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과학자가 들려주는 남극의 사계 -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그림으로 보는 극지과학 9
안인영 지음 / 지식노마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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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해양생물학자의 책이다. 저자 안인영은 남극을 기후변화에 민감한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칭한다. 오랜 옛날 광부들은 탄광을 무너뜨릴 수 있는 독가스에 매우 민감한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광부들이 카나리아가 노래를 부르다가 독가스 때문에 죽게 되면 철수한 데서 비롯된 말이 탄광의 카나리아란 말이다. 남극이 기후 변화에 민감한 곳이라는 뜻이라면 남극은 지구의 카나리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의 62배에 달하는 남극대륙은 평균 2.1km 두께의 얼음으로 덮인 지구상 최대의 얼음 저장고다. 전 세계 얼음의 90%, 담수의 70%가 남극에 담겨 있다.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얼음은 쌓이고 쌓인 눈이 오랜 세월 다져져서 만들어진 것으로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경사면을 따라서 계속 이동한다. 이를 빙하라 한다. 남극 얼음의 대부분이 빙하 형태로 존재한다.

 

오늘날 남극 곳곳에서는 종자고사리, 삼엽충, 암모나이트, 공룡 화석들이 발견된다. 이들 화석의 존재로부터 우리는 과거 남극대륙이 지금보다는 훨씬 온난한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AI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남극에서 종자고사리, 암모나이트, 삼엽충, 공룡 등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남극은 과거에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곳이었다고 하는데 따뜻했던 적도지방이 판운동으로 지금의 극지방인 남극으로 이동해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가?"

 

남극대륙은 과거에 적도 부근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대륙들과 한 덩어리인 채 남반구에 위치했었고 대륙의 위치와는 무관하게 고생대, 중생대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높았던 때다. 따라서 당시 남극이 지금의 남극점 근처에 있었다 해도 얼음 대륙이 아닌 울창한 숲과 호수가 있는 따뜻한 환경이었다는 것이 AI가 제시한 답이다. 고생대나 중생대 지층에서는 따뜻한 기후에서만 서식하는 산호초, 악어, 거북, 대형 파충류 등의 화석이 극지방 근처에서도 발견되었다.

 

고사리나 종려나무 화석 같은 열대, 아열대 식물 화석이 한반도를 비롯한 중위도와 고위도에서 발견되는 점도 증거다. 페름기(고생대 말), 쥐라기(중생대), 백악기(중생대)에는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매우 높아 기온이 높았다. 생물체의 껍데기나 얼음 등에 남아 있는 산소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하면 당시의 바닷물 온도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공룡이 살던 중생대 백악기 등은 지금보다 평균 기온이 5~10도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빙하의 흔적이 극지방을 포함한 전지구적으로 발견되지 않았고 무성한 숲과 사막이 넓게 분포했다는 점도 증거다. 남극대륙은 극점으로 온 이래 동토의 땅으로 변했고 육상생물은 거의 멸종했다. 이와 반대로 전 세계 바다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남빙양에는 미생물, 무척추동물, 어류, 펭귄, 고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극점으로 이동한 직후인 6500만년 전만 해도 바닷물의 온도가 섭씨 9~15도로 온화했다.

 

이후 주변 대륙들이 떨어져 나가고 남극순환류가 형성되면서 대륙에는 얼음이 쌓이고 바닷물도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때 해양생물도 60~70% 멸종했으나 이후 큰 수온변화가 없어 생물이 충분히 적응,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남극대륙이 영하 90도까지 내려가는 것과 달리 바다는 최저 온도가 영하 1.8도이고 계절적 변동도 미미하다. 수온은 낮지만 변화는 거의 없어서 해양생물들은 각기 적응하며 진화해왔다.

 

남극의 여름은 짧지만 모든 생물들은 이 기간을 최대한 이용해 먹고 새끼를 낳고 키운다. 보통 11월에 시작해 다음 해 2월 말까지가 남극의 여름이다. 남극에서 빙산을 볼 수 있다. 물 위로 드러난 부분이 5미터가 넘으면 빙산이라 한다. 남극은 온난화로 인한 빙하 후퇴, 해양 산성화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해양 산성화는 석회질 껍질을 갖고 있는 조개, 성게, 산호, 불가사리 등 해저 무척추동물에게 큰 피해로 직결된다.

 

규조류(硅藻類)는 이산화규소로 이루어진 단단하고 투명한 유리질 껍질을 가진 식물성 플랑크톤으로 광합성을 한다. 최근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해양연구소에서 영하의 남극 바닷속에서 문어가 살 수 있는 이유로 혈액 속의 높은 헤모시아닌(haemocyanin) 농도로 인해 저온에서 산소 공급을 잘 받는 것을 꼽았다.

 

대표적인 동물성 플랑크톤인 크릴은 헤엄칠 때는 투명한데 죽어가면서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해간다. 이는 아스타잔틴이란 효소 때문이다. 크릴보다 작은 생물 중 크릴이 먹지 않는 것이 없고 크릴보다 큰 것 중 크릴을 먹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생태계의 중요한 연결고리인 셈이다. 크릴은 아가미가 외부에 드러나 있고 새우는 가려져 있다.

 

남극의 사계는 눈과 얼음으로 채워지지만 겨울은 특별하다. 겨울이 되면 바다까지 얼어붙는다. 남극에는 팩 아이스(pack ice)가 유명하다. 바닷물이 얼어서 된 해빙(海氷) 조각들이 바람과 해류에 밀려 빽빽하게 뭉쳐서 형성된 거대 얼음 지대다. 요지부동이던 팩 아이스도 블리자드가 세게 불면 균열이 생겨 일시적으로 열리는 등 역동적인 모습이 연출된다. 블리자드는 초속 14미터 이상의 강풍과 함께 저온에서 눈이 날려 시정(視程)150미터 이하로 감소하는 기상현상이다. 일종의 눈폭풍으로 일반적인 강풍과 달리 발원지의 기온이 낮아서 눈보라와 눈날림 현상이 동반된다. 겨울의 블리자드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남극의 야생동물들에게는 먹잇감을 전해주는 기상현상이다.

 

체감 온도(perceived temperature)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미국의 남극 탐험가 폴 사이플(Paul Siple; 1908~1968)이다. 자신의 남극 탐험을 [남위 90]라는 책으로 낸 인물이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남극에는 스노우페트럴, 자이언트 페트럴, 남극풀마갈매기, 알락풀마갈매기 등 여러 종류의 페트럴(Petrel)들이 있다. 물 위에서 사냥한 후 날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성경에 나오는 물 위에서 걸었다는 베드로 사도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스노우페트럴은 흰풀마갈매기라 하며 남극에서만 서식하는 토착종이다. 저자는 남극의 3()으로 얼음, , 스노우페트럴을 꼽는다. , 안개, 모래 먼지 등으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변해 지평선이나 사물의 구분이 불가능해지고 방향감각과 시야를 완전히 잃는 경우를 화이트 아웃이라 한다. 화이트 아웃은 남극에서 일어나는 주요 기상 현상 중 하나다.

 

남극의 빙하는 암석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상식의 돌과는 다르지만 암석으로 분류되는 근거가 몇 가지 있다. 1) 단일 광물성 변성암, 2) 끊임없는 변형과 흐름이다. 지질학에서 암석은 하나 이상의 광물이 뭉쳐 굳은 것을 말한다. 얼음을 구성하는 빙하 얼음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고체 광물이다. 빙하는 눈이 쌓인 뒤 엄청난 압력을 받아 다져 생성된다. 이것은 퇴적암의 생성 원리와 같다. 빙하는 생성 후에도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변성 작용을 거쳐 육지를 따라 서서히 이동한다.

 

이런 이유로 극지방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빙하를 융점에 아주 가까운 상태의 단일 광물 변성암으로 정의한다. 눈이 층층이 쌓여 엄청난 압력을 받으면 눈송이 사이의 공기가 빠져나가며 광물이 재결정된다. 이 과정이 변성암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동일하다. 다져진 얼음은 본래의 구조를 잃고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중력에 의해 천천히 흐르는 연성 변형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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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공화국 지구법정 5 - 지질시대 과학공화국 법정 시리즈 24
정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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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와 대비되는 지구의 역사를 의미할뿐이지만 지질시대란 말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무게감 있고 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지질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요즘 정완상 교수의 책을 요즘 많이 보게 된다. 열성적 저술 활동이 눈에 띈다. 자음과 모음사()의 과학 공화국 지구 법정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 [지질시대]란 이름으로 나온 지 19년만에 읽게 되었다. 구성은 과학의 이슈들을 법정에서 가린다는 컨셉을 하고 있다. 지구의 구성 성분부터 시작이다.

 

지구의 어떤 구성 성분으로 인해 땅이 움직이는 것일까? 답은 지구 대부분을 구성하는 맨틀이다. 맨틀 가운데 물렁한 고체 부분인 연약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연약권 위에 떠 있다. 암석이 녹아서 흐르는 맨틀 위에 땅이 판자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지구의 일부이며 지구의 구성 성분 중 맨틀의 연약권과 붙어 있다.

 

지구의 역사에서는 바다가 먼저 생겼다. 40억 년 전 지구의 온도가 점차 식으면서 화산 활동으로 뿜어져 나온 수증기가 엄청난 양의 비가 되어 수백만 년 동안 쏟아져 내렸고 이로 인해 원시 바다가 형성되었다. 바다가 형성된 이후 지각 변동과 마그마의 냉각, 고화(固化)로 대륙(육지) 지각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솟아오르며 최초의 육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초기 지구는 거대한 물의 행성이었다.

 

암석권, 연약권, 중간권에서 중간권은 지각과 핵 사이의 물질이란 의미이다. 판의 지각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지대를 변동대라고 한다. 이 지대에서는 화산작용과 지진 현상이 수반된다. 대표적인 지대가 환태평양 변동대와 알프스 히말라야 변동대 등이고 해저에는 중앙 해령대와 해구지대다. 이런 변동대에서는 화산작용과 지진 현상이 일어나며 습곡 산맥이 형성된다. 그러나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내부의 소규모판인 아무리아판(Amurian Plate)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이 판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어 지진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역대 우리나라 주변의 지각 운동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와 일본이 하나로 붙어 있다가 약 2천만 년 전에 동해가 생겨나면서 떨어졌고 최근 1년에 1cm 가량 가까워지고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는 동해의 해양 지각이 대륙 지각 밑으로 침강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도 강도가 높은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부 지대의 용암 대지는 철원/ 평강 용암대지와 신계/ 곡산 용암대지로 구분된다. 철원, 평강 용암대지는 신생대 제4기에 유동성이 강한 현무암의 열하(裂罅) 분출로 이루어진 용암대지다.

 

지구의 모든 산이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산이 만들어지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1) 판의 충돌에 의한 습곡산맥, 2) 지각 변동에 의한 단층산(지각의 거대한 힘에 의해 암석층이 깨지면서 한쪽이 솟아오른 산), 3) 화산 활동에 의한 산 등이다. 분출된 용암이 매우 빨리 식을 때 그 안에 공기가 갇힌 상태로 굳은 돌을 부석(浮石)이라고 한다. 부석은 물에 뜨고 잘 부서진다. 부석은 색이 밝고 가볍고 스펀지처럼 구멍이 많고 물에 뜬다. 현무암은 어둡고 구멍이 비교적 적고 무겁고 물에 뜨지 않는다.

 

화산지형에 많은 현무암은 이산화규소 함량이 적고 어두운 색을 띠며 철과 마그네슘이 비교적 풍부한 분출 화성암이다. 현무암은 칼크 알칼리 현무암과 알칼리 현무암으로 나뉜다. 두 현무암의 가장 큰 차이는 마그마가 형성되는 판의 위치와 물의 유무이다. 칼크 알칼리 현무암질 용암은 지배적인 유색 광물로 보통 휘석과 감람석을 포함한다. 알칼리 현무암은 해양 분지 내의 용암에 많고 산맥 지대의 용암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알칼리 현무암은 대륙 내부의 열점(Hot spot)이나 열곡대에서 생성된다. 나트륨과 칼륨 같은 알칼리 산화물 함량이 높다. 이산화규소가 부족하여 석영 대신 감람석이나 준장석 광물이 주로 나타난다. 칼크(칼슘)-알칼리 현무암은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들어가는 섭입대에서 생성된다. 마그마 생성 과정에서 물이 많이 공급되는 환경적 특성을 갖는다. 철과 마그네슘의 함량 변화가 산소 분압에 의해 독특하게 조절되며 분화가 진행될수록 알루미나 함량이 비교적 높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칼슘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나트륨 및 칼륨 같은 알칼리 금속의 비율이 낮은 마그마에서 생성된다. 사장석이 주로 정출된다. 섭입대에서 칼슘 비중이 높은 현무암이 생성되는 핵심 이유는 해양판에서 빠져나온 다량의 물이 맨틀의 용융점을 낮춰 탈수 용융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칼슘이 풍부한 광물(사장석 등)이 집중적으로 녹아 나오기 때문이다. 사장석에 칼슘이 많은 이유는 마그마가 분화할 때 칼슘이 나트륨보다 먼저 결정화되기 때문이다.

 

1972년 경남 하동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돼 한국에서 공룡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경북 의성에서 몇몇 단편적인 공룡 뼈가 발견돼 한반도에도 공룡이 살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1980년에는 그때까지 무심히 지나쳤던 이상한 퇴적 구조의 대부분이 공룡이 남긴 발자국 화석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현재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로 알려지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남도 일대에 분포하는 경상 누층군에서 많은 공룡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발자국 화석은 경상 누층군이 지층으로 드러난 곳을 잘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지역에서 산출되고 있다.

 

흔히 발자국 화석은 나무나 풀로 덮이지 않은 해안가나 하천 바닥, 도로 개설을 위해 인위적으로 산을 깎은 곳에서 자주 발견된다. 경상 누층군은 지금의 경상도와 전라남도 일대에 주로 분포하는 전기와 중기 백악기 지층들로 바다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강과 호수의 퇴적물이 쌓여 이루어진 육성층이다. 때문에 육상 동물인 공룡이 화석으로 보존되기 위한 좋은 지질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심해어는 몸속에 공기주머니가 없고 대신 물이 많이 들어 있다. 즉 부레가 없다. 이는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기 위해서이다. 그런 이유로 심해어들은 몸 밖의 수압과 몸 안의 수압이 평형을 이루어 터지지 않고 잘 살 수 있다.

 

바다 속에서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고 염분 농도가 높은 물은 더 아래로 흘러들어 폭포를 만든다. 수심 4000m~6,000m의 바다 아래에는 육지의 대산맥과 같이 규모가 웅대한 지형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해저의 거대한 산 즉 해령이라고 한다. 지구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해령의 생성은 판구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판구조론이란 지구의 가장 바깥쪽을 구성하는 지각과 맨틀의 상부가 몇 개의 판으로 나뉘고 그것들이 서로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해령은 맨틀에서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나와 판이 생성되는 곳이다.

 

해령은 너비가 넓은 것도 있고 좁은 것도 있다. 이는 맨틀로부터 분출한 마그마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른 것이다. 해령에서 생성된 판은 양쪽으로 떨어져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해령의 축에 갈라지는 틈이 생기고 이 틈새로 맨틀에서 녹은 암석인 마그마가 다시 솟아올라 분출한다. 여기서 마그마는 식어서 굳고 새로운 판으로서 낡은 판에 붙어 양쪽으로 이동해 나간다. 이것은 바로 해양저 확대 현상이라고 한다. 결국 해령에서 판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해양저 확대 현상을 통하여 오래된 판은 점차 해령에서 멀리 밀려나가며 새로운 판이 다시 생성되는 것이다. 해령으로부터 멀리 이동한 오래된 판은 나중에 해구에서 침강한다.

 

산호는 폴립이라는 작은 벌레가 만든다. 폴립은 바닷속에서 수억 마리가 모여 사는 데 몸이 아주 연약하다. 그래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탄산칼슘이라는 물질로 돌처럼 단단한 껍질을 만든다. 폴립이 죽고 단단한 껍질만 남는 것이 바로 산호다. 산호를 자르면 구멍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폴립이 있던 곳이다. 고래는 아가미가 없어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지만 산소를 오랫동안 몸속에 지니고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조금씩 쓰던 산소가 부족해지면 물 위로 올라와 한꺼번에 숨을 몰아쉰다.

 

지질시대를 주제로 한 책이지만 읽는 이의 입장에서 지구에 육지보다 먼저 생겼으며 육지보다 훨씬 오묘하고 신비한 바다를 중심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지질시대에 대해 알려면 판구조론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무관할 수 없는 한탄강 유역의 현무암이 칼크 알칼리 현무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다행이다. 이는 내륙의 베개용암과 해양 지각과 그 아래의 상부 맨틀이 융기하여 지표면에 노출된 암석 덩어리인 오피올라이트의 한 부분인 베개용암을 비교하는 것과도 연관이 된다. 결국 나는 바다 특히 심해와 그 곳의 생명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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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이 들려주는 화학 결합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41
최미화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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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나오는 폴링은 라이너스 칼 폴링(1901-1994)을 말한다. 1954년 노벨 화학상과 196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화학자이다. 현대화학의 시조이자 반핵 운동가이다. 양자역학을 화학에 접목하여 현대 구조화학의 기초를 마련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학자 중 한 명이다. 혼성 오비탈, 전기음성도, 공명 이론, 폴링 규칙, 단백질 구조 연구 등의 업적을 세웠다.

 

핵반응 이외의 방법으로 원자가 쪼개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는 전자나 양성자가 아니라 원자다. 핵반응 이외의 방법으로 원자가 쪼개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만큼 입자들 사이의 결합 에너지가 강하다는 의미다. 원자의 세계는 나노의 세계다. 1나노미터는 1m10억 조각으로 나눈 길이를 말한다. 수소 원자의 지름은 0.1나노미터이다. 수소 원자 1024승 개의 질량은 1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작고 가벼운 원자들이 만나 결합하면 분자 나라가 만들어진다.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령 수소 기체와 산소 기체를 불꽃 방전하면 물이 만들어진다.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결합하여 물 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소 기체와 산소 기체를 불꽃 방전하는 것은 수소 기체와 산소 기체의 혼합물에 전기 스파크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물 분자는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로 이루어졌지만 수소나 산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

 

물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을 화학반응이라고 한다. 화학반응은 화학 결합이 깨지거나 새로 만들어지면서 일어난다. 수소와 산소의 성질은 어디 가고 물의 성질이 만들어졌을까? 그 답은 바로 화학 결합에 있다. 원자 세계에서 분자 나라로 가려면 화학 결합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화학 결합이란 원자들이 헤쳐 모여서 전혀 새로운 성질을 가지는 분자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분자 나라는 원자들이 결합해서 펼치는 새로운 세상이다. 원자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함에 따라 분자가 만들어진다. 원자들이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화학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들의 밀고 당김을 통해 새로운 짝짓기를 할 때마다 새로운 분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몇 종류 되지 않는 원자로부터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렇게 많은 종류의 분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원소는 모두 110종이지만 그중 지구상에 흔하게 존재하는 원소는 40여 종 정도이고 그중에서도 사람의 몸은 겨우 10여 종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분자의 종류는 무려 3,700만 가지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원자들이 밀고 당기면서 만들어내는 분자 나라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원자들이라도 몇 개가 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물질이 만들어진다. 겨우 수십 가지에 지나지 않는 원자들이 수없이 많은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이다.

 

원자들이 겉으로는 모두 비슷하게 생겼지만 화학적 성질이 서로 다른 이유는 원자의 종류에 따라 원자가전자(原子價電子; valence electron) 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자들의 결합에서 원자가전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두 원자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원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원자가전자를 함께 나누어 쓰면서 서로 단단하게 달라붙는 경우가 있다.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결합하여 물 분자를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원자가전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화학에서는 두 원자가 원자가전자를 서로 나누어 쓰면서 친해지는 것을 공유 결합이라 하고 원자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입자를 분자라고 부른다. 가장 간단한 수소는 약 150억 년 전에 빅뱅으로 인해 생겨났다. 그 후 다른 원소들도 차차 만들어졌다.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수십 가지 원소들은 빅뱅 이후 태양계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걸쳐 만들어졌다. 화학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분자를 만들어내는 마술사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원자들을 결합시켜 분자를 만드는 일은 정말 신기한 마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강한 독성을 가진 수산화나트륨과 염산이 만나면서 독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저 짠맛이 나는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은 화학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일이다. 소금이 물에 잘 녹는 이유는 전기를 띤 입자 즉 이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나누어지는 과정을 이온화라고 부른다.

 

소금처럼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이루어진 물질을 이온 결정이라고 한다. 이온 결정은 양이온과 음이온 사이에 전기적인 인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물 분자도 전기를 띠고 있는 극성 분자이기 때문에 이온 결정 중에는 물에 녹는 것이 많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이온 결정도 있다. 그런 것을 앙금이라 부른다. 앙금을 한자로 전분(澱粉)이라 한다. 이온 결정인 탄산칼슘은 물에 거의 녹지 않는 앙금이다.

 

센물<경수; 硬水>을 끓여 보일러 용수로 사용하면 탄산칼슘이 물에 거의 녹지 않기 때문에 보일러 관에는 딱딱한 탄산칼슘 덩어리가 쌓이게 된다. 이것을 관석(罐石.; 두레박 관)이라 하는데 관석이 많아지면 보일러 관이 터지기도 한다. 경수는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물이다. 주로 석회암 지대를 통과하는 지하수에서 많이 나타나며 세탁시 거품이 잘 나지 않고 비누 찌꺼기를 만드는 특징이 있다.

 

탄산칼슘이 물에 잘 녹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온성 결합력(정전기적 인력)이 물과 결합하려는 힘(수화열; 水和熱)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물 분자는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가 서로 전자쌍을 나누어 가지는 결합으로 만들어진 분자다. 이때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 간에는 전자쌍을 잡아당기는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산소 원자는 수소 원자보다 분자 내에서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더 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힘이 더 센 산소 원자 쪽으로 전자쌍이 조금 더 많이 끌려오게 된다.

 

그 결과 산소 원자 쪽에는 음의 전기가 생기고 수소 원자 쪽에는 양의 전기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물 분자가 부분 전기를 띠는 이유다. 물 분자의 각도가 104.5도로 굽어 있는 것은 비공유 전자쌍의 반발력 때문이다. 물 분자에서 산소는 두 개의 수소와 전자를 공유하고 남은 4개의 전자(2)를 가지고 있다. 이를 '비공유 전자쌍'이라고 한다. 공유 전자쌍보다 비공유 전자쌍이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며 반발력이 훨씬 세다.

 

이 비공유 전자쌍들이 두 수소 원자를 아래쪽으로 강하게 밀어내기 때문에 일자형이 아닌 약 104.5도의 굽은 형태를 띠게 된다. 액체 상태인 물은 산소 원자 주위에 4개의 전자쌍이 정사면체 구조(109.5)를 이루려 한다. 산소가 가지는 2개의 비공유 전자쌍이 2개의 수소 원자(결합 전자쌍)를 강하게 밀어내기 때문에 결합각이 찌그러져 104.5의 굽은 형태를 띤다.

 

물이 얼음이 되면 물 분자들은 단단하고 규칙적인 정사면체 그물망 구조(육각형 결정 구조)를 형성한다. 이때 산소 원자를 중심으로 다른 물 분자의 수소들이 결합하면서 가장 안정적이고 빈 공간이 넓은 정사면체 형태를 만들기 위해 결합각이 다시 원래의 이상적인 사면체 각도인 109.5도에 가깝게 펴진다. 이 과정에서 분자들 사이에 육각형의 빈 공간이 많이 생기게 되며, 이로 인해 얼음의 부피가 액체일 때보다 약 9% 팽창하게 된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분자들은 모두 분자 내에 부분 전기를 띠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분자 모양은 대칭 구조다. 4염화탄소를 제외한 나머지 분자들은 모두 탄소와 수소로만 이루어진 분자다. 벤젠, 플라스틱, 메테인, 프로판, 파라핀은 모두 탄소와 수소로만 이루어져 있다. 탄소와 수소로만 이루어진 분자를 탄화수소화합물이라고 한다. 탄화수소화합물에는 물에 녹지 않는 무극성분자가 많이 있다.

 

물에 녹지 않는 물질들은 전류를 통하지 않는다. 물에 녹지 않으므로 이온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탄화수소 분자가 물에 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 분자는 질소 원자를 포함한 탄화수소 분자다. 단백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는 물에 녹는 수용성 단백질도 있고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 단백질도 있다. 원자 세계에서는 상대 원자에게 베풀면 원자 자신도 더 좋아하는 일이 일어난다.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 나라를 만들어가는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원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원자가전자를 상대 원자와 서로 나누어 가지면서 분자를 만든다. 이때 만들어진 분자는 각각의 원자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보다 안정하다. 다시 말하면 각 원자들은 원자 상태로 있을 때보다 분자 내에서 더 안정한 전자 배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원자들이 결합할 때 사용하는 결합 손의 수는 원자 종류에 따라 다르다. 수소 원자는 한 개의 손을 사용하고, 산소 원자는 두 개, 질소 원자는 세 개, 탄소 원자는 네 개의 손을 쓴다.

 

원자들이 결합할 때 사용하는 손의 정체가 바로 원자가전자다. 원자가전자는 원자핵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전자들을 가리킨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들이 퍼져 있다. 그때 원자핵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전자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수소 원자 속에서 돌아다니는 전자의 속도는 초속 2,000km가 넘는다. 수소 원자에는 전자가 한 개이며 그것이 바로 원자가전자다.

 

헬륨 원자에는 원자가전자가 2개 있다. 전자가 3개인 리튬 원자에는 원자가전자가 1개 있다. 2개의 전자는 원자핵에 가깝게 있고 나머지 1개의 전자는 상대적으로 먼 곳에 있다. 그래서 리튬 원자에서는 원자가전자가 1개다. 원자가전자는 핵으로부터 멀리 있기 때문에 다른 전자에 비해 원자핵의 영향을 덜 받는다. 원자핵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원자가전자는 다른 전자보다 움직임이 자유롭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자핵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나가 버리기도 하고 다른 원자가전자와 결합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원자 내부 깊숙한 곳에 있는 전자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원자핵에서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그 원자로부터 멀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자들이 결합할 때 전자를 내놓는 것은 자신의 전자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자를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이다. 원자의 가장 바깥쪽에 있던 전자 즉 원자가전자가 다른 원자 쪽으로 쏠리면서 다른 원자로부터 나온 전자 역시 이쪽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전자 1개를 내놓고 전자 2개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각각의 원자를 보면 전자 식구가 늘어난 셈이다. 나눌수록 많아지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다. 전자를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 바로 공유 결합이다. 원자마다 전자를 내놓으려는 성질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떤 원자는 전자 내놓기를 아주 좋아하고 어떤 원자는 전자 내놓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원자는 다른 원자에 있는 전자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려고 하고 어떤 원자는 전자 끌어오는 것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이런 차이 때문에 공유 결합에서 전자를 함께 나누는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 분자가 극성을 띠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치다. 자연을 구성하는 원자의 세계에도 약육강식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큰 원자가 작은 원자를 잡아먹는다는 말은 아니다. 원자 세계의 약육강식이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일까? 원자는 항상 중성이다. 중성인 원자가 전자를 잃거나 얻으면 이온이 된다.

 

LNG라 부르는 연료의 주성분이 메테인이다. 상온에서 기체 상태의 분자인 메테인은 어떤 모양으로 하고 있을까? 메테인은 4개의 수소 원자와 1개의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다. 수소 원자와 탄소 원자 간의 공유 결합으로 만들어진 분자이다. 탄소와 수소 원자 간의 공유 전자쌍이 무려 4개다. 수소 분자 모형의 공유 전자쌍은 각 수소 원자의 핵으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그러나 염화수소 분자처럼 서로 다른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는 그렇지 않다.

 

수소 분자는 2개의 수소 원자 간에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의 크기가 같다. 그래서 공유 전자쌍은 두 수소 원자의 핵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다. 염화수소분자는 수소 원자의 원자가전자 1개와 염소 원자의 원자가전자 1개가 서로 짝을 짓는 것이다. 이때 공유 전자쌍은 염소 원자에 더 가까운 곳에 있는데 그 까닭은 염소 원자가 수소 원자보다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세기 때문이다. 이 힘을 전기음성도라 한다.

 

공유 전자쌍으로 결합된 분자에는 극성을 띠는 것도 있고 띠지 않는 것도 있다. 수소 분자처럼 같은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는 공유 전자쌍이 두 수소 원자의 가운데 지점에 위치하며 일직선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극성을 띠지 않는다. 그러나 염화수소 분자나 물 분자처럼 다른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는 공유 전자쌍이 두 원자의 가운데 지점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음성도가 더 큰 원자 쪽으로 끌려간다.

 

그 결과 공유 전자쌍이 더 많이 끌려간 원자 쪽에 음의 전하가 더 많이 분포하고 반대쪽 원자에는 상대적으로 음의 전하가 부족해진다. 그러니까 양전하가 더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원자 세계의 약육강식이란 바로 공유 전자쌍을 가운데 두고 벌어지는 원자 간의 힘겨루기라 할 수 있다. 전기음성도가 큰 원자가 공유 전자쌍으로 더 많이 끌어당기며 힘이 적은 원자는 공유 전자쌍을 뺏기게 되니까 말이다.

 

극성이 없는 분자는 무극성 분자라 한다. 무극성 분자에는 수소 분자나 염소 분자처럼 같은 종류의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가 있는가 하면 메테인이나 벤젠처럼 원자의 종류는 다르지만 분자의 구조가 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극성을 띠지 않는 분자도 있다. 왜 그럴까? 분자구조가 대칭을 이루면 원자간의 공유 전자쌍이 균등하게 나누어지지 않더라도 분자 전체를 보면 극성이 상쇄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분자는 극성을 띠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분자 내에 극성이 있으면 극성 분자라고 부른다. 극성 분자로는 물이나 염화수소 분자가 있다. 물 분자는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의 전기음성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산소 원자에 있는 비공유 전자쌍으로 인해 극성을 띤다. 물 분자의 모양은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정리하면 분자 모양이 대칭을 이루면 무극성 분자가 만들어지고 분자의 모양이 대칭을 이루지 않으면 극성을 띤다.

 

극성 분자인 물은 전기를 띤 물체에 끌리고 무극성 분자인 벤젠은 전기를 띤 물체에 끌리지 않는다. 소금은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이 결합해 만들어진 염화나트륨이다. 인체에 강한 독성을 나타내는 나트륨과 염소가 합쳐져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화학의 신비다. 소금 즉 염화나트륨은 나트륨과 염소로 이루어졌다. 하얀 소금 알갱이는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트륨 원자는 전자를 하나 잃고 양이온이 되면 더욱 안정해지고 염소 원자는 반대로 전자를 하나 얻어 음이온이 되면 안정해지는 특성이 있다.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은 규칙적으로 쌓이는데 1개의 나트륨 이온을 6개의 염화 이온이 둘러싸고 있다. 1개의 염화 이온은 다시 6개의 나트륨 이온에 둘러싸이게 되고 이온들이 교대로 쌓이게 되니까 이온들은 서로 들러붙게 된다.

 

소금은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교대로 단단하게 뭉쳐진 덩어리이기 때문에 매우 높은 온도에서도 분해되기 어렵다. 우리가 식탁에서 맛보는 소금 중에는 구운 소금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소금은 섭씨 800°C 이상으로 가열한 것인데 이런 온도에서 소금은 액체 상태가 되기는 하지만 나무처럼 타버리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바로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서 공기 중의 산소와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뜨겁게 녹인 소금을 다시 식히면 본래의 소금으로 돌아가 버릴뿐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 소금의 정체가 바로 구운 소금이다. 원자 세계에서 모든 원자들이 전자를 내놓으려고만 한다면 자연세계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원자들이 전자를 받으려고만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연은 참으로 신비하다. 원소 중에는 전자 내놓기를 좋아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전자 얻기를 좋아하는 것도 있다.

 

주는 쪽이 있으면 받는 쪽이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자연 법칙이다. 나트륨처럼 전자 내놓기를 좋아하는 원소들을 금속 원소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금속에는 알루미늄, , 아연 등의 원소가 있다. 마그네슘이나 칼슘도 금속 원소다. 이들은 모두 전자를 내놓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와 반대로 염소 원자처럼 전자 받기를 좋아하는 원소를 비금속 원소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비금속 원소에는 산소, 질소 원소가 있다. 그 외에 플루오르, 황 등의 원소도 비금속 원소다.

 

금속 원소와 비금속 원소가 양이온 음이온으로 이루어지는 결합을 이온 결합이라고 한다. 나트륨 원자, 염소 원자가 서로 전자를 주고받으면서 이온이 되고 이온 간에 전기적인 인력이 작용하여 서로 들러붙으면 결정이 만들어진다. 금속 원소와 비금속 원소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물질을 이온 결정이라 한다. 이온 결정을 화학식으로 나타낼 때는 이온의 전하를 생략하고 이온의 종류와 수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약속을 정했다.

 

모든 이온 결정에서 이온들이 쌓이는 방법은 같을까? 아니다. 결정의 종류에 따라 이온이 쌓이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염화나트륨 결정과 염화 세슘 결정, 아연 결정에서 이온이 쌓여 있는 모형을 보면 결정마다 이온들이 쌓인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염화나트륨 같은 이온 결정은 이온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온 결합은 금속 원소에서 나온 전자가 비금속 원자로 가면서 일어나는 결합이다.

 

전자를 내놓고 안정해지는 금속 원자와 전자를 얻어 안정해지는 비금속 원자는 이런 방법으로 결합한다. 물 분자는 전자쌍을 공유하는 결합으로 이루어진 분자다. 물 분자에 있는 산소 원자의 원자 껍질 전자와 수소 원자핵 원자 껍질이 서로 쌍을 이루면서 결합이 일어난다. 공유 결합이란 전자쌍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결합이다. 전자쌍이 나뉠 때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큰 원자 쪽으로 전자가 더 많이 끌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원자 세계의 약육강식이다. 그 결과 공유 결합에서도 극성을 띠는 분자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구리에 비하면 철은 제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녹는점이 청동이나 구리보다 훨씬 높은 섭씨 1,539도나 되기 때문이다. 기원전 1,400년쯤 사람들은 연철을 목탄 불속에 넣어 계속 가열하면서 망치로 두들기면 연철보다 훨씬 단단한 금속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강철이다. 강철은 철 표면에 목탄 가루가 흡수되어 철 표면에 새로운 조직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철기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의 일이다.

 

철기시대에는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게 되어 농작물의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농업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알루미늄은 1780년에 이르러서야 사용하게 된 금속이다. 금속 중에서 매장량이 가장 많은 알루미늄은 구리나 철보다 녹는점이 훨씬 낮다. 매장량도 많고 녹는점도 낮은데 왜 이렇게 최근에야 사용하게 되었을까? 알루미늄이 가장 최근에 사용된 까닭은 바로 알루미늄 금속의 반응성 때문이다. 반응성이 크다는 것은 다른 원소와 화합을 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루미늄은 자연 상태에서는 언제나 화합물의 형태로 발견된다. 보크사이트는 알루미늄을 함유한 화합물의 원광석이다. 보크사이트를 가열하여 녹인 후 전기분해를 해야만 알루미늄 금속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금속을 녹여 전기분해하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알루미늄은 전혀 사용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여러 가지 합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원하는 성질을 가진 금속을 만들기 위해서 합금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합금으로는 녹슬지 않는 강철인 스테인레스 스틸. 가볍게 견고해서 비행기 몸체를 만드는 데 쓰는 두랄루민 등이 있다. 자유전자는 금속 원자에서 떨어져 나온 원자가전자를 가리킨다. 금속 원자가 모여 금속 결정을 이룰 때 원자핵에서 가장 먼 전자 껍질에 있는 전자가 떨어져나가게 되는데 이것이 자유전자다.

 

자유전자는 금속 결정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나트륨 금속을 예로 들면 나트륨 원자 당 한 개의 원자가전자가 떨어져 나오고 나트륨 양이온이 만들어진다. 양이온은 일정한 격자를 가지고 배열하는데 금속의 종류에 따라 배열된 모습이 다르다. 금속 양이온과 전자 사이에는 전기적 인력이 미치게 되는데 이 인력으로 금속 결정이 응집되는 것이다. 금속은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게 빛나지 않는다. 금속은 빛을 통과시키지 않기 때문에 불투명하게 빛난다. 이를 금속광택이라고 한다.

 

알루미늄과 은은 광택이 많이 나는 금속이다. 이 금속들의 표면은 빛을 잘 반사하므로 거울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금속은 백색으로 빛나기 때문에 장식용 도금으로 많이 쓰인다. 금속의 광택은 금속의 전기가 잘 통하는 성질과 관계가 있다. 빛은 전자기파인데 주파수가 매우 큰 전자기파는 금속의 표면까지 만들어갈 수 있다. 즉 빛은 금속의 표피 두께보다 더 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반사된다. 이 빛이 바로 금속의 광택이다.

 

금속은 면심입방격자, 밀집입방격자, 체심입방격자라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공을 쌓아 올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면심입방격자이고 또 하나는 밀집입방격자다. 촘촘하게 늘어놓는 방법은 한 가지뿐인데 이 위에 공을 촘촘하고 빽빽하게 쌓는 방법도 한 가지뿐이다. 3층에 공을 쌓는 방법은 1층과 똑같은 위치에 쌓을 수도 있고 2층의 빈 곳에 쌓고 4층을 1층과 똑같이 쌓는 방법이 있다.

 

앞의 방법을 육방쌓기라고 하며 밀집육방격자라고 부른다. 뒤의 방법을 입방쌓기라고 하며 면심입방격자라고 부른다. 체심입방격자는 입방체에 여덟 개의 모서리에 공이 있고 입방체의 중심에 공이 1개인 형태를 가리킨다. 금속은 아주 높은 온도나 낮은 온도에서 결정 구조가 바뀌는 일이 생긴다. 자유전자에 떠 있는 금속이온들이 원래의 배열을 지키지 못하고 위치를 바꾸기 때문이다. 이것을 금속의 변태라고 부른다.

 

이제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원자는 양전하를 가진 원자핵 주변에 음전하를 가진 전자가 구름처럼 퍼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원자의 크기는 대략 10나노미터 정도이고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의 1만분의 1 정도이며 전자 크기는 원자핵의 10만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원자 크기를 야구장에 비유하면 원자핵은 야구공 정도의 크기이고 전자는 개미 정도의 크기에 해당한다.

 

전자처럼 작은 입자의 경우에는 입자가 어떤 길을 따라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다. 너무 작은 입자가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전자가 어떤 모양으로 퍼져 있는가는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너무 작고 너무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어디에 존재할 확률이 높은가 즉 어떤 모양으로 퍼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전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퍼져 있다. 전자가 퍼져 있는 모양 즉 전자가 분포하는 모양을 오비탈이라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비탈이라는 전자가 발견되는 공간 영역의 확률 함수를 풀어낸 것이다. 그래서 오비탈은 전자가 주로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오비탈은 전자가 구름처럼 퍼져 있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 속의 전자들은 모두 같은 모양으로 퍼져 있을까? 아니다. 전자의 에너지 상태에 따라 퍼져 있는 모양은 달라진다. 길쭉한 모양의 모이통에 모이를 줬을 때 닭들이 모여든 모양과 원 모양의 모이통에 모이를 줬을 때 닭들이 모여드는 모양은 서로 다르다. 모이통 모양에 따라 닭들이 모여드는 모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전자들도 에너지 상태에 따라 퍼져 있는 모양 즉 오비탈이 달라진다.

 

오비탈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전자의 에너지 상태에 따라 오비탈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자핵에 가깝게 있는 전자는 에너지가 낮고 원자핵에서 멀리 있는 전자는 에너지가 높다. 에너지 상태가 서로 다른 전자들은 서로 다른 모양의 오비탈에 속해 있다. 오비탈은 전자가 사는 방에 비유할 수 있다. 전자가 사는 방 즉 오비탈은 재미있는 여러 가지 모양과 이름을 가지고 있다.

 

즉 여러 가지 모양의 오비탈이 있다는 말이다. 공처럼 생긴 오비탈도 있고 아령처럼 생긴 오비탈도 있다. 클로버 잎처럼 생긴 오비탈, 심지어 도넛에 아령을 끼워놓은 것처럼 보이는 오비탈이 있다. 모양에 따라 오비탈의 이름도 모두 다르다. s오비탈은 공 모양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s오비탈은 한 가지 종류 밖에 없다. s오비탈에는 전자쌍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한 개 있다.

 

p오비탈은 아령 모양과 비슷하다. p오비탈에는 서로 수직으로 만나는 세 개의 오비탈 즉 Px, Py, Pz 오비탈이 있다. 그래서 p오비탈에는 전자쌍이 들어가는 방이 3개다. d오비탈은 다섯 개의 오비탈이 있다. d오비탈은 전자쌍이 들어가는 방을 5개 가지고 있다. 오비탈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모양이 다르다는 것은 에너지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 상태가 서로 다른 전자들이 서로 다른 모양의 오비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s, p, d 오비탈은 에너지 상태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같은 오비탈에서는 에너지 상태가 같다. p오비탈에 있는 3개의 오비탈은 서로 에너지가 같다. b오비탈에 있는 5개의 오비탈의 에너지도 서로 같다. 공유 결합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전자 구름들의 겹침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원자에 다른 원자가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 두 원자 내부의 전자 분포 즉 오비탈들이 서로 겹치면서 화학 결합을 형성하게 된다. 바로 원자가전자들이 들어 있는 오비탈들이 겹치는 것이다.

 

전자가 하나 밖에 없는 수소를 제외하면 모든 원소에서 1s의 전자는 결합에 참여하지 않고 바깥쪽에 분포하는 2s2p에 들어 있는 원자가전자들만이 화학 결합에 참여하게 된다. 원자핵에서 비교적 멀리 있기 때문에 원자핵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특히 2p오비탈들이 결합을 만들 때에는 서로 수직인 x, y, z 방향의 아령 모양이 되며 이것을 각각 2px오비탈, 2py오비탈, 2pz 오비탈이라고 부른다.

 

오비탈을 전자가 사는 방으로 비유해보자. 전자는 규칙을 가지고 여러 가지 모양의 오비탈을 채워간다. 첫 번째 규칙은 각각의 오비탈에는 1개 혹은 2개의 전자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최대로 2개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1개의 방에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갈 수 없듯 1개의 오비탈에는 여러 전자가 동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로지 1개 혹은 2개의 전자만이 동일한 오비탈에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면 1개의 전자를 가진 수소 원자에서 전자는 원자핵에 가까이 있는 1s오비탈을 차지하게 된다. 두 개의 전자를 가진 헬륨의 경우 전자 두 개는 모두 1s오비탈을 차지한다. 두 번째 규칙은 물이 낮은 곳에서부터 채워져 올라가듯 전자 역시 에너지가 낮은 오비탈부터 순서대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오비탈의 상대적 에너지를 보면 1s오비탈의 에너지가 가장 낮다. 그 다음으로는 2s오비탈, 2p오비탈, 3s오비탈, 3p오비탈, 4s오비탈, 3d오비탈 순서로 에너지가 높아지고 있다.

 

s오비탈은 한 개의 오비탈뿐이지만 p오비탈에는 3개의 오비탈이 있고 b오비탈에는 5개의 오비탈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자가 3개인 리튬 원자의 경우 1s오비탈에 2개의 전자가 들어가고 그 바깥쪽에 있는 2s오비탈에 1개의 전자가 들어간다. 하나의 오비탈에 들어갈 수 있는 전자의 수는 2개까지라는 것은 잊으면 안 된다. 세 번째 규칙은 같은 크기의 에너지를 가진 오비탈에 전자가 채워질 때는 전자 1개씩을 각각의 오비탈에 고르게 배치하는 것이다. 1개의 오비탈에 2개의 전자가 채워지고 나서 다른 오비탈에 전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에너지의 오비탈에 균등하게 1개씩의 전자가 배치된 후 그래도 전자가 남아 있으면 각각의 오비탈의 전자가 1개씩 더 들어간다는 말이다.

 

여섯 개의 전자를 가진 탄소의 경우에는 1s 오비탈에 두 개의 전자가 분포하고 그 바깥에 위치한 2s오비탈에 두 개의 전자가 들어간다. 남은 전자는 2개인데 이 나머지 2개의 전자는 2p오비탈에 각각 하나씩 들어간다. 2p오비탈은 모두 3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2개의 오비탈에 전자가 각각 하나씩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규칙들은 모두 전자가 바닥 상태에 있을 때의 규칙이다. 바닥 상태란 각각의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 상태 중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바닥 상태의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하면 들뜬 상태로 올라가게 된다. 들뜬 상태의 전자는 영원히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보다 낮은 에너지 상태로 내려오게 된다. 이때 에너지 차()에 해당하는 빛을 내게 된다. 이 빛의 파장이 가시광선 영역일 경우 우리 눈에 색이 보이게 된다. 이것을 원소의 불꽃 반응 색이라고 한다. 원자보다 들뜬 상태로부터 그보다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질 때 방출하는 에너지의 크기가 다르므로 불꽃 반응색은 원소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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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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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1956 ~ )는 양자중력(量子重力) 이론 연구에 매진하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접점에 서서 연구하는 이론가라 할 수 있다. 대표작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그는 양자물리학적이면서 철학적(실존적)인 관심과 지향성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최신작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2017년 번역 출간된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 과학적 사고의 탄생]의 개정판이다.

 

이 책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첫 번째 과학자로서의 면모에 집중했다면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과학과 비과학의 분별,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 등에 초점을 둔 책이다. 물론 두 가지 이슈(1. 과학자로서의 면모. 2. 과학과 비과학의 분별,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는 수렴한다.

 

그럼 저자가 정의하는 과학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1)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을 거부하는 태도를 지식탐구의 기초로 삼는 것, 2)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개념을 창안하고 그것을 기존 지식의 일부로 통합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전체가 새로운 일관된 체계가 되었음을 이치에 맞게 설득하는 일, 3) 선대의 지식을 습득한 후 그들이 저지른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해 세상에 관한 이해를 증진하는 과정 등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누구인가? 기원전 610년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기원전 546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이오니아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인 아나톨리아(튀르키예) 서부 해안 지역으로 철학과 예술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 밀레토스는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에 위치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다. 당연히 밀레토스와 아낙시만드로스를 연계시켜 말할 수 있다. 밀레토스는 흑해 인근 북부 주민들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곳인 이오니아의 도시들 가운데서 아니 그리스 전체에서도 가장 번영했던 곳이자 남쪽의 거대 문명과 가장 인접한 도시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로마의 저술가 클라우디우스 아엘리아누스에 의하면 밀레토스의 식민 도시였던 암피폴리스의 총독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그리스는 놀랍게도 땅이 우주 공간에서 떨어지지 않고 떠 있는 돌이라고 여기던 문명권이었다. 이런 그리스의 지적 태도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바로 이토록 혁명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낳은 인물이다. 저자는 당시 밀레토스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같은 학교가 있었는지 모르나 진정한 의미에서 학교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학교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의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은 분명하다고 본다.

 

이런 아낙시만드로스를 오늘날 의미에서 과학자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유한한 크기의 천체로 지구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어느 쪽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구는 다른 어떤 천체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그 동기가 무엇이었건 그의 사상과 연구 결과가 현대적 의미의 과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사상에는 현대 과학의 필수 요소가 빠져 있다. 예컨대 그의 사상에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며 그 수학적 원리를 규명한다는 개념이 없다. 이 개념은 아낙시만드로스 시대로부터 약 1세기가 지난 피타고라스 학파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본격적 과학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중에서도 수리 물리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와 히파르코스의 천문학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물론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주장한 탈레스의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사람인 아낙시만드로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우리가 아는 한 최초로 자연주의 세계관을 제시한 인물이다.

 

탈레스가 말한 물은 그저 물일 뿐이며 그가 생각한 바다는 신이 아니다. 아메리카 나바호족의 창조 설화를 통해서는 유일신의 이름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물이라는 구절을 만날 수 있고 구약 성경 창세기를 통해서는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기 전에 혼돈하고 공허한 땅,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는) 수면(水面)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설명한 세상의 역사에는 초자연적 존재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는 세상 만물을 불, 추위, 더위, 공기, 흙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으로 설명했다. 또한 설명의 대상도 태양, , 지구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자연주의적 관점이 기막히게 들어맞은 분야는 생명과 인간의 기원에 관한 통찰이다. 그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고 생물종의 진화가 기후 조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최초의 생명체는 바다에서 태어났고 지구의 대기가 건조해짐에 따라 육상으로 올라와 적응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어떤 생물이 진화해 최초의 인간이 되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다윈의 본격적 연구 이후에야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6세기에 아낙시만드로스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도 대기 현상의 원인을 자연에서 찾으려 한 그의 생각 자체가 이 세상에 과학이라는 분야를 탄생시켰다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더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이 모두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중에는 놀랍도록 정확한 내용이 더 많다.

 

비는 실제로 지상의 물이 태양열에 힘입어 증발한 결과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진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지각의 균열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체는 바다에서 처음 탄생해 이후 육상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도대체 어떻게 그 시대에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까? 어쩌면 그 비결은 단순히 기존 설명에 의문을 품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낙시만드로스보다 1세기 후에 밀레토스에서 활동한 헤카타이오스는 아낙시만드로스가 남긴 지도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해 그리스 최초의 역사가가 되었다.

 

고대 사상사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공자와 맹자,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롯한 선지자들, 예수와 바울, 부처와 교진여 등이 대표적이다. 책 전편이 흥미롭지만 특히 그런 부분은 이 부분이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발전시켰지만 스승의 주장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울은 모든 복음서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지만 예수의 말씀을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적은 없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와 그 백성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설명했으나 모세의 오류를 분석하는 언행은 일체 하지 않았다.(131 페이지) 오직 아낙시만드로스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인 탈레스에 반대되게 물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지구를 주장했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지구를 떠받치는 바다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스승 탈레스의 주장에 반해 지진은 대지가 갈라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중국 문명이 수 세기 동안 여러 면에서 서양보다 우월했지만 스승을 비판하거나 의문시하지 않는 풍조 때문에 과학혁명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담(餘談)이지만 바울이 예수의 메시지를 관념화시켰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다른 저자의 지적(바울은 예수의 말씀을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한편 그러면서도 비판이나 의문 제기 없이 결이 다른 이론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란 궁금증이 든다.

 

여담에서 본론으로 돌아와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 탈레스의 사상에 반()하는 내용을 세운 부분을 보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스승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고 그것이 광대한 바다이며 대지는 그 바다 위에 떠 있다고 봤다. 따라서 탈레스가 보기에 대지는 원반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직감적으로 바다가 대지를 둘러싸며 떠받치고 있다는 탈레스의 가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광대한 바다를 걷어낸 아낙시만드로스의 지구는 허공에 떠 있는 원통형 대지가 되었다. 과학 발전과정에서 핵심 단계는 지구가 원통형인지 구형인지가 아니라 그것이 허공에 떠 있는 유한한 천체라는 개념이 등장한 시점이다.

 

지구는 원통도 아니고 구체도 아니다. 지구는 양쪽 극으로 갈수록 조금 납작해지는 타원체다. 정확히 말하면 남극이 북극보다 조금 더 납작하므로 타원체도 아니고 서양 배 모양에 가깝다. 지구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허공에 떠 있는 돌멩이이고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발 아래에도 똑같이 있다는 개념이야말로 인류 사상사의 일대 도약이다. 이것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이다.(92 페이지) 현대의 비과학 분야 학자 중에는 지구를 원통으로 본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관을 원시적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지구가 둥글다고 말한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모델을 과학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야말로 명백한 과학적 오류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은 인류가 지구를 허공에 떠 있는 유한한 천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대혁명이었다. 중국의 천문학이 무려 2천년간 이어져오면서 이런 혁명을 이뤄내지 못한 것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지구가 원통형이라고 생각하다가 알고 보니 구체였다고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변화는 단 한 세대만에 이루어졌다. 우주론은 위대한 혁명을 불러온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당연히 아낙시만드로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도대체 어떻게 땅 아래에도 하늘이 있다는 생각을 해냈을까?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개념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법칙 즉 모든 사물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지구를 떠받치는 것이 없다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구는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모든 별이 북극성을 축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려면 지평선 아래에 허공이 존재해야 한다.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개념은 별의 일주 운동과 완벽히 일치했기에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무거운 물체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기존 상식과는 충돌하는 개념이었다. 이 둘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이 진정한 난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천재성은 지구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떠올렸다는데 있다. 그의 대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에 관하여]에 실려 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과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구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 어떤 방향으로도 떨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상에 존재하는 물체들의 상대적 위치는 변하지 않지만 태양계의 차원에서 보면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지와 운동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천체가 천구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각각 다른 거리의 우주 공간에 퍼져 있다고 본 최초의 인물이다.

 

쿠푸리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우주라는 열린 공간을 창안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엄청난 사고의 도약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지구가 있는 우주 대신 주변이 하늘로 둘러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지구라는 우주를 제시했다.(106 페이지) 찰스 칸은 우리는 설사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해도 지구의 위치에 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만으로 그를 합리적 자연과학의 창시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자신은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이야말로 인류의 사상사에서 가장 대담하고 혁명적이며 선구적인 것이었다고 본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상이 과소평가되는 뿌리에는 과학과 인문학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는 현대의 악습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를 뒷받침할 말을 플라톤의 [파이돈]을 통해 알 수 있다. [파이돈]은 지금껏 영혼의 불멸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지구는 둥글다는 새로운 세계관을 역사상 처음으로 소개한 문헌이라는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점이 간과된 것은 오늘날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을 만물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아페이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계가 없는 것(무한)이라는 뜻, 정해지지 않은 것(무규정)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이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려 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페이론의 본질적 특징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물질이 다른 어떤 곳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것은 자연적이면서도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는 속하지 않는 무언가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물질과 동일하지 않지만 그 물질들에 대해 상당히 통일적 원리로 기능하는 어떤 것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가정이 유용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아낙시만드로스 습관의 핵심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의 존재를 상상한 것은 이후 과학의 눈부신 성공을 예비한 바탕이 되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식할 수도 없지만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실체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119 페이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데모크리스토스와 레우키포스가 원자를 상상하고 19세기 영국의 존 돌턴이 원자를 연구한 것은 모두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을 가정한 정신을 이어받은 결과였다. 그것은 모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자연의 실체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물질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예로 패러데이가 현대 과학에 남긴 큰 공헌을 들 수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기와 자기 현상을 아우르는 통일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패러데이는 심층 실험을 통해 관련 현상을 연구한 결과 전자기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다. ()은 마치 어디에나 뻗쳐 있는 거미줄처럼 모든 공간을 채우는 실체다. 그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패러데이의 역선(力線)이라고 부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장, 아인슈타인의 휘어진 시공간, 가연성 물질에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플로지스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핸드릭 로렌츠의 에테르, 겔만의 쿼크, 파인만의 가상 입자,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파동 함수, 현대 기초 물리학에서 우주의 바탕으로 가정하는 양자장 등은 모두 인간이 직접 인지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현상을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기 위해 가정하는 이론적 실체들이다. 이들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에 부여한 것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담당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서양과학 전체가 겉으로 드러난 자연현상 뒤에 숨은 수학 법칙을 찾기 위해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등이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학적 법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생각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일 가능성이 크다.(127 페이지)

 

저자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결정적인 과학 법칙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는 말로 자신의 주안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법칙도 언젠가 한계에 다다르고 더 나은 법칙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의 이론 사이에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점이 있어 우주에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법칙을 확인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이 두 가지 이론을 통합하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 말한다.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것은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온 후에도 뉴턴의 이론이 유용한 영역이 있다.

 

저자는 과학을 우아하게 설명한다. 즉 과학이란 우리가 너무 무지하고 수많은 오류를 안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학문으로 그것은 우리의 무지와 호기심에서 태어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도전하지만 사실에 입각한 증명이나 합리적 비판과 분석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과학은 더 멀리 보는 일이다. 과학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는 관점에 있다. 새로운 과학 이론은 과학자의 상상력에 힘입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존의 지식이 조금씩 수정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 구조를 무()에서 창조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연히 얻은 개념 구조 속에서 생각한다. 생각은 그 대상인 현실과 부딪히고 맞서면서 점점 변화한다. 과학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확실한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답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새로운 답이 나오면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다. 즉 과학적 사고는 언제든 배울 준비가 된 마음가짐이다.

 

저자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 탈레스에 대해 한 존중과 비판의 관계를 논한다. 그것은 모순 없는 태도다. 우리는 동료 시민에게서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필요하다면 그들을 비판할 준비도 되어 있다. 관건은 무조건 거부도 무조건 수용도 아닌 우리의 이성을 사용해 대립과 대화, 판단을 엮어 내는 일이다.

 

짐작했겠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명시적으로 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언급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며 기독교를 믿는 나는 신을 입에 올리는 또는 찾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자연과학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신을 위한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신앙과 학문을 통합할 수 있을까? 충분히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그 통합 작업을 한 책을 보며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접한 바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그저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인지적, 사회적, 심리적 경험을 체계화하는 어떤 본질의 상징인지도 모르는 신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이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저자가 마음은 무엇일까?라고 묻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말했듯 생각은 이 세상에서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도구다.(251 페이지)

 

저자는 속이 텅 빈 진실 안에 숨든 지식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인정하든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왕국을 선택하느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을 연상하게 한다. 카를로 로벨리의 말은 자크 모노의 말과 비교할 수 없이 따뜻하다. 가령 그런 점은 우리의 지식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 있다. 우리가 알던 지식이 금세 뒤바뀌고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삶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소중해진다.”는 저자의 결론격의 말이 있기에 더욱 확실해진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제시한 아페이론을 사유의 수준이 갑자기 현저하게 높아진 것이라 설명하며 관건은 어떤 존재론적 가설을 던짐으로써 현실을 넘어갔다면 이제 현실로 다시 내려와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라 말한다.([세계철학사 1] 70, 72 페이지) 이는 나도 늘 생각하는 내용이다. 자연과학에 몰입하느라 그간 잊고 있었던 인문학 특히 철학 그라운드로 복귀해야 함을 느낀다. 저자도 인용(“종교는 지성의 파괴적 힘에 맞서는 사회의 방패“)한 앙리 베르그송은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가야 하듯 신앙과 학문,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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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의 변천 - 빅뱅에서 인류까지의 지구 이야기
월러스 S. 브로커 지음, 원종관 옮김 / 전파과학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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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스 브로커(Wallace Broecker; 1931~2019)는 물리학 박사이자 지질학 박사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 책을 쓴 목적이 과학의 흐름이 결코 정적(靜的)인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과학 연구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해가는 연쇄이며 모든 관측이나 가설은 마침내 논쟁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더해져 간다는 것이다. (원서)이 나온 해는 1985년이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해는 1996년이고 개정판이 나온 해는 2023년이다. 그런데 태양계에 행성이 9개 있다는 말이 나온다.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에서 강등된 2006년 이후의 개정인데 그 점을 반영해 8개 있다고 하지 않은 것이다.

 

대폭발 가설의 방증(傍證)이란 장(), 대폭발의 흔적이란 장()이 있다. 대폭발의 잔상(殘像), 대폭발의 잔열(殘熱)이란 말도 가능하리라. 우주배경복사를 말한다. 우주 가운데서 지구나 지구형 행성은 화학적으로는 이단자라는 말이 흥미롭다. 지구를 만들고 있는 주된 원소는 철, 마그네슘, 규소, 산소이다. 이에 비해 항성은 거의 수소와 헬륨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단자라는 말이 나왔을 테다. 저자는 최초로 다루어야 할 문제로 수소,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가 어떻게 생성되어 왔는가, 또한 어떻게 암석질의 행성으로 굳어져 갔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행성의 생물이 살 수 있는 불가결한 조건이 딱딱한 표면을 갖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화학의 대상이 되는 반응은 두 개 이상의 원자가 전자를 서로 가르는 것에 관계되어 일어난다. 전자의 공유에 의해 원자는 서로 결합해 화합물이 된다. 그러나 화학반응과 더불어 변하는 것은 전자의 궤도 뿐이며 원자핵은 원래대로다. 일반적으로 화학반응에는 열이 관계된다. 핵반응을 일으키는 데도 보통은 이런 열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큰 열이 필요하다. 우주의 어딘가에 연금술이 행해지고 있다면 별의 중심부 일 수밖에 없다.

 

물리학에는 우주 창성(昌盛)의 초기에 일어난 충돌 사건의 여러 가지 모델이 있다. 계산에 의하면 우주물질의 약 24%가 헬륨 4이다. 76%는 태초의 중성자가 붕괴한 채의 양성자다. 이 비율은 지금 우주의 여러 곳에서 보이는 갓 태어난 별의 헬륨 비율과 일치한다. 대폭발 가설을 지지하는 사실이 여기에도 있다. 수로 말하면 수소 원자 1000개 대 헬륨 460개다. 헬륨은 수소의 네 배의 무게를 갖기 때문에 질량으로는 24%.(60×4/ 1000= 240/1000; 24%)

 

온도는 분자 운동의 척도다. 두 개의 양성자가 충돌하기 위해 필요한 속도는 온도로 고치면 약 2천만도에 해당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말할 수 있듯 열을 생성하는 반응에서는 성분 원자의 질량 감소가 일어난다. 잃는 질량이 열로 바뀐다. 헬륨 원자의 무게는 수소 원자 4개의 합보다 적지만 확실히 가벼워진다. 헬륨핵은 양성자 두 개를 포함하고 핵끼리의 전기 척력은 수소끼리의 네 배의 크기이기 때문에 수소에 비해 훨씬 높은 온도에서도 타지 않는다.

 

한번 그 온도의 문턱을 넘으면 헬륨핵은 탄소핵이 된다. 헬륨 43개 모여 탄소 12가 되는 것이다. 탄소 원자의 질량은 헬륨 원자 3개의 합보다 작고 감소분은 열이 된다. 타기 시작한 핵의 불꽃은 별의 수축을 멈추게 하고 별은 다시 안정 상태가 된다. 같은 방법으로 산소 원자도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4개의 헬륨 4가 모여서 산소 16이 된다. 최대급의 별에서는 이와 같이 연료 결핍, 재수축, 내부의 온도 상승, 타기 어려운 원자핵의 발화(發火)의 반복이 여러 단계에 걸쳐 일어난다.

 

이를테면 탄소는 또다시 타서 마그네슘이 된다. 원자핵이 합체될 때마다 얼마 안 되는 질량이 없어지고 그 대신 열이 생긴다. 단계를 밟는 성장은 철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고 더욱 앞으로 진행할 수 없다. 이 이후는 합체할 때 오히려 열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철보다 무거운 원자핵의 질량은 합체해야 할 총질량보다도 조금 크다. 따라서 별의 핵융합 회로가 합성하는 원소는 헬륨으로부터 철까지 한정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산소나 마그네슘, 규소도 포함되어 있다.

 

생성된 원소에 별의 중심부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길이 있으면 지구형 행성을 만드는 재료를 얻을 수 있다. 작은 별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과 달리 질량이 큰 별은 격한 종말을 맞는다. 핵연료가 모두 없어지면 파국적인 별의 붕괴가 시작된다. 이미 꺼져버린 불꽃은 태울 수 없게 되고 붕괴는 폭축(爆縮)으로 진행되어 별은 산산이 부서져 그때까지의 생성 물질을 주위의 공간으로 흩뿌리게 된다. 이 폭축 현상을 초신성(超新星)이라 한다. 초신성 현상에 수반하는 원자핵 반응에 의해 철보다 무거운 원소군이 생성된다.

 

태양은 우주에서 최초로 생긴 항성이 아니다. 최초의 항성은 수소와 헬륨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태양은 후에 태어났으며 그 원소 조성(組成)은 태양에 앞서 태어나서 사라져간 무수한 적색 거성의 폭발 생성물 조성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의 탄생에 앞서 은하계 형성은 두말할 것 없이 막대한 수의 적색 거성의 탄생과 소멸이 있었다. 콘드라이트를 함유하는 운석이 태양계의 역사 40억 년을 통해서 한 번도 녹은 적이 없는데 비해 행성을 만들고 있는 물질의 대부분은 분명히 한번 또는 여러 번 녹았다.

 

지구형의 행성에서는 그때 화학 조성이 다른 여러 개 층으로 나뉘어졌다. 그것은 지구 표면의 지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성 물질을 여러 층으로 분리시킨 주된 힘은 금속 철과 규산염 사이의 큰 밀도 차이에 의한 것이다. 돌은 해저에 잠기고 기름은 수면으로 떠오르듯 행성의 금속 철은 지구 중심에 모이게 된다. 원시 행성이 형성될 때 내부가 녹으면서 밀도가 높은 금속 철(nickel-iron)은 중심부로 가라앉았고 밀도가 낮은 규산염은 표면 위로 떠올라 층을 이뤘다.

 

이러한 분리가 일어나려면 행성 내부가 녹는 것이 필수였다. 주로 운석 충돌에 의한 운동 에너지, 방사성 원소의 붕괴열, 중력 압축열이 내부 온도를 높여 금속을 융해시켰다. 이 과정으로 인해 금속핵(Core)과 규산염 맨틀(Mantle) 및 지각(Crust)이 구분되는 내부 구조가 형성되었다. 천체가 차가운 기간에는 나누는 힘이 있어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천체가 녹으면 바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콘드라이트를 함유하는 운석이 만약 완전히 녹았다면 콘드룰(Chondrule)이라 불리는 작은 구형 알갱이 조직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 조직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녹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지구의 맨틀은 주로 마그네슘과 철이 풍부한 규산염 광물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 전체 부피의 약 82%를 차지하며 지각 아래에서 핵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암석층이다. 감람석(Olivine)과 휘석(Pyroxene) 같은 고온의 규산염 광물이 주를 이룬다. 감람석과 휘석은 주로 염기성 및 초염기성 암석(현무암, 감람암 등)에서 함께 발견되는 주요 조암(造巖)광물이다. 마그마의 결정 분별 작용 과정에서 감람석이 먼저 정출(晶出)된 후 마그마와 반응하여 휘석을 형성하는 연속적인 관계를 갖는다.

 

둘 다 마그네슘과 철을 풍부하게 함유한 규산염 광물이다. 일반적으로 감람석과 석영은 마그마 내 규소량 차이 때문에 동일한 암석에서 동시에 발견되지 않는다. 지구 전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철(Fe)과 마그네슘(Mg)을 합한 원자수는 규소(Si) 원자수의 약 두 배와 거의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행성의 탄생에 관해서 여러 생각이 있듯 중심핵의 생성과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한편에서는 지구는 처음부터 층으로 나누어져 성장하여 먼저 금속 철이 모이고 그 주위에 산화물(주로 산소와 결합한 규산염 물질)이 쌓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에서는 금속과 산화물이 서로 뒤섞인 후 두 층으로 나뉘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가 보편적인 생각이다. 이 경우 갓 태어난 지구는 금속 철과 규산염 광물과 같은 혼합물이었기 때문에 철은 뒤늦게 녹았을 것이다. 녹지 않았다면 철만 중심에 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지구를 녹인 열은 어디서 왔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성운 물질이 지구에 내려 쌓였을 때 해방된 중력에너지이며 다른 하나는 행성 물질 중에 함유되어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에 따라 생기는 열에너지다.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의 두께가 크게 다른 것은 그들의 생성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해양지각의 두께는 맨틀 대류가 상승하는 가장자리에 나오는 액체의 양에 따라 다르다. 그곳에서는 지판이 두 개로 나뉘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틈을 깊이 5km에 걸쳐서 채울 정도의 액체가 생기고 있다. 따라서 해양 지각은 5km 두께다. 화강암을 만드는 성분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칼륨이다. 화강암의 칼륨은 맨틀 물질의 160배에 달한다. 현재 지구 전체 칼륨의 약 반은 대륙 지각에 모여 있다.

 

바다의 현무암은 칼륨을 0.1%밖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대륙 지각에서의 칼륨의 비율은 평균 1%이다. 소행성의 먼지가 지구의 지각 물질에 비해 대량의 이리듐을 포함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금속 철에 대한 친화성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이르면 거의 전부 중심핵 안으로 들어가 지각에는 거의 없다. 적당한 양의 물이 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다음의 네 가지다. 1) 바다가 생기기에 충분한 물을 행성이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2) 행성의 내부 깊숙이 머물지 않고 표면에 나와 있어야 한다. 3) 증발해도 공간에서 잃어버릴 수 없어야 한다. 4) 대부분 액체로 있어야 한다 등이다.

 

지구는 흑체(黑體)가 아니다. 구름이나 빙모나 사막이 지표에 입사하는 태양광의 상당 부분을 공간으로 반사하고 있다. 반사광은 지표를 따뜻하게 하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만이 흑체와의 차이라면 지표의 평균 온도는 영하 20°C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대기에는 세 개 이상의 원자가 결합해서 생긴 분자가 있다. 이 종류의 분자는 적외선을 흡수하는 힘을 갖고 있다. 주된 것은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테인, 이산화질소 등이다.

 

지구의 기후가 놀라울 만큼 주기 변화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원인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질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태양을 도는 지구의 궤도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구 궤도의 모양은 아주 오랜 기간을 평균으로 잡으면 일정 하지만 짧은 기간에는 평균에서 기울어져 있음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달이나 수성과는 달리 지구는 표면의 기체를 간직할 수 있었다. 금성과 달리 온실 폭주의 재앙을 벗어났다. 지표의 탄소 순환으로 보이는 천연의 제어 과정에 의해 얼음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것으로부터도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물이 전부 증기나 얼음이 되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비교적 일정한 온도를 지킬 수 있지만 그런대로 기온에는 상당한 흔들림이 일어났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빙기이며 최근에는 대개 10만년마다 일어나고 있다. 광대한 빙하의 전쟁이나 후퇴를 일으킨 것은 지구 궤도의 작은 주기 변동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하면 행성의 기후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위 행성의 크기와 궤도의 얼마 안되는 특징에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해저에는 아주 많은 하천에서 흘러나온 광물 입자나 육지에서 날아온 먼지 알갱이가 쌓인다. 화학조성은 지각 전체의 평균과 같다. 그렇게 암설(巖屑)을 주로 하는 퇴적층을 셰일이라 한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육지의 흙에서 녹은 이온은 단일 광물의 퇴적물을 만드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해저를 뒤덮은 퇴적물의 75% 이상이 방해석이었거나 50% 이상의 단백석이었던 넓은 해역이 발견되었다.

 

방해석과 단백석은 플랑크톤이 만들어낸 것이다. 1970년대 심해저에서 극적인 열수 순환의 예가 발견되었다. 지구 내부의 맨틀 대류가 두 갈래로 나뉜 해저지각의 부분에는 거대한 열극이 생기고 있다. 우즈홀해양연구소의 심해 조사선은 이 열극을 탐험해서 신비스러운 광경을 만났다. 깊은 해저에 보통 보이는 무생물의 상황과는 달리 균열대의 단면에는 기묘한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해저의 오아시스가 생긴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균열에서 솟아오르는 열수가 해저에 고립된 생명을 유지하는 먹이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수가 함유하고 있는 황화수소와 심해의 물에 녹아있는 산소가 결합해서 생기는 에너지를 세균이 유기 분자의 합성으로 이용하고 있다. 황화수소는 지구 내부에 환원 환경에서, 산소는 표면에 산화 환경에서 생긴 것이다.

 

인류에게 바람직한 환경을 유지해온 자연의 모든 작용에 대해서 인간 활동이 작다고 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 활동에 의해서 기후나 토양이 크게 변해버리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낸 화학 농축물이 가장 좋은 곳을 급속히 낭비하고 있다. 그것을 다 사용한 후에 오는 에너지와 광물의 부족을 메우는 데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자원에 의존해야 한다. 현대인은 지구의 장래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은 소홀히 한 채 핵군비경쟁에 머리를 싸매고 다투며 의학 기술로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안달하며 한편에서는 기계 문명에 도취된 삶을 살고 있다.

 

고대 로마 이후 그다지 진보는 보이지 않는다. 빈둥빈둥 날을 보내며 미래 따위는 방치해두어도 어떻게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이런 형편을 만족해하고 있을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머지 않아 사태는 바뀌어 어차피 인간은 생명의 행성인 지구를 보존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모든 관측이나 가설은 마침내 논쟁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고 한 저자는 어차피 인간은 생명의 행성인 지구를 보존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지구의 장래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은 소홀히 한 채 핵군비경쟁에 머리를 싸매고 다툰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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