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사랑하는 방법
헤일리 태너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들과 그 사람에게 일어났었던 일들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을 나눈다는 것보다 더 따듯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는 것은 내가 그 혹은 그녀와 마음이 통해 그것을 나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타인이 서로의 마음을 백 퍼센트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믿는 많은 것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생김새, 생일, 연락처, 취향, 습관 등등이 그 사람의 전부는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이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맞나 싶어 상처를 받게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온다. 아마도 그래서 사랑에 빠지는 걸 상대에게 눈이 머는 거라고 비유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세상 조차 절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 구축된다. 단어 그대로 '이 세상에 단둘밖에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겪게 되는 그런 순간이 오면, 그 비현실적인 경험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영원히 함께 할거라는 착각에 눈이 멀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츨라프와 레나 또한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 바츨라프가 레나를 두 팔로 들어 올리고, 레나가 그를 올려다보며 웃음 짓던 바로 그 순간에 시간이 잠시 그들에게 멈추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때로는 그저 손을 맞잡기만 해도 너무 벅차서 감당이 안 되는 상대를 만나게 되는 법이다.

바츨라프와 레나는 곧장 라시아에게 돌아갔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둘은 서커스를 봤다는 말을 라시아에게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경험은 비밀로 해야 하는 법이다.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라서 섣불리 꺼냈다가 누가 나쁜 말을 하거나 비웃기라도 하면 심하게 상처받을  테니까. 게다가 서커스는 사실 놀이기구가 아니니 바츨라프는 정확히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은 셈이었다. 그러므로 엄마에게 혼나지 않으려면 비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츨라프가 10, 레나가 9살일 때, 그들은 처음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많은 이들이 그렇듯, 이들의 만남 또한 어른들 사이의 친분으로 건너건너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그날 함께 갔던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서커스를 지나다가 난생처음으로 마술이라는 걸 보게 된다. 그것은 순진하고, 호기심 가득했던 두 소년, 소녀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버릴 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들의 인연 또한 바로 그 매혹적인 경험 때문에 더욱 간절해지고, 돈독해졌을 지도 모른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말이다.

첫사랑.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풋사랑은 대부분 유치하다고 무시하거나, 너무 어려서 잘 생각도 나지 않는다며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린 시절의 그 풋풋하고 두근거렸던 그 마음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나도 바츨라프와 레나처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한 두 살 위의 오빠였는데, 바로 옆집에 살았고, 부모들끼리 너무 가까웠고, 아주 어릴 때부터 허물없이 거의 모든 걸 공유했던 사이였다. 물론 사소한 오해로 마음이 멀어지고, 이사를 가게 된 뒤로는 연락도 끊어져서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고, 이기적인 마음들이 그 당시의 우리에겐 세상이 무너질 만큼의 무게였었으니 어쩔 수 없었기도 했지만, 그 뒤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관계들은 사실상 내가 처음 맺게 된 그 시절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씁슬하기도 하고 그렇다.

암기한 공식들을 공책에 적으며 자가 테스트를 하는 동안, 바츨라프는 자꾸만 레나가 생각난다. 당장 방에 들어가서 혼자 레나 생각에 몰두하고 싶다. 무척 설레는 기분이다.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 일상생활에 집중이 통 안 되고, 미스터리가 어떻게 풀리는지 어서 알아내고 싶고, 온종일 오로지 그 책에만 파묻혀 있고 싶을 때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이 책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등장인물들이었다. 알콩 달콩, 풋풋하고, 설레이고, 두근거리는 바츨라프와 레나의 에피소드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바츨라프의 엄마인 라시아가 레나를 대하는 마음이었다. 함께 사는 이모는 레나에게 거의 아무런 관심도, 보살핌도 주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에 라시아가 레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자는 걸 지켜봐 주곤 했다. 라이나는 그날도 잠든 레나를 가만히 지켜보다 일어나서 조용조용 불을 끄고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부엌 싱크대에 초파리가 들끓고 잔뜩 쌓여 있는 설거짓거리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레나가 한밤중에 목말라서 깨기라도 하면 물을 따라 마실 컵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릇들을 남김없이 씻고, 수챗구멍에 박힌 꽁초들을 버리고, 싱크대가 윤이 나도록 닦아낸다. 그렇게 부엌은 깨끗해졌지만, 레나가 한밤중에 일어나 부엌으로 나오다가 바닥에 널린 옷가지에 발을 헛디디지는 않을까, 넘어지다 무릎을 탁자에 찧으면 어쩌나 또 걱정스러워 재떨이를 비우고, 옷들을 한아름 주워 들고, 빈 병들을 버리고, 종이컵, 콜라 캔 등을 전부 버리고 치운다. , 나는 이 장면이 어찌나 뭉클하던지, 라이나는 어쩜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엄마, 아빠도 없이 낯선 이국 땅에서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늘 주눅들어 있던 레나였지만, 하지만 그녀 뒤에 이렇게 그녀를 아끼는 라이나 아주머니가 있었던 것이 너무도 따스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레나의 보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바츨라프가 레나의 숙제를 대신해줄 때, 빨리 끝내버리고 마술 연습을 하고 싶었던 바츨라프는 이렇게 생각한다.

레나가 원하는 것은 바츨라프가 원하는 것이니까.

두 사람은 나머지 없이 딱 떨어지는 바츨레나여야 하니까.

이런 게 바로 사랑 아닐까. 네가 나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너를 덜 좋아해서 네가 나를 더 좋아하는 건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애초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게 오롯이 자신만의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 건지. 원래 다들 그렇게 연애를 한다고 쳐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한때 이렇게 순수하고, 절박하고, 바라는 것 없이 다 해주고 싶고, 그저 쳐다 만 봐도 설레 이던 시절이 있었단 말이다. 나의 마음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열두 살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있었다. 부끄럼 많이 타는 소심한 소녀였지만, 좋아하는 오빠와 단둘이 있을 때는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었던 순수하고, 용기 있었던 그 시절의 나로 말이다.

, 바츨라프와 레나가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는지가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이들이 어떤 위기를 겪고,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고, 어떤 상처를 받고 극복하는지에 대한 줄거리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의 '마음'이다. 이 책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바츨라프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그 과정이 바로 그가 레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니 말이다. 가끔은 속고 싶은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공감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헨리는 아내인 릴리아에게 그 동안 거짓말을 해왔다. 보안 문제가 있는 회사들을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아내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었지만, 사실 그는 다국적 기업이나 외국 정부 부처, 재력과 연줄이 있는 개인을 고객으로 그들의 기득권에 손해를 입히는 활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한마디로 스파이였다. 그러니 그는 가족에게도 자신이 실제 하는 일을 완벽히 숨겨왔던 삶의 스파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는 그에게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쪽지와 그에 대한 목록을 써낸 편지를 남기고는 떠나 버린다. 그녀는 자신이 고갈된 것 같다며, 긴 여행을, 그것도 혼자만 가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상냥한 사람이다. 나는 매혹적이지는 않다 해도 매우 잘생겨 보일 수는 있는 사람이며, 내가 이 삶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대체로, 당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 왠지 당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 주는 내 재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유혹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결코 당신에게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결코 손쉬운 칭찬이나 가증스러운 아첨을 하지 않는다. 나는 눈앞에 있는 재료로, 당신에게서, 당신이라는 천연 원광에서 다듬어 낼 수 있는 것으로 버틴다. 그런 다음 당신의 가장 은밀한 허영심에 불을 지핀다.

한국 이름은 박병호, 미국 이름은 헨리 파크. 그는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이다. 미국인 아내와 결혼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떠나고 홀로 남겨지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민자의 삶이 그렇듯이, 항상 온전히 자신이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시간들이었기에 말이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해야 했으므로, 말을 할 때마다 발음이 정확한지 의식을 해야 했던 삶이란, 언제나 나 아닌 타인인 척 해야 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셨지만, 아들을 위해 미국에 건너와서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일을 했다. 아버지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이 반드시 가족 문제였다. 아버지의 세계는 오로지 아들과 부인 뿐이었다. 낯선 나라에 살면서 백인과 흑인 사이의 골치 아픈 일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이, 오로지 가족에 대한 책임감만 투철했다. 미국에 온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나, 그들은 끼니마다 한국식 밥과 김치, 반찬을 먹었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만큼의 애정 표현은 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다.

나는 늘 말에서 나쁜 잘못을 범하곤 한다. 나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더듬거리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한다. 릴리아는 말을 하는 어떤 정신적 통로가 있는데, 그것은 한번 배우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little 대신 riddle이라고 말하고, vent 대신 bent라고 말한다. 물론 억양은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순간적으로 생각의 흐름을 놓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늘 두 언어의 위치를 바꾸는, 융합하는 conflate-어쩌면 큰불을 낸다conflagrate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헨리의 아들 미트는 딱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죽었다. 그리고 아내와도 본의 아니게 별거 상태가 된 그는 이제 혼자 남겨져 버렸다. 그는 미국계 한국인으로 뉴욕의 시의원이자 유력한 차기 시장후보로 거론되는 존 강이라는 인물의 뒷조사를 맡게 된다. 그를 염탐하던 헨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며 스스로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가 이민자로 살아온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의 긴박함이 쌓이면서 페이지가 쌓여간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 가는 여정은 곧 우리네 삶과도 같다. 대부분 바쁜 일상에 치여 잊고 살지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여지없이 내가 제대로 살아온 걸까. 여기 내가 발을 딛고 선 이곳은 어디인 걸까. 나는 대체 누구일까. 라는 질문과 맞닥뜨리고 만다.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불안한 미래에 대한 가장 든든한 지지대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정체성에 관한 수많은 이론에서는 '타인과의 관계라는 구조 속에서만 개인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주인공의 정체성 찾기 여정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창래 작가의 95년 첫 장편소설이 작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고, 노련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절히 원했던 일을 라이벌에게 뺏기고, 직장에선 쫓겨나게 생겼고, 건달들에게 몰매를 맞고, 차가 엉망이 되고, 이렇게 재수가 없어도 되나 싶게 안 좋은 일들만 다발로 쏟아져 내린 날, 화가 나서 폭발하기 일보직전에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며, 이 모든 불행이 신의 탓이라며 원망을 했더니, 그의 앞에 자신이 신이라고 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자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며칠간 줄테니, 얼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보자고 말이다. 이것은 언젠가 보았던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스토리이다. 이렇게 우리는 되는 일이 없을 때,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나에게만 찾아 오는 것 같을 때, 간절히 바랬던 기대가 깨질 때 신을 원망한다. 신이시여,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라며 탄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면 어떨까.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이유는 슬프면서도 아주 간단해.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거지. 나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느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시간 단위로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야. 게다가 예전만큼 활발하지도 않아. 그래서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생각한다.

"신이 자기가 만든 세상과 더 이상 보조를 맞출 수 없다고?"

이혼한 전처가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며 한밤중에 나타나 상담을 요청한다. 파산 직전의 심리 치료사인 야콥은 질투에 눈이 멀어 쫓아온 전처의 현재 남편인 프로 복서에게 맞아서 코 뼈가 부러지고 만다. 깨어나 보니 구급차 안, 시장통이 따로 없는 병원 응급실에서 야콥은 어릿광대 복장을 한 40대 후반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야콥에게 심리 상담을 부탁하며,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많이 망가졌으니, 당신이 날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영화 혹 짐 캐리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 남자를 보며 믿지 않았듯, 야콥 역시 그를 믿지 않는다. 왜 안 그러겠는가. 신이라니, 그것도 인간의 모습을 한, 게다가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야콥은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를 그냥 내칠 수가 없어 상담을 해주기로 한다. 아르바이트로 서커스 광대 일을 하고 있는 아벨은 누가 봐도 신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사실 신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니 뭐 그의 겉모습 자체는 그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벨과 야콥은 심리 상담을 시작하고, 아벨은 자신이 신이라는 걸 야콥에서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정신분열증 광대가 어저면 진짜 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그런데 그가 정말 신이라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바꿔 버리면 될 것이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신은 말한다. 자신에게 더 이상 그럴 능력이 없다고 말이다. 왜 자신에게 부정맥이 있겠냐며, 왜 자발적으로 심리 치료를 시작 했는지 생각해보라고.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싶지만, 손발이 묶인 느낌처럼 전혀 그럴 힘이 없다고. 신에게 힘이 없어진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을 때에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며, 아무도 신을 믿지 않는다면 힘을 전혀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증은 믿음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 이해하겠어? 나의 탈진은 곧 세상의 탈진이고, 나의 의욕 상실은 곧 세상의 의욕 상실이야!"

그래서 아벨은 야콥에게 인간들이 다시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의 실수가 뭔지 찾아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글쎄, 자기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심리 치료사가 과연 신을 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도 절대자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단 하나의 결혼 생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십 억 명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 인간들이 맺는 수조, 수천 조의 관계를?    

야곱은 아벨과 함께 마치 마법과도 같은 크리스마스 여행을 다녀온다. 자신이 생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앞으로도 다시는 맛보지 못할 색다른 시간, 즉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가끔 나도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나도 궁금해 해본 적이 있다.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말이다. 야콥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벨을 통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까 마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누군가의 삶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야콥이 마치 공기인 양 사람들이 그의 옆을 휙 지나가 버린다.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세계의 사람들은 야콥을 볼 수도 없고, 야콥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서로 속해 있는 세계가 다르니 말이다. 그렇게 야콥은 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야콥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왜냐하면 야콥의 부모가 결혼한 이유가 바로 어머니가 야콥을 임신했기 때문이었으니, 이 생에선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그저 복잡한 연인 관계만 유지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할 의무를 느끼지 못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을 결정적인 것이 없었기에 그들은 결혼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인생이 이런 방향 또는 저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 아닐 수가 없다. 야콥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니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고, 동생은 은행 돈을 빼돌려 도망치지도 않았고, 어머니는 유명한 자선 단체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부모가 진짜 삶에서 불행에 가까운 관계였음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어머니 덕분에 예상치 못한 출세를 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해 알코올 중독이 되고,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자신의 일까지 포기했으니 말이다. 야콥은 사흘 밤의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어떤 흔적도 세상에 남기지 못할 거라는 걸, 다른 세계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벨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혹은 그가 자신에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야콥의 인생은 이제 전과 조금은 달라진다.

결국 심리치료사가 신을 치료한 게 아니라, 신이 그를 도와준 셈이 되었다. 아벨은 말한다. 신을 믿는다는 건 선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그러니 신을 믿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을 이렇게 만든 원인인 사람, 그 중의 하나인 야콥이 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책은 끝난다. 종횡무진 유쾌하고, 황당하기도 한 에피소드들의 바다를 거쳐 마지막 장면은 뭔가 찡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르셀로나 섀도우
마르크 파스토르 지음, 유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만약 쉽게 흥분하거나, 비위가 약하다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부터 악마 같은 여자의 광기를 드러내는 예를 들 생각이다. 두렵지 않다면 계속 읽어나가기 바란다. 마음 한 귀퉁이에 묻어두었던 그대의 생각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연쇄 살인마, 게다가 여자인 그녀의 이야기는 매우 리얼해서 어떤 대목은 눈살을 찌푸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기도 하다. 오죽하면 해당 대목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경고까지 하겠는가. 게다가 이렇게 주의를 주는 존재는 극의 주인공인 살인마 엔리케타도, 그녀를 잡으려고 하는 형사 모이세스의 목소리도 아니다. 1인칭도, 3인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닌 독특한 화자가 중간 중간 극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초반에는 이 독특한 화자의 스토리 전개가 낯설고,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계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를 마치 신처럼 보이는 이 화자가 들려주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하게 해주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보이지 않는 손, 사악한 무대담당의 짓으로 드러나는 우연한 사건들이 있다. 그들은 늘 술에 취해있고 독특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다.

마치 무대극의 사회자라도 되는 것처럼. 극이 진행되기 전에 간단한 해설이나 논평이라도 들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에서는 클라이맥스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는 소설에 더 잘 어울린다. 소설은 설정도 쉽고 설명하기도 쉽다. 내가 마음대로 사건을 조종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아니라고 하진 않겠다.

그리고 엔리케타의 그 많은 악행들을 보아온 독자들이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할 때, 그러니까 이야기가 거의 막판에 치달았을 때는 이런 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모든 일에는 항상 실수가 있고, 실수는 비싼 대가를 치른다.

수많은 범죄, 스릴러 소설들을 읽어왔지만, 이 책은 바로 이 화자의 역할 때문에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야기가 끔찍하고 잔인할 수록 독자들은 감정 이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극의 몰입도를 키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이 실화이고, 거기다 연쇄 살인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거의 형사인 주인공만큼이나 비중이 있으니 독자들의 심리적 불편함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쌓여가니 말이다. 실화라는 것이 주는 다소의 비현실성도 극중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데 한몫을 한다. 사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믿기 어려워 더 소설 같은 순간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그것을 과시하는 사람이 있다. 오줌 눌 요강 하나 없어 술집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있고, 건강에 좋다는 해수욕을 즐기려고 산 세바스티안으로 떠나는 부자들이 있다. 비밀을 감추기 위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를 사귀려고 속내를 전부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엔리케타는 이 도시의 경계선을 찾아냈고 경계선을 따라 걸으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처럼 경계선을 따라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거리가 피로 물든 혼탁한 시대의 바르셀로나, 어느 날부터 매춘부들의 숨겨진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돈다. 벌써 사라진 애들이 여덟이나 되지만, 엄마들이 매춘부이다 보니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고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이다. 소문은 점점 커져서 어린애들을 잡아다가 그 피를 마신다는 흡혈귀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물론 엔리케타의 실체가 점점 밝혀짐에 따라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왜 이런 소문까지 났는지 납득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연쇄 살인마 캐릭터도 매우 독특하지만, 그녀를 쫓는 형사 캐릭터도 굉장히 이색적이다. 모이세스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형사이다. 법을 수호하고, 시민들을 악당들로부터 지키는 정의의 사도까지는 되지 못할 망정 ''을 믿지 않는 형사라니. 그의 세상에는 오로지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 그래서 그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축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러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범죄자들이 그와 다른 사람이 되겠다. 그는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범죄자들을 저주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그가 만약 범죄자들과 같은 편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안 봐도 훤하다. 게다가 그는 동생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셜록 홈스와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는 범죄 소설과 공포 소설을 탐독하고, 아내가 있음에도 바르셀로나 사창가의 단골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바르셀로나의 사회가 마치 화면으로 보는 것처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농부와 노동자가 넘쳐났으며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도 까지 더해, 빈민과 빈민가는 계속해서 늘어갔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던 가난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였던 것이다. 가난과 좌절,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 찬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유괴와 연쇄 살인은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실화'라는 이야기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감한 친구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용감한 친구들 2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의 이야기이다. 당시에도 셜록의 인기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작품 속에서 캐릭터가 죽은 것만으로도 신문사들이 항의기사를 쓸 정도였단다. 물론 셜록 홈즈는 여전히 지금에도 영화, 드라마 등으로 사랑 받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니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코난 도일의 이야기라니, 그것도 줄리언 반스가 그려낸 작품 속에서,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아서 코난 도일과 조지 에들지라는 두 인물의 이야기이다. 조지 역시 실존 인물로 인도계 혼혈 영국인 변호사이다.

그들의 믿음을 흔든 사람은 조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우리는 조지를 알고 그가 결백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3개월 뒤에:우리는 조지를 안다고 생각하고 그가 결백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1년 뒤에:우리는 조지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그가 결백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런 변화를 탓할 수 있겠는가.

작품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시작들에서는 이들 두 인물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다. 꼼짝 않고 앉아 있지 못하는 기운 넘치고 고집 센 아이였던 아서는 상상력이 풍부했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는 의사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본격적으로 글도 쓰게 된다. 단편들이 장편소설로 성장했으며, 결국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캐릭터를 통해 유명한 소설가가 된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지는 상상력이 부족했고,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몰랐던 어리숙한 아이였다. 인도계 혼혈이었던 탓에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그들 가족은 지속적으로 협박 편지를 받으며 괴롭힘에 시달린다.

그렇게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교차 진행되다가, 2부 결말을 동반한 시작에 이르러 어느 순간 조지의 이야기가 비중이 높아진다. 말과 소, 양 등 가축들이 훼손되는 사건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그 사건의 범인으로 조지가 주목 받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만다. '기차 탑승객을 위한 철도법' 책을 발간하고 매우 소박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있는 사무변호사 조지. 근면, 정직, 검약, 자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만을 믿고 배워왔던 그에게 엄청난 닥친 시련이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영국인인 조지는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인도계 혼혈이라는 점은 그를 매 순간 발목 잡아 넘어뜨린다. 그가 이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자면,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무섭기까지 하다. 조지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서와의 교집합은 전혀 없이 1, 2장이 끝나버린다. 그가 교도관에게 너덜너덜한 염가판 '바스커빌의 개'를 읽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정도의 그들의 교집합이 될까.

작업에 착수하면서 아서는 친근한 감정을 느꼈다. 새 책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생각해냈지만 아직 그것이 완벽하게 구성되지 않았을 때의 기분, 대부분의 인물들을 생각해냈지만 아직 그들이 완전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을 때의 기분, 이야기의 연결고리들이 전부 다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의 기분이었다. 아서에게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은 결정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은 대단히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어야 했다... 아무튼 이는 아서에게 익숙한 작업이었다. 그는 소설을 쓸 때처럼 중요한 사안들을 정리하고 간략한 주석을 덧붙였다.

2권이 시작하자마자, 아서와 조지가 어떻게 만나는 지 그들의 만남이 드러난다. 1권 내내 그들 각각의 이야기만 거의 교집합 없이 진행되어 대체 이들이 어떻게 만나는 지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3장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셜록 홈즈 덕분에 전세계에서 온갖 요청과 요구들이 아서에게 밀려들기 시작한다. 사람이나 물건이 불가해한 상황에서 사라진 경우, 경찰이 평소보다 당혹스러워하는 경우, 부당한 일을 당한 경우등등 사람들은 홈스와 홈스를 창조해낸 사람에게 호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독자들이 분명 실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인물을 창조해낸 죄(?)로 아서는 이들에게 사설 탐정과도 같은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우체국에서 자동으로 '주소불명' 도작이 찍혀서 반송이 되고, 가끔 아서 경이 감동을 받거나 깊은 인상을 받아 답장을 직접 보내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는 조지의 탄원서를 흥분한다. 너무도 명백하게 조지가 결백하기 때문에, 답장만 보내서 될 게 아니라 사건을 되살려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어 조지와 아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 아서는 조지의 '에들지' '이달지 씨'라고 두 번이나 잘못 부른다. 조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의 이름을 잘못 발음했을 때 아서는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표현되어 있어 이들의 진지한 분위기와 별개로 큭큭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서는 서재에 틀어박혀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고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증거들로 인해 조지에게 잘못된 선고가 내려졌으니, 그가 전적으로 무죄라는 점을 밝히고, 진짜 용의자를 밝혀내어 내무성이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고, 진범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서는 계획을 세우면서 그것이 이야기를 창조하고, 책을 쓰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재미있게도 그가 직접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일은 자신이 언제까지 셜록 홈스를 만들어낸 벌을 받아야 할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끝없이 그의 말을 고치려 들고, 되도 않는 충고를 하고, 심지어는 꾸짖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해야만 했다. 앤슨이 아무리 도발해오더라도 성질을 내서는 안되었다.

그러니까,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은 너무도 리얼한 탐정을 만들어낸 대가는 아서가 조지의 사건을 조사하는 내내 치룰 수 밖에 없다. 사실 무려 2015년인 지금도, 셜록 홈즈는 진짜 살아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지만 덕분에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들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목격하게 된다. 그가 바로 셜록 홈즈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아서가 결국 조지의 결백을 밝히는지에 관해서는 직접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되어야 하므로, 더 이상 자세한 줄거리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저 상상력과 관찰력이 뛰어났던 아이 아서와 영특했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던 조지가 어떻게 법의 영역 안에서 정의를 찾아가는지 그 여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아이는 보고 싶어한다"로 시작하는 아서의 이야기가 "그는 무엇을 볼 것인가?"로 끝나는 조지의 이야기로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줄리언 반스는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써내는 대단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 시작이 있고, 결말이 있고, 과정을 이루는 인물들이 있고, 그리고 여운을 남겨주는 시작을 동반한 결말. 독자들은 보고 싶어한다. 세기의 명탐정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마치 홈즈 처럼 뛰어난 추리와 수사를 해서 위기에 빠진 평범한 누군가를 구원해주기를. 더 이상 무엇 설명이 필요하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