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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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책 대체 뭐지?'였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생이 주르륵 펼쳐지는데, 밑줄 긋고 싶을 만큼 화려한 문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서사도 없고, 극적인 전개도 없는데, 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뭔가가 올라온다. 대체 뭔데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싶어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너무도 오랜만에 필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고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필사를 하면서 머릿속에 다시 새겨두고 싶어졌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한 인간의 삶을 담담하게 펼쳐놓는 스토리를 내가 원래 전혀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 나는 복잡한 구성과 스릴 넘치는 구성과 화려한 묘사에 매혹되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소박하고 겸손(?)한 작품에 사로잡히다니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였다. 처음 책이 발표된 후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잊혀져 있다 출간 후 50년이 되어서야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하는데, 어쩐지 그 이유가 짐작이 된다고 할까. 그럴 만큼의 묵직한 감동을 숨기고 있는 조용한 작품이다. , 뭐라고 더 이 책의 훌륭한 점을 짚어내어 설명하고 싶지만, 사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도 이 책을 직접 읽는 것만큼의 감동을 전달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꼭 직접 읽어보아야만 한다. 이제 겨우 1월인데, 어쩌면 이 작품이 내 마음을 흔드는 올해 최고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꾸민 끝에 서재가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낡은 회색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면서 나무 본래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니, 마침내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만의 서재를 갖게 된 스토너가 느끼는 이 감정은 그의 성격과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여주는 대목 중의 하나이다. 아내인 이디스가 친정에서 엄청난 돈을 빌려와 집을 구입한 것은 스토너에게 거의 파괴적인 부담이 었다. 그래서 월말이면 항상 돈이 부족했고, 여름학기 강의를 하며 모아둔 예비비가 매달 꾸준히 들었다. 집을 산 첫해에 그는 이디스의 아버지에게 돈을 보내야 하는 날짜를 두 번이나 놓쳐 차갑게 꾸짖는 편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는 집을 소유하게 된 것이 점점 기뻐져 그것에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위안을 얻게 된다. 그래서 빚과 궁핍이 정기적으로 거듭 압박을 가하는데도 그는 몇 년 동안 행복했다. 아내인 이디스와의 관계는 그가 신혼 시절 꿈꿨던 삶과는 전혀 달랐고, 딸에게 관심이 없는 아내 대신 여전히 그가 딸을 돌보는 일을 대부분 맡고 있었지만 말이다. 살아가는 일이 사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꿈꿔왔던 기대들은 거의 배신당하고,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은 항상 생의 길목에서 발목을 잡는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그의 동료들이 모두 입대를 하고 스토너만 남겨져 지도 교수에게 실망스런 이야기를 들을 때도, 결혼한지 한 달도 안 되어 결혼이 실패라는 걸 깨닫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버릴 때도, 그는 그저 말없이 주어진 상황을 견뎌낸다. 찰스 워커가 영문과 대학원 과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던 싸움이 실패로 끝났을 때도, 로맥스 교수와의 불편한 관계도, 캐서린과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이 끝나갈 때도 그는 그저 묵묵히 시간을 보낸다. 물론 캐서린과의 사랑이 끝나버린 후 생애 처음으로 병을 앓고 급속히 늙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레이스는 가끔 동네 아이들과 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커다란 서재에 앉아 아버지가 채점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많았다. 아이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면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찌나 조용하고 진지한 대화였는지, 윌리엄 스토너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부드러움에 감동했다.

이디스가 친정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떠난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스토너는 친정어머니와 2주 더,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지내게 될 것 같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렇게 그녀는 거의 두 달 동안 집을 떠나 있었고, 스토너의 큰 집에는 그와 딸 둘뿐이었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는 자신이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레이스는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매일 아침 스토너는 아이를 준비시켜 학교에 보냈고, 오후에는 아이가 집에 돌아올 시간에 맞춰 대학에서 돌아왔다. 엄마가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가정에서, 아빠와 딸의 관계는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조용하고 명랑한 그레이스는 제 아비에게 향수에 찬 경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들에서 기쁨을 찾아냈다> 같은 표현들은 그들 부자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가 위층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같은 대목들은 스토너의 성품을 짐작케 한다. 그가 처해진 상황은 어찌보면 불행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는 그 속에서 행복과 위안을 느끼며 그저, 살아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에서 내면에서 자라나는 지성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 모습에서 놀라움과 사랑을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는 너무 좋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군청 직원의 권유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던 스토너. 우연히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만나게 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그가 영문학도로서 평생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남들처럼 연애하고 결혼하고 교수가 되지만, 결혼생활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라 아내와는 거의 대화 없이 지내고, 교내에서도 출세나 권력관계에서 떨어져 나와 그저 자신만의 학문을 할 뿐인 그는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간다. 그러니 평범한 주인공이 그의 앞에 나타난 장애물들을 헤치고, 역경을 극복하는 통쾌한 스토리도 없고, 묵직한 가르침을 주려는 현학적인 묘사도 없고,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전개도 전혀 없다. 그냥 한 인물이 태어나 자라, 누군가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는다.의 스토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네 평범한 삶이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평범하고 소박 함들이 쌓여서 이루어내는 효과는 엄청나다. 스토너의 이야기는 나의 삶이기도 하고, 당신의 일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각각 살아가는 모습들은 전부 다를지라도, 이상하게 스토너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감동은 책을 읽는 순간이 아니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파도처럼 몰려온다. 올해 당신이 꼭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을 묻는다면, 단연코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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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1-2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인용문 때문에 엄청 읽고 싶어졌어요, 피오나님. 박스 안의 것과 또 리뷰 중간에 옮기신 문장들도요. 조용하고 아름다운 책인 것 같아요.
:)

피오나 2015-01-28 21:32   좋아요 0 | URL
저도 종종 다락방님이 옮겨 적으신 글들 때문에 책을 사곤했어요 ㅋㅋ 이 책 너무너무 좋아요! 다락방님도 꼬옥 만나보시길..다락방님이 쓰신 리뷰도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ㅎㅎ
 
강남 1970
유하 원작, 이언 각색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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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유하 감독의 10년에 걸친 '거리 3부작'의 완결편이라 해서 개봉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모두 강남을 무대로 하고 있기에 엄밀하게 말하면 '강남 삼부작'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김래원, 이민호라는 두 명의 배우가 만나는 작품이라 그 기대치가 더 컸던 것 같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겁 없는 청춘 '종대'와 조직의 보스가 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건달 '용기' 두 사람은 고아 출신으로 강남 땅을 둘러싼 이권다툼의 최전선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목숨 걸고 싸우게 되는 역할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이미지가 겹쳐져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마치 시나리오라도 읽는 것처럼 지문의 수식어가 길지 않고, 간결해 주요 사건들이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읽는 책처럼 이어지는 대화들로 상황 전개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시인이기도 한 유하 감독 원작이라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대목들에서 감정적인 부분도 가끔 있어 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재미도 있다.

 

 

 

목구멍에서 왈칵 솟는 어떤 기운에 종대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 감정이 행여 얼굴에 드러날까 어금니를 악물어본다. 이런 것이 가족인가. 가족의 정이란 이런 것인가. 내게도, 나 같은 놈에게도 이런 것들이 허락된단 말인가.

압구정동, 청담동을 비롯하여 '강남'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부유하고, 현대적이고, 고급스럽다를 넘어서 사치스럽고, 향락적이고, 과시스럽다는 느낌으로 대다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강남도 1970년대에는 허허벌판, 한적한 시골 같은 풍경이었다. 정부는 과밀화되어 가고 있는 구 시가지의 인구를 한강 이남으로 분산하고 서울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강남개발을 하려고 영동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당시에는 강남이라는 지명이 없었고 영동지구라고 불렸다 한다. 강남개발로 인한 부동산 붐 속에서 이 지역은 고소득층들을 위한 소비 공간으로 발전했고, 강북 다수의 소비관련 업종들이 강남 일대로 이전하게 된다. 막 개발이 시작될 즈음의 강남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논현동과 삼성동에 지어진 차관 아파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앞쪽 논밭, 멀리 보이는 잠실학생체육관, 압구정 현대 아파트 근처 과수원과 밭에서 소를 몰고 있는 풍경, 강남역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던 강남역 사거리 등 개발초기 영동지구의 모습은 매우 이색적이라 기억에 오래 남았다.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은 바로 이 강 남땅의 개발이 막 시작되던 즈음의 1970년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주공갈 백용기, 허풍은 여전하구만."

"진짜야 새끼야. 나 예전의 빽용기 아니라고."

"알았어, 나중에 갈게. 지금은 강 사장님 모시고 있잖아."

"잘 생각해라. 군인하고 건달은 줄을 잘 서야 돼."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게 정리되지만, 여러 이권 다툼을 하는 인물들의 관계는 꽤 얽혀 있어 복잡하게 흘러간다. 고아로 자라 형제처럼 지내는 종대와 용기는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간신히 살아가지만, 그들이 거주하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러 온 용역건달들에 맞서다 우연히 조폭이 개입된 야당 전당대회 훼방 작전에 얽히게 된다. 세 개의 파가 연합한 건달들의 집단난투극 속에서 맞고는 못 사는 성격의 종대는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눈이 뒤집혀 그들과 같이 싸움을 시작하고, 용기는 급하게 먹은 우유에 탈이나 화장실에 갔다 그곳에서 불시에 얻어맞고는 정신을 잃는 바람에 그들을 고용한 파가 아닌 다른 파의 차에 태워지게 된다. 그리고 그 아주 사소한 우연이 그들 두 사람을 엇갈린 운명 속으로 갈라놓게 된다. 이후 종대는 조직에서 나온 길수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그의 딸 선혜와 함께 세탁소에서 살아가며 길수 몰래 조폭 생활을 하고, 용기는 명동파의중간보스가 되어 있다. 종대는 복부인 민 마담의 일을 해결해주며 돈을 빌리다 강남 개발의 이권다툼에 뛰어 들게 되고, 그 와중에 용기와 재회하게 된다. 이들 두 사람은 다른 조직에 있음에도 다시 손을 맞잡게 되고 이후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강남 개발은 조폭을 넘어 정치권이 연계되어 있던 터라 스케일이 매우 큰 이야기이다.

어떤 영화 리뷰에서는 이 작품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 한국판을 만들려는 작가의 야심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더라.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책으로 읽어봤을 때는 스케일 상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대부>가 단순히 스토리만으로 따라 잡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로 보면 될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읽을 필요가 있나 싶은 이들이라면, 캐릭터의 심리에 주목해보자.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배우들의 내면은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책에서는 종대와 용기, 두 인물의 속마음, 심리 등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어 그들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제작발표회 현장 스케치에서도 작품에 대해 직접 소개하는 감독, 배우들의 말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러니 당신이 혹시 이민호, 김래원 배우의 팬이라면, 혹은 유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책도 함께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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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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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소수의견'이 완성되고도 2년 가까이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용산참사 6주기를 맞이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도심 재개발지구의 망루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사건을 두고, 이를 은폐하려는 국가권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변호인단의 공방을 다루었던 '소수의견'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던 지라 이번 신작에선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내심 궁금했었다.

내가 맡은 학생은 5학년인 남자아이였다. 두 자릿수 곱셈. 아이 엠 어 보이. 그런 것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궁금한 거 있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면 뭐가 좋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일하러 올 수 있어서 좋지."

나는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버스만 타면 언제든지 일하러 올 수 있잖아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실제 손아람 작가 또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고, 극중 주인공 태의 역시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다닌다. 그는 자신이 입학하고 졸업한 학교, 서울대학교에 대해 당당하게 언급한다. "으스댈 뜻은 없다. 굳이 그 이름을 피하고 싶지 않을 뿐. 이 이야기의 아름다운 면과 지저분한 면을 모두 이해시키려면 반드시 그 괴물 같은 고유명사와 맞닥뜨려야만 한다." 라고. "겸허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어야 하지, 단어를 선택하며 발휘하는 게 아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주인공 태의, 그리고 그가 만난 대석 형, 미쥬, 진우, 담당 교수들과 노동자, 경찰... 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대우자동차의 부당 정리해고, 한일월드컵, 미선이 효순이 사건, 용산참사, 촛불 시위 , 한미 FTA 협상 타결,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의 시절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의 과도기이자 그들 청춘의 과도기를 겪어 나간다.

제목인 디 마이너스는 낙제인 F를 간신히 면한 학점 D-를 뜻한다. 이 작품에 실린 154편의 이야기들은 용산 참사를 비롯해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10년의 시간을 들려준다. 극중 에피소드 중에 공대학생회장 당선자인 윤구는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느라 수업에 거의 들어갈 수가 없었고, 대부분의 과목에 F를 받는다. 다른 교수들은 그의 성적을 D-로 올려주어 낙제에서 복권시킴으로써 정치적 신념을 위해 희생된 제자의 학업 혹은 젊은 날의 추억에 최소한의 존중과 경의를 표시한다. 그런데 단 한 명 재료공학부의 구민용 교수는 수업에 들어온 적도 없는 학생에게 D-를 줄 수 없다며 F를 준다. 여러 번 교수의 방에 찾아가 정중하지만 간곡하게 하소연했지만,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구민용 교수는 그래야 자신의 교수 생활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며 학생의 사정 보다 자신의 경력과 신념을 완성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한다. 결국 문제는 D-를 받느냐, F를 받느냐. 혹은 합격이냐, 낙제냐의 기로인데, 이것은 사실상 지금의 우리들이 처해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항상 그렇지 않던가, 이것을 포기해야 저것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갖느냐, 모두 잃느냐로 한번쯤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는 것을.

주인공 태의는 이야기의 시작에서 진우에게 받은 청첩장에 대해서 떠올린다. 보고 싶다. 진심으로. 꼭 와줘. 라고 손 글씨로 쓰인 그 청첩장을 현관 앞 협탁 위에 잘 보이게 두고 매일 집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그는 망설인다. 가야 할까? 갈 수 있을 까? 그러다 결혼식 날짜가 훌쩍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렇게 미루다 내심 지나가 버리기를 바랬던 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위로 삐뚤빼뚤 책들이 쌓이고, 그 책들을 묶어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더 큰 집으로 또 이사를 하며 짐이 불어나고. 그렇게 모든 삶에는 이자가 붙는다. 보잘것없는 삶에도 보잘것없는 이자가. 태의는 그렇게 진우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고, 자신의 결혼식에 진우를 초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밤 진우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태의가 진우를 만나는 것은 잃어버린 한 시절에 대한 사죄이자 죄책감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절을 잃어버리면서 어른이 되곤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타적이기는 쉬운 걸까? 가까운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쉬운 만큼.

나는 얼굴도 모르는 노동자들을 위해 싸웠고, 내 친구를 팔아먹는 배신을 저질렀다. 어쩌면 양심이란 스스로 초월적이며 초계급적인 존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고고하게 내려보며 탓하는 말들. ''를 세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면 그런 문장은 입에서 나오는 즉시 논리적 모순을 범한 것이니까. 나는 내가 저지른 짓을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논리적으로 변호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깨우쳤다.

인간은 논리적일 수 있을 때만 논리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우선 책을 읽기도 전부터 의아했던 것은 이 작품의 형식이다. 분명히 '장편소설'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뒷면에 소개된 글에는 154편의 이야기들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띠지에 적힌 작가의 말에는 '느슨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 쓰였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결코 소설이 아니다'라고 써 있다. 단편이라 하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고, 장편이라 하기에는 각 소제목의 호흡이 짧고 내용이 그저 생각의 편린이나 단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전작으로 인한 기대감이 있었기에 그냥 이야기를 읽어나갔고, 중반부쯤 이르러서야 이 책이 왜 여러 명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장편 소설이 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내가 작가와 비슷한 학번으로 대학을 다녔던 나이라 그런지 그가 그려내던 인물들의 대학시절, 청춘의 시간들이 매우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시간은 90년대 초반부터이기에 내가 겪지 못한 시대도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들이 풀어내는 에피소드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의 한 시절이므로 그리 낯설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책의 마지막에 '잃어버린 10'에 대한 연표가 정리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한번씩 되 집어 보면서 기억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일종의 순례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작가가 왜 인물들의 지난 시간에 디 마이너스라는 성적을 매겨두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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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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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처음 보고는 꽤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극작가 이브 엔슬러가 200여 명의 여성을 인터뷰해서 마든 작품으로 성폭력, 동성애, 오르가슴, 출산 등 여성이 겪는 모든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다루는 연극이다. 특히나 금기시되어왔던 여성의 성기를 소재로 삼아 공연함으로써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로 '여성의 억압된 성을 말하며 세계를 도발한 작가'로 기억되는데, 그런 그녀가 쓴 7개월간의 자궁암 투병을 토대로 한 회고록이라고 해서 이번 작품은 읽기도 전부터 기대감을 주었다.

나는 내 몸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 거기서 튕겨져 나왔고,길을 잃었다. 아기를 낳지 않았고 나무를 두려워했다. 대지가 나의 적이라고 느꼈다. 숲 속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하늘도 노을도 별도 볼 수 없는 콘크리트 도시에서 살았다. 나는 엔진의 속도로 움직였는데 그건 내 호흡보다도 빨랐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과 대지의 리듬과 동떨어져 살았다. 그렇게 이질적인 정체성을 극대화하고 검은 옷을 입고는 우쭐해 했다. 내 몸은 짐이었다. 그것은 내가 운 나쁘게도 지고 가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몸의 요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빠와의 나쁜 기억 때문에 자신의 몸에 대해 평범하게 느끼며 살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여성들에게 그들의 몸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태어난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세계 60개국 이상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잠자리에서 들볶이는 여성, 부르카를 입은 채 매질 당하는 여성, 부엌에서 산을 뒤집어쓴 여성, 죽은 줄 알고 주차장에 내팽개쳐진 여성들의 이야기들. 난민 촌의 불 타버린 건물과 마당에서 그녀들은 온몸에 생긴 칼과 담뱃불 자국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콩고에 갔고, 그곳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산산 조각 낼 만한 이야기를 듣는다. 거의 13년 동안 극심한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그곳에서 여성 수십만 명이 강간과 고문에 시달렸고, 민병대들은 마을에 들어와 학살을 일삼았다. 그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전염병을 그렇게 목격한다. 몸의 종말, 인류의 종말, 세계의 종말.

우연한 사건은 없다. 혹은 모두가 우연한 사건인지도 모른다. 내 친구 폴은 이렇게 말한다.

"마치 네가 콩고 성흔을 갖게 된 것 같아."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당연하지만, 이브, 놀랍지도 않아. 최근 수년 동안 들은 그 많은 강간 이야기라니. 그 여성들이 네 안에 들어간 거야."

어쩌면 친구 폴의 말대로 콩고와 그곳 여성들이 겪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그녀를 집어삼켜 암을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렇게 그녀의 자궁에서 커다란 암세포가 발견된다. 나는 어쩌다 암에 걸렸을까를 무의미하게 생각하며 분노하고 거부하는 그녀에게 의사가 말한다. 당신은 아주 많은 일을 해왔지만, 환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이제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우셔야 한다고. 이런 상황이 일종의 전환점이 될 거라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법을 알게 될 거라고' 말이다. 의사의 말은 그녀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이런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외면해왔던 과거와 마주서고, 이겨내서, 극복해내야 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이제는 삶을 바꿔야 해요.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 때문에 더 이상 몰아대서는 안 돼요. '이 망할 자식아', '두고 봐' 같은 반발로 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당신이 병이 든 거예요. 당신의 병이라는 게 바로 그거예요. 몸을, 신경체계를 혹사시킨 것,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항상 상상의 적을 몰아내고 항상 자신을 압박하고 몰아친 것, 압박하고 싸우고 몰아댄 것 말이에요."

그녀가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아빠의 높아지는 목소리를 들었던 이후 처음으로 그녀 몸 한 가운데에서 뭔가 긴장이 풀렸고, 진정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그녀는 7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수술과 치료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토록 부인해왔던 자신의 ''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과 세상의 몸과의 완전한 연결을 경험하게 된다.

"빼앗아 가려거든 빼앗아 가라 하자. 그 대신 우리의 고통을 힘으로, 우리의 희생을 타오르는 불로, 우리의 자기혐오를 행동으로, 우리의 자기 강박 증을 봉사로, 불로, 바람으로 바꾸자. 바람. 바람. 바람처럼 투명해지고, 바람처럼 무자비하고 위험하면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자."

워낙 세상과 투쟁하듯 살아온 그녀라 암을 치유하며 써 내려간 투병기 또한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바람처럼 무자비하고 위험하게 살아온 그녀의 인생을 지지하고, 결국 병을 이겨내 보고자 하는 용기를 보여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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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행복 플러스 - 행복 지수를 높이는 시크릿
댄 해리스 지음, 정경호 옮김 / 이지북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2004 6 7, <굿모닝 아메리카> 생방송 현장에서 댄 해리스는 불안 발작,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대타로 보조 앵커 석에 들어선 그는 뉴스를 보도하는 도중에 극심한 공포, 두려움을 느끼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는 걸 느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목소리가 쉬지 않고 투덜댔고, 결국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면서 틱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목격한 시청자는 무려 519천명이었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자신의 공황장애를 일으킨 모습이 전국적으로 방영된 뒤에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방송국에 첫 출근하던 스물여덟 살 이후로 인생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려왔던 그 동안의 시간을 말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노이로제, 그리고 약물에 의존하려는 마음과 싸워가면서도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그가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어보고자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현재의 순간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순간을 일종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살아갑니다. 다음 순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 말이지요. 그러니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야기이다. 그는 가장 긍정적이고 가장 강력한 변화는 새롭게 각성된 의식 상태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간디가 존경 받는 이유는 그 자신의 내면이 이미 평화로워진 상태에서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라는 그의 말은 극중 댄 해리스 처럼 나도 공감이 되는 대목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그는 서운하거나, 화가 나거나, 혹은 슬프거나 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실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면 삶이 아주 단순해진다고. 댄 해리스는 톨레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중생활을 영위해온 목사와 엉뚱하고 괴짜 같은 자기계발 전문가, 그리고 한 무리의 과학자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거울을 볼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곤 했던 그의 노이로제, 불안 장애에 시달리고,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했던 그는 어느 날 '명상'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다. '그래도 난 명상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다' 에서 '한 번 해볼까? 까짓 거 한 번 해보자. 밑져야 본전 아닌가'로 바뀌어 명상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두 다리를 앞으로 뻗은 자세로 맨바닥에 앉아 등을 침대에 기대고, 휴대폰의 알람을 5분 뒤로 맞춰놓고, 눈을 감는다. '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 그렇게 호흡에 집중하는 동안 어느새 5분이 지나 알람이 울린다. 그는 이 체험을 명상에 대한 생각을 상당수 바꾸게 된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가치만은 인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자꾸만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들어 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는 다음 날부터 매일 10분씩 명상 수련을 시작한다.

수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삶에 일련의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재에 보다 충실해진 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이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위층에서 곧 벌어지게 될 상황을 예상하면서 초조해하지 않았다. 호흡에 집중하는 훈련 덕분이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내 자신에게 한결 관대해진 것이 두 번째 변화였다. 실수를 하고 난 뒤에도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다시 노력해서 바로잡으면 된다는 생각에 예전처럼 나 자신을 심하게 다그치지 않게 된 것이다. 분심이 들 때마다 자책하지 않고 다시 집중하는 훈련 덕분이었다.

결국 댄 해리스는 명상의 유익함을 입증하는 과학실험 결과들을 확인하고, 대기업 회장들과 유수한 과학자들을 비롯해 명상 수련을 통해 행복을 증진시키고 있는 각계의 인사들을 인터뷰한 끝에 자신 역시 명상가의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자신의 '머릿속 목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가부터 자기계발 전문가, 신경과학계와 정신문화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이 바로 명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명상을 통해 10% 더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우리도 100%의 행복을 욕심내지 않고, 10%의 행복을 이해한다면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삶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6개월 정도 요가를 다녔었다. 체력도 많이 떨어져있었고, 바쁜 일상에 스트레스도 많아 지쳐있었던 나에게 요가 수업은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였다. 요가 수업은 항상 호흡으로 시작한다.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이었기에 아직까지도 요가 강사의 목소리, 호흡 방법, 단계 등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먼저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셔주고 편안하게 내쉬어준다. 그리고 주의를 좀더 자신 안으로 기울여준다.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자신의 의식이 바깥으로 뻗어있다면, 지금 이순간 여기있지 못하다면, 자신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하는 지금 순간으로 모든 것들이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호흡을 통해서 온전하게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요가 강사가 강조했었다. 그 호흡을 자신의 아름다운 몸과 연결하고, 함께하는 그 시간과 교감을 하고, 오로지 그 순간 여기에 있을 수 있도록.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두뇌는 잠시만 눈을 감고 있어도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가만두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수업을 따라 하면서도 자꾸만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었다. 점심때 만날 친구들과의 모임, 저녁때 해야 할 일, 내일 진행될 일정, 더 나아가 다음 주에 준비해야 할 일들까지 온갖 걱정 거리들, 혹은 설레임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머릿속을 잠식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호흡과 명상 속에서 그런 것들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그 순간 그곳에 집중할 수 있는 걸 체험했었다. 그랬기에 이 책에서 댄 해리스가 명상 수련을 통해 얻게 된 행복에 관해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다면, 댄 해리스의 솔직하고 흥미로운 여정을 따라가보자. 최소한 지금보다 10%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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