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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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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린다가 지친 표정으로 희생자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몇 시간째 그 남자에게 몰두 중이었다. 털이 수북한 배에 꽂힌 칼은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와 살인범인 여인의 모습이 새겨진 허공을 향한 무표정한 눈도.

'하지만 피가 진짜같이 보이지 않아. 또 망쳤어.'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실제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적이 있거나, 시체를 가까이서 보지 않고서는 실감나기 묘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죽음이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워낙 추리, 스릴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언젠가 법의학 관련된 책까지 읽게 되었는데, 거기서 본 실제 부검 현장, 살인사건 현장은 일반적인 범죄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었다. 단순한 상황 묘사로는 이렇게 시각으로 확인하는 끔찍 함까지는 그려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내가 마치 실제 부검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국내에선 <눈알 수집가>로 알려진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법의학자인 미하엘 초코스와 함께 합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특히나 재미있는 것은 직접 부검을 하는 이가 법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완전 생 초보라는 점이다. 죽음과 폭력장면을 묘사하는 일을 가장 어려워하는 여류 만화가가 법의학자의 지시를 전화로 듣고 실제 시체를 부검하게 된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법의학자 파울 헤르츠펠트는 여느 때처럼 부검 실에서 잔혹하게 손상된 여자 시체를 부검 중이었다. 그는 해골 부위에서 엑스레이 사진으로 작은 이물질을 발견하고 핀셋으로 꺼낸다. 금속으로 된 캡슐처럼 보이는 그것을 열자 아주 작은 쪽지 하나가 들어있었는데, 현미경을 통해 본 그것에는 몇 개의 숫자와 여섯 개의 작은 알파벳 글자였다. 그런데 그걸 보는 순간 그의 맥박이 뛰기 시작하고, 이마에 땀이 흐르며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쪽지에 쓰인 알파벳 들을 조합하면 '한나'라는 그의 열일곱 살 된 딸의 이름이 되기 때문이었다.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자 음성사서함으로 남겨진 절박한 딸의 목소리가 재생된다. 그는 이혼 후 딸을 거의 만나지 못했고, 수주일 만에 딸의 목소리를 도움을 외치는 공포 섞인 목소리였던 것이다. 절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선 안되며, 추가적인 지시 사항을 기다리라는 딸의 말에 그는 천식을 앓고 있는 딸의 상태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만화가인 린다는 자신의 전남자친구이자 스토커인 대니를 피해 헬고란트라는 섬에 도망쳐와 있는 중이다.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헬고란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피를 한 상태이고, 점점 더 나빠지는 기상은 누군가 섬에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할 수없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헬고란트라는 섬은 현재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상태인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시각각 자신의 집에서 대니의 짓이 분명한 행동들을 알아차리고, 점점 두려워한다. 욕실의 수건이 젖어 있고, 침대 위에서 그의 스킨로션 냄새가 나자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 나간다. 폭풍 속으로. 그리고 해안가에서 우연히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헤르츠펠트는 딸을 찾으려면 납치범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고, 그럴려면 해안에서 발견된 그 시체를 부검해서 단서를 발견해야만 한다. 하지만 헬고란트 섬은 현재 폭풍으로 인해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섬에서 시체를 발견한 만화가 린다는 메스라는 걸 들어본 적도 없는 일반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 해부를 감행한다. 법의학자인 미하엘 초코스와의 합작품이라 그런지 부검을 하는 장면은 매우 실감나게 잘 쓰여져 있다. 특히나 부검을 하는 인물은 난생 처음 메스를 쥐어본 여성이라, 독자 입장에서 감정 이입하기도 매우 수월하고 말이다. 어떤 사실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그런 인식에 따라 실제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니, 우리는 린다라는 여성이 부딪히게 되는 상황에 서서히 동화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더욱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말이다.

"희생자를 범인으로 만드는 전체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오."

슈빈토프스키가 설명했다.

"그것은 모든 실종자 신고접수와 함께 수색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과도한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경찰의 문제이고, 아동강간범보다 탈세범을 더 엄하게 처벌하는 사법 당국의 문제이고. 내가 소유하고 있던 불법 카지노에 대해서는 나를 독방에 처넣고 싶어 하면서, 성폭행범들에게는 그들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즉시 감옥 밖에서 노역할 기회까지 줄 것을 권고하는 심리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오. 그리고 당연히, 이른바 법치국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법의학 기관의 문제이기도 하오. 거기서 하는 일이란 게 결국에는 범인에게나 유용한 것이고, 희생자들을 두 번 벌하는 거나 다를 바 없소."

 

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심장 쫄깃해지는 긴장감과 속을 알 수 없는 동행자와 함께하는 범인 추격전은 흡사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피체크가 데뷔작인 <테라피>를 출간하고 했던 인터뷰에서 <’긴박감을 무너뜨리는 모든 것을 삭제하겠다는 생각으로 최종 수정해 원고의 3분의 1을 버리고 나니, 다음 장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원고가 잘 마무리된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그의 작품에는 군더더기가 없이, 플롯에 꼭 필요한 것들만 남아 있어 스토리 진행이 매끄럽다. 지루하거나, 늘어지거나, 불필요한 상황 묘사가 길어지거나, 중언부언 설명조의 대사가 있거나, 이런 요소들이 작품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요소인데, 피체크의 작품에선 거.. 이런 대목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한번 페이지를 잡기 시작하면 내리 끝까지 멈출 수가 없게 만든다. 여지껏 단 한번도 그의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다거나, 읽다가 앞 페이지로 돌아가 뒤적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너무도 심각하지만, 사회에 관행처럼 퍼져있는 사람들의 습관, 인식으로 인해 그저 당연하게만 알고 있는 법의 맹점을 차갑게 고발한다.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난 후 에필로그처럼 덧 붙여져 있는 몇몇 신문 기사를 보라. 일곱 살 난 딸을 무려 282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해왔던 아버지에게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네 살 난 아이를 학대한 남자는 22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지만, 변호사들이 검사와 법원을 상대로 합의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에 비해 주식 사기범에게는 5 6개월의 징역이 선고되었고, 탈세와 투자사기범에게는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 과연 법의 처벌이 그 죄의 무게에 맞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법치국가의 규정이라는 것이 범인들에게는 빠져 나갈 구멍을 이리도 쉽게 만들어주면서, 정작 희생자를 위한 처우는 개선되지 못하고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것 같은 고통을 주는지 말이다. 이 작품에선 피체크 특유의 독보적인 반전이나 복잡한 플롯도 없고,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너무 빨리 들어나 버려 살짝 김이 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주제의식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거운 주제를 인물을 통해 설교하는 식으로 늘어놓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묘한 여운으로 남게 만드는 그 능력 때문이다. 그것이 여전히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 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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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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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굳이 나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 이유가 뭡니까?"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진심을 얘기했다. 당신이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고 있기, 또는 살았기 때문이라고. 어떤 시제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 같은, 아슬아슬한 인생, 역사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을 택한 인생.

그러자 그의 입에서 나를 경악케 만든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피식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개떡 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

<한때 알고 지냈던 삐딱한 깡패 작가, 쫓기는 게릴라 전사, 책임감 있는 정치인, 잡지의 <연예란>에 애정 생활 관련 기사가 실리는 유명인>, 도무지 일관성 있게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이 상반된 이미지들은 하나의 인물이다. 바로 우크라이나 출신의 깡패로 출발해 소비에트 언더그라운드의 아이돌, 맨해튼의 거지, 억만장자의 집사를 거쳐 파리의 인기 작가로, 발칸 반도를 헤매던 사병으로, 그리고 이제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혼란기에 청년 무법자들의 당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늙은 보스로 변신해있는 러시아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이다. 저자는 실존 인물인 리모노프의 삶을 추적해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문학적 다큐멘터리>, <기록 문학> 등으로 일컬어지는 카레르 특유의 서술 방식으로 쓰여져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작가 자신의 인생과 리모노프의 삶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인 카레르가 리모노프의 삶을 글로 쓰려고 하는 과정과 이유, 그리고 실제 그의 삶이 같이 보여지는 소설인 셈이다. 워낙 실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탓에 러시아 현대사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라면 여러 번 길을 잃고 갈팡질팡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읽는 다른 책들에 비해 그렇게 많이 두껍다고 볼 수 없는 분량이었는데도, 읽는데 한참 걸렸으니 말이다. 1989년 이후 소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점에서는 아주 큰 도움이 될만한 소설이긴 하지만, 이렇게 드라마틱한 인물의 삶을 끝까지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의 인내 또한 필요하다.

오만함도 잠시, 방 한가운데서, 관심의 한가운데서, 모든 것의 한가운데서, 이놈은 어딜 가나 한가운데지, 바로 루돌프 누레예프를 발견하자 에두아르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참 운도 없지. 무표정하고 거무스름하고 잔인한, <>라는 존재만으로도 곧 이 고상하게 문명화된 인간들의 무미건조함이 까발려지겠구나, 하며 몽골의 정복자를 자처하는 순간, 살토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궁벽한 두메산골 바시키르, 그 질척질척한 오지에서 태어나 이토록 높이까지 올라온 상태, 사람의 탈을 쓴 야만의 유혹으로 광채를 발하는 악마 같은 누레예프와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정치 관련 뉴스에서 아직도 심심치 않게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작가이자 정치인의 삶이란,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너무도 많은 일들이 파도처럼 벌어지는 인생이었다. 인생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할 때 천천히 낮은 곳을 달리다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클라이막스에 정점을 찍는 것이 보통 일 텐데, 어쩐지 리모노프에겐 계속 극과 극을 달리는, 그러니까 시동을 걸 필요도 없이 높은 곳을 내리 달리는 롤러코스터 같다고나 할까.

줄리언 반스는 프랑스 작가의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리모노프의 행동과 신념은 1898년 이후 소련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혼란, 분노, 절망, ‘거친 서구식 자본주의, 올리가르히들의 경제 침탈, 보통 사람의 바닥난 저축, 매일매일 이어오던 일상의 상실 같은 것들….” 누군가의 인생이 한 시대를 보여준다면, 그렇다면 그의 삶은 충분히 소설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카레르가 리모노프의 삶을 소설로 쓴 이유가 "그의 파란만장하고 위험천만한 인생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소련 해체 후 혼란에 휩싸인 러시아를 통과해가는 영웅의 목소리를 읽어야 할 것이다. 역사 속으로 온 몸을 던져, 자신의 전 생애를 거는 인물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거기다 읽는 이들을 분노에 휩싸이게 만드는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하다가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안쓰럽게 보이기도 하고, 이처럼 극과 극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인물은 단연코 리모노프 외에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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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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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그 실수 때문에,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이 발목을 잡아, 스스로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런 비밀을 남보다 잘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니까. 이 작품은 모르고 살았다면 좋았을,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면서 일어나는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렇지만 당사자가 나는 아니었으면 싶은 그런 일들 말이다.

세 명의 딸을 둔 세실리아는 오늘도 정신 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친구와 함께 주웠던 베를린 장벽 조각을 찾으러 다락방에 올라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낡은 편지 봉투를 발견한다. 편지 봉투에는 남편 존 폴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

그녀는 생각도 하기 전에 그 자리에서 편지를 뜯어보려고 하지만,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그렇게 다락방에서 내려오자마자 정신 없이 흘러가는 일상생활에 뛰어들게 되어 남편의 이상한 편지는 냉장고 위에 올려놓고 우선 일들을 처리한다. 중요한 주문을 처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저녁에 먹을 생선을 사오고... 가정 주부들의 일상이란 뻔하지만, 그렇게 뻔해서 오히려 빈틈없이 꽉 찬 일상에 틈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나서야 그녀는 그 이상한 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남편은 그렇게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편지는 아주 오래전에 쓴 게 분명했는데, 왜 그는 죽음을 생각했던 걸까? 그러다 그녀는 그저 웃음을 터뜨린다. 그저 몇 년 전에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이 된 존 폴이 이런 편지를 썼던 거라고. 그러니까 신경 쓸 일은 절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남편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녀는 발견한 편지에 대해 이야길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남편은 예정보다 3일이나 먼저 집에 도착한다. 거기다 폐소 공포증 때문에 다락방에 올라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그가 자신이 잠든 사이에 편지를 찾으러 다락방에 올라갔던 걸 알게 되자 그녀는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 편지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고 결국 뜯어서 읽어보고 만다.

이런 세상에, 존 폴. 대체 이 편지가 뭐기에 그런 거야?

,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때론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게 더 나은 일도 세상엔 많다. 편지에는 남편이 저질렀던 끔찍한 일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그것이 만약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녀의 가정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일 앞에서 그녀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옳은 일을 하고 싶지만, 밝히자니 가족들이 다칠 것이고, 그저 침묵하기엔 진실의 무게가 너무 크기만 하고 말이다. 이럴 때는 독자인 나도 세실리아가 되어 함께 고민에 빠져들고 만다. 정의를 위할 것인지, 내 가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그 어떤 것을 선택해도 행복할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예전에 티비에서 인생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두 가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진 주인공이 '그래, 결심했어'라며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그에 따라 그 후 벌어질 인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마도 그 프로그램이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재미로 웃음을 주기 위해 만드는 상황이 우리네 인생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내가 결코 알지 못하고 지나가버리는 수많은 사실과 그날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 꽤 많은 일들을 영원히 알지 못하는 채로 살아간다. 어쩌면 사소한 나의 선택 하나로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지금 나의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한 번에 단 한가지의 선택 밖에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세실리아, 테스, 레이첼 모두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고민하고 분노하고 고통 받으며 살아가지만, 이들이 어느 순간 마치 퍼즐처럼 연결되는 것처럼 실제 우리네 인생도 사실 우리가 모드는 큰 그림 속에는 하나의 퍼즐 조각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니 말이다.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엄청난 충격과 파국의 스토리가 마무리되고 나서, 덧붙여진 에필로그는 이 긴 이야기보다 더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아주 많다는 걸 이제 나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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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나라
김나영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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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이 작품은 소재 뿐 아니라 캐릭터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영화 <타짜>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 고니는 이 작품에선 천재 도박사 재휘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도박판에 뛰어든 선영으로, 고니의 스승 평경장은 이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용팔, 정사정 없는 전설의 고수 아귀는 잔인 무도한 강사장, 그리고 영화 속 화투 판의 설계자인 정마담은 극중 추마담 정도로 대입하면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스승인 평경장에서 사사 받은 기술을 통해 도박판에서 홀라당 까먹은 누나의 이혼 위자료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어그러뜨린 박무석 일당에게 복수하는 데도 성공한 고니가 더 이상 노름에 손대지 말라는 스승의 경고를 뒤로 하고 정마담과 목숨까지 내걸고 화투를 하는 것처럼, 극중 선영도 재휘에게 배운 기술을 연마해 아버지를 죽게 만든 강사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목숨 걸고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엄청난 판에 뛰어든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복수와 욕망, 그리고 분노라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파국을 향해 달리는 이 스토리들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비극에 관심이 많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평범한 샐러리맨, 조신한 현모양처가 가벼운오락을 즐기다가 인생을 송두리째 차압 당하는 건 우리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한 끗 차이로 천국과 지옥을 맛볼 수 있는데, 왜 안 그러겠는가.

이 작품은 인터파크가 주최했던 K-오서어워즈 5차 최종후보작이라고 한다.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얻은 데다, 작가가 기존에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기 때문에 스토리를 어느 정도 맛깔나게 그려내는지는 검증된 바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지루할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인물들의 복수극과 로맨스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플롯이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어 페이지가 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각각 인물들의 매력을 잘 그려내고 있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전개로 흠잡을 데 없는 재미를 준다

-카드 게임에서 이기려면 도박의 신한테 잘 보여야 해.

-도박의 신요? 그런 신도 있어요?

...............

-도박의 신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돼. 더 많이 갖겠다는 것도, 잃은 것을 찾겠다는 것도 모두 욕심이야. 때때로 신은 우리 마음을 시험하기도 하지만 그걸 이겨낸 사람에게는 반드시 값진 선물을 주고 떠난단다.

걸어 다니는 컴퓨터라고 불리던 천재 도박사 정연과 용팔은 도박판에서 만나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정연은 부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강 회장의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백억 대 포커 판에 참가했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용팔은 간신히 수술비를 마련했으나 결국 부인까지 남편의 뒤를 따라가고 어린 재휘를 데리고 전재산인 천만 원으로 어떻게든 먹고 살길을 찾으려고 한다. 사람들과 도박을 하던 중 위기의 순간에 열살 짜리 재휘의 충고로 돈을 걸고는 게임에 승리하고, 그는 재휘가 아버지인 정연처럼 확률을 셈하는 게 아니라 카드 카운팅을 판만 보고도 알아차리는 천재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재휘는 양아버지인 용팔을 따라 도박판을 전전하면서 살게 된다. 하지만 재휘는 복수심에 눈 멀어 무모하게 달려들지도 않고, 지나친 승부욕으로 위기를 자처하지도 않는, 자기자신에 대한 통제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 정연, 그녀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게 된 엄마의 빈소에서 포커 판에서 전 재산을 말아먹고 이혼당한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다. 막 수능이 끝나고 곧 명문대에 입학이 예정되어 있던 그녀는 지낼 곳이 없으면 같이 살자고 아버지를 용서하지만, 결국 보험금 1억이 든 통장을 들고 다시 도박 길에 나서고 만다. 강회장의 하우스에서 1억을 홀랑 탕진하고 강회장에게 애원하는 데, 아버지를 쫓아온 선영이 벌컥 하우스에 들어온다. 강회장은 10억을 걸고 단 한번의 승부를 제안하고, 어떻게든 다시 돈을 찾아오겠다는 집념이 그에게 딸을 걸고 도박을 하게 만든다. 결국 그 게임에서도 지고 나자 딸을 볼 면목이 없어진 그는 가지고 있던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고, 선영은 그렇게 강회장에게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탈출을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재휘와 용팔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베네치안 카지노는 마카오의 하늘 꼭대기에 날개를 펼친 것처럼 크고 화려했다. 선영은 카지노 건물을 노려보며 어금니를 물었다. 온통 황금색으로 칠한 홀은 진귀한 그림과 장식으로 꾸며져 마치 천상의 세계처럼 보였지만 그녀에게는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딜러가 카드를 돌리면 자기 패를 먼저 보지 말고, 상대의 얼굴을 봐야 한다. 카드를 확인하는 상대의 미묘한 표정을 보고, 그 찰나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맹수가 먹잇 감을 사냥할 때 동공이 커지는 것처럼 사람도 목표를 발견하면 자신도 모르게 눈에 드러난다고 한다. 동공의 크기는 의지로 쉽게 조절되는 게 아니므로, 그때 눈을 보면 진카인지 뻥카인지 알 수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도박은 치밀한 확률 계산과 고도의 심리전이 필요한 게임이다. 속고 속이는 정신 없는 무대에서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낙오되고 마는 것이다. 강원도 카지노의 절대 강자 강회장을 상대로 천재 도박꾼 재휘와 그저 복수심에 불타는 여고생 정연이 어떻게 접근하고 대결을 펼칠 지가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천재적인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도박꾼인 재휘는 복수심 같은 감정을 초월할 만큼 자기 컨트롤이 뛰어난 인물이고, 무모하게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부모의 복수를 하려는 정연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 캐릭터라는 점이다. 기존 복수극의 캐릭터와 조금 차이가 있는 이런 부분은 극중 스토리 라인에 확실한 힘을 실어준다. 물론 이들의 로맨스는 심금을 울린다기 보다는 상투적으로 보여 다소 아쉽긴 했다.

도박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도박을 하게 됐으며, 도박을 하다 누굴 만났으며, 누굴 만나서 어떻게 됐을까.에 이르는 이야기는 평범한 일반인들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세계이다. 사기나 도박 같은 종류는 일종의 반사회적인 인물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영화나 소설의 주요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걸테고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왜 자기 죽을 곳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 가는 건지, 왜 욕심을 버리지 못해 미련하게 다 잃어버리는지 싶지만, 사실 그들 각각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이혼한 아내의 보험금으로 생애 마지막 판을 벌이려는 매정한 아버지에게도, 카지노 계의 거물이지만 자신은 직접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강회장에게도, 다 제 각각의 사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도박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결국 끝까지 가서 지옥을 맛보게 된다고 한다. 죽거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는, 도박이 바로 희망을 담보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한 판만 이기게 되면, 한 패만 나에게 들어오면, 그럼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누구도 쉽게 그것을 그만두지 못한다. 희망이라는 이름이 숨기고 있는 가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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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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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흑인 게토에 자리잡은 공동주택 건물의 방 안. 몸집이 커다란 흑인과, 조깅 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중년 백인 남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흑인은 전과가 있는 목사이고, 백인은 대학 교수이다. 흑과 백이라는 선명한 차이처럼, 뼛속까지 완전히 다른 생각과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왜 함께 있는 걸까. 이들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면 그날 아침 지하철 역에서 자살을 하려고 하던 백을 구해준 이가 흑이다. 플랫폼에 서 있던 흑은 급행 열차 선셋 리미티드에 뛰어드는 걸 우연히 보게 되고 막았던 것이다. 예수의 말을 듣는다며 예수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는 흑과 과거에 믿던 많은 것들을 지금은 믿지 않는다는 백의 대화만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러니까 죽으려는 교수와 살리려는 목사의 사소해 보이는 논쟁이 이 소설의 전부라는 말이다.

: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아주 약했어요. 아주 부서지기 쉬웠지요. 나는 그걸 몰랐습니다. 절대 파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한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일주일에 두 권쯤, 일 년에 백 권, 그렇게 한 사십 년 가까이 책을 읽어온 백인 교수는 무신론자이다.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가 믿었던 것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존재한다고 믿는 척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며. 사실상 친구도 하나 없는 그는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 가는 길에 자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집으로 보내준다고 할 정도로. 그러나 신을 믿는 흑인 목사는 그런 그에게 자꾸만 말을 건넨다. 그가 집을 나서려 하면 같이 가야겠다며 외투를 꺼내 들고, 그의 가족은 어떠했는지, 친구에게 오늘의 결심을 이야길 했는지 주절주절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그러니까, 목사는 다시 살아보고 싶게끔 삶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정작 교수는 그걸 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혹시 선생이, 그러니까, 긴 가뭄 같은 기간을 보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다 보니 결국 세상이 원래 그런 거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지...어쨌거나 내 말은 말이오. 설사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해도, 그래도 해가 매일 똑같은 개의 궁둥짝을 비추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요.

흑인 목사는 교도소에서 배식 담당에게 시비를 거는 이에게 한마디 하다 칼을 맞고, 그와 다투다 이백팔십 바늘을 꿰매야 하는 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그 의무실 침대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날 이후 하느님의 은혜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백인 교수는 세상에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흑인 목사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하느님이 그냥 내버려두지 말라고 했다고 대답한다. 이렇듯 이들의 대화는 평행선이다.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간극, 아무리 사이를 좁히려고 해도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두 개의 선.

좀처럼 자신을 설득하려는 목사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자, 교수는 돈을 좀 드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댁한테 큰 신세를 졌으니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거다. 목사는 댁이 청산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믿는 거하고 믿지 않는 건 완전히 다르다"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 댁은 모든 걸 흑과 백으로 보는군요.

: 실제로 흑과 백이지.

재미있는 건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 침대에 묶여 고통에 울고 있을 때 신이 자신을 구원해주었다는 흑의 주장보다, 세상에 희망은 없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거라는 백의 주장이 어쩐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는 것.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며 성격을 내미는 흑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백은 그런 그에게 삶이 죽음보다 더한 악몽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패배를 인정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의 구원을 희망으로 그리겠지만, 매카시가 보는 세상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세상에 희망 따위란 없으며, 당신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이 치열한 공방전의 결말은 이제 '되돌아가는 것도, 바로잡는 것도 불가능'한 무의 희망밖에 없다는 걸로 끝난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절대 믿지 않는 흑이 아니라 꿈이나 환상 없이 가능한 빨리 죽고 싶다는 염세적 세계관을 가진 백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작품은 출간 이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랐고, 2011년에는 매카시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는 토미 리 존스의 연출로 미국 HBO 채널에서 드라마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토미 리 존스가 백인 역을 겸했고 새뮤얼 잭슨이 흑인역을 맡았다고 하는데, 어쩐지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가 보이는 것 같다. 매카시는 이번 작품에서 <로드>의 형식과 주제를 보다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하는데, 최소한의 등장 인물과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 희망이 없는 세계에 묵묵히 맞서는 인물들은 과연 매카시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끔 너무도 끔찍한 일을 당한 이들을 볼 때, 신이란 존재가 정말 있기나 한 걸까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학대 당하는 어린이들, 누군가를 이유없이 살인하는 사람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수백 명의 목숨을 내팽개치는 몰지각한 사람들.. 이런 사건 사고 속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런데 대체 왜 하느님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거냐는 말이다. 신은 대체 왜 이런 인간들의 비극을 지켜보고만 있느냐. 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들 때면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세상에 희망이란 있는가. 글쎄 희망이 어떻게 생겨먹었더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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