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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수필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수필을 읽을 때마다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예를 들어 <슬픈 인간>에 나오는 하라 다미키의 글 같은 경우는 현실이지만, 원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럴 때 저는 허구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다른 예를 들어볼께요. 윤동주 시인 같은 감수성을 가진 이가 수필을 쓴다고 한다면,그가 저와 똑같은 현실을 바라본다고 해도 저는 그와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가 느끼는 현실은 제가 경험하는 현실과 다른 자기만의 현실이겠죠.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비현실이나 허구로 느껴집니다. 저는 그래서 수필을 제 나름대로는 '허구적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그에 비해 소설은 허구입니다. 우리는 소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상의 이야기인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감정이입하며 현실 같다고 느끼며 읽어나갑니다. 소설가들이 허구의 작품인 소설을 독자들이 감정이입하게 현실 같이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수필은 반대로 여과없이 저자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쓰기 때문에 독자가 겪는 현실과의 차이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고요.) 저는 소설을 제 나름대로는 '현실적 허구'라고 부릅니다.
(생략)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제 나름의 생각들을 모임 때 발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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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인터넷을 들여다봅니다.
무수한 정보의 폭포 속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요.
식당에 가서 보니 고칼로리의 음식들이 가득하네요.
SNS를 보니 사람들이 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무언가 다 넘치는 것 같네요.
차라리 눈을 감아봅니다.
눈을 감고 나 자신을 느껴봅니다.
이 과잉의 시대에, 우리는 신경을 끄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저는 계속해서 신경을 끄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물론 책을 쓴 저자의 말에 따르는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계속 제가 해온 행동에 따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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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8-01-0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공감되는 글입니다^^
이곳저곳 눈을 돌리면 다들 너무나 바쁘게 뭔가를 하고있죠. 피로하네요.~

짜라투스트라 2018-01-09 18:34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저도 신경 끄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네요 ㅎㅎ
 
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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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경 끄기의 기술-마크 맨슨

문제는 그들이 '뭘 포기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다.(10)
모든 걸 가지려는 사람, 즉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모두 채우려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떤 부족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모든 걸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 인생을 '지옥의 무한궤도'에 빠지게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경 끄기의 기술'이다.(11)
단언컨대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12)
나는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 없다. 대신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에 대해 말할 것이다. 인생의 목록을 만든 다음, 가장 중요한 항목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리는 방법을 인내할 것이다. 눈을 감고 뒤로 넘어져도 괜찮다는 것을 믿게 해줄 것이다. 신경을 덜 쓰는 기술을 전할 것이다. 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다.(13)
세상은 우리에게 입을 모아 외친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더 나은 직업과 더 튼튼한 차와 더 멋진 애인 그리고 더 넓은 집을 가져야 한다고. 더 사고, 더 소유하고, 더 만들고, 더 섹스하고, 더 오래 살라고. 이런 메시지에 끊임없이 폭격당한 결과, 우리는 시종일관 모든 것에 신경을 쓰게 된다.(21)
우리에겐 신경 끄기가 필수다. 신경 끄기야말로 세상을 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는 것'과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면 세상은 여태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24)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려는 욕망 자체가 부정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부정적인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긍정적인 경험이다.(26)
고통은, 삶이라는 천에 얽히고설켜 있는 실오라기다. 삶에서 고통을 떼어낸다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 한 가닥을 떼어내려고 하면, 천 전체가 풀려버리고 만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고통에 지나치게 신경이 쓸리는 법이다. 반면에 고통에 신경을 끌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당신 앞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28)
'무엇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규정한다.(42)
한 문제를 해결하면 곧 다른 문제가 잇따르지. 문제없는 삶을 꿈꾸지 마. 그런 건 없어. 그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한 삶을 꿈꾸도록 해.(47)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의 기분을 해치기 마련이다. 얻음은 곧 잃음이기도 하다. 긍정적 경험은 부정적 경험을 규정할 것이다.(56)
문제가 생기는 건 필연적이겠지만, 문제의 의미는 필연적이지 않다. 문제의 의미는 우리가 어떤 사고방식과 평가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93)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 정신 건강의 필수 요소다.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문제를 풀지 않고 영원히 남겨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문제를 부정하면, 문제를 풀어 행복을 얻을 기회를 잃게 된다. 문제는 삶에 의미와 가치를 더한다. 따라서 문제를 피하다 보면, 우리는 (즐거울지는 모르겠으나) 무의미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106)
우리 모두가 성공과 행복을 책임지려 한다. 젠장, 성공과 행복이 누구 책임이냐를 두고 다투기까지 한다. 하지만 문제를 책임지는 자세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자세로 살아갈 때, 진정한 배움을 얻고 현실적인 발전을 이루기 때문이다.(126)
성장은 끝없는 반복 과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틀린' 것에서 '옳은' 것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틀린 것에서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또 다른 것을 알게 되면 약간 덜 틀린 것에서 그보다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140)
결정적인 '정답'을 구
할 게 아니라, 오늘 틀린 점을 조금 깎아내 내일은 조금 덜 틀리고자 해야 한다.(141)
확실성을 추구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신의 느낌과 믿음을 의심해야 한다. 확신을 추구하는 자세를 버린 뒤, 스스로 미래를 일구지 않는다면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질문해야 한다. 항상 내가 옳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우리는 항상 틀리기 때문이다.
틀리면 변화할 수 있다. 틀리면 성장할 수 있다.(143)
그래서 결론은? 우리 믿음의 대부분이 틀렸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믿음이 틀렸다. 어떤 믿음은 다른 믿음보다 덜 틀릴 따름이다. 인간의 마음은 오류로 가득한 난장판이다.(147)
불확실성과 무지를 받아들일수록, 자기가 뭘 모른다는 사실을 더욱 개의치 않게 된다.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 타인을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158)
인생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검토하고 그걸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반드시 현재의 가치관을 의심해봐야 한다. 심혈을 기울여 현재의 가치관을 분석하고, 그 안에 있는 오류와 편견을 들춰내고, 그것이 어째서 세상과 조화되지 않는지 밝혀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걸 인정해야 한다. 왜냐면 우리의 무지가 우리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159)
진짜로 성공하려면, 실패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실패하지 않겠다는 건 성공하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174)
성공의 기준은 그저 행동하는 것이며, 자극은 전제조건이 아니라 보상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실패하고, 실패는 또다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186)
무엇을 거부하느냐가 우리를 규정한다.(197)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주목받는 것과 성공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당신은 이미 대단하다. 당신이 알건 모르건, 다른 사람이 알건 모르건 가에.(229)

삶을 살아가며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이미 당신을 아름답고 성공적이며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심지어 당신이 깨닫지 못했을지라도.(230)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위에 적혀 있는 걸 보니 다른 책 리뷰보다 인상적인 책 구절이 많네요.^^;; 제가 그만큼  인상적으로 느낀 구절이 많다는 얘기겠죠. 실로 오랜만에 읽은 자기계발서류의 책인데,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인상적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책을 읽으며 느낀 생각들을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신경 끄기의 기술>은 분명히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다른 '부작위'의 느낌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는 '할 수 있다'를 강조하며 우리에게 성공을 강요하는 '당위'이자 '작위'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책도 무언가 해야한다는 당위를 이야기하는 건 맞는데, 그 내용이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다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며, 모든 걸 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걸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모든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욕구를 만족시키려다보면, 인생이 엉망이 되거나 심각한 정신적 불만족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에 일단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나 자기의 삶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게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고 말하면서. 저는 이 말에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할 수 있다'는 당위와 작위가 넘쳐납니다. 당위와 작위가 넘치다보니 읽다보면 안하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강박관념을 느낍니다. 그래서 해보려 했다가 실제로 안되면 좌절하고 다시 자기계발서를 읽고 무언가 도전했다 다시 실패하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책 읽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책읽고 도전하고 실패하는 일의 반복. 제가 자기계발서를 안 읽게 된 것이 이런 일들이 소모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인데,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인 마크 맨슨은 저의 경험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무언가를 무조건 하기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할 수 있는 일이나 자기 삶에 집중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자의 말을 듣고 이 책이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포지티브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네거티브한 자기계발서. '할 수 있어'를 외치며 무조건 하라고만 하는 강요적인 포지티브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네거티브. 저는 강요적인 포지티브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네거티브가 좋습니다.

두번째로 인상적인 부분은 이 책이 자기계발서 중에서 현실적이라는 점입니다. '현실적이라고?'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한 번 대답해볼께요. 보통의 자기계발서는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할 수 있음'의 결과로 성공의 과실을 아주 멋지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성공에는 노력이 따르고요, 그 노력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고통과 아픔이 동반됩니다. 기타리스트가 성공한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피가 나다 못해 피딱지가 굳어 굳은 살이 되어 다시 그 굳은 살에서마저 피가 나는 노력이 따라옵니다. 기업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인고의 시간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그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성공만 크게 부각시키죠. 더구나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게 현실인데, 그 부분은 아예 빼버리는 경우가 많죠. <신경 끄기의 기술>은 성공을 위해서는 고통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세상에는 고통이 즐비하고, 또 부정적인 문제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현실에 고통과 부정적인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를 강조합니다. 사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부정적인 것들을 빼버리고 긍정적인 것만 강조하는 무한긍정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 더 건강한 심리적 자세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바라보고 둘 다를 인정하면서 균형 잡힌 심리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요? 부정적인 요소들도 많은데 그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현실을 바라보는 제대로 된 태도라고 할 수 있겠죠. 삶을 위해서는 무한긍정이나 지나치게 염세적인 태도가 아니라,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바라보고 그것의 균형을 잡고, 고통이나 부정적인 문제가 닥치면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에 따라서 대응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신경 끄기의 기술>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이라고 말한 겁니다.

세번째로 이 책은 지금의 저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부정적 긍정주의'와 공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부정적 긍정주의'가 뭐냐고 물을 수 있는데, 그에 대해 대답해보겠습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은 우리가 커다란 성공이나 특별한 인간이 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인생을 망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에 맞는 기대감과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건 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감도 크고, 실망감이 지속된다면 자기 삶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저 나름으로는 책에서 나오는 형태의 인식을 '부정적 긍정주의'라고 합니다.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지지 않고, 부정적인 부분도 인식해서 생각하고 움직여서 현실의 사소한 일들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안 좋은 일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음으로서 삶을 긍정적으로 사는 태도를 '부정적 긍정주의'라고 보는 겁니다. 저는 우울증의 기간을 거쳐서 오랜 시간을 거쳐서 이 '부정적 긍정주의'의 태도를 획득했고, 그걸로 지금까지 우울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생한 경험을 한 제가 이 책에서 저의 삶의 태도와 비슷한 이야기를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반가움만큼이나 책이 좋아졌습니다. 절대적인 확신은 없지만, 저는 사람들이 '부정적 긍정주의'의 태도를 가진다면, 기대감이 큰 삶보다는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책이 과잉 시대에 맞는 생존방식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잉 시대라고?'라는 질문이 귓가에 들리네요. 저는 지금의 이 시대를 과잉의 시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SNS로 정보가 넘쳐나는 정보의 과잉,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인 영양소의 과잉, SNS나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과의 연결이 과잉이 되는 과잉의 시대. 이 과잉의 시대에 과잉된 삶을 산다면 여러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정보의 과잉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게 만들어 트럼프 같은 선동가들이 설치게 만들고, 영양소의 과잉은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같은 과잉으로 인한 질병을 양산하고, 연결의 과잉은 심리적으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럴 때는 과잉이 아닌 과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정보도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파고들어 받아들일만한 것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을 안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고, 음식도 많이 먹는 것보다는 필요한 만큼 먹고 운동을 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연결 과잉의 문제도 필요한 만큼의 연결을 가지려하면 불안이 줄어들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신경 끄기의 기술'이죠. 과잉의 시대에 필요한 정말 필요한 생존방식. <신경 끄기의 기술>은 이 시대에 맞는 생존 기술을 제기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자기계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면, 이 책이 문제점이 없는 책 같아 보이죠? 그러나 문제가 없는 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에 따라서 불만스럽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겠죠. 제 개인적으로도 부분부분까지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 책이 제 생각이나 제 경험과 들어맞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에서 말한 '신경 끄기의 기술'을 제 나름대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말들을 해주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경을 끄고 사는 인간으로서 신경 끄기의 기술을 시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을 '자기계발서'라고 읽고 있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보니 '자기계발서가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계발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앞으로를 궁금해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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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에 대한 리뷰를 쓰기 전에 서문 격으로
내가 왜 자기계발서를 안 읽게 됐는지 인터뷰 형식으로 한 번 써본다.

A: 당신은 왜 자기계발서를 안 읽게 되었나요?

B: 사실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습니다. 처음에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에는 뭔가 해보자는 마음이 계속 이어져서 좋았습니다. 문제는 열 권 이상 읽기 시작한 한 뒤에 있었습니다. 책들이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읽어나가자 책들의 패턴이 읽히기 시작하면서 '지겨움'이 느껴졌습니다. 비슷한 말들의 반복에 질려서 나중에는 못 읽겠더군요. 매번 무언가 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처음에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부담스럽더군요. 무언가 하려고 시작했다가 그만둔 뒤에는 마치 내가 쓰레기나 패배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좌절감이 너무 컸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너무 커졌습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 정신건강을 지키고(^^;;) 지겨움과도 거리를 두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안 읽게 되었습니다. 뭐 안 읽는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책들을 많이 읽으니 자기계발서의 강요와는 달리 내 스스로 알아서 자기계발을 하게 되더군요. 자기계발서를 안 읽고 나서야 진정으로 자기계발을 시작하게 됐으니 역설적이네요.

A:앞으로는 자기계발서를 읽을 것 같나요?
B:지금에 이르러서는 읽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라고 해야할까. 찾아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 읽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읽을 것 같습니다. 내가 회피할 이유가 없잖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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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세계사>를 읽고 깨달았다.
설탕은 그냥 설탕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쉽게 인식하고 바라보는 설탕에는,
고향에서 쫓겨나 죽을 고생을 해서 식민지로 와서
엄청난 폭력과 억압과 착취에 시달린
흑인노예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겨 있었다.
피,땀,눈물이 배인 설탕을 보며
가끔씩은 이런 생각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흑인들의 피,땀,눈물에 대해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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