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하지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고 싶다면, 질문해라.(19)
천국이란 마음의 한 상태이다. 그것은 이승을 넘어서 있는, 혹은 죽음 뒤에 오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하는 하나의 경험이다. 그것은 곳곳에 있으면서 또한 아무 곳에도 없다.(179)
니체는 복음을 지키고자 하는 실천만이 신에게 이르는 길이며, 실천 자체가 신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가 때때로 지옥 같은, 상태일 때조차 자신이 있는 지금 여기가 천국이라고 느끼는 것, 현재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복의 상태가 바로 기적의 핵심이었다.(184)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너 자신을 찾으라. 너희가 나를 완전히 부정하였을 때 나는 너희에게 다시 돌아가리니.(221)
저는 입문서나 해설서 같은 책들을 좋아합니다. 입문서나 해설서가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원전을 바로 읽는 것보다는. 원전이라는 책들이 읽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를 많이 경험했거든요. 원전을 바로 읽다보면 원전에 대한 마음이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았고요. 아마도 제가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원전 읽기로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독서를 할 확률은 낮았을 겁니다. 원전에 겁먹고 독서를 멀리 했을지도 모르죠. 제가 운이 좋았던 것은 원전을 쉽고 접근하기 좋게 말해주는 입문서나 해설서를 먼저 읽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다보니 원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이 가능하고(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고 대략적인 윤곽만 잡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원전 읽기의 부담도 줄고, 원전을 읽고 싶다는 욕망도 불타오르더군요.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제 독서 초창기에 원전 읽기의 욕망을 불러일으킨 입문서와 해설서 저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니체씨, 긍정은 어떤 힘이 있나요?>도 입문서입니다. 그것도 청소년에게 니체의 사상을 알려주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입문서죠. 저는 이 책이 청소년용 입문서라는 사실을 알고 기뻤습니다. 청소년 대상이기 때문에 최대한 쉽게 쓰여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책을 읽으며 예상대로 쉬워서 좋았습니다. 사실 니체의 원전을 보면 평범한 청소년이 읽기에는 어려운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쉽게 니체의 사상을 이야기해주면 청소년이라도 읽을 수 있고, 읽다보면 니체의 원전을 읽겠다는 자신감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예전의 저처럼요.
책은 처음에 니체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일단 니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주며 기본 지식을 독자가 품속에 쌓게 만들죠. 그 뒤에 책은 주요한 저서들을 나온 순서대로 챕터별로 구분하고 그 챕터별로 각각의 책의 내용을 알려주면서 전개됩니다. 이 방식의 특징은, 각각의 책들에 적혀 있는 니체 사상의 얼개들을 알기 쉽게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니체 사상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알려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니체의 전체적인 삶을 알면서 전체적인 사상의 틀을 잡고, 각각의 챕터들을 읽으며 사상이 세밀하게 어떻게 전개되어나갔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전체와 부분의 조화로서 구성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읽으면서 니체의 사상을 아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저처럼요.^^;;
여기까지 적다보니 책에 대한 얘기만 잔뜩한 것 같습니다. 니체에 대한 얘기는 없이.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저같이 지식도 얕고 아는 것도 없는 인물이 뭐라고 떠드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드네요. 그래도 이왕 서평을 썼으니 어쩔 수 없이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이 책을 따라가면 결국 니체는 '너 자신이 되어라'(219)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아니,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네요. 네, 맞습니다. 맞긴 한데 니체의 말에 따르자면 '너 자신이 되는 게', 한 개인이 자기자신의 삶을 사는 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선 우리가 태어나면서 익혀온 무수한 문화적 관습,가치관, 사회와 공동체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풍습, 주류적인 사고, 고정관념등이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좋은 학교에 가라, 좋은 직장을 가져라, 돈이 제일 중요하다, 외모가 중요하다 같이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들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니체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인문학적 지식이나 철학, 사상 중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사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니체가 특히 집중하는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목사 집안에서 자라나 목사가 되리라는 가족의 기대 속에 신학 공부를 하다 목사의 길에서 벗어난 니체에게 기독교적인 사고나 가치관은 억압의 대명사입니다. 니체뿐만 아닐 겁니다. 니체와 같이 나고 자란 동시대 독일인들에게, 더 나아가 서양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사고나 풍습은 자기 자신이 되는 걸 가로막는 억압의 기제일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니체는 기독교적인 사고가 현실보다는 내세, 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을 비판합니다. 니체는 삶이 뿌리박고 서 있는 현실이 아니라, 죽은 뒤에서야 갈 수 있는 내세나 절대적이고 확고부동한 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는 기독교적인 사고는 현실을 긍정하기보다는 부정하기 쉽게 만들고, 우리가 살아가는 육체보다는 영혼을 더 중요시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형이상학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에 집착하는 철학자들도 니체는 기독교적인 사교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현실을 부정하기 쉽게 만든다고 하죠. 비판하고 있는 부분을 보면,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내세나 초월적이고 절대직인 진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나 삶입니다. 니체는 삶을 부정하거나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위한, 현실을 긍정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철학이나 사상을 추구합니다. 책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니체는 삶을 긍정하는 긍정의 철학자인 것이죠. 그런데 삶을 긍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대답하는 것보다는 이 책을 읽는 게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니체가 주장한 삶을 긍정하는 방법이 잘 제시되고 있으니까요.(휴, 어찌어찌 잘 넘어갔네요. ㅎㅎㅎ)
니체가 어떻게 삶을 긍정했는지 따라가다 보면 독서의 시간이 끝날 겁니다. 저 자신의 경우는, 책을 덮고나니 니체가 느낀 쓸쓸함이 밀려드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논증을 통한 서술이 아니라 문학적인 아포리즘으로 다의적이고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당대의 주류적 가치관을 지독하리만큼 과격하게 비판한 니체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는 누구에게도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크나큰 외로움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말을 끌어안고 광기의 발작을 일으킨 것도, 어쩌면 켜켜이 쌓인 외로움과 불만족이 갑자기 폭발한 것이 아닌가 쉽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제 그는 외롭지 않을 겁니다. 그의 사후에 그의 책을 읽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무수한 이들이 있으니까요. 니체 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사상을 전개하고 예술을 만들고 삶을 살아간, 무수한 후대의 '니체'들이 니체의 사상을 새롭게 전개시켜나가고 있으니가요. 그러니 니체식 삶의 긍정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니체의 사상이 전해지는 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