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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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서 적응 잘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일상에도 무난히 적응할 수 있다. 그냥, '대한민국은 군대다'. 그러니 싫든 좋든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자들은 사회생활이 여러모로 여자들에 비해 유리하다.

 

 당당함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겠지만 과하면 문제를 일으킨다. 카리스마, 리더십 같은 말들이 난무하고 남자라면 그래야지라는 조언이 일상적인 곳에서는 당당함이 사람의 능력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즉, 당당함이 개성이나 캐릭터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유무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당당함을 유전자를 타고난 경우는 없다. 이것은 철저히 사회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학습된다.

 

 

 남자만의 벌이로 가족의 생계가 안정적일 수 없는 시대가 오면서 맞벌이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남자들은 아내가 돈도 벌어주길 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도'다. 즉 원래의 일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집안일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래서 일은 하지만 원래의 집안일에 타격을 가장 적게 받는 직업이 좋다. 그러니 초등학교 교사는 최고다. 퇴근도 정시가 보장되고 무엇보다 방학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운전을 못할 때 종종, 아니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김 여사' 이미지는 남자들의 대표적인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구글 이미지에 '김 여사'를 검색해보라. 여성 운전자를 조롱하는 무수한 사진들이 이를 증명할 것이다.

 

 여자가 운전하는 것을 비하하는 '김 여사' 이미지가 문제가 되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남자들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로 주장을 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니 도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어떤 운전 미숙자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받을 때는 그 운전자의 성별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배려하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건 운전대를 잡는 모든 사람이 고려해야 하는 시민의 덕목이다. 

 

 

 정보 취득과 공유가 평등해진 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그래서 과거 같았으면 별일 아닌 것처럼 덮어졌을 일들도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된다. 주로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졌던 폭력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세상에 들통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저지르는 여러 폭력이 대표적인 경우다.

 

 물리적 폭력에서부터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언어적 폭력까지, 남자들은 이제 과거에 비해 훨씬 조심하면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원래 조심해야 하는 것은 훨씬 조심하는 것이 맞다. 성추행은 하지 않는 것이 답이지, 과거만큼 못 한다고 무슨 행동에 제약이 있는 것처럼 이해해선 안 된다.

 

 

 개인은 자신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그러니까 익숙한 것을 극대화시켜 상품으로 포장하는 전략을 수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강한 남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여자들은 조신한 여자로서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려고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사회가 원하는 것이 '부당한 것을 참을 수 있는지'이니 별수가 없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답게는 중요치 않다.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만 부유하는 곳에서는 일그러진 인간들만이 활보한다.

 

 성희롱인지도 모르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남자다운 남자들과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여자다운 여자들, 그리고 이 문제가 드러나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전혀 인간다운 세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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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영웅전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 로마 군주의 거울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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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군주의 거울로 선택하고 소개할 책은 플루타르코스가 쓴 [비교 영웅전]이다. 사실 책의 분량만으로만 따지자면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은 그리스 편에서 소개한 모든 책의 네 배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무려 50여 명이 군주의 거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고대 로마에서 군주의 거울을 찾고자 한다면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 한 권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사실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은 한 권이 아니라 총 50권으로 구성된 전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군주의 거울이라는 인문학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사람이 플루타르코스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책 [모랄리아]에서 자기성찰을 위한 거울의 메타포를 직접 사용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비교 영웅전] 첫 부분에서 아테네를 아름답고 이름 높은 도시로 소개했다. 반면 로마는 무적이며 영광스러운 도시로 그 특징을 요약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제국이 간직해야 할 또 다른 덕목을 강조한다. 바로 아름답고 이름 높은이라는 덕목이다. 로마제국이 추구해야 할 탁월함은 무적이며 영광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이름 높은 가치의 추구에도 있다는 것이다.

 

 영웅의 명성은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고 역경을 극복해 나갈때 아름답고 이름 높은 명예가 주어진다. 그런 이유로 테세우스는 편한 길을 버리고 힘든 여정을 선택한 것이다. 스파르타에 헤라클레스가 있었다면, 아테네에는 테세우스가 있었다.

 

 스파르타 최초의 입법자인 리쿠르고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은 교육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부자 청년에게도 교육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플루타르코스는 [비교 영웅전]에서 리쿠르고스의 공적을 이렇게 요약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의 업적은 시민들이 자기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욕구, 혹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지 않도록 훈련시킨 것이었다." 리쿠르고스의 이런 노력을 통해 위대한 스파르타가 탄생하게 된다.

 

 아테네와 함께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자웅을 겨루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누르고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의 힘은 바로 입법자 리쿠르고스에게서 나왔다.

 

 

 플러톤은 가장 우수한 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는 이상국가론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의 상당 부분은 이런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우수한 자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 위인과 로마 위인을 서로 짝지어 비교하면서 은근 슬쩍 그리스인들을 추켜세우는 것으로 자기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드러냈다. 비록 그리스가 막강한 로마의 군사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변방의 약소국가이긴 했지만,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조차 그리스라는 어머니가 제공해준 문명의 젖을 먹고 자란 신생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인 폭력성을 억제하고 나라를 평화와 공존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으로 다스리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는 주장이 있다. 위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피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방식이다. 악한들은 강력한 법의 제재를 받게 하고, 선한 사람들에게는 법의 보호가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어 사회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힘의 방식은 주로 강력한 군주제에서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제도적 장치일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군주의 거울로 보여주고 싶었던 아게실라오스라는 스스로 고난을 감내하며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올랐지만 아게실라오스는 늘 시민들 앞에서 겸손했고, 정적들에게도 자비로웠다. 페르시아에서 불세출의 명성을 쌓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명예를 남길 수 있었지만 그는 조국의 부름에 즉각 순종했다.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선두에 서서 행진하는 리더였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41년간 스파르타의 왕이었고, 그 가운데 30년이 넘도록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칭송받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플루타르코스가 아게실라오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군주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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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정보원 - 전2권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홍상화 지음 / 한국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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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만큼 너무 사실적이란 느낌이었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 이 소설이 분단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천착하고자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이 흔한 대로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정면에서 진지하게 다루고자 한 것이라면 읽는 독자들이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사실이지 않을까 하며 이 책에 빠져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두 인물 정사용과 김경철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를 먼저 알고 읽으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정사용은 안정된 가정에서 태어나 6 · 25 발발 전 중학교 재학 중 맹목적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침윤돼 좌익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6 · 25가 발발하자 그는 북한 의용군에 자원 입대, 중상을 당한 뒤 하급노동자로 전락한다. 여배우 최영실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밀봉교육을 받은 후 간첩으로 남파된 그는 숙부 등 친척들의 포섭에 실패, 체포된다. 마침내 전향하여 결혼도 하고 경제적 안정까지 누리게 된 그는 어느 날 병사를 가장한 후 자살해버린다.

 

 김경철은 안정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대학에 입학한 후 학보병으로 입영, 육군 정보부대에 배속된다. 그 인연으로 5 · 16 쿠데타가 일어난 후 정보부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그로부터 15년 동안 정보요원으로 일한다.

 

 김경철이 1970년 미군 정보대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중 자수한 간첩 정사용의 심문을 통역하게 됨으로써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이런 인연으로 둘은 가깝게 지내게 된다. 김경철은 정사용의 자살을 얘기 듣고 그 이유를 파헤치던 중 자신이 정사용이 되어 진정한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정사용이 죽기 전 했던 것들을 김경철도 똑같이 경험하며 정사용의 심정을 이해하려 하던 중 그는 자신이 정사용이 된 듯 착각하며 정신병을 겪는다.

 

 결국 김경철은 마치 자신이 정사용인 양 북한으로의 망명까지 생각하게 되고, 정사용의 부인과 딸을 자신의 부인과 딸로 착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엔 망명에 성공하지만 북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북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둔 정사용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아내와 불화를 겪던 김경철이 정사용의 아내가 자신의 아내였으면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만큼 이 소설은 읽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 재밌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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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소년
창신강 지음, 주수련 옮김 / 책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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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에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녹아 있다. 아이를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성장시키려는 권력자,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친구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아이의 행동, 부모의 비뚤어진 애착,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교육의 본질 등이다.

 

 왜 나쁜 행동을 멈추고 좋은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틀에 박힌 교훈처럼 제시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굉장히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시간이 지나도 자라지 않는 주인공을 비롯해 검은 카드, 비정상적인 새끼손가락, 특별 법원 등 흥미롭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또한 작가는 각 장마다 복선만 던져 줄 뿐 결말을 알 수 없는 구조로 궁금증을 더해 가며 독자가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2000년 어느 여름날 아침, 시장에 못 보던 노인이 한 명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어딘가 낯이 익은데도 선뜻 알은체를 하지 못했다. 그 노인이 자신을 '라오더우푸'라고 소개한 뒤에야 사람들은 팔 년 동안 중풍으로 몸져누웠던 라오더우푸를 기억해 냈다. 라오더우푸의 머리는 비닐봉지 속의 두부보다 더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두부를 좋아했다.

 

 라오더우푸는 무심코 오래된 건물의 나무 발코니 위를 올려다보다가 그만 돌처럼 굳어 버리고 만다. 그는 손가락으로 발코니를 가리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만다. 라오더우푸가 가리킨 것은 이 책의 주인공 펑이었다. 그리고 라오더우푸가 팔 년 만에 처음 거리로 나온 날이었다.

 

 1992년 여름, 라오더우푸는 시장에 갔다가 나무 발코니가 있는 건물 아래를 지나가게 되었다. 별안간 위에서 물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열 살 난 펑이 3층 나무 발코니에 서서 아랫도리를 내놓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라오더우푸는 화가 나 발코니 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고 길 가던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2000년 여름, 그때와 똑같은 모습의 펑을 또다시 보게 된 것이었다. 

 

 

 펑이 나쁜일을 하면 어디선가 누군가 나타나 검은 카드를 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쓰인 카드라 버리려고 하지만, 그 카드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카드를 쳐다보던 펑의 눈에 점점 글씨가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카드 마지막에는 몇호 감독원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펑이는 기억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은 흘러간다. 왜 기억을 못하는지 어떻게 이런일을 겪는지는 이 책을 끝까지 보면 알게된다. 또한 펑이 키우는 개가 있는데 그 개 이름은 나이트다.

 

 펑이 좋은 일을 하면서 서서히 기억력이 돌아오게 된다. 기억이 돌아오려면 펑이 계속 좋은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된 기억력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기억력이 완전히 돌아오면 펑과 나이트의 본래 모습까지 찾을 수 있다.

 

 팔 년 전, 특별 법원 7명의 재판관으로 인해 펑이 기억력을 잃게 된 것이다. 펑이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7명의 재판관 중 4명 이상의 재판관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재판관 한 명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두 명은 사직서를 낸 상태다. 그러니 나머지 4명의 재판관 모두 동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펑의 담임 선생님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생기고, 선생님을 문병간 펑은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남은 4명의 재판관들 중 3명에게 이미 동의를 받은 것을 알게 된다. 담임 선생님은 동의를 받아주고는 눈을 감는다.

 

 펑은 나머지 여자 재판관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남은 한 명의 여자 재판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자신의 엄마였던 거였다. 결국 엄마의 동의까지 받은 펑이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또한 펑이의 개 나이트도 옛날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펑이는 몸집도 커지고 제 나이로 돌아오긴 했지만, 나이트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마자 나이를 먹게되고 나이가 들어 죽음에 임박하게 된다. 그래선지 돌아온 것이 좋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의 일상과 그 일상 속의 평범한 존재들, 즉 개, 선생님, 일하는 엄마, 반 친구들, 동네 친구, 슈퍼마켓 아주머니,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등 등장인물을 매우 친근감 있게 그려 냈기 때문이다. 말썽을 피워 도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악동, 이 골치 아픈 건만증 소년 펑도 주변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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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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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확실하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냉전과 데탕트, 양극화 이후. 시기마다 강대국 간 체계적 합의와 인류애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자한 희망은 있었다. 동시에 진정한 공동 안보 노력은 얼마 못 가 흩어져버리곤 했다.

 

 냉전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데서 시작해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종말을 맺는 것으로 종종 정의된다. 다시 말해 양극화 세계로 지칭될 수 있는 역사적 시기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들은 매우 이른 시간 내에 이념적으로 나뉜 두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에는 철의 장막이라 불리는 단절의 상징이 있었다. 전쟁이 끝으로 치달을수록 연합의 와해라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진영은 냉전의 기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욕망이 전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무제한으로 키웠고, 그 욕망이 전쟁 중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소련을 통해 얻어낸 권리를 부정했기 때문에 냉전이 싹튼 것으로 봤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산주의 시스템 그 자체가 갖는 메시아적 시각, 영토 확장주의적 성격, 지배에 대한 욕구 등의 특성이 전통적 러시아 제국주의에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철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베를린의 분할, 독일의 분할, 나아가 대륙의 분할 등 냉전의 핵심은 유럽에 있었지만, 아시아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운이 확산되고 있었다.

 

 냉전의 최전선은 유럽 대륙이 최악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을 비껴가게 해준 곳은 아시아였다. 공산주의 진영은 1949년 마오쩌둥이 중국의 권력을 잡았을 때 이루어진 엄청난 외연 확장에 환호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소련 측에 그리 긴 기간 동안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또한 민족자결주의와 비동맹 운동이 활발하게 떠오르던 곳 역시 아시아였다.

 

 냉전의 정점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은 자칫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다. 전쟁은 모스크바와 워싱턴이 전략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지역에서 일어났다. 충돌을 주도한 두 초강대국이 서로를 과소평가 한 데서 기인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군인은 70만 명, 부상자는 90만 명이고, 일반인 사망자는 200만~400만 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한반도는 전투와 폭격으로 황폐해졌다. 특히 서울은 70% 이상이 파괴됐다.

 

 

 데탕트는 유로 미사일 위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1970년대 말까지 동서관계의 특징을 드러낸다. 데탕트는 긴장의 완화를 뜻하지 화합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데탕트가 가능했던 것은 소련이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하향세여서 국제사회의 문제를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처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탕트 시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어두운 시절로 규정된다. 종종 미국의 지원을 받는 폭압적 집권세력과 창궐하는 게릴라 사이의 내부적 폭력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부 지역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에 대부분의 내부 갈등이 해결되고, 민주주의와 문민세력의 복귀가 이뤄졌다.

 

 냉전의 종말은 군비의 효과적 제어를 실질적인 군비 축소로 돌려놓는 효과를 낳았다. 유로미사일 전쟁이 1980년대 동서 관계의 극단적 긴장 상태를 대변하는 반면,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협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유럽에 형성된 여론의 일부가 미국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서독 배치를 반대한다 할지라도 대서양 연대 전체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거의 50년 동안 국제관계를 구성한 것은 양극화 세계였다. 어떤 이들은 끔찍한 적대 관계가 일반화되면서 풍경화의 배경처럼 굳어져 양극화가 고착될 것이라고 여겼다. 한때 핵전쟁의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결국 총성 한 발 울리지 않은 채 평화적으로 양극화 세계는 자취를 감췄다.

 

 양극화 세계 이후 러시아의 정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1990년대를 아우르는 보리스 옐친의 임기로 극심한 경제적 · 외교적 취약성과 합의에 따른 서방세계와의 느슨한 관계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푸틴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된다. 러시아가 경제적 · 외교적으로 재정비를 하고 서방세계와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이다. 다만 2001년 9 · 11 테러 이후 미국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인 적은 있다.

 

 이제 핵전쟁의 위험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대립 구도는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커다란 전략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방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지고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이는 서방 강대국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독점 구도가 더 이상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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