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시력 매드 픽션 클럽
카린 포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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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가 존경한다는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카린 포숨의 신작이다. 기존에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 <돌아보지마>가 국내에 출간된 적이 있고, 꽤 오랜만에 나오는 작품이다. 카린 포숨은 누군가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에 관해서 묻자, “밤이 긴 북유럽 사람들이 즐겨 읽도록 썼다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북유럽의 스산한 날씨와 긴 밤에 어울리는 스릴러 작품들이 많이 유독 탄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부터 또 폭설이 내려 한파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추운 계절 긴 밤을 보내기에 북유럽 스릴러가 제격이 아닌가 싶다. 특히 카린 포숨의 작품은 플롯, 캐릭터 중심의 여타의 스릴러와는 완전히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독특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장점이 있다. 누구든 재능이 있다. 누구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썩어빠진 개인이란 존재하고, 나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선 정신이 나갈 정도까지 심술궂게 바뀔 수 있는 썩어빠진 개인. 하지만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낼 수 있다. 예의 범절과 다정함, 친절을 흉내 낼 수 있다. 힘든 건 나쁜 충동을 억누르는 것이다. 종종 내가 통제력을 잃으면 일어날 일, 실제로 간간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노르웨이의 한 작은 마을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과 한적한 호수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주인공 릭토르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몇 년간 요양원에서 간호사로 일해 온 릭토르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남자이다. 그는 음식과 주스, 약을 방마다 갖다 주고 노인들이 잘 먹고 마셨는지, 알약을 삼켰는지 확인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 몰래 주사는 매트리스 안에 놓고, 음식과 약은 변기 속에 쏟아버리며 물을 내리고 모든 흔적을 없앤다. 노인들이 사라지는 음식을 보며 창백하고 주름진 두 손을 무력하게 흔들지만, 그는 노인들이 아무런 생산적인 일도 못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데 밥은 먹어 무엇하냐는 식이다. 무력한 환자들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면서 그는 은밀한 즐거움을 느낀다. 중년의 그에게는 단 한번도 여자가 있었던 적이 없다.

 

 

내게 여자만 있다면, 나를 달래주고 위로해 줄 여자만.

그는 같이 근무하는 안나 간호사를 마음 속의 천사로 여기며 관찰한다. 그렇게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그에게는 고독과 외로움이 유일한 친구이다. 날마다 산책을 즐기는 그는 자주 공원에 오는 이들을 관찰한다. 신체장애를 겪는 어린 딸을 키우는 여자, 은퇴 후 뜨개질으로 시간을 보내는 여자, 서로를 탐닉하는 젊은 커플, 늘 술에 취해 있는 남자.. 그러던 중에 휴대용 술통을 놔두고 간 아른핀과 우연히 말을 나누고 집에 초대하면서 관계를 맺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하찮은 존재였다. 쳐다볼 것도 없고, 대체로 세계에 별 의미도 없고, 쉽사리 잊히는 존재. 이 깨달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몸을 돌려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원했고, 나를 기억해 주고 존중을 담아 내 얘기를 하기를 바랐다. 이런 갈망은 점점 커져 내 가슴과 머리를 채웠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꾸어야 한다.

어렵사리 친구 비슷한 관계가 된 아른핀과는 사소한 사건으로 금이 가버리고 만다. 그가 술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었건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른핀이 그의 지갑 속에서 지폐를 몇 장 꺼내는 걸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지갑을 아무렇지도 않게 놓아두고 시치미 떼고 대화를 하려는 아른핀을 보고 그는 이가 덜덜 떨릴 만큼 분노를 느낀다. 잠시라도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했던 남자였기에 그의 배반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폭발적인 감정을 그만 참지 못하고 분출해버린다. 고작 지폐 몇 장 때문이었지만, 사실은 지폐보다 자신의 믿음을 배반한 것에 대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릭토르가 우발적으로 아른핀을 죽이게 되는 것까지가 전반부, 이후 진행되는 후반부의 사건은 전.. 예상 밖으로 이어진다. 그는 시체를 수습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가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경찰의 방문을 받는다. 그의 걱정과는 달리 엉뚱하게도 요양원에서 일주일 전에 죽은 넬리라는 노인의 살해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다. ....도 그는 넬리를 죽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부분 바라만 보는 것뿐이에요.

보통 1인칭으로 전개되는 작품에서 독자들은 주인공, 즉 화자에게 감정 이입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릭토르는 일종의 소시오패스이다. 타인의 괴로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고, 평범한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때로는 공포나 그 외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거기다 그는 사람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 친구를 만들거나, 타인을 관찰하는 낙으로 살아가는 완전한 외톨이이다. 하지만 그가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로 구치소에 수감되고 돌아가는 상황이 모두 그에게 불리하게 진행되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가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목인 '야간시력'은 주인공의 특별한 능력이자, 그가 처해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칠흑같이 깜깜할 때도 표면과 공간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운 곳에서 시력이 좋다는 얘기다. 쿠거라는 동물이 있다. 야간시력이 매우 뛰어나서 어두운 달빛에서도 대낮처럼 먹이를 쫓아 미행할 수 있어 야간 사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동물이다. 쿠거는 비밀스러운 습성을 가지고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경계심도 매우 강한 동물이다.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먹이를 묻거나 숨기고 배설물도 땅에 묻는다. 나는 주인공 릭토르가 어쩐지 이 동물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야간시력이 뛰어난 것 외에도 말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원적인 거리감에서 오는 공허감은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으로 연결된다. 분명히 릭토르는 '악인'이지만, 나는 카린 포숨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쩌면 우리도 어느 순간 악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명적인 고독은 누구라도 악인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소시오패스인 릭토르가 안타깝고 가엽게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심플한 플롯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주로 심리 묘사로 진행되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매우 독특하고, 매혹적인 겨울 밤을 선사해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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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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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출근했던 아버지가 회사에서 갑자기 중앙정보요원에 의해 끌려간다.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하더니, 새로 산 라디오를 집어 들고 남편이 북한 방송을 듣기 위한 것이라고 법정에 간첩 증거로 제출된다. 아마도 책이 있었다면 그것이 증거로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뭐든 상관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의 아버지, 아들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끌려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인혁당 사건'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자들로 잡아들여 무고한 이들에게 형을 집행한 사건으로 이른바 '사법살인'으로 기억된다. 1960년대 당시에 사형되었던 이들은 2007년 재심에서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는다. 무려 사십여 년이 지나서야, 이미 죽고 사라진 다음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권여선 작가는 이러한 국가적 폭력 자체보다는 그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상처에 주목한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사건 자체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려지고 정리되었으니 굳이 소설에서 다룰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없던 죄를 만들었던 그들이 그걸 다시 무죄판결 한다고 해서 긴 세월 동안의 상처와 고통도 없었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여기서, 바로 이런 소설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통성명을 하고 서로가 일곱 살 동갑내기임을 확인했다. 원은 얼마 전에 언니가 보는 만화책을 몰래 훔쳐보고 '스파이'라는 말을 새로 배웠던 터라 그 말이 써먹고 싶어 좀이 쑤셨다.

"그럼 이제 우리 목숨을 바치는 스파이가 되기로 하자."

"스파이?"

..."스파이는 비밀을 알아내는 간첩이야."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이다. 고대의 토우는 장난감이나 주술적인 우상, 혹은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토우의 집이라는 것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산다는, 캄캄한 무덤을 뜻한다. 대체 얼마나 커다란 상처와 상실을 겪어야 사람이 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느껴지는 걸까. 제목에서부터 아릿한 슬픔이 묻어난다. 이야기의 배경은 삼악산 남쪽의 삼벌레 고개이다. 가운데 바위, 양쪽 바위들의 돌출된 모습이 다족류 벌레가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삼악동이라는 이름을 놔두고 그렇게 불리었다고 한다. 경사를 끼고 형성된 동네라 삼벌레 고개에서도 재산의 등급이 등고선의 높이에 반비례했다. 아랫동네에는 크고 버젓한 주택들이 있어 대부분 자기 소유의 집에 살았고, 중턱부터는 제집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윗동네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 전세나 월세도 못 내 일세를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삼벌레 고개 중턱의 우물 집이라 불리는 김순분의 집에 새 식구가 이사를 온다. 새댁 네 식구는 모두 넷으로 새댁과 남편, 큰딸 영과 작은딸 원이었다. 원은 동갑내기인 주인집 둘째 아들 은철과 친구가 된다.

그렇게 은철과 원은 스파이 놀이를 시작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얘기를 엿들어서 비밀을 알아내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려내기로 한다. 아이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 우물 집 식구들의 이야기,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천진난만, 때로는 유머스럽게 보여진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비밀은 때로 모르는 게 약이지만, 그들은 뭐니 뭐니 해도 목숨을 바치는 스파이였으므로' 무슨 일이든 악착같이 알아내고자 했다. 난쟁이식모, 순분네, 통잡 박가, 보험여자, 똥순이 할매, 원의 아버지 안덕규까지.. 두 아이가 관찰하는 모습 그대로 비춰진다.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원의 가족은 가을 단풍 산행을 하기 위해 김밥을 준비하다가 정보부 요원들의 방문을 받는다. 원은 그들을 따라간 아버지를 그 뒤로 볼 수 없었다. 결국 온몸에 푸른 멍이 든 채 죽어서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자주 찾아오던 무리 중에 두 명은 사형을 당하고, 셋은 감옥에 갇혔다. 이제 그들의 집에선 남겨진 이들이 살아 있어도 마치 무덤 같은 침묵이 흐른다. 남자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불안이 마을을 감싸도, 아이들은 커가고 남겨진 이들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삶의 잔인한 진실이다. 어린 소년, 소녀의 장난처럼 담백하고 유쾌하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은철의 사고 이후 어둑하고 무겁게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 탓이 아닌지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실 그 죄책감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아닌데 말이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을 생기를 잃은 토우로 만든 것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에 누군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먹먹한 슬픔을 아릿하게 남겨준다.

오래 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 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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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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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얼마 전에 탕웨이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중국의 천재작가 샤오홍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1930년대 격변의 중국을 배경으로 샤오홍. 루쉰, 딩링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과 사랑, 우정을 나누었던 그녀는 10년의 시간 동안 100여 권의 작품을 남기었고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천재 여류작가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까지 닮은 전혜린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한때 전혜린의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끼고 살았던 적이 있던 터라, 샤오홍의 일대기도 매우 궁금했다.

 

가부장적인 집안의 분위기로 어린 시절 억압받은 삶을 살았던 샤오홍은 항상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연로한 할아버지만 그녀를 아꼈을 뿐,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외로운 신세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라면서 점점 죽을 힘을 다해 낡은 악습과 투쟁하고자 한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라 말하는 고모에게, 자신은 운명에 순응하고 싶지 않다며, 여자로 태어난 이상 평생 동안 남자의 말만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 건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항변한다.

우리는 평생 그렇게 남의 말만 들으면서 살 수 없어요. 항상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가야만 해요. 우리 세대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는 가능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세대를 이어 용감하게 일어나 그들에게 저항하기만 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고모와 이모는 샤오홍이 하는 말을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 역시 영원히 남자의 말에 복종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해낼 수 없는 일이지만 너라도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샤오홍이 몰래 도망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그녀는 집에서 정해준 약혼자와의 혼사를 거부하고 스무 살에 집을 나온다. 그리고 하얼빈에서 샤오쥔을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날 당시 샤오홍은 임신한 상태로 남자에게 버림받아 여관방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샤오쥔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들은 혹독한 가난과 추위를 견디며 사랑을 나눈다. 샤오홍의 삶에서 그녀를 거쳐간 많은 남자들이 있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사람은 샤오쥔과 루쉰이다. 그들 모두 그녀를 문학의 길로 안내했다. 샤오쥔의 영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대문호 루쉰에 의해 문단에 진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샤오홍의 연애 생활보다는 그녀의 작품과 글을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 작품은 작가로서의 뜨거웠던 삶보다는 주로 거침없고 자유로운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계속되는 전란 속에서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글을 써야 했던 그녀가 직접 보고 겪었던 것을 작품 속에 그대로 담아내어 진정 성을 더했고, 당대의 대문호 루쉰, 딩링과 같은 중국의 지성인들과 나눈 우정을 나누며 글을 썼다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점점 더 궁금해진다.

나는 사랑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매번 누군가를 사랑하면 최선을 다해서 모든 걸 다 쏟아 붓지. 마치 이 생애의 모든 힘을 다할 셈으로 말이지.

 

어릴 때부터 자유연애를 갈망했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부모님께 받지 못했던 사랑으로 인한 애정 결핍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 충분히 받지 못했기에 사랑에 대한 갈망이 유난히 강했고, 누구라도 그녀에게 조금의 애정이라도 보이면 달려들어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보상을 얻고자 했지만 상대방이 주는 마음이 진심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기에 상처도 많이 받게 된다. 현실에서는 사랑에 연약한 여인이었지만, 작품에서는 진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묘사해 강한 호소력을 지녔다고 하니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샤오홍은 작가로서의 뜨거웠던 삶뿐만 아니라 거침없고 자유로운 사랑으로 1930년대에 볼 수 없었던 신여성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샤오홍은 글을 쓰는 이유가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 많은 고생을 이겨내고,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강인함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1930년대 항일과 혁명이라는 환란의 중국 역사 속에서 인간 내면의 세계를 따뜻하고 담담하게 탐구한 샤오홍, 그녀의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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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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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읽고도 종이들을 붙잡고 읽는 척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엄마에게서 하나밖에 없는 친구의 애정을 갈구하는 외롭고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우리 부모님을 알기는 아는 걸까?

당신은 자신의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 믿음과 의심 사이의 그 조그만 간격은 사실 종이의 양면과도 같다. 사소한 행동, 말투들이 쌓여 오해를 만들고, 견고하게 쌓인 세월을 넘어 믿음을 깨트린다. 그리고 부모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간다. 외모는 점점 부모를 닮아가더라도, 어느 순간 아이는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부모 또한 자식에게 모든 상황에 대해 전부 솔직할 수만은 없다. 그러니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부모의 모습이 진짜인지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어느 날, 한동안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온다.

"네 엄마가..... 엄마가 좀 안 좋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주 끔찍한 망상에 빠졌다고, 의사 말로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며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니엘은 자신이 그 동안 뭔가 놓친 게 있는지, 지난 5개월간 엄마 가 보낸 이메일 들을 살펴본다.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보낸 이메일 한 통. 다른 내용은 하나도 없이 그저 다니엘의 이름과 느낌표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근사한 농장 생활, 따뜻한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전혀 이상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다니엘은 자신이 뭘 간과했을까 불안하면서, 그 동안 농장 방문을 미뤘던 것에 대한 자책감을 느낀다. 다음날 급하게 여권과 티켓을 챙겨 공항으로 가지만, 엄마가 이미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에 이어,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 인간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난 미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 자식이라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걸까? 아버지는 어머니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무서운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 부모님은 내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부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두 분 이서 서로를 대하는 모든 방식이 여름을 나면서 바뀐 것만 같았다.

이 작품은 삼백 페이지가 넘는 동안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단계별로 말을 해야한다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쉽사리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는 다니엘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조바심이 날만큼. 그래서 결국 실제로 스웨덴의 농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다니엘이 직접 조사하는 것은 후반부 잠깐이고, 엄마가 일기, 편지를 통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들려주는 것이 작품의 거의 전부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야기는 전혀 지루할 틈이 없게 진행되고 있다. 다니엘은 아버지, 어머니 어느 한 쪽의 말만 믿을 수 없기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주고, 어머니 몰래 아버지와 연락을 한다. 모자간의 대화 장면은 마치 무슨 첩보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주고 있는데, 솔직히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독자인 내 입장에서 듣더라도, 다니엘의 어머니가 하는 말들은 망상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녀의 망상처럼 보이는 집념이 진짜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한 쪽의 입장만을 알려줄 뿐이다. 진실을 파악하려면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듣고, 제3의 인물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니 말이다.

가족이란 사랑을 매개체로 만들어진 공동체이고, 그 사랑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믿음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신뢰하는 그것. 믿음에는 그렇게 조건이 붙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에 관한 무시무시한 진실은 바로 '무조건'이라는 건데, 사실 어디 우리 삶이 그렇게 되던가 말이다. 누구나 가끔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하다면 무조건 믿어야 한다. 설사 그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더라도, 진실한 믿음은 결국 상대방에게 전해 전해질 것이다. 이 작품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진실인지, 망상인지 모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도록 쓰여졌다. 그래서 작품의 후반부에 다니엘이 스웨덴에 직접 가서 부딪히는 진실은 사실 좀 충격적이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갈등의 주요 플롯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차일드 44>로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던 톰 롭 스미스의 이번 작품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스릴과 긴장을 만들어내 역시! 라는 감탄사를 뱉어내게 만든다. 게다가 내년에는 <차일드 44>를 잇는 3부작 <시크릿 스피치> <에이전트 6>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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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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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도 있을까? 한 여성이 성형수술을 많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터넷 사이트에 성형수술을 많이 한 성형괴물을 찾아냈다며 누군가 글을 올리자, 당사자는 그들을 고소하고 경찰서에서 적당한 금액에 합의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돌아가 다시 인터넷 게시판에 모여 자신들을 엿 먹인 성형괴물을 처단하자면서 그녀의 신상을 공개한다. 주소며 지도, 사진까지 첨부된 게시물에는 수십 건의 댓글들이 달린다. 그리고 실제 그녀는 잔인하게 살해되자, 주도적으로 게시판에서 그녀를 비방했던 16살 중학생 소년이 용의자로 검거된다. 대부분의 형사들이 소년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지만, 소년을 심문한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성호는 범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후 주간파 게시판에 성호의 신상이 털리고, 용의자였던 소년이 자살을 기도하는 바람에 그는 수사에서 제외되고, 진도 삼보섬에서 일어난 여성 세 명 실종사건 관련해서 지원을 하러 내려가게 된다. 삼보섬에서 일어난 연쇄실종사건은 굿에 정통한 무속인, 운림산방의 관리 여직원, 해안가 펜션 여주인이 실종된 사건으로 범인이 보낸 편지까지 도착했지만, 지문감식, DNA 채취까지 했으나 진전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가장 힘든 점은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가 저지른 범죄를 일에서 백까지 머릿속으로 재현해보고 나서 왜 그렇게 했는지를 곱씹어보아야 했다. 범인이 잡힌 후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같은 범인의 개인 사에 공감하면서 진술을 이끌어내야 했다. 범죄와 범인에게 가장 근접한 그림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성호는 필적 감정을 위해 함께 요청이 된 국립민속박물관의 여도윤 학예사와 함께 삼보섬으로 내려간다. 삼보섬에서의 프로파일링, 수사 과정은 특별히 줄거리 요약을 할 만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그 중간중간 성호가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서 특정 아이를 왕따 시키고, 괴롭히며 못되게 굴던 남자아이 홍태기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동료처럼 보이지만 종종 이상한 행동이나 대화를 하는 여도윤 학예사와 인터넷 상에서 정의실현친구로 통하는 유정열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 이들 두 사람과 성호의 과거 어린 시절이 이 작품의 키워드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김성호의 직업을 프로파일러로 설정한 부분에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초반 주간파 사건 조사 시에만 직업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묘사되고, 정작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삼보섬에 내려가서 실종사건을 조사할 때는 그다지 프로파일링에 대한 것이 보이지 않아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로 만든다고 하니, 그 첫 번째 이야기인 이번 작품에서 스토리를 이렇게 풀어나간 이유가 짐작이 되긴 한다. 시리즈의 시작에서 주인공의 배경 설명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건 공식 같은 거니 말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그때 이전의 기억은 거의 잃어버린 주인공에게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만 남아 있다면 그의 과거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과거와의 연결 선이 열리고, 드디어 비밀의 봉인이 해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아쉬운 1편 보다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2편이 더 재미있을 수밖에 없으니, 아마도 이번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김재희 작가의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수많은 삽질과 뻘짓의 연속, 그게 바로 경찰이었다. 셜록 홈즈 처럼 하나의 사건에 초 집중하여 단시간 안에 명쾌하게 해결하는 수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건 하나마 다 수백 장의 조서를 꾸미고 필요 없는 공문이 숱하게 오가고 나서도 범인을 놓치는 게 바로 현실이었다.

작가는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개최한 여름추리소설학교에서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의 강의를 듣고 이 작품의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도 여름추리소설학교에 참석한 적이 있기에,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서 소설을 구성한 부분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가가 던지는 화두는 범죄자는 만들어지는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 되는에 대한 논란으로 이는 범죄학에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생물학적인 뇌 이상 혹은 유전적인 이유로 타고 태어난다는 <범죄 유전설>과 사회적인 영향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범죄 환경설>은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로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니 양쪽 모두 어느 정도는 추정일 뿐이라고 한다. <범죄 유전설>을 지지하는 쪽에선 긍정적인 유전자 번식은 괜찮지만 부정적인 유전자 번식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나치가 받아들여 유태인 말살 정책으로 변모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범죄 성향이 애초에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거라면, 처음부터 사이코 패스, 짐승으로 만들어져 태어나는 거라면 어딘지 좀 섬뜩하긴 하다. <범죄 환경설>을 지지하는 쪽에선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는 성선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다. 다만, 사회적인 환경이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빈곤과 실업 등 사회적인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것들이 범죄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로 가면 범죄 방지를 위해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코 패스, 소시오 패스들을 사회현상으로 이들이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건지, 분자생물학과 연관 지어 유전적 질환 쪽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판단할 근거는 물론 없다. 그래서 추리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최종태 작가의 <모베상>도 떠올랐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등장해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김재희 작가가 던지는 화두와 같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두려운 것은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지킬과 하이드 처럼, 평범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악의 영역을 나 자신도 모르는 내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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