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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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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장편소설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익사>를 읽었고, 그 전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를 읽었었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서 비롯되듯이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강렬한 이야기였고, 작가의 자전적인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들은 읽기가 마냥 편하고 쉬운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그의 단편들을 만나보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하게 들었다. 장편도 물론 좋았지만, 단편이야말로 작가의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 그의 삶을 관통하는 사상과 생각이 제대로 드러나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장편은 일단 호흡이 길기 때문에 둘러 갈 수도 있고, 숨겨 두었다가 은근하게 보일 수도 있고, 하고자 하는 그것에 다가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 인 반면, 단편은 짧은 이야기 속에 그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하기 때문에 에둘러 가지 못하고 정면 승부해야만 하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전쟁 때 너는 아직 어린애였겠지?

긴 전쟁 동안 나는 죽 성장했어. 나는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는 것만이 불행한 일상의 유일한 희망인 것 같은 시기에 성장해 왔다. 그리고 그 희망의 징조가 범람하는 가운데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 시체가 어른의 뱃속 같은 마음속에서 소화되고, 소화가 불가능한 고형물이나 점액이 배설되었지만, 나는 그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윽고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도 흐지부지 녹아 버렸다.

-나는 너희의 그 희망이란 걸 온몸으로 짊어지고 있던 셈이지. 다음 번 전쟁은 너의 차지가 되겠구나.

 

이번 단편집은 오에 겐자부로가 60년 가까운 작가 생활 동안 발표했던 모든 단편소설 중에서 직접 스물세 편을 가려 뽑아 고쳐 썼다고 한다. 그가 소설 집필을 그만둔 뒤 자신이 발표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고 고르고, 거기다 문장까지 모두 꼼꼼히 손을 본 보물 같은 작품집이니, 그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기에는 이만한 책이 또 없을 것이다. 스물 세 편의 단편들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그의 작품들을 어렵게만 느끼는 이들에게도 초기의 이야기들은 꽤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기묘한 아르바이트> <사자의 잘난 척>에서는 죽음을 대하는 독특한 시선을 볼 수 있고, <사육>에서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반응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인간 양>은 지금 현대의 우리 모습을 보는 듯 사회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중기로 넘어가면 연작 소설들로 단편이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중기에 실린 이야기들에 마음이 갔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의 첫아이는 뇌에 치명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성인이 된 큰아들은 천재적인 음감을 지닌 음악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일상 생활은 미숙하다.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가끔은 간질 발작도 한다. 그는 아들의 삶에 쉽사리 간섭하지 않는데, 아들을 바라보는 강인하면서도 담담한 아버지로서의 시선은 가슴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 고통, 그리고 절망을 넘어서 문학으로 보편성을 다루게 된 대 작가의 눈물겨웠던 삶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기로 들어가면 자신의 자전적인 부분을 넘어서는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확실히 집중력을 요하고, 그만큼 어렵긴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내밀한 작가적 성향,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이요는 지상 세계에 태어나 이성의 힘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고 무언가 현실 세계의 건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블레이크에 의하면 이성의 힘은 오히려 인간을 착오로 이끌며 이 세계는 그 자체가 착오의 산물이다. 그 세계를 살면서 이요의 영혼의 힘은 경험에 의해 손상되지 않았다. 이요는 순수한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이요와 내가 이윽고 '레인트리' 속으로, '레인트리'를 지나서, '레인트리' 저 너머에 이미 합일을 이루었으나 개체로서 더욱 자유로운 우리가 귀환한다. 그것이 이요에게나 나에게 의미 없는 삶의 과정일 뿐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스스로 장애를 가진 큰아들과의 공생과 블레이크의 시에서 환기된 영감을 하나로 엮어서 일련의 단편집을 완성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들을 중심으로 아내와 여동생 남동생을 포함한 가족의 지금까지의 나날들을 돌아보고 앞날을 전망해 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오에는 누구나 꿈꾼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그의 삶 자체는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의 자살, 장애가 있는 아들, 작품성에 대한 비판 등 그는 고난의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았고, 그 모든 경험들은 그의 문학으로 승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 나이에 시작해 버린 소설가로서의 삶에 본질적인 곤란을 평생 느끼며 살아 왔다는 오에 겐자부로. 그는 자신이 쓴 것을 고쳐 쓰는 습관으로써 그것을 극복해 왔다고 말한다. '긴 시간을 들여 경험을 통해 그것을 기른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커다란 곤란을 만났을 때, 그 습관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위대한 노작가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삶의 습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묵직한 무언가를 남겨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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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캐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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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낯선 도시를 향해 나아갔던 여인, 블랑쉬는 현대인의 욕망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보여지던 캐릭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 앞에서 흔들리다 결국 굴복하고 만다. 그래서 혹자는 욕망을 삼키는 건 독약을 삼키는 것과도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의 기준으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이 그들이 가진 욕망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독약을 삼키게 되더라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또 당연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 자신의 욕망에 순수하게 충실했던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스토리만 보자면 신파, 통속 멜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감춰진 것들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도발적이며, 사실적이고, 무자비하고, 날카롭다.

행복한 가정 분위기는 이 세상의 꽃이다. 그보다 더 부드럽고 섬세한 것은 없으며, 그 안에서 보살피고 키워야 할 본성들을 강하고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그보다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것은 세상에 없다. 이러한 행복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어째서 눈가에 눈물이 반짝이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묶어주고 황홀하게 하는 신비스러운 화음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의 기본 플롯은 다소 평범하다. 대도시로 상경한 시골 처녀가 배우로 성공 하기까지를 그리고 있는데, 19세기 말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순진한 소녀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지와 젊음의 환상으로 가득 찬, 수줍으면서도 밝은 열여덟 처녀 캐리는 고향을 떠나 시카고로 향한다. 여행 경험이 전무한 그녀에게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대도시는 그 자체로 굉장한 사건이다. 그녀는 언니네 집에 거주하면서 일자리를 구하기로 하는데, 언니네 역시 궁핍하고 팍팍한 생활의 고단함에 그녀를 딱히 반기는 기색은 아니다. 언니인 미나도, 형부인 핸슨도 캐리가 일자리를 얻어서 숙식비를 낸다는 조건 하에 그녀를 받아들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경력직을 구하는 터라 아무 것도 해본 적이 없는 촌뜨기 시골 소녀를 환대해 줄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다 경우 구두공장에 주급 사 달러 오십 센트에 취직을 하게 되지만, 언니에게 숙식비로 사 달러를 주고 남은 오십 센트로 일주일을 버텨 내는 것 또한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일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저속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내들의 추파도 부담스러웠으며, 함께 일하는 여자 동료들 또한 가깝게 지내고 싶은 부류가 아니었다. 퇴근해서 언니에게 일에 대한 불평을 해도 그녀를 위로해주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었으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캐리에게는 당장 겨울 옷을 살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그나마 구했던 일자리마저 잃게 되고, 그녀는 어깨가 축 처져서 사흘 동안 거리를 헤매며 일자리를 찾으러 다닌다. 그러다가 우연히 거리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그 순간 이후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시카고로 오는 열차에서 만나 자신에게 호감을 보였던 드루에는 그녀를 데리고 최고의 요리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고 안락한 식당으로 데려가 식사를 하게 해주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녀의 처지를 듣고는 옷부터 사야겠다며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녀는 잠시 거절했지만 결국 그에게 매혹적인 십 달러짜리 초록색 지폐 두 장을 받는다. 캐리는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희망차고 다 잘 될거라는 낙관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가 자신을 곤란에서 끌어내준 듯한 느낌에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는 형부와 언니네에 더 이상 함께 있기도 어려운 상황에, 고향에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 그녀에게 드루에와의 만남은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직 본능을 대신하여 인간을 완벽하게 이끌어줄 수 있을 만큼 발전하지 못했고, 인간은 본능과 욕망에만 귀 기울이기에는 너무 현명해졌으나 본능과 욕망을 압도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나약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과연 누가, 이 어린 처녀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녀가 욕망에 눈이 멀어 누군가를 속이거나,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려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앞에 다가온 손을 거절하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캐리가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것이 좋았다. 그녀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본능과 이성, 욕망과 이해가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싸우고 있었지만, 사실 대부분의 인간들 중에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이들이 얼마나 있겠느냐 말이다.

사실 이것은 이 방대한 이야기의 아주 미약한 시작에 불과하다. 그녀가 드루에와 어떻게 지내고, 그를 통해 알게 된 허스트우드와 또 어떤 관계로 발전하고, 그것이 결국 두 남자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변하게 만들지, 그리고 예쁘지만 촌스러웠던 시골 처녀가 어떻게 대도시의 유명 배우로 성공하게 되는지에 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굳이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직접 책을 읽으면서 만나게 될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애정의 영역에 속하는 욕망에 있어서는 돈도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중에 백오십 달러를 쥐고도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돈 그 자체는 만질 수도 있고 바라볼 수도 있는 분명한 실체를 지닌 것으로, 며칠간은 기분 좋게 해주었지만, 그런 기분도 곧 사그라졌다. 호텔 요금으로 돈을 쓸 필요는 없었고, 옷도 당분간은 충분했다. 며칠 지나면 또 백오십 달러가 들어올 것이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데 그 돈은 놀랄 만큼 별 필요가 없었다. 더 나은 일을 하고 싶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려 1900년에 쓰인 작품이다. 그런데 2016년인 지금 읽기에도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며, 공감적이다. 게다가 이 작품이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첫 작품이란다. 세상에 첫 작품을 이렇게 써내다니! 놀랍고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페이지 내내 밑줄 긋고 싶은 섬세한 문장들, 그리고 행간 속에 숨겨져 있는 인물들의 감정들, 가슴을 두근거리고 만드는 순진한 처녀의 욕망과 설레임을 가장한 내면의 치열한 전쟁, 본능과 이성, 욕망과 이해가 다투는 세밀한 심리 묘사들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 세트처럼 가득 들어 차 있다. 이렇게나 평범하고 단순한 플롯으로, 이렇게나 뻔하고 예측 가능한 인물들로,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사회를 보여주고, 직설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다니,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도덕성도 지성도 완벽하지 않은, 나약함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물이라서 더욱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고, 연민이 들어 감정 이입이 되는 것도 있다. 그 누구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우리 모두는 한때 캐리였던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때 단순히 개인의 능력으로 모든 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환경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발표 당시 비도덕적이라는 여론의 비난에 작가가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며 자살까지 결심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무려 10년 후에야 두 번째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고.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 작가의 어마어마한 이 작품은 단연코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상위에 놓아 두고 싶을 만한 매혹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급히 찾아 봤더니 다행히도 그의 다른 작품이 아직 판매 중인 걸로 확인된다. 무려 1999년에 출간되었던 <미국의 비극> 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서 더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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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마더스
도리스 레싱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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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폰테인이 감독한 영화 <투마더스(Two Mothers)>는 개봉 당시 꽤나 충격적인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 친구였던 두 여인이 각자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평범한 중년의 부인들이 되었는데, 그들의 관계는 어릴 때부터 친 가족처럼 지내온 것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쭉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의 두 아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너무도 가족처럼 지내던 이들이라 단순히 불장난이라기 보다는 근친상간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던 영화였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기에 실제로는 이들의 사랑이 1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이야기에 더욱 놀랐었다. 암튼..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잔잔하고 영상도 아름다웠고, 두 여배우의 섬세한 감정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금기의 판타지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은 바로 도리스 레싱의 <그랜드마더스>를 원작으로 했었다.

"우리 우아하게 늙자." 릴이 말했다.

"천만에." 로즈가 말했다. "나는 절대로 순순히 끌려가지 않겠어."

늙기는커녕 아직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흔을 넘겼고, 아이들은 누가 보기에도 이제 아이가 아니었으며, 거침없이 아름답던 시절도 지나갔다. 이젠 그 둘, 강하고 자신만만하고 잘생긴 두 젊은이를 봐도 그들이 한때 갈망이나 사랑 못지않게 경이로움으로 눈길을 사로잡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두 여자는 자신들의 두 아이가 젊은 신 같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기하며 사진첩을 뒤졌지만, 자신들의 예전 사진에 그저 예쁜 소녀들만 있을 뿐 그 이상이 아닌 것처럼 그 또렷한 기억의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도리스 레싱은 이 소설에서 서로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젊은 두 아들의 친구에게서 이 금기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림 같은 해변, 그림 같은 두 집, 그림 같은 두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사회적 금기와 도덕적 관습을 초월하여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어머니와 두 아들의 이야기는 영화에서보다 소설을 통해서 더 담담하고, 위험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완벽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세상을 속이는 사랑은 그들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서 그 파급효과를 적나라게 하게 드러낸다.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에서는 빈부격차와 인종갈등이라는 배경 아래 중산층 백인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된 하층민 흑인 여자의 모성애를 그리고 있다. 운명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나는지 모른 채 하릴없이 발버둥 친 무기력한 존재에서 딸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다는 이유로 강인한 여인이 되어가는 빅토리아는 짧은 사랑의 댓가를 온 생애를 통과하며 겪어 낸다.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했던 환상, 사랑에 빠졌다고, 심지어 서로 사랑했다고 믿고 싶었던 그것. 하지만 사실 그들은 사랑하는 것과 한참 거리가 멀었었지만 말이다.

그렇잖아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빅토리아의 머릿속으로 뭔가 엄청난 진실이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그 말은 마치 이 방이 집의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모네 집 거실에서 간이침대를 펴고 자는 빅토리앙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옹하듯 감싸주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엄지를 입 속에 넣었는데, 그러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아기가 아니야. 이러면 안 돼.

<그것의 이유>는 조금 특별한 상황 설정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가상의 고대국가인 로다이트 왕조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그 이유를 집요하게 파고 든다. 나라가 황폐해지고 타락해가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 그들이 보지 못했던 그것.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후대의 왕을 선택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저 아들의 엄마였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해맑게 매력적이고 유쾌하지만 멍청한 그녀의 아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국가를 통치했던 12인 위원회들 또한 그 순간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지만 막지 않았다 한 국가의 흥망을 파헤치면서, 결국 그 속에 있었던 것은 빗나간 모성애였던 것이다. <러브 차일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영국 군인 제임스의 사랑과 집착에 대해 그리고 있다. 도리스 레싱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때문에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일은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누구든 자신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면 좋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이 작품집 속에서 여러 가지 사랑의 형태를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그것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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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3-2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 마더스]가 도리스 레싱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그 소설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요. 사실 영화 자체는 저는 별로였거든요. 오히려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도 끌리네요. `짧은 사랑의 댓가를 온 생애를 통과하며 겪어`내는 게 어떤 건지, 보고싶어요.

피오나 2016-03-28 17:06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는 그닥.. 원작 소설이 훨씬 좋더라구요^^ 어쩐지 이 책..다락방님 역시 좋아하실 것만 같은.. ㅎㅎ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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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항상 집이 비어 있던 게 불만이었다. 찌개만 데우고 밥솥에서 반만 퍼서 먹으면 되는, 엄마가 미리 식탁에 차려 놓은 밥을 동생과 챙겨 먹는 것도 항상 귀찮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친구들도 대부분 부모들이 맞벌이를 해서 비슷한 처지였기에, 빈 집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을 거다.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 있던 조그만 빵집에서 솔솔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가지고 있던 용돈을 털어 빵을 하나 사왔다. 그날 이후, 거의 습관처럼 그 빵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엄마가 비운 빈 자리를 허전하지 않게 든든히 지켜주는 건 언제나 빵이었다. 갓 구운 빵 하나만 들고 있으면, 밀린 숙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성적표도, 친구와의 다툼도 다 잊어 버리고 행복해졌으니 말이다. 퍽퍽하지만 담백한 스콘은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고, 진한 초코 향의 브라우니는 우울했던 기분마저 사라지게 만들어주었고, 특유의 향에 매혹되었던 시나몬 롤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고, 우유랑 함께 먹으면 너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카스텔라는 친구랑 함께 먹으면 든든한 기분이었고, 살짝 얼렸다가 먹으면 마치 아이스크림 같은 베이비슈 역시 나의 단골 간식이 되어 주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빵을 즐겨 먹는다. 이제는 직접 계량을 하고 반죽을 해서 직접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전국의 유명한 빵집들은 죄다 한번씩 가 보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맛이 있었던 건 소박한 동네 빵집에서 평범하게 구웠던 당시의 빵들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특별한 시기를 상징하는 음식은 시간이라는 틀을 거쳐 추억으로 박제가 되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영혼마저 감싸주는 소울 푸드가 된다. 이 책은 2001년작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에 새로 두 편의 글이 추가된 개정판이다. 황석영 작가가 그 동안 걸어온 모든 길에서 음식이 사람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음식이 그의 수많은 희로애락을 어떻게 함께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이 책은 마치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푸근함마저 안겨주는 에세이집이다. 게다가 그가 표현하는 음식 재료와 상세한 조리법들은 웬만한 요리책 못지 않은 풍부한 묘사로 작가의 미식 수준까지 감탄하게 되고 만다.

밥상에 함께 올라온 모시조개 넣고 된장 고추장에 끓인 '냉이토장국'은 옛날의 잊혀진 사진같이 정겨웠다. 겨울의 하얀 냉기 속에서 봄날의 풀꽃들을 찾아내는 기쁨 같은 것이다.

한겨울에까지 눈 속에 남아 있던 불미나리와 냉이무침의 싱그러운 맛은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옛 시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불미나리 무침과 파래김치 같은 맛들은, 묵은 김장김치며 기름진 육것으로 포위된 듯한 한겨울에 봄을 재촉하는 방안 화초의 물기 어린 방향과도 같다.

사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밥상은 작은 우주와 같다. 아니, 밥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리 거창한 비유를 할까 싶을 수도 있지만, 음식만큼 일상에서 손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또 있을까 잘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끼니를 때우거나, 시간에 쫓겨 대충 배만 채우거나, 단지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만 목적을 두며 살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 인생을 되돌아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한 음식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석영 작가가 펼쳐내는 음식 이야기는 작가의 전 생애를 거치며 바로 삶 그 자체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무궁무진하다. 나라의 경제가 신통치 않았던 육십 년대에 보낸 군 시절의 음식들, 유년시절 전쟁 직후의 음식들과 미군부대의 퓨전 요리들, 구치소와 감옥에서 보낸 다섯 해 동안의 음식들이며 첫사랑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과 김일성 주석과 함께 먹었던 특별한 음식 등등 너무도 다양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펼쳐진다.

출근길 지옥 철에서 시달리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안은 풀리지 않고, 연인은 속을 썩이고, 그렇게 종일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극대화가 된다. 그러고 퇴근해봐야 어두운 집에서 나를 반기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대충 차려서 배를 채우고 거실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노라면 다음날 다가올 출근에 대한 압박으로 답답해지고 말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아닐까. 이상하게 내 입맛에 꼭 맞는, 맵지도, 그렇게 짜지도,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면서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가도 감칠맛이 돌고, 두 그릇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만 같은 포만감을 주는 그럼 엄마 표 밥상 말이다. 우리는 바로 그 밥 힘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책에 실린 여러 에피소드들을 읽는 내내 나는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따스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의 위대함과 기쁨을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도의 음식을 들라면 우선 짜고 맵고 투박하며 원색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다른 지방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 더러 있다.

부산에 갔을 적에 이른 아침에 아낙네들이 '재칫국 사이소!'를 외치며 창 밖을 지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재첩조개를 넣고 소금으로 간하여 끓여낸 국은 개운하고 속풀이에 좋았다. 요즈음 점심참에 먹기 좋지만, 우뭇가사리묵을 채 썰어서 콩가루와 갖은 양념을 하고 식초 섞은 냉국을 부어서 먹는 우무냉국도 속이 시원해진다.

결혼을 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게 되고 나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기회가 사실 거의 없게 된다. 그래서 가끔 친정에 가게 되면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서 부엌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그렇게 따뜻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코끝을 자극하는 매콤한 향, 치익 소리를 내는 밥솥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밥 냄새, 혀끝에 맴도는 익숙한 감칠맛까지. 그 모든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부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는 하루 동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할까.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따뜻하고 푸근한 한끼 식사는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요리들이 내 시린 마음마저 만져준다면, 그저 그런 생각만으로도 한 끼 식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하게 된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요리를 하는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만드는 요리에는 그만큼의 행복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요리는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교감이기도 하니 말이다.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그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소소한 즐거움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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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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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는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나거나, 유령이 목격 되는 등 괴이한 일들 때문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집을 말한다. 혹은 그저 음산한 분위기의 집이나 실제로 사건, 사고가 벌어졌던 폐가를 말하기도 하는데, 그 덕에 수많은 호러 영화, 공포 소설에서 폐가나 흉가는 질리지도 않고 자주 사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호러와 미스터리를 오가는 미쓰다 신조의 이번 작품 역시 그것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미스터리보다는 오롯하게 호러에 치중하고 있어 극단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쇼타는 사당 앞에 쪼그려 앉아 열심히 빌었다.

부디 모모미를 지켜주세요, 가족을 구해주세요, 여기 사는 동안 부디 아무 일 없기를...

그렇게 열심히 빌고 있을 때였다. 문득 등 뒤에 뭔가 기척이 느껴졌다.

등 뒤에 뭔가 서 있다......

오싹하면서 등골이 떨렸다. 산 정상에서 긴 혓바닥 같은 언덕길을 타고 그것이 내려왔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초등학교 4학년인 쇼타는 아버지의 전근 때문에 이제까지 살던 도쿄를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사를 하는 날에 가슴 언저리가 꽉 죄는 듯 답답하면서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불안감과 섬뜩한 두근거림이 엄습해 쇼타는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그런데 쇼타는 유치원에 갔을 무렵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무렵이면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종종 있었다. 꼭 무슨 안 좋은 일이 벌어질 때면, 엄청나게 초조한 기분에, 뭔가 무서운 것이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사할 곳에 도착해 눈앞에 보이는 작은 산은 마치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산자락 근처에는 폐가로 보이는 저택까지 있었으며, 그곳으로 오는 내내 받았던 섬뜩한 느낌이 가족들이 앞으로 살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사 짐이 도착해 종일 가족들과 정리를 하고는 피자 가게에 배달을 시켰는데, 배달원 소년이 기묘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집에 살던 사람들 모두 자신의 가게 단골이었으나, 모두 오래가지 못했다고 말이다.

말과 행동이 시원시원하고 보이시 한 용모에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누나 사쿠라코와 누구에게나 어리광을 잘 부리는 귀여운 막내, 여동생 모모미, 그리고 엄마와 아빠, 다섯 명의 가족은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집을 둘러싸고 있는 이상한 기운에, 주변 이웃들의 수상쩍은 반응에, 쇼타는 점점 불안해지고, 급기야 여동생인 모모에게 밤에 찾아 왔다는 그것의 존재는 더욱 분위기를 괴기스럽게 만든다. 쇼타는 자신의 불안을 어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나름의 조사를 시작하는데, 하나씩 밝혀지는 과거의 미스터리 한 일들과 현재에 벌어지는 괴이한 일들은 점점 공포의 겹을 쌓아 올린다. 그러다 마침내 쇼타는 여동생 모모를 찾아오는 '그것'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장면은 정말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오싹했다.

스륵........ 찰싹, 스륵스륵...........찰싹, 스륵.........

옆방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등골이 오싹하는 섬뜩함과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소름 끼치는 기운이 바싹바싹 전해져 왔다.

저 여자가 바닥을 기억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 광경이 뇌리에 또렷이 떠오르자 쇼타가 외쳤다.

", 코우! , , 잡아당겨!"

미쓰다 신조는 특정 장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작가인데, 좀더 대중적인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만큼이나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들이 많다. 단행본을 포함해작가 시리즈’, ‘도조 겐야 시리즈’, ‘사상학 탐정 시리즈등에 이어 이번에 소개되는 것은 ' 3부작 시리즈'가 되겠다. <흉가>에 이어 <화가>, <재원>으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나이 어린 주인공이 낯선 곳으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각 권 사이에 내용상의 연관성은 없지만, 편안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끔찍한 괴이 현상의 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시리즈가 되고 있다. 특히나 어린 주인공의 눈으로 체험하는 괴이한 일들과 끔찍한 사건들은 공포를 독자들에게 '감정이입'시키기에 너무도 적합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사실 공포야말로 굉장히 원초적인 감정이기도 하니 말이다.

나도 공포물에 한때 열광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시작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당시에는 홍콩 할매 귀신이며 머리부터 거꾸로 움직인다는 통통 귀신이며 유난히 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이 유행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포 소설이 참 다양하게 출판되었었는데, 용돈만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 공포물들을 샀던 기억이 난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공포물이 좋아서 온갖 종류의 책들을 섭렵했음에도, 밤이 되면 책 표지만 봐도 무서워 항상 표지가 보이지 않게 책을 꽂아 두거나 책상 위에 엎어 놓았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실제로 책 속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미스터리 한 일이나 무서운 존재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번 <흉가>를 보는 내내 어린 쇼타가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괴이한 일들의 근원을 파헤쳐보고자 하는 마음 등이 어린 시절 내 모습과 겹쳐지면서 공감 지점을 만들어 더욱 오싹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이 책은 절대 밤에 보지 말 것. 혹시라도 밤에 보게 되더라도 책 표지는 꼭 덮어 둘 것. 혹시라도 '그것'이 당신의 집, 당신의 가족에게도 찾아올 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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