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 작은 가게를 기획합니다
김란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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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 자그마한 내 가게 하나 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꿈은 이렇게 이어진다. 내 가게를 하면 아침 출근길 지옥철 따위는 없겠지, 지랄 같은 직장 상사나 기어오르는 후배를 보며 속 끓이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이제 당신은 인터넷으로 가게 매물을 찾아보거나 요즘 잘나가는 아이템 검색을 시작한다.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머릿속 당신은 이미 햇살이 비치는 작은 가게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막연하게 창업을 꿈꾸는 당신에게 오랜 시간 장사를 해온 우리 엄마의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다.

 

"장사꾼 똥은 다 썩어서 개도 안 먹는다." 이것이 바로 장사의 현실이다.

 

나는 창업이니 가게니 하는 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엄마의 옆에서 '나만의 가게'라는 환상은 진작에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나 역시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창업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나이들어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저 먼 곳에서 작은 상점이 톡 하고 솟아오른다. 머릿속에 등장한 깨끗한 가게를 보며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제 나도 내 가게를 한 번 해봐? 장사 힘든 건 다 아니까 오히려 유리하지 않을까?

 

나만의 가게를 가지는 창업. 그것은 말 그대로 멀리 보이는 사막 위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운이 좋으면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는 깨끗한 물과 쉴 그늘이 있지만, 그냥 허상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 오아시스를 향해 걸어갔는데 정작 그곳에 있는 것이 마른 모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멀리 보이는 또다른 오아시스. 저것도 허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창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나만의 가게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가 오아시스를 조금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이 책은 콕 집어 주는 창업 아이템이나 장사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조언해 주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간 디자이너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김란 작가의 창업 공간에 관한 모든 것이다. 제목 그대로 내가 앞으로 일을 해야 할 창업 공간, 그 공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꾸며야 되는지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이다.

 

단순하게 가게 안의 인테리어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가게를 기획합니다'라는 부제처럼 작가는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가게를 계약해 버린 친구와 함께 차근차근 창업을 진행해 간다. 창업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에 좋다. 만약에 창업에 대해 작은 메모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진행 방식에 따라 자신이 생각해 온 창업을 꼼꼼하게 적어봐도 좋지 않을까.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는 '공간 창업'에 관한 설명이 대부분이다. 내가 일할 곳을 직접 만드는 사람을 공간 창업자라고 하듯, 이 책은 스스로 일하는 장소와 직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책이다. 물론 다른 분야의 창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조언들이 많다. 창업 전부터 반드시 시작해야 할 SNS 홍보를 비롯해 공간 창업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 부동산 계약이나 인테리어 등 꼭 공간 창업이 아니라도 가게를 운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내용들이다.

 

오히려 퇴사 또는 부동산 방문보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 일은 브런치 또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SNS 계정 운영입니다. 저는 실제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 5,000명 이상 만들어서 오라고 고객을 돌려보는 적도 있습니다. 5,000명 중에 최소 50명은 오프라인 공간까지 찾아올 팬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 공간 오픈 준비를 하자고 했습니다.

 

이미 자신만의 공간을 꾸려나가는 공간 창업 선배들의 조언도 좋았고, 일반인이 미쳐 체크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적어둔 체크리스트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바로 '돈'에 관한 설명이었다.

 

작가는 묻는다. '취미 생활인가요, 창업인가요? 다 돈이에요.' 그렇다. 창업을 해볼까 마음먹는 순간부터 생각지도 못한 많은 돈이 든다. 만약에 당신이 권리금이 뭔지, 시설 비용이나 기타 세금이 뭔지 모른다면 다시 한번 창업을 고려해보길 권한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꿈을 이루기 위해 창업이라고 하기엔 참 많이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수입도 벌지 못한다면 행복의 파라다이스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곳은 수천 개의 가시가 솟아난 불구덩이 보다 더 괴로운 곳이 된다.

 

무엇을 팔고, 어디에 점포를 구한 뒤에 어떤 인테리어를 하는 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간 운영에 얼마만큼의 돈이 드는지 확실히 공부하길 바란다.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에서는 지출이나 수익에 관한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 않았지만, 창업 초보라면 어려운 설명 보다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창업, 특히 음식점 운영을 하시는 엄마가 계셔서인지 음식점 창업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단지 지금 직장이 싫거나 단순히 가게를 하고 싶은데, 음식점이 그나마 돈을 번다고 해서라는 답을 한다. 긴 시간 가게를 꾸려오신 엄마를 보면 내 가게라는 것은 무척 큰 짐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가게가 직장 생활과는 또 다른 굉장한 매력을 가진 일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대답을 한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철저하게 준비하라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의 작가가 어쩌다 가게를 얻은 친구와 함께 철두철미하게 창업 준비를 하듯, 스스로 그런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책에서처럼 오픈함과 동시에 수익이 창출되기 힘든 공간 창업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의 가게를 꿈꾸는 당신에게 말한다. '나는 기필코 창업을 하겠다' 마음먹었다면 일단 이 책에서 알려주는 방식으로 당신만의 창업 가이드를 만들어 보길 바란다.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하는 그 순간, 창업에 대한 확신이 든다면 이제 당신의 작은 가게의 문을 열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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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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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말들>에서 사진작가 천경우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천경우 작가의 작품이 있는 공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 옆에는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 작가님도 함께 했다. '천경우 작업 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보이지 않는 말들>은 천경우 작가의 전시회에 대한 기록이자 나만의 도슨트였다.

 

사진작가 천경우는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진과 퍼포먼스, 공공미술 작품을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말들>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작가 그리고 현지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의 시작과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업 노트'라는 말처럼 이 책은 2년 남짓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책 속에는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가득 담긴 25개의 포로젝트를 소개한다.

작가는 에필로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사진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기록사진들 위주로 구성하였으며 혼자서 간직하고 있던 작품과 함께 쌓여간 상념들이 담겨 있다.

설치 미술 작품의 경우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 노트를 읽어서일까? 아니면 작품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애정을 읽어서 일까? 이 책을 읽지 않고 작품을 만났더라면 분명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날 법한 그의 퍼포먼스에 나도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곳곳에서 그는 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인도, 파리, 폴란드 등의 대도시 또는 이름 모를 작은 도시에서 그 곳의 사람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함께 체온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으며 매일 지나던 그 길에 뜬금없이 설치된 트랙을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25개의 주제에 따라 늘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져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작가는 작품에 왜 그런 제목을 지었는지, 어떻게 그 작품을 떠올랐으며 구상하게 되었는지 세심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퍼포먼스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작품에 반응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작품에 대한 과정과 설명도 좋았지만 나는 특히 그 모든 과정을 멀찌감치 떨어져 관찰하는 사람처럼 들려주는 작가의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얼굴이다.

하나를 선택해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25개의 작품들 중 암스테르담에서 전시된 '1000개의 이름들'이라는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퍼포먼스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분간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1분 동안 떠오르는 대로 벽면에 적는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 적어가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이름들. 암스테르담의 붉은 벽면에는 관객들이 적은 이름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퍼포먼스에 참여한 그들은 이름을 적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25개의 사진과 그것을 둘러싼 작가의 글은 만족스러웠다. 퍼포먼스를 보고 난 후의 알쏭달쏭함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작품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전혀 달랐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말들>은 작품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작품 이전의 상황과 작가의 생각, 고민 그리고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하며 쌓아온 그의 노트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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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0
정지돈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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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말 중에 '단디' 라는 단어가 있다. '단단히'라는 뜻으로 <야간 경비원의 일기>를 읽으면서 생각난 단어가 바로 '단디'였다. 이 책을 읽으려면 '단디' 마음먹으시길 바란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이지만 한 번에 읽고 이해하기 힘든 무척이나 독특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주인공이 야간 경비원을 하며 블로그에 적어가는 일기 형식이다. 포스팅을 올린 날짜와 시간, 짧은 제목들은 가끔 일기인 듯, 혹은 무척 짧게 구성된 연재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두께는 얇다. 이야기를 읽으며 딱히 막히는 부분 없이 쉽게 읽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작가의 의도를 금방 알아채기는 힘든 꽤나 불친절한 소설이었다.


줄거리는 단순한데 한 문장을 몇 번씩 읽게 되는 책이 있는 반면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다소 난해한 내용임에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머리를 갸웃거리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 '내가 소설에 대한 이해력이 이렇게나 떨어졌나?' 자꾸 반문하게 된다.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자체가 신선하고 독특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는 연작들이다. 그래서 핀 시리즈를 접하게 되면 이번에는 어떤 매력이 듬뿍 담겨있는 책일지 기대가 된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낯설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핀 시리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나에게 이번 책들보다 조금 더 난해한 책이었다. 이미 책을 읽으신 다른 리뷰어들의 작가의 말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글을 읽었다. 책을 읽은 후 한참 동안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까 고민하던 내게 그분들의 글은 위로이자, 나만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안심을 안겨주었다.


정지돈 작가의 <야간 경비원의 일기> 한 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었는데 책의 말미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또 다른 소설이 있었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이어, 키토에서'라는 제목을 가진 박솔뫼 작가의 이야기였다. 하나의 이야기를 두 명의 작가가 들려준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와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는 이 책을 수월하게 읽었고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는 대충은 알겠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후 느끼게 되는 이 묘한 감정들.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작가가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은 것인지 <야간 경비원의 일기>를 읽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독자라면 도전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전 시리즈의 책들보다 더욱 친절하지 않다. 그러니 <야간 경비원의 일기>를 읽은 독자라면 당신의 느낌을 꼭 SNS에 올려주길 바란다. 그렇게라도 이야기를 공유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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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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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낮에 볕이 잘 드는 남향 주택이다. 모두 일하러 나가고 나면 우리 집은 '우리' 집이 아니라 '동네 고양이'들의 쉼터로 변한다. 따뜻한 현관 계단,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옥상 입구와 담벼락은 그들만의 공간이 된다. 가끔 낮에 대문을 열려고 하면 마당 안쪽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간혹 용감한 녀석들은 뻔뻔하게도 현관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누워있다. '누군데 우리 집에 찾아온 거냐!'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우리 집이 동네 고양이들의 쉼터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정작 내게는 고양이가 없다. 가끔 마당 창고에 새끼와 쉬었다 가는 고양이들이 있다. 배고플까 봐 우유도 주고 물도 놔두곤 한다. 하지만 어째 이 녀석들은 나를 집사로 선택할 마음이 없는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한 마리쯤은 우리 집을 앞으로 자기가 살 집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한테 참 야속하다.

 

<고양이와 할머니>는 부산 재개발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그 곁을 함께 하고 있는 고양이가 나오는 포토에세이이다. 머리에 꽃을 올리고 새초롬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책 표지의 고양이가 시선을 끈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글과 고양이와 할머니의 일상을 잘 보여주는 가슴 따뜻한 사진이 들어 있다. 자신을 고양이 중증 환자라고 소개하는 작가의 고양이 사진에는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굳이 '나는 정말 고양이를 좋아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사진 속 길고양이들은 참 예쁘다.

 

심각하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없다. 사람들이 떠나고 곧 사라질 재개발 지역에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들과 고양이에 대한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글과 사진들이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있지만 사진에서는 뭔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사진에 나오는 할머니들 중 한 분은 별이 되셨다는 작가의 말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안다는 쓸쓸함과 처연한 듯한 고양이의 표정이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지 <고양이와 할머니> 속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고양이와 할머니> 포토에세이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더욱 샘솟게 한다. 나처럼 어중간하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책 속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 정도인데 말이다.

화려한 고양이는 없다. 예쁘게 잘 다듬어진 고양이도 없다. 골목에 주차된 차 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길고양이들이다. 늘 마주쳐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고양이들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되어 좋았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고양이는 외로운 사람이랑 잘 맞는 동물이라고. <고양이와 할머니>를 읽으며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은 길고양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계절이다. 담장 위에 보이던 치즈 고양이도 요즘 보이지 않고, 옥상에 만들어 놓은 작은 텃밭 위에서 늘어지게 자던 회색 털의 고양이도 통 보이질 않는다. <고양이와 할머니> 속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니 우리 집을 자기네 집 삼아 지내던 그 고양이들은 어딜 갔을까 궁금해졌다.

<고양이와 할머니>에는 할머니와 고양이들의 따뜻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들의 함께 하는 일상이 있다. 그리고 다들 떠나버린 그곳에 아직 고양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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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후지사키 사오리 지음, 이소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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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의 마지막, 솔직한 작가의 후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저는 소설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전혀 접점이 없던 장르는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제 경험을 토대로 밴드 이야기를 쓰기로 했어요.


후기를 읽기 전에도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책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 아닐까?'


소설이 상상력을 기초로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모든 것이 허구에서 나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대부분이나 약간의 에피소드 또는 적어도 소설을 쓰고 싶었던 마음이라도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쌍둥이>라는 소설은 머리 좋은 작가가 자신의 상황을 잘 녹여내어 쓴 소설이거나, 아니면 완벽하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후기를 읽고 보니 '아, 작가는 참 영리하구나' 싶었다.


책 속 주인공들처럼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후지사키 사오리는 <쌍둥이>로 소설가로 데뷔했고 나오키상 후보에 올라 관심을 받는 신예 작가이다. <쌍둥이>는 일본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혼을 쏙 빼게 만드는 화려한 문장은 없지만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매력, 소설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쌍둥이>는 한 소년과 소녀의 성장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중학생 소녀에게 다가온 다소 괴짜 같은 한 소년. 그들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잔잔하지만 꽤 지독한 인연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나를 두고 "쌍둥이처럼 생각해'라고 말하곤 했다. 술을 마시다 보면 때때로 그런 말을 했다. 쌍둥이. 마치 이 세상에 같은 타이밍에 태어나 같이 살아온 것만 같다고.


소녀, 나쓰코에게 건방지고 짜증 나기 때문에 친구가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소년, 쓰키시마.


먼저 쌍둥이가 되고 싶어 한 쪽은 나쓰코였다. 친구가 없던 자기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한 살 위의 쓰키시마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묘하게 달라지는 둘의 관계. 분명 전화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대학생활을 하며 시작된 쓰키시마와의 밴드 생활. 그와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그를 떠날 생각조차 없는 나쓰코의 감정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둘의 관계를 보며 답답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책의 시작에서 쓰키시마의 말이 그 둘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인 것 같았다. 쌍둥이.


<쌍둥이>는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예민한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의 마지막을 꽉 매어주는 결말은 없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나쓰코와 스키시마 같은 관계가 결말이 생길 수 있을까? 여운이 남은 소설이었다.


일본의 여름밤처럼 습도 높고 끈적이는 어느 여름 날 밤에 문득 다시 생각날 것만 같았다. 아, 둘의 관계가 마치 그런 여름밤의 날씨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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