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작가는 첫 라오스 여행은 아내와 967일 동안의 긴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4년만의 외출이었고, 지구를 한 바퀴 돌며 967일간 길 위에서 만난 자유는 황홀했고, 여운은 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번 더 라오스를 여행했는데, 한 번은 '청소년여행학교'라는 이름으로 열세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한 번은 또다시 아내와 둘이서 다녀왔단다.
이처럼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같이 여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둘만의 여행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고 설레인다.
호찌민 공항은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실외였고, 마중하거나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로 넘치도록 북적였으며, 훅 하고 덮치는 툭유의 덥고 습한 공기는 지금 막 도착한 이방인을 삶아 먹을 기세여서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공항 풍경이 떠올랐다.
또한 이 곳에선 난데없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바로 스콜이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도 좋고, 텅 비어 버리는 거리, 바쁘게 오가는 사람도 없고, 비를 탓하며 안달하는 사람도 없다. 얼마나 여유롭고 한가한지 저절로 느껴진다. 나 또한 비를 좋아해선지 스콜은 직접 보고 느껴보고 싶어진다.
베트남의 변화 속도는 무척 빠르다. 어느새 한국의 70퍼센트에 육박했으며, 국제적인 금융그룹이나 기업들이 다 들어섰고, 쇼핑센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사람들의 소비문화까지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꼰뚬은 라오스 국경으로 향하는 베트남의 마지막 도시다.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꼰뚬 시티 외곽으로 나가면, 곧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이어진다. 무너진 나무다리 아래로 오토바이를 몰아 작은 개울을 지나 달리다보면 시골 마을이 나타난다.
작가는 시골 마을 구경을 잘하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려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유는 연료가 없었던 것이다. 연료 계기판이 고장나서 연료가 없었던 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오토바이를 대여할 때 주인이 가솔린 어쩌고 했었는데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자신의 실수인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난감하고 당황스러웠을지 공감간다.
하지만 마을 청년들이 와서 오토바이 상태도 확인해 주고, 작가를 태워줘서 연료도 사서 넣을 수 있었다. 이런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못지 않게 작은 시골 마을 인심이 좋다고 느꼈다.
우린 매일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여행이란 우연히 찾아든 사원에서, 골목길에서, 강가에서, 이곳까지 떠나온 이유를 한 가지씩 알아 가는 것일 것이다.
팍세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가 아니다. 참빠삭이나 시판돈, 혹은 커피농장으로 유명한 볼라벤 고원 같은 라오스 남부의 유명한 여행지로 가기 위해서 거쳐갈 수밖에 없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팍세에 머물면서 하루 일정으로 그곳 여행지들을 다녀오거나 오토바이를 빌려 거원 지역의 비포장 길을 헤매고 다니기도 하지만, 곧바로 버스를 갈아타고 다음 여행지로 직행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메콩의 장엄한 흙빛 강물이 태국과 경계를 나누며 라오스의 등뼈를 훑어 내리다 막 캄보디아로 발을 들여놓기 직전에, 시판돈이라는 곳이 있다. 라오스 말로 '시'는 숫자 '4'이고 '판'이 '천'이고 '돈'은 '섬'이니까, 시판돈이란 '4천 섬'인 셈이다. 4,000개의 섬이 강 위에 떠 있다 하여 얻어진 이름인 것이다.
길 위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 여행은 또 하나의 삶이 되는 법이다. 여행에는 설렘과 기쁨, 그리움 같은 감정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때론 지루하고 외롭고 쓸쓸하며,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삶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들이 한 번의 여행 안에 다 녹아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긴 여행을 다녀온 여행자는 한 번의 삶을 다 살아낸 것처럼 피로해진다. 그러고는 여행이 또 하나의 삶이고, 삶 또한 사실은 여행이라는 오래된 비밀의 문 앞에서 서성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여행자가 어느 한 도시의 진정한 매력을 알고 싶다면, 그는 우선 이른 새벽 거리로 나서 보아야 한다. 잠이 덜 깬 도시의 맨얼굴이 그곳에 있기 마련이다.
비엔티안의 새벽을 여는 것은 길고 긴 탁밧(탁발) 행렬이었다. 좀 과장하자면 비엔티안에는 길 하나 건너 하나씩 사원이 있는데, 그 많은 사원에서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한 줄로 흘러나와 실바람처럼 거리거리마다 스며들어 간다.
오래전부터 비엔티안은 '위안짠'으로 불렸다. '달이 걸린 땅'이란 뜻이다. 프랑스의 식민 시절을 거치며 비엔티안이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불리기 이전에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 자체로 본다면 비엔티안은 특별히 예쁜 도시는 아니다. 오히려 밋밋하거나 펑퍼짐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주황색의 탁밧 행렬이 시작되자, 공양을 하는 라오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하러 나온 여행자들도 늘어난다. 낙밧 행렬에는 아직 아기 티를 채 벗지 못한 어린 스님들도 있다. 그리고 공양 줄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그들 또래의 다른 꼬마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땟국물이 흐르고 행색은 더없이 꾀죄죄하다. 그런데 그들 앞에 놓인 대나무통은 처음부터 비어 있었다. 어린 스님들이 그 앞을 지나면서 자신들이 고양받았던 찐 밥과 과일이나 과자 등을 꺼내어서는 바닥에 놓인 또래 아이들의 빈 대나무 통을 채워 준다.
탁밧은 스님들의 삶의 방식이다.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낮추는 수행의 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탁밧은 공양을 하며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얻는 종교적인 의식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하나의 의미가 더 있었던 것이다. 거리의 아이들과 같이 절대빈곤의 위기에 놓인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서양처럼 이렇다 할 복지제도를 갖추지 않고서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매일 아침 고양 음식은 시민들의 손에서 스님들의 발우 속으로, 다시 거리 아이들의 대나무 밥그릇으로 돌고 도는 것이다.
라오스의 방비엥은 중국 구이린과 베트남 하롱베이와 더불어 세계 3대 카르스트 지형에 속하는 곳이다. 이는 아름답고 기이한 봉우리들과 동굴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트래킹이나 동굴 탐험을 하려는 세계의 배낭여행자들이 방비엥으로 몰려든다.
라오스 정부는 40여 년 전에 토지개혁을 통해 땅과 집을 전 국민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라오스 사람들은 시골에서 특별한 욕심 없이 평생 동안 가족과 이웃이 전부인 삶을 평생 동안 가족과 이웃이 전부인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삼모작이 가능한 농토가 그들 각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굶어죽지 않을 수 있다는 단순한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서양의 근대화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라오스는 국민의 80퍼센트가 여전히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저개발 혹은 비문명의 나라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 예스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