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거의 2년 반 만에 나오는 마탈러 형사 시리즈이다. 전작인 <너무 예쁜 소녀>에서 치명적인 미모의 소녀가 남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이야기를 했던 얀 제거스는 이번 <한 여름 밤의 비밀>에서 더욱 탄탄해진 플롯과 빠른 전개로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전작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어린 소녀가 연쇄 살인범일수도 있다는 매혹적인 전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결말이 다소 허약해 끝나고 나면 어딘지 낚였다는 기분이 들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주인공 소녀 마농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너무 없어서 뭔가 부족했는데, 그에 비해 마탈러 형사와 그의 팀원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부분은 매우 탄탄해서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그렇게 다소의 걱정과 기대감으로 이번 작품을 읽었는데, 전작보다는 훨씬 풍부한 배경과 진행으로 몰입도를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그의 얼굴만 쳐다봤다.

몇 장 넘기니 악보가 나왔다.

"이건 악보예요." 그가 말했다. "오페레타 악보죠. 이 곡의 제목은 <한여름 밤의 비밀>." 그는 계속 미소 지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발레리가 물었다. "전 지금까지 그런 제목의 오페레타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세계적인 음악가의 친필 악보가 새로 발견되는데, 수백만 유로의 가치가 있는 미발표곡이라 여기저기에서 저작권을 사려고 전화가 빗발친다. 악보를 가진 이는 파리에서 극장을 운영했던 70대 노인 호프만, 그는 티비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우연히 자신이 유대인이며 60년 동안 독일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밝힌다. 방송이 나간 직후,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고 그의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서 자신에게 남겼다는 봉투를 건네 받게 된다. 그것의 정체가 바로 오페라 거장의 미출간 친필 악보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게 되고, 또한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 모두에 관심도 없고, 다시 독일로 돌아갈 생각도 없는 호프만 대신, 그를 방송 출연으로 이끌었던 기자 발레리가 그의 대리인으로 저작권 계약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 짧은 서막은 여기까지, 그 이후로는 프랑크푸르트의 선상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다섯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실종된 사건 수사에 이야기가 집중된다. 우리의 마탈러 형사가 등장하고, 그의 팀원들이 현장을 수색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추려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는 스토리는 꽤나 짜임새 있다. 동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살해 현장, 신원 미상의 사체 다섯 구에서 시작하여 피해자들의 신원이 밝혀지고, 현장의 증거로부터 누군가 그곳에 더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누군가가 파리에서 온 방송 기자 발레리라는 것까지 찾아낸다. 그리고 그녀의 행방을 찾으면서, 그녀가 프랑크푸르트에 온 이유로부터 사건의 배경과 동기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마탈러는 나치 만행에 대한 사실의 대부분은 잊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고 끔찍하다는 생각 그 이상은 아니었다. 불편한 심기와 흐릿한 죄책감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는 있었다. 동료 중 누군가가 유대인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하면 동료들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 끔찍했던 역사의 기록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무관심해지려고 하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어느 정도 그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당시에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과거의 끔찍한 그것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탈러 형사처럼, 그것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보면 자신이 얼마나 막연하고 불확실하게 생각했었는지 깨닫곤 한다. 특히나 그것이 나치의 만행,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사진과 기사, 자료들을 보면서도 눈앞에 있는 내용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끔찍할 테니 말이다. 

얀 제거스는 사건의 동기에 잔인했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방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던 사건을 담아내었다.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거장의 미발표 악보로 시작하는 이야기라, 음악적인 배경이 함께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정작 사건이 시작되면 그것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전작보다는 더 풍부한 이야기로 지루할 틈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갑작스런 결말 또한 살짝 아쉬웠는데, 두 편 모두 이런 방식이다 보니 어쩌면 이건 여운이 남는 결말을 위해 독자들로부터 뭔가 부족함을 느끼도록 하는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이 작품이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탈러 형사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이런 류의 시리즈 작품은 중심에 있는 캐릭터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주인공 형사에게만 감정 이입이 되어도 중간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곳은 어디 일까. 말도 안 되는 미신을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고, 침팬지가 웨이터의 흰색 조끼를 입고 서빙을 하며, 흑인이 중심가에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면 경찰이 체포하는, 미신과 두려움, 기만과 아첨이 섞여 있는, 거짓말이 진실을 압도하는 세상. 이 도시에서 살을 빼려면 우유에 촌충 한 마리를 넣어 마시기만 하면 된다. 촌충은 몸 안에서 최고 5미터까지 자라서 사람이 먹은 음식의 대부분을 갉아먹어 그를 날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특수한 달팽이의 껍질을 빻은 다음 19년에 한 번 개화하는 나무의 꽃잎을 말려 섞은 것을 먹으면 나비 같은 날개가 생겨난단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람이 훨훨 날아 감옥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1904, 이곳은 바로 아프리카이다. 오직 백인들만이 과장되게 크게 웃는 슬픈 대륙, 흑인들의 눈에는 적의와 슬픔, 백인들의 웃음에는 금세 두려움으로 번질 수 있는 염려가 담겨 있는 이상한 나라.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흑인들과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백인들이 공존하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

"흑인들은 노예일 뿐이라고요. 이곳처럼 잔인한 사람들 천지인 곳도 드물어요. 그리고 그들은 죄다 백인이죠. 당신이나 나처럼."

그가 다시 고개를 젓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그의 말에서 혐오감을 읽었다. 며칠 전 흑인 인부들의 눈에서 분노와 증오를 읽었듯이.

스웨덴 북부 산간벽지의 열일곱 한나는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집안의 장녀였기에, 온종일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극심한 여름 가뭄은 그들 가족에게 극한의 곤궁을 가져왔고, 한나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집을 떠날 것을 권한다. 아이 셋까지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넷은 어렵다고. 넌 이제 다 자랐고 네 한 몸쯤은 챙길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한나는 자신이 해안으로 나간다고 해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겠냐며, 자신을 내쫓으려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녀는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것. 이곳을 떠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녀는 열여덟 살이 되었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먼 해안도시를 향해 집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먼 친척들과는 연락을 할 수 없고, 그녀는 우연히 호주 왕복 항해선에서 선상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그 여정에서 2등 항해사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는 치명적인 열병에 감염되어 주고, 그녀는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미망인이 되고 만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배가 아프리카 도시에 정박했을 때 아무도 몰래 배를 떠나기로 한다. 항해를 계속하는 한, 죽은 남편이 아직도 배에 남아 있었으므로 자신이 슬픔에 굴복하고 말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나 렌스트룀이었던 여성이 한나 룬드마르크가되어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딛는다. 그곳은 포르투갈 령 동아프리카의 로우렌소 마르케스라는 항구 도시였다.

"그들 말을 믿지 말아요. 하나도 안 믿는 게 좋아요. 여기 흑인들이 할 줄 아는 건 거짓말뿐이에요."

한나는 아프리카에서의 첫 밤을 숨 막히는 더위와 끈질긴 복통으로 사경을 헤매며 보낸다. 무심코 투숙한 호텔의 매춘부가 그녀를 보살펴주었고, 한나는 조기 유산을 하고 겨우 기력을 회복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은 이름만 호텔일 뿐 실제로는 매음굴이었고,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그녀는 포르투갈인 매음굴 주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아 그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또 몇 달 만에 그가 죽게 되어 미망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한나 룬드마르크는 한나 바즈가 되어 남편이 남긴 매음굴과 그곳에 소속된 여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떠맡게 되고, 더불어 엄청난 부도 함께 가지게 된다. 그녀의 인생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마치 폭풍우를 만나기라도 한 듯이 휘청대며 그녀를 변화시킨다. 삶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이 미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왜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 나도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도시의 사람들과 닮아가기 시작한 것일까? 처음에는 한나도 흑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세뇨르 바즈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차츰 그 주장은 백인들에게도 인도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식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어쨌든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에 살고 있었다.

헤닝 만켈은 다들 알다시피 작가로 성공한 뒤 아프리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품의 배경이기도 한 모잠비크에 극단을 세워 운영했고, 죽기 전까지 평생 아프리카의 현실과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헌신적으로 몰두했다. 백 년 전 당시 동아프리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20세기 후반까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흑인들은 단지 피부색이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열등 인종이 되어 백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는 인종과 문화적 편견, 탐욕이 증오와 폭력으로 이어지고 두려움이 서로를 지배하는 세계를 한 여인의 삶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아프리카에 익숙해지면서, 한나는 백인들의 위선과 기만을 낯설고 이상하게 느끼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순간 익숙해지기도 한다. 흑인들은 당연히 열등한 존재라고 믿는 백인들은 흑인들을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둠속에서 그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신이 흑인들을 검게 만들었으니 그들에게는 색깔이 없다며 말이다. 그런 백인들의 행동이 곤혹스러웠던 한나는, 남편이 죽고 매음굴의 여자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게 되면서 점점 자신만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처음 들은 말이 흑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니 믿지 말라는 거였지만, 사실 백인들도, 인도인들도, 아랍인들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지만 소동은 다시 잠잠해지고, 남편의 배신으로 그를 죽여 감옥에 갇힌 한 흑인 여인을 목격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렇게 그녀는 한나 바즈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아나 브랑카로 남편의 살해 혐의로 투옥된 흑인 여인을 사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면 불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전조 같은 사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결의는 백인 사회의 공분을 사고, 거기다 흑인들로부터도 소외된다. 왜냐하면 흑인들은 언제나 백인들의 보이지 않는 보복을 느끼며 살고 있기에, 자신들을 위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애를 쓰는 그녀를 지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백인들이 스스로와 흑인들을 기만하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하는 흑인 세계에서 살고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이곳 사람들은 백인 없이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흑인들은 돌과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열등한 인종이라고 생각해. 반면에 흑인들은 어떻게 신의 아들을 모질게 학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지. 그리고 백인들이 심장이 곧 멎어버릴 만큼 늘 바쁘게 움직이며 부와 권력을 향한 끝도 없는 추구에 휘둘리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해. 백인들은 삶을 사랑하지 않아. 대신 시간을, 언제나 부족하기만 한 시간을 사랑해.

우리를 망치는 것은 바로 그 모든 거짓말들이야.

 

결국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산을 매음굴 여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한다. 그곳에서는 백인인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흑인들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녀가 배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뭐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해야 하나. 분명 슬픈 장면도, 감동적인 장면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가 함께 살아낸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무겁고 숙연해졌다. 그렇다. 이렇게 줄거리 요약만 길게 늘어놓고 말았지만, 이것은 그저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이었다. 피부색만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학대하는 그런 세상이, 실제로 존재했었으니 말이다.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며 착취하고, 온갖 부를 독점했던 백인들 조차 마냥 행복하지 만은 않았던 이상한 세계, 가진 자도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세계, 영혼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죽음을 택해야 했던 슬픈 세계, 침묵이 정말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세계, 나는 그런 이상한 세계를 이곳에서 경험했다. 이곳은 바로 세계의 끝, 아프리카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콩고양이 2 - 밥 먹어야지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집 강아지 토토가 아주 어렸을 적에, 종일 집에 혼자 두는 것이 걱정이 되어 회사가 끝나자 마자 집에 달려가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놈이 집 안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는 것이었다. 어라, 대체 어디 갔지? 혼자 밖에 나갔을 리는 없고, 어디 숨어 있나..로 시작했지만, 점점 보이지 않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그 짧은 몇 분 사이에 온갖 생각이 다 머릿속으로 지나간 것이다. 설마, 도둑이 와서 우리 토토를.....!!!! 아냐, 말도 안돼. 그냥 낯선 사람에게 당할 토토가 아니지. 하지만 이 놈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아무에게나 덥썩 안기곤 하니 그럴 수도.... 온갖 허황된 상상이 머릿속에서 춤추다 한 순간 딱 하고 멈춰버렸다. 토토를 찾은 것이다. 옷방 한 켠에 미처 개지 못하고 흐트러져 있던 옷들이 한군데 쌓여서 그럴듯한 옷 무더기를 만들었고, 그 속에 쏘옥 들어가서 자고 있다 깬 것이었다. 푹 잠이 들었는지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뒤늦게 듣고는 그제야 부시시 눈을 뜨고는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라니. 대체 어떻게 이 옷들을 하나로 모아서 그 속에 쏙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에피소드들이 일상의 잔잔하고도 소소한 즐거움으로 남고는 한다. 이번 <콩고양이> 두 번째 이야기는 배경이 겨울이라 그런지, 유독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토토가 떠올라서 더 애틋하게 읽을 수 있었다.

 

'팥알이와 콩알이가 생애 처음 만난 겨울'이 두 번째 이야기의 테마이나 보니, 감기에 걸리는 에피소드도 있고, 추위를 피해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곳만 찾아 다니고 고타쓰를 유독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고양이랑 강아지 등의 동물은 몸에 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추위를 덜 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게 사실이 아닌지 우리 집 토토도 집에서 유독 따뜻한 곳만 쏙쏙 찾아 다니곤 한다. 찬바람 드는 창문 근처보다는 침대 곁에, 맨 바닥보다는 두툼한 카펫을 깔아놓은 곳으로, 이불이라도 덮고 앉아 있노라면 어느 샌가 옆에 와 있기 일쑤이고 말이다. 사람의 체온을 좋아하는 동물이라 그런지 언제나 몸을 딱 붙이고 앉아 있길 좋아하는데, 그게 겨울에는 유독 심하다 보니 강아지도 겨울인 걸 아는 구나, 추위를 타는 구나 싶었던 적이 참 많았다. 그런 소소한 공감들이 가득 그려진 에피소드들이 많아 절로 팥알이와 콩알이에게 감정 이입이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내복씨 곁의 잠자리를 사수하고 싶지만, 마당이 추울까 방에 들여놓은 닭이 무서워서 살금살금 몰래 방에 진입하는 팥알이와 콩알이도 너무 귀엽고, 밤눈 어두운 닭 덕분에 몰래 잠자리에 들어왔지만,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입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꼬꼬 닭 덕분에 이불 속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땀만 삐질 대는 건 정말 너무 귀여웠다. 이번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주인님과의 에피소드보다는 할아버지 내복씨와 마담 북슬, 그리고 집동자귀신 아저씨와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 첫 번째 이야기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까칠한 마담 북슬은 더욱 사나워(?)졌고, 집에서 존재감 제로인 아저씨가 선보이는 의외의 활약(?)은 흥미진진하고, 생긴 것 과는 달리 너무도 마음 따뜻한 할아버지 내복씨는 겨울에 더 빛을 발한다. 매일같이 한파 주의보에 몸도 마음도 시린 이 계절, 팔알이와 콩알이와 함께 알콩달콩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건 어떨까. 아무 페이지나 쓱 펼쳐도 네코마키의 심플하고 위트 있는 드로잉은 시선을 사로잡고, 천방지축 팥알이와 콩알이의 활약은 중독성 있게 자꾸만 빠져들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이들과 함께 북적대는 가족의 풍경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공감되고, 미소짓 게 해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싸구려 선술집에서 탱고벨트에 있는 나이트클럽, 평범하고 조용한 가정집, 카페에 이르기까지 수천 곡의 재즈 음악이 흘러 넘쳤다.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도구란 도구는 모두 동원되어 온 도시가 재즈로 뒤덮인 것이다. 밴드가 없는 곳에는 빅터 축음기, 전축, 그리고 노래를 자동으로 연주하는 피아노가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취미로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오랫동안 쓰지 않은 악기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술김에 몇 음이라도 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함께 어울려 연주했다. 마치 한 영혼이 도시에 있는 모든 악기를 사로잡아 마법을 걸어서 노래로 퍼져 나오게 한 듯.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음악에 홀려 비틀거리며 돌아 다녔지만, 전혀 축제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체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19년 미국 뉴올리언스, 일명 도끼 살인마라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온다. 누구도 날 본 적 없으니, 자신은 앞으로도 결코 잡히지 않을 거라고,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지옥불에서 온 귀신이자 악마라고. 그러면서 일종의 경고를 한다. 다음 주 화요일 밤에 다시 한 번 살육의 밤이 펼쳐 질거라고. , 자신은 재즈 음악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이 말한 시간에 재즈 밴드가 연주 중이면 그들은 모두 무사할 것이고, 연주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끼 세례를 받을 거라고 말이다. 이 사건은 실제로 벌어졌던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실제로 도끼 살인마는 검거되지 않았지만, 마치 이 소설 속 범인이 진범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리얼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물론 너희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나를 아주 끔찍한 살인마라고 생각하지. 사실이 그래.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난 더 극악해질 수도 있어. 매일 밤 뉴올리언스를 찾아갈 수도 있단 말이지. 유망한 사람들을 수천 명도 맘껏 죽일 수 있어! 난 죽음의 사자와 막역한 사이니까!

이제 지상의 시간으로 다음 주 화요일 밤, 정확히 12 15분에 뉴올리언스를 지나갈 거야. 내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너희에게 자그마한 제안을 하지. 잘 봐.

특히나 이 작품이 압도적인 점은, 바로 범인 추적의 플롯이 여타의 범죄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도끼 살인마를 쫓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플롯이 전개되는데, 각자 전혀 다른 용의자를 추적하고, 그에 따라 다른 방향의 실마리를 찾아, 완전히 판이한 그림을 완성하는데, 결국은 그것이 교묘하게 겹치면서 클라이맥스에 만나게 된다. 이들 세 명이 도끼 살인마를 쫓게 되는 이유도 다르거니와, 각각 캐릭터의 성격도, 배경도 다른 것은 그럴 수 있지만, 이렇게나 사건 수사의 내용이 다를 수 있을 까 싶을 정도로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흘러가는 작품은 처음이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덕분에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툼한 분량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가버린다.

"이봐, 마이클. 도끼 살인마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야. 자넨 유령을 쫓고 있거든."

, 그럼 도끼 살인마를 쫓는 세 명의 인물들을 살펴보자. 우선 도끼 살인마 사건의 공식적인 담당인 마이클 탤벗 형사. 그는 경찰서 내에서 비호감, 공공의 적이자 일종의 왕따이다. 이유는 5년전 자신의 사수였던 루카를 밀고 했기 때문이다. 부패 혐의 재판에서 그에게 반대 증언을 한 뒤로, 경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증오하고 불신했다. 하지만 사실 그 사건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부의 계획이기도 했다. 그가 초짜 형사였던,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루카와 그 일당들을 잡기 위해, 그의 신임을 얻어서 그 단체의 일원이 되고, 행적을 기록하라는 지시를 받은 거였다. 이미 지방 검사 사무실에서 심의관 일당이 그를 루카가 속한 범죄 조직에 침투시킬 준비가 치밀하게 되어 있었던 터라, 그에겐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거다. 게다가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흑인 아내였다. 당시는 흑인과 백인의 결혼이 불법이었고 유죄였기에, 대외적으로는 그의 가정부로 살고 있는 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공공연히 동료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바늘 방석 같은 경찰서 내에서 동료들의 외면에도 꿋꿋하게 수사를 이끌고 있지만, 사건에 대한 단서는 희박하다. 그 와중에 그의 밀고로 수감되었던 루카가 모범수로 가석방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다시 웃었다. 마이클은 루카에게 전에 그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말할 수 없었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루카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루카 단드레아는 자신의 후배였던 마이클의 밀고로 감방에서 6년이나 썩었지만, 사실 그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열네 살에 뉴올리언스에 왔고, 부모님이 두 분 다 유행성 콜레라로 돌아가시자, 빈털터리로 혼자가 된 그는 마트랑가 일가의 심부름꾼 일을 하게 된다. 열여덟 이 되던 해에 경찰이 되라는 권유를 받았고, 합법적으로 범죄를 해결하는 동시에 카를로와 마트랑가 집안 사람들을 도왔다. 정보를 유출하고 증거를 인멸해서. 결국 그는 부패 경찰로 낙인 찍히고 감옥으로 갔고, 수감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전 재산을 맡겼던 은행이 경찰의 단속에 걸리는 바람에 빈털터리인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스 카를로를 찾아가고, 카를로는 그에게 도끼 살인마를 잡으라고 한다. 살인마가 자신들의 조직을 사람들에게 나약하게 보이게 하고 있으니, 잡아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거다.

아이다는 전차에 오르며 이것이 더 이상 단순히 수사하고 싶은 사건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는 수사에 몰두해서 모발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끼 살인마를 쫓는 이는 바로 핑커턴 탐정 사무소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아이다 데이비스이다. 그녀는 신문에서 도끼 살인마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사건 조사에 뛰어 들게 된다. 몇 년 전에한 간호사가 이번에 살해된 부분에 대한 정보를 팔려고 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신문에서 무고한 희생자라고 말하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애초에 그녀는 허구한 날 편지에 답장하고 서류 정리를 하거나 심부름만 하는데, 현장 근무를 하고 싶어하는 열혈 탐정 지망생이기도 했다. 평소에 코난 도일이 쓴 책을 읽거나 책에 쓰인 말을 인용했고, 사실 경찰이 되고 싶었으나 그녀는 여자였고, 거기다 흑인 혼혈이었기에 그나마 탐정 사무소에 일을 얻은 거였다. 똑같이 단조로운 일만 하느라 갇혀 지내는 지루하기 짝이 없고, 질식할 것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그녀는 독자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자신의 소꿉 친구이자 조력자인 재즈 음악가 루이스와 함께.

두 사람은 하염없이 황량한 풍경을 바라봤다. 곧 무너질 듯한 판잣집들, 흔들리는 나무와 호수, 우둔하게 땅에 내리꽂는 비. 질식할 것처럼 암울한 풍경에 루카가 움츠러들 법도 했다. 벼랑 끝에 서 본 사람만이 혼돈 그 너머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루카는 그 안에서 어떤 아름다움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고 강어귀의 황량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 암흑의 세계가 삶이 시작되는 곳임을 감지했다.

순간 한 이웃이 만돌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이중주가 되어 빗속에서 경쾌한 스타카토처럼 들렸다. 루카는 도끼 살인마의 편지 때문에 연주를 해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시작한 건지 궁금했다. 음악은 루카가 전에 이웃이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보다 슬프지는 않았다. 마치 만돌린 연주자가 파트너를 찾아서 곡도 덜 외로운 것처럼 들렸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악명을 떨쳤던 연쇄 살인범 '도끼 살인마'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여섯 명을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전후 불안정한 시기와 연쇄 살인으로 공포에 사로잡혔고, 거기다 범인이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를 신문사에 보내면서 그 혼란은 더해갔다. 아직까지도 범인이 잡히지 않아 세계적인 미제 살인 사건 중 하나로 남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만은 완벽하게 완결된 서사와 탄탄한 플롯으로 마무리된다. 특히나 이 작품이 매혹적인 것은 20세기 초 뉴올리언스의 시대상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분명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인데도, 잔인하고 끔찍한 미스터리의 느낌보다는 일종의 대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묵직하고 진중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떠올랐다고 하면 오버일까. 단순히 뉴올리언스가 이탈리아 갱단들이 초기에 악명을 떨치던 지역의 한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금주법 시행을 앞둔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혼혈과 흑인의 비율이 많았던 뉴올리언스 특유의 지역적 특성이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 강한 세 명의 캐릭터 외에도, 아이다의 친구인 루이스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거쳐 음악을 하게 된 재즈 음악가 루이 암스트롱이 모델이라 더욱 흥미롭고, 마이클과 함께 수사에 참여하게 된 10대 후반의 경찰 후보생 케리의 역할 또한 루카와 마이클 관계의 축소판 같아 가슴을 울리는 지점들이 종종 등장한다. 과거와 현재가 상징적으로 연결되고, 실재와 허구와 교묘하게 녹아 들면서 구축된 서사는 어마어마한 무게 감을 만들어낸다.

, 난 이렇게 뭉클하고,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범죄 소설로 2016년을 시작하는구나 싶어, 올 한 해가 어쩐지 매우 기대가 된다. 게다가 이 작품은 레이 셀레스틴의 '무려' 데뷔작이다. 현재 이 작품의 후속 작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작품의 마지막에 경찰을 그만두고 시카고에서 탐정 일을 시작한 마이클과 뉴올리언스를 떠나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다의 만남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 부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강명 작가는 아마도 작년 한해 가장 ''한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이어 <댓글부대>까지 한 해 동안 무려 세 권의 신작이 줄줄이 소개되었고, 그 모두가 이슈가 되었으니 말이다. 베스트셀러 판매 순위에서 한국 소설이 단 한 권도 20위 안에 진입하지 못한 반면에, 거의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한국 소설 또한 장강명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 소설의 추락 속에서 화제가 되고, 독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는 한국 소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당연히 나도 그의 작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았지만, 사실 작품의 시의적절성(?)은 인정하지만 그다지 공감 내지는 감동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서 아쉬웠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그의 신작이 나오자 또 챙겨보고 있으니, 그가 소재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능력 하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실제와 유사한 설정이 독자들에게 실감 나는 리얼리티를 선사하지만, 불편함을 자극할 수도 있다. 작가는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지길 바라며 썼다'고 하는데, 그의 바람대로 이 작품은 매우 불편하다.

그런데 왜 사회가 바뀌지 않지? 그건 기득권 탓이고,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그 기득권과 결탁해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는 댓글을 쓰는 한 사람을 다른 아홉 사람이 불편해하고 은근히 따돌리게 되네. 온건한 진보주의자 열 사람이 모여서 시국을 논의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중 세 사람은 극좌파로 변하게 돼.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은 자기가 극단적이라는 사실도 몰라. 왜냐하면 자기 옆에 있는 아홉 사람의 평균 의견이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잘 쓰인 허구의 이야기는 진짜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라고 하지만, 사실 같은 부분들이 지나치게 많다. 특히 허구로 만들어진 몇몇 사이트에 비해 극우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는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그런 커뮤니티를 실제로 접해보지 못하고 무성한 소문만 들어왔던 나 같은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들에게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 꽤나 있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나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알고, 인터넷을 통해서 유포되는 수많은 거짓들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익숙하게 피부에 와 닿게 경험해보지는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그래서 역시나 이번 작품도 내용적인 면에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 페이지를 설렁설렁 넘기게 되고 말았다. 자신이 쓴 소설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독하다'는 문구대로, 작가가 참 빠른 시간에 썼겠구나 싶은 이야기라고 할까. 깊이보다는 자극에 관심이 많은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심사평인 '경쾌하고 날렵한 문체,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은 인정한다. 빠르고 쉽게 읽히는 것이 비단 페이지 수만의 이유는 아닐테니 말이다.

인터넷 여론조작업체 팀-알렙의 멤버는 20대 청년 삼궁, 01()10, 찻탓캇으로, 모두 일베 죽돌이이다. 인터넷을 통해 거짓으로 만들어진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그들의 능력은 가히 가공할 수준이어서, 특정 영화를 망하게 만들기도 하고, 떠오르는 인기 강사를 그만두게 하기도 하고, 교사가 사직서를 제출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짜 구매후기나 가짜 상품평부터 시작해서, 바이럴마케팅으로 발전한 이들의 손에서 태어난 악평, 악플들은 전혀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해도 엄청난 효과를 거두고 만다. 우리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뭘 해도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큼 사람 정신을 좀 먹는 것도 없어. 사람들도 그걸 알아. 어떻게든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아주 발악들을 해. 취미에 몰두해서 걱정을 떨쳐버리려 하기도 하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면 혹시 없던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몇 번씩이나 두드려보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술을 퍼 마시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끝내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다 화를 내게 돼. 자기가 잘못한 게 없잖아. 그런 때 화가 안 나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야. 사람들은 분노하고, 희생양을 찾기 시작해. 지금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무상복지가 얼마나 이뤄지는지 같은 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미래고 희망이야.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이철수' '남산의 노인'으로 부터 현실 속 저항세력의 근거지인 인터넷 주요 커뮤니티를 무력화시키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해킹이나 디도스 공격처럼 하드웨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트가 이용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없애거나 현저히 약하게 만들라는 그는, 그 커뮤니티 이용자들한테 세상은 그곳이 보여주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했다고 한다. 대체 그게 누구한테 무슨 이득이 생기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알렙은 꽤 많은 비용을 받고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뭐?"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 같다고."

이야기는 팀-알렙의 멤버 찻탓캇이 진보 성향 일간지 K신문 기자에게 자신들이 해온 조작 사실들을 폭로하는 인터뷰와 그들이 실제 현실에서 벌이는 일들로 교차 진행된다. 아마도 더 리얼하게, 현실적인 느낌을 주고자 인터뷰 형식을 빌어온 것이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이야기는 매우 노골적이고 딱딱한 부분들도 많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등의 소제목들이 사실 이야기 자체보다 더 임팩트가 있고 재미있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야 하는 건데 말이다.

누군가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그 지점부터 욕심, 권력이 생겨나고 그렇게 만들어진 욕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커져서 제어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서 만들어지는 권력은 여론을 조작하려 하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부분을 건드려 그들의 증오를 이끌어내는 그들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그것이 비단 허구의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그렇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