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컬러링북 아름다운 고전 컬러링북 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이수희 그림, 최연순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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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는 나만의 베이커리를 테마로 한 컬러링북을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특별하다. 바로 고전 명작에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더한 컬러링북이다. 아름다운 고전 컬러링북 시리즈는 첫 번째로  '어린 왕자'에 이어 두 번째 '눈의 여왕'이 나왔고, 이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나올 예정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 고전들은 아이들만 읽는 것이 아니라 어른 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해서, 그저 글을 읽는 것보다 몇 배의 즐거움을 안겨 준다. 특히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는 색다른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그 동화책에 직접 채색을 하면서 일러스트를 완성시키는 즐거움은 그 어떤 컬러링 북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경험이 되어 준다.

 

컬러링 북이 초기에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에는 굉장히 복잡한 도안들로 유명해졌는데, 갈수록 심플해지더니, 이제는 이렇게 일부는 색감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나오기도 한다. 일부 색감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채색을 하다 보니, 내가 꼭 동화책을 완성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것도 있더라.

 

특히나 아이가 있다면 동화를 읽어주고 함께 채색까지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경험이 될 것 같다. 힐링이라는 테마로 무수히 쏟아지는 수많은 컬러링북 중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는 이 책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나 단순한 이미지로도 동화의 내용을 한 컷에 담아내고, 그 분위기를 느껴질 수 있게 한다는 건 참 대단한 것 같다. 그림이 줄 수 있는 힘을 컬러링 북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곤 하는 것 같다.

 

 

, 우선 그림을 하나 골라 채색 준비에 들어갔다. 이상한 건 색연필이 그래도 36가지 색상이나 되는데, 항상 채색을 하다 보면 색이 부족한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색감을 감각적으로 배치를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한 가지, 두 가지 색칠을 할수록 더 많인 색깔에 욕심이 생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채색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게 되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컬러링북에서 다들 '힐링'을 찾겠다고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고전을 읽는 가장 감각적인 방법이 바로 이 컬러링 북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잊고 사는 동심과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고, 독창적인 일러스트를 채색하면서 상상력도 키워가고 말이다. 컬러링 북은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일종의 '명상' 효과도 주는 것 같다. 괜히 '컬러링 테라피'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피곤하고, 지치고, 짜증나는 일들이 가득 쌓였을 때는 컬러링 북으로 현실을 잠깐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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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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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리에겐 그런 애정과 온기가 필요하다. 표백제와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집이 아니라. 그러게 진의 시체를 일주일 동안이나 집 안에 방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늦게나마 나 자신을 단단히 나무랐다. '시체는 바로 바로 묻자.'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자신의 생일에 부모님을 뒤뜰에 묻어야 했던 열다섯 살의 소녀를 떠올려본다. 다섯 살 때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주었고, 여섯 살 때부터 동생을 유모차에 끌고 다녔으며, 일곱 살 때는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시작했던 지나치게 조숙한 소녀. 동네 사람들에게 어린 엄마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실제 소녀의 부모였던 진과 이지는 전혀 부모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집에 무슨 일이 있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 덕분에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든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두 자매는 그러던 어느 날, 쓸모 없긴 했지만 그래도 부모였던 진과 이지 마저 영영 잃어버린다. 아빠인 진이 죽고, 다음 날 엄마인 넬리가 헛간에서 목을 매달아 죽은 것이다. 재미있는 건 언니인 마니는 동생인 넬리가 약에 취한 아빠를 베개로 눌러 죽였다고 알고 있고, 동생인 넬리는 반대로 언니가 그랬다고 믿고 있는 것.

어쨌거나 마니는 아동복지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 자매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다시 위탁 가정 양육 프로그램에 끌려가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었기에, 부모의 시체들을 뒤뜰에 파묻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체를 방에 있는 침대 위에서 뒤뜰까지 끌어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부패가 시작된 시체에선 액체가 새어 나왔고, 살점이 떨어져 나오고, 고약한 냄새에다 체액이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온 집안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시체들 위에 표백제를 뿌리고, 아빠는 땅에 묻고, 엄마는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아 헛간 밑에다 쑤셔 박는다. 그리고 엄마가 묻힌 땅에 라벤더를 심는다. 무슨 감상적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아래 묻힌 시체를 최대한 감추려고 말이다.

이 무슨 섬뜩하고 기괴한 이야기란 말인가. 열다섯, 열둘의 두 소녀가 아무리 애정이 없기로서니 그래도 부모인데, 부모의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는 광경이라니. 설정만 보자면 무슨 공포물의 서두 같기도 하고, 엽기 잔혹 동화의 시작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책의 시작 부분에 이런 경고 문구라도 하나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경고. 이 작품은 당신의 정신건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설정만 보자면 이 작품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나 이언 매큐언의 <시멘트 가든>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다소 어두운 두 작품에 비해 이 작품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처럼 이상하게도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를 전혀 자아내지 않는다.

마니는 부모가 죽고, 시체를 묻고 나서의 상황을 이렇게 간단히 정리한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그들 곁에 있어주지 않았고, 필요할 때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그 둘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다.>라고.

넬리에게 마니가, 마니에게 넬리가 있으니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외로운 여정이 되었을 테니. 그래서 나는 자매끼리 비밀을 나누고 간직하도록, 비밀을 통해 둘의 유대가 강해지도록 놔두고 있어. 유대감은 중요한 거야. 그게 있어야 삶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어떻게든 계속 걸어나갈 수 있으니까. 비록 개 한 마리와의 유대감일지라도 말이야.

잉글랜드 여왕처럼 고색창연한 말투. 뛰어난 바이올린 실력. 해리 포터에 푹 빠져 해리 포터가 쓴 거랑 똑같은 동그란 안경까지 쓰고 다니는 약간 괴짜. 친구도 별로 없고, 잘 웃지도 않고. 하지만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저 남들이랑 조금 다른 열두 살의 넬리. 이따금 엑스터시도 하고 마약을 하지만 즐기지는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스크림 노점 차량의 주인 아저씨와 섹스를 하고, 세상만사 다 초월한 것 같은, 유년 시절을 잃어버린 아이 같은 애 어른 열 다섯살 마니.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변태라고 부르는 옆집에 사는 동성애자 할아버지 레니. 이야기는 이렇게 세 인물의 관점에서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두 자매에게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레니는 두 아이를 도와주려고 집으로 불러 음식도 해주고, 보살펴준다. 이제 자매는 레니의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웃들의 눈에 띄지 않게끔 뒷문으로 몰래 드나드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 하나같이 눈 뜬 장님들이라 부부가 사라진 것도, 그래서 두 아이가 고아가 되었다는 것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과 비스 무리한 관계를 맺어가고, 시간이 지날 수록 두 자매의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정부의 관계자들도 그들에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들을 속이기 위해 세 사람은 점점 더 거짓말을 거듭하게 되고, 그렇게 증폭되는 이야기는 복잡해지는 상황만큼이나 다채롭게 흘러간다. 우리는 마니가 되었다가, 넬리도 되었다가, 다시 레니가 되어 가면서 그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점점 미스터리의 한 가운데로 빠져 든다. 왜냐하면 1인칭 서술자인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독자인 우리가 그저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속이거나, 오해하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 작품이 팩트로만 볼 때는 어둡고 끔직하고 우울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스토리가 마냥 그렇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엄청난 불행과 비극 속에 있지만, 실제 어린 두 자매가 느끼는 것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넘어서는 거라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가의 글 솜씨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어린 두 소녀의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체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거칠지만 순수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당차고, 어둡지만 밝기도 한, 이 매력적인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란다. 세상에나.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작품을 만났다가는 시작부터 당황스런 전개에 정신건강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게 된다면 분명 당신은 이 작품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달라질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고, 재기발랄하고, 충격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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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롬 E 샤르코 & 엔벨 시리즈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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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 소장품, 필름 판매 광고를 보고 영화 필름들을 구해온 한 남자가, 자신의 개인 영사실에서 정체불명의 단편 영화를 보다가 눈이 멀어 버린다. 단순히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실명을 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공포에 사로잡힌 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은 바로 그의 전 여자 친구였던 뤼시 엔벨 형사이다. 그들은 온라인 상으로 만나 7개월 간의 짧은 연애를 했던 상대이다. 휴가 중이던 뤼시는 여덟 살 난 딸 쥘리에트가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 입원 중이라 병원에서 간호 중이었다. 같은 시간, 머리가 잘려 나간 시체 다섯 구가 센 강가에서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된다. 강력 범죄의 미제 사건을 다루는 행동분석가로 일하는 프랑크 샤르코 역시 휴가 중이지만, 르클레르 청장은 그에게 사건을 맡긴다.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로 휴가 중이지만, 그들은 아내와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샤르코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항상 그의 곁에 나타나는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실명을 하게 만든 영화 필름 사건과 다섯 구의 시신 사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샤르코와 뤼시는 공조 수사를 펼치게 된다.

"경정님을 측은히 여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겠어요.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는 습관이 제게는 없거든요."

"당신 다소 직설적인 투로 말하고 있군요. 앞에 있는 사람이 당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까, 경위?"

샤르코와 뤼시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윗사람에게 알리지도 않고 단독 행동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그녀를 보며 샤르코는 직감한다. 그와 그녀는 같은 부류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머릿속에 당신 아이들의 사진 대신 시체 사진이 들어차 있지 않느냐고, 그러다간 당신도 결국 나처럼 된다고. 뤼시는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인상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낀다. 대체 어떤 비극이 그를 집어삼켰기에 저토록 음울하게 침잠하게 된 것일까 생각하지만, 말과 행동은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 내뱉고 만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매끈한 스릴러 영화에서처럼 이들 두 캐릭터의 상반된 매력은 이야기 진행을 더욱 맛깔 나게 만들어준다. 나는 소설의 진짜 힘은 캐릭터에 있다고 믿는데, 특히나 이들 두 캐릭터는 전혀 다른 작품에서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가 한 시리즈에서 만난 거라 더욱 흥미롭다. 이들 캐릭터의 탄생이 재미있는데, 프랑크 틸리에의 첫번째 소설 <핏빛 천사를 위한 지옥행 열차>의 주인공 프랑크 샤르코 형사와 두번째 소설<죽은 자들의 방>의 주인공 뤼시 엔벨이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샤르코&엔벨 3부작이 되겠다.

"악착스럽군. 꽤 오래 전에 죽은 기구한 이집트 여인들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이오?"

"경찰이기 때문이죠. 흐르는 시간이 범죄에 대한 분노를 퇴색시키지는 않기 때문이고요."

"정의의 수호자의 그럴싸한 말이군....."

"그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일 뿐입니다.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끝장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요."

스스로 '경찰이 견딜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을 겪어온 걸어 다니는 캐리커처'라고 말하는 샤르코. 환영에 시달리는 것 때문에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약 기운으로 몸이 부푼, 홀로 늙어가고 있는 그는 산산조각 난 삶의 낙인이 찍힌 남자로 권투 선수의 주먹처럼 직설적인 남자이다.  윗사람들에게 치열하고 철두철미한 여성으로 통했던 뤼시. 그녀는 말단 서기 업무나 담당하다가 '죽은 자들의 방'과 관련된 사건 이후로 사법경찰국의 경위에 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백과사전처럼 박식하고 실전에 강하고 명민하지만 간혹 통제 불능의 경향을 보이는 그녀이다. 이렇게 그들은 완전히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면을 갖고 있는 묘하게 어울리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신경과학, 정신의학, 인간의 기억, 감각기관인 눈이 볼 수 있는 사실, 인간의 폭력성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심오한 고찰까지. 이 작품은 프랑크 틸리에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집필 전 자료 조사를 했는데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과학적인 진실이 꽤 많이 들려지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으며, 영화라는 평범하고 친근한 매체가 인간의 의도에 의해 얼마나 무섭게 돌변할 수 있는지 오싹할 정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요 며칠간 웃음을 잃어가던 카슈마레크가 뤼시에게 간만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지. 아이들은 말이야,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던 게 항상 가장 우선시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간혹 힘겹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 존재를 정돈해주거든."

샤르코&엔벨 3부작 그 첫번째인 <신드롬 E> 은 이후 시리즈는 <가타카>, <아톰카>로 이어진다. <신드롬 E> 는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어 시나리오 각색 중이라고 하는데, 그럴만한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플롯과 매력 넘치는 캐릭터,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 신경과학과 스릴러의 만남이 가져오는 시너지까지 영상으로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작품이다. 특히나 샤르코와 엔벨은 직접 영상으로 본 것처럼 살아있는 캐릭터라서 다음 시리즈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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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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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장편소설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처음으로 논픽션적인 고백을 담은 작품으로 내 인생의 소설 쓰기는 끝났다앞으로 평화와 일본인의 생활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원고나 에세이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데에도 무게가 실리지만, '익사'라는 제목에서 오는 강렬함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주인공 조코 코키토는 오에의 소설에서 여러 차례 그의 분신으로 등장했던 소설가이다. 그는 때가 오면 '익사 소설'을 쓸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익사 소설'이 뭘까.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로써 쓰기 시작해 강 아래 물살에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다가 드디어 이야기를 끝낸 소설가가 단번에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그런 소설"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꾸었던 꿈이기도 하고, 스무 살에 엘리엇의 '황무지 '에서 익사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부터라고.

마지막까지 소설에서는 그 어떤 시도도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지요.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는지조차 보여주지 않습니다. 작은 삽화가 여러 익사체의 목소리를 빌려 전개되지만, 말할 수 있는 익사체는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가버렸고.......그걸로 끝나잖아요?

조코가 소설가가 된 것은 무심코 던진 '농담'에 의해서이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해 아버지의 기일 날 친척 중 한 명이 그의 전공이 문학부라고 했더니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건 어렵겠다며 실망한 기색을 드러낸다. 그러자 평소에 늘 조용했던 어머니가 반박에 나서며 "취직이 안 되면 저 아이는 소설가가 될걸요!"라고 말한 것이다. 어머니의 말은 그의 가슴에 깊숙이 자리잡아 결국 그를 소설가의 길로 이끌게 된다. 이 작품에는 '농담'이라는 단어가 한번 더 등장하는데, 두 번째 등장할 때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 누군가의 농담을 농담으로 치부하지 않고 관철한 행동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으로. 그렇게 이 작품은 두 개의 농담을 둘러싸고 아버지와 아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익사 소설'을 쓰기로 한 것은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는데, 어린 시절 홍수로 갑자기 불어난 강에서 익사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이다. 그날 아버지는 그에게 따라 나와 노를 저으라고 했는데 그가 멈칫거렸고, 성질 급한 아버지가 혼자 노를 저어 가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일을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었고, 어쩌면 '익사 소설'을 쓰는 것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그리고 아버지의 명예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실제로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떻게든 그 위기를 버티려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여전히 이런 글 조각 하나가 의지가 되고 있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후카세 번역과 엘리엇의 원시가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아떨어지더군...

여기서 내가 납득한 사실이 있네. 그건, 이제 내가 노인이 되어 매일 매일 붕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구절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일세.

어느 날 여동생인 아사가 어머니의 유언으로 붉은 가죽 트렁크를 전해주겠다는 연락이 온다. 어머니는 자신의 사후 십 년이 지난 뒤에 아들이 붉은 가죽 트렁크를 자료로 삼아 익사 소설을 쓸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일본의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커다랗게 확장된다. 조코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조코와 그의 아들, 이렇게 두 부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을 완성시키려는 협력자로 등장하는 우나이코라는 여성의 삶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익사'처럼 읽는 이를 소용돌이처럼 빠져들게 만든다.

누군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아마도 그건 아주 커다란 농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에 바라본 아버지의 등은 한없이 넓고 커다랗게만 보였는데, 어른이 된 어느 날 무심코 바라본 그 모습은 작고 왜소하게만 느껴졌다. 아버지가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서 살아오셨는지, 자식인 내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다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나쳐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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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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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마법사로 불리는 온다 리쿠는 그녀의 작품 성향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언제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작가이다. 매력적인 작가를 처음 만나면 늘 그렇듯이 온다리쿠의 작품들을 죄다 찾아서 섭렵하던 때가 있었다. 8년 전, 내가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이 <유지니아>였는데 무더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해 여름은 회사 이직을 하기 위해 짧게 휴식을 가졌던 시기라 여유로웠지만 날씨 때문에 나른하고, 무더웠지만 에어컨을 끼고 살았기에 청량했고,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책을 미친 듯이 읽었던, 나에게는 평생 단 한 번뿐인 계절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느긋하게 여름을 보내거나, 넘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시간을 쪼개어 가며 너무 바쁘게만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루스해지니 나는 기존과는 좀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온다 리쿠였다. 특히나 <유지니아>는 아직도 여름만 되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색감을 가진 독특한 작품이었는데, 그렇게 2007, 2008년이 아마 그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기였지 싶다. 이후 <호텔정원에서 생긴 일>, <초콜릿 코스모스> 등의 작품은 지금도 장면 장면이 다 기억날 정도로 이상하게 그 시절에 읽었던 작품들은 나에게 묘한 노스탤지어를 준다. 이번 신작을 읽으면서 또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변명'이라는 단편이 <호텔정원에서 생긴 일>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숨은 뒷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시는지? 주사위의 윗면에 나온 눈과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밑면의 눈을 합치면 7이 된답니다."

젊은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주사위 눈은 1부터 6까지만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주사위엔 늘 보이지 않는 7의 그림자가 들러붙어 있어요."

여자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흘깃 보았다.

                                                                                  -'주사위 7의 눈' 중에서


너무도 반가웠던 '변명' 외에도 이 작품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19편 수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차례에 실린 제목은 18편이라는 거. 그럼 나머지 1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정답은 에피소드들을 다 읽고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가야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온다 리쿠만의 수수께끼 같은 설정이다.


갑작스레 사라진 회사 동료가 남긴 암호 같은 단서들(변명), 보이지 않는 7의 나라에서 온 여자(주시위 7의 눈), 애완동물과 사람의 기묘한 살인 공작(협력), 그리고 마치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 넘치는 한편의 소동극(오해),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진짜 사연(이유), 죽은 자에게 어울리는 잔인한 4(죽은 자의 계절), 무대 공포증이 있는 피아니스트가 엄청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스토리(둘이서 차를) 등등 짧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들은 너무도 다양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 준다.


흡사 스스로 건 저주 같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입 밖에 내어 말하면 안 된다고 한다. 입밖에 내면 마물이 꾄다.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다.

반대로, 실현시키고 싶은 일은 항상 주위에 표명해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동기 부여가 되니까 실현시킬 수밖에 없게 되거니와 주위에서도 응원해줄 것이라고.

십중팔구 둘 다 옳을 것이다. 자신에게 저주를 건다는 점에서는 피차 똑같다. 어느 쪽이든, 결국 말이란 무섭다는 이야기다.

                                                                                  -'죽은 자의 계절' 중에서


온다 리쿠의 반전 매력은 섬뜩하게 느껴지는 공포도 아무렇지 않게 그려내고, 너무도 적나라한 표현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분명 미스터리 추리물 같은데 완벽하게 열린 결말 때문에 어딘가 모호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이중성'에 있지 않나 싶다. 뭐든 계산적으로 따지고, 자신만 위하는 인간의 행동이 사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손익이 아니라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의 행동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그녀는 '지기 싫다' '실패하기 싫다'라는 생각 때문에 끼고 있는 문제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거라고 말한다. 멜랑콜리하고, 솜사탕 같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예리한 시선들은 같은 소재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 내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일정한 톤을 유지한다. 독보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고, SF,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지만,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마법 같은 노스탤지어를 담아 내고 있으니 말이다. 멜랑콜리하고 키치적 감성과 풋풋한 소녀의 색깔, 독특한 미스터리와 언제나 열린 결말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설득의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설득을 독자가 납득하면 그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가 된다. 따라서 닫히지 않았다 싶은 결말이라도 전후 맥락을 납득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래서 온다 리쿠가 독특한 팬덤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여운처럼 느껴지고, 명확한 설명이 없어 불친절하게 생각이 되어도 그 모호함이 매력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특히나 표제작인 '나와 춤을'의 이야기는 잠시 내가 소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묘한 설레임을 주었다.

나랑 춤추자.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좋아. 라고 그 손을 덥썩 잡게 될 것 만 같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다. 그런데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언젠가는 내 꿈도 현실이 되어서 나타날 것만 같다.

늘 보고 있을게. 늘 보고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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