 결말은 매우 위험하고, 아찔하다. 설마 아니겠지... 싶었던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날 때의 무시무시함이랄까. 길리언 플린은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만드니 이중 결말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 작품을 만나실 예정이신 분들은 부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으시길.. 출판사의 책 소개 페이지에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아무렇지 않게 설명되어 있으니 가급적 책에 대한 설명 없이 만나보시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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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산다 2 용이 산다 2
초(정솔)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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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네이버에서 시즌 2가 막 연재가 시작된 <용이 산다> 웹툰이 단행본 2권으로 출간되었다. 시즌 1이 단행본 1, 2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고, 지금 연재되고 있는 시즌 2는 마무리가 되면 단행본 3권으로 출간 될 것 같다. 처음에 이 웹툰을 접할 때는 제목이 뭐 이런가 싶었는데, 말 그대로 옆집에 ''이 살고 있다는 의미라 제목 한번 심플하고 단순하네 싶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흔히들 '' 하면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는 이 웹툰을 보는 동안 산산 조각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왜냐, 신성한 동물로 다소 무섭게 생각했던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보다 더 인간스러운, 컴퓨터와 게임에 열광하는 오타쿠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혹시 1권을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잠깐 정리하자면, 최우혁이 새 집에 이사 오고 인사겸 떡을 돌리려고 옆집에 갔을 때 부딪히는 상황은 이렇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 무슨 당황스런 시추에이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용이라니 우혁도 당황스러워 하지만, 그러나 그는 일주일 만에 김용에게 적응된다. 가만 보면 최우혁도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이긴 하다. , 그렇다면 용이 왜 인간들이 사는 곳에 버젓이 살고 있는 걸까? 김용의 설명에 따르자면, 2~3천년 전만 해도 용들은 본 모습을 숨기지 않고 인간들과 섞여서 지내고 있었는데, 용이 가지고 있는 신통력을 통해 인간들의 도움을 얻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욕심 많은 인간들은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도를 넘어선 그들의 태도에 결국 용들은 공존을 포기하고 깊숙한 자연으로 숨어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인간들의 탐욕은 멈출 줄 몰랐고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로 그들이 숨어있던 자연마저 사라져갔고, 결국 용들은 얼마 안 남은 자연에서 사는 무리와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사는 무리로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김용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 세상에 숨어 사는 무리 중의 하나인 것이고. 그런데 가끔 최우혁처럼 편한 인간 앞에서나, 혼자 있을 때나, 화가 날 때는 다시 용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사실 그 용의 모습도 무섭기는커녕 너무 귀엽다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컴퓨터는 신의 물건이고, 게임은 천사의 선물이라 하는 김용. 어떻게 게임 폐인, 오타쿠 용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의 누나인 김옥분. 분명 이들은 용인데, 가끔 하는 짓을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스럽게 보인다. 특히나 2권에서 흥미로운 전개는 용 남매의 엄마가 소싯적에 한 혼인 약속 때문에 만나게 된 옥분의 상대 이영수와 용 남매의 조카 마리이다.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수줍은 이 남자, 이영수와 왈가닥 옥분의 연애 스토리도 매우 흥미진진하고, 용 남매의 조카 마리는 진짜 완전 귀여워서 용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 판타지 소설가인 김용과 그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투덜대는 최우혁 콤비의 종횡무진 활약도 너무 재미있다.  용이란 정체를 숨기고 판타지 소설 작가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게임 폐인 용과 이제 막 독립해서 자취를 시작한 사회 초년생의 만남은 좌충우돌 유쾌하다. 인기 웹툰들이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만화는 웹 화면보다는 종이 책으로 보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책으로 출간되는 웹툰에는 미공개 컷도 숨겨져 있어 소장가치도 충분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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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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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가족에 대해 다루는 영화나 소설은 그 동은 꽤 있어 왔다. 왜냐하면 그 누구라도 살인자의 가족과 관계되고 싶어하는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부모가 살인자라고 해서 그의 자식 또한 살인유전자를 물려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무서워지는 게 사실이니깐. 살인자의 가족이라고 하면 그냥 피하고 싶고, 말 섞고 싶지 않고 그런 게 논리적 이진 않지만,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사실 피해자의 가족만큼은 못하겠지만, 가해자의 가족 또한 살면서 평생 동안 형벌처럼 주홍글씨를 가슴에 박고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살인자의 가족이 평생 괴로워하며 숨어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그의 첫 마디는 우리 아들들은 어떻게 살라고.. 였다고 한다. 사실 범죄자의 가족은 자신의 잘못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범죄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곤 하니 말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묻지마 살인사건을 벌였던 범인의 친동생이 사건 이후 6년동안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살인자의 가족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납득하지도, 견디지도 못했던 것이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의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남이 아니었기에 조금 다른 입장이 되긴 하지만, 엄마를 우발적으로 죽인 아빠를 둔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평생 동안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야 했던 두 자매의 일생이 놀랍도록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펼쳐진다.

"아빠를 집 안에 들이지 마."

우리 가족이 와해되던 7,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난 곧 열 살이 되었는데, 엄마는 날 쉰 살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빠는 집을 나가기 전에도 가족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기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겠지만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엄마를 간절히 원했다....달콤하게 꾸민 엄마의 겉모습 때문이었는지, 아빠는 엄마가 온전히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을 때면 언제든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다섯 살 메리와 아홉 살 룰루의 엄마와 아빠는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싸우곤 하던 부부였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한테 쫓겨나던 날까지도 저녁에 일을 마치고 오면 반가운 입맞춤과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이런 저런 삶에 대한 불평만 터뜨리기 일쑤였다.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도,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 지도 몰랐던 엄마는 아빠를 쫓아내자마자 이런 저런 남자들을 집에 부르곤 했다. 어린 룰루가 도대체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한 걸까. 의아해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낮잠을 자던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룰루는 문 앞에 서 있는 아빠에게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 말한다. 하지만 어린 룰루는 망설이다 아빠에게 문을 열어주고, 술에 취한 아빠는 침실로 가서 엄마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빠가 칼을 들고 있다는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룰루는 옆집으로 뛰어가 티니 아주머니를 부르러 간다. 돌아와보니 엄마는 피가 흥건한 바닥에 누워 있었고, 메리도 옷 가운데가 찢어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발견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징역살이로 인해 갑자기 고아가 되어 버린 메리와 룰루. 친척들은 살인자의 딸을 돌봐주기를 거부하고,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친할머니는 당뇨병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보육원에 맡겨지게 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역시 녹록할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서 오는 교도소 소인이 찍힌 편지 덕분에 메리는 숱하게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메리는 늘 아빠를 만나러 교도소에 가고 싶어 했고, 룰루는 절대 아빠를 보러 가지 않았다.

난 아빠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칼로 사람을 죽이고 문을 뒤흔들던 아빠가 교도소에 있는 한, 난 안전했다. 아빠를 보거나, 아빠의 체취를 맡거나, 아빠와 손이 닿을 일이 없었다. 아빠는 내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룰루는 자신이 엄마의 말을 어기고 아빠에게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생겼다는 죄책감과 아빠에 대한 증오심으로 아빠를 잊어버리려 한다. 교도소에 면회 한 번 가지 않고, 아빠가 보내온 편지는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면서, 동생과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메리는 자신을 찌른 아빠가 무섭지만, 그럼에도 아빠를 내칠 수는 없어 주기적으로 교도소에 있는 아빠를 찾아가고, 아빠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자매의 선택은 그들의 삶의 방향 또한 다르게 만들고,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하게 펼쳐진다. 그녀들이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삼십이 년이 흐른 뒤에, 아빠가 곧 출소한다는 소식을 편지로 알려오자 두 자매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메리는 무서워하며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룰루는 아빠를 돌보지 말라며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아빠를 버릴 수 있었는데, 네가 자초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메리는 자신이 아빠의 면회를 가고, 가석방 위원회에 편지를 쓰고 했던 것은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언니는 특별하고 똑똑했으니까 아무도 언니에게 강요할 수 없었겠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돌봐야 했다고 호소한다. 자신이 그렇게 숨 막히며 서서히 익사하고 있는 동안, 언니는 의사도 됐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으며 미래를 가질 수 있었지 않느냐며 말이다.

절대로 철들지 않는 아빠와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두 자매. 살인자의 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 히도 노력해야 했던 그녀들의 삶은 처절하다. 스릴러 소설이었다면 아빠가 출소한 이후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겠지만, 이 작품은 두 자매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삶 자체에 포인트를 맞춘다. 룰루가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심정과 메리가 아빠의 면회를 갈 때 마다 무서워했고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참아야 했던 그 마음의 깊이가 담백한 어조로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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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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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는 것을 뜻한다. 유사한 말로 무겁다, 삼가다, 조심스럽다 정도가 있겠고, 반대말로 가볍다, 경망하다, 경솔하다 정도가 있다. 반대말의 부정적 어감을 보면 알겠지만, 신중하다는 것은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승우의 소설집에서는 이것이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 '신중함'으로 인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답답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가 신중하기만 하고 치밀하지 못한 것은 무른 천성 때문이라고 그의 아내는 판단했다. 그의 아내는 치밀하지 못한 신중함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유약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신중하기만 하고 치밀하지 못한 것보다는 신중하지 않더라도 치밀한 편이 낫다고 투덜거리곤 했는데,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라고 Y는 생각했다. 치밀하지는 못해도 신중할 수는 있지만 신중하지 않으면서 치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Y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은 신중한 성격 때문이었다. 즉 무른 천성 탓이었다. 그는 자기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아내가 보일 반응과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견뎌야 할 불편한 사태를 성가셔했다.

<신중한 사람>에서 Y는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며 정년을 대비해서 단월에 집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의 압력에 못 이겨 해외파견근무를 나가게 된다.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해왔던 전원생활에의 미련도 그 신중함 덕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년간의 해외 지사 근무를 끝내고 기러기아빠 신세로 혼자 귀국을 하는데, 지금은 딸의 유학자금 때문에 조기 퇴직은 생각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아내 역시 딸과 함께 해외에 남겠다고 해 결국 홀로 귀국하게 됐는데, 그가 돌아와보니 자신의 전원주택에 웬 낯선 사람이 살고 있는 거였다. 그는 해외파견근무를 나가면서 마을의 이웃에게 매달 약간의 돈을 부쳐주며 관리를 부탁했는데, 그는 온데간데 없고 낯선 사람이 버젓이 계약을 새로 해서 그의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집을 남의 집처럼 기웃거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자신이 원래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결국 자신의 집 다락방에 들어가 사는 대가로 숙박비를 내는 이상한 계약을 맺게 된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상황이냐 싶겠지만, Y는 그 신중함 때문에 그저 벌어진 상황에 적응하려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고,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때때로 비겁해지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너무도 가볍게 행동하고 말을 내뱉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신중해서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스스로를 합리화해서 그저 상황에 순응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리모컨이 필요해>의 나 또한 신중한 사람이다. 시간 강사인 나는 숙박도 문제고, 강사료도 변변치 않지만, 선배의 부담스러운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지방에 글쓰기 강의를 하러 내려온다. 강의가 끝나면 선배를 따라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는 술자리를 따라다니지만, 사실은 그저 숙소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낡은 여관에 묵고 있는 그는 새벽마다 자동으로 켜지는 텔레비전 때문에 리모콘이 필요한데, 원래 리모콘이 없다는 여관 주인에게 반박하지 못한다. 이미 이불 속으로 들어가버린 남자를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질문을 묵살하는 여관 주인에게 항의하지 못하는 그 역시, 뭔가 억울하더라도 현재 벌어진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고객들은 모두 심약한 사람들이야. 누구보다 약하고 억눌린 게 많고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야. 칼을 모을 만큼 강한 것이 아니라 칼을 수집해야 할 정도로 약한 거지. 칼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칼을 소지하는 거야..... 다마스커스의 사장이 한 말이다. 칼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칼을 가지지 않고도 잘 살지만, 칼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은 칼이라도 지녀야 겨우 살 수 있다고, 실제로 그 사람들은 칼을 가지고도 애초에 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에서 칼을 배달하는 일을 하는 나 역시 결국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다니게 된다. 일을 할 때도 칼을 지니고,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칼을 지닌다. 그 역시 칼을 가지고 뭘 하려는 게 아니라 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뭐라고 불리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하는 것을 누구나 한 가지씩 품고 산다. 수집하는 그것이 칼이든, 우표이든, 동전이든 간에 말이다. <이미, 어디>의 그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니까 그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무슨 말장난 같은 표현이냐고? 이번 소설집의 매 단편마다 이렇게 말장난 같은 문장들이 길게 늘여져 설명되어 있는 대목들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그런 표현들이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행동을 보여주는 적확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지나치게 신중한 인물들의 특징만큼 작가의 문장 또한 신중함에 신중함을 더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생각만 많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신...고도 소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여덟 편의 이야기들은 각각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한 편의 연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리석게 보일 만큼 신중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소통이 불가능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각자의 불안은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것은 신중함 속에 숨겨진 어떤 부조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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