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느와르 M 케이스북 - OCN 드라마
이유진 극본, 실종느와르 M 드라마팀.이한명 엮음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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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무도 없는 시간 쪼개어 가며 책을 읽어야 하는 처지라 드라마 관람은 물 건너 간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 나도 범죄, 미스터리에 관련된 드라마는 방영 시간 이후에라도 찾아서 보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미 BBC 드라마 <셜록>을 통해서 드라마가 얼마나 완성도 있는 미스터리 물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만큼 스릴러 분야가 독보적 이진 못해서,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올 초에 방영됐던 <실종느와르 M>은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컸던 드라마였다. 케이스북의 띠지에 새겨진 문구 "이제 우리도 이런 드라마를 가질 수 있다!"와 같은 심정이랄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수사 물을 기대하기도 했고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만 8분에 한 명꼴로 사람이 실종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중에는 단순 가출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대부분은 심각한 범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밝혀진 이들은 대부분 사체로 발견되곤 한다. 그렇게 도처에 널려있는 '실종'이라는 테마로 모든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재미있게도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가 아니라 사회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다. 정리해고 노동자, 내부 고발자 은폐, 가출, 권력형 비리 등등 우리가 숱하게 뉴스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일들 말이다.

 

<실종 느와르 M>은 누군가의 사라짐으로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 그들의 삶을 따라 가다 보면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범죄'라는 것은 소중한 것을 잃을 때 발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범죄'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누구도 책임지려는 사람 없으며 개인의 고통이 고스란히 사회적 그을음으로 남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요.

                                                                                   -작가 이유진

 

특히나 이 드라마가 흥미로웠던 것은 굉장히 독특한 방식의 살인 방식이었다. 첫 회였던 '감옥에서 온 퍼즐'에서 등장했던 폐쇄된 정신 병원에서 온 몸에 링거를 꽂은 기괴한 모습의 남자부터 아기의 유괴에서 비롯된 이중 납치, 사체만 숨기면 정황증거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의 아이러니를 이용한 범죄도 있었고 말이다. 물론 공소시효, 심신상실자 처벌 불가능, 무죄추정 원칙 등 법의 허점으로 인해 구현되지 못한 정의에 관련된 이야기는 그 동안도 숱하게 만들어졌지만, 이 작품은 조금 더 세련되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에피소드 자체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공감이 되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두 명의 주인공이 단단히 한 몫을 했는데,  IQ 187의 전직 FBI 요원 길수현 역의 김강우 배우분과 실종 수사만 7년인 베테랑 토종 형사 오대영 역의 박희순 배우 분의 케미는 너무도 놀라웠다. 다만 연기가 매우 리얼하고 좋긴 했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 만큼의 독특한 색깔이 부족해 더 화제가 되지는 못한 게 아닐까 싶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차갑고 이성적인 길수현은 자신만의 정의와 주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고, 오대영은 감정적이고 수사 시에도 편법을 쓰는 걸 전혀 개의치 않는 인간적인 캐릭터이다. 이렇게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조화는 예상외의 재미를 주면서 극을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특히나 이 케이스북은 드라마를 보지 못했던 독자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던 시청자들에게는 특별 선물 같은 행복함을 안겨줄 수 있을 것 같다. 일곱 개의 각각 에피소드에 맞춰 스토리와 대본 스크립트, 주요 장면, 추리 과정과 단서들에 대해 자세히 수록되어 있어 드라마를 보지 못했더라도 스토리를 읽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도 하고, 이미 드라마를 봐서 내용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덧붙여진 제작노트를 통해서 드라마의 뒷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촬영장의 뒷모습과 세트장 스틸, 그리고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자 [실종느와르 M] 미술 팀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길수현의 집' '부검실'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어 드라마가 끝나 아쉬웠던 이들에게 멋진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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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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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서둘러야겠다. 잠 못 드는 밤이면 그 기억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니까. 몸부림 한 번, 기침 한 번, 핏방울 하나까지, 몹시도 천천히. 그러니 빨리 이야기를 끝내야겠다.

우리는 침실로 들어섰다. 내가 고기 써는 식칼을 들고 앞서 걸었고, 내 아들 헨리는 포대를 들고 뒤에 따라왔다.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었지만 아예 심벌즈를 치면서 들어왔다고 해도 아내는 깨지 않았을 것이다.

                                                                                -'1992' 중에서

아버지는 식칼을 들고, 아들은 포대를 든 채 두 사람은 아내가 자고 있는 침실로 향한다. 그는 아내의 코 고는 소리와 머리맡에 있는 자명종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를 함께 들으며 그들이 꼭 지체 높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의사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오로지 피가 너무 많이 나면 안 되는데. 라고 중얼거리면서. 어린 아들은 그 상황에서도 울지 않는다. 두 사람이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은 매우 잔인하고 끔찍하게 그려진다. 아내가 장인에게 유산으로 상속받은 땅을 자신이 소유한 농장과 합치고 싶었던 그는 그 땅을 팔고 싶어 하는 아내와의 의견 충돌로 지독하게 싸웠다. 1922년 겨울부터 봄까지. 그러다 법으로 해결할 생각도 했으나, 아내에 대한 증오가 커져 그녀가 죽었으면 하고 바랄 지경에 이르자 소송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열네 살 어린 아들을 꼬드겨 살해에 가담하게 하고. 이렇게 쎈 이야기로 시작한 이 스토리는 결국 그를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데 그 과정이 어마어마하다. 쥐들의 공격은 초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내기도 하고, 그가 저지른 끔찍한 행동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혹시... 그러니까 지금 본인이.... 불사신이라는?"

"확실히 엄청 오래 살기는 했지. 선생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도 아마 그 덕분일 거요. 선생이 원하는 건 십중팔구 수명 연장일 것 같은데."

"힘들겠죠, 아무래도?"

스트리터가 물었다. 머릿속으로는 자기 차까지의 거리와 뛰어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서.

"당연히 가능하지..... 대가만 치른다면."

                                                                                  -'공정한 거래' 중에서

암에 걸려 시한부를 살고 있던 남자는 텅 빈 4차선 도로를 건너가다 한 뚱뚱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자신과 조촐한 거래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하고 제안을 한다. 자신이 파는 것은 '연장'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연장을 원한다고, 신용카드 기한을 연장하거나, 키를 늘려 달라고 하거나, 머리 숱을 늘리려고 하거나, 혹은 애정을 연장해주거나, 대출 기한을 연장해주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수명을 연장해주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며, 미워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다. 몸 속에 있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싶으면 다른 누구한테 옮겨야 한다며. 남자는 자신의 가장 친한 불알친구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그를 선택한다. 그렇게 남자의 암은 기적처럼 완치가 되고, 이후 톰에게는 줄기차게 불행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벌어지는 악운들의 퍼레이드는 꽤나 섬뜩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내 수명을 15년 늘려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선뜻 그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을 보며, 그래도 내가 저 상황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게 될까. 이 작품집에 실린 이야기 중에 <공정한 거래>만 단편이고, 나머지 세 편은 중편 분량인데,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겨주는 단편이었다. <빅 드라이버>는 그의 작품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은 연쇄살인마 남편을 둔 아내의 매우 충격적인 스토리가 펼쳐진다.

스티븐 킹은 이 작품들을 쓰면서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 또 그들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행동 방식을 기록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가끔 세상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간절한 희망조차도 물거품이 되어 버리곤 하니까 말이다. 스스로도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독하다고 말하는 그는 '독자에게 달려 들어서 공격하는 소설이야말로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며 언제나 그런 작품들을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근본이 대개는 착하다고 믿는' 그의 소설 속에서 언제나 무시무시한 등장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이 밀어 붙이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언제나 스티븐 킹은 '역시'라는 감탄사를 끌어내는 멋진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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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2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완동물공동묘지..가 막 떠오르는!^^

피오나 2015-09-24 09:17   좋아요 1 | URL
아.저는 그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어요. 이 작품집과 비슷한 분위기인가 봅니다ㅎㅎ

[그장소] 2015-09-24 09:18   좋아요 0 | URL
음..좀 짬뽕..이랄까요? ^^

cyrus 2015-09-23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정오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 ‘살인’과 관련된 단어가 세 개나 나왔어요. 오원춘, 량첸살인기, 이태원 살인사건. 오늘은 유난히 스티븐 킹의 소설 서평을 자주 보네요. ^^

피오나 2015-09-24 09:17   좋아요 1 | URL
오. 그랬군요. 가끔 보면 세상이 소설만큼이나 끔찍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시노부 선생님, 안녕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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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마루 상점과 마쓰모토 상점이 친선 야구 경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니시마루가 마쓰모토에 8 3으로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중에, 지고 있는 마쓰모토 상점의 응원석에서 환성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투수 마운드에 올라선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그녀가 등장하자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힘찬 응원소리가 들린다. 웅성거리던 관중석은 그녀가 워밍업 차원에서 공을 두세 번 던지자 조용해지고 만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투수가 던진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차고 빠른 공을 던지며 타자 들을 삼진으로 물리치고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영화처럼 등장한 그녀의 이름은 바로 다케우치 시노부이다.

신도의 설명을 들으며 시노부는 설레는 마음으로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있었다. 이렇게 자극적인 일과 맞닥뜨리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의 일이다.

"그럼 범인은 요네오카 씨를 밀어서 떨어뜨린 후 우리가 그곳으로 가는 동안 도주했다는 거네요.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었을까요?"

<오사카 소년 탐정단>의 히로인 시노부가 유학을 떠난 지 3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전작에서 가는 곳마다 사건과 엮이며 특유의 행동력으로 형사보다 먼저 사건을 풀어나가던 그녀였다. 파견 유학 형식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끝이 났었는데, 독자들의 열렬한 후속편 요청에 쓰여진 작품이 바로 이번 <시노부 선생님, 안녕!>이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 시리즈는 막을 내린다고 하니, 이 작품이 인기가 더 많아져야 시리즈가 이어질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은 시노부라는 전무후무한 말괄량이 캐릭터이다. 스물다섯의 초등학교 교사인 시노부 선생은 학창시절 소프트볼 팀의 투수 겸 4번 타자로 활약했을 정도로 손이 빠르고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 호기심도 유별나고,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못하고, 모험을 위해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사건에 뛰어 들고는 한다. 그녀는 어린이와 노인들의 교통사고 사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는 아이들을 교통사고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동차에 대해 알고,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악하고자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한다. 한마디로 의협심 강하고, 오지랖 넓은 시노부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인데, 운전 교습을 받으며 교관이 옆에서 계속 구박을 하며 잔소리를 하자 똑부러지게 할말 다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운전 연수를 하며 남편이든 학원에서든 잔소리를 한껏 들어봤던 여성들이라면 속이 다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에이. 시끄러워서 운전을 못하겠네."

시노부는 길 중간에 차를 세운 후 몸을 틀어 교관 쪽을 본다.

"그렇게 잔소리만 해 대면 어떻게 해요? 초보가 잘 못하는 게 당연하지. 그런 사람을 가르치는 게 그쪽 일 아니에요? 친절하게 대하면 어디가 덧나나. 아니, 그리고 공짜로 배우는 것도 아니고 비싼 돈 주고 배우는 거잖아요. , 나는 손님이다 이거예요. 그런데도 시시콜콜 잔소리만 하고 둔하다고 핀잔이나 주고. 내 참."

사나운 표정으로 성을 내자 마침내 대머리 교관도 멈칫한다. 지금까지 학생이 이렇게 호통을 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전작에서부터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말썽쟁이 제자들이 중학생으로 성장해 시노부 선생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그녀를 쫓아다니는 신도 형사와 엘리트 회사원 혼다는 여전히 시노부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물론 그녀는 그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연작 단편처럼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되는데, 각 사건마다 추리보다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은 미스터리가 등장한다. 우연찮게 사건에 엮이게 되고, 호기심이 발동한 시노부 선생과 그녀의 제자들이 수사에 나서게 되고, 좌충우돌 하다 보면 어느새 사건을 풀 수 있는 중심에 가까이 가게 된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쾌한 인물들과 톡톡 튀는 유머를 품고 있는 그들의 대사,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인간적이고 따스한 시선이 한데 모여 가벼운 시트콤을 보고 있는 기분도 든다.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의 히로인인 가가 형사나 구사나기 형사, 유가와 교수 등이 등장했던 작품에 비해 조금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여교사와 그녀의 장난꾸러기 제자들이 팀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는 이 스토리는 뜻밖의 따뜻한 여운을 남겨주기도 한다. 진지한 미스터리 물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따분하고 무거운 작품을 읽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 이 작품을 읽어보자. 책을 읽는 다는 것의 행위를 한다기 보다, 편안하게 누워서 한 편의 티비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여유롭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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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레이 1~2 세트 - 전2권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또 다른 이야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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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전작이 여주인공 아나스탸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번에는 오로지 남자주인공인 '그레이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3부작은 현재까지 전세계를 통틀어 총 판매량이 1 2,500만부를 넘어섰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었다. 오죽하면 로맨스 소설이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 나 같은 독자까지도 구매하게 만들었을까 말이다. 사실 전세계 출판계를 뒤흔든 기록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스릴러 매니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도 '여성' 독자였던 지라 이 작품을 그저 외면할 수는 없었던 탓이다. 예상했던 대로 이 작품은 어찌 보면 너무도 뻔한 로맨스 공식에 따라 스토리가 진행되는 게 아닌가 싶게 시작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남자 주인공 그레이 덕분에 전혀 평범하지 않게 이야기가 전개되었고, 로맨스 소설을 거의 처음 접했던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다.

 

같은 장면이 인물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매우 흥미롭다. 나는 그가 이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속으로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나는 그 행동을 이렇게 해석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를 수도 있고 말이다. 로맨스 소설 계에서 시점을 바꾸는 형식의 진행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팬 서비스의 일환이라고들 하지만, 로맨스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인 나로서는 책을 읽는 내내 설레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장면을 읽어 내는 아나와 그레이의 시선은 이렇게나 다르다.

 

먼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아나의 시선이다. 아나와 그레이가 처음 만나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레이 씨."

"나야말로 즐거웠어요."

그는 무척 정중하게 대답했다.

내가 일어서자 그도 같이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요, 스틸 양."

도전인지 협박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다시 한 번 그와 악수하며 우리 사이에 흘렀던 그 이상한 전류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아마 긴장햇던 탓이겠지.

"안녕히 계세요, 그레이 씨."

나는 그에게 목례했다. 유연한 운동선수 같은 우아한 동작으로 그는 물을 활짝 열어주었다.

"제대로 문을 나가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스틸 양"

이 장면이 이번 작품 <그레이>에서 그레이의 시선으로는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레이 씨."

"나야말로 즐거웠어요."

나는 대답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누군가에게 이처럼 매혹된 것은 오랜만이었다. 기분이 심란해졌다. 여자가 일어났고 나는 그녀를 만지고 싶은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요, 스틸 양."

여자가 작은 손을 내 손 안에 맡기자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 이 여자를 내 오락실에서 플로거로 재미있게 해주고 가져야겠어. 이 여자를 묶고 기다리게 해야지..... 나를 필요로 하게 만들고, 신뢰하게 하고. 나는 침을 삼켰다. 그럴 일은 없어, 그레이

"안녕히 계세요, 그레이 씨."

여자는 목례를 하더니 손을 빨리 뺐다. 너무도 빨리.

이 여자를 이런 식으로 보낼 순 없었다. 이 여자가 떠나고 싶어서 필사적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사무실 문을 열 때 좋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제대로 문을 나가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재미있지 않은가. 너무도 잘생긴 그레이 덕분에 정신이 산란했던 아나는 자신이 방에 들어오면서 넘어질 뻔 했던 실수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이상하게 호기심이 생기고 매혹이 된 그레이는 그녀의 실수 따위 중요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그녀를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려고 하는 중이었다. 이 순간만 해도 그런 그레이의 마음을 아나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처음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읽을 때, 너무도 평범한 아나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반한 것처럼 보이는 그레이가 그다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로맨스 소설의 공식대로 이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곧 연인으로 발전하겠구나 싶었을 뿐이다. 게다가 부족할 것 없이 엄청난 부와 너무도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레이의 성적 취향이 상상도 못했던 식으로 표출이 되기 시작할 때는 뜨악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거 뭐야. 무슨 삼류 로맨스 작품 아니야? 싶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전작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이번 작품이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그레이>는 이 시리즈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2권 전체와 <50가지 그림자, 심연>의 초반 상황을 그레이의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여자 주인공의 시점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다. 특히 그레이가 거의 매일 밤 꾸는 악몽의 실체와 아나에 대한 그레이의 솔직한 속마음, 그리고 그레이가 하는 일에 대한 부분은 나도 전작을 읽으며 궁금했던 터라 궁금증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작인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를 읽지 않았더라도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이 작품만 먼저 읽더라도 이들의 특별한 로맨스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너스로 <그레이> 한국판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숨겨진 표지이다. 겉 표지를 벗겨내면 극중 그레이가 사는 곳인 시애틀의 아름다운 야경이 마술처럼 펼쳐진다. 미국판이나 영국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선물이라고 하니 책을 읽게 되면 꼭 숨겨진 표지도 확인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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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oon 2015-09-2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책표지 뒷면에 이런것이..
앞으로 모든책의 뒷면도 확인을 해야 할듯 하네요.. 감사!
그레이의 시선으로 50가지 그림자라..
제겐 참 특별한 선물이랍니다.
2권이 얼추 끝나가는데 그러고나면 다시금 50가지 그림자가 손에 들려있을듯 하네요!
제가 아는 최고의 로맨스에 기쁨을 남겨봅니다!

피오나 2015-09-26 23:52   좋아요 1 | URL
요즘은 이렇게 책표지를 벗겨냈을때 숨겨진 표지들이 종종 있더라구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전작인 50가지 그림자를 다시 들추게 되었어요ㅋㅋ

jjoon 2015-09-27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면서 자꾸자꾸 책의 뒷표지에 눈이 가더라고요...
지금 다시 50가지 그림자에 손을 대고 있답니다..
네번째 인데도 쭈삣거릴만큼 기분이 새롭네요..
그레이가 묘사해 놓은 부분과 겹쳐 생각나는건 이제 제게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답니다!
이 심쿵거림을 어찌해야 할지.. ㅎㅎ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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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삼시 세끼 정선편이 많은 화제를 남기며 종용이 됐다. 그저 한 장소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투닥거리며 하루 세끼를 지어 먹는 것이 전부인 이 프로그램은 시작할 때만 해도 그다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특별한 미션이나 설정도 없고 그저 주어진 메뉴에 따라 밥과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 그만인, 너무도 황당한 컨셉의 그 프로그램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시즌 4의 방송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화제였다. 사람들이 끼니를 만들어서 먹는 그 평범한 일이 소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식재료를 가지고, 직접 무언가 먹을 거리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행동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특별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남의 집 부부싸움 구경하듯이, 그것이 다른 사람이 좌충우돌 이리저리 부딪치며 해내는 일이라고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만난 책은 무려 '화성'버전 삼시 세끼이다. 화성이라니, 지구와 가장 유사한 태양계 내의 행성이긴 하지만, 절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지 않은가. 우주 방사선과 각종 유성우·운석 충돌 등우주적문제들은 차지하고 화성은 지구처럼 생명체 친화적이지 않다. 대기 중 산소 비율은 1% 미만(지구는 21%)에 불과한데 그 대기마저 희박하다. 게다가 극저온이다. 최저 기온은 영하 176, 평균 영하 62도다. 어떻게 보더라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누군가 살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서.

 

대강의 상황은 이러하다. 나는 화성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헤르메스나 지구와 교신할 방법도 없다. 모두들 내가 죽은 줄 알고 있다. 내가 있는 이 거주용 막사는 31일간의 탐사 활동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산소 발생기가 고장 나면 질식사할 것이다. 물 환원기가 고장 나면 갈증으로 죽을 것이다. 이 막사가 파열되면 그냥 터져버릴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다. 나는 망했다.

 

아레스 3 탐사대의 일원으로 화성에 온 마크 와트니는 모래 폭풍의 갑작스런 충격으로 인해 대피를 하다가 막대형 안테나로 배에 펀치를 맞고는 홀로 일행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헤어지게 된 다른 대원들은 모두 그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무려 6화성일째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모래 폭풍이 사라지고, 모래에 거의 완전히 파묻힌 채 엎어져 있다 어렴풋이 의식이 돌아온 그는 상처에서 나온 엄청난 피가 공기의 흐름과 외부의 낮은 기압으로 인해 찌꺼기가 되어 찢어진 우주복의 구멍을 막으면서 살아남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곳에서 그가 '홀로' 살아남아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화성 표면 탐사 기간은 31일로 예정되어 있었고, 보급선은 전 대원이 넉넉하게 56일 동안 먹을 식량을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6일 만에 임무가 중단되었으므로 여섯 사람이 50일 동안 버틸 수 있는 식량이 남았고, 그걸 마트가 혼자 먹는다면 300일을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한끼의 식사량을 최소화해서 줄인다면 400일까지는 버틸 수도 있다. 문제는 지구와 교신할 방법이 없다는 것. 통신만 되면 구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약 4년 후에 아레스 4 탐사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1년 치 식량으로 4년을 버텨야 한다니, 말이 되는 가 말이다. 그래서 그는 아레스 4 탐사대가 도착할 때까지 1,387화성일을 버틸 수 있는 칼로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계산해본다. 어차피 아레스 4 탐사대에게 구조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지금부터 그의 목표는 그만큼의 열량원, 즉 식량을 마련하는 것이 된다.

 

"마크 와트니는 아주 똑똑한 사람입니다. 물론 아레스 탐사대의 대원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크 와트니는 그중에서도 특히 임기웅변에 강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성격이 그의 목숨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요."

 

언제나 유쾌하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고, 재치도 있고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던 마크 와트니. 하지만 혼자 화성의 미아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너무나도 긍정적이다.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그의 이력 또한 그의 무한 긍정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살기 위해서, 화성에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식량을 키우고,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지구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궤도 역학, 화성의 물리적 환경, 우주비행의 역사, 식물학 등 어마어마한 과학적 지식이 나열되지만, 어렵거나 딱딱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마크 와트니가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지,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모험을 하는지, 감탄하면서 그의 여정을 따라갈 뿐이다. 이렇게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설정과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다니, 이것이 실화가 아니라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독특한 것은 이 작품의 설정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탄생 배경에도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작가 앤디 위어가 취미 삼아 개인 블로그에 연재를 시작했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아마존 킨들 버전으로 자비 출판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정식 출판이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리들리 스콧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내용만 보자면 수많은 과학적 정보들이 난무하는 과학소설 같은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긴박감 넘치고, 유쾌한 모험 어드벤처 소설 같기도 하다. 배경이 화성과 항공우주국이니 SF소설이지만, 플롯은 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기이니 드라마로도 읽힌다. 그렇게 이 작품은 색다르고, 매혹적이다. 아마 당분간 이렇게 매력적인 화성 판 우주소설은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다 읽어 과정과 결말을 이미 알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개봉하면 다시 보러 가고 싶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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