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t it Rock 1 - 남무성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 개정판 Paint it Rock 1
남무성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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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평론가이자 로큰롤 키드인 남무성 저자의 <페인트 잇 록> 3부작이 완간되었다. 1권편 기존 출간 작이 재 출간되었고, 2편과 3편은 네이버뮤지에 연제한 웹툰을 토대로 한 것이다. 추천사 중에 "만약 실제로 (잭 블랙 주연 영화) <스쿨 오브 록>이 세워진다면, <페인트 잇 록>은 역사 과목 1종 교과서로 채택돼야 마땅하다"는 문구는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록의 탄생부터 성장기까지의 이야기가 웹툰으로 전개되어 록 초보자들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게다가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딥 퍼플, , 메탈리카, 너바나, 라디오헤드 등등.. 록 스타들의 등장은 마니아들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주기에도 충분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록음악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서 록의 역사와 장르에 대한 이야기라 좀 지루하거나, 못알아듣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이론서처럼 풀어가기는커녕 거침없는 풍자로 직구를 날려주어 록 음악 초보인 내가 읽기에도 편하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만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록의 역사라서 더욱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대중음악의 역사 속에 자주 거론되는 유명한 뮤지션 들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은 록 음악 장르를 이해하는데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만화 특유의 재미있는 대사들과 유머들 또한 흥미진진한데, 실존 인물들의 자서전과 뉴스페이퍼, 인터뷰 등의 자료를 최대한 활용한 거라고 하니 웃음 속에 뼈가 있는 셈이다. 전설적인 뮤지션 들의 말풍선은 그들을 친근하게 느껴지게도 만들어주고, 록이라는 어려운 음악 장르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전체 스토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사회, 문화, 정치적 변화 속에서 잉태된 록앤롤(Rock&Roll) 60~70년대를 거쳐 록(Rock)으로 성장하고, 전 세계인의 대중음악으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만화치고는 글이 지나치게 많긴 하지만 록스타들의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워서인지,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캐리커쳐로 표현된 과거 뮤지션 들이 등장해 당시의 일들을 재현하고 그 사이사이 관련 인터뷰 컷이 삽입되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킥킥대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즈음엔 록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정신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록의 역사가 이렇게 흘러왔구나 싶은 깨달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책 한번 읽으면 나도 어디 가서 록 음악에 대해 아는 척 좀 할 수 있겠구나 싶다고 하면 오버일까, 싶을 만큼 자신감도 생기고 말이다. 재즈 뮤지션으로 알았던 척 베리가 로큰콜의 기초를 확립하고 이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팝 음악의 일인자라고만 생각했던 비틀즈 또한 록 음악의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으니 나같은 초짜에겐 이 책 자체가 신세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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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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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매일 같이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그 순간에 그곳에 있던 나의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녀가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전화해서 재촉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시도 잊을 수가 없는 그 생각과 감정들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이들은 부재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가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그 순간에 세상이 끝난 것만 같겠지만, 시간은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고 우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으니 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조회시간, 지각한 기형이의 너스레에 반 친구들 모두 웃고 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집에 가봐라.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단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 살아왔던 태산이는 이제 앞길이 막막하다. 내리막길에 세워둔 트럭의 안전브레이크가 풀려 하필 그곳을 지나가던 아빠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렇다 할 친척도 없고, 다른 형제도 없었던 태산이었기에 아빠가 운영하던 장사 쌀집과 같이 문을 연 떡집 아저씨와 단짝 친구인 기형이밖에 없었다. 아빠가 없는 동네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고, 혼자서는 살 수 없을 거라는 상실감과 공포에 시달리던 어느 날, 우연히 상자 속에서 사진 한 장과 아빠의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해리 미용실이 찍힌 사진과 "태산아. 꼭 여기를 찾아가라."라는 아빠의 남겨진 유언 같은 메세지. 태산은 해리 미용실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죽은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는 마음,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 그래서 십육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간 속에서 여전히 살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알 거 같아요. 하지만 그걸 움켜잡고 있지 않아도 우리에겐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거예요.”

처음에는 청소년 소설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출생의 비밀, 숨겨진 가족사인가 보다 싶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그런 플롯이 등장해서 실망했지만, 다행인 건 자극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담백하고 순수하게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이지만, 충분히 어른스럽고 성숙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버지가 남긴 유언 속의 해리 미용실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재미는 뜻밖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남겨진 삶에 대한 슬픔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태산과 과거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해리 미용실 주인 남자의 관계는 우연히 참석한  손으로 말해요동아리 엠티에서 만난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실마리를 풀게 된다. 아무래도 청소년 소설이다 보니 단순한 구조와 우연으로 인한 사건 해결로 인해 다소 긴장감은 떨어졌지만, 대신 아빠대신 태산을 보살펴주는 떡집 아저씨, 아줌마와 갑자기 나타난 오촌 아저씨, 그리고 태산을 아들처럼 걱정하는 담임선생님과 엉뚱하지만 속깊은 친구 기형이 같은 유쾌하고, 훈훈한 캐릭터들이 작품 전체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도 9.11 여객기 테러로 아빠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어느 날 꽃병 속에서 발견하게 된 봉투 속의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아 6개월에 걸쳐서 뉴욕을 헤매 다닌다. 소년은 봉투 뒤에 적힌 블랙이라는 글자 하나에 의지에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을 다 찾아가서 자신의 아빠를 아느냐고 묻는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기 위해,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의 태산이도 마찬가지로 아빠를 잃고 사진 하나에 의지에 부산에 있는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 자신의 아빠를 아느냐고 묻는데, 문득 오스카가 떠올랐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승무원이었던 친구의 항공기 사고도 역시 9.11 여객기 테러를 자연스레 연상시켰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레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들이 거기서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남겨진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혼자 추측하고, 상상하고, 지레짐작으로 자책하며 살아남은 자신을 탓하고, 슬픔에 잠기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남겨진 이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이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소박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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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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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책을 너무 너무, 과하게, 많이(같은 뜻이지만 무려 세 번의 강조할 정도로 많은 양을) 읽어대다 보니, 거의 하루에 한 권씩 혹은 하루에 서너 권 씩 마구 읽다 보니 초반 몇 페이지만 읽어도 마지막 페이지가 예상되거나, 전개될 스토리가 뻔해서 그냥 덮어버리거나, 몇 문장만 봐도 행간에 억지로 숨긴 의도가 보여 지루해지거나, 그러니까 뭘 읽어도 재미가 없는, 딱히 어떤 이야기도 나를 사로잡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유일한 처방전은 책에서 아예 손 놓고 시간을 보내거나, 이야기와 플롯에서 해방된 책을 만나거나, 조금 가벼워지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재미있게도 이번에 만난 전경린 작가의 신작은 딱 그런 상황일 때에 읽으면 너무 좋을 만한 작품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바닷가 해변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쐬고 모래밭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복잡한 것들 모두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작가는 이번 신작을 쓸 무렵에 세상의 온갖 이야기가 다 싫었다고 한다. 오해와 착각과 환상과 거짓과 허구와 진실의 충돌 사이에서, 타인의 이야기든 나의 이야기든 싫증 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말이다. 그래서 '가급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정황만 있을 뿐, 별 사건도, 갈등도 없는 그런 소설 말이다.

이린이 가끔 하던 말장난이었다. 내가 어느 날 사라지면 페루로 떠난 줄로 알아, 라고 말했다. 페루엔 왜? 라고 내가 물으면, 모르니?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할 때의 그 사과이지. 삶이란 사과 껍질을 가급적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그 사과는 페루에만 있는 거야? 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매우 담백하게 흘러간다.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메인 플롯이 아니고, 어린 주인공과 선생님 사이에 벌어진 다소 외설적인 사건도 덤덤하게 지나가버린다. 이야기들이 파도에 휩쓸려 왔다가, 다시 파도에 휩쓸려 내려가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이 작품은 작가가 시간의 무게만큼 더욱 깊어지고, 그만큼 또한 가벼워졌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경린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였나.. <염소를 모는 여자> 였으니 어느덧 이십여 년이 가까워온다. 한 작가의 책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다 보면 살면서 누구나 변하듯, 작품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한참 나를 매혹시켰던 것이 극중 인물들의 사랑과 열정으로 대표되는 캐릭터와 스토리였다면, 갈수록 그녀의 작품은 단순해지고, 그만큼 깊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화려한 수사로 치장된 문장보다 감정이 극도로 절제된 단순한 문장이 더 먹먹해지는 법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진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상대의 변심은 곁으로 흘러서 지나가게 하고, 거부는 가만히 받아들이고, 비밀은 덮어놓는, 말하자면 문제를 괄호 속에 담아두고, 타자와는 가능한 부딪치지 않고, 세상과는 최소한만 연루되는 그런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인물들은 변화하고 성장하고 시간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삶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주인공 유지는 큰 고모부를 자신의 아버지로 알고 살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작은 고모가 자신의 생모라는 걸 알게 된다. 그녀가 살아온 작은 세상이 뒤틀리며 산산이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생모인 이린은 끝내 유지의 생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완전한 부정처럼 느껴져서 유지는 자신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투명 인간같다고 느낀다. 하루 아침에 윤유지였다가 손유지가 되는 경험은 그녀에게 지독한 박탈감과 결락 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즈음 그녀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생물선생님인 이사경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사경은 말을 하는데도 침묵이 들리는 것 같은, 침묵의 음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생물 실습실에 인체 모형도가 새로 들어온 날 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그 앞에서 옷을 전부 벗고 자신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당황한 이사경은 자신의 몸으로 유지를 가리며 네가 보인다고 말해준다. 그것은 유지가 그즈음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이다. 이 사건은 곧 그의 아내와 어머니도 알게 되고,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은 오히려 유지를 손자인 연조의 피아노 교사로 집에 들이게 된다. 유지는 그렇게 노부인의 집을 다니며 피아노를 치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어간다.

그즈음 나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세상의 중력이 내게만은 작용하지 않는 것 같았고 사람들 눈에 내가 보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설마 그럴까, 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현실이었다. 작은 고모의 눈에 내가 보일 때면 흠칫 놀라곤 했다. 나는 집에 들어갈 때나 나갈 때 투명인간인 양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였다. 교사들이나 반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크고 작은 말썽이 일어나곤 했다. 나는 아무리 놀라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라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한밤중에 내내 아파서 앓다가 아침에 응급실에 실려 갈 때도 결코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유지의 생모인 손이린과 이사경, 그리고 그의 부인 백주희, 유지의 전 연인 오휘와 이사경의 아들 연조에 이르기까지 이들 인물들의 관계는 바닷속에서 부유하는 해초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히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있지만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서로 모른 척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 분위기랄까. 작품의 시작 즈음에 노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여자의 진짜 능력이란, 제 남자를 알아보는 거란다." 라고, 그리고 "남자란 세상의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 하지만 자기를 알아보고 계산 없이 인생을 내놓는 여자를 만나면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을 몽땅 주지. 거기에 제 생명을 쏟는 거다. 그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비밀 논리야." 라고.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처럼 들판을 떠돌다가 덧없이 세상 밖으로 사라진다고. 이렇게 무섭고도 슬프게 정확한 진리가 있을까. 서로의 짝을 만나지 못한 남자와 여자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말은 어쩌면 그 동안의 전경린 작가의 작품들을 일맥상통하는 키워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의 주인공들에겐 항상 사랑이 세상 전부이니 말이다. 나는 '사랑을 한 후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 매혹을 느낀다. 사랑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거라는 걸 동감하니깐. 사랑의 끝은 누군가의 삶을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옮겨놓을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니까. 그러니 우리는 정신 반짝 차리고 사랑을 해야 한다. 대신 삶은 바다에서 물결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처럼,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어떨까.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라는 말처럼, 어떤 사건이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그것이 지나가버린 뒤의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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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연애 블루스
한상운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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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다니는 성욱은 7년을 사귄 검사 여자친구 인영에게 차였다. 원고 마감이 늦어져 야근을 하느라 무려 3주 만의 데이트였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이유라도 알자는 그에게, 인영은 "재미가 없어."라고 말한다. 7년 하고도 5개월 이틀을 만났는데, 그 동안 한 일이라고는 밥 먹고 가끔 잠자고 그게 전부였다고.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고 말이다. 차가운 봄비를 맞으며 바깥으로 나온 그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늘씬한 미녀를 만나 홀리듯 그녀를 따라 영화관에 들어간다. 그녀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영화를 같이 보고, 함께 버스를 탔지만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하는 소심한 우리의 주인공. 그런데 버스정류장에 검정색 벤츠가 급하게 세워지더니, 30대 초반의 남자가 내려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갈기며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냐며 소리친다. 정류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남자의 난폭함에 누구 하나 나서질 못하고, 다른 때라면 도망쳤을 성욱은 그날 여자친구에게 차인 충격 때문인지 그 동안 꾹꾹 누르기만 해온 감정들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그에게 덤벼들고 만다. 벤츠에 타고 있던 운전사가 내리면서 트럭에 치여 죽으면서 상황은 일단락이 되지만, 그는 이미 엉망이 되도록 맞은 상태이다. 여자 친구에게 차인 날,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얻어맞고 아무도 없는 뒷골목 구석에서 비를 쫄딱 맞고 있는 신세라니,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인연이 되어 그는 아리따운 그녀, 수정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휘말린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앞날은 평탄치 못하게 흘러간다.

성욱은 침을 삼켰다. 괜찮을까? 그가 하려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입술을 깨물었다. 옳냐, 올지 않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행동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직 경찰로 해결사인 일도는 대한민국 제일의 사채업자인 방성환의 의뢰를 받는다. 그의 아들 방태수가 바로 버스 정류장에서 수정을 난폭하게 폭행했던 벤츠의 그 남자였던 것이다. 그는 아들과 잠깐 사귀었다가 돈을 가지고 도망쳤던 여자를 찾아달라고 일도에게 의뢰를 한다. 아들이 뒤통수를 맞은 것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는 수정을 찾아내기 위해 뒷조사를 시작하고, 성욱과 수정 모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수정이 근무하던 다이어트 회사의 사장이 방태수였고, 불법적인 운영을 하는 것을 수정이 알게 되어 회사를 나와 협박 받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성욱은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수정을 도와 증거물과 돈을 거래하는 것을 돕기로 하지만, 거래 장소에서 수정은 방태수를 차로 치여 죽이고 혼자 사라져버린다. 방태수의 비서인 석구는 그녀가 사실은 꽃뱀에 사기 전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성욱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녀를 믿어주고 싶다. 그렇게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인물들이 엮이고, 사건은 점점 막바지로 치달아간다.

지금껏 목적 없이 그럭저럭 살았던 성욱의 인생에 '단 하나의 동기' 같은 게 생겨버린 이후, 그는 갑자기 평범하고 소심한 남자에서 용기 있고 정의로운 인물이 되어 간다. 수정과 함께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그에게 그런 무모한 용기를 심어 주었던 것이다. 매번 시험에 낙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심 감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렇게 몇 년을 허탕 친 후에 간신히 출판사에 취직한 이후로는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면서 늘 성공한 친구들의 험담으로 시간을 보냈던 그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달라져야 할 때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여기 이 비열한 거리를 지나가야만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작가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이 구절을 읽으며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꿋꿋하게 걷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쩌면 비열한 거리를 걷는 그 남자는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소심한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단지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기에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게 아닐까 하고. 그것이 이 작품의 시발점이다. '비주류 연애 블루스'라는 말랑말랑한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 사실 제목과 표지의 분위기만 보고는 가벼운 멜로 인줄 알았는데, 웬걸 진행되는 스토리는 다소 어둡고, 긴박감 있고, 흡사 스릴러 영화라도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영화 '비열한 거리' 처럼 변해가면서 성숙해져 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거라면, 왜 이런 의문스러운 제목을 달아놓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말이다. 무엇이 평범한 남자를 비열한 거리에서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에 맞는 제목을 달아두었다면 훨씬 더 많은 낫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제목 때문에 어쩐지 스파게티를 뚝배기 그릇에 담은 듯한 어색함이 남아 아쉬웠다.

하지만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스토리는 흥미로웠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평범한 플롯이었지만 우리의 주인공이 스스로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공감할만했다. 게다가 지루하지 않아 킬링 타임 용으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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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레터스
헌터 데이비스 지음, 김경주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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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모리스 블랑쇼는 소통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글로 쓰는 말들은 고유의 목소리와 영혼, 공간, 대기를 갖는다. 말은 말 자체로 존재함과 동시에 그 의미가 가리키는 장소로 독자를 운반해 가는 힘을 지녀야 한다."

비틀즈와 존 레논이라는 엄청난 스타에 대해서는 이미 숱한 평전들이 출간되었었지만, 이번 작품집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존 레논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엽서와 편지들을 긴 세월에 걸쳐 찾아 모으고 복원해서, 비즐트 공식 전기 작가인 저자의 해석을 곁들여 엮어 낸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존 레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팬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존 레논은 기쁘거나 짜증나거나 증오심이 치밀거나, 유쾌하거나 화가 나는 그 모든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음악뿐만 아니라 글로도 남겼다고 한다. 그는 영감이 떠오르거나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자연스럽게 펜과 종이를 꺼내 들었다고 한다. 가족, 친구, , 신문사 등에 타자기로 편지와 엽서를 써서 보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위트와 설득력, 지혜로움 뿐만 아니라 분노와 고뇌까지 엿볼 수 있다. 그가 작사한 노랫말과 시집 두 권은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가 남긴 편지들을 출판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소설가 E.M.포스터는 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편지는 좋은 편지로 분류되기 전 두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쓰는 사람의 인간성을 드러내야 하고, 그 다음으로 받는 사람의 인간성을 드러내야 한다."

저자는 존의 친척과 친구, 팬들과 애인, 심지어 세탁소 앞으로 쓴 편지와 엽서까지 무려 300여 점을 추적해서 그것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편지의 사연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편지들이 쓰일 당시에 존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누구에게 썼고 어떤 내용과 맬락의 편지인지를 상세하고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그 편지를 통해서 존의 삶과, 당시 그가 가졌던 고민과 두려움, 열정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천재적인 뮤지션이 아니라 인간 존 레논의 맨 얼굴을 만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얼마 전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씨가 자꾸 생각이 났다. 의료사고일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문제로 아직 시끌시끌하지만, 너무도 젊은 나이에 맞이하게 된 죽음이라 가족들도, 팬들도 쉽게 그를 놓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나 음악인의 죽음은 그가 떠나도 우리 곁에 그 음악이 항상 있기 때문에 더욱 애잔하고, 그 슬픔이 오래 가는 거 아닐까.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존 레논을 비롯해서 여러 유명인들이 젊은 나이에 불꽃처럼 생을 피우다 갔다. 꽉 차지 못한 이른 죽음은 어딘지 황망한 기분을 주변인들에게 떠 남기고 만다. 물론 저 곳으로 가야 하는 그의 발걸음도 그들을 보며 쉽사리 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존 레논 레터스>가 너무도 알차게, 소중한 정보들을 모아 만든 책이라 그런지 신해철씨를 비롯해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이런 책이 또 출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남긴 글들과 생의 자취들을 따라가며, 남겨진 이들이 그를 더욱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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