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 - 토스카나에서 시칠리아까지, 슬로푸드 레시피와 인생 이야기
제시카 서루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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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음식의 특징은 정확한 계량이 아니라 대충 손짐작으로 넣는 재료들과 분명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얼마 안 있으면 뚝딱뚝딱 마술처럼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도 이제 손자에겐 할머니가 되었는데, 어릴 때 가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는 너무 맛있어 방법을 물어보면 대부분 적당히, 한 움큼, 살짝 등등 이해할 수 없는 계량 법을 알려 주곤 했다. 그게 뭐야. 했는데 지금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되고 보니 매일매일 음식을 만들면서 쌓이는 노하우라는 것이 정확한 레시피와 계량 법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렇게 매일같이,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해온 할머니들의 음식이 맛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내공이란 그 누구도 쉽게 따라 하거나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일 테니 말이다.

 

 특히나 유럽의 음식문화와 재료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할머니들의 집밥이었다. 언젠가 여행 프로그램에서 현지 이탈리아 할머니들의 소박한 밥상을 본 적이 있는데, 화려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음 음식이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하고 푸근하고, 맛있어 보였다. 그러니 유명 셰프인 저자가 1년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12명의 할머니들에게 그들의 요리를 맛보고 그들의 삶과 지혜를 배우는 이 여정은 나에게 꿈같은 일정이 아닐 수 없었다.

라 미아시아는 코모 호숫가의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먹던 케이크로, 변변찮은 재료로 만들어내는 맛난 요리다. 조반나의 얘기로는 라 미아시아는 레시피랄 게 전혀 없고, 그저 알뜰한 주부가 묵은 빵과 농익은 과일, 신선한 우유로 난로의 벌건 잉걸불에 구워내는 즉석 디저트다. 이 케이크는 만들 때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한다. 묵은 빵이 부드럽고 달콤한 라 미아시아로 멋지게 변신하는데, 크리미하고 촉촉하면서 위쪽은 살짝 바삭 하다. 오후에 차와 함께 먹기도 하고, 따끈한 아침식사로 내기에도 손색이 없다.

저자가 셰프이기 때문에 요리 과정과 재료에 대한 묘사 또한 매우 정확하고, 또한 할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더해져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이탈리안 슬로푸드 레시피북'이 탄생했다. 12명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81가지 레시피는 재료와 계량 법, 만드는 순서 외에도 저자만의 맛깔스런 설명이 덧붙여져서 완성된 요리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요리에 대한 설명만으로 침이 꿀꺽 넘어가게 만들어준다. 레시피 자체보다 그들만의 팁이 더욱 재미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뭉근히 조린 밀라노 키트롤인 인볼티니에 대한 설명 중에 이 요리를 마마 마리아 할머니가 즐겨 만드는 이유가 바로 '하루 전날 만들어두었다가 먹을 때 다시 데우면 되기 때문에 부엌이 깨끗하고 식사 시간이 덜 부산하다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녀는 일요일에 딸과 손주들이 식사를 하러 오면 폴렌타와 함께 인볼티니를 만들어준다는데, 레시피 자체보다 그녀가 즐겨 만드는 그 이유가 확 와 닿아서 나도 손님 접대용으로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손님 접대를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 주부라면 아마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하루 전날 만들어서 다음날 데워도 맛있는 음식이 있고, 미리 재료만 준비해서 꼭 당일 날 조리해야만 하는 음식이 있으니 말이다. 다리아 할머니의 페스토 소스와 함께 내는 야채 스프 처럼. 왜냐하면 이 야채수프는 조리한 당일에 먹어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조리한 다음 날 식탁에 낼 경우에는 다시 데울 때 반드시 근대와 그 줄기를 추가로 넣어야 한단다. 싱싱한 근대를 넣어 데우면 수프 색이 멋지게 살아나기 때문이라나.

 

그리고 저자가 '몸과 마음을 두루 치유할 수 있는 집'이라 표현한 우샤 할머니의 집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녀의 제빵 기법도 재미있었고, 요가를 통해서 구축한 그녀의 인생관도 멋있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디저트' '견과의 믿기지 않는 풍미' 한 번의 솜씨 발휘로 달콤한 마법의 손가락을 가졌음을 보여준다'는 식의 표현만으로 그녀의 빵들에 대한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견과류를 올린 파삭한 달걀 케이크, 세 종류의 사과 케이크, 아주 얇은 아몬드 조각 케이크, 어느새 농익은 길쭉한 자두로 꽉 채워 구운 자두 타르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이즐넛 롤까지. 저자와 우슈는 천천히, 체계적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요리를 만들어갔다고 한다. 우샤의 요리 접근법은 '절제와 탐닉의 만남'이라고 했는데, 그녀가 빵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요리 방법에 대해 마법 같다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세상 어떤 것도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은 항상 꿈일 뿐. 인생은 단단히 굳어 있지 않은 무한한 빈 공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죠.'

 

이 책이 단순한 레시피 모음집을 넘어서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요리를 통한 여행의 여정과 오랜 세월을 겪어온 그녀들의 삶에 대한 통찰들은 웬만한 에세이북 못지 않게 뭉클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이었으니 말이다.

요리를 하면서, 또는 요리뿐 아니라 인생의 어떤 일이든 그 대상을 존중하고 품위를 지키면서 순간순간 정성을 다하면, 그 재료가 틀림없이 맛깔 나고 깨달음을 주는 의미 있는 경험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이 진리가 확실하고 명확하게 적용되는 대상은 음식이지만(맛과 감각은 위대한 매개체이므로), 내 몸의 건강과 건전한 인간관계에도 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 표현하는 우샤의 주된 수단은 요가와 명상이었고, 내 경우는 요리였다. 우리는 버터와 설탕을 요리하며 만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인생을 배웠다.

직접 밭에서 가꾼 채소, 집에서 기른 가축, 바다에서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사용한 이탈리아 집밥들은 마치 영혼을 채워주는 것 같은 음식들이었다. 애초에 슬로 푸드라는 것 자체가 식문화 운동의 하나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음식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음식 문화의 전통을 계속 이어가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 목적을 두고 시작된 이것은 이탈리아인이 처음으로 각 나라의 전통 음식을 지키자는 취지로 발의했다고 한다. 정성껏 키운 재료들로 시간과 정성을 다해 만드는 음식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삶에 대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 바쁜 현대인들이 패스트푸드에 길들여 건강을 해치는 것을 걱정하는 우리네 엄마들, 할머니들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일 테고 말이다.

 

한 그릇의 요리가 삶을 바꿀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요리란 쓰는 식재료와 먹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들 모두에게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한 방법이기도 하니 말이다. 카를루차 할머니가 요리를 할 때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이라고 가르쳐준 것처럼. 누구를 위한 음식인지. 음식을 먹을 사람들이 행복한지 혹은 위안이 필요한지. 비를 맞아 뼛속까지 한기가 든 상태인지, 아니면 덥고 땀이 났는지 고려해야 궁극적으로 음식을 요리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 내 친구와 가족에게 최고의 맛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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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아이들 1부 : 동굴곰족 1 대지의 아이들 1
진 M. 아우얼 지음, 정서진 옮김 / 검은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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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존재가 원래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를 진짜처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소유자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아주 오랜만에 그 한계를 넘어선 것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그 동안 그래도 꽤 많은 양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언제 선사시대에 관련된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자문해봤다. 사람들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 나다 해도, 선사시대 자체를 고증해서 재현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인지, 그에 관한 소설은 여지껏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라니. 네안데르탈인이 유인원에 가까운 미개한 원시인이었던 걸로만 알았던 나에게 이 소설은 굉장히 놀랍고도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의 발걸음을 내딛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 진정한 '상상력의 끝판왕'이라고나 할까.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구축하고 만들었을까 내내 감탄하면서 말이다. 배경은 무려 3 5천년 전의 빙하기이다. 크로마뇽인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네안데르탈인이 서서히 사라지던, 두 인간 종족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작가의 상상력은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두 인류 간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석기시대의 생활상에 대한 어마어마한 고증은 우리에게 실제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매혹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고 나서 목우르는 그의 커다란 두뇌가 가진 힘을 활용했다. 그들은 전두엽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고 미숙한 발성기관으로 인해 언어 사용도 제한된 원시인이긴 했지만, 독특하게도 커다란 두뇌를 가졌다...........또한 그들의 기억이야말로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본능이란 이름으로, 조상의 습성에서 유래한 무의식적 지식이 발달되어 있었다. 커다란 두뇌 뒤쪽에 저장된 기억은 단지 그들 자신의 기억일 뿐 아니라 선조의 기억이기도 했다. 그들은 조상에게서 배운 지식을 불러올 수 있었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 멀리 나아갔다. 종족의 기억은 물론 자신의 진화과정까지 기억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저 아득한 과거까지 더듬어 돌이켜보면 텔레파시가 통하듯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간직된 기억들이 결합되면서 하나가 된 마음에 닿을 수 있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물가에서 놀던 다섯 살 소녀 에일라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의해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 엄청난 진동 속에 땅이 갈라지고 점점 커지는 틈 속으로 흙과 바위와 나무들이 떨어져 내린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 역시 흔들리다 쓰러져 깊은 나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소녀는 춥고 두려웠으며 날이 갈수록 허기까지 더해져 무섭기만 했다.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해 오로지 장애물을 지나고 지류를 건너고, 눈앞에 닥친 순간을 살며 개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다 동물의 공격을 받고 홀로 죽어가던 중, 새로운 동굴을 찾아 길을 나선 동굴곰족의 주술 치료사 이자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된다. 현생인류에 속하는 크로마뇽인 에일라는 고대인류 네안데르탈인인 이자와는 외모부터 다르다. 푸른 눈과 금발머리, 곧은 다리에 큰 키, 손이 아닌 언어로 의사표현을 하는 에일라는 높은 이마에 작은 코, 이상할 정도로 평평한 얼굴이었고, 네안데르탈인들은 부리 모양의 커다란 코, 입은 동물의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왔고, 낮게 경사진 이마와 크고 길쭉한 머리통에, 목은 짧고 굵고, 뒤통수는 후두골이 툭 튀어나와 있다. 활처럼 휜 다리는 근육이 발달했고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종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발상부터 신선했지만, 그 상상을 매우 리얼하게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이야기에 훅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씨족 내 강력한 주술사인 크렙과 주술 치료사인 이자의 보호 아래 에일라는 점차 동굴곰족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지만, 족장의 아들인 브라우드는 여자인 에일라의 토템이 동굴사자로 정해지자 자신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느껴 그녀를 증오한다. 당시 이들 사이의 불문율이란, 남자의 명령에 여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여자는 사냥은커녕 무기를 만들 때 쓰이는 연장조차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다소 억압적이고 남성우월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에일라는 그런 체제가 가진 불합리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하는 캐릭터이고, 당연히 기존 종족의 우두머리는 그것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브라우드의 그런 증오는 일상적인 구타와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걸로도 에일라를 굴복시킬 수 없게 되자 결국 그녀를 강제로 범하게 된다. 당시 동굴곰족에서는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든, 성행위를 요구할 수 있었고 여자가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사이에서 태어난 에일라의 아들 두르크다는 소설 발표 당시 저명한 고고학자로부터 신빙성 없는 가설을 소설에 담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두 인류 간의 짝짓기는 불가능하며 서로 접점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두 인류의 특성을 골고루 갖춘 혼혈인의 유골이 발견되어, 기존 이론이 뒤집히며 작가의 남다른 혜안이 다시금 주목 받기도 했단다. 상상력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에일라는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에 떠오른 불미스러운 생각을 쫓아내려고 했다. 난 여자야, 나는 사냥을 하면 안 돼, 무기조차 만져서는 안 되는 걸. 하지만 나는 줄팔매를 사용할 줄 알아!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해도. 아이의 생각은 대담해졌다. 도움이 될지 몰라. 오소리나 여우 같은 것들을 죽이면 더 이상 우리가 잡은 고기를 훔쳐갈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흉측한 하이에나들도. 그런 것들을 잡으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해봐. 에일라는 교활한 포식자들의 뒤를 쫓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M. 아우얼의 <대지의 아이들> 시리즈는 십여 년 전에 국내에 발간된 적이 있다. 물론 엄청난 분량 덕분에 6부까지 모두 출간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모두 절판이 되어 재미있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전설의 대작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다는 소식에 굉장히 설레었었다. 1부의 이야기 두 권만 해도 무려 천 페이지에 다다르는 분량이다. 전체는 그만큼의 이야기가 6부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스케일이 된다. 총 집필 기간만 해도 30년이라고 하니, 고스란히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을 이 시리즈만의 묵직한 감동이 시리즈를 모두 만나기 전부터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다.

 

 

시작은 구석기 시대의 미이라 한 구가 발견되는 것에서부터였다고 한다. 그 미이라는 의과적인 수술을 통해 한쪽 팔을 절단한 흔적이 있었고 반신불수였던 걸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미이라가 상당히 나이를 먹은 후 늙어서 죽었다는 것이었는데, 생존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구석기 시대에 어떻게 '늙어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었을까.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출발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이미 읽은 사람들은 모티브가 된 이 미이라가 <대지의 아이들>에서 주술사 크렙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M. 아우얼은 엄청난 상상력의 소유자이지만, 그것을 단지 머릿속에서 진행된 이야기로 그리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느끼고 체험해 사실적인 부분들을 구축했다. 3년에 걸쳐 선사시대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모두 섭렵한 것은 물론 고고학자들의 발굴 현장도 직접 답사했고, 인류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실제 구석기인들의 방식을 체험해보면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3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오로지 한 작품에만 매달린 작가의 삶이란 어떤 걸까. 스물 다섯에 이미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된 한 여자가 육아와 직장 샐활을 병행하다 마흔 살이 되어 이 작품을 구상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해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작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 작품만큼이나 그녀의 삶도 드라마틱하기 그지 없다. 나도 그 엄청난 여정에 한 걸음 내딛게 되어 매우 설레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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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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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세계보다는 감정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어떤 상황을 경험하기보다는 이해하는 편이 더 쉽다고 말하는 뛰어난 심리학자이지만, 파킨슨 병이라는 치명적인 친구를 데리고 사는 남자 조. 전작인 <용의자>에선 살인 혐의로 체포가 되더니,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는 딸은 범인에게 납치를 당하고, 아내는 별거를 요구한다. 역시나 이번 신작 <내 것이었던 소녀>에서도 사건을 조사하는 내내 그의 삶은 점차 수렁으로 빠져 든다.

 

이렇게나 주인공을 수난에 빠지게 만들고 못살게 구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마이클 로보텀은 조를 매 작품마다 시험에 들게 만든다. 이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데, 그 시리즈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는 과연 조의 곁에 누가 남아 있게 될지 걱정이 될 만큼 말이다. 게다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사건을 따라가는데 수동적일 수가 없어 굉장히 피곤하게 책을 읽어야만 한다. 주인공의 눈으로 사건을 보고 겪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단순히 '감정이입'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랄 만큼 '실제 체험' 같다고 해야 할만큼의 강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중반부에 다다를 때까지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축축 쳐지고, 이야기 진행도 느리며, 대체 이 두꺼운 책이 언제 끝날지 아득하다는 느낌마저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점은, 이 와중에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이클 로보텀의 힘이 아닐까 싶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기억이 트라우마적인 과거 사건들의 저장소라고 말했지만, 그 사건들은 실제라기보다는 단순한 망상일 때가 많다. 현실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이다. 우리 마음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과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의 방대한 저장고다. 나는 가끔 내 기억들이 진짜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것들에 집중해서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면, 기억이 내 목을 틀어막아 나는 숨을 쉬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열네 살 소녀. 시에나는 조의 딸인 찰리와 절친이다.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시에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보니 팔 안쪽에 자해의 흔적이 보인다. 그제야 그는 생각한다. 자신이 그 동안 자주 집에서 봐왔던 딸의 친구라는 보여지는 모습 외에 시에나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어 시에나의 방에서 죽어 있는 그녀의 아빠가 발견된다. 전직 경찰인 레이 헤거티의 옷에는 시에나의 피 묻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고, 모든 증거와 정황이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조는 시에나를 믿고 싶다. 시에나의 주변과 사건을 점점 조사해갈수록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것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직관이든, 지각이든, 통찰이든 그저 그의 본능이 시에나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그녀가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이다. 형사도 아닌 일개 심리학자가, 결정적인 증거나 목격자를 찾은 것도 아니면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니. 여기서 조 올로클린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또 빛을 발한다.

독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어쩐지 그의 생각보다는 다른 이들의 견해에 힘을 보태주고 싶을 만큼 무모해 보이지만, 꾸역꾸역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우직함. 평범한 두 아이의 아빠답게 아이들 걱정에 잠을 설치고, 누군가 아이들에게 해를 가하려는 기색만 보여도 달려들 수 있는 과격함. 별거 중인 아내가 새로 데이트하는 상대에 대한 질투심을 고스란히 인정하는 사내다움. 아내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 심리학자가 되었다고 할 만큼 아내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분위기에 휩쓸려 실수를 하기도 하는, 그리고 그걸 꼭 아내에게 들키고 마는 멍청함. 너무 젊은 나이에 찾아온 파킨슨 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친구에게 시달리면서도 아주 가끔은 그것을 농담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유. 하루하루가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때에도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고, 누군가를 다치게 한 나쁜 놈을 벌주고 싶어하는 오지랖. 무엇보다 페이지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들 때문에 그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하고 달라." 고든이 말한다.

 

"어떤 다른 사람들?"

 

"경찰 말이야. 경찰들은 과정을 알고 싶어 하지만 당신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 그것도 간절히. 내가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는지, 혹시 내가 어떤 아저씨나 교구 신부한테 후장이라도 뚤렸는지.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는지, 침대에 오줌을 쌌는지, 엄마가 그 벌로 나를 젖은 침대에 그대로 재웠는지. 당신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그게 당신 약점이야. 이해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원래 사냥꾼으로 태어났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시작했어. 그렇게 살아남았고. 그렇게 진화했지. 우리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진화했고. "

 

이 작품은 실제로 1982년 호주에서 발생했던 리네트 도슨 실종사건을 토대로 쓰였다고 한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학교 선생의 아내가 홀연히 사라지고, 어느 날부턴가 그 집에는 열여섯 살짜리 제자가 함께 살게 되었고, 경찰은 남편을 의심했지만 어디에서도 아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건은 미제가 되었고 사라진 아내의 가족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라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은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그 어떤 고통스러운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그 누구의 이해도 넘어서는 영역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이클 로보텀 역시 세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그런 부모로서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기쁨 뒤에 숨겨진 고통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 뒤에 그것을 잃어 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함께 존재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는 극중 조의 생각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모 노릇이란 공중곡예와 같다고. 언제 놓아줄지 알아야 하고, 아이가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며, 거기서 부모가 할 일이란 언젠가 아이가 다시 이쪽으로 날아올 때를 대비해 잡아줄 준비를 하고, 도착하면 잘 토닥이고 힘을 주어 다시 세상으로 쏘아 보내주는 일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항상 너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정작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는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아이들이 그걸 깨달을 무렵이면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 되고 말이다. 이 작품은 자식을 둔 부모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부분이 많은 감성 스릴러이기도 하고, 부모가 아니더라도 한때 소년, 소녀였던 자신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심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마이클 로보텀은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 시리즈와 전직 형사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를 번갈아 가며 출간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건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작품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번 작품에서 빈센트 루이츠가 조 올로클린의 사건 수사를 돕는 것처럼 말이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는 첫 번째 <용의자> 두 번째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 이어 세 번째 <내 것이었던 소녀>가 출간되었는데, 심리 스릴러인 이 시리즈에 비해 조금 다른 느낌의 액션 스릴러로 진행되는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도 함께 나오길 기대해본다. 로보텀의 첫 작품인 <용의자>에서 루이츠는 조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하는데, 용의자와 수사관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실 <용의자>에서 두 사람은 끊임없이 부딪히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고 뭔가 미심쩍어 하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이 각별한 사이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긴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Lost> 이후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를 주는 사이가 된다고 하니 대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이 작품도 궁금해진다.

 

올초 마이클 로보텀은 스탠드얼론인 <Life or Death>로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골드대거를 수상해 화제가 되었었다. 7월에 <Say You're Sorry>가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고, 올해 <Life or Death>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첫 작품인 <용의자> 이후 다음 작품을 만날 때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는데, 올해만 마이클 로보텀의 신작을 무려 세 권이나 만날 수 있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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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지음, 송은주 옮김 / 살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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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26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페론에서 시작한다. 독일군이 마을을 점령하자 이곳엔 음식도, 자유도, 웃음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죽하면 음식을 먹는 꿈을 꾸어야 할만큼 허기진 그들은 독일군 트럭 뒤 칸에 실린 돼지우리에서 빠져 나온 아기 돼지 한 마리를 빼돌려서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기를 바라면서 몇 주 동안 도토리와 음식 찌꺼기로 살을 찌우는 중이었는데, 누군가 그걸 독일군에게 밀고해 호텔 르코크루주에 독일군 사령관과 부하들이 찾아온다. 독일군이 돼지를 찾아내면 그들은 모두 체포되고, 목숨 조차 부지하기 어려워진다. 소피는 불안해하는 동생 엘렌과 그녀의 아기, 그리고 아래층에 온 독일군에게 이미 잡혀있는 동생 아우렐리앙을 보호하고,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낙이었던 돼지를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 소피의 용기 있는 결단과 행동이 돋보이는 이 에피소드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 한 장면으로 소피라는 캐릭터는 페이지 속의 인물이 아니라 페이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의 매력적인 인물이 되어 버린다.

조조 모예스의 사랑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힘닿는 데까지 아이들로부터 최악의 것은 숨기려 했지만, 아이들은 남자들이 길거리에서 총에 맞고, 금지된 숲 속을 돌아다녔다거나, 독일군 장교에게 제대로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낯선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들의 머리채를 잡아 침대에서 끌어내는 세상에 있었다. 미미는 말없이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우리의 세상을 봤다. 엘렌은 그것을 마음 아파했다. 아우렐리앙의 가슴에는 분노가 쌓여갔다. 화산의 힘처럼 그의 안에 분노가 커져가는 것을 보면서, 매일 동생이 마침내 폭발하더라도 그로 인해 너무 큰 대가를 치르지는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위험천만했던 그 첫 번째 에피소드 덕분에 소피는 그녀와 가족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매일 독일군의 저녁 식사를 차려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매일 밤 그곳에서는 숨막히는 긴장과 분열이 일어나지만, 독일군 사령관은 점차 소피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가 관심을 표하게 된 계기는 바로 그녀의 집에 있는 소피의 초상화 때문이었는데, 인상주의 화가였던 그녀의 남편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오로지 표정으로 만족감을 주고받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대단한 용기와 자부심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굶주림과 공포 때문에 지금은 더 이상 소피에게서 그림 속의 소녀를 찾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림을 볼 때마다 남편인 에두아르가 돌아올 때는 다시 한 번 그가 그렸던 그 소녀가 되겠다고 맹세하곤 한다. 하지만 전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식량은 점점 더 줄어들고, 마을의 상황은 나빠지기만 한다. 그러던 중 소피는 남편이 최악으로 소문난 교화 수용소로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남편을 살리기 위해, 남편의 자유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앞으로 자신의 삶이 어떻게 산산조각 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부터 약 100년 후인 2006년 런던에서 제2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재에서 주인공은 젊은 미망인 리브, 그녀는 건축가인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리브의 유일한 보물은 신혼여행 중에 남편에게 선물 받은 여인의 초상화, 우리가 이미 지나온 과거 속의 바로 그 그림이다. 그리고 약탈당한 예술품을 원래의 주인에게 반환해주는 일을 하는 전직 경찰 폴이 등장하고, 우연히 리브와 알게 되어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폴은 리브의 집에서 자신이 소송을 맡게 된 바로 그 문제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녀와 그림의 소유권을 놓고 법정 소송 다툼이 시작된다. 사실 이야기의 분량은 과거보다 현재가 두 배정도 많다. 하지만 내가 리뷰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현재의 이야기는 짧게 언급한 이유는 100년 전의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고, 몰입감 있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2부가 시작되면서 스토리는 많이 평범하게 진행되어 다소 루스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흘러 가면 조조 모예스가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드는 지점이 후반부에 등장하고, 그림 한 점을 둘러싼 세기의 공방이 이어진다. 남편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여자와 도난 당한 그림이기 때문에 반드시 유가족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남자. 그렇게 이야기는 런던에서 프랑스로 가서 소피의 후손을 찾아가게 되면서, 우리 모두가 궁금했던 소피의 나머지 삶에 대해서 알게 된다. 소피가 위험한 선택을 한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했는지.. 우리는 그제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르코크루주에 걸려 있어야 할 그림이 어떻게 런던에 있는 리브의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미스테리가 더해져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제가 본 여자와 당신이 묘사한 소피를 연결하기가 힘들군요. 제가..... 그녀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답니다. 언제나 그 그림을 참 좋아했어요."

그가 고개를 약간 더 쳐든다. 모가 프랑스어로 옮겨줄 동안 그는 그녀한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활기가....." 그녀는 어깨를 으쓱한다. "넘쳐 보였어요."

조조 모예스를 우리 나라에게 처음으로 소개해주었던 작품 <미 비 포유>는 사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매력적이고 돈까지 많은 젊은 남자와 집안 형편상 돈을 벌어야 하는 씩씩한 여자의 만남이라는 다소 뻔한 설정에서 시작했지만, 그 흔한 신파나 눈물 한 자락 없이, 현실을 직설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여타의 최루성 신파 멜로, 휴먼 드라마의 패턴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지마비환자와 간병인, 게다가 엄청난 부자 남자와 평범한 집안의 젊은 여자라는 이야기 거리만으로도 앞으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도 뻔히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의 휴먼 멜로 드라마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지만, 지나치게 담백하고, 때로는 유쾌하고, 잔잔하게 따뜻하며, 거기에 추가로 목이 메일 것 같은 슬픔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평범한 멜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승부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런 작가였기에 이후에 출간되는 그녀의 작품들에도 항상 관심이 갔다. 그녀의 작품은 모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긴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에서는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가치', 그리고 그걸 넘어서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 보내고 기다리는 여자 소피와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한 미망인 리브가 자신에게 소중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혼자의 힘으로 온갖 고난과 상실을 딛고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 '인생'이란 것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랑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을까. 전쟁과 사별이라는 엄청난 시련 앞에 선 여성 캐릭터의 모습은 무엇보다 공감과 이해를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어 이번에도 조조 모예스가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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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에 끝내는 기초영어 미드천사: 왕초보 패턴 - Top10 미드추천, 1004문장으로 기초 영어공부 혼자하기! 기초영어 미드천사 시리즈
Mike Hwang 지음 / 마이클리시(Miklish)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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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드를 웬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다들 그런 생각해봤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말이다.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면.. 이라고.

이 책은 기초실력이 전혀 없는 왕초보도 미드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책을 8시간안에 다 끝내면 미드를 자막 없이 볼 수 있냐고? 글쎄, 그건 당신이 직접 경험해보라.

 

실제 원어민과 대화 시에 활용할 수 있는 영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팝송이나 미드를 통해서 영어 공부를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문법적으로 딱 들어맞는 문장보다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문장들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매체이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딱이다. 미국인들이 방송에서 쓰는 단어 41,284단어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 1004단어가 책에 실려 있는데, 이 정도면 간단한 일상회화에는 충분한 어휘의 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책에 실려 있는 단어들만 정복해도 우리는 영어 앞에 기죽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드는 보통 한 시즌이 10편에서 20편 정도로 이뤄져 있고, 짧은 것은 20분에서 보통은 40분, 긴 것은 60분 정도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드라마도 그렇지만, 고르기가 어려울 만큼 편수가 너무 많다. 아무 거나 보지 말고, '가장 효율적이고 선호도가 높은 미드'부터 만나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 책에는 미드 카페 설문 조사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미드 10개의 리스트를 뽑고, 이 중 영어공부하기 어렵다고 생각된 것을 빼고 영어 공부하기 좋은 미드를 추가해 10편이 실려 있다. 재미도 있으면서 대중적이고, 영어 공부에도 활용하기 좋은 미드들 말이다.

 

예를 들자면, 로스트, 엑스파일, 위기의 주부들, 심슨이 또박또박 말하는 편이라 발음공부에 좋고, 빅뱅이론과 왕좌의 게임은 안 쓰는 어휘가 많아서 어렵다.

 

 

그리고 각각의 미드 속에서 나온 대사 중에 기본 활용할 수 있는 패턴을 문장으로 뽑아내고, 그것을 다양한 경우로 활용해서 변주할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다. 미드에서 추천하는 1004개의 명대사를 문법패턴으로 분류했고, 미국인들의 일상회화 89%를 해결하는 영어단어 1004개가 실려 있다.

 

 

각 미드마다 에피소드 줄거리와 등장 인물 소개가 간략히 되어 있어 미드 자체에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웹사이트에 접속하거나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무료 강의를 통해 왕초보라도 혼자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사실 영어단어 1004개도 단어 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 이걸 어떻게 다 외우나 시작도 하기 전에 막막할 수도 있지만, 책의 가벼운 두께만큼이나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걱정할 필요 없다. 한 번에 두 페이지씩 공부할때 나오는 12문장에서 새로운 단어가 6단어 이하라, 문장을 공부하기 전에 제시된 그 단어들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쉬운 문법 용어조차 되도록 쓰지 않았고, '기초 영어'라는 말 답게 너무 쉬운 패턴들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로 읽어보면 너무 쉬운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외국인을 만났을 때 말을 할 수 있도록, 어떤 경우에서도 응용가능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학교 졸업 후 단 한번도 영어 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는 직장인부터, 대체 내가 언제 학교를 갔었나 싶을만큼 나이를 드신 어르신들까지 부담없이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미드도 보고, 쉽게 패턴도 익히고, 그러면서 회화까지 가능하도록 도와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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