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필립 M. H. 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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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글은 세계적으로 많은 책으로 출판되어 왔습니다. 저도 이 주제에 관한 명저라 알려진 존 키건, 앤터니 비버, 테일러의 책 등을 읽어 봤는데요. 한동안 관심 밖에 두고 있다가 리버풀 대학의 명예 교수인 필립 M. H. 벨의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욱이 학부시절부터 좋아했던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글이라 반가운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세계 대전을 통해 깨닫게 된 교훈이 있는데요. 그것은 비대칭 동맹 관계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상대는 언제든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예는 폴란드가 되겠죠. 당시 폴란드는 프랑스와 영국의 동맹국이었는데, 히틀러가 말도 안되는 구실을 붙여 국경을 넘어 침공했을때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곧 참전할 것이다. 폴란드 국민은 안심하라는 기만의 성명을 발표하는데, 이에 관련한 장면은 영화 ‘피아니스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차 대전은 크게 보면 개전 초기 적극적인 독일 육운의 공세로 서유럽 대부분을 석권했던 시기 이후, 영국 본토를 향한 독일군의 공세, 이후 히틀러의 큰 패착, ‘바르바로사 작전‘ 이라 일컫는 대 소련 진공입니다. 이 소련 진공에 대해 영국의 몽고메리 원수는 ˝내 생각으로는 전쟁의 기본 규칙 가운데 하나는 ‘모스크바‘로 진격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표현에 히틀러의 이 무모한 시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카프카스 유전지대와 스탈린그라드 방면의 두 군데 공세에서 승리를 열망한 히틀러의 무책임한 욕망은 연합군에 의해 경제적 봉쇄하에 루마니아의 석유만으로는 확대된 전쟁 유지에 부족함을 깨닫고 소련의 자원을 획득하려는 이러한 거대한 계획이 결국 독일을 결정적으로 패착에 이르게 만듭니다. 물론 제가 나치 독일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괴상한 일당 독재국가와 사회주의의 폭력적 일당 독재 국가가 맞붙어 싸운 이 의미가 세계사적으로는 참으로 복잡한 의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일본의 진주만 침공, 대서양에서의 독일 해군의 U-보트 작전이 초래하게 된 미국의 참전은 궁극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뒤바꿔 놓았고, 독일과 일본의 산업력을 합친 것보다 월등했던 미국의 참전은 연합국의 승리를 견인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런 정치적 상황 설명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요. 루스벨트와 처칠의 유대와 이 둘을 향한 스탈린의 전략적 태도 등을 보다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독일의 항복과 일본의 종전 항복에 이르게 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 투하는 정치 도덕적으로 여러 논란을 낳게 되지만, 전쟁 상태에서 도덕적 논의를 하는 것은 다소 비합리하다는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며, 일본 군부가 오키나와와 이소 방면에서 민간인들을 방패로 몰아 30만에서 80만에 인명을 사지로 몬 것은 이 악의 제국을 세계에서 패퇴시키기 위해서는 더한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미국의 선택의 문제였을 겁니다. 다만 일본의 일왕에 대한 관대한 처분과 다소 약한 전범들의 처벌 문제 등은 후에 문제로 남아 지금의 부적절한 일본을 낳게한 불행한 요인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2차대전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읽었던 A. J. P. 테일러의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만큼 정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서술이 있어서 다시금 확인해 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테일러의 글은 굴욕적인 협정을 맺게 되는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있어서 전쟁 상황에서의 묘사 만큼이나 당시의 연합국과 주축국 내부의 정치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하게 해주는 서술은 읽는 독자들이 2차 대전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벨의 이 글도 좋은 작품이라 봐야 하겠죠. 300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이지만 번역도 나쁘지 않고 문장이 수월하게 읽히는 점은 또 다른 장점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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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아니다
헬렌 칼디코트 지음, 이영수 옮김 / 양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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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알려진 반핵 운동가인 헬렌 칼디코트의 이 유명한 저작을 비로소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그녀는 여러 비핵과 관련된 재단과 연구소로부터 수상한 바가 있고,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되었고, 또한 반핵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지성인이자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대해 제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원자력과 핵에 관련된 근래 거의 모든 내용이 여기에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글의 마지막에서 ˝분명한 점은 원자력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실행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이 몇 줄의 주장을 위해 1945년 맨하탄 프로젝트로 불리우는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그램부터 현재의 세계 원자력 프로그햄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사례들을 실증 자료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자력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거나 이를 뒷바침하는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은 ‘핵발전‘ 차츰 어둡게 도래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대처할 만한 에너지로 주장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원자력 업계는 록히드 마틴, 보잉 등과 같은 방위산업체와 더불어 막대한 특권과 자금의 원할한 지원을 받고 있는데요. 여러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원자력 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선것이 과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며 이러한 정치권과 원자력 산업과의 협력 체계는 꽤 오래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핵발전으로 인한 부산물로서 핵무기를 만드는 무기화 과정으로 이어지는 군사 부문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것으로 봐야겠죠. 미국은 과거 소련과의 냉전 시기에 미사일에 실어 상대국에 실어 날을 수 있는 핵무기 생산에 주력했던 것으로 그 특별한 차원의 양자의 결합이 이러한 특수성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원자력은 약간의 부산물적인 형태로 민간에서의 전력 발전으로 진화되면서 현재에 적지 않은 국가들이 IAEA와 미국 등 핵강국의 지원을 받아 핵발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1세대 원자로를 거쳐 3세대에 이른 이 시점에 아직도 수치화 되지 않고 있는 방사성 부산물에 대한 문제와 전세계 어느 국가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문제 등 잔존하고 있는 이런 문제의 여파가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입니다. 그녀는 이런 방사성 물질의 방출 사이클이라는 측면에서 전세계에 남성들에게는 고환에 미량의 플루토늄이 축적되어 있으며, 이러한 원인에는1950~70년대에 이르는 시기 동안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핵무기 보유 국가들이 수없이 행한 핵실험으로 인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체에 주로 뼈나 장기에 축적되는 여러 방사선 물질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학계에서 연구 추적이 되어 있지 않은 바,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국의 핵발전으로 인한 방사성 부산물에 방출 기준도 제각각이고 얼마전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듯이 반감기가 제각각인 이런 부산물들을 국제적으로 엄격히 관리하지 않고 배출 기준의 모호성 상태임에도 세계의 원자력 업게는 이를 냉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그녀는 이미 자연상태의 우라늄 광석으로부터 발전 가능한 원료 우라늄 형태로 만드는데 이미 온실 가스를 발생시키고 핵발전하에서 적지 않은 기체를 자연상태에 방출하는 것으로 판명났는데, 산업 전체의 맥락으로 핵발전 산업은 자연친화적인 전력이라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러한 핵발전은 궁극적으로는 무기화 과정의 선택에 놓여 있으며, IAEA체제에서 공인된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을 제외하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은 이 국제 체체 바깥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는데, 인도와 파키스탄은 미국의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으며, 이스라엘의 경우는 미국이 아무런 성명을 발표하지 않고 있고, 오로지 북한과 이란의 경우에 국제 압력과 비난을 높여왔고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가 핵확산 방지에 대한 각국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는 요인이 되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국제 정치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된 문제이며 만약 다른 잠재 핵보유 국가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를 들며 핵보유의 정당성을 부여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플루토늄 재처리와 관련해 그녀는 ˝미국이 브라질과 한국 등 많은 국가들에게 재처리시설을 허용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우리나라는 정밀한 IAEA 감시하에 재처리가 금지되고 있는데 미국이 이것을 장려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량국가의 정확한 정의가 수초 내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기화시켜버릴 핵무기들과 핵생산 능력을 소유한 나라라면 현재 여덟 개나 아홉 개 국가가 거기에 속한다˝ 는 문장은 오히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보유에 도움을 준 미국과 중국과 같은 핵 강대국이 마땅히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미국은 지역 강대국로서의 인도의 부상을 도와 차후에 중국을 견제시킬 의도로 인도와 양자간의 핵협정까지 맺으며 인도의 핵 보유에 당위성을 안겨주었지만 이것은 현재의 북한의 핵 해결에 큰 도덕적 결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의 정권은 그 정당성을 국제 사회에 부여 받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극빈의 북한 체제가 핵개발에 나서는데 명분의 합리화를 제공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책임이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더욱이 핵무기와 관련된 설계도는 이제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드 칸으로 설명되는 세계 원자력 암시장이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북한과 리비아에 관련 핵기술을 제공한 이 파키스탄의 칸박사는 자신의 고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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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 시골촌뜨기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다
소마 마사루 지음, 이용빈 옮김, 김태호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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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이곳을 통해 리뷰했던 샹장위의 글 ‘시진핑과 브레인‘에서 시진핑 주석에 관한 개인사적인 측면의 설명이 조금 부족한 듯 싶어 그를 분석한 다른 책을 검색하다가 일본 내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로 알려진 소마 마사루의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마사루는 중국 문제에 능통한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더불어 그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시진핑이 리커창 등 다른 정치적 경쟁자들을 누르고 중국 최고위의 자리에 오른 것은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경쟁 관계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물론 제가 설명한 이 부분이 전체적인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태자당과 상하이방, 그리고 그가 근무했던 여러 성의 관료들, 모교인 칭화대 인맥 등 다방면에서 고루 지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인 마사루도 일견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의 정치는 소위 인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인치는 여러 의미를 갖고 있지만 특히 정계와 당을 아우르는 여러 인간 관계의 중요성은 크게 가치가 부여됩니다. 시진핑은 이러한 측면에서 큰 수혜자인데요. 특히 아버지인 시중쉰의 인맥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들인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의 이미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인화는 그가 하방을 통해 맺게되는 여러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큰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강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지금의 시진핑이 그 자리에 있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쩡칭홍입니다. 그는 본디 장쩌민 전 국가 주석의 사람으로 시진핑과 마찬가지로 태자장의 인물입니다. 상하시의 일인자였던 천량위 문제를 계기로 장쩌민과 갈라서고 후진타오와 협력하게 됩니다. 물론 그로 인해 장쩌민의 본노를 온몸에 받아야 했는데요. 이후, 후진타오의 후계 구도를 놓고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잠정적인 대결에 나설 시기에 후진타오가 적극 추천했던 리커창 카드를 무르고 장쩌민이 원했던 시진핑을 옹립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 쩡칭홍입니다. 그는 이 시기 전후로 화려하게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이렇게 당과 권력에 정점에 서는 시진핑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꽤 고난의 시기였더군요. 부친인 시중쉰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10년이 넘는 고초를 당하자 시진핑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데요. 베이징에서 제법 윤택한 생활을 했던 시진핑은 어린 나이에 산시성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그 시절부터 그는 각 지방을 돌며 행정과 정치력을 쌓게 되고 칭화대를 거쳐 그야말로 은인자중의 자세로 몸을 굽히고 많은 당과 권력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시진핑 주석의 모습을 티비 화면이나 인터넷 기사로 접했습니다만 어린 제가 보기에도 그의 얼굴과 풍모에서 깊은 연륜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많은 해외의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속내는 겉에 드러나는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마사루도 2009년 광둥성에 있었던 위구르인들의 차별 반대에 따른 격렬한 시위에 대한 인정사정 없는 진압과 2010년 10월 16일 부터 3일간 일어난 격렬한 반일 데모에도 그가 뒤에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민족주의 데모에 중국 당국이 알게 모르게 지원한다는 가설은 많이 있었는데요. 과거 구 유고의 중국 대사관에 대한 미군의 오폭으로 베이징에서 격렬한 반미 데모가 일어났을 때 일부 학생들을 중국 공안당국이 차로 시위 현장까지 일일이 지원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중국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의 심각한 중국의 내부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중국민들의 민족주의적 발동을 당국이 관리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가지 호기심이 들었는데요. 시진핑의 과거사적인 행적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그의 민중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알 수 있는데요. 현재 자신의 주민들을 기아에 내몰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을 과연 어떻게 여길지 그것이 궁금하더군요. 물론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북중 관계로 봤을 때는 자신의 마음에 스며드는 김정은에 대한 지극한 혐오를 끝내 감추고는 있겠죠. 지금의 핵과 미사일 사태로 발생된 심상치 않은 한반도 사태를 더이상 악화시키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중국의 국익이 걸린 상황으로서는 김정은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인간 시진핑은 어떤 기분일지 그것이 몹시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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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1881 함께 읽는 교양 12
장 폴 주아리 지음, 이보경 옮김 / 함께읽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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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프랑스의 대선을 앞두고 출간된 책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장 폴 주아리의 작품입니다. 저자인 주아리는 현재 고등학교 입시반의 교사로 재직중이면서 국립 상업 학교의 교수 직함을 갖고 있는 조금 색다른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의 간략한 역사와 기원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 해석을 담았습니다. 글은 전체적으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주장과 서술이 비교적 평이하게 되어있더군요. 추측하기로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쓴 글 같습니다만, 한국에 번역 출간된 2012년에 한국어판 서문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글이 되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져 있는 만큼 시민이라면 누구나 읽어볼만한 꽤 스펙트럼이 넓은 글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문에서 저의 눈길을 절로 끄는 문장이 있습니다. ‘투표를 하는 나라에서 시민 개인은 사유하고, 토론하고, 읽고, 분석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참으로 적극적인 공감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뒤에서도 언급하지만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이 투표로 당선된 자에게 절대 권력을 주었느냐는 물음과 더불어 그리고 정치의 유일한 진리는 시민이라는 명제에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질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격하게 공감하는 것은 투표로 끝나서는 안되며 일상 생활에서 충분히 사고와 성찰하고 책을 놓지 않고, 토론하고 비판하고 분석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그런 국민들이 모여 정치를 비판하고 정치가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일겁니다.

이 책에서 인용된 한나 아렌트의 ˝개인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공동을 위한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조금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는 주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하에 정치를 좀 더 개선시키는데에 개인 즉, 시민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정치 불신과 정치 혐오는 수많은 정치 철학자들이 말한대로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 또한 똑같이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정치의 본디 목적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이며, 고도화된 생산 수단과 더불어 복잡해진 사회적 양태성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인간의 불평등은 심화 되었지만 본디 그것은 인간이 만든 인공적 결과물이라는 판단을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해석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임마누엘 칸트, 장 자크 루소, 데이비드 흄, 한나 아렌트 등의 사상을 인용하면서 본래의 민주주의적 가치로부터 개개인에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즉, 고래의 역사로부터 같은 인간을 지배해왔던 계급주의적 속성의 권력관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 제도하의 정치적 통치 행위에 대한 물음과 정치적 지배, 경제적 지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등에도 깊이 생각할 만한 것들을 도리어 던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플라톤의 국민이 이성에 따라 교육을 받는 이러한 모델이 현실화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국민이 정치적, 시민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의식있는 지식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대 이론의 낡은 방식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현재의 우리가 영유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일종의 자본과 기술의 발달 혜택으로 각종 지식과 정보가 손쉬운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꼭 시민 개개인이 고도화되고 고차원적인 지식 습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자신 개인의 삶을 통해서 충분히 지식을 내면화하고 성찰해 이를 통해 각자가 건강한 민주주의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러한 확장된 결론을 내린것과 같이 주아리의 이 글은 한명 한명의 독자가 좀 더 민주주의의 원리에 가까이 다가서고 여기에 인용된 많은 철학과 정치를 해석해 나름의 민주주의적 정치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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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편이들의 상식 -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 75개의 단상
량원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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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명문인 중문대학을 졸업하고 홍콩의 이름난 신문인 신보와 명보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며 젊은 나이에 홍콩 평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량원다오는 소위 대륙인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중국과 중국문화, 중국인들에 대해 ‘상식 추구‘를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취지로 서문에 이를 밝히고 있습니다. 원제는 Common Sense로 토마스 페인의 명저 ‘상식‘에서 빗대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근래 중국에서 벌어진 현상에 상식적인 접근과 해석을 하고 더불어 그것을 바탕으로 중국인 독자들에게 일종의 의식의 전환을 촉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저와 같은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읽어볼 만한 주제가 적지 않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책 전체는 여러 소주제가 각기 하나의 큰 주제를 형성하는 칼럼집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서구의 중국 침탈이라 정의 되는 아편전쟁의 극복 문제라든지 멜라민 우유 파동과 같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문제, 서구 사회가 제기하는 중국 내의 인권 문제, 쓰촨성 지진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재해 대책, 중국인들의 민주주의적 여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 등에 관한 것들인데요. 이런 주제들은 불행하게도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지식인이 다루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홍콩과 대만에 적지 않은 연고를 갖고 있는 저자가 이렇듯 자신의 생각을 글로 출판한 배경이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저자의 여러 글 중에 꽤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과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두고 일본 내의 극우 세력의 발현은 일본 국민들에게 2차대전 전후 체제에 대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선례 조치로 그동안 고이즈미 총리가 매번 참배를 빼놓지 않았다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전세계 주류 매체들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나치 독일과 같은 반인류적 죄악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욱일승천기와 같은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가 요 근래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일본 군대의 만행은 전쟁 기간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이 확대된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고 바라보고 있는데요. 이것은 얼마간은 수긍할 만하지만 저자의 이 주장이 전부 옳다고는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뒤이어 미국의 조치로 일본 천황제를 유지하고 얼마간의 전쟁 범죄자들을 단죄하는 것으로 끝나 당시에 일본 제국주의에 몸담었던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면죄권을 준 것과 다름없다는 해설도 있기는 합니다. 다만, 유럽 곳곳의 학계나 언론들이 난징 대학살과 같은 것을 다루고 있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본 군대의 폭력 정도로 해석한다는 식의 판단은 너무 범위를 좁힌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애매한 이 부분의 해석을 제외하면 대체로 중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잘 나와 있습니다. 중국 내부에 출현하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가감없이 하고 있고요.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된 프랑스에서의 성화 봉송 불능 사태에 관련해서도 전체 프랑스인을 매도했던 상황에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우리 나라에서 벌인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 시위에 대한 해석에 한국이 당시의 중국 유학생들이 벌인 행동을 간혹 중국인들 전체의 양식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한국이나 일본도 그렇게 확대해석을 한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말한대로 현대 민족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 국가 범위의 능력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것이라면 지금 현재의 중국 내부의 민족주의적 발현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저자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 서두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이 중국위협론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갖고 있는 상황에 중국인들 스스로 이것을 오해로만 치부하지 말고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제스처가 있어야만 하겠죠. 더욱이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이 그로 인해 안보를 미국에 더 의지하는 것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증명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들어 계속 접하게 되는 중국내 지식인들의 주장은 제법 우려될 만합니다.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의 경제력을 보유했으니 그것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싶은 것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세계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듭니다. 더욱이 저자가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심리적 준비는 남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이라고 했듯이 이처럼 주변 국가들이 불안하고 두려운 시선을 중국에게 보내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적당한 대처가 필요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있죠. 미국과 유럽이 내비치고 있는 중국위협론은 단순히 미국과 유럽이 만든 세계 체제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아니라 근래 중국이 주변에서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의 불법적인 진출과 인도와의 국경 갈등, 전세계에서 가장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다는 댜오위다오/센카쿠 문제 등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이렇게 다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이웃의 가까운 나라인 중국에 대한 여러 문화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 묘사는 충분히 중국에 대한 인식에 도움이 될 만하다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에 주목을 받을만한 산업 국가로 발돋움하면서 그로인해 겪게 되는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비판은 참고할 만합니다. 끝으로 상식이 통하는 시민사회를 꿈꾼다는 저자의 주장은 현재 우리 나라에도 시급히 요청될 만한 주제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비판은 바로 중국 사회와 정치가 상식적인 수준의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 싶은 바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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