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취록 -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조완선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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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올해 내 운수가 어떨지 토정비결을 보곤 한다. 몇 년 전부터는 타로 점까지 가세해서 카페에서 쉽게 운을 점쳐 볼 수 있는 시대이니, 다들 재미로라도 한 번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자신의 미래를 정확히 맞췄던 적이 있을까. 그 누구도 인간의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다. 그저 심리적인 위안을 위해서, 단순한 오락거리로 재미 삼아 보는 거지만, 그래도 내심 마음 한 켠에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불안한 내일이 궁금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게 대체 어떤 책이길래 사사건건 끼어드는 거요? 이게 정말 팔자를 고칠 정도로 값이 나가는 책입니까?”

안기룡의 아내도 그런 소리를 했다. 이 책 한 권이면 팔자를 고칠 것이라고.

“하여튼 귀신이 붙은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소.”

“귀신이 붙은 책이라뇨?”

“이 책과 엮인 자들은 죄다 저 세상으로 갔으니 말이오. 그러니 귀신 들린 책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섬뜩한 소리였다. 명준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하였던, 국가운명에 관한 예언서로 '정감록'이라는 것이 있었다. 비록 허무맹랑한 도참설·풍수설에서 비롯된 예언이라 하지만, 당시 오랜 왕정에 시달리며 조정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있던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광해군·인조 이후의 모든 혁명운동에는 거의 빠짐없이 정감록의 예언이 거론되었다고 하니,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취록>은 바로 이 '정감록'에서 모티브로 삼아 시작된 작품으로 19세기의 예언이 21세기의 현실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조완선 작가의 전작인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천년을 훔치다>를 떠올려보자면, 비록 '비취록'이 허구의 예언서이지만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질지 짐작이 될 것이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추리소설의 플롯을 가지고 치밀한 역사 고증을 통해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어 매우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다.

이야기는 고서 감정 전문가이자 역사학자 강명준 교수에게 누군가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고서점을 운영하는 최용만으로 '비취록'이라는 예언서를 들고 나타나 다짜고짜 진품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하는데, 한눈에도 심상치 않은 책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일부 복사본 샘플만 던져주고 사라진 뒤 연락이 없다. 그리고 며칠 뒤 수상한 전화가 걸려와 강교수를 협박하고, 이어 강력계 형사가 찾아와 최용만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계룡사에 은둔한 사찰 쌍백사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해광스님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유정스님이 도착한다. 쌍백사라는 곳은 여러모로 일반 사찰과는 달랐는데, 해광이 남긴 수첩 속의 문구들은 그런 의심을 더욱 기폭 시켰다. 이렇게 두 가지 이야기가 병행되면서 진행이 되는데, 결국 쌍백사라는 교집합에 의해 이야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최용만이 죽고, 그를 살해했을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 안기룡마저 살해당하고, 그들 두 사람이 쌍백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 형사가 사찰에 방문하지만 또 다른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고서에 적힌 대로라면...... 그러니까.....조만간 우리나라에......아주 심각한 일이.....벌어질 것 같단 말이지. 흠흠, 내가.... 예언 글귀를 좀..... 풀 줄 아는디 말이여. 청양지세는 을미년, 바로 올해를 말하는 게 아니유?'

최용만의 목소리였다. 그는 실종되기 전에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소리를 늘어놨었다. 조금씩 꼬인 매듭이 풀어지고 있었다.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보이는 수상한 종교단체부터, 옛 고서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이야기까지 추리 소설로서의 긴장감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어 역사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수월하게 읽혔던 작품이다. 20세기 초반에 한때 각종 예언이 범람했었지만, 시대는 어느덧 21세기에 이르렀다. 과연 예언서는 미래를 보는 눈일까.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언서가 불행에 빠진 당시 사회의 열망을 담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인이 출현하여 혼탁한 이 세상을 뒤엎고 백성을 구제할 것이라는 예언은홍경래의 난이 있던 시절이나, 어쩌면 어지러운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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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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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복수의 제1원칙이다. 내 가족이 죽었으므로 너의 연인이 죽어야 한다. 내 조카가 자살했으므로 너의 가족이 고통 받아야 한다. 내가 고통 받았으므로 너 또한 상처받아야 한다. 누구에게 벌을 준다는 것은 자신의 척도로 세상을 재단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권리를 탈취해 누군가에게 사적으로 복수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돈이나 권력 같은 외적 이유에 의한 폭력과 달리 내적 동력에 이끌리는 '복수'는 폭력의 본질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무시무시해질 수 있다. 그래서 복수를 하는 그들 행동의 정당성은 법이나 도덕이 아니라, 그들이 '당한 바'로 부터 나오며, 주체의 의지나 결단도 무의미하다. 이 작품의 제목인 <네메시스>는 정의와 복수의 여신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네메시스를 슬쩍 훔쳐다가 자기들만의 여신을 만들었다. 저울은 그대로 두고 채찍 대신 칼을 쥐여준 다음, 눈에 안대를 둘러주고 유스티티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직접 갚아주는 복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개인적 차원이었던 복수를 공적인 업무로 바꿔버린다. 이것이 바로 근대 입헌국의 상징이 된다. 맹목적 정의. 그리고 차가운 복수.

 

요 네스뵈가 <네메시스>를 쓴 것은 2002년으로, 9.11테러가 발생한 지 1년 뒤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이슬람 국가들을 상대로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하여 그야말로 두 눈 시뻘겋게 뜨고 복수를 할 때이다. 9.11 테러는 많은 사상자와 재산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미국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기에, 테러의 수장인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무려 10년 동안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다. 요 네스뵈는 그러한 미국의 복수를 은근히 바닥에 깔고, 한 인간이 계획할 수 있는 최고의, 철두철미하면서도 냉철한 복수 보여준다.

 

 

, 여기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은 은행강도 사건과 정황상 의심 없이 자살로 보이는 사건이 있다. 우선 첫 번째, 한 남자가 백주대낮에 사람들로 붐비는 은행에 걸어 들어가 200만 크로네를 강탈하고, 여자까지 죽였다. 그러고는 유유히 걸어 나가 노르웨이 수도 한복판에 있는, 비교적 인적이 드물기는 해도 차량 통행량이 엄청나게 많은데다 경찰서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거리로 도망쳤다. 그런데 경찰에선 수사를 계속할 단서가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해리에게 7년 전에 고작 6주 동안 사귀었던 옛 애인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온다. 그들은 가볍게 술을 한잔 하고 안나의 집에 들러 그녀가 작업 중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저녁 초대를 받았던 다음 날, 그는 숙취를 느끼며 잠에서 깬다. 전날의 기억이 전혀 생각나지 않은 채로. 며칠 뒤, 우연히 출동한 사건 현장에서 그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아무도 그녀의 자살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날 밤 안나의 집에 있었던 해리는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이 작품은 구조가 완벽하게 짜여진, 플롯이 치밀하게 계획된 소설이다.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부터 시놉시스를 여러 번 고쳐 쓰는 바람에 나중에는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다는 느낌마저 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일년에 걸쳐 이야기의 골조를 설계했고, 특히 초반 십여 페이지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 그 결과 남은 이야기 전부를 지배할 수 있을 만한 첫 장면, 모든 것이 그 한 장면에 달려 있는 그런 장면이 탄생한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인상적인 모놀로그는 후반부에 다시 변주되며 두 건의 살인사건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동기로 연결된다. 이어지는 은행강도 사건에 대한 묘사는 거의 초단위로 진행되어, 내가 마치 그 시간, 그곳에서 사건을 목격하는 것만 같은 짜릿함을 안겨준다. 복면을 한 은행강도와 은행원인 스티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굉장히 압도적인 인상을 남겨준다. 1 3초 만에 은행털이는 끝나고, 돈은 강도의 배낭에 담기고, 2~3분 후면 경찰차가 도착하려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 강도는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완벽하게 끝났으므로 그대로 도주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강도가 달아나기는커녕 스티네의 의자를 돌려 그녀를 마주보며 무언가 속삭인다. 그리고는 총구를 그녀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대체 왜?

 

 

기본적으로 <네메시스>는 세 가지 사건이 소용돌이치면서 진행된다. 오슬로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은행 강도 사건, 해리 홀레의 전 여자친구인 안나의 자살 사건, 그리고 전작인 <레드브레스트>에서 끝맺지 못했던 엘렌 사건에 대한 의혹이다. 우선 작품의 주요 플롯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 강도 사건과 안나의 사건은 거의 전혀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동떨어지는 사건으로 보인다. 안나의 자살 사건에 대한 의혹이 해리로 하여금 혼자 수사를 하게 만들고, 하나씩 드러나는 증거들은 자살이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보인다. 문제는 누군가 그날 밤 해리가 안나의 집에 있었다는 걸 알고, 그를 점점 용의자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해리는 자신을 협박하는 이메일 발신자를 추적하는 한편, 안나의 살인 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해나간다. 은행강도 사건의 피해자인 스티네 그레테의 남편인 트론 그레테의 형은 신출귀몰한 강도로 전설적인 인물은 레브 그레테이다. 안나의 삼촌인 라스콜은 현재 수감 중이지만 스스로 자수하기 전에는 단 한번도 잡힌 적이 없는 은행강도이다. 수사팀은 라스콜에게 은행 강도 범인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그는 사건 현장에 대한 영상을 보고 범인으로 레브를 지목한다. 그리고 해리의 새로운 파트너인 베아테의 아버지를 현장에서 죽게 만든 은행강도는 바로 라스콜이었다. (이쯤에서 조금의 스포일러를 감수하고 말하자면) 그래서 이들의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이야기가 '복수'라는 하나의 동기로 얽히게 되는 것은 결국 '사랑'으로 연결된다. 스티네와 트, 레브 형제의 스토리, 라스콜과 스테판 형제와 안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스토리, 안나와 내연관계에 있던 아르네 알부와 연인이자 약물 공급책이었던 알프, 그리고 잠깐 애인사이였던 해리 홀레와의 스토리.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은 죽는 것이 아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극중 누군가 처럼 삶의 의미를 잊어버린 그들은 복수를 하려고 한다. 복수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험한 마약이니 말이다. 인간의 영혼은 비극이 주는 연민과 공포로 정화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복수의 비극을 통해 영혼의 가장 깊숙한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복수의 카타르시스가 그들을 정화시켜줄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레드브레스트, 데빌스 스타와 함께 오슬로 3부작으로 불린다. 배경이 거의 오슬로에만 집중되어 있고, 레드브레스트에서 시작된 엘렌 옐텐 사건 사건이 비로소 데빌스 스타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오슬로 3부작 중에 두 권이 출시되어있고, 데빌스 스타는 곧 출간될 예정이다. 대만에서는 이 오슬로 3부작을 박스 패키지로 별도로 판매를 했는데, 이미 품절된 곳도 있어 서점 몇 군데를 돌아 대만 성품 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다. 특히 대만 판은 네메시스를 노르웨이 원제인 "Sorgenfri"로 출간했다. 극중 안나가 살던 곳인 소르겐프리 가는 그 유래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소르겐프리는 크리스토프 왕의 소유였던 궁전 이름으로, 아이티의 왕이었던 크리스토프는 프랑스 군의 포로로 잡혔을 때 자살했다. 소르겐프리 성은 상 수시 성이라고도 불리는데, 둘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 소르겐프리 가는 만사 태평한 거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곳에 살던 안나의 삶은 그다지 근심과 슬픔 없이 흘러가지 않는다. 안나가 해리를 집으로 초대한 날, 그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든 여자의 조각상이 달린 스탠드가 비추고 있는 그림을 보여준다. 세 구의 그림은 모두 누군가의 초상화였고, 아직 미완성인 이 작품의 이름은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라고 알려준다. 해리가 무심코 흘려 보고 지나가는 그 작품은, 결국 이 방대한 분량의 서사에 방점을 찍어주는 열쇠가 된다. 그러니 이 작품의 영문판과 국내판 제목이 <네메시스>인 것은 상당히 그럴 듯 하지만, 원제인 <소르겐프리>도 작품의 전체 분위기와 완전히 반어적인 느낌으로 매력적이다. 이 작품 어디에서도 소르겐프리의 뜻인 '슬픔없이, 만사태평으로, 근심 걱정 없이'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정말 재미있는 것은 두 가지 사건의 매우 실감나는 수사 과정, 꽤 많은 인물들을 엮어내는 기막힌 플롯, 형사인 해리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의문의 누군가가 보내는 이메일에 대한 의혹,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동기인 복수라는 매력적인 테마 뿐만 아니라 바로 해리 홀레가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엘렌 사건'에 대한 집착인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해리가 은행강도 사건을 누구보다 빨리 해결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그래야 다른 사건을 수사할 수 있으니까요" 였을까. 물론 이미 <레드 브레스트>를 읽었던 우리들은 엘렌을 죽인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해리를 비롯한 극중 인물들만 모르고 있지만, 중요한 건 범인이 누구냐. 보다는 어떻게 범인을 찾아내느냐.에 있으니 우리는 엘렌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게 될 다음 작품인 <데블즈 스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실 내부의 적이 보여지는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섭고, 소름 끼치고, 완벽한 경우가 많은 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의 보도에서도 숱하게 만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해리는 파트너였던 엘렌 과의 추억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고, 악몽을 꾸기도 하며, 새로운 목격자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다른 사건들의 수사를 열심히 하지만 사건이 해결되어도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는 엘렌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자신은 전혀 기쁘지 않을 거라고 틈만 나면 보스에게 반 협박을 하기도 한다. 해리는 엄청난 직관력으로 사건을 해결할 때는 정말 완벽한 형사처럼 보이지만, 알콜에 취약한 모습과 특정 사건에 집착하며 옛 동료와의 추억에 매달리는 모습은 너무도 인간적이라 안쓰럽기까지 하다. 시리즈로 전개되는 작품들의 유명한 캐릭터들이 꽤 많지만, 내가 그 중에서도 유독 해리 홀레를 사랑하고 편애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막무가내 식, 독불장군식이지만 사람냄새 나는 캐릭터성에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오히려 불안정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정말 살아 숨쉬는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꼼꼼한 복선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치밀하게 엮어서 한 편의 거대한 퍼즐이 완성되는 이 작품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대사 한 마디, 누군가의 행동들이 결국엔 모두 한 방향으로 흘러 마지막 결론에 이른다. 단순히 깜짝 쇼처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되어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복잡한 스토리가 톱니 바뀌처럼 맞물리면서 굴러갈 때의 그 짜릿한 즐거움이란 단순히 리뷰 몇 자로 끄적거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쉬울 정도이다. 요 네스뵈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네메시스>는 그 어떤 장면도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어 진정한 페이지 터너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저런 단서들은 극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풍성해지고, 끝으로 향할수록 이야기는 폭발한다. 작가가 구축해놓은 이야기의 설계도가 완벽하고 탄탄해서 빈틈이 없어,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라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그런 솜씨라는 말이다. 게다가 요 네스뵈의 글을 읽으면 장면들이 바로 머릿속에 영상화되어 보인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작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설명하지 말고, 그냥 보여줘라' 인 것을 떠올려본다면, 그에 가장 부합되는 작품인 셈이다. 독자들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언어를 빚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적확하고 단단한 단어를 골라 쓰고, 어떤 순간의 본질이 포착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명사들과 역동적인 동사들을 찾아서 글을 빚어낸다. 그러는 와중에도 캐릭터의 매력과 유머를 잊지 않고, 꼼꼼하고 복잡하게 설계된 플롯은 방향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한 곳을 향해 질주한다.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이 두툼한 소설을 읽는 내내,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는데,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그저 직접 읽어보고, 체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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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2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2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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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연재되고 있는 뽀자툰의 단행본 2권이 출간되었다. 카리스마 군기 반장 뽀또, 새침하고 도도한 아가씨 짜구, 까칠하고 고독한 쪼꼬, 천방지축 막내 포비, 개성 넘치는 네 마리 고양이와 어수룩하고 무심하지만 책임감 있는 주인의 스토리는 1권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되었다. 나는 강아지만 이십 여년을 키우고 있는데, 아주 어릴 때는 고양이도 한 번 키워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습성을 조금이나마 아는데, 강아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물론 난 어쩐지 도도하고 새침한 고양이보다는, 순박하고 정감 있는 강아지가 더 좋지만 말이다. 특히나 뽀자툰을 읽으면서 고양이의 매력에 더욱 푹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동물을 가족처럼 키운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동물 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고영욱 네 집이었나.. 강아지를 정말 여러 마리 키우는 집이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항상 제일 미안한 것이 집을 비워서 혼자 놔둘 때였는데, 이렇게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들 나름의 언어로 친구와 소통하고 나름의 위계질서를 만들고, 물론 사고도 더 많이 치겠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 집 강아지 토토는 다른 강아지 친구들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산책을 나가보면 역시 마찬가지로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대부분 강아지가 강아지를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짖거나 가까이 다가가서 냄새를 맡거나 하는데, 토토는 친구가 다가와도 전혀 관심이 없다. 민망할 정도로. 그래서 이놈은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게지. 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그래서 뽀자툰을 보면서 뽀, , , 포 네 마리가 함께 동거하는 생활이 너무도 유쾌하고 부러웠다.

페르시안 종으로 유난히 길고 가벼운 솜털들을 뿜어내는 포비에 관한 일화도 매우 공감이 됐다. 예전에 키우던 토이 푸들은 털이 곱슬이라 별로 빠지지 않았는데, 지금 키우는 코카스패니얼은 털이 긴 종이라 정말 털이 많이 빠지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청소를 하다 보면 포비의 털처럼 구석구석에서 털이 한 뭉텅이 공처럼 말려있는 걸 발견하기도 한다. 주인공이 발견한 고양이털 재활용법은 황당하지만 그럴 듯해서 나도 우리 토토의 털로 한번 해봐?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양이를 키우며 길 고양이들이 안쓰럽고 길을 가다 다리를 절고 있는 비둘기를 봐도 마음이 쓰여 한참을 보고 있곤 하는 내가 작은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으리라 한 내가.. 뱀이라는 동물에겐 모진 생각을 그대로 갖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내가 뱀을 생명체로서 존중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생명들에게도 잔인하고 모진 마음을 당연한 듯 지니고 사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나 의문을 갖지 않은 채로.

시골에서 자라며 뱀을 싫어했던 저자는 뱀은 당연히 보이는 대로 죽여도 되는 나쁜 동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자신의 고정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뱀에게 갖고 있던 선입견으로, 내가 좋아하는 동물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놈의 도둑 고양이, 재수없어. 라던가. 말이다. 어떤 존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야 개인의 자유이니, 타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지만, "싫어한다고 해서 함부로 짓밟을 권리는 없다"는 것. 다 제각각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살아가는 생명체이니 말이다.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라서 나는 뽀짜툰이 참 좋다. 강아지를 편애하면서도 고양이 웹툰을 내가 즐겨 읽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들이 쌓여서 가끔씩 뉴스에서 보도되는 반려동물에 대한 우울한 소식들을 언젠가는 덮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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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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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후유미의 <시귀>시리즈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미야베 미유키의 찬사 덕분에 알게 된 작품인데, 일본 호러 소설계 전설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무려 5권짜리였지만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었던 흡입력 있는 작품이었다. 그 뒤로 국내에 출간된 오노 후유미의 작품을 전부 읽어 보았지만, 이미 한참 전에 품절 상태였던 <십이국기>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공포 소설로 유명한 그녀였기에 판타지 대작은 대체 어떨까 너무 궁금했었는데, 마침 이번에 엘릭시르에서 새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냉큼 사전 서평 단에 지원하게 되었다. 이번 작품은 십이국기 시리즈의 그 첫 번째로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평범한 여고생이 어느 날 갑자기 십이국기의 세계로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치밀한 세계관과 흥미로운 캐릭터, 철학적인 성찰이 돋보이는 이야기로 유명한 작품답게 그 서두를 화려하게 열어주고 있다.

 

평범한 여학교에 다니는 요코는 착실한 모범생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학생으로 마치 탈색이라도 한 듯한 튀는 빨간색 머리 색상만 아니라면 그저 무난한, 그러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교실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그런 학생이다. 부모님 조차 살짝 염색을 하든, 짧게 확 치든 조금이라도 눈에 덜 띄게 하는 게 어떨까 할 정도로 튀는 머리 색상을 제외하고는, 그저 수수하고 평범한 학생 말이다. 고지식한 부모가 여자라면 청순하고, 순종적이고 온순한 게 제일이라며, 현명하지 않아도 되고 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를 가르쳤고, 요코 또한 줄곧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요코가 방과 후에 교무실로 불려간 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십 대 후반 정도의 기모노 비슷한 옷을 입고, 길게 기른 금발의 머리카락으로 매우 기묘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그녀를 찾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다짜고짜 추격대가 오고 있어 이곳은 위험하니, 자신과 함께 가자며 그녀를 옥상으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요코는 매번 꿈속에서 보던 거대한 새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는 캄캄한 바다를 건너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십이국기의 세계로 건너가게 된다. 그곳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와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이다. 갑자기 나타난 게이키라는 정체불명의 남자에 의해 그들이 허해라고 부르는 바다를 건너온 그 나라는 매우 독특하다. 십이국기의 국가 체제에 대해서 설명을 듣다 보면, 개인적 역량이 나라의 운명마저 좌지우지 한다는 설정이 매우 시사적으로 느껴진다. 왕이 바뀌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 만큼 좋은 왕을 얻은 나라는 풍요로워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에 자신의 편은 없다. 아무도 요코를 돕지 않는다.

여기에 요코에게 허락된 것은 무엇 하나 없다.

속고 배신당할 것을 생각하면 요마를 검으로 쫓아 버리며 노숙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 이후에 펼쳐지는 요코의 모험은 매우 절망적이다. 그녀로서는 전혀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나라에 던져진데다, 게이키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립심이 강하고 모험을 즐기는 두려움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남의 안색을 살피면서, 모두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그 누구한테도 미움을 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살아왔을 뿐이다. '남과 대립하면서까지 무언가를 고수하기보다 일단 주위에 맞춰 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편이 편했던' 요코였기에 실시간으로 요마에게 쫒기며, 낯선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막막하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서 모험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계속 배신을 당하며, 이 세계의 자신의 편은 없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요마는 밤마다 나타나고, 이따금 낮에도 나타나 요코에게 고난을 강요했고, 피로와 굶주림 또한 요쿄를 괴롭혔다.

 

그보다 더욱 요코를 괴롭히는 것은 검이 보여 주는 환영과 푸른 원숭이였다. 검이 보여 주는 환영은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둘러싸고 있던 가족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엄마는 딸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수는 없다며 울었고, 아빠는 학교에 이상한 남자가 데리러 왔다니 가출한 게 틀림없다며 그런 엄마의 기다림을 나무라고 있었다. 담임은 그녀가 우등생이었고, 친구들과도 별 탈 없이 지냈지만, 누가 봐도 착한 아이였다는 것은 사실 누구한테나 맞추고 있었던 것 아니겠냐며, 누구하고나 원만하게 지내는 대신 누구와도 특별히 친하진 않았다고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들 또한 특별히 싫은 애는 아니었지만 좋은 애도 아니었다고, 늘 적당히 이야기를 맞추는 느낌이었으며 다 함께 나쁜 행동을 할 때 비겁하게 나서지는 않으면서 혼자만 착한 척 했다며 위선자로 기억하기도 했다. 요코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 따위 없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고독한지 깨닫는다.

요코 또한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산다. 자신도 파고들면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까 라쿠슌의 말은 원망스럽게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요코는 생각했다. 아아, 인간은 결국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니까 배신하는 것이라고. 누구든 남을 위해 살 수는 없으니까.

 

나약하고 평범했던 한 여학생이 점차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모험의 플롯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그녀가 겪는 외부의 시련만큼이나 내면의 방황과 고독이 그려지기 때문인데, 반드시 살아남아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단계가 굉장히 흡입력이 있다. 초반에 요마에게 공격을 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조차 검을 사용하기 싫다며 공포를 회피하던 그녀가, 이제는 머리도 몸도 한계까지 쓰지 않으면, 그렇게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배신하고 이용했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도와주고자 했던 라쿠슌마저 믿지 않게 되는 상황에 이르면 어쩐지 요코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이해하고픈 마음도 들었다. 어차피 이 세계에 내 편은 없으니, 어수룩하게 믿었다고 배신당할 바에야 그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내가 상대를 믿지 않으면 애초에 상대가 나를 배신할 방도가 없을테니 말이다.

요코가 왜 갑자기 십이국기의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게이키는 왜 하필 그녀를 선택했는지, 왜 요코는 낯선 세계에 와서도 그들과 언어로 소통하는 게 전혀 문제가 없는지, 그녀는 과연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스토리를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리뷰를 읽는 당신이 이렇게나 재미나고 매혹적인 스토리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시귀> 시리즈만큼이나 너무도 매력적인 작품이라서, 앞으로 출간될 <십이국기> 시리즈가 정말 기대가 된다.

아직 오노 후유미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이 작품으로 시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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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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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89년 이후로 탐욕스럽게 살을 찌운 것은 부르주아들뿐이었다. 그들은 노동자에게 자신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 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백 년 전부터 부와 삶의 안락함이 엄청나게 증대했지만, 그 누가 노동자들이 그들의 합당한 몫을 분배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선언했을 뿐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봐야만 했다. 법이나 서로의 합의에 따른 우호적인 방법으로든, 모든 걸 불태우고 서로를 잡아먹는 야만적인 방법으로든. 지금 세대가 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야 말 터였다. 한 시대는 또다른 혁명이 있기 전에는 끝을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드레퓌스 사건'은 그를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으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던 드레퓌스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음에도 단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만들었었고, 그 후 진범이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음에도 군 수뇌부에서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었다. 가족들이 진범을 고발했지만, 형식적인 심문과 재판을 거쳐 그를 무죄 석방하자,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의 논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논설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의 이 글로 인해 드뤠퓌스 재심 운동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이후 숱한 고난을 겪게 되는 에밀 졸라의 모습은 우리 나라의 8, 90년대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제르미날> 역시 노동자 계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소설로 그의 투쟁과 저항 의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 소개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은 연작으로 읽을 수 있다. 대표작 <목로주점>을 중심으로 <나나>, <제르미날>를 연결해서 읽으면 된다. 아쉽게도 <제르미날>은 절판상태였으나,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다.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철도회사에서 해고당한 에티엔이 몽수의 탄광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는 동료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빚에 시달리며 짐승처럼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탄광회사가 교묘한 방법으로 임금을 삭감하기 까지 하자 파업에 앞장서게 된다. 에티엔은 광부들을 설득해서 죽음 아니면 희망이 될 파업을 시작하는데,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열정이 페이지마다 넘쳐 흐른다.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 보지.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는 빵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 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삭박해진 부부생활, 고통스러운 그의 삶 전체를 떠올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빵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게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바보가 부의 분배에 모든 이의 행복이 달려 있다고 주장한단 말인가? 혁명주의자들의 그런 허황된 꿈은 기존의 사회를 무너뜨리고 또 다른 사회를 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류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거나, 빵을 나눠줌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세상의 불행을 더 확산시키면서, 사람들을 조용한 본능의 충족에서 끌어내 채워지지 않는 정념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고용주와 자본가로 대표되는 부르주아들의 사고 방식은 이렇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삶에 분노하며 들고 일어서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계층간의 괴리는 비단 이 시대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2014년 현재에도 여전히 계층간의 괴리는 커다란 사회 문제 중의 하나이니 말이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을 참고 견딜 것인가, 그것에 대항해서 맞서 싸울 것인가의 문제는 두 권 분량의 꽤 두툼한 이 작품에 속도감을 더해준다. 자본과 노동, 고용주와 노동자의 세계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그 긴장감이 극적인 플롯을 만들어내며 커다란 울림을 남겨준다.

 

에밀 졸라의 장례식에서 광부들의 대표단이 세 시간 넘게 "제르미날! 제르미날!"을 외치며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일화는 이 작품이 얼마나 혁명적이고 위대한 소설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만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고전이지만 지금도 묵직한 무게 감을 선사하는 현재 진행형의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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