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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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1956 ~ )는 양자중력(量子重力) 이론 연구에 매진하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접점에 서서 연구하는 이론가라 할 수 있다. 대표작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그는 양자물리학적이면서 철학적(실존적)인 관심과 지향성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최신작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2017년 번역 출간된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 과학적 사고의 탄생]의 개정판이다.

 

이 책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첫 번째 과학자로서의 면모에 집중했다면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과학과 비과학의 분별,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 등에 초점을 둔 책이다. 물론 두 가지 이슈(1. 과학자로서의 면모. 2. 과학과 비과학의 분별,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는 수렴한다.

 

그럼 저자가 정의하는 과학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1)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을 거부하는 태도를 지식탐구의 기초로 삼는 것, 2)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개념을 창안하고 그것을 기존 지식의 일부로 통합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전체가 새로운 일관된 체계가 되었음을 이치에 맞게 설득하는 일, 3) 선대의 지식을 습득한 후 그들이 저지른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해 세상에 관한 이해를 증진하는 과정 등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누구인가? 기원전 610년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기원전 546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이오니아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인 아나톨리아(튀르키예) 서부 해안 지역으로 철학과 예술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 밀레토스는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에 위치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다. 당연히 밀레토스와 아낙시만드로스를 연계시켜 말할 수 있다. 밀레토스는 흑해 인근 북부 주민들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곳인 이오니아의 도시들 가운데서 아니 그리스 전체에서도 가장 번영했던 곳이자 남쪽의 거대 문명과 가장 인접한 도시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로마의 저술가 클라우디우스 아엘리아누스에 의하면 밀레토스의 식민 도시였던 암피폴리스의 총독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그리스는 놀랍게도 땅이 우주 공간에서 떨어지지 않고 떠 있는 돌이라고 여기던 문명권이었다. 이런 그리스의 지적 태도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바로 이토록 혁명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낳은 인물이다. 저자는 당시 밀레토스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같은 학교가 있었는지 모르나 진정한 의미에서 학교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학교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의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은 분명하다고 본다.

 

이런 아낙시만드로스를 오늘날 의미에서 과학자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유한한 크기의 천체로 지구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어느 쪽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구는 다른 어떤 천체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그 동기가 무엇이었건 그의 사상과 연구 결과가 현대적 의미의 과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사상에는 현대 과학의 필수 요소가 빠져 있다. 예컨대 그의 사상에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며 그 수학적 원리를 규명한다는 개념이 없다. 이 개념은 아낙시만드로스 시대로부터 약 1세기가 지난 피타고라스 학파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본격적 과학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중에서도 수리 물리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와 히파르코스의 천문학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물론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주장한 탈레스의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사람인 아낙시만드로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우리가 아는 한 최초로 자연주의 세계관을 제시한 인물이다.

 

탈레스가 말한 물은 그저 물일 뿐이며 그가 생각한 바다는 신이 아니다. 아메리카 나바호족의 창조 설화를 통해서는 유일신의 이름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물이라는 구절을 만날 수 있고 구약 성경 창세기를 통해서는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기 전에 혼돈하고 공허한 땅,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는) 수면(水面)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설명한 세상의 역사에는 초자연적 존재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는 세상 만물을 불, 추위, 더위, 공기, 흙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으로 설명했다. 또한 설명의 대상도 태양, , 지구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자연주의적 관점이 기막히게 들어맞은 분야는 생명과 인간의 기원에 관한 통찰이다. 그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고 생물종의 진화가 기후 조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최초의 생명체는 바다에서 태어났고 지구의 대기가 건조해짐에 따라 육상으로 올라와 적응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어떤 생물이 진화해 최초의 인간이 되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다윈의 본격적 연구 이후에야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6세기에 아낙시만드로스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도 대기 현상의 원인을 자연에서 찾으려 한 그의 생각 자체가 이 세상에 과학이라는 분야를 탄생시켰다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더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이 모두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중에는 놀랍도록 정확한 내용이 더 많다.

 

비는 실제로 지상의 물이 태양열에 힘입어 증발한 결과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진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지각의 균열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체는 바다에서 처음 탄생해 이후 육상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도대체 어떻게 그 시대에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까? 어쩌면 그 비결은 단순히 기존 설명에 의문을 품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낙시만드로스보다 1세기 후에 밀레토스에서 활동한 헤카타이오스는 아낙시만드로스가 남긴 지도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해 그리스 최초의 역사가가 되었다.

 

고대 사상사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공자와 맹자,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롯한 선지자들, 예수와 바울, 부처와 교진여 등이 대표적이다. 책 전편이 흥미롭지만 특히 그런 부분은 이 부분이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발전시켰지만 스승의 주장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울은 모든 복음서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지만 예수의 말씀을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적은 없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와 그 백성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설명했으나 모세의 오류를 분석하는 언행은 일체 하지 않았다.(131 페이지) 오직 아낙시만드로스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인 탈레스에 반대되게 물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지구를 주장했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지구를 떠받치는 바다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스승 탈레스의 주장에 반해 지진은 대지가 갈라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중국 문명이 수 세기 동안 여러 면에서 서양보다 우월했지만 스승을 비판하거나 의문시하지 않는 풍조 때문에 과학혁명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담(餘談)이지만 바울이 예수의 메시지를 관념화시켰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다른 저자의 지적(바울은 예수의 말씀을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한편 그러면서도 비판이나 의문 제기 없이 결이 다른 이론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란 궁금증이 든다.

 

여담에서 본론으로 돌아와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 탈레스의 사상에 반()하는 내용을 세운 부분을 보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스승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고 그것이 광대한 바다이며 대지는 그 바다 위에 떠 있다고 봤다. 따라서 탈레스가 보기에 대지는 원반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직감적으로 바다가 대지를 둘러싸며 떠받치고 있다는 탈레스의 가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광대한 바다를 걷어낸 아낙시만드로스의 지구는 허공에 떠 있는 원통형 대지가 되었다. 과학 발전과정에서 핵심 단계는 지구가 원통형인지 구형인지가 아니라 그것이 허공에 떠 있는 유한한 천체라는 개념이 등장한 시점이다.

 

지구는 원통도 아니고 구체도 아니다. 지구는 양쪽 극으로 갈수록 조금 납작해지는 타원체다. 정확히 말하면 남극이 북극보다 조금 더 납작하므로 타원체도 아니고 서양 배 모양에 가깝다. 지구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허공에 떠 있는 돌멩이이고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발 아래에도 똑같이 있다는 개념이야말로 인류 사상사의 일대 도약이다. 이것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이다.(92 페이지) 현대의 비과학 분야 학자 중에는 지구를 원통으로 본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관을 원시적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지구가 둥글다고 말한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모델을 과학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야말로 명백한 과학적 오류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은 인류가 지구를 허공에 떠 있는 유한한 천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대혁명이었다. 중국의 천문학이 무려 2천년간 이어져오면서 이런 혁명을 이뤄내지 못한 것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지구가 원통형이라고 생각하다가 알고 보니 구체였다고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변화는 단 한 세대만에 이루어졌다. 우주론은 위대한 혁명을 불러온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당연히 아낙시만드로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도대체 어떻게 땅 아래에도 하늘이 있다는 생각을 해냈을까?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개념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법칙 즉 모든 사물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지구를 떠받치는 것이 없다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구는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모든 별이 북극성을 축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려면 지평선 아래에 허공이 존재해야 한다.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개념은 별의 일주 운동과 완벽히 일치했기에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무거운 물체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기존 상식과는 충돌하는 개념이었다. 이 둘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이 진정한 난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천재성은 지구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떠올렸다는데 있다. 그의 대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에 관하여]에 실려 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과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구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 어떤 방향으로도 떨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상에 존재하는 물체들의 상대적 위치는 변하지 않지만 태양계의 차원에서 보면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지와 운동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천체가 천구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각각 다른 거리의 우주 공간에 퍼져 있다고 본 최초의 인물이다.

 

쿠푸리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우주라는 열린 공간을 창안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엄청난 사고의 도약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지구가 있는 우주 대신 주변이 하늘로 둘러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지구라는 우주를 제시했다.(106 페이지) 찰스 칸은 우리는 설사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해도 지구의 위치에 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만으로 그를 합리적 자연과학의 창시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자신은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이야말로 인류의 사상사에서 가장 대담하고 혁명적이며 선구적인 것이었다고 본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상이 과소평가되는 뿌리에는 과학과 인문학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는 현대의 악습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를 뒷받침할 말을 플라톤의 [파이돈]을 통해 알 수 있다. [파이돈]은 지금껏 영혼의 불멸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지구는 둥글다는 새로운 세계관을 역사상 처음으로 소개한 문헌이라는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점이 간과된 것은 오늘날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을 만물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아페이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계가 없는 것(무한)이라는 뜻, 정해지지 않은 것(무규정)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이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려 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페이론의 본질적 특징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물질이 다른 어떤 곳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것은 자연적이면서도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는 속하지 않는 무언가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물질과 동일하지 않지만 그 물질들에 대해 상당히 통일적 원리로 기능하는 어떤 것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가정이 유용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아낙시만드로스 습관의 핵심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의 존재를 상상한 것은 이후 과학의 눈부신 성공을 예비한 바탕이 되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식할 수도 없지만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실체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119 페이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데모크리스토스와 레우키포스가 원자를 상상하고 19세기 영국의 존 돌턴이 원자를 연구한 것은 모두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을 가정한 정신을 이어받은 결과였다. 그것은 모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자연의 실체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물질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예로 패러데이가 현대 과학에 남긴 큰 공헌을 들 수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기와 자기 현상을 아우르는 통일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패러데이는 심층 실험을 통해 관련 현상을 연구한 결과 전자기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다. ()은 마치 어디에나 뻗쳐 있는 거미줄처럼 모든 공간을 채우는 실체다. 그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패러데이의 역선(力線)이라고 부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장, 아인슈타인의 휘어진 시공간, 가연성 물질에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플로지스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핸드릭 로렌츠의 에테르, 겔만의 쿼크, 파인만의 가상 입자,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파동 함수, 현대 기초 물리학에서 우주의 바탕으로 가정하는 양자장 등은 모두 인간이 직접 인지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현상을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기 위해 가정하는 이론적 실체들이다. 이들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에 부여한 것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담당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서양과학 전체가 겉으로 드러난 자연현상 뒤에 숨은 수학 법칙을 찾기 위해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등이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학적 법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생각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일 가능성이 크다.(127 페이지)

 

저자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결정적인 과학 법칙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는 말로 자신의 주안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법칙도 언젠가 한계에 다다르고 더 나은 법칙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의 이론 사이에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점이 있어 우주에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법칙을 확인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이 두 가지 이론을 통합하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 말한다.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것은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온 후에도 뉴턴의 이론이 유용한 영역이 있다.

 

저자는 과학을 우아하게 설명한다. 즉 과학이란 우리가 너무 무지하고 수많은 오류를 안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학문으로 그것은 우리의 무지와 호기심에서 태어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도전하지만 사실에 입각한 증명이나 합리적 비판과 분석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과학은 더 멀리 보는 일이다. 과학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는 관점에 있다. 새로운 과학 이론은 과학자의 상상력에 힘입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존의 지식이 조금씩 수정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 구조를 무()에서 창조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연히 얻은 개념 구조 속에서 생각한다. 생각은 그 대상인 현실과 부딪히고 맞서면서 점점 변화한다. 과학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확실한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답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새로운 답이 나오면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다. 즉 과학적 사고는 언제든 배울 준비가 된 마음가짐이다.

 

저자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 탈레스에 대해 한 존중과 비판의 관계를 논한다. 그것은 모순 없는 태도다. 우리는 동료 시민에게서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필요하다면 그들을 비판할 준비도 되어 있다. 관건은 무조건 거부도 무조건 수용도 아닌 우리의 이성을 사용해 대립과 대화, 판단을 엮어 내는 일이다.

 

짐작했겠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명시적으로 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언급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며 기독교를 믿는 나는 신을 입에 올리는 또는 찾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자연과학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신을 위한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신앙과 학문을 통합할 수 있을까? 충분히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그 통합 작업을 한 책을 보며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접한 바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그저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인지적, 사회적, 심리적 경험을 체계화하는 어떤 본질의 상징인지도 모르는 신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이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저자가 마음은 무엇일까?라고 묻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말했듯 생각은 이 세상에서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도구다.(251 페이지)

 

저자는 속이 텅 빈 진실 안에 숨든 지식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인정하든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왕국을 선택하느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을 연상하게 한다. 카를로 로벨리의 말은 자크 모노의 말과 비교할 수 없이 따뜻하다. 가령 그런 점은 우리의 지식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 있다. 우리가 알던 지식이 금세 뒤바뀌고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삶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소중해진다.”는 저자의 결론격의 말이 있기에 더욱 확실해진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제시한 아페이론을 사유의 수준이 갑자기 현저하게 높아진 것이라 설명하며 관건은 어떤 존재론적 가설을 던짐으로써 현실을 넘어갔다면 이제 현실로 다시 내려와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라 말한다.([세계철학사 1] 70, 72 페이지) 이는 나도 늘 생각하는 내용이다. 자연과학에 몰입하느라 그간 잊고 있었던 인문학 특히 철학 그라운드로 복귀해야 함을 느낀다. 저자도 인용(“종교는 지성의 파괴적 힘에 맞서는 사회의 방패“)한 앙리 베르그송은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가야 하듯 신앙과 학문,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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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의 변천 - 빅뱅에서 인류까지의 지구 이야기
월러스 S. 브로커 지음, 원종관 옮김 / 전파과학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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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스 브로커(Wallace Broecker; 1931~2019)는 물리학 박사이자 지질학 박사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 책을 쓴 목적이 과학의 흐름이 결코 정적(靜的)인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과학 연구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해가는 연쇄이며 모든 관측이나 가설은 마침내 논쟁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더해져 간다는 것이다. (원서)이 나온 해는 1985년이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해는 1996년이고 개정판이 나온 해는 2023년이다. 그런데 태양계에 행성이 9개 있다는 말이 나온다.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에서 강등된 2006년 이후의 개정인데 그 점을 반영해 8개 있다고 하지 않은 것이다.

 

대폭발 가설의 방증(傍證)이란 장(), 대폭발의 흔적이란 장()이 있다. 대폭발의 잔상(殘像), 대폭발의 잔열(殘熱)이란 말도 가능하리라. 우주배경복사를 말한다. 우주 가운데서 지구나 지구형 행성은 화학적으로는 이단자라는 말이 흥미롭다. 지구를 만들고 있는 주된 원소는 철, 마그네슘, 규소, 산소이다. 이에 비해 항성은 거의 수소와 헬륨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단자라는 말이 나왔을 테다. 저자는 최초로 다루어야 할 문제로 수소,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가 어떻게 생성되어 왔는가, 또한 어떻게 암석질의 행성으로 굳어져 갔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행성의 생물이 살 수 있는 불가결한 조건이 딱딱한 표면을 갖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화학의 대상이 되는 반응은 두 개 이상의 원자가 전자를 서로 가르는 것에 관계되어 일어난다. 전자의 공유에 의해 원자는 서로 결합해 화합물이 된다. 그러나 화학반응과 더불어 변하는 것은 전자의 궤도 뿐이며 원자핵은 원래대로다. 일반적으로 화학반응에는 열이 관계된다. 핵반응을 일으키는 데도 보통은 이런 열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큰 열이 필요하다. 우주의 어딘가에 연금술이 행해지고 있다면 별의 중심부 일 수밖에 없다.

 

물리학에는 우주 창성(昌盛)의 초기에 일어난 충돌 사건의 여러 가지 모델이 있다. 계산에 의하면 우주물질의 약 24%가 헬륨 4이다. 76%는 태초의 중성자가 붕괴한 채의 양성자다. 이 비율은 지금 우주의 여러 곳에서 보이는 갓 태어난 별의 헬륨 비율과 일치한다. 대폭발 가설을 지지하는 사실이 여기에도 있다. 수로 말하면 수소 원자 1000개 대 헬륨 460개다. 헬륨은 수소의 네 배의 무게를 갖기 때문에 질량으로는 24%.(60×4/ 1000= 240/1000; 24%)

 

온도는 분자 운동의 척도다. 두 개의 양성자가 충돌하기 위해 필요한 속도는 온도로 고치면 약 2천만도에 해당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말할 수 있듯 열을 생성하는 반응에서는 성분 원자의 질량 감소가 일어난다. 잃는 질량이 열로 바뀐다. 헬륨 원자의 무게는 수소 원자 4개의 합보다 적지만 확실히 가벼워진다. 헬륨핵은 양성자 두 개를 포함하고 핵끼리의 전기 척력은 수소끼리의 네 배의 크기이기 때문에 수소에 비해 훨씬 높은 온도에서도 타지 않는다.

 

한번 그 온도의 문턱을 넘으면 헬륨핵은 탄소핵이 된다. 헬륨 43개 모여 탄소 12가 되는 것이다. 탄소 원자의 질량은 헬륨 원자 3개의 합보다 작고 감소분은 열이 된다. 타기 시작한 핵의 불꽃은 별의 수축을 멈추게 하고 별은 다시 안정 상태가 된다. 같은 방법으로 산소 원자도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4개의 헬륨 4가 모여서 산소 16이 된다. 최대급의 별에서는 이와 같이 연료 결핍, 재수축, 내부의 온도 상승, 타기 어려운 원자핵의 발화(發火)의 반복이 여러 단계에 걸쳐 일어난다.

 

이를테면 탄소는 또다시 타서 마그네슘이 된다. 원자핵이 합체될 때마다 얼마 안 되는 질량이 없어지고 그 대신 열이 생긴다. 단계를 밟는 성장은 철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고 더욱 앞으로 진행할 수 없다. 이 이후는 합체할 때 오히려 열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철보다 무거운 원자핵의 질량은 합체해야 할 총질량보다도 조금 크다. 따라서 별의 핵융합 회로가 합성하는 원소는 헬륨으로부터 철까지 한정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산소나 마그네슘, 규소도 포함되어 있다.

 

생성된 원소에 별의 중심부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길이 있으면 지구형 행성을 만드는 재료를 얻을 수 있다. 작은 별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과 달리 질량이 큰 별은 격한 종말을 맞는다. 핵연료가 모두 없어지면 파국적인 별의 붕괴가 시작된다. 이미 꺼져버린 불꽃은 태울 수 없게 되고 붕괴는 폭축(爆縮)으로 진행되어 별은 산산이 부서져 그때까지의 생성 물질을 주위의 공간으로 흩뿌리게 된다. 이 폭축 현상을 초신성(超新星)이라 한다. 초신성 현상에 수반하는 원자핵 반응에 의해 철보다 무거운 원소군이 생성된다.

 

태양은 우주에서 최초로 생긴 항성이 아니다. 최초의 항성은 수소와 헬륨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태양은 후에 태어났으며 그 원소 조성(組成)은 태양에 앞서 태어나서 사라져간 무수한 적색 거성의 폭발 생성물 조성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의 탄생에 앞서 은하계 형성은 두말할 것 없이 막대한 수의 적색 거성의 탄생과 소멸이 있었다. 콘드라이트를 함유하는 운석이 태양계의 역사 40억 년을 통해서 한 번도 녹은 적이 없는데 비해 행성을 만들고 있는 물질의 대부분은 분명히 한번 또는 여러 번 녹았다.

 

지구형의 행성에서는 그때 화학 조성이 다른 여러 개 층으로 나뉘어졌다. 그것은 지구 표면의 지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성 물질을 여러 층으로 분리시킨 주된 힘은 금속 철과 규산염 사이의 큰 밀도 차이에 의한 것이다. 돌은 해저에 잠기고 기름은 수면으로 떠오르듯 행성의 금속 철은 지구 중심에 모이게 된다. 원시 행성이 형성될 때 내부가 녹으면서 밀도가 높은 금속 철(nickel-iron)은 중심부로 가라앉았고 밀도가 낮은 규산염은 표면 위로 떠올라 층을 이뤘다.

 

이러한 분리가 일어나려면 행성 내부가 녹는 것이 필수였다. 주로 운석 충돌에 의한 운동 에너지, 방사성 원소의 붕괴열, 중력 압축열이 내부 온도를 높여 금속을 융해시켰다. 이 과정으로 인해 금속핵(Core)과 규산염 맨틀(Mantle) 및 지각(Crust)이 구분되는 내부 구조가 형성되었다. 천체가 차가운 기간에는 나누는 힘이 있어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천체가 녹으면 바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콘드라이트를 함유하는 운석이 만약 완전히 녹았다면 콘드룰(Chondrule)이라 불리는 작은 구형 알갱이 조직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 조직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녹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지구의 맨틀은 주로 마그네슘과 철이 풍부한 규산염 광물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 전체 부피의 약 82%를 차지하며 지각 아래에서 핵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암석층이다. 감람석(Olivine)과 휘석(Pyroxene) 같은 고온의 규산염 광물이 주를 이룬다. 감람석과 휘석은 주로 염기성 및 초염기성 암석(현무암, 감람암 등)에서 함께 발견되는 주요 조암(造巖)광물이다. 마그마의 결정 분별 작용 과정에서 감람석이 먼저 정출(晶出)된 후 마그마와 반응하여 휘석을 형성하는 연속적인 관계를 갖는다.

 

둘 다 마그네슘과 철을 풍부하게 함유한 규산염 광물이다. 일반적으로 감람석과 석영은 마그마 내 규소량 차이 때문에 동일한 암석에서 동시에 발견되지 않는다. 지구 전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철(Fe)과 마그네슘(Mg)을 합한 원자수는 규소(Si) 원자수의 약 두 배와 거의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행성의 탄생에 관해서 여러 생각이 있듯 중심핵의 생성과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한편에서는 지구는 처음부터 층으로 나누어져 성장하여 먼저 금속 철이 모이고 그 주위에 산화물(주로 산소와 결합한 규산염 물질)이 쌓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에서는 금속과 산화물이 서로 뒤섞인 후 두 층으로 나뉘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가 보편적인 생각이다. 이 경우 갓 태어난 지구는 금속 철과 규산염 광물과 같은 혼합물이었기 때문에 철은 뒤늦게 녹았을 것이다. 녹지 않았다면 철만 중심에 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지구를 녹인 열은 어디서 왔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성운 물질이 지구에 내려 쌓였을 때 해방된 중력에너지이며 다른 하나는 행성 물질 중에 함유되어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에 따라 생기는 열에너지다.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의 두께가 크게 다른 것은 그들의 생성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해양지각의 두께는 맨틀 대류가 상승하는 가장자리에 나오는 액체의 양에 따라 다르다. 그곳에서는 지판이 두 개로 나뉘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틈을 깊이 5km에 걸쳐서 채울 정도의 액체가 생기고 있다. 따라서 해양 지각은 5km 두께다. 화강암을 만드는 성분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칼륨이다. 화강암의 칼륨은 맨틀 물질의 160배에 달한다. 현재 지구 전체 칼륨의 약 반은 대륙 지각에 모여 있다.

 

바다의 현무암은 칼륨을 0.1%밖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대륙 지각에서의 칼륨의 비율은 평균 1%이다. 소행성의 먼지가 지구의 지각 물질에 비해 대량의 이리듐을 포함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금속 철에 대한 친화성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이르면 거의 전부 중심핵 안으로 들어가 지각에는 거의 없다. 적당한 양의 물이 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다음의 네 가지다. 1) 바다가 생기기에 충분한 물을 행성이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2) 행성의 내부 깊숙이 머물지 않고 표면에 나와 있어야 한다. 3) 증발해도 공간에서 잃어버릴 수 없어야 한다. 4) 대부분 액체로 있어야 한다 등이다.

 

지구는 흑체(黑體)가 아니다. 구름이나 빙모나 사막이 지표에 입사하는 태양광의 상당 부분을 공간으로 반사하고 있다. 반사광은 지표를 따뜻하게 하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만이 흑체와의 차이라면 지표의 평균 온도는 영하 20°C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대기에는 세 개 이상의 원자가 결합해서 생긴 분자가 있다. 이 종류의 분자는 적외선을 흡수하는 힘을 갖고 있다. 주된 것은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테인, 이산화질소 등이다.

 

지구의 기후가 놀라울 만큼 주기 변화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원인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질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태양을 도는 지구의 궤도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구 궤도의 모양은 아주 오랜 기간을 평균으로 잡으면 일정 하지만 짧은 기간에는 평균에서 기울어져 있음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달이나 수성과는 달리 지구는 표면의 기체를 간직할 수 있었다. 금성과 달리 온실 폭주의 재앙을 벗어났다. 지표의 탄소 순환으로 보이는 천연의 제어 과정에 의해 얼음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것으로부터도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물이 전부 증기나 얼음이 되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비교적 일정한 온도를 지킬 수 있지만 그런대로 기온에는 상당한 흔들림이 일어났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빙기이며 최근에는 대개 10만년마다 일어나고 있다. 광대한 빙하의 전쟁이나 후퇴를 일으킨 것은 지구 궤도의 작은 주기 변동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하면 행성의 기후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위 행성의 크기와 궤도의 얼마 안되는 특징에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해저에는 아주 많은 하천에서 흘러나온 광물 입자나 육지에서 날아온 먼지 알갱이가 쌓인다. 화학조성은 지각 전체의 평균과 같다. 그렇게 암설(巖屑)을 주로 하는 퇴적층을 셰일이라 한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육지의 흙에서 녹은 이온은 단일 광물의 퇴적물을 만드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해저를 뒤덮은 퇴적물의 75% 이상이 방해석이었거나 50% 이상의 단백석이었던 넓은 해역이 발견되었다.

 

방해석과 단백석은 플랑크톤이 만들어낸 것이다. 1970년대 심해저에서 극적인 열수 순환의 예가 발견되었다. 지구 내부의 맨틀 대류가 두 갈래로 나뉜 해저지각의 부분에는 거대한 열극이 생기고 있다. 우즈홀해양연구소의 심해 조사선은 이 열극을 탐험해서 신비스러운 광경을 만났다. 깊은 해저에 보통 보이는 무생물의 상황과는 달리 균열대의 단면에는 기묘한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해저의 오아시스가 생긴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균열에서 솟아오르는 열수가 해저에 고립된 생명을 유지하는 먹이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수가 함유하고 있는 황화수소와 심해의 물에 녹아있는 산소가 결합해서 생기는 에너지를 세균이 유기 분자의 합성으로 이용하고 있다. 황화수소는 지구 내부에 환원 환경에서, 산소는 표면에 산화 환경에서 생긴 것이다.

 

인류에게 바람직한 환경을 유지해온 자연의 모든 작용에 대해서 인간 활동이 작다고 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 활동에 의해서 기후나 토양이 크게 변해버리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낸 화학 농축물이 가장 좋은 곳을 급속히 낭비하고 있다. 그것을 다 사용한 후에 오는 에너지와 광물의 부족을 메우는 데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자원에 의존해야 한다. 현대인은 지구의 장래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은 소홀히 한 채 핵군비경쟁에 머리를 싸매고 다투며 의학 기술로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안달하며 한편에서는 기계 문명에 도취된 삶을 살고 있다.

 

고대 로마 이후 그다지 진보는 보이지 않는다. 빈둥빈둥 날을 보내며 미래 따위는 방치해두어도 어떻게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이런 형편을 만족해하고 있을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머지 않아 사태는 바뀌어 어차피 인간은 생명의 행성인 지구를 보존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모든 관측이나 가설은 마침내 논쟁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고 한 저자는 어차피 인간은 생명의 행성인 지구를 보존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지구의 장래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은 소홀히 한 채 핵군비경쟁에 머리를 싸매고 다툰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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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7일 - 창세기와 과학에 따른 세상의 기원
존 C. 레녹스 지음,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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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나는 기독교에 대해 회의(懷疑)하는 마음으로 [빅뱅인가 창조인가]란 책을 구입, 소장하던 기독교인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옛날의 순수한(?)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지은이는 수학자이자 목회 고문인 존 레녹스(John Lennox; 1943 ~ ). 사실 나는 [빅뱅인가 창조인가]를 지은이의 의도나 저술 방향과 무관하게 내 불가지론적 경향성으로 읽으려 했었다. 그러다 별 소득도 없이 시간만 보내던 끝에 책을 버렸고 그 이후 또 한참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 사이 나는 기독교를 떠났다가 돌아오게 되었고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을 읽을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의 저자가 그 옛날 가지고 있던 [빅뱅인가 창조인가]의 저자와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처음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을 읽으려던 당시가 아닌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최근에야 안 사실이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같은 저자의 [최초의 7]을 먼저 읽게 된 것이다. 저자는 [신의 장의사; 과학은 하나님을 매장했는가?]란 의미의 [God’s undertaker; Has Science buried God?]를 쓴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과학은 신을 매장했는가?]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성경은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이라고 말한다.(책에는 성서라고 나온다.) 저자는 성경의 두 가지 독법에 대해 말한다. 문자적 해석과 (그에 대비되는) 비유적 해석이 그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훈을 다룰 때 성경 구절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석이 필요하지만 거기에는 제한이 따른다. 가령 우리와 시간적, 지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문화에서 기록된 텍스트를 다룰 때는 우리가 자연스러운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텍스트의 1차 수신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의미가 아닐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바람직한 것은 우선 자연적이고 1차적인 의미를 취하고 그렇게 해서 의미가 통하지 않으면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저자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한 NOMA(NonOverlapping MAgisteria)를 예로 든다. 이는 종교와 과학이 서로 중첩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성경과 과학은 같은 주제도 다룬다. 창조 이야기가 그것이다.

 

저자는 성경에서 과학적 시사점을 얻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나 성경에서 과학에 관한 시사점을 찾는 것이 성경을 뉴턴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또는 일반적인 소금의 화학 구조를 추론하는 과학 논문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성경은 종종 과학적 언어보다 외양(外樣)의 언어인 현상학의 언어로 불리는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해가 뜬다란 말이 대표적이다. 사실 해가 뜨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과학자들도 사용하는 말이다. 우주를 만들어놓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 말하는 저자는 창조론자란 말이 대개 젊은 지구 창조론자란 말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성경의 귄위와 최고의 지위를 타협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제안한 것처럼(로마서 1; 19-20) 우주에 대한 현대의 첨단 지식을 고려하면서도 창세기 1장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67 페이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구약 성경 예레미야의 한 구절이 내 흥미와 궁금증을 불렀다.

 

그것은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않았다면..”이란 구절이다. 화자(話者)는 여호와다. 즉 여호와가 주야와 언약을 맺었고 천지의 법칙을 정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천지의 법칙을 정했다는 말은 자연법칙을 정했음을 이르는 말이냐?AI에 물으니 AI는 단순히 현대 과학적 의미의 자연법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답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의 천지 창조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예레미야에 기록된 여호와의 천지의 법칙 창조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저자는 성육신이라는 신비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기적에 대해 언급한다. 인류 자체가 초자연적 개입으로 시작되었다고 사실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야만 했다고 믿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과학이 변하면 성경 해석도 함께 무너질 정도로 성경 해석을 과학에 너무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반계몽주의적 동기나 두려움으로 인해 과학을 무시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지성에 반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과학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의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비록 성경이 젊은 지구 창조론의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그런 해석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서도 오래된 지구 창조론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천지 창조 기사가 이해하기 난해한 주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우주를 창조할 재료가 될 만한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는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리학자 존 호튼(John Houghton)은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바로는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기본 구조 및 빅뱅 시의 조건들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조율이 요구되었다고 말한다. 호튼은 이를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모든 우주가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성경의 주장을 확인시켜주는 빅뱅이라는 우주모델이 그와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우주가 아주 오래 되었다는 점도 시사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하나님과 빅뱅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둘은 다른 종류의 설명이라고 말한다. 설명하자면 하나는 창조에서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의 방식과 관점을 말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창조세계 안에 자신의 지문을 남겨두셨기에 자신은 시공간의 시작과 관련하여 과학과 성경 기록 간에 존재하는 수렴점에 관점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문이라는 말은 빅뱅의 잔상이란 말을 닮았다. 빅뱅의 잔상이란 우주배경복사를 지칭한다. 과학의 관점을 고수하는 책과 창조론을 고수하는 책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저자의 글은 그래서 읽을 만하다. 이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책이 완결적이지 않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하나의 관점을 취하지 않고 수렴점을 찾으려는 입장을 취하면 누구든 완벽한 관점을 제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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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과학자가 들려주는 아라온과 떠나는 북극 여행 - 쇄빙선은 얼음을 어떻게 깰까요? 그림으로 보는 극지과학 7
신동섭 지음 / 지식노마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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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과학자가 들려주는 아라온과 떠나는 북극 여행]의 저자 신동섭은 우리나라의 첫 번째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의 연구장비 분야 총괄 건조감독을 한 인물이다. 국민 공모를 통해 탄생한 아라온(이란 이름)은 바다를 의미하는 우리의 옛말인 아라와 전부 또는 모두를 나타내는 온을 붙여 만든 말이다. 얼어붙은 바다를 항해하려면 얼음을 깨는 쇄빙 능력이 필수다. 쇄빙연구선은 연구 외에도 다른 배를 끌기도 하고 얼음에 갇힌 선박을 구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2010년 아라온 출항 전까지는 극지 연구를 위해 다른 나라의 쇄빙선을 빌려 연구를 해야 했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 신항로가 열림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쇄빙연구선을 기획하고 있다. 육상은 지진과 같은 특이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바다 위에 떠다니는 선박은 정지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바다는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아라온은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해서 항해사의 조정과 관계없이 파도에 따라 계속 움직이고 있다.

 

항상 날씨가 안 좋기로 이름난 남극의 중앙 해령은 거대한 외부의 힘이 배를 좌우로 엄청나게 흔드는 것 같은 곳이다. 북극은 우리나라처럼 북반구에 위치한다. 여름은 얼음이 너무 두꺼워 연구가 쉽지 않아 여름에 주로 북극해 탐사를 한다. 남극은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에 겨울에 주로 남극 탐사를 떠난다. 이때가 남극은 여름이라 그나마 얼음이 적다. 북극은 전 지구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더워지는 지역이어서 지구온난화 연구에는 최적이다. 영구동토층(permofrost)이란 2년 이상 연속하여 0°C 이하가 유지되는 곳을 말한다. 육상에서는 고위도 지역과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메테인이나 에탄 등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탄화수소가 낮은 온도와 높은 압력에서 물 분자 내에 갇혀 얼음 형태로 유지되는 물질을 말한다. 러시아, 알래스카, 캐나다 등 육상 연구동토층의 하부와 일정 수심보다 깊은 전 세계 해역에서 발견된다. 자원 가능성 및 지질 재해와 환경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라는 측면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CTDconductivity, temperature, depth의 이니셜로 전도도, 온도, 깊이를 한 번에 측정할 수 있는 첨단 장비다.

 

아라온에 사용되는 CTD는 수십 10, 500m까지 사용 가능한 장비다. CTD는 전도도, 수온, 수심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다. 수심을 어떻게 잴 수 있을까? 10m가 깊어질수록 1기압식 수압이 증가한다. 압력 센서를 통해 압력을 재면 이를 깊이로 환산할 수 있다. 엽록소를 측정하는 형광계(fluormeter)라는 것도 있다. 엽록소를 검출할 수 있는 특정 파장대의 빛을 쏘고 엽록 소로부터 반사되는 양을 관측한다. 반사되는 양이 많을수록 전압 값이 올라가게 되어 이를 디지털화하여 정형화된 값으로 표현한다. 관측된 형광 성분은 엽록소의 양을 알 수 있어서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연구원에게는 중요한 값이다.

 

바다 아래에는 육지처럼 평지도 있고 계곡과 산도 있다. 수심 몇천m의 해저면을 보려고 물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배가 이동하면서 바닷속 해저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내려가지 않고 알 수는 없을까? 어떻게 이런 지형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이러한 호기심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저 깊은 바다의 수심과 해저 바닥이 어떻게 생겼고 뭐가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음향측심기(ecosounder)가 개발되기 전에는 줄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바다 밑으로 내려 보내 추가 해저면에 닿았을 때 줄의 길이를 재 깊이를 측정했다. 이를 깊이 측정 측심(sounding)이라고 한다. 1913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알렉산더 벰(Alexander Behm; 1880-1952)이 음향 측심기를 최초로 발명한 후 지금은 다양한 음향 장비를 이용해 물속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다양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알렉산더 벰이 음향측심기를 개발한 것은 1912년 타이타닉호 재난 사건 이후다. 바닷속 사용 장비들과 통신을 위해서 육상의 전파를 이용하는 것처럼 바다에서는 음파를 사용한다. 전파는 물속에 들어가면 높은 유전율과 전기 전도도 때문에 빠른 속도로 흡수가 되어 원거리 전송이 어렵다. 1,49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물속에서는 음파가 전송이 잘 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음파에 의해 수중 목표의 방위 및 거리를 알아내는 장비를 소나(SONAR; SOund Navigation And Ranging)라고 한다. 한 곳의 물체를 전파를 이용하여 판독할 수 있는 레이더(RADAR; RAdio Detection And Ranging)와 같은 원리이다.

 

바닷속 해저면을 볼 수 있는 것은 음파 투과와 반사의 원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음파를 발사해 반사되어 오는 음파를 분석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한 번에 많은 음파를 보내면 반사되어 오는 음파 신호도 많게 되며 그만큼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아라온의 다중빔음향측심기는 한 번에 432개의 음파 신호를 순차적으로 보내고 받아 해저면을 그릴 수 있다. 반사되어 오는 시간과 반사 강도를 알면 지형의 모양과 지형의 강도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해저면이 바위일 경우 반사도가 강하지만 진흙과 같은 곳은 일부 흡수되고 반사되어 상대적으로 반사도가 약하다. 이런 음파 신호 반사 강도를 알기에 해저면이 어떤 재질로 이루어졌는지도 예측 가능하다. 음파 신호는 스넬의 법칙에 따라 물속에서 진행방향에 따라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투과된다. 이때 매질을 통과하는 음파면의 진행 속도는 음파 속도에 따라 달라지며 이에 따라 음파는 굴절하게 된다. 이때 음파 속도가 정확하지 않으면 정확한 값을 측정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다중 음향 탐사시 실시간이 아니면 자주 음속 보정을 해줘야 한다. 배가 이동하는 지역의 온도, 염분도에 따라 음파 속도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북극 동 시베리아 해에서 제4기 빙하기에 존재했던 빙상의 흔적을 해저 지형 조사를 통해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은 다중빔음향측심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다중빔음향측심기를 활용한 관측 데이터는 IBCAO(International Bathymetric Chart of the Arctic Ocean)로 보내게 된다.

 

온실가스로 주로 이산화탄소와 메테인 가스를 이야기한다. 특히 메테인 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온난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러한 메테인 가스의 20% 이상이 북극 바다 아래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 한다. 북극 바다 아래 얼음처럼 굳어 있는 메테인 하이드레이트의 주성분이 메테인 가스다. 메테인 하이드레이트는 바다 속 미생물이 썩어 생긴 퇴적층에 낮은 온도와 높은 압력이 가해져 물과 함께 메테인 가스가 얼어붙은 일종의 고체연료라고 할 수 있다.

 

메테인 하이드레이트에 불을 붙이면 활활 잘 타기 때문에 에너지원으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메테인 가스는 연소 시 석탄이나 석유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온도 상승으로 녹아 메테인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 온난화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어디에 어느 정도 매장되어 있고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 메테인이 분출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북극 연구 항차 동안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구들을 한 곳에서 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유용할까? 지금 배가 어디로 가고 있고 다음 연구 지점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 현재 이 지역의 해수 관측 결과는 어떨까? 바깥의 대기 관측 결과는 어떨까? 바다 속으로 내려간 장비는 어디쯤 있을까? 현재 이 지역의 수심은 얼마나 될까? 파도가 제법 있는데 배가 어느 정도 흔들리는지? 지금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러한 다양한 궁금증들은 알아본 구축된 연구 종합 관리 시스템으로 해결한다.

 

여름이 지나 밤이 시작되는 시기 중 맑은 날씨의 밤하늘엔 환상적인 오로라가 펼쳐진다. 다른 연구원들은 해당 연구 항차가 끝나면 하선하여 한국으로 복귀하지만 장비 책임자는 모두 연구 항차가 끝날 때까지 아라온과 함께 해야 한다. 저자는 거의 매년 북극 연구 항차에 승선하면서 여러 차례 아라온 선상에서 오로라를 보았다고 말한다. 북극 탐사에 처음 생산하는 사람들은 북극곰과 오로라를 꼭 보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오로라는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빛 중 하나라고 한다. 지구와 태양은 거대한 자석과 같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를 머금은 물질(플라스마)이 지구 자기장에 끌려 오고 높은 하늘에서 공기분자와 부딪히면서 빛을 내는 것이 오로라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북극 하늘도 온실가스로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가스가 계속 증가하면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지구 온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수온이 올라가게 된다. 수온 상승은 북극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메테인 가스를 대기로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해빙이란 바다가 얼어서 만들어진 얼음이다. 남극의 빙하와 더불어 북극의 해빙은 천연 햇빛 반사기다. 남극에는 적당한 빙하가 있어야 하고 북극에도 적당한 얼음이 있어야 적당량의 태양빛을 지구 밖으로 반사하면서 지구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얼음이 줄어들면서 지구 밖으로 태양빛 반사량도 줄어드는 것을 막아보고자 하는 과학적 노력도 있다. 거대한 우주 거울과 인공 구름이 성공한다면 지구로 들어오는 빛의 일부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북극이 다른 곳보다 더 빠르게 온도가 상승하는 이유로 해빙(海氷)이 해빙(解氷)되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북극해 해양생태계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박테리아는 죽은 플랑크톤에서 메테인과 이산화탄소를 토해낸다. 이 가운데 일부는 메테인 하이드레이트로 얼고 수백만 톤의 해저 바닥에 숨어 고압과 차가운 바다에 갇혀 있다. 아라온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이산화탄소와 메테인 가스 방출량 측정을 비롯하여 과거 현재의 기후와 생태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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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 - 해양생물학자의 경이로운 심해 생물 탐사기
에디스 위더 지음, 김보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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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스 위더는 심해 생물 발광을 본 짜릿한 첫 경험을 잊지 못하고 힘들고 위험한 해양생물학자의 길을 계속 가는 사람이다. 저자는 심해 생물 발광을 불꽃 놀이 같다고 표현한다. 저자는 "불꽃은 여러 형체를 띤다. 그중 이전 것과 동일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똑같은 형상을 볼 수 없다. 반복은 시각적 메아리를 만든다. 그것은 음악적이 아니라 회화적으로 구현되는 주제의 변주다." 라고 말한다. 차가운 빛이라는 심해의 생물 발광은 지질학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심해의 생물 발광이란 유황, 메탄 등의 화학적 연료를 기반으로 형성된 열수구라는 지질학적 환경에 생물체가 적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화석연료를 태워 방출하는 막대한 이산화탄소의 상당량을 바다가 흡수해 탄소순환의 균형을 유지하지만 그로 인해 바다가 산성화되고 있음을 우려 한다. 저자는 이 행성은 살아 숨 쉬는 물의 세계이지만 그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생경한 생물들이어서 그들을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깊은 바닷속까지 이어진 반짝이는 생명의 그물을 알지 못한 채 수면 위만 바라보는 것은 바다의 경이로움과 우리 존재를 가능케 하는 바다의 역할에 눈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동물을 수면 가까이로 데려오면 급격한 수압 변화로 죽는다고 오해하지만 정작 더 치명적인 요인은 수압이 아니라 수온 변화라고 말한다. 부레처럼 공기로 채워진 공간이 있어서 부피가 폭발적으로 변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기관을 갖고 있지 않는 많은 동물들에게는 압력의 변화는 그렇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반면 바다 부피의 약 90%를 차지하는 심해수는 매우 차가워서 평균 수온이 0 - 3°C밖에 안 된다. 그물로 심해 동물을 포획하여 따뜻한 표층수로 끌어올리면 그 동물들은 더운 수온에 익어버리고 만다.(83, 84 페이지)

 

생물 발광은 빨강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등 온갖 색을 띠지만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해(open sea)에서는 파란색 빛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속에서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이는 것은 파란색의 물속에서 가장 멀리까지 전달되는 색이기 때문이다. 다른 색들은 파란색보다 먼저 분산되거나 흡수되어 점차 사라진다.(87 페이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물의 색은 어떤 빛을 흡수하지 않는지에 따라 규정된다. 예를 들어 엽록소가 녹색으로 보이는 것은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적색광과 청색광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녹색 광자가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것이 쓸모가 없어져 내버린 광자라는 뜻이다.

 

우리가 취하는 시각 정보 대부분은 거부된 광자 즉 반사된 빛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스스로 광자를 방출하는 생물 발광에는 이 일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생물 발광의 절대 다수가 푸른색이라는 사실은 왜 그렇게 많은 심해 동물이 붉은색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해수를 뚫고 내려온 햇빛도 청색광이고 생물 발광도 대개 푸른색이므로 심해 동물 대부분의 눈은 청색광만 볼 수 있게 진화했다.

 

인간이 잠수정을 타고 심해에 내려간 것은 뉴욕 동물 학회의 윌리엄 비브와 엔지니어 오티스 바턴이 최초였다. 그들은 1930년대 초 버뮤다 해역에서 바턴이 설계한 구() 모양의 철제 잠수정을 타고 35차례 심해를 탐험했다. 저자는 생물 발광이라는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빛을 만들어내려면 에너지가, 그것도 많은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는 생명을 움직이는 동력이며 결코 실없이 소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어마어마한 지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장소는 왜 여기였을까?"(105 페이지)

 

표층수와 해저 사이의 허허벌판 같은 중층수에서는 포식자로부터 숨을 방도가 없다. 발각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재빨리 어둠을 은신처로 삼았다가 해가 진 후에 다시 해수면 근처로 올라와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바다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이 이 전략을 쓴다. 그들은 일몰 후에 해수면으로 수직 이동했다가 해가 뜨기 전에 다시 내려간다. 이러한 동물 층이 너무 조밀하여 선박의 음파탐지기를 확인하면 수심이 얕아졌다가 다시 깊어지는 것처럼 나타날 정도다.(109 페이지)

 

처음으로 고감도 광 탐지장치를 해저로 내려 보낸 1950년대에 과학자들은 광 검출기에 기록된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중에 투과된 햇빛만 측정할 줄 알았던 조도계가 수심 300m 밑으로 내려가자 다른 빛을 기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기계가 고장 난 줄 알았지만 결국 그것이 생물 발광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밝혀진 것은 잔잔한 바다보다 거친 바다에서 더 많은 섬광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발광은 하나의 유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포식자를 일시적으로 실명하게 하기, 먹이 유인, 짝짓기 등에서 서로 다른 밝기와 지속 시간, 패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것(잠수정에 앉아 칠흑 같은 어둠을 보는 것)이 정말 심해 생물체들에게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행동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심해에 관한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잠깐 화젯 거리가 될 뿐 장기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물론 소련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라는 점에서 생물 발광 연구 분야에 투자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는 우주 사업과 비슷하다. 우주 사업을 일으킨 시발점은 대중의 관심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 관계였다. 1960년대에 NASA가 백지 수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이겨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고 NASA는 대중을 겨냥한 최고의 광고와 마케팅에 그 자금 일부를 할애했다.

 

생물 발광은 잠수함의 존재를 노출시킬 수 있다. 따라서 소련과 미 해군은 언제 어디서나 아군 또는 적군의 잠수함이 탐지에 가장 취약해지는지 알기 위해 생물 발광 현상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눈에 띄는 장벽이 전혀 없는 외해(外海; open sea)에서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짝짓기다. 유성 생식의 성공 열쇠는 더 좋은 짝을 더 많이 유인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짝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위장 수단으로 등장한 생물 발광이지만 짝을 유인하는 추가적인 용도가 개발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유전적 격리의 경로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대중에게 과학을 효과적으로 알리려면 좋은 이야기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200 페이지) 그런데 과학자들도 연구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알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텔레비전이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해줄 강력한 수단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러나 텔레비전을 신뢰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을 위한 과장이 흔하고 그러한 과장은 대개 과학적 사실과 반대되기 때문이다.(196 페이지)

 

육지에서는 적외선 조명과 적외선 카메라의 조합으로 유용한 결과를 내지만 적외선이 물에 완전히 흡수되어 무용지물이 되는 심해는 사정이 다르다. 육지에서는 겁이 많은 동물을 먼 거리에서 촬영하기 위해 망원렌즈를 사용할 수 있지만 물에서는 불가능하다. 빛을 산란시키는 물의 특성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얻으려면 피사체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서 촬영해야 한다.

 

저자는 귀 기울일 말을 많이 한다. 자연사 다큐멘터리의 명목상 목표는 시청자에게 자연세계에 관해 알려주는 것이지만 제작을 가능케 하는 상업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청자의 이목을 끌고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자연사적 사실의 열거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206 페이지) 자연사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잃게 만드는 두 가지 요소는 지루함과 부정직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통계적으로 편성에 더 치명적인 것은 전자다. 즉 제작자는 가능한 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

 

그들은 왜 얼지 않나요?” 이것은 햇빛도 없고 수온이 0°C 가까이 내려가는데 왜 물고기들이 얼어 죽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이에 답하려면 지구의 뜨거운 핵과 얇은 해양 지각, 해류의 순환 패턴, 염분에 의한 어는점 내림 현상 등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즉 예리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말할 수 있는 점은 해양지각이 대륙지각보다 얇은 지질학적 이유다. 해양지각은 섭입 작용을 통해 두께가 무한정 커지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륙지각에 비해 얇다. 얇은 지각은 지구 내부의 열이 해수로 훨씬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요인이다.

 

1998년 미국과 쿠바는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해양 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제한적인 협력이 이루어졌다. 카리브해 해양연구소(CMRC)1998년부터 미국에 기반을 둔 다른 NGO보다 앞장서서 쿠바 정부의 허락을 받아 쿠바 해안 지역에서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책에는 저자가 흡반이 발광포로 진화한 문어를 목격한 기록이 나온다. 이를 계기로 카리브해 심해 탐사를 하게 된 저자는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왜 얼지 않나요?“는 바로 카스트로가 한 질문이다.

 

저자 일행이 쿠바 해역 수중 탐사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촬영감독 엘 기딩스와 피델 카스트로의 개인적 친분 덕분이었다. 그 친분은 스쿠버 다이빙과 해양 탐사에 대한 공통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216 페이지) 저자는 카스트로가 지식을 과시할 때도 많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219 페이지)

 

생물 발광으로 짝을 유인하는 방법은 그 빛이 포식자에게도 쉽게 눈에 띈 단점이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된 빛 구름을 방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여 빛과 자신의 몸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게 할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된다. 저자는 수백 개의 생물 발광에 둘러싸이면 빛의 교향곡에 푹 빠져 있는 기분이 들 것이라고 말한다. 식물성 플랑크톤 형태의 식물은 표층수에서 생장하다가 죽으면 깊은 곳으로 가라앉거나 해파리, 갑각류, 오징어, 어류 같은 포식자에 의해 심해로 운반되어 사체나 배설물의 형태로 다른 생명체들에게 귀중한 식량이 된다.

 

심해 서식자들에게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의 만나와도 같다. 그러나 해저까지 내려오는 도중에 많은 동물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에 처음에는 폭우처럼 쏟아지지만 바닥에 도착할 때는 이슬비처럼 되고 만다. 따라서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동물의 수와 크기가 줄어든다. 바다 눈이란 말을 만든 사람은 윌리엄 비브다. 저자는 바다 눈 역시 발광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 원인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세균에 의한 것이다.

 

심해 해저에는 바다눈 외에 또 다른 식량 공급원이 있다. 죽은 생물의 유해다. 이 먹이 선물 세트는 데드폴(deadfall)이라고 불리며 그 중 가장 큰 선물인 웨일 폴(whale fall)은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노다지다. 한 조각의 바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지구라는 우주선(宇宙船)이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발명가, 건축가, 시스템 이론가, 미래학자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진 벅민스터 풀러의 이 표현은 한정된 자원을 가진 하나의 생물계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유지장치를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렸다면 아슬아슬한 순간에 보급선이 나타나 우리를 구해 줄 가능성은 없다. 그렇게 우리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역사를 이미 숱하게 경험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를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깨닫는 실로 불행한 경험을 반복해 봤다. 전 세계적인 어업 붕괴는 그 수많은 예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관점을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우리는 세포의 내부작용이나 원자보다 작은 입자의 역학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시야를 확장하여 무한한 우주를 상상할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 초점을 조정하는 능력이 바로 우리의 초능력이다. 바로 지금 지구에 사는 우리가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무엇이 생명을 가능케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이는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생명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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